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경청하고, 믿고 맡기는 스타일”
⊙ “미중 관세전쟁, 잘 견뎌내면 우리에게 약이 될 것”
⊙ MB 정부, 침체된 국내 경제 활성화 위해 기업에 감세·R&D 투자·규제 완화 나서
⊙ 2008년 리먼 브라더스發 금융위기 당시 공격적 정책으로 위기 방어… 플러스 성장에 수출 급증
⊙ “차기 정부, 기업 대상으로 공정한 절차 거쳐 불합리한 규제 풀어주는 ‘규제형평제’ 도입해야”
姜萬洙
1945년생. 경남고·서울대 법과대 졸업, 美 뉴욕대대학원 경제학 석사 / 행정고시 제8회, 재무부 국제금융국장·세제실장, 관세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역임. 기획재정부 장관, 대통령실 경제특별보좌관,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KDB금융그룹(산은금융그룹) 회장·KDB산업은행장
⊙ “미중 관세전쟁, 잘 견뎌내면 우리에게 약이 될 것”
⊙ MB 정부, 침체된 국내 경제 활성화 위해 기업에 감세·R&D 투자·규제 완화 나서
⊙ 2008년 리먼 브라더스發 금융위기 당시 공격적 정책으로 위기 방어… 플러스 성장에 수출 급증
⊙ “차기 정부, 기업 대상으로 공정한 절차 거쳐 불합리한 규제 풀어주는 ‘규제형평제’ 도입해야”
姜萬洙
1945년생. 경남고·서울대 법과대 졸업, 美 뉴욕대대학원 경제학 석사 / 행정고시 제8회, 재무부 국제금융국장·세제실장, 관세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역임. 기획재정부 장관, 대통령실 경제특별보좌관,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KDB금융그룹(산은금융그룹) 회장·KDB산업은행장

- 사진=조준우
그가 대한민국의 경제 수장을 맡았던 시기는 1년여에 불과했지만 이명박 정부와 대한민국에 미친 영향은 컸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에 따른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국내에서는 제2의 IMF 금융위기가 재현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팽배했다. 집권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MB 정부가 대형 위기에 대응할 수 있을지 불안감도 커져갔다.
그러나 강 전 장관은 적극적인 환율 시장 개입, 원·달러 통화 스와프(swap), 정부의 국내 기업 지급보증 등 공격적인 정책으로 방어했고,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지 않을 수 있었다. 기재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대통령 경제특보, 산업은행장을 역임하며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을 계속해서 책임졌다. 트럼프발(發) 관세전쟁 등 경제위기 상황이 이어지고 있고, 대선 주자들마다 ‘경제 살리기’ ‘성장’ ‘실용’을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바람직한 경제 리더십에 대한 얘기를 듣기 위해 강 전 장관을 만났다.
‘따뜻하고 개방적인 시장경제’
![]() |
|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강만수 기획경제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좌파 정부(김대중·노무현) 10년의 유산을 반면교사로 삼았습니다. 좌파 정부 10년간 우리 경제는 저성장, 저투자와 경상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지요. 우리 경제성장률은 김영삼 정부 7.1%에서 김대중 정부 4.3%, 노무현 정부 4.4%에 머물렀고, 1인당 GDP는 1995년 1만 달러를 넘어섰지만 2000년까지 2만 달러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이명박 대선캠프는 ‘일하는 경제대통령’을 캐치프레이즈로 하고 세계 7대 강국을 목표로 선거 공약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대선에서 500만 표라는 사상 최대의 표 차이로 정권을 창출할 수 있었습니다.”
― 당시 저성장, 부동산 가격 폭등 등으로 경제 상황이 어려웠지요. 이런 상황에서 ‘경제대통령’이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한때 10위권이었던 한국 경제가 러시아·인도·브라질에 밀려 세계 13위까지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7대 강국’이라는 목표가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 7대 강국을 달성하고 우리 경제를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내수산업 활성화가 긴요했고, 미국의 뉴딜사업과 같은 새로운 거대 프로젝트가 필요했습니다. 기업 환경을 개선하고 연구 개발에 투자하며 한반도대운하를 기획한 이유입니다. 이 같은 공약이 국민의 마음에 와닿았다고 생각합니다.”
