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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에 포섭된 한국 군인들

“안심해요, 우리 애국하는 거예요”(방첩사 위장수사로 체포된 中 공작원, 체포 전 아내에게)

  •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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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첩사 위장수사관, 中에 거짓 포섭돼 逆공작으로 中 간첩 체포
⊙ 中 공작원이 ‘데드드롭’한 USB 포렌식하니 중국군 회의 장면 사진
⊙ 기밀 팔아 받은 돈으로 性매매한 병사… 中서 나고 자라
⊙ 광저우서 대학 다닌 해군 병사 “북한이 조국, 내 조국”
⊙ 백령도 군함 좌표 찍어 보내고, 부대에는 利敵 표현물 배포
⊙ “대한민국 방첩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중국”(배정석 前 국정원 방첩국장)
⊙ 정보사 블랙요원 명단 유출로 對北·對中 휴민트 붕괴… 복구에 10년 이상 소요
⊙ 민주당, 간첩죄 개정 방치… 中 공작원에 간첩죄 적용 못 해
⊙ 방첩사의 中 공작원 체포… ‘보안’ ‘방첩’ ‘수사’ 기능이 모여 시너지 효과 내
2025년 3월 한국군 현역 군인을 상대로 군사기밀을 수집하던 중국인 칭하오(가명)가 체포됐다. 직업은 대학(중국 장쑤성 소재) 강사였다. 당시 그의 아내는 한국에 유학 중이었다. 그는 아내도 만나지 않은 채 중국 측에 군사기밀을 제공하는 현역 군인 방투철(가명)과 접선하기 위해 제주도로 곧장 입국했다.
 
  아내가 칭하오의 안전을 우려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임무 하러 가는 거지 뭐. 안심해요, 우리 애국하는 거예요.”
 
  칭하오는 일명 ‘Ken Jake(켄 제이크)’에 소속된 공작원(agent)이다. 켄 제이크는 중국 인민해방군 연합참모부 정보국 산하 조직이다. 점조직으로 운영되며 한국 등을 대상으로 군사기밀을 탐지·수집한다. 소셜미디어(SNS)나 카카오톡 등으로 한국 현역 군인, 군무원 등 군 관련자에게 접근해 기밀을 수집하는 방식이다.
 
  켄 제이크의 총책(팀장)은 류난난(가명). 중국 인민해방군 연합참모부 군사정보국 소속 정보요원(Case Officer)으로 공작관(handler)이다. 칭하오의 윗선이다.
 
  켄 제이크는 임무에 맞게 역할을 분담했다. 총책 류난난은 포섭할 한국군 관계자를 물색한 뒤 “군사기밀을 넘기면 대가(代價)를 제공하겠다”며 접근, 포섭해 나갔다. ▲한국어 통역 담당 ▲수집한 군사기밀을 검토하고 거래 대금으로 제공할 금액을 책정 ▲한국 내에서 활동하며 군사기밀 탐지 장비(몰래카메라, USB 등)를 전달 ▲군사기밀 거래의 대가(금전 등)를 전달 ▲포섭된 군 관계자를 직접 만나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역할 등으로 구성됐다. 칭하오는 포섭된 이들을 직접 만나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역할을 맡았다.
 
  방투철과 세 차례[제주(2024년 5, 7월), 싱가포르(같은 해 11월)] 만난 칭하오는 2025년 3월 체포됐고 7개월 뒤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대만에서 포섭된 공작원
 
  류난난이 관리했던 ‘현역 군인 방투철’의 정체는 군사기밀 유출범으로 신분을 위장한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 소속 위장수사관이었다. 방투철은 가공된 군사기밀을 제공하거나, 노출돼도 한국군에 문제가 되지 않는 자료를 제공했다. 완전히 가짜 정보를 보내면 중국 측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칭하오는 중국 산둥성에서 태어났다. 2014년 대학 강사로 임용됐다. 2018년 1월부터 2022년 1월까지 대만에서 지내며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대만에서 켄 제이크의 총책 류난난을 만났다. 류는 2022년 4월부터 칭하오에게 대만의 반중(反中) 단체, 대만 독립 단체의 동향을 수집하라는 지시를 했다. 칭은 이들 단체가 활동하는 ‘라인’ 메신저 내 대화방에 침투해 동향을 파악한 후 류에게 보고했다. 류는 특정 여성 정치인을 포섭하기 위해 그 정치인이 활동하는 동호회에 가입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이 모두는 중국 정보 당국을 위한 정보 수집, 정보원 물색·포섭 작업이었다.
 
  류난난이 속한 조직이 한국군을 포섭 대상으로 노리기 시작한 시점은 2022년 12월경으로 추정된다. 류는 군인이나 군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카카오톡으로 1 대 1 채팅을 요청한 후 자신을 ‘군사연구원’ ‘싱가포르 국제연구소 연구원’ ‘중국 국가안전부 현대국제관계연구원’ 등으로 소개했다. 그리고 한국·미국·일본과 관련한 군사 자료 등을 요구했다.
 
