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워싱턴에서 본 한국

한국은 다시 희망의 나라가 될 수 있을까

  • 글 : 김휘국 워싱턴침례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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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국
⊙ 육군사관학교 졸업. 국방대학원 교수.
⊙ 워싱턴 동서문제연구소장 역임. 현 워싱턴침례신학대학(Washington Baptist University) 교수.
⊙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Studies》 편집장.
중앙당 공천제는 자질 없는 정치인들이 국회에 진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진은 2010년 12월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
1990년대 중반 재미동포로서 워싱턴에서 본 한국에 관해 근 5년간 《미주 한국일보》에 기고한 것을 모아 1998년 《희망의 나라로》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15년이 지난 최근 그 책이 문득 생각났다.
 
  지금 한국은 어디에 있는가. 누가 한국의 당면 문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간단히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민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양한 답변이 나올 것이다. 어떤 이는 정치・군사적 평화와 경제적 번영이라 하고, 다른 이는 사회발전과 문화창달까지 추가할 것이다. 한국 정치가 이를 위하여 잘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어떨까. 대부분이 부정적일 것이다. 이렇듯 많은 국민이 한국의 후진적 정치를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정치발전을 위한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국내 정치란 이해가 다른 집단이 권력을 쥐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다. 서로간 논쟁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의회제를 부정하는 장외투쟁까지 하는 상황이면 국민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국가 정보기관에 문제가 있다면 국회와 행정부가 비공개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국정원을 공격하면서 정쟁의 제물로 삼고 있으니,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하한가를 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 없는 한국 정치의 특허품들
 
  과연 한국 정치의 근본 문제는 무엇인가?
 
  맨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자격 미달의 국회의원이 상당수 국회에 입성하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전문성은 고사하고 보통사람으로서의 바탕조차 모자라, 상식 이하의 행위를 부끄럼 없이 하고 있다.
 
  중앙당 공천제도는 미국에서 100년 전에 폐지된 것인데, 정치인들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자기 사람을 지역구에 배정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는데 왜 중앙당 공천이 필요한가? 누구나 지역구에 가 지지를 받고 그 정당의 후보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비례대표제란 대표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특정분야 전문성이 국회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근본적 의문점을 제기한다. 이렇게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한국 정치의 발명 특허품들을 살펴보자.
 
  첫째, 중앙당 공천제가 자기 파(派)를 공천하여 당내 독재를 가능케 하였다. 비례대표 공천은 원래 체육관 정치 시절에 기업인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으면서 감투를 판 것이다. 그후 지식인들이 시끄럽게 하니까 전국구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씩 주어서 학자나 언론인을 포섭하였던 것이다. 그로 인해 비정치권 인사가 정치권을 넘보면서 본업을 소홀히 하고 정치에 나서게 된 사례를 얼마나 수없이 봐 왔던가. 그런데 요즘엔 점차 학생들을 선동하는 것마저 부족하여 종교인들까지 아예 파계(破戒)를 한 것처럼 정치판에서 설치고 있다.
 
  미국에서는 국민의 참정권이라고 하는 것을, 한국에서는 중앙당이 가로채서, 특정 개인이나 정파의 당내 독재를 허용하는 제도로 변모시켰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참정권을 뺏긴 줄도 모르고 지내고 있다. 이것이 너도나도 대학교육을 받았다는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중앙당 공천제는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 비례대표라는 것도 자동적으로 사라져야 한다. 그러면 일석사조(一石四鳥)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당의 당내 독재 불가, 정치권의 세대교체, 정경유착의 단절, 학자·언론인·전문인들의 직업주의 신장이다.
 
 
  국정감사 해야 하나?
 
형식적인 국정감사는 폐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한국에선 국정감사라는 것을 오래전부터 해 왔다.
 