― MB노믹스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MB노믹스, 즉 이명박경제학의 철학은 따뜻하고 개방적인 시장경제(smart&open market economy)입니다. 잘사는 국민, 따뜻한 사회, 강한 나라라는 3대 비전으로 살아나는 경제, 중산층이 두꺼운 나라, 함께 번영하는 경제, 안전한 사회, 아름답고 살고 싶은 국토 재창조 등을 이루고자 했고 이를 위해 ‘일 잘하는 실용정부’가 이를 주도한다는 게 MB노믹스의 핵심입니다.”
“한미 통화 스와프가 큰 방파제 역할 해”
![]() |
| 2008년 9월 세계 4위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보호신청을 했고, 세계 경제는 위기에 빠져들었다. 사진=조선DB |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해 세계 최고의 은행 씨티뱅크, 뱅크오브아메리카, 도이치뱅크까지 무너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의 경험이 있었어요.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에서 벗어난 경험을 살려 선제적(preemptive), 결정적(decisive), 충분한(sufficient) 50여 개 대응책을 썼습니다. 우리의 위기 대응 금액이 GDP의 7.2%로 OECD 국가 중 최고였지요. 미국 5.8%, 일본 5.7%에 비하면 우리가 압도적이었습니다. 300억 달러 한미 통화 스와프가 위기를 넘는 데 큰 방파제 역할을 했습니다.”
― 위기 대응 금액으로 선진국들보다 훨씬 큰 지출을 했는데요.
“당시는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으면 강자가 되는 시대였습니다. 결국 선진국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할 때 우리는 플러스 성장을 했고, 수출은 세계 12위에서 5단계 뛰어 7위로 올라섰습니다. R&D에 대한 투자세액공제로 세계 1위 R&D 투자국이 됐고, 세계사 최초로 수원국(受援國)에서 원조국이 됐지요. 그리고 우리는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 돼 유사 이래 처음으로 강대국이 만든 룰을 따르는 역할(rule-taker)에서 룰을 만드는(rule-maker)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LG전자는 라이벌들이 흔들릴 때 살아남아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됐습니다.”
― 당시 과감한 정책으로 국내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언론과 학자, 정치인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한 경제학자들은 환율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고, 여당마저 시장논리를 내세워 저의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높게 평가했습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서울 관료들에게 경의를(Hats off to officials in Seoul)’이라고 썼고, IMF(국제통화기금)는 우리의 위기 대응 정책을 ‘교과서적 사례(Textbook example)’라고 했지요.”
― 다른 나라가 하지 못한 정책을 밀어붙이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습니까.
“리더십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해요. 이명박 대통령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위기에 직면했을 때는 공격적인 방법으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생각, 어려울 땐 현금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저와 같았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위기 때는 현찰이 중요해, 손익 따지지 말고 캐시퍼스트(cash-first)야. 과거 현대도 위기 때마다 잘 이겨내 순위가 올라갔어. 그래서 오늘의 현대가 된 거야!’였습니다. 이런 지도자의 생각 덕에 정부의 직접적인 환율 대응, 통화 스와프를 할 수 있었지요.”
“감세 통한 견실한 투자 추구”
― MB 정부에서 추진하려 했지만 완성하지 못한 정책이 있다면.
“기업의 투자 역량을 확대하기 위한 감세(減稅) 정책이 첫 번째입니다. 감세 문제는 기업 경영과 국가 경영의 핵심 변수이기 때문에 지금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감세로 인한 견실한 투자가 경제 역량을 확대하는 첫걸음이고, 투자가 확대되면 장기적으로 증세가 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2008년 9월 17개 세법을 개정하는 구조적인 감세 정책에 나섰지만 야당은 ‘부자 감세’라며 정치 공세를 폈고, 학자들도 ‘일부 소수 부자들의 재산을 불려주는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과거 민주당이 도입했던 종합부동산세를 재산세와 통합해 조세 정의를 바로잡으려 했는데, 이 때문에 저에게 야당의 정치 공세와 퇴진 압력이 집중됐습니다. 지금도 종합부동산세는 좌파 정권의 ‘정치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안은 폐기됐고 상속세율 인하와 종합부동산세·재산세 통합은 논의조차 없었습니다. 정치권의 대중영합이 낳은 결과라 할 수 있죠.”
