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불 임금, 고소·고발, 흉물 인식으로 신음 중인 폐교
⊙ “학교가 그립고, 지금 봐도 그립고, 앞으로도 그리울 겁니다”
⊙ “여기다 요양병원이든 실버타운이든 활용하면 좋잖아요?”
⊙ ‘우리 인생을 책임져라’ ‘여기서 졸업할 것이다’(폐교된 한민학교 벽에 적힌 구호)
⊙ 2000년 이후 현재 강제 폐쇄 14개교, 자진 폐교 6개교… ‘한계대학’ 전국에 84개교
⊙ 폐교대학 한적한 시골에 위치. 마땅한 용도 찾지 못해 매각이나 임대 불가능
⊙ 폐교 부동산은 매각 이뤄져도 감정가액에 못 미쳐 체불 임금 청산 어려워
⊙ 지자체와 협의해 폐교 인수하거나 용도 변경해야… 관련 법안 국회 계류 中
⊙ “학교가 그립고, 지금 봐도 그립고, 앞으로도 그리울 겁니다”
⊙ “여기다 요양병원이든 실버타운이든 활용하면 좋잖아요?”
⊙ ‘우리 인생을 책임져라’ ‘여기서 졸업할 것이다’(폐교된 한민학교 벽에 적힌 구호)
⊙ 2000년 이후 현재 강제 폐쇄 14개교, 자진 폐교 6개교… ‘한계대학’ 전국에 84개교
⊙ 폐교대학 한적한 시골에 위치. 마땅한 용도 찾지 못해 매각이나 임대 불가능
⊙ 폐교 부동산은 매각 이뤄져도 감정가액에 못 미쳐 체불 임금 청산 어려워
⊙ 지자체와 협의해 폐교 인수하거나 용도 변경해야… 관련 법안 국회 계류 中
- 폐교되기 직전의 서남대 강의실 모습이다. 학생들이 떠난 강의실이 텅 비어 있다. 사진=조선DB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방대학 관계자들끼리 쑥덕이며 하는 얘기다. 남부 지역 대학부터 망하기 시작해 스멀스멀 수도권 대학까지 도미노처럼 올라온다는 이야기다.
혹자는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시작된 소나무 재선충병의 감염처럼 불치의 병이 밑에서부터 올라온다는 이야기도 한다. 풍문처럼 통용되던 우스갯소리가 기막힌 학설처럼 점점 공론화되고 있다.
몇 달 전 기자와 만난 한 지방대학 관계자는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신입생 미충원 확대로 2040년쯤에는 현재 대학 수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 큰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3년 현재 전국에 있는 4년제 일반대학, 전문대학, 교육대학, 산업대학을 모두 합치면 336곳에 이른다. 일반 4년제 대학이 190곳, 전문대 134곳이다. 이 가운데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 소재 대학은 116곳이다. 나머지 220곳은 모두 지방대학이다.
수도권을 제외하고 지방대학 중 가장 대학 수가 많은 지자체는 경북으로 33개 대학(일반대 19, 전문대 14)이 있다. 다음으로 ▲부산 21곳(일반대 12, 전문대 8, 교육대 1) ▲충남 21곳(일반대 13, 전문대 6, 교대 1, 산업대 1) 순이다.
기자의 오랜 지인인 이 지방대 관계자는 “폐교대학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폐교 부지를 지역사회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제3의 길은 없는지…. 중요한 이슈이니 잘 취재해달라”고 부탁했다.
기자는 거절했다. 한두 해의 문제도 아니고 수십 년째 방치된 폐교대학의 현실을 파헤칠 능력이 못 된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상소문을 올리듯 대통령에게 탄원해보라”고 했는데 진심이었다. 한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기자가 큰 실수를 한 것처럼 느껴졌다.
악성 채권과 다름없던 폐교대학 문제가 요즘 들어 무언가 실마리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대학이 문을 닫으면…
대학이 문을 닫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모교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졸업생이 느끼는 허전함은 둘째치고 재학생들은 인근 대학에 ‘특별 편·입학’할 수 있다지만, 유사 전공이 없거나 교육과정이 다를 경우 배움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원하지 않는 먼 거리 대학에 가서 물에 기름처럼 떠돌 수도 있다.
대학이 문을 닫으면 주변 상가도 타격을 입게 된다. 지역 경제에 먹구름이 끼는 것은 물론이고 많은 교직원, 교수, 시간강사들이 일자리를 잃는 고통도 발생한다.
폐교대학 문제는 단순히 대학이나 학생, 교직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파가 사방팔방으로 튄다. 교육 당국은 사학비리 대학에 대해 ‘폐교 명령’이라는 단순한 행정 절차를 밟으면 그만일지 몰라도 폐교를 둘러싼 사회갈등은 심각하고 암울하며 다면(多面)적이다.
예를 들어 대학이 문을 닫고 학생과 교직원이 떠난 자리에는 채무 관계만 남는다. 체불 임금, 고소·고발 같은 지루한 송사(訟事), 매각이 어려운 건물(그리고 사후 관리), 청산에 의지가 없는 폐교 청산인, 자잘한 악성 빚들은 대학이 문을 닫은 후에도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져 말끔히 정리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학생이 없는 대학가 주변은 상상하기조차 싫다. 인근 주민들은 하하 호호 웃고 떠드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원망보다 미련만 남아”
기자는 2018년 폐교 이후 방치된 충남 아산의 서남대학교 아산캠퍼스를 찾았다. 21번 국도와 39번 국도 변에 위치해 있지만 산 중턱에 있어 가는 데 꽤 멀게 느껴졌다.
서남대는 설립자의 공금 횡령 등으로 지난 2017년 12월 13일 교육부로부터 학교 폐쇄 명령과 학교법인 서남학원에 대한 해산 명령으로 2018년 2월 28일 폐교했다. 5년 전이다.
서남대는 지난 1991년 전북 남원에서 문을 연 후 2002년 3월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 일원 15만8000여㎡(4만7800여 평)에 건물 2개 동(진리관, 봉황관)을 갖추고 아산캠퍼스를 추가로 세웠다.
사전에 연락한 이 대학 출신 고영식(31)씨와 박효근(30)씨가 동행했다. 대학 정문에 도착하니 자전거를 탄 라이더 몇몇이 보였다.
인근 산 정상에 올라가 이 폐교를 내려다보면 어떤 느낌일까. 산에 올라가 보았다. 꼭 그럴 마음은 없었지만 힘들게 산길을 재촉했다.
함께 산을 오르며 “대학에 대한 애정보다는 분노, 증오가 더 크겠지요?”라고 슬쩍 떠보았다. 고씨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김에 욕설이라도 내뱉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 “무슨 말씀을요. 학교가 그립고, 지금 봐도 그립고, 앞으로도 그리울 겁니다”라고 했다. 박씨도 담담하게 이렇게 털어놨다.
“원망보다 미련만 남습니다. 아직도 이 학교 주변을 서성이고 있어요. 가끔 주말마다 차를 몰고 근처를 오갑니다.”
기자의 마음속 한 곳이 덜컹했다. 누구에게나 잊지 않고 있다는 것, 잊을 수 없다는 것, 잊어선 안 되는 것이 있다. 폐교일망정 스무 살을 보낸 공간은 소중한 곳이었다.
“벼랑 끝에 서봤으니 더는 두렵지 않아요”
산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길이, 마을이, 논경지가 연결되어 큰 벌판을 이루는 모습, 그 벌판이 평야를 이루고 그사이로 큰 도로가 지나며, 큰 덤프트럭이 달리고, 다시 올망졸망 집들이 이어지고, 그 뒤로 산이 막아서고….
한눈에 다 보였다. 누구에게는 한 시절을 ‘잘라 먹은’ 비정한 대학이지만, 이렇게 젖은 성냥갑처럼 덩그렇게 건물만 남았지만, 버릴 수도 버려질 수도 없는 공간이 폐교였다.
2개 동(棟) 10층과 12층 건물은 미끈했다. 다시 닫힌 문이 열리고 창문을 닦아놓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람들이 드나들 것 같았다. 자료를 찾아보니 4년제 정규대학 최초로 경호탐정학과라든가 원예힐링학과 같은 이색학과가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는 학과였을까. 학생들은 얼마나 신이 났을까.
우리는 말없이 하산했다. 고씨는 택배 일을 하고 있다. 박씨는 농공단지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다. 각각 체육과 행정 관련 학과를 다녔는데 다른 대학으로 ‘특별 편·입학’을 거부, 한동안 방황하는 날들을 보냈다. 모두 변산반도가 고향이다. 낙조(落照)를 보고 자랐다. 마음속 어둑어둑한 저녁 풍경 같은 것이 무언지 안다.
