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역사 청산은 ‘민주화 세력과 권위주의 세력 간 협약’의 부정·해체 의미”(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 문재인 정권, ‘적폐 청산’ 내걸고 보수 정당 고립시키면서 ‘검찰 개혁’ 추진
⊙ 민주당 정당법 개정안,“내란·외환죄로 탄핵·유죄 판결 받은 대통령이 속한 정당, 반드시 해산 청구해야… 첫 전국 단위 선거에 후보 못 내”
⊙ 대법관 증원·재판訴願 추진 등 사법부 흔드는 입법 추진
⊙ 문재인 정권, ‘적폐 청산’ 내걸고 보수 정당 고립시키면서 ‘검찰 개혁’ 추진
⊙ 민주당 정당법 개정안,“내란·외환죄로 탄핵·유죄 판결 받은 대통령이 속한 정당, 반드시 해산 청구해야… 첫 전국 단위 선거에 후보 못 내”
⊙ 대법관 증원·재판訴願 추진 등 사법부 흔드는 입법 추진
- 사진=뉴시스
이재명(李在明) 대통령은 6월 10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3대 특검법(내란·김건희·해병대원 특검법)을 의결·공포했다.
3개 특검은 매머드급이라 불릴 만큼 규모가 압도적이다. 특히 이른바 ‘내란 특검’의 수사 인력은 검사 60명을 포함해 총 267명으로, 9년 전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의 약 2.5배에 달한다. 수사 기간도 최장 170일로 그때보다 70일 길다. 수사 범위 역시 광범위해 내란, 외환(外患) 유치 행위, 군사반란 등 비상계엄 관련 범죄 의혹 11건을 다룬다. 김건희 특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명품 가방 수수, 공천 개입 등 16건을 대상으로 한다. 해병대원 특검까지 포함하면 전체 수사 대상은 35건에 이른다. 특히 이번 특검법은 ‘수사 과정에서 인지(認知)된 관련 사건’까지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전(前) 정권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구조다. 중요한 건, 3대 특검 가동이 ‘내란 종식’을 명분으로 한 본격적인 정치적·사법적 정리 작업의 출발점이란 점이다.
“文, 집권 후 ‘증오 마케팅’ 몰두”
이재명 대통령의 ‘내란 종식’은 어떻게 진행될까? 이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파면 후 집권한 문재인 정권의 ‘적폐 청산’ 전개 과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2017년 5월, 박근혜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당선돼 집권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사실상 국정 운영의 핵심 기조로 삼았다. 문 전 대통령은 압도적인 지지율에 힘입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진, 장·차관, 공공기관장, 사법부 주요 인사, 국가정보원 간부, 심지어 군 수뇌부까지 대상으로 ‘적폐 청산’을 추진했다. 그 파장은 정치·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선악(善惡) 프레임에 기댄 문 전 대통령의 흑백논리적 사고 탓에 사회 전반에서 갈등이 고조됐다.
정치학계 원로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2023년 3월 18일, 한 강연에서 “문재인 정부 하에서 이뤄진 적폐 청산·역사 청산은, 1980년대 이후 한국 민주화를 만들었던 정치·사회적 기초로서의 ‘민주화 세력과 권위주의 세력 간 협약’의 부정과 해체를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진보·보수 간 정치적 갈등의 정도가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강해졌고, 그것이 여러 영역에서 중첩되면서 민주주의의 안정적 운영을 위협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2021년 4월 출간한 《부족국가 대한민국》에서 문재인 정권에 대해 “집권 후엔 ‘보수의 악마화’를 노린 증오 마케팅에만 몰두했다”고 평가하면서 “한국형 계급투쟁에서 핵심인 부동산 문제를 방치하거나 악화시켜 국민 절반 이상에게 고통을 안기고 빈부 격차를 심화시켰다”며 “그런 세력을 진보로 부를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적폐 청산’은 소위 ‘국정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적 단죄를 넘어 보수 야당에 궤멸적 타격을 가하는 수단으로 작동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직후 혼란에 빠졌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정권과 그 지지층의 대대적인 융단폭격식 ‘적폐’ 공세에 좀처럼 지지세를 회복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시기 청와대와 여권은 ‘적폐 청산’을 명분으로 국내 보수 세력을 배제하는 동시에, 김정은과의 연쇄 정상회담을 통해 전례 없는 평화 메시지를 집중적으로 확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한번도 명확히 밝힌 적 없는 ‘비핵화’를 전제로 근거 없는 기대를 조장했고, 친여(親與) 매체와 시민단체는 낙관론을 확산시키며 전방위적인 여론전을 벌였다. 그 결과 문재인 정권의 대북(對北)정책과 정치 운영 방식은 남한 내 이념 균열을 심화시키고 안보 의식을 약화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북한이 통일전선 공작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구도를 남한 사회 내부에 현실화시켰다.
