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경제는 ‘2013년 퍼펙트 스톰’으로 진입하고 있는 분위기
⊙ 경제위기 속 ‘경제민주화’와 ‘복지지출 확대’는 1년도 안돼 공염불 될 가능성
⊙ 기초과학기술 부재(不在)가 지속되면 재벌이고 중소기업이고 공멸 불 보듯
林陽澤
⊙64세.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美 조지아주립대 경제학 박사.
⊙한양대 경제금융대 학장,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위원 역임.
現 한양대 경제금융대 교수, 민주평통 상임위원.
⊙저서: 《쿼바디스 도미네 : 성장· 복지· 통일을 위한 청사진》 《한국형 복지사회를 위한 청사진》 등.
⊙ 경제위기 속 ‘경제민주화’와 ‘복지지출 확대’는 1년도 안돼 공염불 될 가능성
⊙ 기초과학기술 부재(不在)가 지속되면 재벌이고 중소기업이고 공멸 불 보듯
林陽澤
⊙64세.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美 조지아주립대 경제학 박사.
⊙한양대 경제금융대 학장,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위원 역임.
現 한양대 경제금융대 교수, 민주평통 상임위원.
⊙저서: 《쿼바디스 도미네 : 성장· 복지· 통일을 위한 청사진》 《한국형 복지사회를 위한 청사진》 등.

- 다시 닥쳐 온 글로벌 경제위기로 중소상공업자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내년 한국경제는 제로성장이 우려된다.
유럽과 미국은 재정위기와 경기침체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에 이어 이탈리아, 스페인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유럽의 재정위기는 재정통합 없는 통화(유로)통합이라는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연합(EU) 모두가 독일만을 쳐다보고 있다. 그러나 수출액의 60%를 EU에 의존하고 있는 독일 산업도 유럽 재정위기의 충격에 점점 움츠러들고 있다.
선진국을 대신해 세계경제를 떠받칠 것으로 기대되었던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브릭스(BRICs) 국가들도 휘청거리고 있다. 브라질의 1분기 성장률은 0.8%로 추락했고, 인도 역시 5.3%에 머물면서 9년 만에 처음으로 6% 아래로 떨어졌다. 중국의 2분기 경제성장률은 7.6%로 3년 만에 최저치였다. 2005년 이후 8% 수준 이하로 떨어진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4분기와 2009년 1분기를 제외하면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런 실적을 낳은 것은 세계적 경기침체가 그만큼 심각해졌다는 증거이다.
80만명이 1년 내 폐업
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의 경기침체는 한국경제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줄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한국의 수출증가율이 1.7%포인트 감소하고, 경제성장률도 0.4%포인트 낮아진다고 한다. 특히 중국에의 수출비중이 높은 석유화학·철강산업의 수출기업들이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한국경제의 무역의존도는 90%를 넘는다. 수출이 저조하면 성장동력은 꺼지고 대량실업 사태가 빚어질 것이다. ‘유럽 재정위기→세계 경기후퇴 장기화→한국경제의 성장과 수출 동력(動力)의 약화’라는 악순환이 가시화한다는 것이다. 금년 상반기 한국의 전체 수출은 겨우 0.6% 증가했다. 지역별로 보면, 유럽에 대한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6%, 중국에 대한 수출은 1.5% 각각 감소했으며, 미국에 대한 수출만 한미 FTA 덕분으로 10% 늘었다.
한국의 건설·조선·해운 업계에는 이미 경영위기가 닥치고 있다. 매년 100만명이 자영업을 창업하지만 80만명이 1년내 폐업하면서 은행권 대출금 165조원, 제1, 2금융권 대출금 약 320조원의 부채를 안고 도산하고 있다. 한국경제도 금년 하반기부터 경기침체의 늪으로 빠져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여기다 악성 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2011년 6월 말 현재, 가계부채(가계대출액과 판매신용, 즉 카드사 및 할부금융사 외상판매액의 합계) 규모는 876조3000억원이며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53%이다(한국은행, 2011.8.22 발표). 이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134%를 능가하고 있으며 미국(132%)이나 일본(130%)보다 더 높다. 게다가 비은행권대출 및 단기변동금리대출이 많아서 외부충격에 매우 취약한 가계부채 구조를 갖고 있다.