“모교(폐교)도 내 인생처럼 그런 것 같아 속이 상합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아요. 따지고 보면 이 대학에 다니며 너무 행복했어요. 지금도 대학 친구들과 연락을 하며 지냅니다. 그 시절이 그리워요.”(고씨)
“부실 대학, 비리 재단에 대한 원망은 없습니다. 원망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나요? 대학이 망해가는 과정, 사람들이 떠나는 과정을 모두 보았어요. 그러니 한 번 벼랑 끝에 서봤으니 더는 두렵지 않아요. 과거보다 저 자신이 좀 더 행복해진 것 같습니다.”(박씨)
두 사람이 서남대에 입학원서를 내던 2016년 2월, 대학은 무더기 미달 사태를 겪고서 추가 모집을 했다. 남원캠퍼스에서 130명, 아산캠퍼스에서 404명을 추가 모집했다. 당시 입학정원은 남원캠이 334명, 아산캠이 주야간 합쳐 556명이었다. 2년 전만 해도 남원캠의 정원은 800명대, 아산캠은 1000명대였다. 반 토막이 났다.
이미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2010~2016년), 경영부실 대학(2015~2016년)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두 사람은 훨씬 나중에 서남대 설립자가 1000억원에 달하는 교비를 횡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설립자는 아직도 수감 중이다.
붉은 손글씨로 쓴 ‘민·형사상 처벌’
서남대 폐교 건물 입구로 갔다. “출입통제 및 처벌 공지”라는 문구가 보였다. ‘무단출입 및 사용, 파손, 쓰레기 투기, 불법행위 등 위 사항을 위반 시 민·형사상 처벌받게 됨을 알린다’고 적혀 있는데, ‘민·형사상 처벌’은 붉은 글씨였다. 삐뚤삐뚤하게 매직으로 쓴 손글씨여서 더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다.
건물이 폐쇄된 지 5년이 지났지만 그래도 온전해 보였다. 깨어진 유리창도 없었다. 건물 1층에 ‘외부인 출입금지’ ‘접근금지 아산경찰서 수사과 041-538-9364’ ‘출입통제구역’ 같은 살벌한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붐볐을 편의점(상호 ‘해피 타임’)이 보였다. 간판은 이미 색이 바랬다.
건물 옆에 텅 빈 운동장이 보였다. 흰색 축구 골대가 없었다면, 장승이나 솟대처럼 서 있는 저 골대가 없었다면, 운동장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누런 잡풀이 우거졌다. 착각인지 몰라도 물 끊긴 갯벌처럼 보였다.
운동장 뒤로 10층 규모의 짓다 만 건물이 눈에 띄었다. 대단한 배짱처럼 느껴지는데 로스쿨을 유치하겠다며 로스쿨 건물부터 올렸다고 한다. 박씨의 말이다.
“폐교를 반대하는 농성을 한 적이 있어요. 다들 운동장에 모였지요. 그것도 한두 번이지 아무리 외쳐봐야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망해도 좋지만, 내가 졸업할 때까지만 대학이 버텨주길 바랐지요.”
“멀쩡한 건물, 이 넓은 땅이 아깝잖아요”
폐교 후 서남대 아산캠퍼스는 2019년 1차례, 2020년 2차례 건물과 토지 매각을 위한 공매를 진행했으나 응찰자가 아무도 없어 매각은 성사되지 않았다. 매각금액이 250억~270억원대였다고 한다.
운동장 앞에서 아산캠퍼스 전직 관리인 A씨를 만났다. 기자라는 신분을 부득이 밝히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땅과 건물에 관심이 있는 외지인’으로 보였을까?
“이 시설(폐교)을 구매하려면… 지금 충남도지사가 바뀌었잖아요.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용도를 변경하려면 아산시장 힘으로는 안 되고, 도지사 끗발은 있어야 한다고. 정권이 바뀌었으니까 학교 건물이랑 부지도 팔릴 거라고 말들 해요. 지금 도지사 이름이 뭐예요?”
― 김영환 도지사 말이지요?
(기자가 착각을 했다. 김영환 지사는 충북도지사다. 아산시는 충남에 있다. 충남도지사는 김태흠 지사다. 두 사람 다 국민의힘 소속이다.)
“네, 그 양반…. 언젠가 서울서 땅 보러 온 사람들이 ‘남원캠퍼스(서남대)보다 아산캠퍼스가 서울서 가까워 매력이 있다’고 했었어요. 건물 용도가 바뀌면 팔릴 겁니다. 그렇게 되면 주민들 입장에서도 좋잖아요. 그럼요, 멀쩡한 건물, 이 넓은 땅이 아깝잖아요. 건물 안에 들어가면 깨끗해요. 건물도 잘 지어놨어요. 여기다 요양병원이든 실버타운이든 활용하면 좋잖아요?”
그는 이런 이야기도 했다.
“여기 일대가 모두 20만 평인데, 학교 운동장 저 밑으로 (손짓을 하면서) 땅들이 죄다 경매로 팔렸다고 해요. 남은 게 여기 건물이랑 학교 부지 정도고…. 경매로 저 밑까지 다 넘어갔대요.”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운영하는 공공자산 처분 시스템 ‘온비드’를 통해 일부 폐교 부지가 필지 분할로 매각됐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큰 덩어리의 폐교 건물을 팔기란 쉽지 않다. 서남대처럼 대부분 지방 중소도시에 위치해 가치가 낮게 평가되기 때문이다. 경매에 넘어가 계속된 유찰 끝에 감정가액의 절반까지 낮추면 찾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을까?
“매각이 돼도 문제”
전직 관리인 A씨는 “매각이 돼도 문제”라고 했다.
“폐교 부동산은 몇 차례 유찰 후 매각이 이뤄지지 않거나 매각이 이뤄져도 감정가액에 크게 못 미칩니다. 그러니 폐교대학 구성원들에게 체불 임금 등을 지급하기 위한 현금을 확보하기 어렵잖아요.”
경기대 김한수 교수에 따르면 서남대의 체불 임금은 156억원(2018년 2월 기준)에 달했다. 현재 서남대 해직 교수의 체불 임금은 모두 청산됐다고 한다. 그러나 타 폐교대학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폐교대학 청산 절차가 지연되면 될수록 체불 임금 규모도 더 늘 수밖에 없다.
2000년 이후 폐교된 대학 중 건물 매각이 이뤄진 경우는 극히 일부다. 기자가 기억하기로 아시아대학(경북 경산시 소재) 건물이 대구한의대에 팔린 정도다. A씨의 계속된 말이다.
“그렇게 파격 세일을 해도 유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또 폐교대학 자산(토지, 건물) 대부분은 용도가 제한돼 있어 청산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폐교대학 땅(학교용지)과 다른 용도 지역의 공시지가를 비교하면 2~3배 정도 가격이 낮다. 그러나 지목 및 용도를 변경하면 땅의 가치를 올릴 수는 있다.
용도변경은 국토교통부 장관이나 시·도지사 또는 대도시 시장 등이 결정한다. 앞으로 부실 판정을 받아 퇴출될 대학이 적지 않을 텐데, 그 지역의 지자체와 긴밀하게 협의해 폐교를 인수하거나 용도를 변경해 신속하게 매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이 과정에서 도시계획을 변경해 매각을 진행하면 용도변경에 따른 매매차익의 특혜 시비가 생길 수도 있다. (차제에 부동산신탁회사에 처분신탁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편, 폐교대학이 보유한 토지와 건물을 매각해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지만, 기존 학교 건물을 모두 철거한 후 토지를 국토계획법상 다른 용도로 바꾸는 것이 적절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야 토지의 가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가 방문한 대학
충남 논산에 위치한 한민학교로 향했다. 고씨와 박씨를 시외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주었는데 헤어지기 섭섭해 편의점 앞에서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기자는 막걸리가 찰랑이는 종이컵에 입만 대었다.) 두 청년에게 행운을 빌어주지는 않았다. 누구보다 튼실하게 잘살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1시간 가까이를 달려 한민학교에 도착했다. 이 폐교는 4년제 대학이 아닌 ‘4년제 학력 인정학교’다. 폐교에서 내려다보이는 넓은 들판이 황산벌이다. 황산벌 전쟁 하면 김유신의 신라와 당나라의 나당연합군 5만 명이, 계백의 백제군 5000명과 싸워 이긴 전쟁을 말한다.
한민학교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검색해보았다. 《대전일보》 2013년 6월 3일 자 기사 “안타까운 한민학교 폐교” 중 일부다.
