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업투자 받으러 재벌 2세들에 브리핑… 삼보컴퓨터 이홍선 투자
⊙ V소사이어티 창립 멤버로 모임 참석… 최태원 탄원서에 주저없이 서명
⊙ 간염 탓에 알코올 한 방울 안 마셔
⊙ V소사이어티 창립 멤버로 모임 참석… 최태원 탄원서에 주저없이 서명
⊙ 간염 탓에 알코올 한 방울 안 마셔
이즈음 안철수 원장은 백신 회사를 본격적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했지만 자본이 넉넉지 않았다. 사업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여러 사람을 접촉하다 알게 된 이가 이홍선(李洪善) 나래텔레콤 대표이사였다. 이홍선 대표는 삼보컴퓨터 창업주인 이용태(李龍兌)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당시 나래이동통신 사장이었다.
안철수 원장과 이홍선 대표는 ‘백신’이라는 소프트웨어 사업가와 ‘컴퓨터’라는 하드웨어 사업가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안철수 원장이 생년월일은 한 해(1962년 1월생) 늦지만, 생일이 빨라 학교를 일찍 들어가는 바람에 두 사람은 동갑내기로 알고 지냈다. 그리고 이홍선 대표는 안철수 원장의 사업에 긍정적이었다. 두 사람 모두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증언이다.
“당시 삼보컴퓨터는 벤처회사에 관심이 컸습니다. 컴퓨터 하드웨어 회사 입장에서 소프트웨어 제공업체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대다수의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아이디어와 기술력은 있지만 자본력이 약한 벤처회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 벤처회사에 대한 인큐베이션(배양) 역할을 자처한 곳이 삼보컴퓨터였죠. 엔씨소프트의 ‘리니지(온라인게임)’ 개발을 시작한 곳도 삼보컴퓨터의 자회사입니다. 이홍선 대표는 안철수 원장 이외에 소프트웨어 관계자들을 많이 알고 지냈고 자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안철수연구소 설립 훨씬 이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이홍선 대표가 안철수 원장이 백신 연구소를 만들면 거기에 투자하겠다고 했습니다.”
삼보컴퓨터 이홍선, 재벌과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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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연구소 초기에 투자한 삼보컴퓨터의 이홍선씨(왼쪽)와 LG벤처투자의 김영준씨. |
이 기업 3세는 “안철수 박사에게 ‘비즈니스를 왜 합니까’라고 했더니 ‘바이러스를 만들어서 좋은 데 쓰려고 한다’고 답했다.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 좀 웃긴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자신의 사업을 설명하는 사람의 태도가 상당히 샤이(shy·수줍어한다는 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일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업가는 아니겠구나’라는 판단이 들었다. 안철수 박사가 법인을 설립한 이후에도 몇 차례 만났지만 사업적 파트너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 투자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안철수 원장에게 투자한 사람들은 나중에 400~500배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1990년대 초반,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안철수 원장이 지인들에게 요청한 금액은 수억원대가 아니고, 적게는 1000만원대에서 몇 천만원 수준이었다고 한다. 주식 액면가를 그대로 적용해서 투자금액만큼 지분을 쳐 준다는 것이 안철수 원장의 제안이었다.
그리고 1995년 3월, 안철수 원장은 자본금 5000만원으로 ‘주식회사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를 세웠다. 이 연구소는 계속 투자금을 늘려 1997년에는 자본금이 1억원으로 늘었고, 1998년 5억원까지 불었다.
자본금만큼이나 회사 인지도와 사세가 확장됐다. 정보통신부로부터 유망중소정보통신기업(1997년)으로 지정받았고, ‘코코넛’이라는 계열사(1999년)를 만들었으며 2000년에는 베이징사무소를 열었다. 이홍선 대표는 안철수 원장에게 약속한 대로 사업 자금의 일부를 댔다. 당시 재무제표를 보면 주요주주와 지분율은 안철수 39.08%(1,484,950주), 이홍선 3.85%(146,150주), LG벤처투자 부회장을 지낸 김영준씨 0.13%(4,883주)였다.
