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공기업

전력기관 공기업경영 A등급 받은 한국남동발전의 章道秀 사장

“공기업이 적자 내는 것은 국민에 대한 죄악이다”

  •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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章道秀
⊙ 62세. 영남대 전기공학과 졸업. 경북대 경영대학원 석사, 금오공과대 산업공학 박사.
    삼성코닝 DIM 사업본부 부사장 역임. 現 한국전력 한국남동발전 사장.
⊙ 국가품질경영대회 동탑산업훈장, 생산성CEO대상 금탑산업훈장 수훈.
“사기업에서 적자가 나면 회사 문닫고 종업원들이 집에 가야 합니다. 공기업이 공익성을 최우선으로 친다지만 마찬가지입니다. 계속된 적자로 지속 경영이 불가능한 지경이라면 그건 국가와 국민에 대한 죄악 아닙니까?”
 
  장도수(章道秀) 한국남동발전 사장의 말은 거침없었다. 당연한 얘기다. 기업의 존재이유가 이윤창출이라는 것은 경영학 책 첫 장에 나온다.
 
  하지만 장 사장의 말이 상큼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그가 공기업 사장이기 때문이다. 흔히 공기업은 공익성 차원에서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국민들에게 높은 가격을 청구하기 어렵고, 따라서 흑자를 내기도 어렵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장도수 사장은 이들과 딴판이었다.
 
  “사기업은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치고, 공기업은 공익성을 우선합니다. 효율성과 공익성이라는 것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상충하죠. 공기업 사장에 취임했을 때부터 효율성과 공익성을 어떻게 황금분할하여 운영할까 고민했습니다. 공기업이라고 언제까지 적자 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공기업의 롤모델을 만들겠다는 것이 제 소신입니다.”
 
 
  적자 회사를 흑자로 돌려놔
 
화력발전소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장도수 사장.
  장도수 사장은 지난 2008년에 이 곳 사령탑을 맡기 전까지 삼성코닝에서 만 32년 근무했다. 뼛속까지 사기업 마인드로 무장돼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한국남동발전이라는 공기업 사장으로 취임한 이래 회사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회사운영방법, 회의방식, 보상체계를 뜯어 고쳤고 노동조합과 숱하게 싸웠다. 현재까지 결과는 대성공이다. 적자였던 회사는 흑자로 돌아섰고, 조직원들은 ‘사기업적 공기업’ 시스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지난 2011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는 전력·에너지 기관 중에 유일하게 A등급을 받았다. 그리고 장도수 사장은 지난 2011년 10월 연임됐다.
 
  한국남동발전은 지난 2001년에 한국전력공사로부터 분리된 발전전문 회사다. 삼천포·여수·영흥화력발전소 등 여섯 개 발전소에서 약 8200MW(발전설비용량)의 전력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총 발전설비용량(7만 6130MW)의 10% 정도다.
 
  장도수 사장이 처음 취임했을 때 회사는 매출 3조8000억원, 당기 순적자 1400억원이었다. 더구나 연료가격과 환율 상승으로 인해 별 이변이 없는 이듬해에도 적자가 예상되던 상황이었다. ‘삼성출신’ 경영인이 취임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노조는 피켓시위를 하며 그를 밀어냈다.
 
  “취임 후에 노조위원장을 불러서 ‘당신 통장에 봉급이 잘 들어가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더군요. ‘회사가 적자인데 어떻게 당신 통장에 돈이 들어가느냐’고 물었더니 우물쭈물했습니다. 제가 노조위원장한테 ‘당신은 와이프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가정주부들은 어떻게든 남편 월급에 맞춰서 가계를 꾸리고 매달 적자를 내지 않으려 하잖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임직원들이 회사 사정과 상관없이 내 월급봉투만 챙깁니까. ‘회사가 빚 내서 당신에게 돈 주고 있는 거니까 맨날 떠들던 노사공동체 차원에서 함께 책임지자’고 했습니다. 회사가 이 지경이 됐으면 노조도 절반의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 노조 없는 삼성에서 30년 이상 몸담아 노조를 너무 모른 것 아닌가요? 지나치게 세게 나간 것 아닙니까.
 
  “사실이니까요. ‘회사가 적자 나도 공기업인데 설마 내 월급 정도야 못 주겠느냐’는 안일한 생각이 머릿속에 있었던 겁니다. 남동발전은 참 정이 많은 조직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함께 가는 조직이었습니다. 함께 가는 것이 좋게 보면 좋지만,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빨간 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면 죽는 것을 알면서도 인원이 많다는, 단체라는 이유로 희죽희죽 웃으며 함께 건널 수는 없잖습니까. 그건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노조를 다스릴 때도 법과 원칙에 맞게 정확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노조위원장이 ‘적자 운운하면서 우리 애들 목을 다 칠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단 한 명의 노조원도 해고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 약속을 지켰습니까.
 