이것은 한국발(發) 금융위기의 진원일 것이다. 따라서 담보대출비율(LTV·Loan to Value) 규제의 제한적 완화, 아파트 임대업 활성화, 주택대출의 리스크 전환 등을 통해 가계부채의 악성 구조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내년 제로성장 우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5%에서 3%로 크게 낮췄다. 메릴린치(Merrill Lynch)는 최악의 경우 2012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를 밑돌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필자는 내년의 경제성장률이 세계적 ‘퍼펙트 스톰’과 한국 내 요인으로 인하여 심지어 ‘제로성장’에 근접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은행의 수정 전망치는 금년 하반기의 재정지출 확대(8조5000억원)와 추가 금리인하 등 경기부양책이 효과를 발휘할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금리인하와 재정팽창에 의한 경기부양 대책은 무용(無用)해지고 있다. 가계와 기업은 미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하면서 소비와 투자를 감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은행이 기습적으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건만 금리인하의 효과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주가가 끊임없이 하락하고 있어서다. 그 이유는 한국 주식시장에서의 외국인 비중이 높기 때문에 주가가 국내 금리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성장을 견인해야 할 두 바퀴인 내수와 수출이 모두 저조한 상황에서 경기가 회복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다음으로,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팽창이 소기의 정책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불확실성하에서 내수(투자와 소비)가 얼어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재정관리 방식은 저(低)성장 기조를 전제로 하여 경기부양을 위한 추가예산 편성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재정 안정화를 위한 균형재정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2010년 한국의 공식 국가부채는 394조4000억원으로서 2009년보다 35조원이 증가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의 비율은 34.2%이다. OECD의 평균 국가부채 비율 약 70%, EU의 60% 수준, 일본의 198%에 비해 한국의 국가부채는 상당히 건전한 편이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부채 규모에는 4대강, 보금자리주택 같은 주택사업을 떠맡는 바람에 빚더미에 올라앉은 공기업들(전형적인 예로서 토지주택공사)의 부채가 당연히 포함되어야 하지만 누락되어 국가부채 규모가 매우 저(低)평가되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는 2060년 국가채무가 GDP의 218%인 무려 2경원에 달해 일본(현재 GDP의 230%)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은 1998년 자본자유화를 단행한 후 금융자유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자유화가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재정건전화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금융자유화는 금융공황을 야기시킨다.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역사적 사례로서 1982년 멕시코 금융위기와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등을 들 수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는 경우, 유가가 2배 이상 뛰어오를 것이며, 이것은 다시 유로존 경제의 붕괴, 미국 더블딥, 중국의 경착륙, 다른 신흥국들의 경기침체 등을 야기할 것이다. 이 경우, 세계경제는 일본식의 경기불황 혹은 세계대공황(1929~1939년) 국면으로 진입할 것이다.
한국의 경우, 중동 석유 의존도(97%)가 매우 높기 때문에, 중동전쟁의 발발은 수출 및 에너지의 해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는 직격탄이 될 것이다. 마치 발해(渤海)가 백두산의 화산 폭발로 자취를 감추었듯이, 한국경제의 ‘신화’는 사라질 것이다.
세계경제가 장기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주도형 한국경제의 미래는 매우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제1, 2차 석유파동이 있은 후에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한 해외건설 특수가 있었고,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선진국은 호경기를 누리고 있었으며,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는 선진국(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정책공조와 상대적으로 건실했던 재정수지를 지렛대 삼아 한국은 경기부양을 도모할 수 있었다. 이젠 수출과 내수 모두가 주저앉았다.
대통령 당선자, 당선과 함께 망연자실해질 수도
이렇게 되면 금년 12월 대선주자들이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복지확대’의 공약은 공염불(空念佛)이 된다.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간에, 그분은 용(龍) 꿈을 꾼 것은 확실하나 이미 거덜난 가계·기업·국가경제의 몰골을 보고 참담해질 것이다.
