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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장 조 토리 감독

  • 글 : 이상희 월간조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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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적 부진하던 뉴욕 양키스, 토리 감독 영입한 해에 곧바로 월드시리즈 우승
⊙ 메이저리그 통산 2326승으로 현존하는 메이저리그 감독 중 최고의 기록 보유
⊙ “선수 입장에서 생각하며 팀을 이끄는 것이 좋은 성적의 비결”
조 토리 감독이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멕시코 대표팀과의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 토리(Joe Torre) 전 뉴욕 양키스 감독이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2013년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한 미국 국가대표 야구팀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한 것이다. 지난 2010년 LA 다저스 감독직에서 사임한 지 3년 만이다.
 
  미국 야구 팬들은 최고의 명장으로 손꼽아온 토리 감독이 미국 국가대표팀을 맡아 현장에 복귀한 것을 대환영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이번 WBC에 참가한 미국 대표팀의 첫 번째 경기를 보기 위해 온 가족과 함께 멀리 뉴욕에서 애리조나까지 왔다는 한 미국인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내로라하는 대표팀 선수들을 보는 것보다 조 토리 감독을 다시 야구장에서 볼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디 미국이 이번 대회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둬 토리 감독을 하루라도 더 야구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 또한 토리 감독의 현장 복귀를 크게 반겼다. 미국은 지난 두 번의 WBC 대회에서 예선 탈락한 바 있다. WBC 개최국이자 야구 종주국인 미국의 체면이 크게 구겨진 것. 이에 미국 언론은 토리 감독의 지도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혹자는 한발 더 나아가 이번 WBC 대회를 계기로 토리 감독이 다시 메이저리그 현장에 복귀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토리 감독은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지금도 메이저리그 구단들로부터 감독직을 제의받고 있지만 현장에 복귀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어 “WBC 국가대표팀 감독기간은 단 3주뿐이다. 이는 마치 할아버지가 손주들을 잠시 맡아주는 것처럼 많은 시간을 요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수락하게 됐다”고 말했다.
 
 
  ‘양키스 제국’이란 신조어를 탄생시킨 명장
 
조 토리 감독이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에 있는 체이스필드에서 이탈리아와의 경기에 앞서 진행된 선수들의 연습장면을 보좌관과 함께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올해 나이 73세인 토리 감독은 LA 다저스 감독을 끝으로 현장에서 은퇴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아직도 그를 ‘전 뉴욕 양키스 감독’으로 부른다. 왜 그럴까?
 
  ‘뉴욕 양키스’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문구단이다. 야구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뉴욕 양키스에 대해서는 친밀감을 느낄 정도다. 이런 사실을 입증하듯 N자와 Y자가 결합된 뉴욕 양키스 로고가 새겨진 모자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스포츠상품 중 하나다.
 
  뉴욕 양키스는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 소속된 팀으로 지난 1901년 창단되었다. 연고지는 뉴욕주(州) 뉴욕이며 처음에는 하이랜더스(High Landers)라는 이름을 사용하다가 1913년 지금의 ‘양키스(Yankees)’로 바꿨다.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구단답게 지금껏 양키스가 배출한 스타들도 다양하다. 메이저리그 통산 714홈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베이브 루스를 비롯해 2130경기 연속 출장기록을 보유한 루 게릭, 그리고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포수로 꼽히는 요기 베라 등 그 이름을 모두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한때 미국 프로야구를 호령했던 박찬호 선수도 지난 2010년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당시 그도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문구단인 뉴욕 양키스에 입단해 기쁘며 양키스는 어릴 적부터 동경해 오던 팀”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뉴욕 양키스는 팬들뿐만 아니라 야구선수들에게조차도 동경의 대상이 되는 메이저리그 최고 인기 구단이다.
 