〈몽골·러시아·필리핀과 유학생 협정을 맺고 20여 명의 몽골 학생들을 데려와 새마을 교육을 시켜 다시 몽골로 보내 몽골에 새마을운동을 전파하는 야심 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가 하면 고르바초프 구(舊)소련 대통령 등 세계적 인물들을 초청, 유대를 강화하고 매년 5월 전국문화체육대회를 성대하게 개최해왔다.〉
한민학교는 1959년 대전신학교로 발족한 뒤 논산으로 학교를 옮기면서 지난 2000년 ‘한민족’을 연상케 하는 교명으로 바꾸었다. 해마다 신입생 충원이 줄다가 결국 문을 닫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꼭 10년 전인 2013년 8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12년 한민학교의 신입생 충원율이 23.9%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미충원율이 76.1%였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대학 본관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을 철문이 막고 있었다. 길 옆 과수원을 통해 다가설 수 있었다. 3월이면 활짝 필 벚꽃길이 저 홀로 피고 질 것이라 생각하니 무척 슬퍼졌다.
인조잔디가 깔려 있는 대학 운동장 옆에 커다란 글씨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적힌 입간판이 보였다. 학생들은 없지만 10년 동안 텅 빈 운동장을 지키며 ‘진리’를 수호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뭉클해졌다.
모두 떠나갔지만 과거 이곳 학생들이 꿈꾸었던 ‘진리’는 어떤 진리일까. 운동장 스탠드엔 잡초가 무성했다. 계단은 흙과 나뭇잎으로 뒤덮였다.
폐교 건물 곳곳에 흰색 페인트로 적힌 글씨가 보였다. ‘우리 인생을 책임져라’ ‘되지도 않는 편·입학 철회’ ‘여기서 졸업할 것이다’ ‘우리를 책임져라’ ‘한민, 졸업시켜라’ ‘야간 학생은 갈 곳이 없다’ ‘총장은 우리를 졸업시켜달라’는 문구가 외벽에 적혀 있었다.
대학 본관과 선교관 2개 동 건물의 유리창은 대부분 깨어졌다. 바닥에는 유리 파편이 가득했다. 산 아래여서 더 섬뜩하게 느껴졌는데 밤이었다면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학교가 폐교될 당시 전임교수 확보율 27%, 시간강사 수업 의존도 48%, 교사시설 확보율 57% 등 교육 여건이 아주 열악했다고 한다. 학생 수가 부족하자 총장을 포함해 교직원 5명이 학생으로 등록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교원이 한 명도 없는 액션영화학과에 고졸자를 교수로 채용하기도 했다. 실제 없는 학과를 만들어 외국인 유학생을 모집하고 미출석 학생 500여 명에게 성적을 부여했다가 교육 당국에 적발되었다.
폐교될 당시 재학생과 휴학생 249명은 유사 학과가 있는 충청권 대학으로 편·입학했다고 한다. 야구부는 전북 완주에 있는 우석대학으로 흡수되었다.
폐교를 연수원으로 활용해야
한민학교는 근린 지역과 인접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외진 숲속에 학교를 짓고서, 학생들을 상대로 졸업장 장사를 했다. 그래도 학생들은 꿈을 좇으며 이 학교를 사랑했을 것이다. 지금도 추억을 불러내면 봄마다 꽃이 피고 새소리로 가득한 숲속 동산을 떠올릴지 모른다.
한민학교처럼 근린 지역과 인접성이 떨어진 폐교는 매각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용 용지에서 다른 용도로 변경해 부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도시계획 변경 등을 통해 해당 부지와 건물을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대 경영학부 김한수 교수는 “폐교대학이 보유한 건물 등을 해당 시·군에서 인수해 적절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기숙사는 개조 후 임대아파트로, 강의실과 연구실은 개조 후 사무실로 사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폐교대학이 소재한 시·군의 재정 여력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대개 지자체 시·군의 재정 자립도는 낮다. 토지 면적이 커서 필지 분할 방식으로 매매 대상자를 물색해야 한다. 첩첩산중이다. 결국 지자체나 교육 당국이 나설 수밖에 없다.
폐교대학인 성화대학 교수를 역임한 이덕재 한국교수발전연구원 이사장은 “폐교대학 대부분이 시골에 위치해 마땅한 용도를 찾지 못해 매각이나 임대가 어려운 만큼 폐교대학을 혁신도시 입주 공공기관의 공용 연수원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폐교대학은 강원, 경북, 충남, 전북, 전남, 부산 등지에 소재하고 있어 혁신도시 권역과 일치하는 만큼 폐교시설을 연수원시설로 활용해 지방 공기업이나 민간 기업의 연수원으로 임대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이다.
폐교 맞아?… 건물이 멀쩡한 이유, 그리고 잊힌 그 이름
2005년 개교해 2013년 자진 폐교한 경북외국어대를 찾았다. ‘폐교 10주년’인 셈이다. 교명엔 ‘경북’이 들어가는데 위치는 행정구역상 대구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폐교 입구에서 관리인이 막아섰다. 경계하는 기색을 보이며 내부 취재를 거부하기에 더는 결례를 피하고자 주변을 맴돌았다.
대구 도시철도 3호선 칠곡경북대병원역 앞에 있는 경북외대 부지는 나름 ‘역세권’이었다. 그래서일까, 캠퍼스는 제법 잘 관리되고 있는 듯했다. 말끔하게 정돈된 잔디 운동장에 녹슨 구석이 없는 건물. 사실 경북외대는 캠퍼스라고 부르기도 민망하게 이 건물 달랑 하나가 전부다.
건물의 관리 주체와 연락이 닿았다. 경북외대 부지와 건물은 지금 학교법인 무열교육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자신을 행정실장이라고 소개한 이모씨는 학교 건물과 부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 물음에 “임대를 주려고 임차인을 알아보고 있다”며 “(협의를 시도한) 여러 군데가 있는데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좀 주춤한 상태”라고 귀띔했다.
왜 이렇게나 멀쩡하게 관리된 건물이 썰렁했는지 이해가 됐다. 이씨는 “현재 운동장은 임대하고 있다”며 바로 옆 칠곡경북대병원에 주차장으로 임대를 내줬다고 했다. 여하튼 경북외대는 학교 부지와 건물의 청산 절차가 모두 끝이 났다.
이 캠퍼스를 매일 보는 인근 주민들조차 경북외대의 흔적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경북외대 바로 옆 대구체육중등학교 학생 무리 열댓 명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이들에게 경북외대를 아느냐고 묻자 앳된 얼굴의 학생들은 서로 “경북외대, 아는 사람?”이라고 물었다. 하지만 갸웃거리기만 할 뿐, 아는 사람은 없었다. 바로 앞 카센터 직원은 “학교였던 곳인지도 몰랐다”고 답했다.
인근 칠곡경북대병원 근처에서나 식당과 카페를 찾을 수 있었다. 인근 식당의 종업원 A씨는 “10년 전 경북외대 학생들이 다니던 대학가는 이 주변엔 없고, 대학들이 모여 있는 태전동에 있다”고 알려줬다. 3호선 칠곡경북대병원역에서 대여섯 정거장 떨어진 태전동으로 향했다. 인근에 전문대학인 대구과학대, 대구보건대가 있어 대학가의 구색을 갖춘 거리가 있었다. 자취생들을 위한 빌라촌이 늘어서 있었다. 다만 젊은이들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원룸을 세놓는다는 전단이 여기저기 많이도 붙어 있지만 정작 돌아다니는 대학생은 드물었다.
태전동 대학가 부동산을 찾아가서 얘길 들어봤다. 부동산 관계자는 “10년 전 경북외대 학생들이 태전동에서 자취를 하진 않았던 것 같다”며 “1년에 한 명 볼까 말까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북외대 학생들은 대학 인근 주택가에서 자취를 했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인근 대학의 자취생들이 부동산을 찾는 빈도가 줄었냐”고 묻자 “아무래도 그렇다”고 했다.
또 “올해부터 입주를 시작한 ‘행복기숙사’로 인해 인근 부동산 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다”고 했다. 행복기숙사는 대구시와 사학진흥재단이 지역 대학생을 위해 함께 지었다. 기숙사비는 월 24만원. 최장 8년까지 이용할 수 있다. 부동산 관계자는 “행복기숙사 입주가 시작되면서 부동산을 찾는 자취생이 작년에 비해 반 토막 났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학교 측에서도 기숙사가 가득 차면 학생들에게 행복기숙사로 가라고 안내한다”며 “그쪽이 월세도 싸다”고 설명했다. 수도권 대학가에선 월세가 치솟아 학생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데 비해 이곳은 정반대였다.
60.9%는 특별편입, 폐교 당시 경북외대 학생들은
경북외대는 문을 닫았지만, 당시 학생들은 어떻게 됐을까. 폐교 결정 당시 경북외대 재학생들이 어떻게 됐는지 자료를 찾아봤다.
먼저, 대학원을 포함해 재학생 524명이 주변 대학들 특별 편·입학 대상자였다. 이들 중 319명이 대학에 등록했는데 등록률이 60.9%였다. 대개 경일대(경북 경산), 경주대, 김천대, 대구대(경산), 대구예술대(칠곡), 대구외국어대(경산), 대구한의대(경산), 동국대 경주캠퍼스, 동양대(영주), 위덕대(포항) 등 10개 대학으로 흩어졌다. 대구예술대를 제외하고 경북외대에서 상당히 먼 곳에 위치하는 대학들이다.