文 ‘적폐 프레임’에 옥죄인 보수 정당
문재인 정부 시기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은 정치적으로 철저히 고립됐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 것이 2018년 6·13 지방선거 결과다.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대구시장과 경북지사 단 2곳만 차지했고 더불어민주당이 14곳을 석권했다(1곳은 무소속). 광역의원 비례대표 투표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51.42%, 자유한국당은 27.76%를 기록했다.
국회에서도 자유한국당은 사실상 배제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과반 의석에는 못 미쳤지만 바른미래당 호남계·정의당·민주평화당 등과의 연대, 패스트트랙 제도, ‘4+1 협의체’ 등을 통해 입법 주도권을 확보했다.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수용하며 소수 정당의 협조를 얻었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찰 개혁 법안을 단독 처리할 수 있는 입법 동력을 구축했다. 공식적인 과반 정당이 아니면서도 분열된 중도 야당과의 연합, 제도적 수단 활용, 소수 정당과의 유기적 협조를 통해 실질적으로 입법 주도권을 장악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 시기 국회는 다당제 구조 속에서도 ‘반(反) 자유한국당 대 자유한국당’이라는 구도로 재편됐다. 이는 문재인 정권의 공수처 설치와 검찰 수사권 약화 등을 관철하는 핵심 동력이었다.
그사이 자유한국당은 ‘적폐’라는 프레임에 옥죄여 정권에 대한 감시와 비판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존재감을 상실했다. 문재인 정권 몰락의 신호탄이 된 ‘조국(曺國) 사태’에서 잠시 반사이익을 얻는 듯했지만 2020년 21대 총선에서 다시 참패했다. ‘적폐 청산’은 정치적 경쟁 구도를 무너뜨리고 국내 정치 지형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들었다. 그에 따라 더불어민주당과 위성정당은 21대 총선에서 180석(더불어민주당 163석+더불어시민당 17석)을 확보하며 거대 여당이 됐다. 행정부와 입법부, 지방권력까지 여당이 독점하는 정치 구조 속에서 야당의 정치적 영향력은 극도로 약화됐다.
이재명, 市長 시절 “어설픈 관용과 용서가 혼란 불러”
이재명 대통령의 ‘내란 종식’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적폐 청산’보다 집요하게 전개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 자유한국당이 ‘적폐 청산’에 반발하자 “작금의 혼란은 어설픈 관용과 용서가 부른 참극이다” “도둑 퇴치 싫어하는 건 도둑 패거리들뿐” “적폐와 불의를 청산하는 게 정치 보복이라면 그런 정치 보복은 만날 해도 된다” 등의 주장을 했다. 대선 과정에서도 ‘내란 세력 척결’을 강조했다.
출범 한 달 된 이재명 정부가 ‘내란 종식’ 명목으로 추진 중인 조치들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전·현직 인사들에 대해 12·3 비상계엄 관련 특검 수사가 개시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당법 개정을 통해 내란이나 외환의 죄로 파면된 대통령이 소속한 정당에 대해 해산 심판을 청구할 근거를 마련하려 하고 있다. ▲동시에 검찰청 폐지, 수사권 분산, 공소청 신설 등을 포함하는 검찰 개혁 법안을 재추진하고 있으며, ▲대법관 정수(定數) 확대와 법원 인사 구조 개편 논의도 병행하고 있다. ▲언론 분야에서는 방송법·언론중재법 개정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런 조치들은 입법·행정·사법 전반의 제도 변경을 초래한다. 그 결과 정치적 세력 구도와 권력구조의 재편(再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제도적 정당성과 절차적 합법성 여부와는 별개로, 정치적 견제 세력의 약화와 특정 진영의 구조적 우위를 확보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을 빌미로, 그가 속해 있던 국민의힘을 정당 해산 대상으로 삼기 위한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내란이나 외환의 죄로 탄핵 파면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대통령이 속한 정당에 대해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해산심판을 ‘반드시’ 청구하게 했고, 해당 정당은 해산심판 결정이 날 때까지 정당 활동이 제한된다. 대통령이 ‘탄핵 파면’과 ‘형(刑) 확정’ 요건 중 하나라도 충족하면 그가 속한 정당은 이후 처음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 후보자를 낼 수 없게 했다. 대통령이 당적(黨籍)을 이탈한 경우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윤석열 개인 판단’ 이유로 정당을 해산?
