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탈시설 정책, 장애인들 의견 반영되어 있지 않아”(이병훈 신부)
⊙ “단순하게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내보낸다고 그게 자립(自立)인가”(이기수 신부)
⊙ “장애인 거주 시설은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가 장애인을 식민화하는 것”(박경석 전장연 대표)
⊙ “평생 갇혀 사는 걸 삶이라고 할 수 있나… 탈시설 정책은 결국 관점의 차이”(박경석 전장연 대표)
⊙ “나가서도 살아봤지만 시설에서 지내는 것이 더 재미있다”(중증장애인 D씨)
⊙ “본인의 선택보다 시설 내 종사자들 의견 더 중시… 탈시설 후 더 행복”(중증장애인 S씨)
⊙ “단순하게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내보낸다고 그게 자립(自立)인가”(이기수 신부)
⊙ “장애인 거주 시설은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가 장애인을 식민화하는 것”(박경석 전장연 대표)
⊙ “평생 갇혀 사는 걸 삶이라고 할 수 있나… 탈시설 정책은 결국 관점의 차이”(박경석 전장연 대표)
⊙ “나가서도 살아봤지만 시설에서 지내는 것이 더 재미있다”(중증장애인 D씨)
⊙ “본인의 선택보다 시설 내 종사자들 의견 더 중시… 탈시설 후 더 행복”(중증장애인 S씨)
- 지난 2024년 11월 8일 한국카리타스는 전체주의적 장애인 탈시설 정책에 반대하는 보도자료를 내고 입장을 발표했다. 사진=백재호

최근 장애인의 ‘탈시설’이 대두되고 있다. 탈시설은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탈시설 찬성론자들은 ‘지역사회 안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것’을 강조한다. 반면 탈시설 반대론자들은 ‘탈시설이 가능한 장애인들의 선택적 탈시설’을 강조한다. 자립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증장애인들의 경우 보살핌을 받지 못해 사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탈시설 장애인 전수조사 해보니…
지난 2023년 당시 서울시는 탈시설을 한 장애인 700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했는데, 사정이 있어 조사에 응하지 못한 213명을 제외한 487명 모두 탈시설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400명(88.5%)이 시설에서 나오기 잘했다고 평가했고, 시설에서 나온 것을 후회하는 사람은 17명(3.8%)에 그쳤다. 시설 퇴소를 긍정 평가한 사람들은 ▲더 편리하고 나만의 공간이 있다(74.5%) ▲시설에서 정한 일정에 따르거나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내가 선택할 수 있다(52.3%) ▲가족, 친구, 지인 등을 보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다(27.5%) ▲돈을 벌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다(26.3%)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또 탈시설 후 건강 상태를 묻는 질문에는 27.1%가 ‘매우 좋아졌다’고 했고, 32.4%는 ‘좋아진 편’이라고 했다. 30.8%는 ‘변화가 없다’고 했고, ‘나빠졌다’ ‘매우 나빠졌다’는 사람은 9.7%에 그쳤다. 새로운 주거지에 만족한다는 사람도 79.7%에 달했다.
조사에 응하지 못한 213명은 ‘병원에 입원’했거나 ‘장애인 거주 시설에 다시 들어간 경우’ ‘행방이 묘연해 조사를 진행할 수 없는 경우’(42명)였다.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경우(7명)’도 있었다. 다만, 무응답(140명)을 제외하더라도 탈시설 이후 장애인 24명이 사망해 의문을 주었다. 과연 장애인 탈시설 정책은 어떤 정책일까. 탈시설을 둘러싼 찬반의 입장을 폭넓게 들어봤다.