 
  3급기밀 200만원, 2급 400만원 이상
 
한미연합군이 연합 도하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그러던 중 류난난은 현역 군인으로 위장한 방투철을 알게 된다. 카카오톡과 텔레그램 메신저로 아래와 같은 제의를 했다.
 
  “내부 자료이면 3급(기밀) 200만(원) 이상, 2급 400만 이상 현금으로 보내 주겠다.”
 
  “중국 방어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중국에 대한 자료와 정보가 필요하다.”
 
  “중미 대결 경쟁에 관한 자료가 필요하다.”
 

  그리고 2023년 8월 31일 방투철이 알려 준 계좌로 선급금 350만원을 이체했다. 선금을 준 류는 방투철을 포섭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9·11 한미 인천(상륙작전) 73주년 기념 연합훈련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
 
  “2급, 3급 대외비 자료면 좋겠다. 공개 자료면 필요 없다. 2급, 3급이면 300만원 더, 대외비면 200만원 더 주겠다.”
 
  류는 자료를 올릴 자체 서버 주소와 접속에 필요한 아이디·비밀번호까지 방투철에게 알려 줬다.
 
 
  “美 ‘작계 5077’ 구해 달라”
 
기밀 수집에 활용된 손목시계형 몰래카메라.

  방투철은 서버에 〈한미 인천 73주년 기념 연합훈련〉이라는 자료를 한 건 올렸다. 그러자 류난난은 300만원을 입금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 자료가 가치가 그리 높지 않지만, 믿음 증진 차원에서 원고료를 드렸다. 앞으로 계속 협력하고 작전계획(작계), 연합훈련 계획, 평가 보고, 미군·일본 자위대·중국군·한국군·북한군 등에 관한 자료를 제공해 달라. 예를 들면 미 ‘5077 작계’ 등을 구해 달라.”
 
  작전계획 5077은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발생할 경우 국내 거주 미국 민간인 등 비(非)전투원을 해외로 대피시키는 작전계획(NEO·비전투원 후송작전)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을 관할하며 중국 해군 봉쇄 전력인 미 7함대도 작계 5077에 참여한다.
 
  류난난은 위장수사관에게 “한미 연합작전·연합훈련에 관한 자료가 제일 좋다” “불안하면 이번 주는 쉬어도 된다” “가치가 높으면 많이 주겠다”고 하는 등 지속적으로 기밀을 요구했다. 이에 방투철이 자체 생성한 위장 군사기밀인 〈군사시설 이전 추진 동정〉 등 2건을 서버에 올리자, 방투철 계좌로 349만원을 입금했다.
 
  추석이 다가오자 류는 “추석이니 부모님 선물을 사라”며 또 171만원을 이체했다. 그러면서 휴대전화에 ‘USB 카메라’라는 앱을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또 기밀 탐지에 필요한 위장 장비인 손목시계형 몰래카메라(몰카) 등을 보낼 테니 이를 이용하라고 지시했다. 류가 보낸 몰카는 종류만 4종(손목형, 단추형, 목걸이형 등)이었다.
 
 
  “데드드롭 방식으로 거래하자”
 
  중국 측은 그해(2023년) 10월부터는 서버에 기밀을 올리는 대신 무인(無人) 포스트(드롭박스)에서 ‘데드드롭(dead drop)’ 방식으로 거래하자고 했다. 데드드롭은 미리 합의한 장소에 물건을 남겨 두고 나중에 다른 사람이 이를 회수해 발각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류난난은 “주한미군 관련 군사기밀을 수집해 SD카드에 저장했다가 삭제한 후, 카드를 무인 포스트에 숨기면 정보원을 통해 이를 회수해서 삭제한 내용을 복구하겠다”고 했다.
 
  방투철은 〈2023년도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 추진 현황〉 등 위장 군사기밀 5건이 담긴 SD카드를 데드드롭했다. 류는 한국 국적 중국 유학생 G씨에게 SD카드를 회수하고 1000만원을 무인 포스트에 데드드롭하라고 지시했다.
 
  위장수사관을 여러 차례 시험한 류난난은 2024년 4월 조직원을 보내 위장수사관을 만나게 해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군사기밀을 장기적으로 거래할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 신뢰 관계 구축에 활용된 조직원이 칭하오였다.
 
  칭하오는 방투철을 만나기 전 류에게 교육받았는데 내용은 ▲류가 ‘EE’라는 이름으로 한국군을 상대로 군사기밀을 탐지·수집하고 있다는 점 ▲칭과 류가 오래전부터 중국의 한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연구원 행세를 해야 한다는 점 ▲기밀 전달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고 신뢰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 등이다.
 
  칭하오는 2024년 5월 31일 제주국제공항으로 입국했다. 칭은 자신을 경호해 줄 I와 함께 접선 장소를 살피고는 보안 위해(危害) 요소를 류에게 보고했다. 다음 날인 6월 1일 칭과 방투철이 만났다. 칭은 이렇게 말했다.
 