  국정감사는 일종의 회계감사이다. 미국 의회에는 국정감사라는 것이 없다. 의회 산하에 회계감사원을 두고, 예산집행의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도 현 감사원을 국회로 옮기고, 국회의 국정감사를 대행시키면서, 국회의원들은 최고급 인력의 수준에 맞는 입법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에서 의회는 예산집행 감사에 국한하고 있으며, 정책에 관하여는 필요 시 분과별 청문회를 이용하고 있다. 행정부 감사는 각 부처에 감사기능이 강화되어 있어 고위직 사람이 감히 위반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필자는 워싱턴에 있으면서 5~6명이나 되는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 한답시고 와서 형식적인 행사를 치르고 골프나 치고 가는 것을 많이 보았다. 주미 대사관에 그렇게 매년 국정감사를 해야 할 일이 있을까. 미국에서 오래 살면서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셋째, 국가의 법 집행기관에 대한 존엄성의 문제이다. 검찰은 수많은 정치적 사건을 조사하고 처리해 왔다. 어느 사건의 책임자가 특정 지역 출신이라고 해서 혼자서 마음대로 사건을 조사·조작하도록 검찰조직이 구성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검찰 조사나 구형에 대항하여 변호인단이 자기방어를 할 기회가 있고, 재판부는 이를 공정히 보고 판결을 내릴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에 글 쓰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국회청문회에서조차 지역차별적 발언을 감히 행하고 있다.
 
  이러한 탈법적 언행은 국가의 법집행 기관에 대한 모독이다. 미국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고질적인 지역주의에 대한 편견으로 검찰을 신뢰하지 않으면, 누가 이보다 더 합법적으로 잘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느 지역이건 개인에 따라 선한 사람 악한 사람, 정직하거나 부정직한 사람, 또는 도덕적이거나 부도덕한 사람 등이 다양하게 있게 마련이다. 저속한 언어로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발언은 결국 자신의 품격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다.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없는 한국
 
  넷째, 국민화합의 문제이다. 우파들의 지나친 지역차별적 공격은 ‘이정희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대통령이 경상도 지역에서 나왔는데, 호남 사람들을 폄하하고 그들을 친북좌파로 간주하여 적대시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다수 국민의 저항을 받게 될 것이다. 차기 정권은 필연적으로 좌파에 넘어갈 것이다.
 
  과거에 전라도에 인구가 많았고, 산업화 과정에서 서울·부산 등 대도시로 많이 이주하였다. 이들과 혼인하여 얽힌 자손들까지 따지면, 호남 사람들은 한국 인구의 절반에 육박할지도 모른다. 친북, 종북 운운하는 용어 사용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련한 사람은 계속 미워하고 망할 것이요, 현명한 사람은 화해와 협력을 얻어 번영할 것이다.
 
  워싱턴에 200이 넘는 인종이나 민족이 살고 있지만 인간의 평등을 저해하는 어떠한 언동도 용납되지 않는다. 만일 이로 인해 법정에 서게 되면 반 인도주의자로 낙인 찍혀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어느 특정 지역이 권력을 독점하여서도, 또 소외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다섯째, 한국 국민은 다양성으로부터 통합에 보다 익숙해져야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지능이나 개성은 물론 신체적 능력까지도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에 그 생각과 행태가 다양하다. 더욱이 인종이나 민족이 다르고 교육・사회・문화적 여건이 다른 데서 성장한 사람들은 많이 다르다. 미국은 이러한 다양성을 극복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평등한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사회의 통합을 이루어 왔다.
 
  한국은 인간사회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못하다. 작년 일부 사제단이 정치적으로 문제를 일으켰는데, 필자도 그들이 직업주의를 벗어났다고는 본다.
 
  그러나 미국 같았으면, 그것이 소수집단의 의견 표시로서 일과성 사건이 됐을 것이다.
 
  왜 전체주의가 아닌데 모든 사람이 획일적이어야 하는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만나는 것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함으로써 이해를 넓히고자 함인데, 똑같은 우파나 좌파끼리만 소통하면, 북한 노동당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정치에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도 다르다는 것을 존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다양한 이해집단을 이끌도록 그를 지지했던 우파들은 밀어 주어야 한다.
 
  끝으로, 정치에서 건전한 야당은 여당을 견제하여 그 독주를 막는 데 필요 불가결하다.
 