‘전체주의적’인 탈시설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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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11월 29일 천주교 대구대교구 들꽃마을 원장인 이병훈 신부(왼쪽), 전(前)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총무인 이기수 신부(오른쪽)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백재호 |
탈시설 정책에 반대하는 이병훈(李柄勳·53) 한국가톨릭노숙인복지협회장은 “‘전체주의’라는 단어는 ‘집단에 의한 강제’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며 “말 그대로 국가가 ‘탈시설 정책’을 주도했고 이 과정에서 장애인 개인의 주체성이 말살됐기 때문”이라 강조했다. 그는 “국가가 정책을 주도하는 것 자체를 전체주의로 일반화하면 안 되지만 탈시설 정책의 경우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최근 10년간의 탈시설 관련 논문을 연구했지만 “2021년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 이전에는 장애인 당사자들에 대한 전수조사가 거의 없었다”고 했다. 말 그대로 위 정책은 ‘충분한 사전 조사 없이 뚝 떨어진 정책’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이기수(李起秀·65) 전(前)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총무신부의 의견도 유사했다. 그는 “가장 무서운 것이 (탈시설 정책의) 획일화”라고 밝혔다. 그는 “탈시설을 강조하는 단체는 장애인들의 자립(自立)을 강조하지만 상황 파악 없이 단순하게 시설에서 내보내는 것이 자립인가”라고 반문했다. “현재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거주 중인 장애인들은 집중 치료(관리)가 필요한 경우가 다수다. 탈시설 후 치료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탈시설만을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박대성(朴大星·49) 장애인 탈시설 범사회복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실제 장애인 거주 시설에는 이들을 보살피기 위한 의사(촉탁의),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심리상담사, 영양사 등 전문 인력이 있어 요양 서비스도 함께 제공합니다. 하지만 탈시설을 하면 ‘장애인 활동지원사’만이 1대 1로 ‘장애인이 요구하는 활동 서비스’만 제공합니다. 즉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게 탈시설 정책이죠.”
전반적으로 ‘무조건적인 탈시설 정책은 오히려 중증장애인 인권 보장을 더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 탈시설 반대론자들의 공통된 논리다.
反인권 논란이 탈시설 정책 촉발
탈시설 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은 장애인 거주 시설 내 반(反)인권적 논란을 그 배경으로 꼽는다. 거주 중인 장애인에게 ‘폭력적 행동’을 가하거나 장애인의 의사 선택보다 시설 내 ‘생활지도원의 판단이 우선’되는 등 인권침해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24년 9월 25일 《한겨레》의 〈[단독] 또 솜방망이… 장애인 시설 인권침해 열에 여덟은 ‘개선명령’뿐〉은 “경기 안성시의 한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는 지난 2022년 시설 종사자가 이용자의 다리를 빗자루로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폐회로 텔레비전(CCTV)에 고스란히 담긴 폭행 상황을 확인한 안성시청은 매뉴얼을 만들어 제출하라.… 이후 가장 가벼운 행정 처분인 ‘개선명령’만 내렸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5월 이 시설에선 종사자들이 이용자의 물건을 압수하고, 이에 흥분한 이용자에게 강제로 약을 먹인 뒤 방치하는 일까지 빚어졌다”고 보도했다.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장애인 거주 시설 내 반인권적 사고를 막을 수는 없을까. 박대성 사무국장은 “장애인복지법 제60조 4항을 보면 ‘시설 이용 장애인 인권지킴이단을 두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고 했다. 모든 시설에 인권지킴이단이 있다는 얘기다. 보통 인권지킴이단 회의는 연 4회(분기당 1회) 대면으로 실시한다. 뿐만 아니라 인권지킴이단 혹은 종사자 및 이용자의 요청이 있다면 ‘임시회의’를 상시로 열기도 한다.
인권지킴이단은 장애인 거주 시설 내 인권 사고를 방지하는 대표기구다. 박대성 사무국장은 “인권지킴이단은 외부 단원의 비중이 더 높기 때문에 사고 발생 시 은폐될 가능성도 낮다”고 주장했다. 또한 “매월 1회씩 ‘인권상황점검’을 실시해 ‘인권상황점검표’ 양식을 통해 해당 시·군·구에 보고되며, 시설 내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인권지킴이단을 거치지 않고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인권조사 전문가(인권활동가 등)를 포함한 민관 합동조사가 진행된다”고 했다.