아마도, 2013년 5~6월경에는 빈곤층 500만명, 망연자실한 축산업자, 폐업한 자영업자(415만), 해고된 비정규직(850만), 부패 냄새가 진동하는 저축은행의 피해자, 금리 조작으로 백주에 갈취당한 서민 등이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면서 세종로를 가득 메울 것이다. 그때 누가 청와대 뒷산에서 ‘아침이슬’을 부를 것인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명박 행정부는 불황대책에 집중하기는커녕,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구상을 시도했다. 우리금융의 민영화와, ‘세계최고공항상’을 수상한 바 있는 흑자 공기업인 인천공항공사의 지분 매각의 시도를 들 수 있다.
이는 정권 초기였던 2008년 6월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고유가 대책’을 연상케 한다. 당시, 강 장관은 10조4930억원을 1380만명의 근로자와 자영업자에게 6만~24만원씩 세금환급(사실상 현금지급)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10조4930억원의 현금지급 대상인 1380만명은 근로자 980만명으로서 전체 근로자(1300만명)의 78%, 자영업자 400만명으로서 전체 자영업자(460만 명)의 87%, 상기한 1380만명(근로자+자영업자)은 경제활동인구(2400만명)의 57.5%이다.
사실, 상기한 ‘고유가 대책’은 ‘좌파 분배주의자’일지라도 내놓기 힘든 낯뜨거운 포퓰리즘(populism)이었다. 이러한 ‘선심성 정책(?)’은 미국산 쇠고기 사태로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되지만, 이러한 천문학적 국고(10조5000억원)를 그렇게 낭비한 것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10조원을 고유가 시대에 더욱 절실해진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사용한다면 1기에 2조5000억원이 들어가는 원전을 4기나 더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에너지 자주개발률(자국 기업이 참여한 에너지 개발)은 4.2%이다. 일본의 19%, 중국의 26%에 크게 뒤떨어진다.
각 정당은 12월 대선의 득표를 위하여 모든 것(정체성을 포함하여)을 내던지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여·야 모두가 ‘복지확대’와 ‘경제민주화’에의 올인이다. 저출산과 초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복지확대는 필연적이다. 그러나 합리적 재원조달이 없는 복지확대는 망국(亡國)의 길이다.
작년에 기획재정부는 정치권이 제시한 각종 복지정책의 연간 소요액을 추계했다. 총 41조~60조원으로 나타났다. 60조원은 2011년도 국가 전체 예산 309조원의 5분의 1, 중앙정부 총예산의 28%를 차지한다.
이러한 천문학적 복지재정의 부담능력은 오직 경제력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 본원은 기업인데, 재벌은 현재 ‘경제민주화’라는 도마 위에 놓여 있다. 아마도 ‘단두대’에 오르기 전에, 해외로 사업장을 옮기려는 재벌도 있을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자유시장경제의 보완적 조항
대한민국의 경제질서에 대한 국가목표를 선언한 상징적 조항인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 성장과 적정한 소득분배,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1항을 보완하고 있다.
