[르포] 대통령실로 돌아가는 청와대 : 월간조선

“비가 대수인가요. 청와대를 제 눈으로 꼭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6월 20일 오전 8시30분,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靑瓦臺) 정문 앞.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로 현장은 이미 붐볐다. 줄은 정문 오른쪽에 자리한 인도를 따라 100m 이상 이어졌다. “줄이 끝이 없네”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관람객들은 들뜬 표정으로 우산을 들고 청와대 관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청와대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오전에만 6000~8000명이 방문했다. 이처럼 청와대 관람 열기가 뜨거운 이유는 대통령실이 8월 1일부터 재정비, 다시 청와대로 복귀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용산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실을 이전한 지 약 3년 만이다.

6월 3일 KBS·MBC·SBS 등 방송 3사가 공동 실시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다음 대통령은 어디서 일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58.2%가 ‘청와대’를 선택했다. ‘용산’(15.4%), ‘세종시’(13.9%), ‘정부서울청사’(3.6%)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에 따라 7월 31일까지만 일반 시민에게 개방되며, 온라인 커뮤니티에 ‘청와대 예약 성공하는 팁(tip)’이 공유될 정도로 치열한 예약 경쟁 끝에, 현재 관람 예약은 전 회차 마감된 상태다. 기자 역시 치열히 경쟁하다 6월 20일 오전 9시30분 회차 취소표가 떠 간신히 예약에 성공할 수 있었다.

“밤하늘 별 따는 게 관람 예약하는 것보다 더 쉽겠다는 생각마저 들어”

청와대 본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바닥에 깔려 있는 붉은 레드카펫과 웅장한 계단이 보인다. 특이하게도 좌측통행 방식이다. 사진=조선DB

예약 시각보다 1시간 일찍 도착했지만, 청와대 앞에는 이미 장사진이 펼쳐져 있었다. 관광버스도 여럿 주차되어 있었다. 강원도 양양에서 친구들과 함께 온 김선자씨는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아 연차를 내고 방문했다”며 “관람 예약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밤하늘 별을 따는 게 더 쉽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예약자 확인을 거쳐 정문을 통과하기까지 약 20분이 걸렸다. 혹시나 싶어 온 건지 사전 예약 없이 방문한 시민들이 있었는데, 역시나 입장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정문을 지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청와대 본관이었다. 1991년 9월 건축된 건물로, 이전까지는 본관 동쪽에 위치했던 구(舊) 본관(옛 경무대)이 집무실 및 관저의 역할을 했다. 관람객들에게 공개된 공간은 영부인이 외빈 접견과 집무실로 사용한 무궁화실, 인왕실, 대통령 집무실과 외빈 접견실, 충무실 등. 본관 앞 역시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다시 20분가량 대기한 뒤 본관에 입장했다.

가장 먼저 붉은색 레드카펫이 관람객들을 반겼다. 이어 1층에서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역대 대통령들이 기념사진을 찍던 상징적인 곳이지만, 안전 문제로 인해 관람객들의 촬영은 제한하고 있었다. 본관 오른쪽 복도로 향했다. ‘인왕실’이 나왔다. 소규모 연회나 오찬이 열리던 공간으로, 유백색 벽과 천장이 조화를 이뤘다.

관람을 위해 청와대를 찾아온 거제 출신 김성웅(오른쪽)씨와 그의 아들 김민건 군. 사진=고기정

거제에서 가족과 함께 방문한 김성웅씨는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 개방을 중단한다고 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새벽 3시에 일어나 왔다”고 말했다.

“아들에게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교육적인 차원에서도 의미 있을 것 같아 휴가를 내고 왔습니다. 대통령들이 업무를 보던 장소나 손님을 맞이하던 공간을 직접 둘러보는데, 뭐랄까 감격스럽다 할까 정말 뜻깊게 다가오네요. 아들에게도 기억에 뜻깊게 남을 겁니다.”