헌법 제8조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해산을 “청구할 수 있다”고 돼있다. 정부 판단에 따른 재량(裁量) 규정이다. 개정안은 이를 강행 규정으로 바꿔, 정치적 판단과 무관하게 해산 절차를 진행하도록 강제한다. 정부의 재량권을 입법으로 막고 헌법 우위 원칙과 권력 분립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당·의회민주주의에서 정당 해산은 가장 강력한 제재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서 정당 해산 요건으로 ‘실질적 해악 발생의 명백한 위험’을 요구했다. 당시 통합진보당은 강령과 주요 활동이 북한 체제 추종과 폭력 혁명 옹호로 이어졌다는 판단을 받았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거나 폭력을 선동한 정황이 없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정당 방침이나 집단적 결정이 아닌 대통령의 개인적 판단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개인의 위헌 행위를 이유로 그가 속한 정당에 해산 심판을 청구하고 선거 참여까지 제한하는 것은 ‘책임주의’와 ‘비례의 원칙’ 모두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부는 선거 직전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해 심판 기간중 해당 정당의 정치활동을 막을 수 있다. 그 같은 피청구 사유가 발생한 정당은 해산심판 청구 전이라도 공직 선거에 후보자 등록을 할 수 없다. 헌재 판단이 나오기 전부터 사실상 선거 참여가 봉쇄되는 셈이다. 해산심판이 법적 절차가 아니라 정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당의 존립권과 유권자의 선택권도 침해된다. 게다가 대통령이 탈당한 경우까지 소급 적용하면 정치 책임과 법적 책임의 구분도 무너진다. 정당 해산이나 후보자 추천 제한은 정치 경쟁 자체를 흔든다. 제1야당이 배제되면 권력 견제는 작동하지 않고 일당(一黨) 체제로 흐를 수 있다.
검찰 개혁안은 ‘사실상 해체’수준
이재명 정권이 추진 중인 검찰 조직 해체 구상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검찰을 사실상 없애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민주당은 검찰청을 폐지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 기소는 공소청이 전담하는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를 명분으로 기존 검찰 조직을 해체하겠다는 구상이다. 여권은 수사 전반을 통제할 ‘국가수사위원회’ 구상도 병행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 역시 공수처 설치,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통해 검찰 권한을 축소한 바 있다. 문 정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경험 탓에 검찰을 ‘통제 불가능한 권력’으로 간주했다. 특히 검찰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월성 1호기 조작,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등 정권 인사 수사에 나서자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축소하고 사정(司正) 권한을 행정부 산하 기관에 집중시켰다. 당시에도 강한 반발이 있었고, 특히 검수완박은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검찰을 견제할 필요성엔 공감대가 형성됐으나, 무리한 입법은 지지율 하락과 정권 재창출 실패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다. 그나마 당시 추진은 제도의 틀 안에서 조정된 측면이 있었고, 기존 검찰 조직은 유지됐다.
현 이재명 정권은 검찰 조직 전체를 해체하는 방향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반복되는 검찰 비난과 수사기관 해체 수준의 입법 추진은 사법 개혁이 아닌 사법 질서 해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분리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두 정치권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로 재편된다는 우려가 크다. 경찰이 수사를, 공소청이 기소를 맡는 구조에서는 양 기관 모두 행정부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다. 권력에 불리한 사건은 수사가 무산되며, 그 반대 경우는 과잉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국민이 권력에 불리한 고발을 해도 수사가 개시되지 않거나, 반대로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이 표적 수사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 법과 절차에 기반한 수사가 실종되면 법치가 무너진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사법권을 장악하면 권력 집중이 심화되고 민주주의 기반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헌정 질서 흔드는 대법관 증원
이재명 정권이 추진하는 법원 구조 개편은 명목상 사법 효율성 개선을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사법권에 대한 구조적 통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訴願) 추진 등의 흐름을 종합하면 ‘사법부의 정권 예속화’를 위한 입법 전략이란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법관을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처리했다. 표면적으로는 대법원이 맡는 상고심의 적체(積滯) 해소와 재판 지연 방지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현재 대법관 1인이 연간 4000건에 달하는 사건을 처리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 같은 법안은 일견 타당하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대법관 정원이 30명으로 늘어나는 순간, 전원합의체 운영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전원이 참여해 중요한 법적 쟁점에 대해 통일된 기준을 제시하는 대법원의 핵심 심의 기구다. 법적 안정성과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현재 대법관 14명 체제에서도 회의 일정 조율이 어려워 한 달에 1~2회 개최하는 데 그친다.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사건 역시 판결까지 수개월이 소요되고 실질적인 논의는 일부 대법관 중심으로 이뤄지는 등 집단적 심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관 수를 현재의 2배 이상인 30명으로 증원할 경우 전원합의체의 효율적 운영은 불가능해지고 대법원의 ▲최종심 역할 ▲법률 기준 정립 ▲사회적 합의 도출 등 기능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대법관 증원이 이뤄지면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내 전체 대법관의 절반 이상을 새로 임명할 수 있다. 친여 성향 인사가 대법원에 대거 포진할 경우 대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대통령이나 특정 정당이 행정부와 입법부에 이어 사법부 구성까지 사실상 좌우하게 되면 권력 분립이라는 헌정 질서의 근간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재판소원은 4심제 해당… 사법권 중복
여기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추진하는 헌법재판소의 ‘재판소원’도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 재판소원이란 법원의 재판을 대상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만약 이 제도가 도입되면 대법원 판결에 불복한 이들이 헌법재판소를 통해 다시 다툴 수 있게 된다. 실질적으로는 사실상 4심제로 연결되는 구조다.