  지금 야당은 그 구성 자체가 수를 채우기 위한 이합집산의 산물로서, 정치철학이 없다. 정당의 목표가 흔들리고 있으니, 목표달성을 위한 전략이나 전술도 없다. ‘김대중당’과 ‘노무현당’이 섞여 있지만, 과거 중국의 국공(國共)합작같이 노무현당이 조직을 강화하면서 다른 정파를 삼킬 듯하다가 이석기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일시 중단한 상태로 보인다.
 
  민주당은 우선 친북좌파 세력을 법 앞에 세워 심판하고 그 뿌리를 잘라야 수권 가능한 정당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새정치를 내세우며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안철수 의원이 기존 야당과 경쟁을 벌이면서 국민들의 기대치도 올라가고 있다. 한국에 건전한 야당이 생길 것인지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자 한다.
 
 
  빚내서 공약 지키겠다는 황당한 정치인
 
  미국 선거에서는 경제·사회 정책이 핵심이다. 외교・국방 등 정치이슈는 여야가 거의 비슷하다. 이 점은 한국 정치인들도 좀 배웠으면 한다.
 
  어찌하여 국가안보에서 여야가 다를 수 있는가? 한 달에 천만 원 이상씩이나 받고 있으면서 생산성 없는 정치싸움만 하지 말고, 당면한 경제정책을 논의하고 발전시키면 국리민복을 위하여 참으로 유익한 결실을 가져올 것이다.
 
  SNS만 봐도 사람들이 대부분 정치 비판을 하고 있다. 경제적인 논의나 제안은 눈씻고 찾아도 없다. 이는 결국 한국 국민의 현실참여가 균형을 잃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한국 정치가 냉전시대적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세계는 먹고사는 문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이 당면한 이슈인 성장과 복지, 실업과 고용, 공기업 민영화, 국가부채를 살펴보자.
 
  첫째, 성장과 복지의 문제는 경제민주화라고 언론에서 쓰고 있는 아이템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정치권력은 부자와 연대하여 항상 보수정권의 핵심을 이루어 왔다. 피지배 계급인 노동자 농민은 기존 질서 속에서 세금을 내면서 전장에 나가 싸웠다. 마르크스 이론의 선봉장인 레닌이 1차대전 중 독일의 지원을 받아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집권하였으나, 73년이라는 시험 끝에 실패를 맛보았다.
 
  최근에는 그리스가 국가부도를 만나, 유럽연합이 그 부채상환으로 세계 금융시장을 교란시켰다. 그리스의 파산은 사회주의 정부가 방만한 복지정책을 편 데서 비롯됐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복지 공약을 남발하여 선심 쓰기를 좋아한다. 문제는 유권자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런 후보자에게 표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나라의 주인 입장에서 유권자가 정신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박원순씨가 인기 투표식으로 서울시장이 된 후, 예산이 바닥났는데도 빚을 얻어 무상급식 공약을 지킨다고 하는데, 이거야 말로 황당하기 짝이 없다. 자신의 사재를 내놓지 않을 바에야, 서울시가 부도난다면 그 빚을 누가 갚을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복지예산을 조정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경제성장(Efficiency)과 소득배분(Equality)은 항상 상쇄관계(Trade-Off)에 있다. 성장 없이 배분을 추구하면 파산을 초래하고, 배분 없이 성장만을 추구하면 저소득층의 불만으로 선거에서 패하게 된다. 한국은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하는 것처럼 성장과 복지의 병행이 현명하다. 한국이 취할 제3의 길은 다분히 관념적이지만 ‘성장 70 복지 30 전략’이다.
 
 
  지나치게 팽창한 대학교육
 
대학 졸업 후에도 마땅한 직장을 잡지 못하는 현실에서 대학교육 기관의 정비가 필요하다.
  둘째, 실업과 고용의 문제이다. 미국에서는 매달 첫째 주 금요일에 그 전달의 고용현황을 발표하는데, 우선 비농업 부문 고용이 얼마나 증가 또는 감소했느냐가 경제성장의 지표가 되기 때문에,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심대하다. 지난 11월에는 20만3000명의 신규고용이 늘었는데, 당초 예상치 18만명보다 높아 주식시장에서 다우존스가 1.26%나 올랐다.
 