‘V소사이어티’ 주도한 사람은 ‘YPO’ 멤버 이웅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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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모임의 상징적 역할을 맡았고, 실질적 주도는 이웅열 코오롱 회장이 했다. |
일부에서는 최태원(崔泰源) SK그룹 회장과 안철수 원장이 주도하여 이 모임이 발족됐다는 얘기가 있으나, 취재 결과 이는 사실과 달랐다.
이 모임의 주체는 이웅열(李雄烈) 코오롱그룹 회장과 또 그와 친분이 있는 다른 기업 경영인이었다. 이들은 당시 ‘미니 전경련’이라고 불렸던 ‘YPO (Young Presidents Organization)’ 멤버였다.
‘YPO’는 40세 이하의 재벌 2세 사장들로 꾸려진 모임으로 1990년대 중반에 만들어졌다. 이웅열 회장의 부친인 이동찬(李東燦) 코오롱그룹 명예회장과 김상하(金相廈) 삼양사 회장이 주축이 돼서 젊은 2세 경영인들이 안정적으로 기업을 운영할 수 있게 돕자는 취지로 결성됐다. 이들에게 도움을 줄 ‘원로급’ 선배로는 이동찬 명예회장과 김상하 회장 외에 조석래(趙錫來) 효성그룹 회장, 강신호(姜信浩) 동아제약 회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실질적인 멤버로 이웅열 회장과 김상응(金相應) 당시 삼양사 회장, 김승연(金升淵) 한화그룹 회장, 담철곤(譚哲坤) 당시 동양제과 부회장, 현재현(玄在賢) 동양그룹 회장, 이재관(李在寬) 새한그룹 부회장 등이었다. ‘YPO’는 세미나, 연말 부부동반 모임 등을 벌이며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
초창기 멤버 안철수 포함 2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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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처측 V소사이어티 창립멤버였던 변대규 사장(왼쪽)과 이재웅 당시 사장. |
“1990년대 후반부터 벤처 열풍이 불었는데 재벌 2세들의 관심이 컸습니다. 아버지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았지만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본인 업적에 갈증을 느끼던 재벌 2세들은 벤처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했죠. 본인이 스스로 벤처회사를 만들려는 사람이 있었고, 또 유망한 회사에 투자해 간접적으로 성공 과실을 누리겠다는 이도 있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재벌 2·3세들과 벤처회사 오너들의 교류의 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겼고, 기존에 여러 모임에 참여하고 있던 재벌 2세들이 ‘V소사이어티’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이웅열 회장과 그 지인이 주축이 되어 새로운 모임을 만들자는 얘기들이 나왔다. 이 모임이 바로 ‘V소사이어티’다. ‘V소사이어티’의 ‘브이’는 ‘벤처(Venture)’의 머리글자다. 이들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찾았다. 코오롱그룹보다는 훨씬 큰 그룹의 오너가 모임에 끼여야, 모임이 활성화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최태원 회장은 이웅열 회장의 신일고-고려대 선배여서 자연스럽게 재벌 2세들 사이에서는 좌장격이었다.
후배들의 얘기를 들은 최태원 회장은 그 자리에서 흔쾌히 모임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이렇게 해서 ‘최태원 회장이 멤버’라는 것을 앞세워 재벌 2세와 벤처 기업인에 대한 탐색이 시작됐다. 안철수 원장은 벤처 기업인 물망 1위였다.
이 모임의 초창기 멤버는 “2000년도에 벌써 안철수 원장은 성공한 벤처인으로서 확고한 이미지를 구축해 놓고 있었다. 모임 결성을 주도한 재벌이 안 원장에게 의사를 물었고, 안 원장이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모임의 멤버가 될 벤처기업인들은 안철수 원장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온라인 결제회사인 ‘이니시스’의 권도균(權度均) 이사회 의장, 국내 최대 셋톱박스 제조사인 ‘휴맥스’의 변대규(卞大圭) 대표,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이재웅 대표 등이 안철수 원장과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V소사이어티’의 설립 멤버는 총 21명으로, 이들은 단순히 세미나를 여는 모임이 아니라 유망한 벤처회사에 투자하겠다는 차원에서 각자 2억원씩을 내놨다. 설립 멤버 중 한 명이 초등학교 친구로부터 이형승(李炯昇)씨를 소개받아 이씨가 ‘V소사이어티’ 사장, 최태원 SK회장이 회장이 됐다. 이형승씨는 당시 삼성증권 기획담당 이사였다.