  “도움을 많이 주고 있다고 들었다. 정말 고맙다. 놀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있으면 우리랑 같이 가고 계산해 줄 수 있다.”
 
  위장수사관 방투철은 칭하오에게 ▲(류난난 측이) 원하는 걸 리스트로 만들어 주고 가격표를 매겨 달라 ▲중국 정부의 증서 등 (나에 대한)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잘하는 사람들로 구성해 달라고 요구했다.
 
  류난난도 방투철을 직접 만나 볼 생각이었다. 그해 11월 1일 싱가포르로 온 방투철을 칭하오가 먼저 만났고, 그다음 날 말레이시아에서 류와 방투철이 만났다. 제주도가 아닌 제3국에서 만난 것은 류가 공작관이기 때문이다. 기밀 수집 과정에서 상대국 방첩 당국에 체포되는 등 공작을 그르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기밀을 주고받으며 대가를 주고받더라도, 포섭한 상대를 항시 의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칭하오도 기관에 소속된 공작관이었을까? 원래 직업이 기관 소속 정보요원이고 이 신분을 가리기 위해 대학 강사로 위장하진 않았을까?
 
 
  “공작관은 007이 아니다”
 
1995년 충남 부여에서 검거된 무장간첩 김동식씨. 국정원은 미리 포섭한 간첩을 역이용해 김씨를 체포했다. 사진=조선DB

  국가정보원 방첩국장을 지낸 배정석 성균관대 겸임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류난난은 공작관입니다. 이들은 공무원처럼 특정 기관에 소속돼 있습니다. 현장은 위험하고 변수가 많기 때문에, 영화에 나오는 007처럼 공작관이 직접 활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칭하오 같은 사람을 에이전트(공작원)로 고용해 위험을 회피하며 공작하는 겁니다. 공작관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물색과 포섭’입니다. 단순 협조자를 제외하곤 공작관과 공작원은 간첩이라고 봐야 합니다.”
 
  칭하오는 체포했지만 류난난은 잡을 수 없었다. 재판에서 칭은 자신이 류와 공범 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접촉한 상대가 켄 제이크 조직에 포섭된 군인으로 위장한 방첩사 수사관이었기 때문에 (애초) 실제 군사기밀을 얻을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했다. 기밀 탐지·수집 행위의 실질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 없어 ‘불능범(不能犯)’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또 “위장수사관을 접선할 당시 켄 제이크라는 조직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취지로 항변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칭이 제주도에 왔을 때 류가 경호 인력 I를 붙여 준 사실 등으로 자신이 맡은 일의 심각성과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칭하오가) 이 사건 범행을 위해 입국할 당시 한국에 유학 중인 아내가 있었음에도 아내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며 “안전을 우려하는 아내에게 ‘임무 하러 가는 거지 뭐’ ‘안심해요, 우리 애국하는 거예요’라고 답했다”고 지적했다.
 
 
  파일명 ‘zhihuidating’
 

  류난난을 체포하진 못했는데도 방첩 당국은 어떻게 류와 칭, 켄 제이크가 중국과 관련 있다고 밝혀낼 수 있었을까?
 
  켄 제이크 일당이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류가 군사기밀을 전송받기 위해 개설한 서버 접속 화면이 중국 본토에서 사용하는 ‘간체자(簡體字)’로 작성된 사실을 확인했다. 또 ‘충전기식(위장형) USB’를 포렌식으로 복구해 중국군 정보국 소속 군인의 회의 장면을 촬영한 사진 등을 확보했다. 결정적으로 USB에서 삭제된 파일명이 ‘zhihuidating(즈후이다팅)’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지휘대청(指揮大廳)’, 중국 군사상 용어로 지휘통제실이라는 뜻이다.
 
  재판부는 칭하오에게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5년과 함께 성공보수 명목으로 받은 2만 3000위안(약 460만원·1위안 200원 기준)을 추징금으로 선고했다. 형량이 적은 것은 방첩사 위장수사관이 켄 제이크 측에 넘긴 자료가 실제 군사기밀에 해당하지 않아, 칭의 주장대로 불능범은 아니지만 ‘미수(未遂)’에 그친 점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칭이 받은 성공보수도 범행 난이도에 비하면 많지 않은 금액이다.
 
  이에 대해 방첩 당국 관계자는 “밝혀낸 액수만 460만원일 뿐, 공작원은 정기적으로 공작금을 받기에 알 수 없는 영역”이라고 했다. 또 “공작관은 공작원이 배신할 경우를 대비해 충성 맹세 성격의 계약서도 작성한다. 여기에 활동 조건과 그에 따른 보상 내용이 담긴다”고 했다.
 
 
  현역 군인 간첩, 외조부는 중국군 장교 출신
 
  방첩 당국이 칭하오를 위장수사할 무렵, 전방 ○○사단에서는 중국에서 나고 자란 후 육군 병사로 입대한 최홍재(가명)가 앞서 소개한 방식과 유사한 형태로 중국 정보조직에 군사기밀을 넘기고 있었다.
 