1항은 자유시장경제 원칙, 2항은 그로 인한 부(富)의 편중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국가가 개입할 여지를 둔 부수적 조항이다. 1항(자유시장경제)은 엔진, 2항(경제민주화)은 브레이크 역할을 각각 담당하도록 되어 있다. 엔진 없는 브레이크는 의미가 없듯이, ‘자유시장경제’ 없는 ‘경제민주화’는 본질적 의미를 상실한다. 브레이크 없는 엔진은 매우 위험하듯이, ‘경제민주화’ 없는 ‘자유시장경제’는 사회경제적 불안을 조성한다. 따라서 헌법 119조의 두 항은 상호 보완적 관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항(자유시장경제)만 유지하고 싶은 재계는 “2항은 해석상 혼란을 가중시키니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2항(경제민주화)으로 인해 재벌개혁 논의가 거세지고 각종 규제 법률이 추진될까 봐 우려하고 있다. 이는 “한국엔 소방서 119와 헌법 119가 있다. 서민 중산층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작동해야 하는 게 헌법 119다”라는 정동영 전 민주당 최고위원의 인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반면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와 재계는 “자유시장경제 질서가 기본이고 경제민주화는 보완 규정일 뿐이므로 자유시장경제 질서를 훼손해선 안 된다”고 했다.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재벌에 대한 지나친 입법적 규제를 하기보다는 행정적인 규제로 부작용을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원초적으로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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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민주화의 전도사 김종인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 |
김종인 전 의원을 발탁한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은 ‘경제민주화’를 주민 행복을 위한 첫 번째 핵심과제로 꼽고 있다. 지난해 비대위원장을 수락할 때는 “누구나 기회 앞에 평등한 틀을 만들겠다”고 천명했고, 최근 대선 출마 선언 땐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민주화를 통해 경제적 약자들의 꿈이 다시 샘솟게 하겠다”고 했다.
‘경제민주화’는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7년 6·29선언 직후 ‘민주화’ 바람이 쓰나미처럼 휩쓸 때 김종인 전 의원이 주도하여 헌법 개정에 포함시킨 개념이다. 당시 ‘정치 민주화’의 거센 풍랑이 경제에까지 덮친 것이다. 그 이후, 25년 만에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이 현학적으로 “경제민주화는 재벌개혁뿐 아니라 대·중소기업 상생, 소액주주 권리, 소비자보호를 위한 반(反)독과점 정책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경제주체 간 ‘갑을(甲乙) 관계’가 나타나는 모든 영역이 경제민주화의 대상이 된다”고 주장했다.
혹자는 이러한 물결을 보고 1987년 ‘정치민주화’가 대통령의 직선제 관철로 구체화되었듯이 ‘경제민주화’는 재벌 총수 가족에 대한 손보기로 진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얼마전까지만 해도 화두가 되어 왔던 ‘경제선진화’는 어디로 갔는가? 이미 그것은 달성하였는가?
필자는 과거 5·16 군사정권하에서 ‘한국적 민주주의’가 잘못되었던 것처럼, ‘민주주의’ 앞에 ‘경제’라는 접두사를 붙인 ‘경제민주화’라는 용어 자체가 원초적으로 잘못 정의되었으며, 이 결과 헌법 제119조의 해석에 있어서 혼란과 그로 인한 이념갈등이 심화·확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민주주의’가 적절
민주주의와 경제체제에 관한 한국인의 선택은 다음과 같다. 고(故) 대니얼 벨(Daniel Bell) 교수가 《이데올로기의 종언》(The End of Ideology)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교수가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en)에서 갈파했듯이 ‘인민’ 민주주의가 역사적으로 실패한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뿐이며, 사회주의경제는 이미 붕괴되었기 때문에 경제는 ‘시장경제’뿐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합친 것이 ‘자유시장경제’인데 이것은 다행히 우리나라 헌법 119조 1항에 명시되어 있다. 2항과 관련된 ‘경제민주화’는 공정한 규칙이 작동하는 자유시장경제를 만드는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다. ‘경제민주화’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3 가지, 즉 ①양극화 해소 ②성장동력의 창출 ③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다.
필자는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를 어느 국내·외 경제 교과서 혹은 논문에서 보거나 들어본 적이 없다. 그 대신에 ‘산업민주주의(Industrial Democracy)’와 ‘경제자유도(Degree of Economic Freedom)’와 같은 용어들은 많이 보아 왔고, 그러한 사상의 실현을 위하여 고민한 바 있다.
우선 ‘산업민주주의’란 페이비언 사회주의 이론가인 영국의 사회경제학자 웨브(Sidney James Webb, 1859~1947; Martha Beatrice Potter Webb, 1858~ 1843) 부부의 저서 《산업민주주의》(Industrial Democracy, 1897년)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이젠 산업의 관리 및 운영에 관한 노사협의제·제안제도·불평불만 처리제도로 구체화되었으며, 최근에는 생산성향상운동과 성과배분제도로 발전되고 있다.
