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베트남식으로 통일하자는 주장에 의아”
⊙ 이석기 윗선 수사하지 않으면 실체 밝힐 수 없어
⊙ 민혁당 조직원, “RO는 조직名이 될 수 없어”
⊙ 이석기 윗선 수사하지 않으면 실체 밝힐 수 없어
⊙ 민혁당 조직원, “RO는 조직名이 될 수 없어”
- 지난 9월 5일 경기도 수원 남부경찰서에서 이석기 의원이 구치소로 호송되기 위해 국정원 직원 및 경찰들에 둘러싸여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너무 엉성해요.”
10월 초 경기도 성남시 인근 식당에서 기자는 수십 년간 경기동부연합 조직원들과 교류했던 A씨를 만나 조직의 실체에 대한 증언을 들었다.
A씨는 대표적 종북세력으로 의심되는 경기동부연합 핵심 인물들과 오랜 기간 교류했다. 경기동부연합의 지역거점인 성남 지역에서 활동했던 A씨에 대해 지역 정치인, 언론인들에게 문의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A씨야말로 경기동부에 대해 가장 정통한 인물”이라고 답했다. 기자는 수개월 동안 A씨에게 “경기동부의 실체를 밝혀달라”고 요청했으나, A씨는 “아직 자식들을 출가(出嫁)시키지 못했다”며 인터뷰를 극구 사양해 왔다.
그러다 9월 말 검찰의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51·구속)에 대한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보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그는 “조직사건 수사의 핵심은 조직명, 조직체계 등 조직의 실체(實體)를 밝히고, 북한 노동당 가입 등 북한과의 연관성을 규명하고, 조직의 지도부를 색출(索出)해야 하는데 검찰 조사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없다”며 “이대로 가면 사건 자체가 묻힐 것 같아 증언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수원지검 공안부는 9월 말 이 의원을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찬양·고무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이 의원은 이른바 지하혁명조직 ‘RO(Revolutionary Organization)’의 총책을 맡아 활동하면서 국가 통신·유류 시설 등 국가기간시설 파괴를 모의하고 인명살상 방안을 협의한 혐의(내란음모, 선동 등)를 받고 있다. 지난해 3~8월 RO 조직원 수백 명이 참석한 모임에서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발언을 하고, 북한 혁명가요인 적기가(赤旗歌) 등을 부른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역시 추가됐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혐의 내용이 이미 공개된 비밀 모임 녹취록 내용 말고는 새로운 것이 없고, 조직 구성과 체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A씨는 과거 경기동부 조직 활동을 증언하면서 조직원들의 이름과 직책 등을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기자는 익명(匿名)을 보장해 달라는 A씨의 요청에 따라, A씨의 이름, 직함 등을 모두 비(非)공개 처리했다. 또 증언 내용을 검증하기 위해 경기동부의 전신(前身)인 민혁당 조직원, 경기동부지역 운동권 원로 등에게 자문을 요청했다.
“공산통일이 뭐가 나쁜가”
—경기동부 세력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1990년대 말에 경기동부에서 주최하는 모임에 참석했었습니다. 모임에서 베트남식으로 통일하자는 주장을 하더라고요. 황당했습니다. 베트남의 호치민이 미제(美帝·미국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자주적으로 잘 살고 있다면서 공산통일이 뭐가 나쁘냐고 말했습니다. 명분(名分)은 이념과 사상의 장벽을 넘어서 통일하자는 것인데, 북한의 주장에 동조(同調)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또 데모를 하면 그 배후(背後)에는 항상 그 사람들이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시위(示威)의 배후에서 활동했던 구체적인 사례는 무엇인가요.
“이석기와 뜻을 같이했던 이○○은 구(舊)삼성프라자 노조 설립 운동의 배후였습니다. 2007년 애경이 분당 삼성프라자를 인수했습니다. 현재 분당의 AK프라자 백화점은 과거 삼성물산이 운영했습니다. 매년 흑자만 250억원이 넘는 알짜였죠. 그런데 노조를 설립하려 했습니다. 백화점 사업은 지역에 개장을 한 후에 5~6년 동안 투자를 해야 흑자로 돌아서게 됩니다. 삼성 입장에서는 수년간 투자를 했는데, 흑자전환을 이루자마자 사업에서 철수했습니다. 노조설립신고가 계속 들어오고, 민주노총에서 활동하던 이○○이 배후에서 조종하니까 손 털고 나간 것이죠. 삼성은 노조를 용납하지 않죠.”
—경기동부가 성남에서 세력을 어떻게 확장했나요.
“다양한 사업에 나섰습니다. 시의 지원을 통해 성장했죠. 예를 들어 푸른○○이 있습니다. 방과 후 학교 개념으로, 맞벌이 부부의 자녀 교육을 위해 시작됐습니다. 교사 등 주요 구성원이 경기동부와 긴밀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을 의식화시키는 문제가 있었어요. 제가 푸른○○ 사업이 시작되었을 때 찾아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학생들에게 급식을 하면서 ‘이 밥을 누가 주는지 아세요. 이것은 푸른○○에서 주는 것이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어요. 시 예산으로 운영하면서 마치 스스로 운영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말하더라고요. 아이들을 의식화하고 있다고 느껴졌어요. 이런 교육 사업을 통해 경기동부 세력은 점차 커졌습니다. 직업 교육 사업에도 뛰어들었어요. 성남건설○○학교의 경우, 민선2기 당시 김미희 시의원이 주장해서 시작했어요. 성남시에서는 굳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김 의원이 워낙 강력하게 필요성을 주장하다 보니 시작됐죠. 이○○이 주도했어요. 아마도 이석기보다 조직 서열(序列)이 높을 거예요.”