박 사무국장은 “인권지킴이단 업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할 가능성도 희박하다”며 장애인복지법 제90조 제3항을 근거로 들었다. 해당 법률은 ‘장애인 학대 및 장애인 대상 성범죄의 발생 사실을 알고도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또는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중증장애인 사망률’과 ‘탈시설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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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씨가 공개한 무연고 중증장애인 A씨. 향유의 집(장애인 거주 시설)은 장애인 당사자들의 동의 없이 이들을 탈시설시켰다. 사진=조선일보 |
실제 중증장애인들의 경우 ‘보호자의 부재’ ‘요양(의료) 서비스의 상시 필요’ 등으로 정상적 생활이 어려울 때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로 오는 경우가 다수다. 그러다 보니 꾸준한 관리에도 건강이 악화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거주 시설에서 더 이상 생활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요양병원으로 이동된다. 하지만 소속은 변하지 않는다. 즉 요양병원에서 사망해도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사망한 것으로 통계가 잡힌다. 또 거주 시설 내에서 사망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 포함) 중증장애인들은 전반적으로 평균수명을 훨씬 넘긴 경우가 많다. 박대성 국장의 말대로 “거주 시설 내 장애인 사망은 자연사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현재 거주 시설 내 사망자 연령대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이는 전문 인력들이 관리를 잘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박 국장은 ‘2023년 기준 장애인 거주 시설 내 사망자 359명’이라는 통계는 ‘탈시설의 폐해’라고 주장했다. 또 해당 사망자들은 보건복지부가 2021년에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실시한 이후 발생한 상황임을 강조했다. 연평균 250여 명가량의 중증장애인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해당 로드맵(정책)을 발표한 이후 사망자가 100명 이상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는 “탈시설 과정에서 자립 교육을 강행하면서 건강이 악화된 장애인들이 다수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탈시설은 어떤 과정을 통해 진행될까. 〈보건복지부 장애인 복지 시설 사업안내(2024)〉 ‘2-1 장애인 거주 시설 공통사항(69쪽)’을 보면 ‘퇴소 시에는 장애인 본인의 의사를 가장 우선하여야 하며, 장애인 본인의 의사 능력이 결여되거나 부족(미성년 등)한 경우 법적대리인이 대리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다만 ‘이 외의 사유의 경우(법적대리인 부재 등으로 보호자에 의한 동의서 제출이 어렵고, 장애인 본인의 의사 능력이 결여돼 시·군·구 담당자가 자립이나 전원이 필요하다고 판단 시) 장애인복지법 제32조의 7에 따라 장애인 전담민관협의체 안건으로 상정하여 민관협의체의 심의를 거쳐 신중한 판단하에 퇴소를 결정할 수 있다’는 예외 조건을 두고 있다. 또 작년(2024) 개정안에는 ‘장애인 지역사회자립지원 시범사업과 연계한 장애인의 경우에는 장애인 자립지원위원회 심의로 장애인전담민관협의체 심의를 갈음할 수 있다’는 내용이 새로 추가됐다. 사실상 ‘본인의 의사 표현이 불분명한 경우에도 탈시설이 가능한 조치’가 추가됐다고 볼 수 있다.
이기수 신부는 현 탈시설 과정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탈시설 간 의학적 소견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미국의 경우 의사의 허락이 있어야만 탈시설이 가능하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퇴소의 결정에서 의료인을 배제하고 있다”며 “실제 최중증 중복(지적·지체) 발달장애인은 의사 표현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몸을 가누기도 어려울 정도인데 ‘퇴소동의서’에 본인의 서명 또는 인장이 날인되어 있는 사례도 발견됐다”고 했다. 이 신부는 “심지어 장애인 지원 주택 신청·개별 심사와 계약서 작성 등이 불가능한 수준임에도 입주된 경우도 다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 활동 조건, ‘40시간 교육 이수’
현재 탈시설한 장애인들의 일상생활을 돕는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어떤 과정을 통해 선발될까. 장애인 활동지원사 양성 과정의 경우 ‘표준 과정’과 ‘전문 과정’이 있다. ‘표준 과정’의 지원 자격은 장애인 활동지원사 양성 과정 교육을 희망하는 만 18세 이상으로, 활동지원법률 제29조(활동지원 인력의 결격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다. 이들은 40시간 교육 이수(일 8시간 주 5일)를 받아야 한다. 이후 현장실습(10시간)을 거치면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근무할 수 있다. ‘전문 과정’의 경우도 32시간 교육 이수(일 8시간 주 4일)와 현장실습(10시간)을 거쳐야 한다. 지원 자격은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자격증 소지자 및 유사경력자[정부(지자체) 재정이 투입된 돌봄 사업에 참여한 경력이 최근 1년간 360시간 이상인 사람(예: 아이돌보미, 가사간병도우미, 산모신생아도우미 등)]로 한정된다.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지원하는 서비스는 ‘신체활동 지원(개인위생관리, 신체기능 유지·증진, 식사 도움, 실내이동 도움)’ ‘가사활동 지원(개인위생관리, 신체기능 유지·증진, 식사 도움, 실내이동 도움)’ ‘사회활동 지원(청소 및 주변 정돈, 세탁, 취사)’으로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박대성 국장은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전문성이 다소 떨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 ‘전문 과정’을 수료한 경우 국가 전문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이거나 적어도 관련 경력이 명확한 인력이지만, 단순 40시간의 이론 교육과 10시간의 현장실습을 거친 ‘표준 과정’의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경우 과연 중증장애인들을 원활히 돌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이기수 신부는 “중증장애인과 장애인 활동지원사 단둘이 있을 때 인권침해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며 “이미 수차례 동일한 사례가 적발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사실상 1명의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탈시설한 중증장애인의 목숨을 전적으로 쥐고 있다”며 “CCTV 설치 의무화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 의무화도 필요하다”고 했다.