  “네. 이날 입때까지 법 테두리 안에서 단 한 명도요. 대신 조건을 걸었습니다. 여태까지 일한 것을 전부 다 바꾼다는 전제하에 종업원 고용을 책임지겠다고 말입니다.”
 
  - 사기업 출신 입장에서 보면 공기업이 그만큼 허점투성이였나 봅니다.
 
  “허점투성이라기보다 보다 훨씬 좋아질 여지가 많았다고 표현하죠. 단순히 회의방식을 바꾸고 부서를 재배치하는 일은 사장 독단으로 할 수 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노조와 조직원의 마음을 움직여 자발적으로 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 무슨 얘깁니까.
 
  “공기업 사장의 임기는 제한적입니다. 제가 앞장서서 깃발을 든다 쳐도 돈키호테가 되기 십상입니다. 사기업에 있을 때부터 사람 심리에 관심을 많이 가져서인지, 임직원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회사 전체를 바꾸는 방안을 고려했습니다. 회사 혁신을 내세워 제 방식을 밀어붙이지 않았고요. 노조든 말단 직원이든 회사 경영을 개선시킬 아이디어가 있다면 무조건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낡은 것을 버리고 빨리 변신을 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한 단계씩 차분히 밟아 가기로 했습니다.”
 
 
  사업본부장들에게 권한 이양
 
  ‘사기업 출신’ 신임 사장의 눈에 첫 번째로 걸렸던 것은 ‘원가’에 대한 개념 차이였다. 아무리 전력회사라고 쳐도 모든 활동을 돈으로 산출하고, 그것으로 행동과 판단의 기준을 삼아야 하는데 이 회사는 두리뭉실했다. 장 사장의 눈에는 조직원들의 ‘목표의식 결여’도 거슬렸다. 회사의 매출실적 등은 손을 길게 뻗어 닿을 듯 말 듯할 지점에 잡아야 하는데, 조직원들은 쉽게 손이 닿을 정도만을 목표라고 설정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관습처럼 이런 시스템에 익숙해진 조직원들을 다잡는 것이 시급했다.
 
  “직원들에게 위기의식을 심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공기업 직원이지만, 내일은 서울역 앞 노숙자가 될 수 있다고요. 언젠가 회사가 민영화되면 이 회사는 파산할 수 있잖습니까. 기업의 기본목표인 주주(株主)의 부의 극대화와 고객 만족에 위배되는 회사는 존재이유가 없다고 말입니다.”
 
  장도수 사장은 사내에 ‘소사장제’를 시행했다. 발전소장 등 사업본부장을 소사장으로 임명하고, 그에게 인사권, 예산결제 권한 등을 위임했다. 이들 소사장은 매년 장도수 사장과 ‘목표달성 협약서’를 체결한다. 가령 건설투자비로 얼마를 절감할 것인지, 공사 준공일, 발전소 건설 공정률 등 큰 가이드라인을 세워 소사장과 사장이 계약을 맺는다. 또 사업소장(소사장)은 사업부장과, 사업부장은 팀장과 각각 연계해 개인목표를 할당한다. 이처럼 하면 삼천포 1호기, 2호기, 영흥 1호기, 여수 1호기 등 작은 단위별 실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업소별로 일일손익 현황을 점검하고, 정기적으로 전사(全社) 점검회의를 한다.
 
  “평생 발전소업(業)에 몸담은 소장들끼리 회의를 시키고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도록 했습니다. 목표를 달성한 발전소는 칭찬해 주고, 달성하지 못한 곳은 서로가 원인을 찾고 실수가 없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우리 발전소 라인 16개에 대해 1~16등까지 철저하게 점수를 매기고, 이 모든 과정은 화상 회의를 통해 간부들 전원이 보도록 합니다. 다른 전력회사와도 비교하고요.”
 
  - 발전 회사 중에 소사장제를 처음 도입했다고 들었습니다.
 
  “네. 사업부에, 또 사업팀별로, 최종적으로는 개개인에 철저하게 업무를 부여하고 평가하자 적자폭이 급속도로 줄었습니다. 1400억원의 적자가 1년 만에 2100억원대의 흑자가 됐죠.”
 