“이석기는 수령”
검찰은 9월 말 이석기 내란음모 혐의 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2003년 민혁당 잔당 중심으로 RO로 조직이 새롭게 재편되었으며 ▲이들은 10여 년간 정당·사회단체 등에 침투해서 남한 혁명의 결정적 시기를 대비했고 ▲2013년 북한의 일련의 전쟁위협을 결정적 시기로 판단해 국가기간시설 타격 및 적(敵)에게 호응하기 위해 내란을 모의했다고 설명했다.
수사발표에서 검찰이 발표한 조직체계도에 따르면, 이석기는 조직의 총책으로 RO를 이끌었다. 이석기는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진출하기 전까지 철저히 지하에서 활동했다. 《월간조선》은 2012년 7월호에서 성남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던 운동권 원로급 인사의 이석기에 대한 증언을 소개했다. 당시 증언은 다음과 같다.
“이석기씨가 경기동부연합의 몸통이었던 것은 맞습니다. 80년대 말부터 이 의원은 NL(민족해방) 운동권 후배들에게 굉장한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 의원은 4시간 이상 자지 않았습니다. 같이 술을 마시면 분위기를 맞춰주면서도 자신은 절제했습니다. 밤새 술을 마셔도 새벽에 일어나 책을 보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인민적 품성, 혁명가로서의 자존심으로 생활한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의원의 지도를 받고 감화(感化)를 받은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 의원은 소위 경기동부연합의 수령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후배들은 이 의원을 ‘김영환 이후 남한 주사파 최고의 사상·이론가’로 평가했습니다. 외대 캠퍼스에 전설적인 인물이 두 명 있었는데 학번이 같았던 이석기와 최○○입니다.
이석기 의원은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김대중 정권 시기인 1999년 국정원에 의해 그 전모가 드러난 대표적 주사파 지하조직으로 이 의원은 민혁당의 조직원으로 구속돼 징역 2년 6월이 확정된 상태에서 복역하다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3년 8·15특별사면으로 석방) 시절부터 외대 출신뿐만 아니라 성남(운동권 조직)에서 존경받았습니다. 후배들이 말하기를 ‘이 선배는 한마디로 수령’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 의원이 홍보물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껍데기(위장)였습니다.”
이석기 위에 원로그룹 존재
검찰과 운동권 원로는 공통적으로 이석기가 조직의 총책이라고 주장하지만, A씨는 “이석기 윗선에 또 다른 인물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A씨의 설명이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이석기가 조직 총책(總責)으로 되어 있는데요.
“이석기는 CNC를 통해 돈을 장악한 것이죠. 그 위에 원로 그룹이 있어요. 원래 운동권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사람은 별로 힘이 없는 사람이에요. 실세(實勢)는 뒤에서 조종하죠. 지하조직이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닌가요.
예를 들면 이○○은 현재 사회적 기업이라는 ○○건설 대표를 맡고 있어요. 사회적 기업을 명분으로 관급 공사를 많이 하고 있죠. 또 이용대 전(前) 민노당 정책위원장이 있습니다. 서울대 미학과 74학번으로 민노당 창당에 크게 기여했죠. 요즈음은 뇌출혈로 쓰러져서 활동을 못하고 있습니다. ○○ 스님 역시 중요한 원로입니다. 비전향장기수 묘지를 만들어 민주애국열사묘라고 이름 붙였죠.”
이와 관련해 성남 지역 정치인 B씨는 검찰의 수사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검찰이 이석기가 현직 국회의원이니까, 이 의원 중심으로 사건을 보다 보니, 제대로 된 조직체계를 밝혀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석기가 중심인물이기는 하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핵심 의사결정 지도부가 있었어요. 기업의 이사회 같은 것인데, 이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이 아쉬워요. 또 검찰은 RO조직이 지역별로 거점을 만들어서 활동했다고 단순하게 설명하는데, 거기에 그치지 않았어요. 지역별로 교육, 문화, 사업, 언론, 노동을 담당하는 세분화된 조직체계가 있었죠. 검찰 수사 발표는 조직 핵심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요.”
“RO는 조직名이 될 수 없어”
과거 민혁당 조직원으로 활동하는 등 운동권 조직에 정통한 C씨 역시 비슷한 주장을 했다. C씨는 “검찰이 조직의 이름도 밝혀내지 못했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검찰은 조직의 명칭을 RO라고 설명하는데, 참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해요. RO는 운동권에서 핵심 조직원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입니다. 가장 밑바닥에 MO(Mass Organization·대중조직)가 있어요. MO는 혁명적 욕구가 없는 조직원들로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들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예를 들어 학생회, 농민회, 노조, 기성 정당 등이 있습니다. 그 위로 RMO(Revolutionary Mass Organization·혁명적 대중조직)가 있습니다. 이들은 MO에 소속되어 있으나 좀 더 정치적으로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합니다. 조직 내에서 의식이 강한 사람들이 따로 모여서 조직을 묶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RO가 있습니다. 자본가(資本家), 제국주의(帝國主義)가 없는 세상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서 투쟁하는 직업 혁명가를 뜻하는 보통명사입니다.
