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진의 여의도 포커스

더불어민주당 친명-친청 갈등

‘중재자 이해찬’ 부재로 명(이재명)-청(정청래) 갈등 수면 위로

  •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sj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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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찬은 탁월한 전략가이자 강력한 중재자… 민주당이 10년 이상 깨지지 않았던 것은 이해찬 덕”
⊙ 차기 당권·대권 노리는 정청래, 한동안 계파 갈등 잠잠하던 당에 다시 계파 바람 일으키나
⊙ 친청계의 2차 특검 추천에 발끈한 친명계, ‘이재명 공소취소를 위한 의원모임’ 출범… 친청계 불참
김민석 국무총리(오른쪽)와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1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고 이해찬 전 국무총리 영결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동안 ‘이재명 원톱’ 체제였던 더불어민주당의 내부 분열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친명(친이재명)계와 친청(친정청래)계는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두고 경쟁관계에서 갈등관계로 변화했다. 친명계와 친청계의 갈등은 청와대와 국회의 갈등,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갈등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한민국의 무소불위(無所不爲) 권력이다. 2024년 총선 압승과 2025년 대선 승리, 사법개혁으로 입법·행정·사법권을 모조리 거머쥐었다. 그러나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격언처럼 자연스레 내분으로 빠져들고 있다. 대선과 총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절대권력을 창출한 민주당에 균열이 시작된 계기는 무엇일까? 이재명 대통령이 후계자를 만들지 못한 점과 중재자(이해찬)의 부재, 두 가지로 분석된다.
 
 
  ‘이재명을 위한 의원모임’
 
2월 12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이재명대통령사건 공소취소·국정조사 추진 의원모임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2월 12일, 당대표 리더십에 대한 사실상 조직적인 도전이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 내 모임 ‘이재명대통령사건 공소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모임(공취모)’이 출범 소식을 알렸다. 이 대통령을 기소한 사건인 대장동사건과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등을 ‘조작 기소’로 보고 해당 사건들에 대한 공소 취소와 국정조사 실시를 추진하는 모임이다. 공식 출범식은 2월 23일이다.
 
  모임에는 민주당 현역 의원 87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가 책임지고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정치검찰의 조작 기소를 폐기해 훼손된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무너진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밝혔다.
 
  최근 몇 년간 민주당의 행보에 비춰 보면 모임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참여자의 면면을 보면 민주당 내부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공취모 상임대표는 박성준 의원, 공동대표는 김승원·윤건영 의원이다. 간사는 이건태 의원이 맡았다. 운영위원에는 김남희, 김상욱, 김우영, 모경종, 송재봉, 이용우, 이주희, 정준호, 채현일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주목할 것은 친청계 의원의 이름은 보이지 않고 최고위원 중에서는 대표적인 친명계, 즉 정청래 대표와 각을 세워 온 이언주·강득구·황명선 의원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친명계 결집이 시작된 것이다. 이건태 의원은 대장동사건에서 이 대통령 변호를 맡았던 인물이고, 이언주 의원은 이 대통령이 총선 전 직접 영입한 인물이다. 경기도의원 출신인 강득구 의원은 이 대통령과 오랜 인연이 있는 친명계다.
 
 
  전준철 특검 후보 추천에 분노한 친명계
 
  정청래 대표의 1인 1표제 추진 등을 비판해 온 친명계가 본격적으로 모임을 만들게 된 계기는 2차 종합특검(윤석열·김건희에 의한 내란·외환 및 국정농단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 특별검사 후보 추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은 2월 2일 2차 특검 후보로 전준철 변호사를 추천한다고 밝혔다. 특수통으로 알려진 전 변호사는 2023년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에서 쌍방울 측 변호인단에 포함돼 있었다. 쌍방울 김성태 회장은 대북 송금 당시 이재명 경지도지사가 정황을 알고 격려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특검 후보 추천에 친명계는 비난을 넘어 분노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고, 청와대도 매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정청래 대표가 검증 실패와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누가 전준철을 추천했나’가 갈등의 불씨가 됐다. 장본인은 친청계로 불리는 이성윤 의원이었고, 이 의원은 전 변호사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1부장 시절 지검장으로 전 변호사의 이력을 잘 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득구 최고위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명백한 반역”이라고 맹비난했고,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박홍근 의원은 “(전준철은) 이재명 죽이기에 동조했던 법조인”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정청래 대표가 적극 추진했던 ‘권리당원 1인 1표제’와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역시 친명계로부터 격한 반발을 불러왔다. 두 이슈 모두 충분한 논의와 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 대표가 독단으로 밀어붙인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결국 민주당의 오랜 부담이었던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정면으로 건드린 친청계의 2차 특검 추천에 친명계가 공취모 결성이라는 행동에 나선 것이다. 모임에 참여한 한 초선 의원은 “확대해석은 부담스럽다”고 했지만, “현재의 당 리더십에 위기감을 느낀 일부 최고위원들이 모임을 주도하고 참여를 권유했다”고 했다.
 