‘장애인 등급제’ 폐지
현재 대한민국의 법제도상 장애 정도를 구분 짓는 장애 등급은 없다. ‘장애인 등급제’가 폐지됐기 때문이다. 이는 중증장애인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 박대성 사무국장은 “현재 장애인 거주 시설에 있는 중증장애인들은 폐지된 ‘장애인 등급제’ 기준으로 볼 때 1·2급에 준한다”며 해당 인원들은 “사실상 의사 표현이 불가능하여 전적인 도움이 필요한 자”라고 했다. 그러나 해당 법이 폐지되면서 “교육을 통해 재활이 가능한 자로 통합되었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2015년부터 시행된 ‘발달장애인법’ 역시 ‘발달장애인의 의사 표현에 관한 것’으로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발달장애인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고 간주했다”고 했다. 말 그대로 “이제 대한민국에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수준의 장애를 가진 중증장애인은 없게 된 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장애인 등급제’는 문재인 정부 시기 폐지됐다. 당시 정부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장애 등급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장애인 등급제를 폐지한 이유는 뭘까.
인터넷 사회복지 신문인 ‘복지타임즈’ 2023년 2월 2일 자에 실린 심석순 부산장신대 교수의 기고문 〈장애등급제 폐지의 본질적 의미와 해결과제〉를 꼼꼼히 읽어 보았다.
〈장애 등급제 폐지는 그간 의학적 진단만으로 장애를 판정해 오면서 불거진 여러 문제에 대한 해법의 일환으로 제기됐다.
장애 등급제는 ▲장애 판정 오류 ▲판정에 대한 불신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반인권적인 제도 ▲단순 등급만을 적용한 복지사각지대 유발 ▲개별 환경과 욕구를 고려치 않은 공급자 중심의 체계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서 기인한 제도 등 끊임없는 비판에 직면해 왔다.
특히 장애 등급에 따른 일률적 서비스 제공은 개별 욕구와 환경이 제각각인 개별 장애인들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심석순 교수는 또한 기존 6개 장애 등급을 ‘중증’과 ‘경증’으로 간소화한 것에 불과해 사실상 등급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과 충분한 예산 확보와 급여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점, 또 장애 유형과 특성, 이들이 처한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서비스 대상과 규모가 축소될 수 있다는 점 또한 지적했다.
현재 대한민국 전체 발달장애인 수는 26만4000여 명(2023년 기준)이다. 이 중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생활하는 인원은 2만3000여 명 정도다. 말 그대로 현재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생활하는 거주인의 경우 ‘1% 최중증 장애인’인 셈이다. 이들은 과거 ‘장애인 등급제 기준’으로 ‘최소 2급 이상’에 준한다. 결과적으로 ‘장애인 등급제 폐지’는 “탈시설을 가속화할 수 있도록 한 조치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박대성 국장의 의견이다.
“탈시설에 대해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것 아냐”
지난 2024년 11월 7일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는 〈한국천주교계 탈시설 왜곡 규탄! 탈시설한 우리가 증인이다! 장애인은 탈시설이 아니라 거주 시설 때문에 죽어나간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해당 보도자료는 “천주교회가 공인한 국내 복지기관은 2020년 기준 총 1286개로 이 중 장애인 거주 시설은 175개에 달한다”며 “탈시설과 시설 폐쇄가 장애인 거주 시설을 운영하는 한국천주교계의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한국천주교계는 존재하지도 않는 최중증·발달장애인의 탈시설 피해를 들먹인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천주교계는 이에 대해 “답변할 가치조차 없다”고 대응했다.