주사파 조직은 명칭을 만들 때 나름의 이유와 논리가 있어요. ○○당 혹은 ○○연합이라는 명칭(名稱)이어야 말이 되는 것이죠. 검찰의 주장처럼 조직명을 RO라고 하지는 않을 거예요. 아마도 이석기 측에서 재판과정에서 RO는 조직명이 될 수가 없다는 근거를 제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운동권 조직 생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RO가 조직명이 될 수 없다는 데 동의할 거예요. 조직의 이름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으니 구체적인 혐의가 헷갈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직 사건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북한 노동당 가입 여부를 밝혀내는 것이죠. 과거에는 북에서 팩스 등으로 노동당 가입증을 보냈는데, 요즈음은 문서를 보내지 않아요. 그것이 증거가 되니까요. 아마도 북에서 누군가 내려와서 구두(口頭)로 ‘당신은 이제부터 노동당에 가입됐다’고 임명했을 거예요. 북한 노동당 규약에 구두로 노동당에 가입하는 절차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어요. 가장 중요한 노동당 가입 문제에 대해 검찰이 아무런 설명을 하고 있지 않으니 답답합니다.”
경기동부의 일탈이 한국사회에 충격을 준 이유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이데올로기 대결이 끝났음에도, 경기동부 세력이 낡은 주체사상(主體思想) 이론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A씨의 설명이다.
—경기동부 조직원들의 생활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대학을 나와서 평생을 취직하지 않고 우유배달하면서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이에요. 의식화되지 않으면 그렇게 못하죠. 예를 들어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나온 이○○은 무가지 《벼룩시장》 꽂아주는 일을 하면서 20만원 받아서 생활했어요. 민주○○에서 일을 했는데, 과거에는 돈이 내려오지 않았죠. 지금은 150만~180만원 정도 받는다고 하더군요. 고려대를 나와 건설○○노조 상근자로 활동하던 김○○의 경우는 갑자기 서울○○센터로 가더라고요. 아니 잘 지내고 있는데 왜 서울에 가냐고 주변에서 물으니까, ‘조직에서 가라면 가야 한다’고 한탄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김미희 의원 역시 서울대 약대를 나왔는데도 남편과 금가루를 삼겹살에 뿌려주는 가게를 하면서 어렵게 살았어요. 그놈의 조직이 뭔지 의식이 뭔지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이와 관련해서, 정치인 B씨는 조직의 핵심에서 일했던 김○○의 일화를 소개했다.
“성남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경원대(現 가천대) 마르크스 연구회에서 활동하다 제적을 당했죠. 4학년 중퇴 학력입니다. 이재명 시장 당선 후에 특채로 성남청소년○○재단 사무국장 자리에서 근무했습니다. 남편은 ○○노조 사무국장으로 일했는데 대학 시절 마르크스 연구회에서 함께 활동했습니다. 성남시 정자동 지하방에서 살았는데 정말 가난했습니다. 휴대폰 요금조차 못 낼 정도였으니까요. 돈이 없어서 전기까지 끊어질 정도였어요. 더욱 눈물나는 것은 애가 없었어요. 주위에서 ‘왜 아이를 갖지 않느냐’고 물으면, ‘임신을 해서 아이에게 신경을 쓰면 사회운동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진다’고 말하곤 했죠. 인간적으로는 나쁜 사람이 아닌데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야권연대로 지역에 뿌리내린 경기동부
경기동부 조직원들이 눈물나게 가난했던 것은 조직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A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경기동부에 가담한 인사들이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기동부 사람들은 나름 직장이 있었어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조금을 받는 사회단체에서 일했어요. 아마 정부 지원금을 모두 생계(生計)에 사용했으면 그렇게 가난하게 살지는 않았을 거예요. 문제는 각자의 통장으로 입금된 월급의 상당액수를 조직에서 걷어간다는 것이죠. 당비, 혹은 조직비 명목으로 가져갔어요.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통진당이 야권연대를 했잖아요. 그래서 경기동부 조직원들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진출했어요. 아마도 월급의 상당액을 모아서 조직 운영자금으로 사용했을 거예요. 결국 나랏돈이 경기동부로 흘러갔던 것이죠.”
—야권연대와 관련해서, 구체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경기동부를 어떻게 지원했나요.
“성남시 이재명 시장을 예로 들어 볼까요. 2011년 6월 《성남피플》이라는 신문이 발행되었습니다. 창간 발행인은 현재 이석기 보좌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욱이었습니다. 성남 산업진흥재단 7층 강당에서 모임이 열렸죠. 원래 산업진흥재단 강당에서 정치적 행사를 하면 안 돼요. 그런데 이재명 시장이 직접 행사에 참석하면서 강당 사용을 허락했어요. 《성남피플》은 주로 경기동부 사람들 홍보하는 내용이 대부분으로 지면도 몇 장 되지 않는 어설픈 신문입니다. 그래도 성남시 상당수 산하 기관이 구독하고 있어요.”