  한 사람이 일을 더 하게 됨으로써 국가경제가 탄력을 받아 성장하게 되는데, 실업은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먹구름을 가져오게 된다. 문제의 핵심은 일할 사람은 많은데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다. 어떤 기업에서는 인력이 부족하여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해야 하는 실정이고 보면, 직종에 따라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한국의 교육구조가 산업구조에 부합한 인력을 균형있게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한국의 대학교육이 팽창되어 있다. 유교문화권에 있어 간판을 따지다 보니, 적성상 적합하지 않은 사람마저도 박사학위를 받아 이마에 붙이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인지 한국 교육의 구조가 기업의 각 직종에서 꼭 필요한 것보다 더 고급 인력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직업과 관련하여 대학교육 기관의 정비가 시급한 실정이다. 대학을 나와 이발사로 취직할 수가 없으니 무작정 부모에게 의탁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18세가 넘으면 집을 나가야 한다. 한국에선 자식한테 방세는 물론 하숙비도 받지 않고 있다.
 
  수요의 측면에서 보면,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분야를 파고들어 독점이익을 챙기는 것 외에도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기업이 하고 있는 제과점을 중소기업이 운영하면, 고용에 융통성이 있고, 까다로운 취직 절차도 없으니 다소 교육수준이 미흡한 사람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어 소득 평준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는 자본주의의 근간
 
  셋째, 공기업 민영화는 시급한 문제이다. 러시아나 동구권 국가들이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가장 처음에 문제가 된 것은 가격(Price)이다. 다음은 사유재산의 인정(Property Rights)이었다. 공기업 민영화 문제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공산주의 국가의 패망 원인은 생산성 저하이다. 북한의 예가 바로 그것이다. 과거 경수로 건설 시 그곳 노동자들이 짐을 나르다가, 종점 도착 1~2분 전인데도 점심시간이 됐다고 짐을 그냥 그 자리에 놓고 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만일 그것이 자신의 집안 일이었다면 짐을 나른 이후에 식사를 할 것이다. 이것이 공기업의 본질적 문제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투자규모가 너무 커서 자본 조달이 어렵고, 성패에 따른 위험부담이 커 일반 투자자가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전기나 가스 등 에너지 분야, 고속도로·철도·항만 등 교통분야, 그리고 유선·무선 통신시설 같은 기간 인프라가 주로 그에 해당한다.
 
  그러나 투자 초기와는 달리 공기업들이 자리를 잡았다면, 이들을 민영화하는 것은 생산성 증대뿐 아니라, 부정부패로 인한 부실의 원천을 차단하는 것이 된다.
 
  인사 문제에 있어서도, 정치적 고려 없이 개인의 능력과 리더십은 물론, 능력에 의해 뽑아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적자를 국민 세금으로 메워 준다면, 누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기업경영을 하겠는가?
 
  미국에도 AIG 같은 회사는 정부 지분이 많아 지난 재정위기 때 말썽이 있었다. 이제 미국 정부도 점차 자본금을 회수하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는 박근혜 행정부의 큰 과제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갈 길은 분명하다.
 
  넷째, 정부예산과 국가부채의 상한선에 관한 문제이다.
 
  유럽연합 국가 전체의 부채는 2007년에 총생산의 74.2%였고, 2014년에는 112.5%가 된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에 의한 세계 각국의 2012년 기준 국가부채를 국내총생산의 퍼센트로 보면, 미국 87.8, 독일 57.2, 프랑스 84.1, 이탈리아 103.2, 스페인 71.9, 일본 134.3, 중국 21.3, 그리고 한국 32.2이다.
 