아버지와 함께 온 김민건 군은 “TV로만 보던 곳을 아버지와 함께 와서 보니 너무 좋다”면서 “오늘을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정희·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 컷’

청와대 충무실에 걸려 있는 역대 대통령 초상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초상화는 아직 걸리지 않았다. 사진=고기정

복도를 따라 걷다 보니 TV 화면을 통해 자주 보았던 곳이 눈앞에 펼쳐졌다. 대규모 임명장 수여식이나 연설 등이 열렸던 충무실. 전직 대통령들이 군 장성 진급·보직 신고도 받던 곳이다.

충무실 반대편으로 이동하자 세종실이 나왔다. 과거 국무회의장이었던 이 공간에는 가로 53cm, 세로 65cm 크기의 금박 테두리 액자에 담긴 역대 대통령 12명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초상화 제작은 대통령 퇴임 1년 전쯤 시작되며, 추천받은 화가가 그린 초안에 대통령의 의견이 반영된다. 액자는 마지막 국무회의 이후 세종실에 걸리는데, 이를 ‘헌액게첩(獻額揭帖)’이라 부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초상화는 아직 걸려 있지 않았다. 무궁화실에는 대통령 배우자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이날 몇몇 초상화 앞에는 사진을 찍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상화 앞이 붐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상화 앞에서 사진 찍기를 기다리던 대전 시민 전영옥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제가 정말 존경하는 분”이라며 “이 사진을 찍기 위해 대전에서 올라왔다”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마을운동,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겁니다. 초상화를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국민 품으로’라는 문구처럼 청와대를 다시 돌려받고 싶지만… 오늘 이 공간에 들어오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대통령 필수 사진의 배경, 집무실

청와대 본관에 위치해 있는 집무실. 사진=고기정

본관 2층으로 올라갔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익숙한 대통령 집무실과 접견실이 나왔다. 입구에서 책상까지 약 15m, 천장 높이는 3m에 달할 만큼 넓은 공간이었다. 너무 넓다 보니 어느 장관이 뒷걸음질하다 넘어졌다는 일화도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첫 방문 당시 “운동을 해도 되겠다”고 농담했다고 한다.

노무현·이명박·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사진=대통령실

대통령 집무용 책상 앞에는 커다란 회의용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대통령 책상에서 바라보니, 이곳에서 대통령과 참모들이 치열하게 회의를 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전화를 받는 모습은 언론을 통해 자주 등장하는 모습 중 하나다. 관람객들 모두 저마다 존경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추억하고 있는 듯했다.

청와대 본관 왼편에 위치한 구 본관 터는 경내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품은 장소였다.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현장에 설치된 표석을 통해 건물 위치를 짐작할 수 있었다. 표석에는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었다. ‘하늘 아래 가장 복된 땅’이라는 뜻으로, 사방이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배산임수(背山臨水) 명당을 뜻한다. 조선 시대에는 이 언덕 지대에 궁궐을 지키는 군사 시설이 있었다 하여 ‘수궁 터’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대통령 관저로 쓰이며 청와대의 상징이 되었던 건물의 자리다. 수궁 터를 740년째 지키고 있는 주목(朱木)이 관람객들을 반갑게 맞아줬다.

시민들의 ‘핫포토’ 장소인 영빈관

청와대 영빈관. 사진=고기정

발걸음을 옮겨 영빈관으로 향했다. 같은 청와대 경내에 있지만 도보로 10분이나 걸렸다. 1978년 준공된 이 건물은 청와대 구 본관이 철거된 이후, 경내의 현대식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남아 있다. 석조 양식으로 지어진 영빈관은 주로 대규모 회의나 해외 국빈 초청 연회에 사용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 정부 당시,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 신축 영빈관 건립을 검토했으나, 비용 문제 등으로 무산되면서 기존 청와대 영빈관을 계속 활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 개방 이후에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1층만 일반에 공개됐다. 1992년 8월 14일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자신의 회갑을 맞아 당시 야당 대표였던 김대중 민주당 총재를 초청해 오찬을 열기도 했다.