재판소원은 명백한 사법권 중복이다. 헌법 제101조는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1항)고 규정한다. 또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 법원으로 조직된다”(2항)고 명시한다. 헌법재판소는 사법부에 포함되지 않는 독립한 헌법기관이다. 개헌 없이 하위 법률을 개정해 헌법재판소가 법원의 재판에 개입하여 사실상 사법권을 분점(分占)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헌법 위반이다. 헌재까지 4심제가 허용될 경우 법적 안정성은 흔들리고, 최종 판단에 대한 예측 가능성도 사라진다. 법원과 헌재가 충돌할 경우, 전체 사법 시스템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대법원의 무력화, 헌법재판소의 정치화
더 큰 문제는 이 제도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대법원 구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헌법재판소까지 친정부 인사로 채우면, 정권이 입법·행정뿐 아니라 사법부의 최종 판단까지 틀어쥐게 된다. 이승엽 변호사처럼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변호를 맡았던 인물이 헌법재판관 후보군에 포함됐다는 사실은 그런 우려를 현실로 만든다.
법치주의의 핵심은 독립적인 사법부다. 그 사법부가 권력의 인사로 채워지고 판결이 권력에 따라 뒤집히는 구조가 정착되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게 될 수도 있다. 이재명 정권이 밀어붙이는 ‘사법 개편’은 단순한 제도 개선이 아니다. 형식은 제도 개편이나 실상은 ‘사법의 정치화’다. 대법원의 무력화, 헌법재판소의 정치화가 동시에 추진된다면 법원은 권력의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정권의 영향권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표면적으로는 헌법에 따른 임명권 행사에 불과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친정부 성향 재판관이 헌재의 과반을 차지하는 구조가 점차 완성돼 갈 수밖에 없다.
현재 헌법재판관 9인은 대통령이 3인을 직접 지명하고, 대법원장이 지명한 3인을 대통령이 임명하며, 나머지 3인은 국회가 선출해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있다. 이에 따라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중 대통령 지명 몫 3인 가운데 2명의 후임을 새로 임명하게 되어 헌재 재판관의 성향 분포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기회를 갖게 된다. 그 시점은 2029년 3월과 4월이다. 이때는 대법원장 지명 몫 재판관 2인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으로, 해당 재판관의 후임은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지명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들 역시 대통령의 간접적인 영향권에 놓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해 임명된 마은혁, 정계선 재판관까지 포함하면 이재명 정권에 우호적인 성향의 재판관이 헌재 내 과반을 구성하게 되는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대통령 탄핵심판과 법률 위헌심판에는 9명 중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따라서 헌재에 친정부 성향 재판관이 4인 이상 존재할 경우 사실상 탄핵심판도 위헌법률심사도 차단되는 구조가 될 위험이 있다.
‘개혁’으로 포장된 언론 통제도
이재명 대통령이 추진할 ‘내란 종식’에는 이른바 ‘언론 개혁’도 포함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그간 보여 온 언론 관련 언행과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방송법 개정 시도는 정권 차원의 언론 통제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이 입법·행정 수단을 통해 구체화될 여지도 있다.
