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종전 50주년 맞은 베트남

20년 베트남 전문가가 보는 베트남 경제

1인당 GDP·인구 구조 등 1988년 한국과 비슷

  • 글 : 임송학 칸미투자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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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 ‘도이머이(개방)’ 정책 실시 후 외국인 직접투자·수출 힘입어 고도성장
⊙ 지정학적 강점… 저임금 매력 퇴색, 자체 제조업 취약 등 문제
⊙ 2024년 GDP 4696억 달러(세계 32위), 수출 4055억 달러(11위), 1인당 GDP 4700달러
⊙ 누적 외국인 직접투자액 5028억 달러… 한국이 1위
⊙ 新국제공항·국제심해항·고속철도·원전 건설 등 인프라 확충 노력

林松鶴
1963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同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 대우경제연구소 이코노미스트, 국회 정무위 보좌관,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 우리투자증권 호찌민대표사무소장, 우리CBV증권 부사장, 시몬느자산운용 호찌민대표사무소장 역임. 現 칸미투자컨설팅 대표
호찌민 시내 도로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행렬. 현재 베트남은 1988년 무렵 한국과 흡사하다. 사진=AP/뉴시스
베트남 통일 50년, 개혁개방 40년, 한국 기업 베트남 진출 시작 30년. 베트남은 최대 투자국으로 자리한 한국에게 경제 파트너로서, 그리고 최근에는 다문화(多文化), 일명 이주 배경 가정의 ‘장모 나라’로 아주 중요한 나라다.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의 탱크가 사이공(현 호찌민)의 남베트남(월남공화국) 대통령궁 정문을 들이받고 진입하는 사진은 사이공 정부의 패망(敗亡)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50년이 지난 지금 공식 명칭이 호찌민시(市)인 사이공은 마천루로 상징되는 경제 발전을 통해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이뤄졌다.
 
  이러한 베트남의 비약적 경제 발전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1986년 말 응우옌반린 공산당 총비서의 주도로 시작된 베트남식 개혁개방정책인 ‘도이머이(Do^i moi´·쇄신)’였다고 평가된다. 그 결과 40년이 지난 현재 베트남은 수출 규모 세계 11위, 국내총생산(GDP) 32위의 중견 국가로 성장했고 ‘동남아시아의 용(龍)’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인도네시아와 인도 등으로 공급 체인 일부가 이탈하는 면이 있고 부동산 버블 후유증으로 지속성장에 대한 일부 회의론도 있지만, 미국 《포브스》 등 유수 언론들은 글로벌 공급 체인의 탈(脫)중국 재편과 관련해 베트남을 ‘넥스트 차이나(Next China)’ 또는 ‘뉴 메이드 인 차이나(New Made in China)’라고 부르며 큰 기대를 하고 있다.
 
  베트남판 개혁개방정책인 도이머이 정책 실시 이후 40년간 이루어진 베트남 경제 도약의 모습을 점검해 보고, 베트남이 과연 ‘넥스트 차이나’라는 별명처럼 세계 생산의 중심으로 부상(浮上)하여 궁극적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 살펴보자.
 
 
  도이머이 정책
 
‘도이머이의 아버지’ 응우옌반린.
  1976년 통일 정부 수립 후 도이머이 정책이 실시된 1986년 말까지 10년간 베트남 경제는 생산의 애로, 메콩 델타 집단농장 시범사업 실패,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베트남은 이런 문제들을 소련과의 교역과 원조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해결하고 있었다. 그러다 1985년 소련에서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후 재건·개혁을 의미하는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실시되고 베트남에 대한 원조가 끊기면서 베트남은 1986년 한 해에 587%에 달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는 등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대외 환경의 급변 속에서 1986년 6월, 남북통일을 이끌었던 강경파 지도자 레주언이 사망했다. 베트남에서는 이미 덩샤오핑(鄧小平) 체제 하의 중국이 1978년 말부터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것을 보면서 시장경제 도입에 대한 논란이 있어 왔으나 실시되지 못하고 있었다. 레주언의 사망으로 변화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1986년 12월 베트남 공산당 제6차 전당대회에서 온건개혁파 응우옌반린이 당총비서로 선출되었다. 이와 함께 도이머이 정책이 제4차 5개년계획에 발맞추어 발표되었다. 경제이론으로 설명하자면 ‘사회주의 지향 시장경제(socialist-oriented market economy)’ 정책이라 할 만한 것으로, 소련형 계획경제에서 탈피해 사회주의 경제 발전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시장 기반 혼합경제를 지향하는 것이다. 정부의 경제 통제 완화와 사업 자율 허용, 환율과 가격의 글로벌 연동(連動), 농민에 토지 장기 사용 허가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한국의 1988년 수준 도달
 