  하지만 양키스는 1978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뒤 매년 하위권에 머물며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양키스는 예전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해마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선수단 연봉을 지급하며 몸부림쳤지만 그들의 성적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던 뉴욕 양키스의 몰락, 하지만 토리 감독을 영입하자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토리 감독은 부임 첫 해였던 1996년 곧바로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를 두고 당시 미국 언론들은 ‘토리의 마술’이라 부르며 그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했다.
 
  무려 18년이란 긴 시간 동안 월드시리즈 우승에 목말라 했던 양키스 구단과 팬들의 갈증을 단번에 해소시켜 준 토리 감독은 이후 거침이 없었다. 양키스 감독으로 재임한 12년 동안 그는 지구 우승 10회를 비롯해 매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특히 그 어렵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내리 3연패 했다. 이로 인해 ‘양키스 제국’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할 정도였고 당시 양키스의 전력은 그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 같았다.
 
 
  메이저리그 최초로 달성한 ‘선수-감독’ 각 2천 승 대기록
 
  토리 감독은 2007년 6월 7일 메이저리그 역대 감독 가운데 10번째로 통산 2천 승(勝) 달성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로써 토리 감독은 메이저리그 최초로 선수와 지도자로 각각 2천 승 달성을 모두 이룬 금자탑을 쌓게 되었다. 토리 감독은 자신의 이런 눈부신 성적을 “오로지 선수들이 잘해준 덕”이라며 겸손해 했다. 토리 감독은 현재 메이저리그 통산 2326승을 기록해 역대 다승 감독 순위 5위에 올라 있다. 이는 현존하는 메이저리그 감독 가운데 최고의 기록이다.
 
  미국 또한 한국처럼 갈수록 감독의 수명이 짧아지고 있다. 특히 구단에서 기대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프로야구 감독은 이내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한다. 연간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2천 승을 달성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癌’마저도 물리친 의지와 정신력, 그러나 가정폭력의 피해자
 
WBC 미국 국가대표팀과 메이저리그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연습경기 중 투수교체를 위해 마운드에 오른 조 토리 미국 국가대표 감독.
  양키스 감독으로 재임하며 지도자로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1999년 시즌 개막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정기 건강검진을 받던 중 전립선암 판정을 받은 것. 하지만 그는 암 수술 후 단 2개월이란 짧은 치료기간만 품에 안은 채 서둘러 현장에 복귀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그해 팀을 또다시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를 두고 당시 미국 언론들은 “토리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이 암이라는 무서운 병마저도 물리쳤다”고 대서특필했다.
 
  이탈리아 이민자의 후손인 토리 감독은 1940년 7월 18일 뉴욕 브루클린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한때 뉴욕시에서 형사생활을 했던 공무원이었지만 집에서는 부인에게 손찌검을 일삼던 인물이었다. 토리 감독은 기자에게 “아버지에게 수시로 얻어맞아 아파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내 삶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기억 중의 하나”라고 말할 만큼 아버지의 폭력은 토리 감독뿐만 아니라 그의 형제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토리 감독의 누나는 수녀가 되어 평생을 혼자 살고 있다. 토리 감독은 비록 아버지처럼 가정폭력을 일삼는 난폭한 성격은 아니지만 한 여자에게 정착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영향 탓인지 지금까지 세 번의 결혼을 통해 총 4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특히 현 부인이자 그의 세 번째 부인인 앨리(Ali)와는 무려 18년이란 나이 차를 극복해 결혼 당시 미국 내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둘은 결혼 후 ‘조 토리 재단’을 설립해 뉴욕 시내에 토리 감독 어머니의 이름을 딴 ‘마거릿(Margaret)의 쉼터’를 운영하며 가정폭력 피해자를 돌보고 있다. 토리 감독은 또 가정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각종 공익광고에 꾸준히 자신의 목소리를 기부하는 등 봉사활동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교육을 통한 가정폭력 예방과 피해자 구제를 위해 전문상담가를 중·고등학교에 파견하는 일도 지원하고 있다. 토리 감독에게 이 같은 일을 꾸준히 펼치는 이유에 대해 묻자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았다.
 