  한국은 중국보단 높지만 여타 국가보다는 매우 안정권에 있다. 그러나 국가부채는 금융위기처럼 경제상황이 악화되거나 전쟁으로 인해 갑자기 예산이 팽창하면 곧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것이므로 항시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정치인들의 환심 사기 공약이다. 지금 박원순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을 강행하여 서울시 빚이 국가 빚이 되고, 또 다른 곳에서 비슷한 환심 사기 빚을 국가에 떠넘긴다면, 한국이 그리스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필자가 지난 10여 년 동안 역사책을 읽고 집필하면서 느낀 것은, 정치·군사의 힘이 역사를 끌고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경제의 힘에 의하여 역사가 움직여 가고 있다는 것이다.
 
  18~19세기를 보면, 서구 열강은 무역을 하기 위해 또는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하여 세계 각 지역에서 함포를 쏘아 대며 전쟁을 불사하였다. 북·남미 대륙은 물론이고, 인도와 중국, 동남아 제국, 그리고 일본은 한국에서, 모두가 공산품을 팔고 원자재를 구입해 갔다.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국가 간의 거래다. 좀 유식한 말로 외교이다.
 
  한국 정치인들이 인기 전술에는 밝으나, 국가의 경제적 이득을 위한 원대한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정치 싸움만 하고 있으니 실망스럽다. 반면, 한국 기업인들은 정말 자랑할 만하다. 현대자동차가 미국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여 가고 있고, 삼성 휴대전화가 세계를 누비고 있으며, 한국의 연속극이 문화의 장벽을 넘어 세계 각국에서 거의 동시에 방영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이 정치 선진화를 이루고, 경제력을 꾸준히 신장시켜, 국가부채 문제를 초월한 균형예산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징역 살다가 얼마 안 돼 국회의원이 되는 사회가 정상일까
 
반국가적 범죄로 징역을 살았던 이석기 의원이 얼마뒤 국회의원이 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에 오래 살다 보니 다양한 인종과 민족을 접할 기회가 한국에서 살 때보다 훨씬 많았다. 처음에는 생소하였지만 점차 익숙하게 되었고,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한국과 많은 차이점을 느끼게 됐다.
 
  궁금하였던 것은 미국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무엇이며 이렇게 다양한 사회가 어떻게 통합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처음 필자가 느낀 것은 법이 엄하고, 어길 경우 혹독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이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담당부처와 연락을 취할 경우, 담당자가 “이러저러한 사유로 불가합니다”라고 하면, “야, 너 상관 바꿔 봐” 하여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에서는 권한과 책임의 한계가 분명하다. 말단 직원이 규정에 의해 안 된다고 하면, 법이나 규정을 바꾸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이를 바꿀 수가 없다. 한국은 사람이 일을 하고, 미국은 제도가 일을 한다고 하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 한국도 많이 바뀌었다고 들었다.
 
  한국의 뉴스를 접하면서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있다. 법을 위반한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을 살다가 금방 사면을 받아 국회의원 공천을 받고 정치인 행세를 하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야당 중진인 B의원은 뇌물을 받고 징역을 살았는데 사면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었고,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란 사람도 반국가적 범죄로 징역을 살고 있었는데 어느 정치세력이 빼내서 사면시켜 주고 국회의원까지 하고 있으니, 도대체 한국이란 나라에서 사회정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죄를 지은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빠져나올 수 있다면, 은행에서 거금을 훔쳐 잠깐 형을 살고 일생을 편하게 지내려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작고한 어느 대통령도 도적질을 많이 했다고 그 리스트가 인터넷에 흘러 다니고,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이 훔친 돈을 국고에 반납하도록 한 것이 언제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이제야 그 문제를 해결했다. 그렇다면 다른 대통령들은 자신들의 부정 때문에 그동안 감춰 준 것인지 궁금하다. 노무현 대통령만 해도 청렴결백하다고 광고를 해 왔는데, 다른 사람에 비하면 비교적 소액이었겠지만, 자신의 금품수수가 밝혀질 단계에서 자살을 하였다.
 