성남시립의료원과 경기동부
경기동부연합이 성남시를 장악해 간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성남시립의료원’ 논란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내막을 아는 지역기자, 정치인들은 시립병원 설립 운동의 배후에 경기동부가 있다고 말한다. 경기동부가 병원을 세워 노조를 장악해 돈과 조직을 확충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경기동부로 분류되는 인사들은 직간접적으로 시립병원 설립 운동과 연관되어 있다.
10년 가까이 성남을 대립과 반목의 투쟁장(鬪爭場)으로 만든 시립병원 설립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랜 진행과정을 알아야 한다.
‘돈보다 생명을’이라는 구호(口號)를 내세운 성남 지역 진보 시민·사회단체들은 2003년 7월 인하병원(450병상)이 문을 닫고, 두 달 후에 성남병원(250병상)이 철수하자 성남시에 의료원(시립병원)을 설치해 달라며 같은 해 12월 29일 주민 1만8525명의 서명을 받아 ‘시립의료원 설립·운영 조례안’을 냈다. 논란 끝에 이 조례는 2007년 옛 성남시청터에 500병상 규모의 시립병원을 짓는 것으로 정리됐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시립병원추진위 공동대표는 2010년 민주당 성남시장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당선 직후 이 시장은 2015년까지 예산 1902억원을 들여 지하 4층, 지상 11층으로 450병상 규모의 시립의료원을 짓기로 확정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시의석 33석 가운데 18석을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의료원의 대학병원 위탁’을 강제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해당 사안은 ‘성남판 복지논쟁’으로 불리며 점차 보수와 진보의 이념논쟁의 대상으로 변질(變質)됐다. 전국 처음으로 시민발의에 의해 조례를 제정했다는 상징성과 공공의료를 확대해야 한다는 명분을 바탕으로 진보 진영은 10년 가까이 시립병원 건립을 주장하고 있다. 성남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는 2006년 ‘광범위한 주민참여에도 성공하기 힘든 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다양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성공시켜 시민운동의 큰 성과를 거뒀다’는 명목으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수여하는 풀뿌리시민운동 사례 ‘풀잎상’을 수상했다. 해당 사안은 진보 진영에서 끊임없이 필요성을 주장하는 숙원(宿願)사업이다.
그러나 성남시 인근에는 서울대분당병원, 차병원, 제생병원, 정병원, 중앙병원 등의 5곳의 종합병원이 있다. 또 교통의 발달로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이 30분 거리에 위치한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대분당병원, 분당차병원, 성남시 본 시가지에 위치한 정병원의 경우 100~400병상을 증축할 예정이거나 이미 증축했다. 따라서 신설 시립병원은 유력 대학병원과의 경쟁에서 고전(苦戰)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립병원은 돈 먹는 하마가 될 것’이라는 주장은 이런 현실에 근거한다. A씨는 인하병원 사태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인하병원 사태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인하, 성남 병원이 문을 닫은 것은 당시 강성(强性) 노조의 책임이 큽니다. 해당 병원 노조는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파업을 계속했습니다. 특히 인하병원의 경우 IMF 시절에도 임금 인상을 요구해 관철시켰고, 인천 등 다른 지역의 인하대 부속병원까지 노조로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이런 노조가 부담스러워 발을 뺀 것입니다. 당시 시의원이었던 김미희는 파업현장에 나타나 지지 발언을 많이 했습니다. 병원에서 시위가 있으면 항상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 뒤에서 병원 노조 지도부를 조종했습니다. 배후가 있다는 생각을 그때 했습니다. 경기동부가 그 당시 배후였습니다.”
—경기동부에서 인하병원 사업을 추진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기동부 지도부는 병원 경영진이 문을 닫고 철수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노동자들만 피해를 봤습니다. 인하병원 출신이라고 하면 취업이 되지 않았습니다. 인하병원 근무 경력을 숨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취업길이 막힌 퇴직자들이 주축이 된 것이 시립병원 설립 운동입니다. 병원이 문을 닫은 지 10년 가까이 되지만 이들은 아직까지 주기적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시립병원이 설립되면 이들을 고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신설 시립병원은 경기동부의 핵심거점이 될 것입니다. 노조비·투쟁비 등을 걷어 조직 운영비로 쓸 수 있고 선거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과연 시립병원이 운영이 될지는 회의적(懷疑的)입니다. 물론 치료비는 저렴하겠죠. 그러나 병이 나면 집을 팔아서라도 좋은 병원에 가는 것이 환자들 심리 아닙니까. 나부터도 시립병원은 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국정원이 입수한 경기동부 ‘지하조직 비밀회의’ 녹취록에 따르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정치, 군사적 준비를 해야 한다”며 “한두 사람의 발언과 결의가 아니라 전국적 범위에서 새로운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최종 결전의 결사를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의 주장은 단지 허풍이 아니다. 최종 결사를 위한 기반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새누리당이 정부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조선일보》가 10월 초에 보도한 정부, 지방단체에 진출한 통진당 관련 인사들의 명단을 보면 종북세력이 시민사회단체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했음을 알 수 있다.