영빈관은 관람객들에게 ‘SNS 인증’ 포토존으로 인기가 높다. 물론 기자는 ‘특별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기에 내부 관람은 허용되지 않았고,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내부를 들여다봐야 했다. 이럼에도 3개의 출입문 중 가장 사진이 잘 나온다는 가운데 문 앞으로 인파가 몰렸다. 높은 층고와 화려한 샹들리에는 관람객들에게 감탄을 선물했다. 이곳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모습이 줄을 이었다.

장독·화단 등… 생활 흔적 고스란히 묻어나는 관저

청와대 관저. 사진=고기정

본관에서 관저로 향하는 길목에는 숲속 초가 정자가 있었다. 이날 청와대를 찾은 관람객들은 이곳에 잠시 앉아 냇물 소리를 들으며 휴식을 취했다. 졸졸 흐르는 물을 바라보니 ‘역대 대통령들도 이곳에서 사색에 잠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저 입구는 경사가 제법 가팔랐다. 이를 본 한 관람객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이 경사 때문에 집무실을 옮긴 거 아니냐”고 농담하자,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대문에는 ‘인수문(仁壽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어질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관저에는 내부에 침실, 서재, 피트니스룸, 소식당, 파우더룸 등이 있었고, 외부에는 경호실, 조리실, 대식당, 접견실 등이 배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 관저 옆에는 작은 텃밭이 마련되어 있었다. 곳곳에 장독이 놓여 있다. 사진=고기정, 내 손안에 서울

청기와가 얹힌 관저는 전통 한옥의 정취를 담고 있었다. 본채 앞마당, 낮은 소나무 그늘 아래에는 장독이 놓여 있었다. 누가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통령의 식탁도 서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짐작게 했다. 앞마당 한쪽에는 소담한 화단이 있었다. 여러 종류의 꽃이 아기자기하게 피어 있었고, 아마도 영부인들이 손수 가꿨을 것으로 보였다.

관저 옆, 통일신라 시대 불상인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주변에는 또 다른 정원이 조성돼 있었다. 화단이 아니라 먹거리를 기르던 텃밭이었다. 한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잡초가 무성했지만, 과거에는 누군가가 땅을 고르고 채소를 심으며 정성을 들였을 모습이 떠올랐다.

외국인 관람객도 ‘청와대 최고’

이날 청와대에는 외국인 관람객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케냐 출신의 존 주마(Jon Juma) 씨와 그의 친구들은 청와대 내부를 연신 사진에 담으며 “뷰티풀(beautiful)”을 연발했다.

― 한국에 와서 청와대를 찾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통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언젠가 꼭 한국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방문하게 됐고 청와대 개방이 곧 종료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예약했습니다.”

― 친구들도 만족해하던가요.

“네. 사실 한 친구는 억지로 따라온 셈이었는데, 지금은 저보다 더 신이 나서 구경하고 있습니다.”

― 청와대를 실제로 보니 어땠나요.

“〈남산의 부장들〉에는 청와대 집무실에서 인물들이 회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 속에서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와 보니 훨씬 더 웅장하고 위엄이 느껴졌습니다. 압도적인 분위기랄까요. 오늘은 관저까지 둘러볼 수 있어서 정말 만족스럽습니다.”

“우리나라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동안 시민의 품에 머물렀던 청와대는 이재명 대통령의 복귀 결정에 따라 다시 권력의 중심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짧은 개방이 끝나면, 이 공간은 다시 한동안 시민의 눈앞에서 사라진다. 소나무 아래 장독, 텃밭 옆 불상, 청기와 지붕은 또다시 침묵 속에 머물 것이다.

청와대 정문을 나서던 관람객 A씨는 “대통령이 머물던 공간을 직접 걸어보니 기분이 남다르다”며 “우리나라를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문은 곧 닫히지만, 이날의 기억은 시민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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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로 돌아가는 청와대

“청와대 보기 위해 연차 내고 서울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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