  최홍재는 2003년 중국에서 한국인 친부와 중국인 친모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 국적자다. 2008년 5개월가량 한국에서 생활한 것 외에는 대부분 중국 베이징에서 자랐다. 부모가 이혼한 2013년 이후 친부와는 연락이나 만남이 없다. 최는 외조부모와 함께 살았다. 최의 외조부는 중국 로켓군 대교(大校) 출신으로 2005년 퇴역했다. 대교는 한국군의 대령과 준장 사이 계급이다.
 
  최홍재는 2021년 7월 베이징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9월 마카오과학기술대에 입학했다. 2022년 12월까지 다니다가 휴학한 후 2023년 12월 한국군에 입대했다. 그는 SNS 때문에 중국 정보조직의 물색 대상이 됐다. 최는 2024년 1월 31일 육군훈련소를 수료하면서 군복 입은 자기 사진을 중국 ‘샤오홍수(小紅書·RED)’에 올렸다. 2024년 2월 중국 정보조직의 조직원이 사진에 댓글을 달고 최에게 메시지를 보내면서 조직과 연결됐다. 이후 최는 이 정보조직으로부터 중국어 번역 업무를 의뢰받고 번역비 명목으로 금전을 수수하며 관계를 형성해 나갔다.
 
  정보조직과 유대를 형성한 최홍재는 2024년 7월 31일부터 8월 13일까지 베이징 집으로 휴가를 갔다. 이 기간에 중국 정보조직 소속 조직원과 두 차례 접선했다. 조직원이 최에게 군사상 기밀을 탐지·수집해 달라고 요구하자 최는 이를 수락하고 정보원으로 포섭됐다. 당시 최의 포섭에 나선 중국 공작원은 자신을 ‘중국 싱크탱크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최에게 “컴퓨터에 있는 비공개 군사 자료를 달라”고 요구했다.
 
 
  부대 內서 아이폰·몰카로 기밀 촬영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 국가정보원 방첩국장을 지냈다.
부대로 복귀하기 전에는 기밀 수집에 필요한 아이폰도 중국에서 구매했다. 부대에서는 기존에 사용하던 스마트폰으로 사진 촬영이나 녹음을 할 수 없도록 보안 앱을 설치하기 때문에, 새 아이폰은 부대에 보고하지 않고 숨긴 채 ‘세컨(second)폰’으로 활용했다.
 
  최홍재는 보급병이었다. 부대 내 물품 재고 등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기에 부대 간부를 보조하며 PC를 사용할 수 있었다. 중국 정보조직은 최에게 UFS연습·한미 연합훈련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 보내라는 지령을 내렸다.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는 자기 PC가 아닌 인사병의 PC로 관련 기밀 문건을 인쇄했다. 이후 이를 아이폰으로 찍어 사진 파일을 중국 정보조직이 알려 준 서버에 올리는 방식으로 기밀을 유출했다. 군에서는 인쇄하면 인쇄 명령을 한 PC의 정보가 출력물에 워터마크처럼 함께 찍힌다. 발각될 경우 발뺌할 목적으로 다른 PC를 사용한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최가 인쇄한 UFS 문건은 미군이 작성해 한국군에 전파한 내용으로 주한미군 주둔지 명칭, 지역별 숙영(宿營) 능력, 주요 시설 위치, 연합연습간 병력 증원 여부 및 증원 규모, 유사시 적의 정밀타격 대상이 될 수 있는 표적 위치 등이 담겼다.
 
  중국 측에서 “연합사 홈페이지를 방문해 연합연습 자료 게시판, 연합/미군 교범 게시판을 사진 찍어 보내라”고 하자 최는 이것도 촬영해 중국 서버에 올렸다. 2024년 9월부터는 손목시계형 몰카를 반입해 기밀 수집에 활용했다. 최가 “아이폰으로 기밀을 촬영하기 어렵다”고 하자 중국 조직원으로 추정되는 이가 최에게 몰카를 전달했다. 몰카로 찍은 기밀은 아이폰에 연결한 뒤 중국 정보조직이 미리 알려 준 서버로 전송했다.
 
 
  “호국훈련 자료 달라”
 
  중국은 한미 연합훈련뿐만 아니라 한국군 자체 대규모 훈련인 ‘호국훈련’ 자료도 요구했다. 이에 훈련 일정표 31장을 출력해 촬영 후 중국에 유출했다. 이 문건에는 부대 배치 현황, 국가 중요 시설 위치, 보유 화기 종류 및 제원, 아군 대응계획 등 군사기밀 정보가 포함됐다. 이 정보가 누출될 경우 기존에 수립된 사전 전술과 작전계획을 전면 수정하거나 폐기해야 한다.
 
  중국은 “부대 자료 중 연말 결산과 관련된 자료가 있으면 주의 깊게 보고 그 내용을 먼저 보내라”는 지령을 내렸다. 최는 지령받은 내용과 연관된 문서도 확보해 중국 서버에 올렸다. 이 문건에는 육군 ○○사단의 2024년 주요 성과와 향후 추진 방향, 비밀 사업(○○작전)이 포함돼 있었다. 최는 기밀을 중국에 누설하기 전 해당 자료가 필요한지 미리 검토받기도 했다.
 