그런데 학생들 대부분이 ‘경북외대 졸업생’으로 남고 싶어 했다고 한다. 일부는 대학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변호사 B씨와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그는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고 기억했다. “입학을 (3월에) 했는데 5월 폐교가 됐다. (학교 측이) 폐교할 계획이 어느 정도 정해졌는데도 신입생을 뽑았다”며 혀를 찼다.
소송을 제기한 이들 가운데엔 졸업생도 있었다. B 변호사는 “졸업생들도 출신 학교가 없어지니 손해를 봤다고 볼 수 있었다. 법원에서 위자료를 어느 정도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재판은 원고 일부 승소로 결론이 났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려 졸업생들의 연락처를 입수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어둑어둑해진 밤에 다시 경북외대를 찾아갔다. 강한 조명이 내리쬐지만 으스스한 게 어째 왠지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그제야 폐교라는 게 실감이 났다. 한때나마 대학생들로 북적였던 일대의 모습을 망연자실 떠올려보았다.
인터뷰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 홍덕률
“폐교대학 문제에 국가와 지자체가 적극 개입해야”
폐교대학 관련 업무를 책임지는 곳이 한국사학진흥재단(이사장 洪德律)이다. 경영 위기에 봉착한 대학 입장에선 사학진흥재단이 서슬 퍼런 저승사자로 비칠지 모르겠다. 폐교대학과 한계대학에 대한 체계적 관리를 재단이 떠맡고 있다.
향후 사립대학 재정진단과 컨설팅 기능을 통해 한계대학의 자발적 퇴로를 지원할 방침이다. 다음은 홍덕률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2000년 이후 폐교대학이 모두 20곳에 이릅니다. 사학이 부실에 처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2000년 이후에 폐교대학은 20곳이지만, 폐교 시기를 좀 더 들여다보면 2013년 이후 약 10년 동안 폐교대학은 14곳입니다. 다른 3곳의 폐교대학도 그 1년 전인 2012년에 폐교된 대학이죠. 나머지 3개의 대학만 2012년 이전에 폐교됐어요. 2008년에 폐교된 대학이 2곳, 2000년에 폐교된 대학은 1곳입니다.
즉 대부분의 폐교대학들은 학령인구 감소와 2009년부터 14년째 이어진 등록금 동결의 충격에서 기인했다고 추론할 수 있어요.
20개 폐교대학 가운데 18개 대학이 비수도권에 위치한 대학이었다는 사실도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대학 경영진의 비리나 독선과 같은 내부 문제가 전혀 없이 오로지 학령인구의 급감이라는 외부 환경만으로 폐교로 내몰리는 대학이 많아질 것입니다.”
― 폐교대학 대부분이 지방 외곽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마땅한 용도를 찾지 못하여 매각이나 임대가 어려운 실정이죠.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폐교대학이 도시 외곽에 위치해 개발가치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매각되거나 활용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왔어요. 그 결과, 재산가치는 계속 하락하고 결국 지역사회에 큰 짐으로, 혹은 흉물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청산인의 적극적인 자세고, 다른 하나는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개입과 행정 지원입니다. 현재 20개 폐교대학 가운데 법인까지 청산된 사례는 1개 대학에 불과할 정도로 청산이 매우 지지부진한 실정인데, 사정을 들여다보면 청산인이 지정되어 있지 않거나 혹은 최소한의 행정비용과 인건비가 없어 청산 업무를 진행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그래서 청산인들을 지원해주는 제도를 작년부터 시작했어요.
물론 청산인이 적극 나선다 하더라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적극 개입하지 않으면 재산의 처분 및 재활용 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법과 제도를 보완해야 가능한 실정입니다.”
의료법인이나 사회복지법인에서 폐교대학을 운영한다면…
― 폐교대학을 정부나 지자체가 매입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실화될 수 있을까요.
“정부나 지자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요. 예컨대 지자체가 직접 매입해 지역에 필요한 시설로 재활용하거나, 아니면 부지의 용도변경을 통해 민간이 적극 매입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희 재단에서는 교육부 및 여야 국회의원들과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입법을 준비해왔어요. 폐교대학의 부지와 시설 등을 지역사회에서 적극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폐교대학 법인의 청산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지자체가 적극 역할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안이죠. 이 ‘사립대학 구조개선 지원을 위한 법’을 작년 9월에는 국민의힘 국회교육위 간사인 이태규 의원, 올 1월에는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했어요. 현재 입법 공청회와 교육위원회에서의 병합심의를 앞두고 있습니다.”
― 이 법안이 제정되면 지자체가 폐교를 직접 매입하거나, 학교 부지의 용도 변경이 보다 쉽겠네요.
“그렇죠. 폐교를 지역사회 기반시설, 산업단지, 평생교육시설, 복합문화시설 등으로 개발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또한 자진 폐교를 결정하는 사립대학 법인의 경우 폐교대학의 시설을 의료법인이나 사회복지법인 등의 공익법인으로 전환해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담겨 있어요.”
다시 말해 병원이나 실버타운 등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 폐교대학 법인의 청산 유도를 위해 필요한 자금을 빌려주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자금을 빌려줄 때 어떤 조건이나 방식으로 빌려주나요.
“‘폐교대학 청산지원 융자’는 해산한 학교법인(이하 ‘해산법인’)의 청산인이 청산에 필요한 자금을 융자받은 뒤 체불 임금과 체납 세금, 부채 등을 우선 상환하고, 장시간을 요하는 보유자산 처분(매각)까지 마무리한 뒤에 매각 대금으로 융자금을 상환하는 구조입니다.
재단은 청산인으로부터 융자신청을 받게 되면, 저희 재단에 설치된 ‘청산융자 심사위원회’에서 해당 폐교대학의 보유자산 가치 및 융자원리금 회수 가능성 등에 대한 심사를 하고 담보를 조건으로 지원하고 있어요.”
사업 첫해인 2022년, 2개 해산법인에 대해 총 62억4000만원을 융자 지원했다. 올해는 청산융자 사업비 106억원을 확보해놓은 상태라고 한다.
“회생 가능성 있는 대학은 적극 지원해야”
― 최근 언론보도를 보니 2023학년도 대입 정시 모집에서 전국 14개 대학 26개 학과에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모두 지방대학의 학과였다고 해요.
“먼저 지방대학의 위기는, 그렇지 않아도 출생률 저하와 노령화 등으로 소멸위기에 처한 지방도시에 직격탄이 될 것입니다. 지방대학은 지역 경제와 지역문화, 지역 산학협력, 지역 평생교육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지방대학 위기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최소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한계대학 혹은 이미 재정위기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 회생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진단된 대학들에 대해 무작정 국가재정을 쏟을 수는 없는 형편입니다.
해답은,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대학, 재정적으로 최소한의 지속가능성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대학들을 추려내 폐교를 해야 합니다.
동시에, 최소한의 회생 가능성이 있는 대학에 대해서는 적극 지원하여 경쟁력을 갖추고 미래 인재를 길러내도록 해야죠.”
홍 이사장은 “학령인구 급감의 타격을 비수도권 지방대학들이 집중적으로 맞게끔 하는 것도 국가경쟁력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전방위적 노력이 중요하며, 대학 정책에 있어서도 균형발전의 가치와 정책을 강력하게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지방대학과 적극적으로 손잡고 지방대학과 지역 산업계,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윈-윈 할 수 있는 모델을 창출해야 합니다. 지방대학과 지자체가 연계해 지역의 전략산업 맞춤형 산·학·연 체계를 구성하고, 대학은 싱크탱크로서 전문인력 양성과 산업기술 연구개발을 통해 지역산업 발전에 기여해야 합니다.
그렇게 대학이 지역산업 발전을 견인하고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면 지역이 되살아나고 대학의 경쟁력과 위상도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방대학 관계자들끼리 쑥덕이며 하는 얘기다. 남부 지역 대학부터 망하기 시작해 스멀스멀 수도권 대학까지 도미노처럼 올라온다는 이야기다.
혹자는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시작된 소나무 재선충병의 감염처럼 불치의 병이 밑에서부터 올라온다는 이야기도 한다. 풍문처럼 통용되던 우스갯소리가 기막힌 학설처럼 점점 공론화되고 있다.
몇 달 전 기자와 만난 한 지방대학 관계자는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신입생 미충원 확대로 2040년쯤에는 현재 대학 수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 큰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3년 현재 전국에 있는 4년제 일반대학, 전문대학, 교육대학, 산업대학을 모두 합치면 336곳에 이른다. 일반 4년제 대학이 190곳, 전문대 134곳이다. 이 가운데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 소재 대학은 116곳이다. 나머지 220곳은 모두 지방대학이다.