이기수 신부는 “천주교에서 2006년에 ‘둘다섯 해누리(중증장애인 거주 시설)’를 짓는 데 당시 총 정부지원금인 24억원가량을 제외하고 천주교 자금으로만 52억원 정도가 더 들어갔다”며 “시설을 건립하고 보강하는 데 쓴 금액만 정부지원금의 2배 이상을 썼다”고 했다. 그는 “정말 장애인들을 착복하고 탄압할 목적으로 이 금액을 썼다고 보는지” 반문했다. 하다못해 “법인전입금 자료라도 보고 주장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이기수·이병훈 신부는 진정한 복지의 의미는 ‘행복한 삶, 건강한 삶, 윤택한 생활, 안락한 환경들이 어우러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했다. 또 “어떻게 사느냐보다 내가 머문 곳이 행복하다면 그것이 참된 복지”라고 했다. 또 신부들은 “탈시설에 대해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탈시설을 할 수 있는 장애인들은 당연히 탈시설을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하지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와 같은 단체는 모든 장애인 거주 시설 폐쇄가 목적”이라며 “그러다 보니 의사 표현을 못 하여 스스로 생활할 수 없는 발달장애인마저 탈시설의 대상으로 보고 자립을 강제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박대성 국장은 ‘바람직한 탈시설화 사례’로 스티븐 윌리엄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1942~2018년) 박사를 꼽았다. 그러나 “호킹 박사는 최중증 장애인이긴 하지만 몸이 불편한(루게릭병) 지체장애인이지 발달장애인이 아니었다”며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의사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또한 전문 간병인들과 아내가 옆에서 보살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저서를 내며 인류 과학 발전에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해석 다른 ‘UN 탈시설 가이드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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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12월 1일 박경석 전장연 공동상임대표를 만나 탈시설 찬성 입장에 대한 이유를 들었다. 사진=백재호 |
반면 지난 2024년 7월 10일 국회에서 국민권익위원회, 한국카리타스협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주관한 〈발달장애인의 맞춤형 돌봄 지원방안〉 공개토론회에서 임무영 변호사는 “(UN 탈시설 가이드라인은) 장애인이 원하는 주거 형태를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지원 주택 등을 강요하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시설을 폐쇄해서는 안 된다고 이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무조건적 탈시설은 UN 장애인권리협약 19조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지난 2024년 11월 28일 서울시와 밀알복지재단이 후원하고 권성동 의원실과 (사)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가 주최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이해와 바람직한 장애인 거주 시설 운영 방안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행사가 시작되자 탈시설 찬성 활동가들이 “오세훈 서울시장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유엔 탈시설 가이드라인 준수하라”라고 적힌 작은 현수막을 펼치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왜곡하지 마십시오” “장애인 탈시설 권리를 보장하십시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잠시 해당 활동가들과 국회 관계자들의 물리적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결국 탈시설 찬성 활동가들은 행사 방해와 업무 방해 혐의로 강제 퇴거 조치됐다. 이처럼 탈시설에 찬성하는 입장은 어떤 이유인지, 지난 2024년 12월 1일 대표적 탈시설 찬성 단체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박경석(朴敬石·64) 상임공동대표를 만났다.
― 장애인 탈시설 찬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장애인 정책들이 과거 우생학적 관점에서 시작됐다고 봅니다. 현재까지 추진되었던 대부분의 장애인 관련 정책은 ‘장애인들은 열등하다’는 것이 전제 조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실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에 비해 노동력도 떨어지고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다수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장애인들을 배제하고 격리하는 방식의 장애인 수용(거주) 시설에서 지내게 하는 것이 올바른 걸까요?”
― 그러면 장애인 거주 시설을 다 폐쇄해야 한다고 봅니까.
“시설 폐쇄는 UN에서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 일반논평 5를 근거로 지난 2022년 대한민국에 ‘탈시설 가이드라인’으로 권고한 방향이자 정책입니다. 저는 한국의 현 상황을 고려했을 때 점점 소규모화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현재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 거주 시설의 정원은 30명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되, 특수한 서비스를 위하여 일정 규모 이상이 필요한 시설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잘 준수되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현재도 30인 이상의 시설이 너무 많고 기존 100인 이상의 대규모 시설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정부가 ‘100인 이상 대규모 시설을 어떻게 30인 기준 시설로 줄일 것인가’에 대해 명확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향후 10년 내 ‘장애인 지원 주택 대중화’ 등 탈시설 환경을 든든하게 구축하는 계획도 구체화해야 합니다.”
― 적어도 중증장애인을 위한 거주 시설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시설에 가는 중증장애인들의 이유가 뭡니까. 보호자의 부담이 점점 커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 입소를 희망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대부분 금전적인 이유, 보호자가 고령(高齡)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중증장애인 본인의 의사보다 환경적 이유로 시설로 가는 경우도 많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차라리 장애인 거주 시설 국가 예산을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복지 예산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 중증장애인들은 의사 표현 자체가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죠. 비장애인 기준으로 의사 표현이 안 된다고 규정하는 경우가 많지요. 먼저 고민할 부분은 의사소통이 충분히 가능한 중증장애인들도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나가고 싶다고 밝혔음에도 장애인 거주 시설에 격리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에 입소 가능한 장애인들의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에 따른 기능제한(X1) 점수는 240점 이상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점수 이하임에도 입소해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120~180점대 지적·자폐 장애인들은 의사소통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나가보지 않으면 어떻게 아나”
― 의학적 소견도 고려돼야 할 부분 아닙니까.