  최는 10여 회가량 중국 측에 기밀을 누설해 2024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8만 8000위안(약 1710만원)을 받았다. 이 중 일부는 성매매(1회 157만원)를 하는 데 썼다. 중국 조직원은 세 차례 접선했다.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실에 제공한 판결문에 따르면, 최는 수사 과정에서 자신과 가족의 신변에 위협을 느껴 소극적으로 지시를 계속 수행했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최씨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는 점, 사건 수사에 일부 협조한 점을 들어 징역 5년에 아이폰과 손목 몰카를 몰수하고 1800만원을 추징한다는 선고를 내렸다.
 
 
  톈진공작처 소속 공작팀과 켄 제이크
 
2023년 1월 18일 국가정보원이 서울 중구 민노총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민노총 전·현직 간부 등 4명이 북한 공작원을 접촉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포착해 전국 10여 곳을 압수 수색했다. 사진=조선DB

  최홍재는 어떻게 범행이 발각됐을까? 중국 정보조직이 최가 보낸 기밀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해당 자료를 칭하오에 대한 위장수사를 벌이고 있던 방첩사 요원에게 보여 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중국으로선 교차검증을 위해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 역으로 최홍재를 수사하던 중 윗선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칭하오의 존재와 켄 제이크의 실체를 파악했을 수도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켄 제이크 조직원은 약 10명이다.
 
  최홍재를 포섭한 정보조직은 무엇일까? 군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 조직은 ‘중국 인민해방군 연합참모부 군사정보국 톈진공작처에 소속된 공작팀’이라고 돼있다. 이 정보조직이 켄 제이크와 동일한 조직인지는 공개된 자료만으론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켄 제이크일 가능성은 있다. 수법이 유사하고, 켄 제이크 총책인 류난난이 활동하는 거점이 톈진이기 때문이다. 방첩 당국은 최홍재를 포섭한 이 조직이 켄 제이크인지 확인해 주지 않았다. 이를 두고 안보 전문가들은 “수사·보안·방첩은 서로 함께할 때 상승효과를 낸다”고 했다.
 
  해군 제2함대에 근무하는 상병 정다정(가명)은 입대 전 중국 광저우에서 대학을 다녔다. 2022년 5월 한국 해군에 입대해 신병 훈련을 마치고 서울함에 배속됐다. 서울함에서 근무하던 정다정은 작전 중인 우리 군함의 위치를 중국 측에 유출했다. 스마트폰에 설치된 구글 지도 앱에 접속해, 백령도 근해 경계작전 임무를 수행하던 서울함의 GPS 좌표를 지도 위에 표정한 화면 총 11장을 캡처했다. 그리고 중국 메신저 프로그램 위챗(Wechat)으로 함정의 좌표 정보가 담긴 자료를 전송했다.
 
  군함의 위치 정보는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아군 전력의 생존성을 확보하기 위해 해군이 핵심 군사기밀로 관리하고 있다. 정다정이 누출한 기밀은 미국과의 연합연습을 위해 해군이 번역한 미국 군사교범 일부 페이지, 한·호주 연합 ‘해돌이-왈라비’ 훈련, 한미 연합 인도적 지원/재난구호(HA/DR) 훈련 관련 문건 등이다. 정은 기밀 자료를 군용 배낭에 은닉해 빼돌렸다. 이후 문건 사진을 찍어 카카오톡으로 역시 해군 병사인 조력자 K에게 보냈다. K는 이를 다시 위챗·텔레그램 등 메신저로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중국인에게 유출하고 약 1050만원을 받았다.
 
  군사법원은 1심에서 “우리 군이 미국 교범을 번역해 교리를 발전시키고 있음이 알려짐은 물론, 해군의 전략·전술이나 발전 방향이 노출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시하고, 국가보안법 위반과 군사기밀 누설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탈북민보다 더 북한 사람 같다”
 
해군 병사로 입대해 기밀 문건을 탐지·수집한 뒤 중국에 누설한 정다정(가명)이 고등학생 시절 한 종편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한 가요를 부르고 있다. 사진=채널A 캡쳐

  정다정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북한의 실상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북한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2015년 가족과 함께 중국 베이징을 여행하던 중 북한 식당을 방문했고, 이 자리에서 북한 종업원이 부르는 북한 가요를 들은 이후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고 한다. 이후 북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김일성·김정일·김정은과 북한 체제를 찬양·선전하는 내용을 접했으며, 북한식 말투와 표현을 흉내 내기도 했다.
 
  2018년에는 국내에서 중국 하얼빈의 북한 식당으로 전화를 걸어 북한인 종업원에게 ‘인민을 마음의 첫자리에 놓으신 분이어서 날마다 찾아가시는 그 걸음 끝없는가’라는 가사를 노래로 불러 주고 노래 제목을 묻기까지 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이듬해 8월에는 한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한 가요를 불렀다. 함께 출연한 탈북민들이 정에게 “탈북민보다 더 북한 사람 같다”고 했다고 한다.
 