수도권을 제외하고 지방대학 중 가장 대학 수가 많은 지자체는 경북으로 33개 대학(일반대 19, 전문대 14)이 있다. 다음으로 ▲부산 21곳(일반대 12, 전문대 8, 교육대 1) ▲충남 21곳(일반대 13, 전문대 6, 교대 1, 산업대 1) 순이다.
기자의 오랜 지인인 이 지방대 관계자는 “폐교대학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폐교 부지를 지역사회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제3의 길은 없는지…. 중요한 이슈이니 잘 취재해달라”고 부탁했다.
기자는 거절했다. 한두 해의 문제도 아니고 수십 년째 방치된 폐교대학의 현실을 파헤칠 능력이 못 된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상소문을 올리듯 대통령에게 탄원해보라”고 했는데 진심이었다. 한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기자가 큰 실수를 한 것처럼 느껴졌다.
악성 채권과 다름없던 폐교대학 문제가 요즘 들어 무언가 실마리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대학이 문을 닫으면…
대학이 문을 닫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모교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졸업생이 느끼는 허전함은 둘째치고 재학생들은 인근 대학에 ‘특별 편·입학’할 수 있다지만, 유사 전공이 없거나 교육과정이 다를 경우 배움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원하지 않는 먼 거리 대학에 가서 물에 기름처럼 떠돌 수도 있다.
대학이 문을 닫으면 주변 상가도 타격을 입게 된다. 지역 경제에 먹구름이 끼는 것은 물론이고 많은 교직원, 교수, 시간강사들이 일자리를 잃는 고통도 발생한다.
폐교대학 문제는 단순히 대학이나 학생, 교직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파가 사방팔방으로 튄다. 교육 당국은 사학비리 대학에 대해 ‘폐교 명령’이라는 단순한 행정 절차를 밟으면 그만일지 몰라도 폐교를 둘러싼 사회갈등은 심각하고 암울하며 다면(多面)적이다.
예를 들어 대학이 문을 닫고 학생과 교직원이 떠난 자리에는 채무 관계만 남는다. 체불 임금, 고소·고발 같은 지루한 송사(訟事), 매각이 어려운 건물(그리고 사후 관리), 청산에 의지가 없는 폐교 청산인, 자잘한 악성 빚들은 대학이 문을 닫은 후에도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져 말끔히 정리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학생이 없는 대학가 주변은 상상하기조차 싫다. 인근 주민들은 하하 호호 웃고 떠드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지방대학의 미달 사태 594명 정원에 532명 미달 대학 2023학년도 대입 전형이 모두 끝났다. 그 결과를 두고 지방대학 모두가 쉬쉬하고 있다. 지역 언론도 정원 미달의 현실 앞에 대놓고 기사를 쓸 수 없다. ‘지방대학에 범[虎]이 내려온다’고 ‘재앙이 온다’고 쓸 수 없다. 사실 대학의 잘못도 아니다. 지난 2월 말 추가 모집에 앞서 정시전형을 끝낸 경북 지역 A대학의 미달률은 놀랍게도 90%였다. 정시 정원이 594명인데 532명이 미달한 것이다. 199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수도권 대학에 붙고도 가는 대학이었다. 관광대학으로 특화되어서 졸업만 하면 취업 걱정은 안 하던 대학이었다. 대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B대학은 256명 정시 모집에 216명이 미달했다. 전체 정원 가운데 16%만 채웠다. 부득이 지난 2월 말 250명을 추가 모집했다. 추가 모집 결과에 대해선 아무도 확인시켜주지 않았다. 광주의 C대학은 340명 정원에 235명이 미달해 미달률이 65%였다. 276명을 추가 모집했다. 전남의 D대학 역시 정시선발 인원이 320명이었는데 미달률이 65%(208명 미달)나 되었다. 추가 모집 인원을 확인하니 71명이나 많은 279명이었다. 입학금을 냈다가 상당수가 등록을 포기한 것이다. 충북의 E대학은 479명 정시 정원에 미달률이 60%였다. 추가 모집 인원은 415명이었다. 이 밖에 전북의 F대학, 광주의 G대학도 각각 미달률이 50%를 넘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발표에 따르면 전국의 ‘한계대학’은 84개교(2021년 현재)에 이른다. 한계대학이란 재무구조가 부실하고, 정상적인 학생 모집이 어려워 경영 곤란에 처한 대학을 말한다. 대부분 비수도권에 소재(73.8%)하거나 사립대학의 비중(94%)이 높다. 학령인구 감소에다 대학 신입생 미충원율(모집정원 대비 미등록률)의 증가로 향후 폐교대학이 급증할 수 있다는,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원망보다 미련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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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시 송악면 산 중턱에 위치한 폐교대학인 서남대 아산캠퍼스의 3개 동 건물이다. |
서남대는 설립자의 공금 횡령 등으로 지난 2017년 12월 13일 교육부로부터 학교 폐쇄 명령과 학교법인 서남학원에 대한 해산 명령으로 2018년 2월 28일 폐교했다. 5년 전이다.
서남대는 지난 1991년 전북 남원에서 문을 연 후 2002년 3월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 일원 15만8000여㎡(4만7800여 평)에 건물 2개 동(진리관, 봉황관)을 갖추고 아산캠퍼스를 추가로 세웠다.
사전에 연락한 이 대학 출신 고영식(31)씨와 박효근(30)씨가 동행했다. 대학 정문에 도착하니 자전거를 탄 라이더 몇몇이 보였다.
인근 산 정상에 올라가 이 폐교를 내려다보면 어떤 느낌일까. 산에 올라가 보았다. 꼭 그럴 마음은 없었지만 힘들게 산길을 재촉했다.
함께 산을 오르며 “대학에 대한 애정보다는 분노, 증오가 더 크겠지요?”라고 슬쩍 떠보았다. 고씨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김에 욕설이라도 내뱉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 “무슨 말씀을요. 학교가 그립고, 지금 봐도 그립고, 앞으로도 그리울 겁니다”라고 했다. 박씨도 담담하게 이렇게 털어놨다.
“원망보다 미련만 남습니다. 아직도 이 학교 주변을 서성이고 있어요. 가끔 주말마다 차를 몰고 근처를 오갑니다.”
기자의 마음속 한 곳이 덜컹했다. 누구에게나 잊지 않고 있다는 것, 잊을 수 없다는 것, 잊어선 안 되는 것이 있다. 폐교일망정 스무 살을 보낸 공간은 소중한 곳이었다.
“벼랑 끝에 서봤으니 더는 두렵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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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열린 ‘서남대학교 폐교 반대 투쟁 총학생회 기자회견’에 참가한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교육부에 학교 정상화 및 학교 폐교 반대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길이, 마을이, 논경지가 연결되어 큰 벌판을 이루는 모습, 그 벌판이 평야를 이루고 그사이로 큰 도로가 지나며, 큰 덤프트럭이 달리고, 다시 올망졸망 집들이 이어지고, 그 뒤로 산이 막아서고….
한눈에 다 보였다. 누구에게는 한 시절을 ‘잘라 먹은’ 비정한 대학이지만, 이렇게 젖은 성냥갑처럼 덩그렇게 건물만 남았지만, 버릴 수도 버려질 수도 없는 공간이 폐교였다.
2개 동(棟) 10층과 12층 건물은 미끈했다. 다시 닫힌 문이 열리고 창문을 닦아놓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람들이 드나들 것 같았다. 자료를 찾아보니 4년제 정규대학 최초로 경호탐정학과라든가 원예힐링학과 같은 이색학과가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는 학과였을까. 학생들은 얼마나 신이 났을까.
우리는 말없이 하산했다. 고씨는 택배 일을 하고 있다. 박씨는 농공단지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다. 각각 체육과 행정 관련 학과를 다녔는데 다른 대학으로 ‘특별 편·입학’을 거부, 한동안 방황하는 날들을 보냈다. 모두 변산반도가 고향이다. 낙조(落照)를 보고 자랐다. 마음속 어둑어둑한 저녁 풍경 같은 것이 무언지 안다.
“모교(폐교)도 내 인생처럼 그런 것 같아 속이 상합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아요. 따지고 보면 이 대학에 다니며 너무 행복했어요. 지금도 대학 친구들과 연락을 하며 지냅니다. 그 시절이 그리워요.”(고씨)
“부실 대학, 비리 재단에 대한 원망은 없습니다. 원망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나요? 대학이 망해가는 과정, 사람들이 떠나는 과정을 모두 보았어요. 그러니 한 번 벼랑 끝에 서봤으니 더는 두렵지 않아요. 과거보다 저 자신이 좀 더 행복해진 것 같습니다.”(박씨)
두 사람이 서남대에 입학원서를 내던 2016년 2월, 대학은 무더기 미달 사태를 겪고서 추가 모집을 했다. 남원캠퍼스에서 130명, 아산캠퍼스에서 404명을 추가 모집했다. 당시 입학정원은 남원캠이 334명, 아산캠이 주야간 합쳐 556명이었다. 2년 전만 해도 남원캠의 정원은 800명대, 아산캠은 1000명대였다. 반 토막이 났다.