“의학적 소견은 참조할 수 있으나 장애인들의 삶이 의사의 결정에 종속되어서는 안 되지요. 질병과 관련된 부분이라면 당연히 의사의 소견을 듣는 게 맞지요. 하지만 장애와 질병이 같습니까. 질병은 나을 수 있는 확률이 있지만 장애는 완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본인이 직접 탈시설하겠다는 의사 표현을 했다면 존중해야지요. 제가 앞서 언급한 우생학적 관점이 만연하다는 단적인 이유입니다. 하나의 질병처럼 인지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 탈시설 후 사망한 중증장애인도 많지 않나요.
“‘군에서 사고 난다고 훈련 안 하겠다’는 논리와 똑같습니다. 저도 탈시설 후 중증장애인이 죽어나간다는 보도를 많이 접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보도는 탈시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왜곡된 보도입니다. 시설에서는 장애인이 안 죽는다는 논리입니까? 시설에는 영생(永生)이 있나요? 그 사람들이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 안에 있다고 해서 ‘삶을 더 길게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무의미합니다. 역으로 평생 갇혀 사는 걸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탈시설 정책은 결국 관점의 차이, 입장의 차이입니다.”
― 탈시설자가 사망하면 ‘열사(烈士)’로 표현하는 것에 논란도 있습니다.
“열사죠. 시설에서 탈시설을 반대하는 주변인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비장애인들과 달리 불편한 몸을 이끌고 본인의 자유를 위해 나간 사람 아닙니까. 마땅히 격려해 주고 응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결국 탈시설 준비가 안 됐다는 방증이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완벽한 정책은 없습니다. 보완해 나가는 겁니다. 장애인 복지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독일도 장애인 관련 정책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든 완벽에 가까운 ‘장애인 복지’는 없어요. 다만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겁니다. 계속 시도해야지요. 우리 세대 이후에는 좀 더 안정적인 탈시설 정책이 구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탈시설을 희망하지 않는 경우도 존중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인간은 본래 적응의 동물입니다. 인생의 대부분을 시설에서 살다가 나가야 한다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저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지만 탈시설 후 본인이 받는 지원과 서비스를 잘 알려줘도 과연 나가기 싫어할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시설에서 지내길 희망하는 사람들까지 탈시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정말 장애인 당사자를 비롯한 보호자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했는지 의문입니다. 군에서도 사회는 지옥이라고 말하잖아요. 딱 그 논리입니다. 나가보지 않으면 어떻게 압니까.”
전장연과 IL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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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30일 여의도역에 자리한 전장연의 시위부스. 전장연은 ‘장애인 이동권’을 비롯해 ‘탈시설 권리 보장’을 주장하고 있다. 사진=배진영 |
“천주교 신부님들 참 존경합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하는 사회복지사업이 국가 주도 사업입니까? 결국 종교가 내세우는 가치를 실천하기 위한 행위 아닙니까. 본인들은 ‘순결하다’ ‘순수하다’ 주장하지만, 결국 장애인 복지 정책의 기득권을 빼앗기기 싫다는 이유가 본질 아닌가요. 그들이 탈시설 반대를 외치는 것과 같이 우리도 탈시설 찬성을 외칠 권리가 있습니다.”
― 전장연은 비리가 없습니까.
“어떤 비리요? 천주교계 및 탈시설 반대를 주장하는 입장들의 대표적 논리가 ‘IL센터(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전장연이 독점했다’는 겁니다. 그러며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IL센터에 내야 하는 중개수수료 25%를 전장연이 독식한다’고 주장합니다. 엄밀히 따지면 전장연의 회원 단체와 연계된 IL센터입니다. 전장연이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 회원 단체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 않나요.
“수직적인 구조가 아닙니다. 단순 수평관계예요. 전장연 회원을 희망하는 사람은 매달 회비 최소 1만원만 내면 됩니다. 단체는 10만원입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누구나 전장연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회비를 매달 잘 내는 단체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 단체도 있습니다. 하지만 퇴출시키지도 않습니다.”
― 전장연 명의의 IL센터는 몇 개입니까.
“단 한 개도 없습니다.”
― 그렇다면 전장연과 연대한 IL센터는 몇 개인지요.