  정은 2022년 5월 해군 입대 후 대한민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규정하는 이른바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론(NLPDR)’에 기초한 사고를 유지했다. 그의 일기장에는 북한을 ‘조국’ ‘내 조국’으로 표현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또 1950년 6월 25일을 ‘미 제국주의자와 이에 종속된 남한 정부가 일으킨 북침 전쟁’, 휴전일인 1953년 7월 27일을 ‘조국해방전쟁 승리의 날(전승절)’로 기념하며 북한 주장을 그대로 옮긴 내용도 적혀 있었다.
 
  정은 북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접한 북한 가요 ‘우리 군대 우리 인민’을 자신의 부대원들에게 가사만 바꿔 들려주기도 했다. 이와 함께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간에 북한 선전 문건과 이적(利敵) 표현물을 인쇄해 배포한 일도 있다. 문건 제목은 ▲청년들은 당의 령도를 높이 받들고 주체혁명 위업을 빛나게 완성하자 ▲인민이 사랑하고 즐겨 부르는 혁명적인 음악작품을 창작하자 ▲언론사를 협박하고 있는 윤석열 역적 패당에 대한 비판 계속 확대 등이다.
 
 
  접근 쉽고 비용 싼 병사가 포섭 대상
 
  과거에는 군 고위 장성이나 장교들이 주된 포섭 대상이었다. 계급과 지위가 높을수록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장교보다 접근이 쉽고 포섭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 병사들이 새로운 표적이 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대만 사례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2024년 12월 대만 검찰은 중국 정보기관에 군사기밀을 넘긴 혐의로 총통 경호 부대 소속 병사 등 4명을 국가안전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은 총통부 경호를 담당하는 헌병대대 소속 부사관 3명과 국방부 정보통신사령부 소속 병사 1명으로, 각각 한화 약 1000만~3000만원 상당을 받고 중국에 포섭돼 기밀을 누설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만 정보기관인 국가안전국이 2025년 1월에 발표한 중국의 대만 침투공작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을 위한 간첩행위로 기소된 사람은 2022년 10명, 2023년 48명, 2024년 64명으로 늘었다. 특히 2024년 적발된 인원 가운데 3분의 2에 해당하는 43명이 전·현직 군인이었다.
 
  민감 정보가 군복무 기간이 짧은 병사들에 의해 대규모로 유출될 수 있는 배경에는 몇 가지 구조적 변화가 있다. 정보의 디지털화로 인해 대량의 자료를 한번에 반출하기 쉬워졌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빠르고 넓게 공유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계급 중심이 아니라 업무상 직책을 기준으로 정보접근권을 부여하는 조직 운영 방식이 확산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컴퓨터 등 디지털 기기 운용에 익숙한 젊은 병사들이 고위직을 보좌하는 사례가 늘면서 이들이 주요 정보를 직접 다룰 기회 역시 증가하고 있다.
 
  2017년 조선족 여공작원에 포섭된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군무원 조민기(가명·5급)는 7년이 지난 2024년 6월에야 군사기밀을 빼돌린 사실이 들통났다. 이 사건으로 정보사 공작단이 구축해 온 해외 첩보망에 차질이 발생했고, 일부 현지 협조자와의 연락이 끊겼다. 이에 따라 중국·러시아·동남아·중동 등지에서 활동하던 한국의 해외 공작요원들이 귀국했다.
 
  조민기는 1996년 정보사 부사관으로 입대한 뒤 신분 전환을 거쳐 2007년 7월 7급 군무원으로 재임용됐다. 이후 중국에서 공작팀장을 지내는 등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2017년 4월 자신이 구축한 현지 공작망과 접촉하기 위해 중국 옌지 지역을 방문했다가 공항에서 중국 측에 체포돼 조사받는 과정에서 포섭 제의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까마귀 하나 새로 갔습니다”
 
  조는 2017년 11월부터 약 7년간 군사기밀을 유출하고 그 대가로 1억600만원을 차명계좌로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수사당국은 그가 2017년경 중국 정보요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에 포섭된 뒤 2019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기밀을 넘긴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군형법상 일반이적 등의 혐의로 지난해 8월 조를 구속 기소했다.
 
  “까마귀 하나 새로 갔습니다. 12월 말쯤에 상해(상하이)로 들어갔고, 예전에 저한테 사진 보여 주신 분 있잖아요. 수염 많이 났던 거. ○○○ 그 사람이 상해로 들어갔다가 조금 있다가 북경(베이징)으로 갈 겁니다. 추가로 준비 중인 사람이 있습니다. ○○○.”
 