 
  지나친 지역 갈등
 
  필자는 어떤 이유로 수개월 전에 한국 페이스북(Facebook)에 들어갔다. 그 안의 상당수가 매우 공격적이며,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것처럼 몰아붙이며 적대시하고 있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고, 가치가 다르고, 또 관심사항이 다르니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자기와 다르다는 것이 마치 죄인 것처럼 대하고 있다. 입장을 바꾸어 자신도 남들이 그렇게 대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필자의 옛 친구가 미국에서 박사 공부까지 한 사람인데, 호남비하 발언을 부끄럽지 않게 하였다. 몇 번 충고를 해 주었으나 고쳐지지 않기에, 호남이 악인이고 비호남이 모두 선인이면, 비호남 지역에서 경찰서와 형무소를 모두 없애 버리라고 하였다.
 
  워싱턴에서 보면 지역이나 인종적 편견이 얼마나 비인도적이며 인류사회의 공적임을 실감한다. 미국의 일개 주보다 좁은 땅에서, 그리고 단일민족이면서, 이러한 지역적 적대감정을 주장한다면 참 슬픈 일이다. 또 한 가지, 정권이 바뀌면 낙향해서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상례인데, 계속해서 정치 주변을 맴돌면서 거짓 선동을 하며 시끄럽게 하는 건달들이 많다. 그들은 벼슬이 아니면 인생에서 다른 선택이 없는지 궁금하다.
 
  한국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교육에 열정이 많아 부모들이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자녀교육에 힘써 왔다. 교육은 개인의 능력을 계발하여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좋은 직장을 얻어 충분한 소득으로 잘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능력의 계발이라는 것이 한국과 미국은 다른 것 같다. 미국에서는 전인교육을 추구하여, 지덕체(智德體)의 균형된 발달을 도모하고 있다. 한국은 지식 위주로 과외를 한다. 지식의 범주는 언어, 수학, 귀납적 사고, 연역적 사고, 인지 속도, 입체적 인지, 그리고 암기력 등으로 다양하다. 한국에서는 그 집중 분야가 달라 우열의 평가가 종종 미국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민 와서 이곳에 사는 많은 사람이 한국에서처럼 자녀들에게 변호사·의사 등을 하라고 진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을 봤다. 자신의 적성과 취미가 직업과 일치해야 생산성이 증가하며 본인도 행복해진다. 한 번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또 어머니가 자식을 데리고 와 미국에서 교육하고 있는 것도 많이 보게 된다. 그 교육열에 나날이 감동하고 있다. 다만 희생만큼이나 교육성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생이 길지 아니한데 내외간에 헤어져서 오래 지낼 수가 있을까?
 
 
  본업에 충실한 사회가 건강한 사회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친구들로부터 한국 젊은이들이 너무나 물질주의에 오염되어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얼마전 학술회의 참석으로 한국을 다녀온 후배가 말하기를, 자기가 만난 친척들이 온통 비싼 자동차나 명품 같은 것에 몰입해 있어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듯하여 실망스러웠다고 토로하였다. 친척 중 한 여성이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마치고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국제결혼을 해 미국에 살고 있는데, 이번 추수감사절을 함께 보내면서 국제결혼을 택한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 남성들의 물질만능주의에 실망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과거보다 풍요해진 데다 자녀가 통상 한두 명이니 젊은이들이 물질적 가치를 중시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들은 귀한 자녀일수록 명품만 찾는 속물이 되지 않도록 인생의 참된 가치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
 
  필자는 신앙심이 부족하여 신학교를 나와 전도사를 하고 지금은 시골 기도원에서 봉사하는 하나뿐인 여동생을 늘 부러워하였다. 여동생은 필자를 만날 때면 “오빠, 제가 늘 기도하고 있음을 잊지 마세요”라고 사랑스러운 말을 한다.
 
  최근 종교의 발전사를 고대 종교로부터, 유대교·천주교·기독교·이슬람까지 개략적으로 읽어 보았다. 인간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면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 공통된 가르침이었다. 천주교나 기독교는 한국의 개화기에 많은 기여를 하였고, 불교는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였다.
 