이미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2010~2016년), 경영부실 대학(2015~2016년)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두 사람은 훨씬 나중에 서남대 설립자가 1000억원에 달하는 교비를 횡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설립자는 아직도 수감 중이다.
붉은 손글씨로 쓴 ‘민·형사상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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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대 아산캠퍼스의 운동장. 운동장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누런 잡풀이 우거졌다. 왼쪽의 짓다 만 건물은 로스쿨을 유치하겠다며 건물부터 짓다가 중단했다. |
건물이 폐쇄된 지 5년이 지났지만 그래도 온전해 보였다. 깨어진 유리창도 없었다. 건물 1층에 ‘외부인 출입금지’ ‘접근금지 아산경찰서 수사과 041-538-9364’ ‘출입통제구역’ 같은 살벌한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붐볐을 편의점(상호 ‘해피 타임’)이 보였다. 간판은 이미 색이 바랬다.
건물 옆에 텅 빈 운동장이 보였다. 흰색 축구 골대가 없었다면, 장승이나 솟대처럼 서 있는 저 골대가 없었다면, 운동장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누런 잡풀이 우거졌다. 착각인지 몰라도 물 끊긴 갯벌처럼 보였다.
운동장 뒤로 10층 규모의 짓다 만 건물이 눈에 띄었다. 대단한 배짱처럼 느껴지는데 로스쿨을 유치하겠다며 로스쿨 건물부터 올렸다고 한다. 박씨의 말이다.
“폐교를 반대하는 농성을 한 적이 있어요. 다들 운동장에 모였지요. 그것도 한두 번이지 아무리 외쳐봐야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망해도 좋지만, 내가 졸업할 때까지만 대학이 버텨주길 바랐지요.”
폐교 후 서남대 아산캠퍼스는 2019년 1차례, 2020년 2차례 건물과 토지 매각을 위한 공매를 진행했으나 응찰자가 아무도 없어 매각은 성사되지 않았다. 매각금액이 250억~270억원대였다고 한다.
운동장 앞에서 아산캠퍼스 전직 관리인 A씨를 만났다. 기자라는 신분을 부득이 밝히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땅과 건물에 관심이 있는 외지인’으로 보였을까?
“이 시설(폐교)을 구매하려면… 지금 충남도지사가 바뀌었잖아요.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용도를 변경하려면 아산시장 힘으로는 안 되고, 도지사 끗발은 있어야 한다고. 정권이 바뀌었으니까 학교 건물이랑 부지도 팔릴 거라고 말들 해요. 지금 도지사 이름이 뭐예요?”
― 김영환 도지사 말이지요?
(기자가 착각을 했다. 김영환 지사는 충북도지사다. 아산시는 충남에 있다. 충남도지사는 김태흠 지사다. 두 사람 다 국민의힘 소속이다.)
“네, 그 양반…. 언젠가 서울서 땅 보러 온 사람들이 ‘남원캠퍼스(서남대)보다 아산캠퍼스가 서울서 가까워 매력이 있다’고 했었어요. 건물 용도가 바뀌면 팔릴 겁니다. 그렇게 되면 주민들 입장에서도 좋잖아요. 그럼요, 멀쩡한 건물, 이 넓은 땅이 아깝잖아요. 건물 안에 들어가면 깨끗해요. 건물도 잘 지어놨어요. 여기다 요양병원이든 실버타운이든 활용하면 좋잖아요?”
그는 이런 이야기도 했다.
“여기 일대가 모두 20만 평인데, 학교 운동장 저 밑으로 (손짓을 하면서) 땅들이 죄다 경매로 팔렸다고 해요. 남은 게 여기 건물이랑 학교 부지 정도고…. 경매로 저 밑까지 다 넘어갔대요.”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운영하는 공공자산 처분 시스템 ‘온비드’를 통해 일부 폐교 부지가 필지 분할로 매각됐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큰 덩어리의 폐교 건물을 팔기란 쉽지 않다. 서남대처럼 대부분 지방 중소도시에 위치해 가치가 낮게 평가되기 때문이다. 경매에 넘어가 계속된 유찰 끝에 감정가액의 절반까지 낮추면 찾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을까?
“매각이 돼도 문제”
전직 관리인 A씨는 “매각이 돼도 문제”라고 했다.
“폐교 부동산은 몇 차례 유찰 후 매각이 이뤄지지 않거나 매각이 이뤄져도 감정가액에 크게 못 미칩니다. 그러니 폐교대학 구성원들에게 체불 임금 등을 지급하기 위한 현금을 확보하기 어렵잖아요.”
경기대 김한수 교수에 따르면 서남대의 체불 임금은 156억원(2018년 2월 기준)에 달했다. 현재 서남대 해직 교수의 체불 임금은 모두 청산됐다고 한다. 그러나 타 폐교대학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폐교대학 청산 절차가 지연되면 될수록 체불 임금 규모도 더 늘 수밖에 없다.
2000년 이후 폐교된 대학 중 건물 매각이 이뤄진 경우는 극히 일부다. 기자가 기억하기로 아시아대학(경북 경산시 소재) 건물이 대구한의대에 팔린 정도다. A씨의 계속된 말이다.
“그렇게 파격 세일을 해도 유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또 폐교대학 자산(토지, 건물) 대부분은 용도가 제한돼 있어 청산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폐교대학 땅(학교용지)과 다른 용도 지역의 공시지가를 비교하면 2~3배 정도 가격이 낮다. 그러나 지목 및 용도를 변경하면 땅의 가치를 올릴 수는 있다.
용도변경은 국토교통부 장관이나 시·도지사 또는 대도시 시장 등이 결정한다. 앞으로 부실 판정을 받아 퇴출될 대학이 적지 않을 텐데, 그 지역의 지자체와 긴밀하게 협의해 폐교를 인수하거나 용도를 변경해 신속하게 매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이 과정에서 도시계획을 변경해 매각을 진행하면 용도변경에 따른 매매차익의 특혜 시비가 생길 수도 있다. (차제에 부동산신탁회사에 처분신탁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편, 폐교대학이 보유한 토지와 건물을 매각해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지만, 기존 학교 건물을 모두 철거한 후 토지를 국토계획법상 다른 용도로 바꾸는 것이 적절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야 토지의 가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막장 끝판왕 아시아대
폐교 이후 학적 기록은 모두 사라졌다. 군대에 다녀온 학생들은 자신이 다녔던 대학 기록이 사라진 걸 알고 망연자실했다. 대학에 다녔다는 어떠한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아시아대 사태 이후 교육 당국은 대학이 문을 닫더라도 관련 학적이 소실되는 일은 없도록 했다. 현재 폐교대학 기록물은 한국사학진흥재단으로 이관된다. 《조선일보》 2006년 9월 13일 자 기사 “4년제 대학교 간판 너머엔 건물 하나에 농구대 둘”에 따르면 기자는 인가(人家)도 없는 산속을 한참 걸었더니 ‘아시아대’라는 간판이 보였다고 한다. 간판 위로 철근이 불쑥불쑥 튀어나온 시멘트덩이 흉가(凶家)가 학교 건물이었다. 지하 1층, 지상 5층의 건물은 썰렁했다. 학생이나 교수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다. 건물 안 강의실 수십 개 중 수업이 진행 중인 교실은 다섯 개가 안 됐다. 깨끗하게 비워진 강의실도 많았고 각종 실습실에서는 장비를 찾기 힘들었다. 부서진 집기는 복도에 방치돼 있었다. 이 학교의 2006학년도 신입생 모집 정원은 20개 학과에 640명이었지만 등록한 학생은 160명에 불과했다. 2003년 개교 때도 신입생이 많지는 않았지만 대학 설립자와 전(前) 총장 등이 교수 임용 과정에서 돈을 받고 공사비를 허위로 부풀린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면서 학교는 엉망이 됐다. 기가 막히게도 경찰이 사학비리 수사에 나서자 대학 관련자들은 비리를 은폐하려고 대학의 문서와 학적부를 모두 폐기한 뒤 도주해버렸다. 그 결과 재학생들이 졸지에 고졸 신분이 되어버렸다. 나무위키에는 이 기막힌 아시아대 상황이 이렇게 적혀 있다. 일부 문장을 수정했다.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없어진 대학, 깡촌에 위치한 학교는 버스가 하루에 1번 왕복 운행, 예체능 시설은 농구장 하나가 전부, 등록생 50명에 중국 유학생이 80명, 국내 학생 50명 중 실제 대학에 다닌 학생은 3명뿐, 중국인 유학생도 서류상 유학, 이사장과 전 총장 모두가 구속, 축구부원들이 대학 연구실 부숴버림.〉 |
충남 논산에 위치한 한민학교로 향했다. 고씨와 박씨를 시외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주었는데 헤어지기 섭섭해 편의점 앞에서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기자는 막걸리가 찰랑이는 종이컵에 입만 대었다.) 두 청년에게 행운을 빌어주지는 않았다. 누구보다 튼실하게 잘살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1시간 가까이를 달려 한민학교에 도착했다. 이 폐교는 4년제 대학이 아닌 ‘4년제 학력 인정학교’다. 폐교에서 내려다보이는 넓은 들판이 황산벌이다. 황산벌 전쟁 하면 김유신의 신라와 당나라의 나당연합군 5만 명이, 계백의 백제군 5000명과 싸워 이긴 전쟁을 말한다.