  여기서 ‘까마귀’는 정보사 블랙요원을 말한다. 신원을 노출하면 안 되는 블랙요원을 조민기는 중국 측에 미리 알렸다. 소통 수단은 게임 내 음성 메시지였다.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이 입수한 조민기 판결문에 따르면 정보사 조직도(組織圖), 예하 부대 작전계획, 정보사 처·실 및 예하 부대 부서장, 소속 부대원 직책별 임무, 정보사 가장(假裝) 회사, 부대별 기획공작 내용, 창설 예정 내부 팀 편제 및 활동 지역 등이 모두 유출됐다. 또 대북공작으로 추정되는 ‘해외 주재원의 심리적 동요 및 이탈 유도 작전’ 관련 기밀도 있다.
 
  조민기는 2024년 4월 “부대별 운용 공작망 현황을 최신화해 달라”는 부대 간부 요청을 받고 비밀망 PC에서 정보사 인가 S급·B급 공작망 등 12명의 인적사항과 첩보 수집 목표, 재북 협력자 현황이 기재된 문건을 유출했다. 이에 정보사는 이 요원들을 귀국시켰다. 조가 유출한 기밀 중 확인된 내용만 문서 12건, 음성 메시지 18건 등 30건이다. 블랙요원 신상 유출로 정보사가 곤경에 처했는데도 부하인 여단장(박민우 육군 준장·육사 48기)은 상관인 정보사령관(문상호 육군 소장·50기)에게 하극상을 벌이고 있었다.
 
 
  간첩죄로 처벌 못 한 이유
 
  조민기는 2025년 8월 13일 선고공판에서 징역 20년, 벌금 10억원, 추징금 1억 6205만원을 선고받았다. 그의 행위는 ‘간첩’ 활동이지만 정작 간첩죄로는 처벌할 수 없었다. 형법 제98조(간첩)에 따르면 “적국을 위하여 간첩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있는데, 중국은 ‘적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국 대신 ‘외국’이라는 단어였다면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도 정보사 블랙요원 명단 유출과 같은 사고가 있었다. 전직 중앙정보국(CIA) 요원 춘싱 리(Chun Shing Lee) 사건으로, 중국 정보기관에 포섭돼 CIA 기밀을 팔아넘겼다. 1964년 홍콩에서 태어난 리는 미국으로 이주해 시민권을 취득했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 미 육군에서 복무했고 1994년 CIA에 입직해 해외공작관(Case Officer)으로 13년간 근무했다. 주요 활동지는 중국 베이징과 일본 도쿄였다. 2007년 CIA를 퇴직한 후 홍콩으로 이주했다.
 
  2010년 중국 국가안전부가 리에게 접근해 포섭했다. “평생 돌봐 주겠다”는 제안과 함께 2013년까지 84만 달러를 건넸다. 리는 자필 메모와 기밀 정보를 넘겼다. 정보에는 CIA 요원 실명, 비밀 안가(safe house) 위치, 전화번호가 포함됐다. CIA 요원과 정보원 간 접선 방식, 비밀통신 장비 사용법도 누설했다.
 
  2012년 미 연방수사국(FBI)이 수사에 착수했다. FBI 요원들이 확보한 리의 수첩에는 CIA 정보원들의 실명과 회동 날짜, 장소가 자필로 적혀 있었다. 미 법원은 2019년 리에게 징역 19년을 선고했다. 리의 배신으로 2010~12년까지 중국 내 CIA 정보원 30여 명이 중국 당국에 체포됐다.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이 중 12명 이상이 처형당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은 “중국 내 정보망 재건에서 진전을 이뤘다”고 밝혔다. 무너진 휴민트(HUMINT·인적 정보)를 복구하는 데 10년이 걸린 셈이었다.
 
 
  쉬옌쥔 체포작전
 
 
GE에이비에이션 등 미 항공우주 기업들에서 기밀정보를 빼낸 혐의로 체포돼 미국에서 20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중국 스파이 쉬옌쥔. 미국과 중국은 서로가 확보한 스파이를 교환했다. 쉬옌쥔은 현재 중국에 있다. 사진=미 법무부
춘싱 리 사건에 맞서 미국이 벌인 공작은 중국 공작관 쉬옌쥔(徐延軍) 체포작전이다.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 쉬옌쥔은 공작관으로 전 세계를 상대로 첨단 방위산업 기술을 수집하는 요원이었다. 2017년 3월 세계 3대 항공기 엔진 제작사인 미국 GE에이비에이션의 엔지니어에게 SNS(Linked-in)로 접근, 난징항공우주대학 강연에 초청해 후한 강연료를 지급하고, 온라인으로 지속 접촉하며 기술 정보를 빼내는 데 성공했다.
 
  이를 알게 된 FBI는 쉬에게 포섭된 엔지니어를 체포하지 않고 이중간첩으로 역용(逆用), 회사 측과 긴밀한 협조 하에 일정한 정보를 지속 제공(feeding)하며 관계를 유지하게 하면서 상대를 추적하는 방첩공작을 추진했다. 결국 쉬가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임을 알아냈고, 사용하던 구글 이메일 계좌와 애플의 클라우드 서버(iCloud)에 저장된 통화 기록을 입수해 그가 2013년부터 미국의 하니웰, 프랑스의 샤프란 등 항공 관련 기업들로부터 기밀정보를 빼내 온 사실을 확인했다.
 