정권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하고 사법부와 헌법재판소까지 영향력 아래 둔 상황에서 언론마저 통제하려 한다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권력 분립과 언론 자유가 동시에 붕괴되는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시민의 알 권리와 공론장(公論場)은 무너지고, 정권 비판은 ‘가짜뉴스’로 낙인찍혀 제재받을 수 있다. 야당·시민사회·학계의 표현의 자유 역시 위축되고 선거의 공정성도 심각하게 훼손될 위험이 있다. 권력이 언론까지 장악한 상황은 자정(自淨) 기능이 마비된 일당 지배 체제로 이어질 수 있다. 언론 통제가 민주주의의 붕괴와 권위주의 체제로의 이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대외적으로는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권력자가 장기 집권 중인 헝가리,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실패한 文 정권을 반면교사 삼아야
이재명 정권은 집권 초반 여소야대 국면을 경험했던 문재인 정권과 달리, 국회 과반 확보 등 제도적으로 보다 강한 권력 기반을 갖추고 출범했다. 이에 따라 ‘내란 종식’을 명분으로 한 정치·제도적 재편이 지속될 경우 더불어민주당 중심의 일당 지배 체제가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이해찬 씨가 입에 올려 논란이 된 ‘20년 집권’ ‘50년 집권’ 발언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재명 정권은 문재인 정권에 비해 낮은 지지율로 출범했다. 대통령이 다수의 형사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 신분으로 당선됐다는 점에서 정치적 정당성과 도덕성 측면에서 상당한 약점을 안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권의 일방적인 고강도 권력 재편 시도는 중장기적으로 국민적 반발을 자초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정권은 적폐 청산에 몰두하다 5년 만에 심판된 문재인 정권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권의 ‘적폐 청산’은 국정 운영 동력과 지지층 결집 수단으로 작동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치 보복’과 ‘정적(政敵) 제거’로 변질해 역풍에 직면했다.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정권의 도덕성에 중대한 타격을 입었는데도 내로남불로 일관하면서 국민적 분노를 자초했다. 부동산 가격 폭등, 고용 감소, 물가 폭등을 초래한 재정정책 등 무능한 국정 운영 행태에 민심이 대거 이탈했다. 특히 문재인 정권의 경제정책은 고용과 자산, 교육, 민생 영역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등 총체적으로 실패했다. 결국 문재인 정권은 2021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데 이어 2022년 대선에서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3개 특검은 매머드급이라 불릴 만큼 규모가 압도적이다. 특히 이른바 ‘내란 특검’의 수사 인력은 검사 60명을 포함해 총 267명으로, 9년 전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의 약 2.5배에 달한다. 수사 기간도 최장 170일로 그때보다 70일 길다. 수사 범위 역시 광범위해 내란, 외환(外患) 유치 행위, 군사반란 등 비상계엄 관련 범죄 의혹 11건을 다룬다. 김건희 특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명품 가방 수수, 공천 개입 등 16건을 대상으로 한다. 해병대원 특검까지 포함하면 전체 수사 대상은 35건에 이른다. 특히 이번 특검법은 ‘수사 과정에서 인지(認知)된 관련 사건’까지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전(前) 정권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구조다. 중요한 건, 3대 특검 가동이 ‘내란 종식’을 명분으로 한 본격적인 정치적·사법적 정리 작업의 출발점이란 점이다.
“文, 집권 후 ‘증오 마케팅’ 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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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란 종식’을 앞세운 이재명 정권의 수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 그 추종 세력뿐 아니라 보수 진영 전체로 그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사진=뉴시스 |
2017년 5월, 박근혜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당선돼 집권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사실상 국정 운영의 핵심 기조로 삼았다. 문 전 대통령은 압도적인 지지율에 힘입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진, 장·차관, 공공기관장, 사법부 주요 인사, 국가정보원 간부, 심지어 군 수뇌부까지 대상으로 ‘적폐 청산’을 추진했다. 그 파장은 정치·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선악(善惡) 프레임에 기댄 문 전 대통령의 흑백논리적 사고 탓에 사회 전반에서 갈등이 고조됐다.
정치학계 원로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2023년 3월 18일, 한 강연에서 “문재인 정부 하에서 이뤄진 적폐 청산·역사 청산은, 1980년대 이후 한국 민주화를 만들었던 정치·사회적 기초로서의 ‘민주화 세력과 권위주의 세력 간 협약’의 부정과 해체를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진보·보수 간 정치적 갈등의 정도가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강해졌고, 그것이 여러 영역에서 중첩되면서 민주주의의 안정적 운영을 위협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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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5월 26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판문점에서 만나 포옹했다. 당시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은 정권과 친문 지지층의 적폐 공세와 ‘비핵화 사기극’을 펼친 북한 김정은의 협공에 무너졌다. 사진=뉴시스 |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적폐 청산’은 소위 ‘국정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적 단죄를 넘어 보수 야당에 궤멸적 타격을 가하는 수단으로 작동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직후 혼란에 빠졌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정권과 그 지지층의 대대적인 융단폭격식 ‘적폐’ 공세에 좀처럼 지지세를 회복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시기 청와대와 여권은 ‘적폐 청산’을 명분으로 국내 보수 세력을 배제하는 동시에, 김정은과의 연쇄 정상회담을 통해 전례 없는 평화 메시지를 집중적으로 확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한번도 명확히 밝힌 적 없는 ‘비핵화’를 전제로 근거 없는 기대를 조장했고, 친여(親與) 매체와 시민단체는 낙관론을 확산시키며 전방위적인 여론전을 벌였다. 그 결과 문재인 정권의 대북(對北)정책과 정치 운영 방식은 남한 내 이념 균열을 심화시키고 안보 의식을 약화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북한이 통일전선 공작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구도를 남한 사회 내부에 현실화시켰다.