  “가정폭력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주변인들에게도 적잖은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저도 아버지에게 얻어맞는 어머니를 보며 성장해서 어렸을 적에는 늘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습니다. 특히 가정폭력 피해자는 저를 비롯 그 사실을 주위에 알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학교 등에 전문상담가를 상주시켜 가정폭력 피해자 아이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하는 등 가정폭력 피해를 줄이는 교육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재단을 설립한 게 2002년 11월이었으니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이처럼 가정폭력의 간접 피해자였던 토리 감독은 어릴 적 야구를 하며 조금이나마 마음을 위로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세가 되던 1960년 밀워키 브레이브스(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입단하며 프로야구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는 메이저리그가 지금처럼 체계화, 전문화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라 토리 감독은 입단 첫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수 있었다.
 
  입단 당시 포수였던 토리 감독은 간간이 1루수도 겸하며 1963년부터 1967년까지 5년 연속 올스타에 뽑힌 것은 물론 1965년에는 각 포지션별로 최고의 선수에게만 수여하는 골드글러브상도 수상했다.
 
  1969년에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되어 주로 1루수로 기용되다 1971년 같은 포지션에 유망주가 영입되어 3루수로 전향했다. 하지만 그해 타율 0.363에 137타점이라는 자신의 최고기록을 달성했다. 특히 리그 최다안타를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MVP)에도 선정됐다. 하지만 그 후 기량이 급감하여 1975년에는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리고 2년 후인 1977년 선수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토리 감독은 선수생활 18년간 통산타율 0.297, 252홈런, 2342안타의 성적을 기록했다.
 
 
  화려했던 메이저리그 감독생활, 박수칠 때 떠났다
 
  토리 감독은 선수생활 마지막 해였던 1977년 후반기에 공석이 된 메츠 구단의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첫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1981년까지 감독을 맡았지만 이 기간 동안 단 한번도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지 못했다.
 
  1982년, 토리 감독은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감독으로 취임해 첫해에 지구우승을 이뤘지만 그 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1984년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해임됐다. 그 후 TV에서 야구해설자로 활동하며 야인생활을 하다 1990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감독으로 다시 현장에 복귀했다. 하지만 또다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1995년 시즌 중에 해임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토리 감독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며 지도자로 만개한 건 1996년부터이다. 1995년 11월 뉴욕 양키스의 31번째 감독으로 취임한 그는 양키스 감독 부임 첫해였던 1996년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것은 물론 양키스 구단에 18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감격을 안겨주었다. 이후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양키스 감독으로 재임했던 12년 동안 매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월드시리즈 4회, 지구우승 10회 등 화려한 성적을 거두며 ‘양키스 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하자 점차 구단과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2007년 시즌이 끝나고 재계약을 논하는 시점에서 향후 성적에 따라 연봉이 차등 지급되는 모욕적인 계약을 제의받자 이를 거절하고 사임했다.
 
  같은 해 11월 월드시리즈 우승에 목말라 있던 LA 다저스로부터 감독 제의를 받은 토리 감독은 3년 총액 1300만 달러에 계약하며 정든 뉴욕을 떠났다. 다저스 감독으로 처음 맞이한 2008년 시즌, 토리 감독은 팀을 지구우승으로 이끌며 다시 한 번 더 그의 지도력이 빛을 발하는 듯했으나 거기까지였다. 2009년에도 지구우승은 차지했지만 또다시 월드시리즈 진출은 실패했다. 결국 토리 감독은 2010년 시즌이 끝나자 스스로 감독직에서 물러나는 용단을 내렸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메이저리그 최고 명장 비결은 바로 ‘경험’
 
  현존하는 메이저리그 최고 명장으로 칭송받는 그에게 지도자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물었다.
 