동남아 3국 1인당 GDP 추이. 출처=세계은행
  도이머이 40년의 성과를 보면 과거 한국이나 중국의 경제 기적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그에 준하는 업적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경상GDP 규모를 보면, 2024년 4696억 달러로 세계 32위의 중견 경제국으로 도약했다. 이 기간 베트남의 1인당 GDP는 최저인 1989년 98.11달러에서 35년 후인 2024년 4700달러로 48배로 급증했다. 같은 동남아 내 경쟁국인 필리핀 및 태국과 비교하면, 필리핀은 1989년 1인당 GDP가 베트남의 8배에 달했으나 2019년 역전되었다. 태국과도 격차를 많이 따라잡아 2024년 1인당 GDP가 태국의 7381달러의 약 3분의 2에 이르렀다.
 

  베트남의 고성장 스토리를 동북아 고성장 국가인 한국과 중국과 비교해 보자. 한국의 1인당 GDP는 1962년 93.83달러에서 1988년 4748달러로 26년간 50배 성장했다. 중국의 1인당 GDP는 개혁개방 직후인 1981년 197.07달러에서 26년 후인 2017년엔 9905달러로 50배로 늘었다. 베트남의 1인당 GDP는 한국과 중국에 비해 약 10년 정도 늦은 4분의 3 속도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베트남의 1인당 GDP 수준 4700달러는 한국의 ’88올림픽 시절 4748달러와 비슷한 수준이다. 당시 한국 상황과 비교해 보면 현재 베트남은 중산층(中産層)이 막 형성되기 시작하고 노동력 부족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는 시점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코로나 후 외국인 투자 주춤… 미국 투자 유치에 사활
 
2020년 10월 21일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은 하노이 인근 타이응우옌에 있는 삼성 복합단지를 찾아 스마트폰 공장을 둘러보았다. 사진=삼성전자
  이러한 베트남의 초고속 성장의 양대 동력은 적극적인 FDI(Foreign Direct Investment·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와 이를 통한 수출 증대였다. 베트남 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과의 수교 및 쌍무협정을 비롯해 적극적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했다. 한국과의 수교(1992년), 아세안 가입(1995년), 미국과의 수교(1995년), 미국과의 쌍무무역협정(2000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2007년),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現 CPTPP) 가입(2016년), EU와의 자유무역협정(2020년),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가입(2022년) 등이 그것이다. 베트남은 한국 등에 필적하는 자유무역협정 다(多)체결국이다. 특히 베트남전쟁 당시 적국(敵國)이었던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피나는 노력이 무역 부흥의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를 보면, 1988년 바리아붕따우성(省)에 외국인 투자가 처음 개시되었다. 한동안은 관망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다, 1991년 대만의 신발업체 파우첸(Pouchen)과 펑타이(Feng Tay)가 아웃소싱을 위해 베트남에 진출하고 일본의 혼다도 진출하면서 외국인 직접투자가 본격화되었다. 한국 기업은 1994년 신발업체 태광실업 등이 진출한 것이 시작이었다.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로 주춤하던 외국인 투자는 2006년 인텔과 포스코가 대규모 투자를 시작하면서 본격 궤도에 올랐다. 2008년에는 현재 독보적 외국 투자 기업인 삼성이 박닌성에 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외국인 투자 붐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됐다. 베트남이 WTO와 TPP에 가입하면서, 글로벌 공급 체인 이동에 제동이 걸린 코로나 사태 전까지 베트남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2024년 말 현재 베트남은 누적액 5028억 달러, 4만2002건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승인했다. 이 중 제조업과 가공산업이 3087억 달러로 60%를 차지한다. 부동산이 732억 달러, 전력(電力) 생산과 송전(送電)사업이 419억 달러로 뒤를 잇는다. 국가별로 보면 한국이 920억 달러로 수위를 차지하고 싱가포르, 일본, 대만, 홍콩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삼성전자 하나만 누적으로 224억 달러 투자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베트남 직접투자 붐이 주춤하고 코로나 사태 이후 인도네시아 등으로 공급선 다변화가 이뤄지면서 베트남에 대한 투자도 반감했다. 베트남으로서는 누적 금액으로 10위권 밖에 있으면서 아직 미온적인 미국의 투자를 끌어내는 것이 과제다.
 