  - 갑작스런 변화라 내부 반대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노조위원장이 끝까지 반대하기에 법을 적용해 옷을 벗겼습니다. 노조위원장의 대표권은 노조원들이 부여해서 생깁니다. 노조는 노조원의 복리후생에 힘써야 하는데, 하라는 일은 안하고 민노총의 스피커 노릇이나 하면 그만둬야죠. 법대로 처리하고 매사에 원칙을 지키니까, 1년 뒤에 숫자(경영실적)가 결과를 보여줬잖습니까. 목표를 2000억원으로 잡았는데 3000억원을 하는 사업장도 생겼습니다. 애써 손이 닿는 곳에 목표를 설정했을 때 이런 일이 나오죠. 약속대로 혜택은 고스란히 종업원들에게 돌려줬습니다. 2011년도에는 종업원 2000명 전원이 대형병원에서 암진단 검사를 받도록 했습니다. 그 병원에서는 우리 회사 말단 직원이 임원인 줄 압니다(웃음).”
 
 
  해외시장 개척
 
지난 2012년 3월의 네팔과 수력발전 공동개발 협약식 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장도수 사장.
  그리고 장도수 사장은 현장으로 달려갔다. 발전소를 운영하다 보면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낭비 요소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예방을 해서 발전소의 재해, 고장, 낭비를 최소화하자는 것이 장 사장의 생각이었다. 그는 수많은 설비와 장치들로 이뤄져 있는 발전소를 수시로 방문하고, ‘TPM(설비안전 강화운동)’이라는 기법을 바탕으로 설비안전 강화 운동을 실시했다. 결과적으로 한국남동발전 발전기의 가동률은 86.7%(2008년)에서 93.7%(2010년)로, 같은 기간 이용률은 68.2%에서 77.9%로 늘었다.
 
  해외사업에도 눈길을 돌렸다.
 
  “공기업은 인력이 훌륭합니다. 삼성, LG에 결코 뒤지지 않아요. 게다가 이분들은 직군마다 관리가 되기 때문에 입사에서 퇴사까지 한 직군을 유지합니다. 엄청난 핵심 역량이죠. 도처에 에너지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했는데 이런 인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건 말이 안됩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이 인재들이 국가의 성장동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가리아를 시작으로 해외전담팀이 우리 기술을 팔고 있습니다.”
 
  - 우리가 해외에서 충분히 팔릴 기술력을 갖고 있었군요.
 
  “한국전력은 100년이 넘은 회사예요. 가령 송배전 손실률은 전력회사 기술을 평가하는 하나의 척도인데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전력을 보내면 영국, 미국은 100 중에 8이 파이프라인에서 새는데, 우리는 고작 3.7% 밖에 손실되지 않아요. 공기업이 꼭 국내에서 장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만 바꾸면 또 다른 매출이 나옵니다.”
 
  실제로 한국남동발전은 발전회사 중에 처음으로 불가리아 태양광 사업에 투자했고, 터키의 석탄화력 기술지원 용역, 또다른 화력 성능복구 사업을 맡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네팔과 파키스탄 등에 해외 수력발전 사업에 파트너로 참여했고, 안정적인 유연탄을 조달하기 위해 호주 물라벤 광산, 인도네시아 아다로 광산, 북미지역 데커 광산 등의 지분을 인수했다.
 
 
  전력예비율, 미국의 절반
 
  ‘낙하산 인사’ ‘철밥통’ ‘무사안일주의’ ‘연말 보너스 잔치’ …. 솔직히 공기업을 떠올리면 이런 부정적 이미지가 먼저 생각난다. 그리고 여전히 경영적자인 공기업이 꽤 된다.
 
  - 회사 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해서 가격인상 외에 답이 없다는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가 국민들에게 전기요금을 올려 받으면 경영실적이 단숨이 좋아지겠죠. 그럼 왜 우리의 고객은 전기요금을 올려주지 않을까요. 만약 우리가 뼈를 깎는 심정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노력을 거듭한 뒤에 올려 달라고 해도 거절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아직 국민들이 우리의 노력을 용인하지 않아서 요금을 올려 주지 않는 겁니다. 우리가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모든 문제의 출발은 나에게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야지, 외부 탓이라고 하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 현재 적자인 공기업 중에 구조조정 없이 흑자로 돌아설 곳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솔직히 있습니다. 가격을 올려 경영상황을 좋게 만드는 건 유치원생도 합니다. 그게 안되기 때문에 경영적자가 있는 겁니다. 생각의 한계 문제죠.”
 