다음으로 ‘경제민주화’의 개념과는 대조적으로, 정부의 시장간섭을 측정하는 지표로서 국가별 ‘경제자유도’가 미국의 헤리티지재단과 《월스트리트저널》에 의하여 발표됐다.
2004년과 2005년의 경우, 조사대상 162개국 중에서 홍콩과 싱가포르는 연이어 각각 1·2위, 대만은 34위에서 27위, 일본은 37위에서 39위, 한국은 47위에서 45위를 각각 기록했다. 그만큼 한국정부의 시장간섭이 심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경제자유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시장간섭을 줄여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정부의 시장간섭을 높이자는 것이다.
만약 ‘경제민주화’가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전문 용어(예로서 ‘산업민주주의’ 혹은 ‘공정거래질서정책’)를 사용함이 선진국의 지성인 및 지도자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과연 ‘경제민주화’를 나타내는 지표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실천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합리적 지표를 개발하더라도, ‘경제자유도’와 ‘경제민주도’의 상호모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공정거래질서 정책이란 용어가 지도자 모습에 가까워
전술(前述)한 김종인 전 의원의 ‘애국충정’의 발상과 박근혜 의원의 선언적 의미를 굳이 살리려면 루돌프 오이켄(Rudolf Christoph Eucken, 1846~ 1926)의 질서이론(Ordnungstheorie)에 의거한 경제질서의 7개 ‘구성적 원칙’과 4개 ‘규제적 원칙’을 원용하여 알프레드 뭘러-아르막(Alfred M쮒ller-Armack, 1901~1978)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위한 국가의 역할을 벤치마킹함이 옳을 것이다. 그러한 합리적 노력은 하지 않고 헌법 119조 1항과 2항을 정치적 의도로 해석 및 악용해서는 안 된다.
한국사회의 본질적 문제는 통치권자의 국가경영 철학이 없다는 점이며, 당면과제는 헌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책에 있다. 그 해결방향은 선거용 포퓰리즘이 아니라 이마누엘 칸트(Imma nuel Kant)와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가 말하는 ‘일반의지(즉 국민주권)’를 위한 합리적 국민합의인 것이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한 헌법 37조 2항에 근거해서 규제법률을 만들 수는 있다.
이 경우에도 규제법률을 공정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할 국가통수권자의 철학적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현실에서 이것이 걱정된다.
이제 더 이상 헌법을 정치적 목적으로 유린하거나 훼손해선 안 된다. 좋을 때뿐 아니라 궂을 때도 애국가를 부르듯이 헌법정신은 국가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사회기본가치(Social Primary Goods)’로서 보존돼야 한다.
시장과 대기업을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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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민주화 주장에 비판적인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 |
민주당은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동의어로 인식하고 있다. 이용섭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재벌개혁 없는 경제민주화는 허구”라고 했다. 민주당 홍종학 의원은 “적은 지분을 가진 재벌 오너가 기업 전체를 지배하는 것 자체가 헌법 119조 1항에 위배된다”며 “재벌은 또 불공정 행위로 자유시장질서까지 어기고 있는 만큼 헌법 119조 2항에 근거해 규제를 해야 한다”고 했다.
새누리당의 이혜훈 최고위원마저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의 선결조건이다. 자유시장 범위 내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민주주의하에서 시장의 자유가 허용된다”고 했다. 새누리당 김종인 전 의원 역시 재벌의 폐해 때문에 양극화와 경제력 집중, 불공정의 문제가 생기는 만큼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계는 시장경제 자율성을 침해하면 투자·성장·고용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경제민주화’ 정책 전반에 반대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과도한 대기업 때리기”라고 반박한다.
흥미로운 것은 중소기업중앙회가 ‘경제민주화’가 ‘재벌 길들이기’로 변질돼서는 안 되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구조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주장의 논거는 대기업이 정치권력으로부터 핍박받으면 결국 중소기업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아마도, 중소기업중앙회는 대기업집단으로부터의 하도급 감축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듯하다.