“전장연과 연대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이하 한자협)’의 경우 IL센터를 약 70개 정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중 국가가 주도하는 장애인활동지원사업에 포함된 IL센터는 50여 개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한자협은 사단법인이 아닙니다. 즉 한자협에 속해 있는 IL센터도 개별이라는 겁니다. 1년 장애인활동지원사업 국가 예산이 올해 기준으로 2조2846억원입니다. 전장연과 연대한 단체와 연관된 IL센터도 극히 소수예요. 독점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또 장애인 활동지원사 월급에서 25%를 중개수수료로 IL센터가 가져가도 센터는 예산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인건비와 임차료 등 운영비를 내면 얼마 남지 않아요. 심지어 사용처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IL센터나 장애인 활동지원사들도 모두가 존중받지 못하는 겁니다. 전장연에서 장애인활동지원사업 예산 증액을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 IL센터가 제공하는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문제도 많습니다.
“일부 장애인 활동지원사들이 전담 장애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문제는 인정해요. 하지만 장애인 거주 시설 종사자가 장애인들을 폭력으로 사망케 한 경우도 있습니다. 전체가 아닌 일부 장애인 활동지원사들의 행동 문제를 두고 시설이 더 안전하다는 주장은 성립 자체가 안 됩니다. 애초부터 활동지원사든 거주 시설 종사자든 장애인들에 대한 폭력은 당연히 금지되어야 하고 엄격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죠.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겁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 선발 과정을 꼼꼼하게 수립하면 되는 문제 아닐까요.”
박 대표는 현재 ‘장애인 권리 예산 4조’도 요구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과하다는 비판도 있으나 그는 “전장연이 요구하는 장애인 권리 예산은 장애인의 이동권·교육권·노동권·탈시설 권리를 위한 예산”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해당 예산에는 ‘활동지원 서비스 확대’ ‘탈시설 로드맵 시범사업 확대’ ‘특별교통수단(장애인 콜택시) 운영비 확대’ ‘장애인 노동자 근로지원인 인원수 확대’ 등이 포함됐다. 또 ‘4조’라는 금액 자체만 보면 천문학적인 액수이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의 장애인 복지 지출 규모는 GDP 대비(2019년 기준) 0.71%로 OECD 평균치(1.98%)에 한참 못 미친다. 북유럽 국가인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각각 4.49%, 3.37%를 기록했다. 이웃 국가인 일본도 1.12% 수준이다. 전장연이 요구하는 장애인 정책 예산 기준은 OECD 평균인 셈이다.
‘세분화된 서비스’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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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3일 지방 소재의 한 장애인 거주 시설을 찾았다. 해당 사진은 거주인별 식사 특징을 분류한 말판이다. 사진=백재호 |
“거주 시설 내 식사는 철저히 맞춤형이에요.” 지방 소재의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근무 중인 A영양사의 말이다. 그에 다르면 식사는 크게 5가지로 분류되는데,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섭취 가능한 ‘일반식’부터, 저작력이 약한 거주인을 위한 ‘한입식’, 그보다 더 작은 ‘반입식’, 음식물을 잘게 다져 제공하는 ‘다짐식’, 삼킴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한 ‘연하곤란식’까지 다양한 유형으로 준비된다. 필요에 따라 점도증진제를 사용해 음식 섭취를 돕기도 한다.
식사 유형도 병원 진단과 시설 내 회의를 통해 결정된다. 거주인의 건강 상태 변화에 따라 조정도 이뤄지는데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수 그릇’ ‘포크와 숟가락이 결합된 포카락’, 입 크기가 작은 이들을 위한 ‘작은 숟가락’ 등이다.
체중 관리나 당뇨와 같은 건강 문제가 있는 거주인에게는 병원 진단에 기반한 치료식이 제공된다.
― 영양사 관점에서 탈시설은 어떻게 봅니까.