文 ‘적폐 프레임’에 옥죄인 보수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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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적폐 청산’은 사회적 갈등과 균열을 심화했다. 사진=뉴시스 |
국회에서도 자유한국당은 사실상 배제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과반 의석에는 못 미쳤지만 바른미래당 호남계·정의당·민주평화당 등과의 연대, 패스트트랙 제도, ‘4+1 협의체’ 등을 통해 입법 주도권을 확보했다.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수용하며 소수 정당의 협조를 얻었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찰 개혁 법안을 단독 처리할 수 있는 입법 동력을 구축했다. 공식적인 과반 정당이 아니면서도 분열된 중도 야당과의 연합, 제도적 수단 활용, 소수 정당과의 유기적 협조를 통해 실질적으로 입법 주도권을 장악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 시기 국회는 다당제 구조 속에서도 ‘반(反) 자유한국당 대 자유한국당’이라는 구도로 재편됐다. 이는 문재인 정권의 공수처 설치와 검찰 수사권 약화 등을 관철하는 핵심 동력이었다.
그사이 자유한국당은 ‘적폐’라는 프레임에 옥죄여 정권에 대한 감시와 비판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존재감을 상실했다. 문재인 정권 몰락의 신호탄이 된 ‘조국(曺國) 사태’에서 잠시 반사이익을 얻는 듯했지만 2020년 21대 총선에서 다시 참패했다. ‘적폐 청산’은 정치적 경쟁 구도를 무너뜨리고 국내 정치 지형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들었다. 그에 따라 더불어민주당과 위성정당은 21대 총선에서 180석(더불어민주당 163석+더불어시민당 17석)을 확보하며 거대 여당이 됐다. 행정부와 입법부, 지방권력까지 여당이 독점하는 정치 구조 속에서 야당의 정치적 영향력은 극도로 약화됐다.
이재명, 市長 시절 “어설픈 관용과 용서가 혼란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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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2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 붙은 ‘국민의힘 해체’ 촉구 전단. 민주당 의원 일부는 국민의힘 해산을 노리고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진=뉴시스 |
출범 한 달 된 이재명 정부가 ‘내란 종식’ 명목으로 추진 중인 조치들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전·현직 인사들에 대해 12·3 비상계엄 관련 특검 수사가 개시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당법 개정을 통해 내란이나 외환의 죄로 파면된 대통령이 소속한 정당에 대해 해산 심판을 청구할 근거를 마련하려 하고 있다. ▲동시에 검찰청 폐지, 수사권 분산, 공소청 신설 등을 포함하는 검찰 개혁 법안을 재추진하고 있으며, ▲대법관 정수(定數) 확대와 법원 인사 구조 개편 논의도 병행하고 있다. ▲언론 분야에서는 방송법·언론중재법 개정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런 조치들은 입법·행정·사법 전반의 제도 변경을 초래한다. 그 결과 정치적 세력 구도와 권력구조의 재편(再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제도적 정당성과 절차적 합법성 여부와는 별개로, 정치적 견제 세력의 약화와 특정 진영의 구조적 우위를 확보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을 빌미로, 그가 속해 있던 국민의힘을 정당 해산 대상으로 삼기 위한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내란이나 외환의 죄로 탄핵 파면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대통령이 속한 정당에 대해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해산심판을 ‘반드시’ 청구하게 했고, 해당 정당은 해산심판 결정이 날 때까지 정당 활동이 제한된다. 대통령이 ‘탄핵 파면’과 ‘형(刑) 확정’ 요건 중 하나라도 충족하면 그가 속한 정당은 이후 처음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 후보자를 낼 수 없게 했다. 대통령이 당적(黨籍)을 이탈한 경우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윤석열 개인 판단’ 이유로 정당을 해산?
헌법 제8조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해산을 “청구할 수 있다”고 돼있다. 정부 판단에 따른 재량(裁量) 규정이다. 개정안은 이를 강행 규정으로 바꿔, 정치적 판단과 무관하게 해산 절차를 진행하도록 강제한다. 정부의 재량권을 입법으로 막고 헌법 우위 원칙과 권력 분립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당·의회민주주의에서 정당 해산은 가장 강력한 제재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서 정당 해산 요건으로 ‘실질적 해악 발생의 명백한 위험’을 요구했다. 당시 통합진보당은 강령과 주요 활동이 북한 체제 추종과 폭력 혁명 옹호로 이어졌다는 판단을 받았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거나 폭력을 선동한 정황이 없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정당 방침이나 집단적 결정이 아닌 대통령의 개인적 판단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개인의 위헌 행위를 이유로 그가 속한 정당에 해산 심판을 청구하고 선거 참여까지 제한하는 것은 ‘책임주의’와 ‘비례의 원칙’ 모두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부는 선거 직전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해 심판 기간중 해당 정당의 정치활동을 막을 수 있다. 그 같은 피청구 사유가 발생한 정당은 해산심판 청구 전이라도 공직 선거에 후보자 등록을 할 수 없다. 헌재 판단이 나오기 전부터 사실상 선거 참여가 봉쇄되는 셈이다. 해산심판이 법적 절차가 아니라 정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당의 존립권과 유권자의 선택권도 침해된다. 게다가 대통령이 탈당한 경우까지 소급 적용하면 정치 책임과 법적 책임의 구분도 무너진다. 정당 해산이나 후보자 추천 제한은 정치 경쟁 자체를 흔든다. 제1야당이 배제되면 권력 견제는 작동하지 않고 일당(一黨) 체제로 흐를 수 있다.