‘재벌개혁’의 추진방향에 있어서, 야당인 민주당과 여당인 새누리당의 이견뿐 아니라 새누리당 내에서도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을 강조하는 김종인 선대위 공동위원장과, 불공정행위 시정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이한구 원내대표로 나뉘어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 논쟁은 시장경제와 재벌에 대한 기본 인식의 차이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의 차이점과 필자의 소견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의 측면에서 보면, 김종인 위원장은 시장이란 독과점 등으로 변질할 수밖에 없으며 국가가 시장이 제대로 운용될 틀(제도)을 짜 줘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시장개입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반면 이한구 원내대표는 대기업의 경제활동 자유를 보장하면서 공정경쟁과 책임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위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경제철학에만 집착한 나머지, 한쪽만 바라보고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 김종인 위원장은 독과점 경제구조의 폐단(정태적 비효율성)을 지적하고 있는 반면에 이한구 원내대표는 자유시장경제의 정태적 효율성(Static Efficiency), 즉 파레토 최적(Pareto Optimum)을 강조하고 있다.
김종인 위원장은 독과점 이윤이 불확실한 연구개발(R&D)에 투자되어 신기술→신상품→신시장을 창출하는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의 동태적 효율성(Dynamic Efficiency)을 간과하고 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전요인은 단순히 효율성(Efficiency)이 아니라 혁신(Innovation)이었다는 것은 제1, 2차 산업혁명이 웅변해 주고 있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대기업의 공정경쟁과 책임을 강조했으나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둘째, 대기업에 대한 인식을 보면, 김종인 위원장이 기업은 자제능력이 없으므로 탐욕을 제어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이한구 원내대표는 기업의 경영의욕을 위축시킬 것이 아니라 기업의 탐욕을 정밀하게 교정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출자총액 제한하면 고용이 줄어든다
김종인·이한구씨 모두 막스 베버(Max Weber)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주장하듯이, 한국 자본주의가 하루속히 ‘천민자본주의(Pariah Capitalism)’에서 ‘합리적 경영자본주의’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종인 위원장은 다만 기업과 기업가를 혼동하고 있는 듯하다. 기업가(Entrepreneur)는 위험을 기꺼이 안고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반면에 탐욕에 사로잡혀 있는 장사꾼(Merchant)은 사회경제적 폐해를 야기한다. ‘기업’ 자체는 고용을 창출하고 미래를 열어 주는 사회경제적 순기능을 한다. 글로벌 경제에서 기업의 경쟁력은 곧 국가의 경쟁력이다.
이제 여야의 재벌개혁에 대한 당론을 비교해 보자.
새누리당은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징벌적 배상제, 일감 몰아주기 금지, 대형 유통업체 영업시간 제한, 자본소득 과세 강화,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 등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출자총액제한제는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도입하지 않겠다고 한다. 순환출자 금지의 경우, 이한구 원내대표는 반대, 김종인 위원장은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를 주장한다.
민주통합당은 기존 순환출자를 재벌 스스로 3년 안에 해소하고, 안 될 경우에는 계열사의 의결권 행사를 하지 못하도록 제한함으로써 사실상 순환고리를 끊자고 한다. 재벌그룹의 금융·산업 계열사가 서로 일정 지분 이상을 갖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금산분리제도 강화도 주장한다. 재벌그룹에서 강제로 분리시키는 계열분리청구제도와, 10대 재벌그룹에 속한 기업이 다른 계열사 주식을 보유할 수 있는 총액을 제한하는 출자총액제한제를 다시 도입하여 10대 재벌그룹에 적용하고 지주회사 규제강화, 대·중소기업 상생강화, 자본소득 과세강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재벌의 불공정행위 규제와 대·중소기업 간 상생 문제에 대해선 새누리당과 민주당 공히 추진하려 한다는 점이다. 재벌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동네 빵집·떡볶이집 등 골목상권 진입 제한, 할인점과 대형 수퍼 등 대형 유통업체의 영업시간 제한확대 등은 양극화 해소와 시장질서 세우기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중소기업 적합업종 확대에 대해서도 여야 모두 긍정적이다.