“적어도 ‘식사가 영향을 주지 않는 장애인들이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탈시설 찬성을 주장하는 논리 중 하나가 ‘거주 시설 내 식사 획일화’입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역으로 시설에서 제공되는 5가지 식사 유형이 탈시설 이후에도 중증장애인들에게 안정적으로 제공될 수 있을까요. 중증장애인들에게 있어 식사는 일반인들과 같은 단순 식사가 아니라고 봅니다. 식사를 통한 건강 유지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중증장애인 탈시설 전제조건
중증장애인들의 약 처방과 의료 서비스 연계를 전담하는 B간호사는 “시설 내 1명을 제외하고 전원이 약을 복용 중에 있다”고 했다. 또 그는 “중증장애인의 경우 단일 종류의 약만 복용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골다공증, 정신과, 소화기내과 등 복수의 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다수”라며 정기적 복용이 필요한 약이면 보호자 승인하에 대리 처방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B간호사는 시설 내 간호 업무를 전담하다 보니 응급 상황이 생겼을 때 바로 투입되는 경우도 잦다. 그는 “365일 중 360일은 전화를 항상 받는 것 같다”며 “위급한 경우에는 시설로 바로 복귀한다”고 했다. 또 B씨는 “중증장애인들의 경우 의사 표현이 어렵다 보니 일반 환자와 동일하게 대하기가 어렵다”며 “간호사로서 소통 방식을 항상 고민하고 있다”라고 했다. 특히 “비장애인과 달리 중증장애인들의 경우 아파도 표현하지 못한다. 겉으로라도 티가 나면 좋지만 실상은 담석(膽石)이 생겨도 고작 끼니를 거르는 정도”라고 했다. 그는 ‘비장애인이라면 아파서 바로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임에도 내색하지 않아 “평소에도 중증장애인들을 매우 세심하게 살핀다”라고 했다.
― 간호사로서 중증장애인 탈시설 전제조건이 있다면요.
“해당 중증장애인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전문 의료인인 저도 중증장애인들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기도 합니다. 적어도 담당하게 될 장애인들의 ‘생활패턴’과 ‘비언어적 신호’ 등을 잘 인지하고 있어야 해요. 단순히 ‘밥 차려주고’ ‘씻겨주고’ ‘산책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적어도 본인이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고 ‘타인에게 명확하게 인지’시킬 수 있고 ‘병원 진료를 원활히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먼저 조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의료적으로 자폐 스펙트럼은 굉장히 폭넓고 예민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일반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까지 이해해야 대응이 가능해요.”
시설에서 중증장애인들의 일상을 돕는 C생활지도원은 탈시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단순 시설을 없애서 해결될 문제였다면 진작에 없어졌을 겁니다. 이건 시설의 문제가 아닌 복지의 문제예요.”
C씨는 ‘장애인 거주 시설이 인권 탄압 시설’이라는 일각의 주장에는 “장애인 거주 시설은 수용 시설이 아니다”라며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거주인들의 행복을 위해 종사자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단호하게 반박했다. 이어 “장애인들의 유형은 정말 다양하다. 겹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설령 장애 유형이 겹치더라도 세부적으로는 다르다. 즉 같은 범주로 묶어 보살피기 어렵다”고 했다.
“개개인이 다 다른 장애 정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중증장애인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충분한 인력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거주 방식을 ‘스스로 결정’한 중증장애인들
중증장애인들이 보는 탈시설은 어떨까. 지난 2024년 12월 5일 본인의 인터뷰 의사가 명확하고 보호자의 동의도 받은 D(45)씨와 영상통화로 인터뷰를 했다. 거주 시설에서 12년을 보낸 그에게 거주 시설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시설 밖에서 살아보고 싶지 않으냐”는 선생님(생활지도원)들의 권유도 꾸준히 받았다고 했다. ‘체험홈(중증장애인이 집이나 시설을 떠나 사회생활의 경험 및 기술 등을 체험하는 거주공간)’에서 살아보기도 했지만 결국 시설에서의 삶을 택했다. “(거주인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2018년 탈시설 후 명지대(서울캠퍼스) 주변의 지원 주택에 정착한 S(52)씨는 다른 입장이다. 그는 내방변장애와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중복장애인이다. 2006년부터 2018년까지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지냈다. 앞서 인터뷰를 진행했던 D씨와 달리 ‘탈시설 후의 삶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시설 내 거주 때는 “규칙적인 생활과 식사시간으로 스트레스가 컸다”고 했다. 또 “가고 싶은 장소가 있지만 항상 같은 곳으로만 나들이를 가는 것도 불만 중 하나였다”고 했다. S씨는 “본인의 선택보다 시설 내 종사자들의 의견이 더 중시됐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했다.
실제로 S씨는 시설 생활 전 부모님과 함께 살며 여행과 낚시를 가며 자유롭게 살았다.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의 삶이 답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탈시설이 그에게는 적합한 정책이었던 셈이다. 그는 시설 내 다른 거주인들이 비교적 불만이 적은 이유에 대해서도 “나가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물론 탈시설 후 애로사항도 있다. 바로 ‘외로움’이다. 시설 내 생활과 달리 공동체적 생활이 비교적 부족한 편에 속한다. S씨는 “탈시설 이후에도 시설에서 지내는 친구들의 소식을 듣고 싶어 연락을 취했지만 연락이 원활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는 탈시설을 선택한 장애인들이 희망한다면 “시설 내 공동생활을 했던 거주인들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