  - 지난 2011년에 9·15 정전사건이 있었지요.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는 수요공급의 밸런스가 가장 중요한데 그게 틀렸죠. 우리의 산업성장 속도, 국민소득 등을 바탕으로 5년 후에 얼마의 전기가 필요할 것인가를 예측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바탕으로 국가 전력수급 계획을 짜서 발전소를 미리 건설해야 합니다. 전력이라는 것이 무제한 공급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여기에다 특별한 경우에 수요를 조절할 수 있는 비상발전 시스템이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
 
  -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예측하기 어려운 일입니까.
 
  “발전소는 2년에 한 번씩 두세 달 동안 정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 발전기 라인이 330기인데, 330기가 1년 내내 가동되는 것이 아니죠. 전력소비가 큰 여름과 겨울은 보수를 할 수 없고, 결국 특정 달에 30~50대가 한꺼번에 셧다운(shutdown)되는 겁니다. 우리의 설비가 충분치 않은 데다 노후된 설비들이 많으니 안정적 전력공급이라는 것이 말처럼 쉬울 수만은 없죠.”
 
  - 발전소가 아직도 부족한 겁니까.
 
  “미국은 전력예비율이 통상 26%인데 우리는 10%, 겨울철에는 3%까지 떨어지곤 합니다. 굉장히 위험한 수준이죠.”
 
  장도수 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영흥화력발전소 3, 4호기(한 기당 870MW) 두 개를 짓는데 2조5000억원 정도가 들었다고 한다. 공장건설 하는 데만 10여 년이 걸린다. 단순히 수치도 수치지만, 발전소 하나를 짓는 것은 지역 주민들, 환경단체들과 번번이 목청 높여 다퉈야 할 일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든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전기와 물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얘기는 ‘신재생에너지’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한국남동발전도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열심이다. 우리나라 국토를 기준으로 볼 때 태양광은 경상남도, 전라남도 등 남쪽 지역이 좋고, 풍력은 제주도와 서해안이 좋다. 바이오펠릿(나무를 이용한 신재생에너지)은 강원도 동해안 쪽이 제격이다. 하수 슬러지(하수처리장, 정수장 등에서 나오는 액체물질)를 이용한 신재생에너지는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도시가 중심이 돼야 한다.
 
 
  직원 4000명 구조조정하고 퇴사
 
  장도수 사장이 전기에 대해 특별히 기억하는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어느 날이다. 함양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는 그를 어느날 어머니가 불렀다. 어머니는 “오늘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급전(急電)을 넣었으니 특히 신경 써라”고 했다. 1960년대에는 밤 12시가 되면 전기가 끊어졌다. 정전 없이 하루종일 전기가 들어오려면 돈을 더 주고, 특별한 선로에서 끌어써야 했다.
 
  “제가 중학교에 진학해야 하니까 부모님이 특별히 신경 써서 특선을 넣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자식 교육에 열성적이셨던 거죠(웃음). 전기가 없던 때 호롱불 켜면 코도 시커메지고, 천장에 그을음이 졌습니다. 어려서부터 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체험하고 살았던 세대죠.”
 
  장도수 사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ROTC로 군복무를 마친 뒤 곧장 삼성에 입사했다. 회사 일을 막 배웠던 초창기 10여 년을 제외하고, 그는 늘 해결사 역할을 해 왔다. 삼성코닝에서 적자가 나는 팀이 그의 담당이 됐다.
 
  그가 삼성코닝을 떠나기 전에 수행했던 업무를 그는 여전히 잊지 못한다. 뼈아픈 기억이 있어서다. 바야흐로 때는 텔레비전 시장이 배불뚝이 브라운관 시대에서 PDP로 넘어가던 때였다. 그는 독일, 말레이시아, 중국 등 해외 브라운관 생산공장을 담당하고 있었다. 제품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그만큼 브라운관 생산공장의 존폐가 기로에 섰다.
 
  “브라운관 TV, 그거 만들었거든요. 한때 세계시장 점유율 35%를 제가 갖고 있었습니다. 소비자들이 점점 PDP를 선호하면서 제품 사이클에 따라 공장문을 차례로 닫아야 했습니다. 직원들이 피눈물 나게 혼신의 힘을 바쳐 만들었던 그 제품과 그 공장을 말입니다. 공장이 그렇게 차례대로 하나 하나씩 폐쇄가 됩니다. 경쟁, 생존, 구조조정은 당시 일상적인 말이었습니다. 그 일을 진두지휘했던 사람이 저예요. 그렇게 집으로 돌려보낸 직원이 4000명입니다.”
 