베트남의 FDI(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실적. 출처=VNEXPRESS
 
베트남의 수출: FDI 대 베트남 국내 기업. 출처=VNEXPRESS
 
  수출 대국 이면엔 취약한 민간 제조업
 
  이런 외국인 직접투자를 배경으로 베트남의 수출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1986년 17억4000만 달러에 불과하던 베트남의 총수출액은 2024년 4055억 달러로 늘어나 전 세계에서 11번째 수출 대국이 됐다. 이는 한국이 1964년 수출 1억 달러를 돌파하고 36년 후인 2000년 1722억 달러 수출을 달성한 것 못지않은 경이적인 기록이다.
 
  하지만 이런 눈부신 수출 주도 성장에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먼저 수출의존도(수출/GDP)가 90%선까지 치솟아 경제가 과도하게 대외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이다. 일본·한국·태국이 최고 60%선을 넘지 않았고 중국도 한동안 70% 전후를 기록했지만 현재는 60% 아래인 것을 감안하면 베트남의 수출의존도는 지나치게 높다.
 
  제조업이 외국인 직접투자에 과도하게 의존하다 보니 수출에서도 외국 투자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과다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휴대폰 및 부품 수출의 경우는 외국 투자 법인의 수출 비중이 98%에 달한다. 삼성전자 하나가 총수출 중 최대 4분의 1까지 차지하다, 현재는 줄어들었다고 하나 여전히 13.4%(2024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수출의 이런 과도한 외국 투자 기업 의존은 내국 기업의 기술 체화(體化)가 미비하고 중국 및 한국으로부터의 원자재 및 부품 수입에 과도하게 의존해 전후방(前後方) 연관효과가 작다는 문제로 이어진다. 한국의 경우 해방 후 소위 적산(敵産) 기업 불하(拂下) 후 외자(外資) 도입을 통해 국내 기업이 성장하며 동력을 쌓아 글로벌 경쟁에 나선 반면, 베트남은 주요 제조업 부문을 대부분 외국 투자 기업이 담당하고 있고 내국 제조업체가 기술과 자본 축적을 이뤄 내지 못한 점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2024년 매출 기준 베트남 10대 기업을 보면, 외국인 투자 기업인 삼성전자와 부동산 기업인 빈그룹 말고는 모두 석유화학·은행·통신·광업 등 국영 기업 일색이다. 여기서도 베트남 경제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는 중국의 10대 기업에 국영 기업과 온라인 판매업체 외에도 전자·자동차의 BYD, IT 기업 텐센트, 그리고 전자제품 하이얼이 꼽히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경우 매출액 10대 기업이 대부분 제조업 중심인 것과도 천양지차다. 독과점(獨寡占)을 보장받은 지대(地代)산업 성격이 아닌 민간 제조업체의 등장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 베트남 경제의 커다란 숙제로 보인다.
 