창립 멤버는 최태원 회장(이하 2000년 당시 직함 사용)과 LG그룹 구본무(具本茂)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具本綾) 희성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부회장, 이웅열 회장, 정몽규(鄭夢奎) 현대산업개발 회장, 정용진(鄭溶鎭) 신세계 부사장, 김준 경방 부사장, 안철수 사장, 변대규 사장, 권도균 사장, 이재웅 사장 등이었다. 2000년 7월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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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1년 12월, ‘올해를 빛낸 정치·경제인 시상식’ 현장. 맨 오른쪽이 안철수연구소 대표 안철수씨. |
매주 목요일 7시에 모여 밤 12시까지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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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1년 8월에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안철수연구소의 사세가 급격히 커졌다. |
‘재벌과 벤처인의 교류’ 차원에서 탄생한 ‘V소사이어티’ 멤버들은 모임 초기에는 꽤 자주 어울렸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인 모임을 꼬박꼬박 열었다.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사무실은 세미나 외에 다과 모임이 가능했다. 멤버들은 매주 목요일 오후 7시에 이곳에 모였다. 최태원 회장은 열심이었고, 안철수 원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V소사이어티’의 활동을 남들 모르게 극비리에 부친 것은 아니었다.
모임의 한 관계자는 “초창기에는 멤버들이 자주 만나다 보니 서로의 동선을 알고 있을 정도였다. 세간에서 재벌 2·3세들 모임이라고 매도하는 경향이 있어서 세미나의 초청 강사, 내용을 공개했다. 멤버가 아닌 이들을 옵서버(observer) 형태로 포럼에 초청한 경우도 여러 번이었다”고 말했다. 안철수 원장은 초기에 이 모임에 자주 참석하다가 나중에는 한두 달에 한 번 꼴로 참여했다. ‘V소사이어티’ 관계자들이 기억하는 안철수 원장의 모습은 요즘 드러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V소사이어티의 한 관계자 얘기다.
“안철수 원장은 멤버들 사이에서 말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다른 멤버가 ‘안 대표 생각은 어떠세요’라고 묻기 전에는 거의 먼저 말을 꺼내는 법이 없었습니다. 묻는 답에 대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시하는 편이었지만 말수가 많거나 먼저 나서는 법이 없었죠. 7시에 시작한 모임이 종종 새벽 1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안철수 원장도 끝까지 남았습니다. 사무실 한편에 음주를 즐길 수 있는 바(bar)가 마련돼 있었지만 안 원장은 간염이 심하다는 이유로 알코올 음료를 마시는 법이 없었습니다. 늘 사이다를 마셨죠. 1년에 한두 번 멤버들이 2차(룸살롱)를 갔는데, 안철수 원장은 이때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숫기가 없지만 상대방이 질문을 하면 자기 의견을 내놓고 주로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안철수연구소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세를 확장했다. 2001년 9월에는 코스닥에 주식을 상장했고 증권가에서 이 회사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삼성SDS가 지분 9.4%(676,920주)를 샀고, 산업은행과 푸르덴셜자산운용이 주식 수십만 주를 사고팔며 시세차익을 남겼다.
“최태원 탄원서 사인에 주저함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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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안철수씨의 안철수연구소. |
문제가 된 ‘최태원 구명 운동’이 벌어진 것은 지난 2003년의 일이었다. 최태원 회장이 SK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된 뒤에 ‘V소사이어티’ 멤버들 사이에서는 탄원서를 제출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한 멤버의 얘기다.
“당시로서는 탄원서 제출이 특이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경련이나 경총이 기업인 구명 운동을 벌이는 것과 비슷한 차원에서 논의가 됐고, 다들 그렇게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탄원서 문구는 누가 썼습니까.