보도에 따르면 지자체에 진출한 통진당 관계자 38명 중 14명은 근로자복지센터,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 지자체 산하단체의 단체장이거나 책임자급이었다. 14명은 정부 및 지자체에서 지원을 받는 사회적 기업 대표나 운영위원, 본부장 등 임원이었고 나머지 10명은 서울, 인천 등 지자체에서 예산지원을 받는 민간단체 소속이었다.
그러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종북세력의 실체에 대해 검찰은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사건이 묻힐 것이 우려된다”는 제보자들의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이유이다.⊙
10월 초 경기도 성남시 인근 식당에서 기자는 수십 년간 경기동부연합 조직원들과 교류했던 A씨를 만나 조직의 실체에 대한 증언을 들었다.
A씨는 대표적 종북세력으로 의심되는 경기동부연합 핵심 인물들과 오랜 기간 교류했다. 경기동부연합의 지역거점인 성남 지역에서 활동했던 A씨에 대해 지역 정치인, 언론인들에게 문의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A씨야말로 경기동부에 대해 가장 정통한 인물”이라고 답했다. 기자는 수개월 동안 A씨에게 “경기동부의 실체를 밝혀달라”고 요청했으나, A씨는 “아직 자식들을 출가(出嫁)시키지 못했다”며 인터뷰를 극구 사양해 왔다.
그러다 9월 말 검찰의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51·구속)에 대한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보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그는 “조직사건 수사의 핵심은 조직명, 조직체계 등 조직의 실체(實體)를 밝히고, 북한 노동당 가입 등 북한과의 연관성을 규명하고, 조직의 지도부를 색출(索出)해야 하는데 검찰 조사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없다”며 “이대로 가면 사건 자체가 묻힐 것 같아 증언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수원지검 공안부는 9월 말 이 의원을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찬양·고무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이 의원은 이른바 지하혁명조직 ‘RO(Revolutionary Organization)’의 총책을 맡아 활동하면서 국가 통신·유류 시설 등 국가기간시설 파괴를 모의하고 인명살상 방안을 협의한 혐의(내란음모, 선동 등)를 받고 있다. 지난해 3~8월 RO 조직원 수백 명이 참석한 모임에서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발언을 하고, 북한 혁명가요인 적기가(赤旗歌) 등을 부른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역시 추가됐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혐의 내용이 이미 공개된 비밀 모임 녹취록 내용 말고는 새로운 것이 없고, 조직 구성과 체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A씨는 과거 경기동부 조직 활동을 증언하면서 조직원들의 이름과 직책 등을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기자는 익명(匿名)을 보장해 달라는 A씨의 요청에 따라, A씨의 이름, 직함 등을 모두 비(非)공개 처리했다. 또 증언 내용을 검증하기 위해 경기동부의 전신(前身)인 민혁당 조직원, 경기동부지역 운동권 원로 등에게 자문을 요청했다.
“공산통일이 뭐가 나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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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6일 경기도 수원지검 대회의실에서 김수남 수원지검장이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1990년대 말에 경기동부에서 주최하는 모임에 참석했었습니다. 모임에서 베트남식으로 통일하자는 주장을 하더라고요. 황당했습니다. 베트남의 호치민이 미제(美帝·미국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자주적으로 잘 살고 있다면서 공산통일이 뭐가 나쁘냐고 말했습니다. 명분(名分)은 이념과 사상의 장벽을 넘어서 통일하자는 것인데, 북한의 주장에 동조(同調)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또 데모를 하면 그 배후(背後)에는 항상 그 사람들이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시위(示威)의 배후에서 활동했던 구체적인 사례는 무엇인가요.
“이석기와 뜻을 같이했던 이○○은 구(舊)삼성프라자 노조 설립 운동의 배후였습니다. 2007년 애경이 분당 삼성프라자를 인수했습니다. 현재 분당의 AK프라자 백화점은 과거 삼성물산이 운영했습니다. 매년 흑자만 250억원이 넘는 알짜였죠. 그런데 노조를 설립하려 했습니다. 백화점 사업은 지역에 개장을 한 후에 5~6년 동안 투자를 해야 흑자로 돌아서게 됩니다. 삼성 입장에서는 수년간 투자를 했는데, 흑자전환을 이루자마자 사업에서 철수했습니다. 노조설립신고가 계속 들어오고, 민주노총에서 활동하던 이○○이 배후에서 조종하니까 손 털고 나간 것이죠. 삼성은 노조를 용납하지 않죠.”
—경기동부가 성남에서 세력을 어떻게 확장했나요.
“다양한 사업에 나섰습니다. 시의 지원을 통해 성장했죠. 예를 들어 푸른○○이 있습니다. 방과 후 학교 개념으로, 맞벌이 부부의 자녀 교육을 위해 시작됐습니다. 교사 등 주요 구성원이 경기동부와 긴밀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을 의식화시키는 문제가 있었어요. 제가 푸른○○ 사업이 시작되었을 때 찾아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학생들에게 급식을 하면서 ‘이 밥을 누가 주는지 아세요. 이것은 푸른○○에서 주는 것이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어요. 시 예산으로 운영하면서 마치 스스로 운영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말하더라고요. 아이들을 의식화하고 있다고 느껴졌어요. 이런 교육 사업을 통해 경기동부 세력은 점차 커졌습니다. 직업 교육 사업에도 뛰어들었어요. 성남건설○○학교의 경우, 민선2기 당시 김미희 시의원이 주장해서 시작했어요. 성남시에서는 굳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김 의원이 워낙 강력하게 필요성을 주장하다 보니 시작됐죠. 이○○이 주도했어요. 아마도 이석기보다 조직 서열(序列)이 높을 거예요.”