검찰 개혁안은 ‘사실상 해체’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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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8월 17일,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출석한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민주당은 검찰청을 폐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검찰 관련 법안들을 발의했다. 사진=뉴시스 |
문재인 정권 역시 공수처 설치,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통해 검찰 권한을 축소한 바 있다. 문 정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경험 탓에 검찰을 ‘통제 불가능한 권력’으로 간주했다. 특히 검찰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월성 1호기 조작,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등 정권 인사 수사에 나서자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축소하고 사정(司正) 권한을 행정부 산하 기관에 집중시켰다. 당시에도 강한 반발이 있었고, 특히 검수완박은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검찰을 견제할 필요성엔 공감대가 형성됐으나, 무리한 입법은 지지율 하락과 정권 재창출 실패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다. 그나마 당시 추진은 제도의 틀 안에서 조정된 측면이 있었고, 기존 검찰 조직은 유지됐다.
현 이재명 정권은 검찰 조직 전체를 해체하는 방향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반복되는 검찰 비난과 수사기관 해체 수준의 입법 추진은 사법 개혁이 아닌 사법 질서 해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분리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두 정치권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로 재편된다는 우려가 크다. 경찰이 수사를, 공소청이 기소를 맡는 구조에서는 양 기관 모두 행정부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다. 권력에 불리한 사건은 수사가 무산되며, 그 반대 경우는 과잉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국민이 권력에 불리한 고발을 해도 수사가 개시되지 않거나, 반대로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이 표적 수사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 법과 절차에 기반한 수사가 실종되면 법치가 무너진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사법권을 장악하면 권력 집중이 심화되고 민주주의 기반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헌정 질서 흔드는 대법관 증원
이재명 정권이 추진하는 법원 구조 개편은 명목상 사법 효율성 개선을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사법권에 대한 구조적 통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訴願) 추진 등의 흐름을 종합하면 ‘사법부의 정권 예속화’를 위한 입법 전략이란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법관을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처리했다. 표면적으로는 대법원이 맡는 상고심의 적체(積滯) 해소와 재판 지연 방지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현재 대법관 1인이 연간 4000건에 달하는 사건을 처리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 같은 법안은 일견 타당하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대법관 정원이 30명으로 늘어나는 순간, 전원합의체 운영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전원이 참여해 중요한 법적 쟁점에 대해 통일된 기준을 제시하는 대법원의 핵심 심의 기구다. 법적 안정성과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현재 대법관 14명 체제에서도 회의 일정 조율이 어려워 한 달에 1~2회 개최하는 데 그친다.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사건 역시 판결까지 수개월이 소요되고 실질적인 논의는 일부 대법관 중심으로 이뤄지는 등 집단적 심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관 수를 현재의 2배 이상인 30명으로 증원할 경우 전원합의체의 효율적 운영은 불가능해지고 대법원의 ▲최종심 역할 ▲법률 기준 정립 ▲사회적 합의 도출 등 기능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대법관 증원이 이뤄지면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내 전체 대법관의 절반 이상을 새로 임명할 수 있다. 친여 성향 인사가 대법원에 대거 포진할 경우 대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대통령이나 특정 정당이 행정부와 입법부에 이어 사법부 구성까지 사실상 좌우하게 되면 권력 분립이라는 헌정 질서의 근간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재판소원은 4심제 해당… 사법권 중복
여기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추진하는 헌법재판소의 ‘재판소원’도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 재판소원이란 법원의 재판을 대상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만약 이 제도가 도입되면 대법원 판결에 불복한 이들이 헌법재판소를 통해 다시 다툴 수 있게 된다. 실질적으로는 사실상 4심제로 연결되는 구조다.
재판소원은 명백한 사법권 중복이다. 헌법 제101조는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1항)고 규정한다. 또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 법원으로 조직된다”(2항)고 명시한다. 헌법재판소는 사법부에 포함되지 않는 독립한 헌법기관이다. 개헌 없이 하위 법률을 개정해 헌법재판소가 법원의 재판에 개입하여 사실상 사법권을 분점(分占)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헌법 위반이다. 헌재까지 4심제가 허용될 경우 법적 안정성은 흔들리고, 최종 판단에 대한 예측 가능성도 사라진다. 법원과 헌재가 충돌할 경우, 전체 사법 시스템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대법원의 무력화, 헌법재판소의 정치화
더 큰 문제는 이 제도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대법원 구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헌법재판소까지 친정부 인사로 채우면, 정권이 입법·행정뿐 아니라 사법부의 최종 판단까지 틀어쥐게 된다. 이승엽 변호사처럼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변호를 맡았던 인물이 헌법재판관 후보군에 포함됐다는 사실은 그런 우려를 현실로 만든다.