  명-청 갈등의 본질은 정청래 대표의 ‘야심’이다. 정 대표가 당대표직 연임과 대권을 노리고 당원 민심을 장악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당의 이익보다 우선해 국정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이재명 대통령과 대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청래, 계파 정치 부활시켰나
 
이재명 대통령(오른쪽)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뉴시스

  사실 민주당 내부의 계파 갈등은 고질적인 현상이다. 1995년과 2003년, 2015년에는 분당(分黨) 사태가 벌어졌다. 당 지도부 구성은 계파별 나눠먹기의 결과물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2015년)에는 당 지도부 회의를 두고 ‘족장회의’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동교동계와 친노(친노무현)계를 비롯해 손학규계, 정세균계, 민평련계, 정동영계, 안철수계, 김한길계 등 셀 수 없는 계파가 존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한동안 운동권 86세대를 주축으로 한 친문(친문재인)계가 당을 장악했다. 그러나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이후 친문계는 힘을 잃어 갔고,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와 당대표를 거쳐 대통령에 취임하며 민주당은 수년간 ‘이재명 원톱’ 정당이 됐다. 한 민주당 전직 의원의 얘기다.
 
  “다양한 계파가 존재하고 충분한 합의의 과정을 통해 결정하는 게 민주당의 전통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은 이재명이라는 걸출한 인재의 등장과 세대교체로 과거에 존재하던 계파는 사실상 사라졌고 민주당이 원팀을 강조하게 됐다. 그 결과 과거엔 하지 못했던 정권과 의회 과반수를 동시에 장악하는 성과를 이뤄 냈다.
 
  그러나 요즘 정청래 대표의 행보는 원팀을 강조하던 과거와 다르다. 자신의 지지층인 강성 당원과 힘을 잃은 친문계를 규합해 자신의 세력으로 만들려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자꾸 부딪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후계자를 만들지 않았고 정청래를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서로 각을 세우는 모습이 계속 언론에 노출된다. 지금은 야당이 뭐낙 엉망이어서 민주당 지지율이 유지되고 있지만,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우려가 크다.”
 

민주당 分黨 小史


민주당은 2000년 이후 두 차례의 분당 사태를 겪었다. 1차 분당은 2003년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에서 친노무현계가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일이고, 2차 분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반노-반문계가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한 일이다. 두 번 모두 탈당 세력이 창당 직후 선거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2003년에는 새천년민주당 구주류와 신주류의 갈등이 심화됐다. 노무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소장파와 영남파의 신주류, 동교동계와 호남을 중심으로 한 구주류의 갈등이 이어졌고, 당내 회의에서 몸싸움이 벌어지는 장면이 언론에 생생하게 보도되면서 결국 신주류 의원 31명이 탈당했다. 또 탈당 세력이 창당한 열린우리당에 대통령이 입당하며 여당이 바뀌고, 구(舊) 여당이 대통령을 탄핵소추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두 번째 분당 사태는 2015년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2014년 두 번의 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한 후 친노계 초선인 문재인 의원이 당대표에 선출됐다. 이후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이 잇따라 선거에 패배하면서 문재인 리더십은 흔들렸고 결국 호남계와 비노계가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2022년에도 민주당은 대선과 지선 패배 원인을 놓고 친명계와 친문계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위기를 겪었다. 이재명 당대표의 팬덤 정치와 공천 및 당무 전횡에 친문계가 반발했고, 친명계 의원들이 비명계를 원색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비명계가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이라는 분당설이 나왔지만, 구심점 부재 등의 이유로 불발됐다.

 
  이해찬의 부재
 
  한동안 계파가 사라졌던 민주당에서 다시 계파 갈등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시점이 민주당 내부 중재자였던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사망 시점과 일치한다는 시각도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그동안 잠재돼 있던 갈등이 이해찬의 부재를 계기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라고 했다.
 