“이석기는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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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1일에 치뤄진 총선 이틀 전 경기 성남중원에 출마한 김미희 후보 사무실에서 전략회의를 갖고 있는 이석기 의원(사진 오른쪽 끝). 당시 비례대표 2번을 받은 이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해당 사진을 올렸다. 이 의원은 “D-2, 성남중원 김미희 선본(선거본부) 동지들과 늦은 시간 전략회의를 가졌습니다. 자정 넘는 시간까지 지지자를 찾아다니는 운동원들로 회의장 주변은 바삐 돌아갑니다. 꼭 이기리라 믿습니다”는 글을 사진과 함께 남겼다. 당시 무명(無名) 정치인이었던 이 의원이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
수사발표에서 검찰이 발표한 조직체계도에 따르면, 이석기는 조직의 총책으로 RO를 이끌었다. 이석기는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진출하기 전까지 철저히 지하에서 활동했다. 《월간조선》은 2012년 7월호에서 성남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던 운동권 원로급 인사의 이석기에 대한 증언을 소개했다. 당시 증언은 다음과 같다.
“이석기씨가 경기동부연합의 몸통이었던 것은 맞습니다. 80년대 말부터 이 의원은 NL(민족해방) 운동권 후배들에게 굉장한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 의원은 4시간 이상 자지 않았습니다. 같이 술을 마시면 분위기를 맞춰주면서도 자신은 절제했습니다. 밤새 술을 마셔도 새벽에 일어나 책을 보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인민적 품성, 혁명가로서의 자존심으로 생활한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의원의 지도를 받고 감화(感化)를 받은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 의원은 소위 경기동부연합의 수령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후배들은 이 의원을 ‘김영환 이후 남한 주사파 최고의 사상·이론가’로 평가했습니다. 외대 캠퍼스에 전설적인 인물이 두 명 있었는데 학번이 같았던 이석기와 최○○입니다.
이석기 의원은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김대중 정권 시기인 1999년 국정원에 의해 그 전모가 드러난 대표적 주사파 지하조직으로 이 의원은 민혁당의 조직원으로 구속돼 징역 2년 6월이 확정된 상태에서 복역하다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3년 8·15특별사면으로 석방) 시절부터 외대 출신뿐만 아니라 성남(운동권 조직)에서 존경받았습니다. 후배들이 말하기를 ‘이 선배는 한마디로 수령’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 의원이 홍보물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껍데기(위장)였습니다.”
이석기 위에 원로그룹 존재
검찰과 운동권 원로는 공통적으로 이석기가 조직의 총책이라고 주장하지만, A씨는 “이석기 윗선에 또 다른 인물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A씨의 설명이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이석기가 조직 총책(總責)으로 되어 있는데요.
“이석기는 CNC를 통해 돈을 장악한 것이죠. 그 위에 원로 그룹이 있어요. 원래 운동권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사람은 별로 힘이 없는 사람이에요. 실세(實勢)는 뒤에서 조종하죠. 지하조직이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닌가요.
예를 들면 이○○은 현재 사회적 기업이라는 ○○건설 대표를 맡고 있어요. 사회적 기업을 명분으로 관급 공사를 많이 하고 있죠. 또 이용대 전(前) 민노당 정책위원장이 있습니다. 서울대 미학과 74학번으로 민노당 창당에 크게 기여했죠. 요즈음은 뇌출혈로 쓰러져서 활동을 못하고 있습니다. ○○ 스님 역시 중요한 원로입니다. 비전향장기수 묘지를 만들어 민주애국열사묘라고 이름 붙였죠.”
이와 관련해 성남 지역 정치인 B씨는 검찰의 수사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검찰이 이석기가 현직 국회의원이니까, 이 의원 중심으로 사건을 보다 보니, 제대로 된 조직체계를 밝혀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석기가 중심인물이기는 하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핵심 의사결정 지도부가 있었어요. 기업의 이사회 같은 것인데, 이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이 아쉬워요. 또 검찰은 RO조직이 지역별로 거점을 만들어서 활동했다고 단순하게 설명하는데, 거기에 그치지 않았어요. 지역별로 교육, 문화, 사업, 언론, 노동을 담당하는 세분화된 조직체계가 있었죠. 검찰 수사 발표는 조직 핵심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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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검 공안부가 공개한 ‘RO’조직체계도. |
“검찰은 조직의 명칭을 RO라고 설명하는데, 참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해요. RO는 운동권에서 핵심 조직원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입니다. 가장 밑바닥에 MO(Mass Organization·대중조직)가 있어요. MO는 혁명적 욕구가 없는 조직원들로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들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예를 들어 학생회, 농민회, 노조, 기성 정당 등이 있습니다. 그 위로 RMO(Revolutionary Mass Organization·혁명적 대중조직)가 있습니다. 이들은 MO에 소속되어 있으나 좀 더 정치적으로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합니다. 조직 내에서 의식이 강한 사람들이 따로 모여서 조직을 묶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RO가 있습니다. 자본가(資本家), 제국주의(帝國主義)가 없는 세상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서 투쟁하는 직업 혁명가를 뜻하는 보통명사입니다.