“모임 대표인 이형승씨가 문구를 작성했고, 직접 멤버들에게 사인을 받으러 다녔습니다. 안철수 원장 역시 아무 이의제기 없이 사인을 했습니다. 멤버 전원이 사인했죠.”
―안철수 원장은 최근 ‘탄원서 서명 당시에 부담느꼈다’고 말했는데요.
“본인이 부담으로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저하는 기색이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멤버로 활동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재벌에 대해서 부정적인 편이 아니었습니다. 재벌을 옹호한다거나 좋아한다는 발언을 한 적은 없지만 재벌에 대해 반대했다면 멤버들이 금세 알았을 겁니다. 재벌 2·3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고, 묻는 말에는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밝히는 편이었는데, ‘안티재벌’이라는 느낌은 못 받았습니다.”
새누리당은 안철수 원장이 최태원 구명 탄원서에 사인한 것을 두고 “최태원 구명 운동에 동참한 것은 ‘IA시큐리티’라는 회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IA시큐리티’는 안철수연구소가 45%, SK그룹이 30%를 투자해 만든 인터넷 보안회사로 2000년 7월에 설립됐다. 물론 안철수 원장이 최태원 회장과 개인적 친분으로 사인을 했는지 여부는 본인만이 알 수 있겠지만, 적어도 ‘V소사이어티’ 멤버 전원이 사인했다는 것을 볼 때 그가 특이 행보를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최근 만난 멤버들 “건강 탓에 대선 일정 소화할 수 있을지…”
2000년도에 설립한 이 모임은 2003년 들어 급속히 모임 횟수가 뜸했다. 이 모임의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이 주도한 것은 아니지만 최 회장 사건 이후에 모임이 뜸했다”며 “멤버를 계속 영입해 58명까지 늘었지만 처음 야심차게 출발했던 것에 비하면 유명무실한 모임으로 전락했다”고 전했다. 현재 ‘V소사이어티’는, 사무실은 그대로 임차한 상태지만 활동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얼마 전 이 사무실에 10여 명의 멤버가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임 참석자 대부분은 안철수 원장의 ‘대권 도전설’에 대해 “의아하다”는 식이었다고 한다. 이 모임에 참석했던 V소사이어티 한 멤버의 말이다.
“안철수 원장과 15년 이상 가깝게 지내 온 벤처 기업인들조차 뜻밖이라고 했습니다. 그중 K대표만이 ‘그런 성향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안철수 원장이 퍼블릭서비스(public service)에 관심이 컸고, 본인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컸다고 했습니다. 자기 일만 꾸준히 했던 과거에 비하면 변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의지보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바라보는 시각, 자기가 다른 이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느냐가 관심사가 된 것 같습니다. 기존 정치 프레임으로 보면 안철수는 교만한 사람이죠.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원하면 해 주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사고를 보이는데,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재벌에 대해 원색적인 표현을 하는 것도 모임에 나올 때는 전혀 없었던 성향이었고요. 안철수 원장이 대선주자로 나올 경우 험난한 일정을 소화하기 어렵다는 얘기들도 많이 했습니다. 과거 모임에 나올 때도 간염을 앓은 탓에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고 과한 일정을 소화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는데, 과연 대선 운동을 펼칠 수 있겠느냐는 얘기도 멤버들이 했습니다.”
안철수 원장은 1990년대 초반에는 재벌 회사의 투자를 받기 위해 직접 브리핑을 다녔다. 1990년대 중반에는 삼보컴퓨터 오너로부터 투자를 받았고, 2000년에는 SK와 인터넷 회사를 함께 만들었다. 이즈음 재벌 2·3세와 벤처 기업인의 모임에 이름을 올렸고, 실질적으로 교류했다. 2003년에는 재계서열 3위의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오너 구명 운동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에게 지난 8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유튜브 ‘경제사범에 대한 안철수의 생각’을 보면, 안 원장은 지난 2011년 한 행사에서 “금융사범은 어쩌다 한 번 잡히면 반은 죽여놔야 돼요”라고 했다. 그리고 최근 안철수 원장은 ‘안티재벌’ 성향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