  장도수 사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금세 눈가가 불거졌다. 그에게 이 시절은 여전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인 듯싶었다.
 
  “그렇게 4000명을 돌려보내고 내 전부를 바친 공장을 폐쇄하고 돌아서면서 정문에 키스를 했습니다. 그것이 삼성과의 마지막 인연이었죠. 패장이 생명을 구걸할 수는 없잖습니까. 차라리 칼에 목이 잘리는 것이 대장으로서 떳떳하죠.”
 
  - 손에 피 묻히는 일을 도맡고 결국 희생당한 것 아닙니까.
 
  “제가 피를 묻혔고, 당연히 그 피 묻힌 사람 중 한 명이 최고 책임을 져야죠. 서운할 것도 없고 수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업이라는 건 어차피 주인 말고는 다 떠나야 합니다. 단지 언제 떠나는지뿐이죠. 비참함, 낙오, 패장, 구조조정이라는 단어가 사무칩니다. 시베리아 허허벌판에 벌거벗은 상태로 내쫓긴 저 친구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매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제가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하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닙니다. 경험해 봤기 때문에, 얼마나 아픈지를, 얼마나 비참한지를 알기에 하는 말입니다. 무조건 생존해라, 살아야 한다고요.”
 
  장도수 사장은 요즘도 한국남동발전 직원들을 사석에서 만날 때마다 이때의 얘기를 한다. 공기업 직원이라고 안일하게 지내다가, 혹여 저런 일을 당하지 않을까 애가 끓어서다.
 
 
  현장은 순수하다
 
  삼성을 그만둔 그는 두 가지 아쉬움에 시달렸다. 하나는 삼성에서 끝내 사장을 달지 못한 것(그는 부사장을 끝으로 그만뒀다)이었고, 또 하나는 국가를 위해 일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한국남동발전 사장에 공모했다. 그리고 쉼 없이 달려온 지난 4년이었다.
 
  “처음 3년은 사기업적 공기업을 운영하는 초석을 다진 시간이었고, 이제는 완성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회사는 제가 나서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소사장들이 경영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준이 됐습니다. 제가 떠난 이후에 회사의 존속을 위해 소유지배 구조에 대한 검토를 하는 중입니다.”
 
  - 한전이 대주주 아닙니까.
 
  “당장의 문제가 아니지만 나중을 대비해서 우리는 검토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만일 기업을 시장에 공개할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 과거 KT는 어떤 절차를 거쳤는가 등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매사에 대비해서 나쁠 일은 없으니까요.”
 
  - 한전이 큰집인데, 작은집 입장에서는 무조건 ‘예스’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 부분을 잘 생각해 봐야죠. 지금 우리가 발전소를 계속 지으면 부채비율이 올라갑니다. 한전이 우리 이익의 70%를 가져갔어요. 500억 이익난 회사나 1500억 이익난 회사가 똑같은 비율을 가져가면 안되잖습니까. 언젠가는 모든 회사가 민영화됩니다. 그러면 강자가 자기 힘만큼 다 먹는 겁니다. 그날을 위해서 우리는 강병을 육성해야 하고, 우리 직원들이 힘을 길러 주기를 바랍니다. 대주주에게 ‘노’라고 말할 상황이라도 그것이 우리 직원들을 위한 것이라면 해야죠.”
 
  - 한전이 좋아할 얘기는 아닌데요.
 
  “상관없습니다. 저는 정부나 한전 눈치 볼 사람은 아니니까요. 사실 뭔가를 갚아야 할 만큼 신세 진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웃음).”
 
  장도수 사장은 여전히 젊은이다. 또 다른 인생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매일 아침 9시부터 20분 동안은 일본어 회화를, 오후 5~6시에는 영어 회화를 한다. 혹 재무강의를 들을 기회가 되면 꼬박꼬박 참석한다. 매일 일에 치여 바쁜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는 차를 끌고 현장으로 간다.
 
  “경영은 철석거리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논쟁하고 부딪치는 직업입니다. ‘내가 말해도 소용없더라’고 뒤로 빠지는 건 경영이 아니에요. 결국 서로의 합의점을 찾아 결론을 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힘들 때가 많지요. 그때 영흥이나 삼천포 발전소 현장을 한번 돌아봅니다. 뜬금없이 후배들 사무실에 가기도 하고, 그냥 생각 없이 한 바퀴 돌죠. 거기서 땀 흘리는 직원들을 보면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사장실에서 혼자 왜 그렇게 속상해하고 복작거렸나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현장은 순수하고 아름답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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