  “경험입니다. 세상 모든 분야가 그렇듯 야구에서도 경험만큼 좋은 자산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선수로 뛴 18년간 그리고 지도자 생활 초기에 겪었던 각종 시행착오 등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선수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불공정한 것들을 잊지 않고 지도자가 되어 선수들 입장에서 생각하며 특히 공정한 선에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팀을 이끌고 지휘한 것이 선수들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한 것 같습니다.”
 
  토리 감독에게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현 뉴욕 양키스의 유격수 데릭 지터(39)를 꼽았다.
 
  “지터는 양키스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이자 감독에게는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는 다재다능한 선수입니다. 어느 타선에 배치해도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제대로 수행해 낼 수 있습니다. 특히 야구 실력뿐만 아니라 야구단 전체에 미치는 보이지 않는 그의 긍정적인 파급효과도 대단합니다.”
 
  지터를 애지중지하는 토리 감독에게 그와 얽힌 에피소드는 없는지 물었다.
 
  “제가 양키스 감독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만 해도 지터는 이제 막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신인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작년에 자신이 기록한 253번째 홈런공에 사인을 해 저에게 선물했습니다. 제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 기록이 252개인데 그 기록을 깬 의미 있는 공이죠.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기도 했고 여전히 메이저리그 최고 선수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가 자랑스럽습니다. 지터 같은 선수와 함께 야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토리 감독은 3월 11일 현재 미국 국가대표 야구팀을 이끌고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벌어지는 WBC 1라운드 조별경기에 참여하고 있다. 피닉스에 있는 체이스필드(Chase field) 야구장에서 만난 그에게 이번 대회에서 어느 팀이 우승할 것 같으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걸 알면 야구는 재미가 없습니다. 다른 구기종목과 달리 어느 팀이 이길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게 바로 야구의 매력 아니겠습니까?” 기자가 던진 우문에 토리 감독은 현답을 내놓았다.
 
 
  박찬호를 기억하는 토리 감독 ‘여생은 야구발전 위해 살겠다’
 
  WBC 대회가 끝나는 3월 19일이 지나면 토리 감독은 유니폼을 벗고 또다시 일반인의 생활로 돌아간다. 그는 현재 메이저리그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토리 감독에게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만족하느냐고 묻자 그는 “시즌 중에는 쉬는 날이 없어 아쉽긴 하지만 감독으로 재직할 때 받았던 승패에 대한 부담이나 스트레스 등이 없어 좋다”고 했다. 그는 또 “감독을 할 때는 매년 시즌이 끝나면 다음 해 계약과 관련해 집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이제는 그런 게 없어져서 좋다”고도 했다. 필요 이상의 언론 관심은 더 이상 없지만 토리 감독은 여전히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실제로 이번 대회에서 경기 전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를 소개하는 시간에 토리 감독은 그 누구보다 더 많은 박수와 갈채를 받았다.
 
  그에게 향후 계획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는 “현재 맡고 있는 메이저리그 운영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젊은 선수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노력하겠다.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는 선수들은 스스로 자신을 관리하는 법을 잘 알지만 젊고 어린 선수들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각 팀의 지도자나 협회 등에서 어린 선수들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메이저리그 최고 선수에서 지도자로 수많은 업적을 남긴 조 토리 감독. 그가 메이저리그 감독으로 복귀하지 않는다면 오는 2014년 감독 자격으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가능성은 거의 확실하다.
 
  미 언론이 선정한 최고의 스포츠 지도자로 선정된 토리 감독에게 끝으로 한국 야구 팬들을 위해 한마디 부탁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박찬호를 통해 한국 야구의 우수성을 알게 된 것처럼 야구는 여러 나라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합니다. 앞으로도 야구를 통해 두 나라가 활발한 교류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아울러 더 많은 한국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으면 좋겠습니다.”
 
  안경을 낀 조 토리 감독 눈 밑에 새겨진 주름은 전보다 더 짙어졌지만 야구를 향한 그의 열정만큼은 아직도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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