한민학교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검색해보았다. 《대전일보》 2013년 6월 3일 자 기사 “안타까운 한민학교 폐교” 중 일부다.
〈몽골·러시아·필리핀과 유학생 협정을 맺고 20여 명의 몽골 학생들을 데려와 새마을 교육을 시켜 다시 몽골로 보내 몽골에 새마을운동을 전파하는 야심 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가 하면 고르바초프 구(舊)소련 대통령 등 세계적 인물들을 초청, 유대를 강화하고 매년 5월 전국문화체육대회를 성대하게 개최해왔다.〉
한민학교는 1959년 대전신학교로 발족한 뒤 논산으로 학교를 옮기면서 지난 2000년 ‘한민족’을 연상케 하는 교명으로 바꾸었다. 해마다 신입생 충원이 줄다가 결국 문을 닫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꼭 10년 전인 2013년 8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12년 한민학교의 신입생 충원율이 23.9%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미충원율이 76.1%였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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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 황산벌에 위치한 한민학교. 대학 본관 건물 유리창이 대부분 깨져 있다. |
인조잔디가 깔려 있는 대학 운동장 옆에 커다란 글씨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적힌 입간판이 보였다. 학생들은 없지만 10년 동안 텅 빈 운동장을 지키며 ‘진리’를 수호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뭉클해졌다.
모두 떠나갔지만 과거 이곳 학생들이 꿈꾸었던 ‘진리’는 어떤 진리일까. 운동장 스탠드엔 잡초가 무성했다. 계단은 흙과 나뭇잎으로 뒤덮였다.
폐교 건물 곳곳에 흰색 페인트로 적힌 글씨가 보였다. ‘우리 인생을 책임져라’ ‘되지도 않는 편·입학 철회’ ‘여기서 졸업할 것이다’ ‘우리를 책임져라’ ‘한민, 졸업시켜라’ ‘야간 학생은 갈 곳이 없다’ ‘총장은 우리를 졸업시켜달라’는 문구가 외벽에 적혀 있었다.
대학 본관과 선교관 2개 동 건물의 유리창은 대부분 깨어졌다. 바닥에는 유리 파편이 가득했다. 산 아래여서 더 섬뜩하게 느껴졌는데 밤이었다면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학교가 폐교될 당시 전임교수 확보율 27%, 시간강사 수업 의존도 48%, 교사시설 확보율 57% 등 교육 여건이 아주 열악했다고 한다. 학생 수가 부족하자 총장을 포함해 교직원 5명이 학생으로 등록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교원이 한 명도 없는 액션영화학과에 고졸자를 교수로 채용하기도 했다. 실제 없는 학과를 만들어 외국인 유학생을 모집하고 미출석 학생 500여 명에게 성적을 부여했다가 교육 당국에 적발되었다.
폐교될 당시 재학생과 휴학생 249명은 유사 학과가 있는 충청권 대학으로 편·입학했다고 한다. 야구부는 전북 완주에 있는 우석대학으로 흡수되었다.
폐교를 연수원으로 활용해야
한민학교는 근린 지역과 인접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외진 숲속에 학교를 짓고서, 학생들을 상대로 졸업장 장사를 했다. 그래도 학생들은 꿈을 좇으며 이 학교를 사랑했을 것이다. 지금도 추억을 불러내면 봄마다 꽃이 피고 새소리로 가득한 숲속 동산을 떠올릴지 모른다.
한민학교처럼 근린 지역과 인접성이 떨어진 폐교는 매각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용 용지에서 다른 용도로 변경해 부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도시계획 변경 등을 통해 해당 부지와 건물을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대 경영학부 김한수 교수는 “폐교대학이 보유한 건물 등을 해당 시·군에서 인수해 적절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기숙사는 개조 후 임대아파트로, 강의실과 연구실은 개조 후 사무실로 사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폐교대학이 소재한 시·군의 재정 여력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대개 지자체 시·군의 재정 자립도는 낮다. 토지 면적이 커서 필지 분할 방식으로 매매 대상자를 물색해야 한다. 첩첩산중이다. 결국 지자체나 교육 당국이 나설 수밖에 없다.
폐교대학인 성화대학 교수를 역임한 이덕재 한국교수발전연구원 이사장은 “폐교대학 대부분이 시골에 위치해 마땅한 용도를 찾지 못해 매각이나 임대가 어려운 만큼 폐교대학을 혁신도시 입주 공공기관의 공용 연수원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폐교대학은 강원, 경북, 충남, 전북, 전남, 부산 등지에 소재하고 있어 혁신도시 권역과 일치하는 만큼 폐교시설을 연수원시설로 활용해 지방 공기업이나 민간 기업의 연수원으로 임대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이다.
폐교 맞아?… 건물이 멀쩡한 이유, 그리고 잊힌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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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개교해 2013년 자진 폐교한 경북외국어대 건물. 비교적 관리가 잘돼 보였다. |
대구 도시철도 3호선 칠곡경북대병원역 앞에 있는 경북외대 부지는 나름 ‘역세권’이었다. 그래서일까, 캠퍼스는 제법 잘 관리되고 있는 듯했다. 말끔하게 정돈된 잔디 운동장에 녹슨 구석이 없는 건물. 사실 경북외대는 캠퍼스라고 부르기도 민망하게 이 건물 달랑 하나가 전부다.
건물의 관리 주체와 연락이 닿았다. 경북외대 부지와 건물은 지금 학교법인 무열교육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자신을 행정실장이라고 소개한 이모씨는 학교 건물과 부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 물음에 “임대를 주려고 임차인을 알아보고 있다”며 “(협의를 시도한) 여러 군데가 있는데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좀 주춤한 상태”라고 귀띔했다.
왜 이렇게나 멀쩡하게 관리된 건물이 썰렁했는지 이해가 됐다. 이씨는 “현재 운동장은 임대하고 있다”며 바로 옆 칠곡경북대병원에 주차장으로 임대를 내줬다고 했다. 여하튼 경북외대는 학교 부지와 건물의 청산 절차가 모두 끝이 났다.
이 캠퍼스를 매일 보는 인근 주민들조차 경북외대의 흔적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경북외대 바로 옆 대구체육중등학교 학생 무리 열댓 명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이들에게 경북외대를 아느냐고 묻자 앳된 얼굴의 학생들은 서로 “경북외대, 아는 사람?”이라고 물었다. 하지만 갸웃거리기만 할 뿐, 아는 사람은 없었다. 바로 앞 카센터 직원은 “학교였던 곳인지도 몰랐다”고 답했다.
인근 칠곡경북대병원 근처에서나 식당과 카페를 찾을 수 있었다. 인근 식당의 종업원 A씨는 “10년 전 경북외대 학생들이 다니던 대학가는 이 주변엔 없고, 대학들이 모여 있는 태전동에 있다”고 알려줬다. 3호선 칠곡경북대병원역에서 대여섯 정거장 떨어진 태전동으로 향했다. 인근에 전문대학인 대구과학대, 대구보건대가 있어 대학가의 구색을 갖춘 거리가 있었다. 자취생들을 위한 빌라촌이 늘어서 있었다. 다만 젊은이들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원룸을 세놓는다는 전단이 여기저기 많이도 붙어 있지만 정작 돌아다니는 대학생은 드물었다.
태전동 대학가 부동산을 찾아가서 얘길 들어봤다. 부동산 관계자는 “10년 전 경북외대 학생들이 태전동에서 자취를 하진 않았던 것 같다”며 “1년에 한 명 볼까 말까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북외대 학생들은 대학 인근 주택가에서 자취를 했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인근 대학의 자취생들이 부동산을 찾는 빈도가 줄었냐”고 묻자 “아무래도 그렇다”고 했다.
또 “올해부터 입주를 시작한 ‘행복기숙사’로 인해 인근 부동산 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다”고 했다. 행복기숙사는 대구시와 사학진흥재단이 지역 대학생을 위해 함께 지었다. 기숙사비는 월 24만원. 최장 8년까지 이용할 수 있다. 부동산 관계자는 “행복기숙사 입주가 시작되면서 부동산을 찾는 자취생이 작년에 비해 반 토막 났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학교 측에서도 기숙사가 가득 차면 학생들에게 행복기숙사로 가라고 안내한다”며 “그쪽이 월세도 싸다”고 설명했다. 수도권 대학가에선 월세가 치솟아 학생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데 비해 이곳은 정반대였다.