― MB 정부는 세제 개편 외에도 여러 방법으로 기업 투자 역량 확대에 집중했죠.
“무엇보다 R&D 투자를 크게 늘렸습니다. GDP의 5%를 R&D에 투자하기로 하고 3단계 지원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신기술 개발이 기업 역량과 국가 역량을 키울 관건이기 때문에 과격할 정도의 지원책을 통해 기술강국으로 가는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자원이 빈약한 소규모 개방경제국가가 지구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수단은 기술뿐이라는 것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강력한 R&D 지원 제도를 만든 후 지적재산권 거래 제도와 기술금융 제도를 도입해 기술 개발을 위한 기초를 만들었고, 장관 퇴임 후 2010년에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으로 신기술 특허권과 지적재산권을 관리하고 투자하는 기관을 설립해 기술관리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규제형평 제도 구상”
![]() |
| 이명박 대통령은 강만수 기재부 장관을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으로 임명하고 위원회를 통해 기업 규제 완화에 나섰다. 사진=조선DB |
“기업의 투자 기회를 확대하려면 규제 완화가 필수입니다. 투자 재원이 있고 신기술이 있어도 신규 투자에 대한 규제가 있으면 투자가 불가능하죠. MB 정부는 규제 완화 업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신설해 위원회에서 규제 완화 업무를 주로 다뤘습니다. 위원회는 기획재정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여당 정책위원장, 경제 5단체 회장 등 30명으로 구성돼 매월 대통령이 참석하는 회의를 갖고 규제 완화와 경쟁력에 대한 정책을 대통령에게 자문했습니다.”
― 과거 정부에서도 규제 완화를 시도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죠.
“규제에 관한 법률을 일일이 개별 사례에 적용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MB 정부는 규제형평 제도를 구상했는데요, 규제가 개별 사례에서 형평에 맞지 않거나 명백하고 중대한 피해가 있는 경우 독립위원회의 평결에 따라 예외를 적용시키거나 구제 조치를 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오랜 기간 연구와 관계부서 협의를 거쳐 법제처와 함께 ‘행정규제의 피해구제 및 형평보장을 위한 법률’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지만 결국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공격 등 지금도 대한민국은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는데요, 과거 위기 극복 경험에 비춰 조언을 한다면요.
“2008년 위기는 경제적 요소로 생긴 위기였고 각국이 대응수단을 갖고 있었고요, 우리는 위기 방어와 함께 최대의 공격을 했습니다. 수비만 잘하면 비길 수는 있지만 이길 수는 없다는 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는 경제 외적인 요소가 크고 독자적인 대응이 불가능한 위기입니다. 공격은 생각할 수도 없고 정부는 수비를 잘하고 국민은 인내를 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중국 시장 들어간 나라들, 백전백패”
― 위기의 원인이 다르기에 대응 방법도 다르다는 거죠.
“이 위기는 근본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 의해 발생한 거잖아요. 우리는 대응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상황을 보면서 미국과 타협을 해야 할 겁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흔들리지 않고 견디는 겁니다.”
― 견디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견디기에는 나라도 기업도 캐시퍼스트 경영이 첫 번째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위기에 취약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와 저소득층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금융 지원이 있겠지요. 구체적인 방법은 정책 당국이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일 수도 있는데 정치적 내전(內戰)을 빨리 끝내고 국민이 모두 함께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상황 변동에 대처하는 방어적인 정책 이외에는 뚜렷한 정책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아직 이렇다 할 룰이 정해진 상황이 아니니까요.”
― 미국의 대(對)중국 관세 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우리에겐 긍정적이죠. 장기적으로 이번 관세전쟁을 잘 견뎌내면 우리에게 약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정부 지원과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중국식 시장경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공정하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려워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기준상 가입 자격도 없고 국제무역에 참여할 자격도 없다는 게 사실 아닙니까? 결국 경제질서와 무역질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겁니다.”