  그런데 최근 종교인들의 정치참여가 지나쳐, 그 정도가 정치인들 수준에 이르고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야당 편에 서서 정치선동에 나서고 있다. 독재정권하에서는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그들의 정치참여가 의미 있는 기여를 하였지만, 지금은 정당 간 정치싸움에 끼어들고 있으니, 보통사람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불교계도 지나치게 세속 정치에 개입해서 정치도구화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종교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일진대, 사람들의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는 것을 기억해 주면 국민들이 감사해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본업을 벗어나 여기저기 넘보는 방랑자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갖고 있다. 건강하고 선진적인 사회일수록 직업주의를 존중하고 자기의 본업에 충실하고 있지 않은가. 남의 일은 내 일이 아니다.
 
 
  합의의 정치 요구돼
 
  마지막으로, 미국에 살면서 느꼈던 그야말로 단상(斷想)을 적어 보려고 한다.
 
  우선, 정치 분야. 오랜 남북대결 상황하에서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일부 민주화세력이 북한의 주체사상에 동조하는 주사파(主思派)를 형성하였고, 학생과 노동계 그리고 사회의 소외 계층과 연대하여 정치세력화하였다.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부정부패가 만연해져 사회 전반에 불만이 팽배함으로써, 변화와 개혁을 원하는 국민들이 ‘김대중·노무현’을 선택하여 10년을 보냈다.
 
  초기 햇볕정책은 남북의 화합과 평화통일을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적화통일 전략을 잠시 잊은 국민들의 착오였다. 그들의 10년은 국가정보기관을 무력화하면서, 북한의 국지적 도발마저도 경계를 게을리하도록 만들었다.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 음모나 문재인 의원 등 친노세력의 정상회담 문건 실종 사건 등은 혼란한 한국 정치의 난맥상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론 한국 정치가 가야 할 방향을 안내해 주고 있다.
 
  이제 폭력의 시대가 가고, 세기의 문명에 걸맞은 합의의 정치가 뿌리를 내려야 한다. 자신이 위임 받은 한 표의 한계를 인식하고, 국회에서는 의결 결과에 따라야 한다. 장외투쟁이란, 제도권하에서의 의회정치를 거부하고 세계 만방에 한국의 정치 후진을 광고하는 것이다. 국회에서 표가 모자라면 승복하는 것이 순리이다.
 
  정치는 국민의 행복을 지키기 위하여 있는 것인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합집산하는 정당들의 싸움을 보려고 국민들이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 정책을 개발해서 입법화하는 것이 기본 임무이다. 과연 대한민국 국회의 상임위에서 진지한 토의를 한 것이 2013년에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둘째, 한국에선 과거 독재정권 시절, 정경유착으로 재벌이 만들어졌고, 이에 대한 대가로 재벌들은 자신들이 쉽게 얻은 독점이익을 정치인들에게 상납하였다. 소비자들은 비싼 값으로 물건을 구매하였고, 노동조합은 재벌의 적으로 간주되어 탄압을 받았다. 임금착취도 심화돼 그 반작용으로 한국 상품이 경쟁력을 가진 것도 일면 사실이다. 이제는 달라졌다. 노동조합이 거세게 일어났고, 재벌들도 정부와 시민단체들의 압박에 과거와 같은 경영지배 구조를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경제의 핵심은 생산성 제고에 있으며, 세계시장에서 국가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있다.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하여는 자본·노동·기술의 배합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판매망을 확보하여 자국의 상품을 세계 어디든지 장벽 없이 신속하게 운송해야 한다.
 
  한국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이를 반대하는 야당의 행태는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무역은 제로섬(zero-sum) 게임이 아니라, 상호간의 윈윈(win-win) 게임이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만 해도 그렇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지난 6년 동안 아무도 광우병으로 죽지 않았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것은, 일자리 창출과 부의 균형된 배분을 위하여 매우 효과적이며 바람직한 정책이다. 박 대통령은 재벌과 결탁하여 뒤를 봐주면서 뇌물을 받아 온 전직 대통령들과는 근본적으로 정신이 다르고, 정치철학이 다른 것으로 보여 다행스럽다.
 