60.9%는 특별편입, 폐교 당시 경북외대 학생들은
경북외대는 문을 닫았지만, 당시 학생들은 어떻게 됐을까. 폐교 결정 당시 경북외대 재학생들이 어떻게 됐는지 자료를 찾아봤다.
먼저, 대학원을 포함해 재학생 524명이 주변 대학들 특별 편·입학 대상자였다. 이들 중 319명이 대학에 등록했는데 등록률이 60.9%였다. 대개 경일대(경북 경산), 경주대, 김천대, 대구대(경산), 대구예술대(칠곡), 대구외국어대(경산), 대구한의대(경산), 동국대 경주캠퍼스, 동양대(영주), 위덕대(포항) 등 10개 대학으로 흩어졌다. 대구예술대를 제외하고 경북외대에서 상당히 먼 곳에 위치하는 대학들이다.
그런데 학생들 대부분이 ‘경북외대 졸업생’으로 남고 싶어 했다고 한다. 일부는 대학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변호사 B씨와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그는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고 기억했다. “입학을 (3월에) 했는데 5월 폐교가 됐다. (학교 측이) 폐교할 계획이 어느 정도 정해졌는데도 신입생을 뽑았다”며 혀를 찼다.
소송을 제기한 이들 가운데엔 졸업생도 있었다. B 변호사는 “졸업생들도 출신 학교가 없어지니 손해를 봤다고 볼 수 있었다. 법원에서 위자료를 어느 정도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재판은 원고 일부 승소로 결론이 났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려 졸업생들의 연락처를 입수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어둑어둑해진 밤에 다시 경북외대를 찾아갔다. 강한 조명이 내리쬐지만 으스스한 게 어째 왠지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그제야 폐교라는 게 실감이 났다. 한때나마 대학생들로 북적였던 일대의 모습을 망연자실 떠올려보았다.
인터뷰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 홍덕률
“폐교대학 문제에 국가와 지자체가 적극 개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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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률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지방대학과 손잡고 지방대학과 지역 산업계,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윈-윈할 수 있는 모델을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
향후 사립대학 재정진단과 컨설팅 기능을 통해 한계대학의 자발적 퇴로를 지원할 방침이다. 다음은 홍덕률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2000년 이후 폐교대학이 모두 20곳에 이릅니다. 사학이 부실에 처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2000년 이후에 폐교대학은 20곳이지만, 폐교 시기를 좀 더 들여다보면 2013년 이후 약 10년 동안 폐교대학은 14곳입니다. 다른 3곳의 폐교대학도 그 1년 전인 2012년에 폐교된 대학이죠. 나머지 3개의 대학만 2012년 이전에 폐교됐어요. 2008년에 폐교된 대학이 2곳, 2000년에 폐교된 대학은 1곳입니다.
즉 대부분의 폐교대학들은 학령인구 감소와 2009년부터 14년째 이어진 등록금 동결의 충격에서 기인했다고 추론할 수 있어요.
20개 폐교대학 가운데 18개 대학이 비수도권에 위치한 대학이었다는 사실도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대학 경영진의 비리나 독선과 같은 내부 문제가 전혀 없이 오로지 학령인구의 급감이라는 외부 환경만으로 폐교로 내몰리는 대학이 많아질 것입니다.”
― 폐교대학 대부분이 지방 외곽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마땅한 용도를 찾지 못하여 매각이나 임대가 어려운 실정이죠.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폐교대학이 도시 외곽에 위치해 개발가치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매각되거나 활용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왔어요. 그 결과, 재산가치는 계속 하락하고 결국 지역사회에 큰 짐으로, 혹은 흉물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청산인의 적극적인 자세고, 다른 하나는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개입과 행정 지원입니다. 현재 20개 폐교대학 가운데 법인까지 청산된 사례는 1개 대학에 불과할 정도로 청산이 매우 지지부진한 실정인데, 사정을 들여다보면 청산인이 지정되어 있지 않거나 혹은 최소한의 행정비용과 인건비가 없어 청산 업무를 진행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그래서 청산인들을 지원해주는 제도를 작년부터 시작했어요.
물론 청산인이 적극 나선다 하더라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적극 개입하지 않으면 재산의 처분 및 재활용 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법과 제도를 보완해야 가능한 실정입니다.”
의료법인이나 사회복지법인에서 폐교대학을 운영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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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일 오후 대구 동구 한국사학진흥재단에 5톤 트럭 두대 분량의 폐교대학 관련 서류가 도착해 지게차를 이용해 건물 앞으로 옮기고 있다. 사진=조선DB |
“정부나 지자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요. 예컨대 지자체가 직접 매입해 지역에 필요한 시설로 재활용하거나, 아니면 부지의 용도변경을 통해 민간이 적극 매입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희 재단에서는 교육부 및 여야 국회의원들과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입법을 준비해왔어요. 폐교대학의 부지와 시설 등을 지역사회에서 적극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폐교대학 법인의 청산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지자체가 적극 역할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안이죠. 이 ‘사립대학 구조개선 지원을 위한 법’을 작년 9월에는 국민의힘 국회교육위 간사인 이태규 의원, 올 1월에는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했어요. 현재 입법 공청회와 교육위원회에서의 병합심의를 앞두고 있습니다.”
― 이 법안이 제정되면 지자체가 폐교를 직접 매입하거나, 학교 부지의 용도 변경이 보다 쉽겠네요.
“그렇죠. 폐교를 지역사회 기반시설, 산업단지, 평생교육시설, 복합문화시설 등으로 개발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또한 자진 폐교를 결정하는 사립대학 법인의 경우 폐교대학의 시설을 의료법인이나 사회복지법인 등의 공익법인으로 전환해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담겨 있어요.”
다시 말해 병원이나 실버타운 등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 폐교대학 법인의 청산 유도를 위해 필요한 자금을 빌려주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자금을 빌려줄 때 어떤 조건이나 방식으로 빌려주나요.
“‘폐교대학 청산지원 융자’는 해산한 학교법인(이하 ‘해산법인’)의 청산인이 청산에 필요한 자금을 융자받은 뒤 체불 임금과 체납 세금, 부채 등을 우선 상환하고, 장시간을 요하는 보유자산 처분(매각)까지 마무리한 뒤에 매각 대금으로 융자금을 상환하는 구조입니다.
재단은 청산인으로부터 융자신청을 받게 되면, 저희 재단에 설치된 ‘청산융자 심사위원회’에서 해당 폐교대학의 보유자산 가치 및 융자원리금 회수 가능성 등에 대한 심사를 하고 담보를 조건으로 지원하고 있어요.”
사업 첫해인 2022년, 2개 해산법인에 대해 총 62억4000만원을 융자 지원했다. 올해는 청산융자 사업비 106억원을 확보해놓은 상태라고 한다.
“회생 가능성 있는 대학은 적극 지원해야”
― 최근 언론보도를 보니 2023학년도 대입 정시 모집에서 전국 14개 대학 26개 학과에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모두 지방대학의 학과였다고 해요.
“먼저 지방대학의 위기는, 그렇지 않아도 출생률 저하와 노령화 등으로 소멸위기에 처한 지방도시에 직격탄이 될 것입니다. 지방대학은 지역 경제와 지역문화, 지역 산학협력, 지역 평생교육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지방대학 위기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최소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한계대학 혹은 이미 재정위기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 회생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진단된 대학들에 대해 무작정 국가재정을 쏟을 수는 없는 형편입니다.
해답은,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대학, 재정적으로 최소한의 지속가능성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대학들을 추려내 폐교를 해야 합니다.
동시에, 최소한의 회생 가능성이 있는 대학에 대해서는 적극 지원하여 경쟁력을 갖추고 미래 인재를 길러내도록 해야죠.”
홍 이사장은 “학령인구 급감의 타격을 비수도권 지방대학들이 집중적으로 맞게끔 하는 것도 국가경쟁력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전방위적 노력이 중요하며, 대학 정책에 있어서도 균형발전의 가치와 정책을 강력하게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지방대학과 적극적으로 손잡고 지방대학과 지역 산업계,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윈-윈 할 수 있는 모델을 창출해야 합니다. 지방대학과 지자체가 연계해 지역의 전략산업 맞춤형 산·학·연 체계를 구성하고, 대학은 싱크탱크로서 전문인력 양성과 산업기술 연구개발을 통해 지역산업 발전에 기여해야 합니다.
그렇게 대학이 지역산업 발전을 견인하고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면 지역이 되살아나고 대학의 경쟁력과 위상도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