주사파 조직은 명칭을 만들 때 나름의 이유와 논리가 있어요. ○○당 혹은 ○○연합이라는 명칭(名稱)이어야 말이 되는 것이죠. 검찰의 주장처럼 조직명을 RO라고 하지는 않을 거예요. 아마도 이석기 측에서 재판과정에서 RO는 조직명이 될 수가 없다는 근거를 제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운동권 조직 생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RO가 조직명이 될 수 없다는 데 동의할 거예요. 조직의 이름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으니 구체적인 혐의가 헷갈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직 사건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북한 노동당 가입 여부를 밝혀내는 것이죠. 과거에는 북에서 팩스 등으로 노동당 가입증을 보냈는데, 요즈음은 문서를 보내지 않아요. 그것이 증거가 되니까요. 아마도 북에서 누군가 내려와서 구두(口頭)로 ‘당신은 이제부터 노동당에 가입됐다’고 임명했을 거예요. 북한 노동당 규약에 구두로 노동당에 가입하는 절차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어요. 가장 중요한 노동당 가입 문제에 대해 검찰이 아무런 설명을 하고 있지 않으니 답답합니다.”
경기동부의 일탈이 한국사회에 충격을 준 이유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이데올로기 대결이 끝났음에도, 경기동부 세력이 낡은 주체사상(主體思想) 이론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A씨의 설명이다.
—경기동부 조직원들의 생활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대학을 나와서 평생을 취직하지 않고 우유배달하면서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이에요. 의식화되지 않으면 그렇게 못하죠. 예를 들어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나온 이○○은 무가지 《벼룩시장》 꽂아주는 일을 하면서 20만원 받아서 생활했어요. 민주○○에서 일을 했는데, 과거에는 돈이 내려오지 않았죠. 지금은 150만~180만원 정도 받는다고 하더군요. 고려대를 나와 건설○○노조 상근자로 활동하던 김○○의 경우는 갑자기 서울○○센터로 가더라고요. 아니 잘 지내고 있는데 왜 서울에 가냐고 주변에서 물으니까, ‘조직에서 가라면 가야 한다’고 한탄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김미희 의원 역시 서울대 약대를 나왔는데도 남편과 금가루를 삼겹살에 뿌려주는 가게를 하면서 어렵게 살았어요. 그놈의 조직이 뭔지 의식이 뭔지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이와 관련해서, 정치인 B씨는 조직의 핵심에서 일했던 김○○의 일화를 소개했다.
“성남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경원대(現 가천대) 마르크스 연구회에서 활동하다 제적을 당했죠. 4학년 중퇴 학력입니다. 이재명 시장 당선 후에 특채로 성남청소년○○재단 사무국장 자리에서 근무했습니다. 남편은 ○○노조 사무국장으로 일했는데 대학 시절 마르크스 연구회에서 함께 활동했습니다. 성남시 정자동 지하방에서 살았는데 정말 가난했습니다. 휴대폰 요금조차 못 낼 정도였으니까요. 돈이 없어서 전기까지 끊어질 정도였어요. 더욱 눈물나는 것은 애가 없었어요. 주위에서 ‘왜 아이를 갖지 않느냐’고 물으면, ‘임신을 해서 아이에게 신경을 쓰면 사회운동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진다’고 말하곤 했죠. 인간적으로는 나쁜 사람이 아닌데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야권연대로 지역에 뿌리내린 경기동부
경기동부 조직원들이 눈물나게 가난했던 것은 조직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A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경기동부에 가담한 인사들이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기동부 사람들은 나름 직장이 있었어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조금을 받는 사회단체에서 일했어요. 아마 정부 지원금을 모두 생계(生計)에 사용했으면 그렇게 가난하게 살지는 않았을 거예요. 문제는 각자의 통장으로 입금된 월급의 상당액수를 조직에서 걷어간다는 것이죠. 당비, 혹은 조직비 명목으로 가져갔어요.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통진당이 야권연대를 했잖아요. 그래서 경기동부 조직원들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진출했어요. 아마도 월급의 상당액을 모아서 조직 운영자금으로 사용했을 거예요. 결국 나랏돈이 경기동부로 흘러갔던 것이죠.”
—야권연대와 관련해서, 구체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경기동부를 어떻게 지원했나요.
“성남시 이재명 시장을 예로 들어 볼까요. 2011년 6월 《성남피플》이라는 신문이 발행되었습니다. 창간 발행인은 현재 이석기 보좌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욱이었습니다. 성남 산업진흥재단 7층 강당에서 모임이 열렸죠. 원래 산업진흥재단 강당에서 정치적 행사를 하면 안 돼요. 그런데 이재명 시장이 직접 행사에 참석하면서 강당 사용을 허락했어요. 《성남피플》은 주로 경기동부 사람들 홍보하는 내용이 대부분으로 지면도 몇 장 되지 않는 어설픈 신문입니다. 그래도 성남시 상당수 산하 기관이 구독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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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민중의소리>는 ‘이재명 후보로 성남시장 야권 단일화 실현한 후 함께 유세를 펼치는 김미희 후보’라며 공동유세 사진을 공개했다. 당시 김미희 후보(現 통진당 국회의원)는 경기도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
10년 가까이 성남을 대립과 반목의 투쟁장(鬪爭場)으로 만든 시립병원 설립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랜 진행과정을 알아야 한다.