 
  軍 신뢰해야
 
  셋째, 군사외교 분야를 살펴보자. 한국은 지금까지 한미 안보동맹을 축으로 하여 북한의 위협에 대처해 왔다.
 
  지난해 10월 2일 제45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서, 한국의 김관진 국방장관과 미국의 척 헤이글 국방장관은 북한이 핵 또는 화생방 무기 등으로 공격할 징후가 보이면 미국이 모든 무기를 동원해 선제타격을 하여 이를 무력화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는 미국의 군사외교상 처음 있는 일로, 한국 국방외교의 성과라 하겠다. 이제 북한은 핵이나 화생무기로 감히 남한을 위협하는 경거망동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다. 참으로 안심이 되고 마음 든든한 일이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대항세력을 핍박하였기 때문에, 군인들을 군바리라고 폄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극소수 정치군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군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아직도 일부 모자란 정치인들이 군을 적대시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집단은 군인이다. 그 반대가 법률가 집단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회·문화 분야에서, 한국 사람들은 미국 사람에 비하여 타인의 일에 관심이 많으며 비교적 경쟁적이다. 미국 생활에서 통상 세 가지 대화의 금기를 자주 말하고 있다.
 
  첫째, 정치적 이슈에 관하여 얘기하지 말라. 사람마다 주장이 다르니 종국에는 언쟁으로 인해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둘째, 종교적 이슈에 관해 논하지 말라. 사람마다 믿음이 다르니 서로 자신의 믿음을 내세워 전도하려고 할 터이니, 결국은 모두 불만으로 끝날 것이다.
 
  셋째, 돈 문제에 관해 얘기를 꺼내지 말라. 돈이 많은 사람이 무심코 한 말이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가 겸손하고 예의를 지킨다고 해도, 이러한 것들은 상호간에 쉽게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이므로, 보다 즐겁고 평범한 화제가 서로를 즐겁게 해 줄 것이다.
 
  미국 생활을 하다 보면, 개인의 사생활이 지켜지고 있으며, 남이 무얼 하건 아무 관심도 없다. 한국에서 페이스북(Facebook)이 미국보다 잘되는 것은 아마 이러한 문화적 배경도 기여를 할 것이 아닐까 한다. 필자는 미국에서 링크드인(Linkedin)을 쓰고 있는데 한국보다 매우 저조하다. 미국인들은 보수 없는 일에는 시간을 쓰지 않는 것이 상례이니 이해가 갈 것이다.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것 별로 없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인들보다 정부의 역할에 대하여 너무 기대를 거는 것 같다.
 
  사실 정부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다. 크게 보면, 세금을 거두어 예산을 배정하고, 국방과 국내 치안을 유지하며, 개인이나 집단들의 분쟁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국내총생산의 70%가 개인의 소비이며, 그 결정은 개인이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보면,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정부들에 세금 내는 것 외에는 별로 기댈 것이 없다. 청와대가 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을 국민들이 받아들여야 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거에 지면 직장이 없어지니까 야단이지만, 일반 서민들이야 기댈 것이 별로 없는데, 왜 그렇게 정부에 기대를 많이 걸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의 사회는 옛날과 달리, 많이 국제화하였고 다변화하였다. 옛날에는 정치 얘기가 대종을 이루었는데, 점차 산업화하면서 경제 얘기가 주제로 부상하였다. 이제는 신문기사들도 사회・교육・문화・종교・체육・예술 분야까지 다양하며 풍성하게 발전해 가고 있다. 이제 단일민족의 단일성이 아닌, 다양성으로부터 합의를 이루어 단결된 역량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마감하면서 다음 두 가지를 꼭 기록하고 싶다. 우선, 이상에서 논의한 것은 미국에서 30여 년 산 한 동포의 견해라는 점이다. 많은 부분이 실증적이고 계량적 분석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필자의 글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오랫동안 외국문화에서 살아온 편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저 지나쳐 주길 바란다. 이 글이 뜻있는 사람에게 한국을 사심 없이 들여다보고, 다시 한번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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