  FBI는 2018년 3월 이중간첩을 통해 기술 자료 전달을 미끼로 쉬를 벨기에로 유인해 냈다. 그는 현지 경찰에 체포돼 6개월 뒤 미국으로 보내져 연방법원에서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FBI가 이례적으로 방첩공작의 상세한 내용까지 공개해 중국의 공세적인 기술 탈취에 경고를 보내고 자국민에게는 경각심을 심어 준 대표적인 방첩공작 성공 사례다. 배정석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 쉬옌쥔 체포 사례도 큰 성과이지만, 우리 방첩사의 위장수사도 높게 평가해야 합니다. 간첩행위자를 서둘러 체포해 성과를 급하게 내기보다는 오랫동안 관찰하며 윗선을 파악하기 위해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고, 결국 칭하오가 한국까지 오도록 유인에 성공했습니다. 과거 다대포 침투 간첩사건, 부여 무장간첩사건 같은 역용 공작의 모범 사례입니다.”
 
  배 교수는 “제2, 제3의 칭하오가 암약하고 있다. 간첩이 한 명 잡히면 이러한 유형의 간첩망은 여러 개 있다고 봐야 한다”며 “대한민국 방첩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중국”이라고 했다.
 
 
  中, 유학생 활용해 첩보활동
 
  중국은 유학생을 활용해 사실상 첩보활동을 수행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24년 6월 25일 중국인 유학생 3명이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인근 야산에서 드론을 띄워 해군 기지와 정박 중이던 미 해군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을 불법 촬영하다가 순찰 중이던 군인에게 적발됐다. 당시 루스벨트함은 한미일 3국이 최초로 실시한 수상·공중·수중·사이버 등 다(多)영역 군사훈련인 ‘프리덤 에지(Freedom Edge)’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에 입항한 상태였다.
 
  이들이 해군 기지를 촬영한 날은 대통령과 국가안보실장, 국방부 장관 등이 참석하는 중요 행사가 예정돼 있던 시점이기도 했다. 이들은 호기심에서 촬영했다고 주장했지만, 그 이틀 전에도 같은 장소에서 해군 기지를 촬영한 사실이 확인됐다.
 
  유학생을 활용할 경우 비용이 적게 들고, 외부의 주목을 받지 않으며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설령 적발되더라도 단순한 실수나 개인적 일탈로 주장할 수 있어 처벌 수위가 낮아질 가능성이 크고, 자국 정부의 개입을 부인하기에도 유리하다. 정보요원이 아닌 학생이나 민간인을 동원한 저(低)강도 첩보 수집은 발각되더라도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방첩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정보기관은 다수의 민간인을 활용해 파편화된 정보를 수집한 뒤 이를 종합하는 이른바 ‘모자이크식 첩보 수집’에 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국가안보와 관련한 정보활동에 모든 국민의 협조를 의무로 규정(국가정보법 7조)하고 있으며, 해외 거주자도 예외가 아니다. 이 때문에 유학생들이 정보활동에 활용될 소지가 크다.
 
 
  “방첩은 국민도 함께해야”
 
  명백한 간첩행위로 판단되는 사건임에도 간첩죄를 적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현행 형법상 간첩죄가 처벌 대상을 ‘적국’을 위한 행위로만 한정하고 있어 ‘외국을 위한 간첩행위’를 포함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 간첩 색출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되는 휴대전화 감청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다. 자국에 유리하도록 여론을 조작하는 이른바 ‘영향력 공작’을 차단하기 위한 외국대리인등록법, 즉 외국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에게 사전 신고를 의무화하는 제도 또한 국내에는 마련돼 있지 않다.
 
  이와 함께 정보요원과 비밀취급인가자, 해외 공관 근무자 등에 대한 신원조사를 강화하고, 범정부 차원의 내부자 위협 대응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종합적인 방첩 강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정석 교수는 “방첩은 특정 기관만의 몫이 될 수 없다. 국민 역시 경각심을 갖고 함께 참여해야 한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방첩활동에 대한 홍보는 상대 정보기관의 정보활동을 위축시키고, 자국민의 경각심을 높여 간첩 활동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아울러 방첩기관에 대한 신뢰를 높여 제보와 협력을 유도하는 역할도 합니다. 방첩 교육과 홍보가 중요한 이유죠. 전 국민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방첩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우리 방첩기관 역시 국민과의 정보 공유와 교육·홍보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국가안보수호 4법
 
  국민의힘 김상훈의원은 “우리는 현재 주적을 북한으로만 한정 짓고 있는데 외국 스파이와 산업스파이를 처벌할 수 있도록 간첩의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고 했다.
 
  같은당 강대식 의원은 최근 증가하는 외국 정보기관의 군사기밀 탐지 수집 시도와 이에 대한 군사기밀 유출 시도를 차단하고 외국인의 간첩 활동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안보수호 4법’을 대표발의했다. 여기에는 ‘군사기밀 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군형법 일부개정법률안’(2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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