― 중국 시장이 흔들리면 우리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이 있는 것 아닙니까.
“중국 시장에 들어간 미국·일본·독일 모두 백전백패(百戰百敗)했고 우리 기업들도 손을 들었어요. 우리 입장에선 여러 이유로 중국은 멀리해야 하고, 중국을 대체할 시장은 동남아 등 얼마든지 있습니다. 기존의 경제 논리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안목의 통상 정책이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경쟁국이 하지 않는 일은 하지 말아야”
― 지나간 일이지만,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불행한 정부라 생각합니다. 정부가 일을 시작하려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져 제대로 할 수 없었지요. 이런데다 의료사태가 터져 더 어려워졌고요.”
― 이명박 정부는 유례없이 기업에 친화적인 정부였는데요, 지금이야말로 이런 정부가 필요한 시점 아닐까요.
“우리 경제가 잘되기 위해서는 기업 환경을 경쟁국보다 더 좋게 해줘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지금은 기업에 대한 규제가 너무 많아요. 경쟁국보다 높은 상속세는 기업의 계속성을 저해합니다. 60% 상속세율은 경쟁국에 비해 너무 높은 것 아닙니까. 또 민주당 측은 상법의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시키자고 주장합니다. 이것 역시 우리 기업을 옭아매는 결과를 가져올 겁니다. 최소한 경쟁국이 하지 않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 차기 정부는 적극적으로 기업 규제 완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보는 거죠.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규제 완화를 들고 나오긴 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규제는 신설되고, 형평에 맞지 않는 규제도 함께 늘어납니다. 기업인들이 관청에 호소해도 ‘현행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듣게 되죠. 제가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시절 만든 규제형평법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규제라는 건 본질적으로 평균치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모든 규제는 과잉규제와 과소규제가 있기 마련이죠. 그래서 전체적으로 규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개별적인 사례에 따라 공정한 절차를 거쳐 불합리한 규제를 풀어주는 규제형평 제도가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
강 전 장관은 현재 우리 경제에는 위험 요인과 기회 요인이 공존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가 바로 서지 않으면 경제는 무력하다는 것을 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경제의 위험 요인은 경제적 양극화와 정치적 갈등, 법치가 붕괴된 무법사회 등이고, 기회 요인은 지정학적 유리, 패기 있는 기업가, 세계 최고의 교육 수준 등이 있습니다. 양극화를 완화하고 갈등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정치·경제학적 새로운 비전과 전략·전술이 필요합니다.”
“정치 문제, 사법에 의존 말고 정치로 풀어야”
![]() |
| 2016년 9월 국회에서 열린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청문회에서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한 신문에서 문재인 정권이 적폐 청산을 한다며 100여 명을 기소하고 100여 년의 징역을 선고했다는 사설을 읽었습니다.(편집자 주-《조선일보》 2018년 3월 22일 양상훈칼럼 〈징역 합계 100년 ‘적폐 士禍’의 숨은 이유〉) 나의 경험으로 볼 때 이런 일이 다시 없으려면 지도자는 세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첫째는 관용과 포용의 정신을 가질 것, 둘째 정치 문제는 사법에 의존하지 말고 정치로 풀 것, 셋째 금융 거래는 범죄의 증거로만 사용하고 수사의 단서로 사용하지 말 것입니다.”
강 전 장관도 정권이 바뀌면서 옥살이를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6년, 산업은행장 재직 당시 대우조선해양 비리와 관련해 알선수재·배임, 제3자 뇌물수수 등 혐의가 있다며 구속됐고 최종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한때 그와 전직 대통령, 전직 고위 공직자들, 대기업 회장들이 한 교도소에서 복역을 한 적도 있다. 당시 수감자들은 “여기 모인 사람들로만 나라 만들어도 유럽의 한 공화국 수준은 될 것”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했다고 한다.