이 중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에 관하여서만 논평하자면, 이는 투자 위축을 가져와 고용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부활되어선 안 된다. ‘고용은 최상의 복지이다’(임양택, 한국경제신문, 2011년 10월 7일). 그리고 완전고용은 복지사회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초과이윤 나눠먹기론 위기 해소 안돼
지금과 같은 위기에서 우리 모두, 특히 정치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존 롤즈(John Rawls)가 일컫는 ‘이상적 민주사회(A well-ordered democratic society)’를 구현하기 위한 목표와 수단, 구체적 정책방안의 기대효과와 기회비용, 거시경제(국가경제)와 미시경제(기업과 가계),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원칙’과 ‘법 앞의 (기회)평등’, 자원배분의 일반균형(파레토 최적)과 사회적 최적(Social Optimum)을 위한 분배정의 등에 관한 균형감각이다.
만약 한국민도 과거 남미(南美) 혹은 최근 남유럽의 국민들처럼 정치적 포퓰리즘에 마냥 휘말려 ‘순수이성’을 상실하면, 역사적 죄값으로서 대량실업, 고(高)물가, 가계파산을 감당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한국사회의 고유 가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이다.
산업화 시대를 넘어 후기자본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때 한국의 선택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재벌경제구조는 산업화 시대의 사회·경제·정치적 유산이다. 때문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의 저서 《새로운 사회》(The New Society)와 《탈(脫)자본주의 사회》(Post-Capitalism Society)가 일컫는 ‘지식산업구조’로 전환하여 기초과학 능력을 배양하고 설계 기술력 및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실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험난하고 멀다.
재벌개혁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을 요구한다. 현재, 한국경제는 타이타닉호처럼 가라앉을 분위기다.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 한국호(號)를 좌초시킬 수 있는 것은 ‘경제민주화’ 혹은 ‘복지지출 확대’의 미이행이 아니라 기초과학기술의 부재(不在)로 인한 ‘기술교착상태(Technological Stalemate)’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그 이유는 최근의 경제전쟁은 무역전쟁에서 기술전쟁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최근에 지적재산소유권(특히 특허) 소송이 잦아지고 산업기술 스파이들이 활개치는 양상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전략적 선택은 재벌로 하여금 스스로 공정한 게임을 통하여 주어진 자유시장경제질서를 준수함이 자신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자각하고 실천함과 동시에 재벌의 경제력을 신(新)성장동력산업의 발굴에 쏟게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과 함께 3대분야(녹색기술산업, 첨단융합산업, 고부가가치서비스산업)의 17개 산업을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선정, 추진해 왔는데, 이를 정권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모름지기, 새로운 ‘먹거리 산업’은 재벌 자신뿐만 아니라 국가경제의 사활(死活)을 위해서도 긴요하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이 메모리 칩을 개발하여 세계 정보기술(IT)시장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메모리보다 더 시장이 크고 수익성이 높은 비(非)메모리 분야와 반도체장비 분야에서는 형편없는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또한 현대자동차가 천문학적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다음의 주력산업인 전기자동차의 개발 진척은 매우 더디다.
대기업집단의 독과점구조로 인하여 발생하는 초과이윤(Excess Profit)을 ‘나눠먹기’가 아니라 리스크가 높지만 신성장동력 산업을 위한 신기술개발투자로 유도할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입안해야 할 것이다. 이럴 때 최상의 복지인 고용도 비로소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재벌과 재벌총수·가족은 달라
중소기업·경공업 중심인 대만 경제와 달리, 대기업·중화학공업 중심인 한국경제의 구심점이 좋든 싫든 간에 재벌이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재벌은 근대화·산업화 시기에 생성된 한국의 경제·사회·정치적 산물이다. 재벌의 공과(功過) 논쟁은 중화학공업 시대의 1972년 8·3 사채동결에서부터 시작하여 40여년 동안 지속되어 왔기에 이에 관한 논의는 진부한 일이다.