 
  베트남은 ‘넥스트 차이나’가 될 수 있을까
 
베트남 정부가 추진 중인 껀저 국제심해항 조감도.
  베트남은 과연 ‘넥스트 차이나’ 또는 ‘뉴 메이드 인 차이나’에 걸맞은 무역 대국으로 더 성장할수 있을까? 긍정적인 요인으로, 일당(一黨) 체제 특유의 빠른 의사 결정, 지정학적(地政學的) 요충(要衝)이란 점, 미중(美中) 갈등에 따른 수혜, 다변화된 자유무역협정, 낮은 인건비 등을 꼽을 수 있다.
 
  베트남은 동남아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세계 교역의 핵심 통로인 남중국해에 길게 접해 있어 한중일과 인도 그리고 아세안을 연결하는 무역 허브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베트남 당국은 이러한 지정학적 이점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호찌민시 인근에 연(年) 2500만 명 여객 처리 능력을 갖춘 롱탄 신(新)국제공항을 건설 중이다. 바리아붕따우와 호찌민시에 싱가포르에 맞먹는 껀저 국제심해항(深海港)을 건설해 글로벌 물류 중심으로 도약하려는 야심찬 계획도 확정했다. 최근에는 남북고속철 건설과 2기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도 확정해 그동안 지적받아 온 인프라 부족 우려를 불식하려 노력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중국에 대한 100% 이상 관세 부과로 상징되는 미중 갈등에 따라 베트남이 중국을 대체한다는 ‘넥스트 차이나’론은 과연 타당한 주장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베트남의 인구는 1억 명 정도로 중국 인구의 14분의 1 수준에 불과해, 베트남이 중국을 완전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대신 인도네시아·인도와 함께 중국에 대한 공급 체인 대안(代案)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베트남 입장에서는 엄청난 경제적 부상이 기대된다. 다만, 베트남의 대(對)미국 무역 흑자가 1000억 달러 이상(2023년 기준)에 달해 중국, 멕시코에 이어 3위를 기록 중인 것이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정부가 중국 견제 차원에서 이를 어느 정도 용인할지가 관건이다.
 
  다음으로 베트남의 저임금 매력은 이미 많이 퇴색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1인당 GDP 수준으로 볼 때 베트남은 이미 무제한 노동 공급이 끝난 분기점인 한국의 1987~88년 수준에 도달했다. 대도시의 경우 벌써 인력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도 저임금노동형 산업에서 반도체·스마트폰·AI 등 첨단 산업 유치로 선회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2045년 고소득 국가 진입하려면
 
  최근 베트남 정부가 밝힌 목표대로 베트남은 2045년 고소득 국가에 진입할 역량이 있을까? 그러려면 현재 4700달러인 1인당 GDP가 20년 후 1만4005달러(세계은행 기준)를 넘어야 한다. ‘중소득 함정(middle income trap)’에 빠지지 않고 고소득국 대열 합류에 성공한 나라는 이제까지 한국 등 몇몇 국가에 불과하다.
 
  베트남 정부는 고소득 국가 진입을 위한 핵심 동력으로 과학·기술·혁신 그리고 디지털 전환을 꼽았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선물이 아니며,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서는 꾸준한 투자와 노력이 요구된다. 한국은 일제시대부터 축적된 제조업 전통에 과학기술 입국의 노력이 있었기에 산업국가로 도약이 가능했다. 그런 기업 기반도 없고 제조업을 싫어하는 문화 속에서 교육과 훈련의 개혁을 통해 베트남이 얼마나 혁신을 이룩하느냐가 숙제가 될 것이다.
 
  또 베트남이 그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 외교를 통해 실리(實利)를 취하는 스탠스를 취해 왔으나 향후에도 이런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미국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강화가 이뤄진다면 의외의 도약이 이뤄질지도 모르겠다. 내년 초 공산당 전당대회 이후 베트남의 선택이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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