법치주의의 핵심은 독립적인 사법부다. 그 사법부가 권력의 인사로 채워지고 판결이 권력에 따라 뒤집히는 구조가 정착되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게 될 수도 있다. 이재명 정권이 밀어붙이는 ‘사법 개편’은 단순한 제도 개선이 아니다. 형식은 제도 개편이나 실상은 ‘사법의 정치화’다. 대법원의 무력화, 헌법재판소의 정치화가 동시에 추진된다면 법원은 권력의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정권의 영향권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표면적으로는 헌법에 따른 임명권 행사에 불과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친정부 성향 재판관이 헌재의 과반을 차지하는 구조가 점차 완성돼 갈 수밖에 없다.
현재 헌법재판관 9인은 대통령이 3인을 직접 지명하고, 대법원장이 지명한 3인을 대통령이 임명하며, 나머지 3인은 국회가 선출해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있다. 이에 따라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중 대통령 지명 몫 3인 가운데 2명의 후임을 새로 임명하게 되어 헌재 재판관의 성향 분포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기회를 갖게 된다. 그 시점은 2029년 3월과 4월이다. 이때는 대법원장 지명 몫 재판관 2인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으로, 해당 재판관의 후임은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지명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들 역시 대통령의 간접적인 영향권에 놓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해 임명된 마은혁, 정계선 재판관까지 포함하면 이재명 정권에 우호적인 성향의 재판관이 헌재 내 과반을 구성하게 되는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대통령 탄핵심판과 법률 위헌심판에는 9명 중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따라서 헌재에 친정부 성향 재판관이 4인 이상 존재할 경우 사실상 탄핵심판도 위헌법률심사도 차단되는 구조가 될 위험이 있다.
‘개혁’으로 포장된 언론 통제도
이재명 대통령이 추진할 ‘내란 종식’에는 이른바 ‘언론 개혁’도 포함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그간 보여 온 언론 관련 언행과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방송법 개정 시도는 정권 차원의 언론 통제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이 입법·행정 수단을 통해 구체화될 여지도 있다.
정권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하고 사법부와 헌법재판소까지 영향력 아래 둔 상황에서 언론마저 통제하려 한다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권력 분립과 언론 자유가 동시에 붕괴되는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시민의 알 권리와 공론장(公論場)은 무너지고, 정권 비판은 ‘가짜뉴스’로 낙인찍혀 제재받을 수 있다. 야당·시민사회·학계의 표현의 자유 역시 위축되고 선거의 공정성도 심각하게 훼손될 위험이 있다. 권력이 언론까지 장악한 상황은 자정(自淨) 기능이 마비된 일당 지배 체제로 이어질 수 있다. 언론 통제가 민주주의의 붕괴와 권위주의 체제로의 이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대외적으로는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권력자가 장기 집권 중인 헝가리,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실패한 文 정권을 반면교사 삼아야
이재명 정권은 집권 초반 여소야대 국면을 경험했던 문재인 정권과 달리, 국회 과반 확보 등 제도적으로 보다 강한 권력 기반을 갖추고 출범했다. 이에 따라 ‘내란 종식’을 명분으로 한 정치·제도적 재편이 지속될 경우 더불어민주당 중심의 일당 지배 체제가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이해찬 씨가 입에 올려 논란이 된 ‘20년 집권’ ‘50년 집권’ 발언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재명 정권은 문재인 정권에 비해 낮은 지지율로 출범했다. 대통령이 다수의 형사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 신분으로 당선됐다는 점에서 정치적 정당성과 도덕성 측면에서 상당한 약점을 안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권의 일방적인 고강도 권력 재편 시도는 중장기적으로 국민적 반발을 자초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정권은 적폐 청산에 몰두하다 5년 만에 심판된 문재인 정권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권의 ‘적폐 청산’은 국정 운영 동력과 지지층 결집 수단으로 작동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치 보복’과 ‘정적(政敵) 제거’로 변질해 역풍에 직면했다.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정권의 도덕성에 중대한 타격을 입었는데도 내로남불로 일관하면서 국민적 분노를 자초했다. 부동산 가격 폭등, 고용 감소, 물가 폭등을 초래한 재정정책 등 무능한 국정 운영 행태에 민심이 대거 이탈했다. 특히 문재인 정권의 경제정책은 고용과 자산, 교육, 민생 영역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등 총체적으로 실패했다. 결국 문재인 정권은 2021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데 이어 2022년 대선에서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