― 정치 문제는 사법에 의존하지 말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선진국에서는 정치인들의 정치 문제를 사법 문제로 끌고 가지 않아요. 우리 법조계처럼 창의적으로 수사하고 재판하면 미국이나 영국, 일본 등에서는 지도자급 인사들이 법망(法網)을 피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보통 사람은 일상에서 법이 아닌 상식을 기준으로 해서 살기 때문입니다.”
― 창의적이라니요.
“범죄라는 것이 동기와 이유, 결과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회적인 상식에 따라서 업무를 한 것을 창의적으로 해석해서 배임, 알선수재, 뇌물죄를 씌운 사례가 한두 번인가요. 한 푼 받은 적도 없는데 뇌물죄를 적용하고, 상식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사람에게 결과만 놓고 배임죄를 씌우면 그 누구도 일을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아무 상관없는 피의자 주변 사람들까지 탈탈 털어서 죄를 만들어내는 지금의 검찰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사법 개혁에 나섰다가 민심과 멀어지는 결과에 직면했었는데요.
“그땐 그 방법에 문제가 있었지요. 어쨌든 이번 탄핵은 검찰이 권력을 잡은 검찰공화국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전 국민이 목도하지 않았습니까. 사법 개혁의 필요성은 이제 국민이 인정하리라 생각합니다.”
― 개혁을 하려면 또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포용(tolerance), 공정(fairness), 헌신(dedication)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많이 듣고, 크게 포용하고, 항상 정직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법 개혁의 작은 불씨 되고 싶었다”

강만수 전 장관은 현재 소설가다. 2022년 단편소설 〈동백꽃처럼〉으로 한국소설가협회가 주관하는 제73회 한국소설신인상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돼 등단했다. 5년여의 옥고를 치른 그는 옥중(獄中)에서 10편 이상의 소설을 완성했고, 당선된 소설도 옥중에서 쓴 것이다. 또한 자신이 겪은 일을 토대로 한 실화 기반의 중편소설 〈최후진술〉을 써, 《월간조선》 2025년 3~5월호에 3차례에 걸쳐 공개하기도 했다. 전직 고위 관료가 어느 날 범죄자로 몰려 구속되고, 자신이 기억도 하지 못하는 사건에 휘말려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수사와 재판을 받는 과정을 담아낸 소설이다.
― 〈최후진술〉은 사실에 기반한 자전적 소설입니다. 회고록으로 쓸 수도 있었는데 소설로 쓴 이유가 있습니까.
“절절히 하고 싶은 말을 소설적으로 말하고 싶었습니다. 내 삶이 너무 소설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회고록도 생각해 봤지만 다큐 형태로 쓰면 절절함과 처절함을 표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다큐로 쓰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의 처절함을 알려 사법 개혁의 작은 불씨라도 되고 싶었습니다. 열의 도둑을 놓쳐도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고, 어느 선진국에도 없는 한국 검찰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 소설에 검찰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검사들이 어떻게 없는 죄를 신박하게 만들어내는지 그 ‘창의성’을 비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리한 수사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검찰의 기소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판사들의 무책임한 행태, 진실과는 관계없이 선정적인 보도에만 집중하는 언론의 그릇된 행태도 고발하려 했습니다.”
“우리 세대 성취·고난을 장편으로 쓰고 싶어”
― 소설이 공개되면서 주변의 반응은 어땠는지요.
“내 작품을 지도한 작가는 첫 줄을 읽고 끝줄까지 손을 놓을 수 없이 처절함에 빨려 들었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내가 당한 아픔에 몸이 떨렸다고 했습니다. 생각의 실마리를 주기 위해 대법원장, 검찰총장, 법무장관, 그리고 법조 기자들께도 보냈는데 아직 아무 반응이 없네요. 마지막 세 번째 연재를 읽으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소설집 출간 계획 또는 앞으로의 집필 계획이 있습니까.
“발표한 단편과 중편을 모아 조만간 소설집을 발간하려 합니다. 또 한 세대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 인류사의 기적이라 불리는 우리 세대의 성취 뒤에 숨은 고난과 슬픔을 장편으로 쓰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의 역정은 기록으로 남길 가치가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