  이 전 총리는 지난 1월 25일 별세했다. 장례식장에서 정청래 대표와 김민석 총리가 상주(喪主)를 자처하며 ‘상주 경쟁’을 했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두 사람은 모두 차기 당권과 대권을 노리는 상황으로, 그만큼 이 전 총리의 존재감이 컸다는 의미다.
 
  이해찬 전 총리는 민주당에서 계파를 불문하고 존재감을 인정받았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동교동계 핵심 인사였으면서 친노 세력의 좌장이었을 정도로 계파 불문하고 늘 당 주류였고, 동시에 킹메이커였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 멘토로 이 대통령의 정치활동을 꾸준히 지원했고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이재명 정부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받았다.
 
  한 원로급 전직 의원은 “당내 많은 원로가 있지만 이해찬 전 총리의 역할은 각별했다”고 했다.
 
  “민주당계 정당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이합집산(離合集散)을 해 왔다. 그런데 2015년 12월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이 출범한 후 10년 이상 분당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이 전 총리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이 전 총리는 체질적으로 계파를 싫어했다. 더불어민주당 출범 직전엔 족장회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요 계파에 중소 계파까지 난립하는 혼란이 있었고 문재인 당대표가 이를 수습할 능력이 없었는데, 이를 정리한 사람이 이 전 총리다. 어느 계파도 이 전 총리의 말은 들었다. 사실 더불어민주당 내부 갈등과 위기가 적지 않았다. 친문 패권주의나 이재명 일극(一極) 체제에 반발하는 세력이 왜 없었겠나. 이 전 총리가 중재에 나서면 갈등이 극한까지는 가지 않았다. 명-청 갈등 정도는 이 전 총리가 충분히 중재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이 전 총리와 의정활동을 함께 했던 국민의힘 한 다선(多選) 의원은 “이 전 총리의 다른 면은 비판할 점도 많지만 당내 리더십과 중재력은 높이 평가한다”며 “이 전 총리의 존재 자체로 최근 10여 년간의 민주당이 유지될 수 있었고, 국민의힘에도 그런 어른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고 했다.
 
 
  차기 당권·대권 경쟁 구도는
 
  이재명 대통령은 당대표 시절 유일한 대통령 후보로 우뚝 서는 일극 체제를 완성했다. 대선을 앞두고 최대 걸림돌인 사법 리스크가 있었음에도 대안, 즉 ‘플랜 B’도 없었다. 이 대통령처럼 강성 민주당원과 ‘개딸’들의 지지를 받는 정청래 의원이 대안 또는 차기 주자로 지목되기도 했지만 이 대통령과 친명계는 이를 외면했다. 이 대통령의 경쟁자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통령은 후계 구도를 만들지 않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차기 당대표 선거에도 크게 개입하지 않았다. 2024년 총선 당시 ‘비명횡사(친이재명계가 아니면 공천을 주지 않았다는 뜻)’ 공천을 통해 당을 장악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민주당 한 원외 지역위원장은 “이 대통령은 당보다 국정이 우선이었을 것이고, 이미 민주당이 이재명 일극 체제라고 생각해 친명계가 알아서 잘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해찬 없는 민주당의 앞날은…
 
  현재 민주당의 차기 대권 구도는 정청래 대표와 김민석 총리 2강(强) 구도다. 이 대통령은 후계 구도에 대해 언급하거나 뜻을 내비친 적이 없다. 다만 정 대표는 당원이 뽑은 인물이고, 김 총리는 이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로 무게중심이 김 총리에 실려 있는 형국이다.
 
  두 사람 모두 2027년 8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를 노리고 있다. 임기 2년을 모두 채운다면 2029년 8월까지다. 22대 대통령 선거는 2030년 3월 27일이어서 직전 2년간 당을 지휘해 온 당대표가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정청래 대표가 1인 1표제 당헌 개헌을 강행하고, 조국혁신당 합당을 최고위원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발표하는 등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당대표를 연임하려는 이유다.
 
  80대에 접어든 민주당 한 전직 의원은 이 전 총리의 부재를 무척 아쉬워했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계파가 경쟁하며 발전해 왔다. 이해찬 전 총리가 있었으면 정청래와 김민석 두 사람을 조화롭게 경쟁시키면서 다른 대권 주자들도 적절히 경쟁할 수 있도록 중재했을 것이고, 차기 정권 탄생에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 전 총리가 말했던 ‘민주당 50년 집권론’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이해찬은 탁월한 전략가이자 강력한 중재자였고, 그가 없는 민주당의 앞날이 벌써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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