현재 세계는 생존을 위한 전쟁에 돌입해 있다. 전쟁에서의 ‘덕목’은 살아남는 것뿐이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순양함과 구축함도 필요하지만 항공모함이 요긴하다. 포병부대보다 최첨단기술이 장착된 탄도미사일이 더 유용하다.
재벌을 해체하면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이득보다 그것의 사회경제적 손실이 더욱더 크다. 재벌의 ‘부작용’에 대한 외과적 수술엔 유능한 의사의 예리한 집도가 필요하다. ‘경제민주화 정책‘은 멀쩡한 인체구조를 손상시킬 수 있는 위험한 칼날이다. 따라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재벌을 해체 대상으로 보지 말고 대기업집단의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반(反) 자유시장경제질서의 파행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대기업집단(재벌기업)과 재벌총수, 가족은 다르다. 재벌의 소유구조와 경영관행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출자소유구조의 개선, 기업경영에 대한 내·외부 견제 시스템 강화, 편법적인 증여나 상속을 제도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완전포괄주의 상속세 제도의 적극적 운영,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억제하기 위한 세제(稅制)나 공정거래제도의 강구, 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私益) 편취를 규율하기 위한 제도의 확립, 복잡한 순환출자구조의 점진적 해소와, 계열사 간 위험전이를 방지하기 위한 지주회사 체제 유도 등을 필자는 주장한다.
한국에서 재벌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계열사 간 순환출자나 피라미드형 지배구조를 통해 총수(總帥) 일가가 극히 적은 지분으로 광범한 기업집단을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가족형 기업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공개한 계열사 숫자는 600개에 이르고, 시가총액은 737조원이다. 전체 주식시장의 60%를 차지하는 10대 그룹 재벌총수의 평균 지분율이 1993년 평균 3.5%에서 2012년 4월 현재 0.94%로 나타나 사상 처음으로 1% 이하로 떨어졌지만 재벌총수의 영향력은 정반대로 더 커졌다.
재벌 스스로 생존의 대안 찾아야
그 요인은 계열사 상호 간 투자를 주고받은 덕분에 총수들은 자기 돈을 들이지 않고 계열사 돈으로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우호지분을 같은 기간 44.4%에서 55.7%로 늘렸기 때문이다. 이 결과, 10대 그룹총수들은 1%도 안되는 지분을 갖고도 작년 매출액 958조원으로 GDP 1237조원의 77%를 점유하고, 자산 총액은 763조원으로 정부 보유 총자산 1523조원의 절반 수준인 거대 집단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주식회사의 주주(株主)는 지분(持分)만큼 회사에 대한 의결권과 배당청구권 등을 행사하는 게 기본원칙이다. 이런 원칙이 국내 재벌총수들에겐 통하지 않고 있다.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 출자총액제한 재(再)도입, 사업지주회사 규제강화, 금산분리 강화, 지배권 승계의 종잣돈 마련을 위한 금융차명거래의 불법화, 대기업집단의 자금력을 이용한 개별시장에서의 지배력남용 금지와 공기업인수 참여제한 등이 그래서 개혁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국민들의 반재벌 시각이 단순히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과다한 지배력을 행사해 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많은 특혜를 입었음에도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했고 부(富)의 축적과 그 승계 과정에서 적지 않은 탈법과 편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들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서기까지 정주영·이병철·구인회씨 같은 뛰어난 재벌 1세 총수들의 판단력·결단력·추진력이 기업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러나 재벌 2세, 3세들은 선대(先代)의 리더십을 물려받지 못하고 재산만을 상속받은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경영권 편법승계와 상속세 탈루, 배임, 횡령 같은 탈선(脫線)이 끊이지 않았다.
이제 재벌은 외부 압력에 마지못해 따라갈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앞에 언급한 불법·파행적 경제행위들을 철폐함으로써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재벌들이 금과옥조처럼 신봉했던 신자유주의(New Liberalism) 시대는 갔다. 이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 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신실용주의(Neopragmatism)의 시대가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