‘돈보다 생명을’이라는 구호(口號)를 내세운 성남 지역 진보 시민·사회단체들은 2003년 7월 인하병원(450병상)이 문을 닫고, 두 달 후에 성남병원(250병상)이 철수하자 성남시에 의료원(시립병원)을 설치해 달라며 같은 해 12월 29일 주민 1만8525명의 서명을 받아 ‘시립의료원 설립·운영 조례안’을 냈다. 논란 끝에 이 조례는 2007년 옛 성남시청터에 500병상 규모의 시립병원을 짓는 것으로 정리됐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시립병원추진위 공동대표는 2010년 민주당 성남시장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당선 직후 이 시장은 2015년까지 예산 1902억원을 들여 지하 4층, 지상 11층으로 450병상 규모의 시립의료원을 짓기로 확정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시의석 33석 가운데 18석을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의료원의 대학병원 위탁’을 강제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해당 사안은 ‘성남판 복지논쟁’으로 불리며 점차 보수와 진보의 이념논쟁의 대상으로 변질(變質)됐다. 전국 처음으로 시민발의에 의해 조례를 제정했다는 상징성과 공공의료를 확대해야 한다는 명분을 바탕으로 진보 진영은 10년 가까이 시립병원 건립을 주장하고 있다. 성남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는 2006년 ‘광범위한 주민참여에도 성공하기 힘든 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다양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성공시켜 시민운동의 큰 성과를 거뒀다’는 명목으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수여하는 풀뿌리시민운동 사례 ‘풀잎상’을 수상했다. 해당 사안은 진보 진영에서 끊임없이 필요성을 주장하는 숙원(宿願)사업이다.
그러나 성남시 인근에는 서울대분당병원, 차병원, 제생병원, 정병원, 중앙병원 등의 5곳의 종합병원이 있다. 또 교통의 발달로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이 30분 거리에 위치한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대분당병원, 분당차병원, 성남시 본 시가지에 위치한 정병원의 경우 100~400병상을 증축할 예정이거나 이미 증축했다. 따라서 신설 시립병원은 유력 대학병원과의 경쟁에서 고전(苦戰)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립병원은 돈 먹는 하마가 될 것’이라는 주장은 이런 현실에 근거한다. A씨는 인하병원 사태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인하병원 사태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인하, 성남 병원이 문을 닫은 것은 당시 강성(强性) 노조의 책임이 큽니다. 해당 병원 노조는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파업을 계속했습니다. 특히 인하병원의 경우 IMF 시절에도 임금 인상을 요구해 관철시켰고, 인천 등 다른 지역의 인하대 부속병원까지 노조로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이런 노조가 부담스러워 발을 뺀 것입니다. 당시 시의원이었던 김미희는 파업현장에 나타나 지지 발언을 많이 했습니다. 병원에서 시위가 있으면 항상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 뒤에서 병원 노조 지도부를 조종했습니다. 배후가 있다는 생각을 그때 했습니다. 경기동부가 그 당시 배후였습니다.”
—경기동부에서 인하병원 사업을 추진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기동부 지도부는 병원 경영진이 문을 닫고 철수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노동자들만 피해를 봤습니다. 인하병원 출신이라고 하면 취업이 되지 않았습니다. 인하병원 근무 경력을 숨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취업길이 막힌 퇴직자들이 주축이 된 것이 시립병원 설립 운동입니다. 병원이 문을 닫은 지 10년 가까이 되지만 이들은 아직까지 주기적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시립병원이 설립되면 이들을 고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신설 시립병원은 경기동부의 핵심거점이 될 것입니다. 노조비·투쟁비 등을 걷어 조직 운영비로 쓸 수 있고 선거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과연 시립병원이 운영이 될지는 회의적(懷疑的)입니다. 물론 치료비는 저렴하겠죠. 그러나 병이 나면 집을 팔아서라도 좋은 병원에 가는 것이 환자들 심리 아닙니까. 나부터도 시립병원은 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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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경기도 수원지검 앞에서 통진당 관계자들과 국정원 내란음모 정치공작 공안탄압 규탄 경기대책위가 이석기 의원 석방을 주장하고 있다. |
새누리당이 정부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조선일보》가 10월 초에 보도한 정부, 지방단체에 진출한 통진당 관련 인사들의 명단을 보면 종북세력이 시민사회단체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했음을 알 수 있다.
보도에 따르면 지자체에 진출한 통진당 관계자 38명 중 14명은 근로자복지센터,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 지자체 산하단체의 단체장이거나 책임자급이었다. 14명은 정부 및 지자체에서 지원을 받는 사회적 기업 대표나 운영위원, 본부장 등 임원이었고 나머지 10명은 서울, 인천 등 지자체에서 예산지원을 받는 민간단체 소속이었다.
그러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종북세력의 실체에 대해 검찰은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사건이 묻힐 것이 우려된다”는 제보자들의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