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웅지순례(임영웅 성지순례)’, 경기도 포천에서 강원도 평창까지
⊙ 임영웅 팬덤의 세 가지 특징은 ▲스타와 팬의 유대 ▲장년 문화의 힘 ▲확장성
⊙ “말도 별로 없고 얌전…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임영웅이 아르바이트했던 식당 사장)
⊙ “우울증 약을 1년 6개월 동안 먹다가 영웅이 노래 들으면서 딱 끊었어요”
⊙ “새로운 플랫폼 참여하는 방식 배우느라 치매 안 걸릴 것 같아”
⊙ “영웅이가 청년 피자 광고할 때는 원주시까지 가서 피자 시켜 먹어”
⊙ “랩,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 있는 1집 앨범 이후 1020 팬들이 엄청 많아졌어요”
⊙ 넓어지는 팬층, 임영웅에게 1020세대는 ‘본업존잘’, 3040세대는 ‘국민새아빠’
⊙ “실버 포함해 全 세대 강타하는 大히트곡이 나올 거 같다는 예감 들어”(‘사월과오월’ 출신 싱어송라이터 백순진)
⊙ 임영웅 팬덤의 세 가지 특징은 ▲스타와 팬의 유대 ▲장년 문화의 힘 ▲확장성
⊙ “말도 별로 없고 얌전…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임영웅이 아르바이트했던 식당 사장)
⊙ “우울증 약을 1년 6개월 동안 먹다가 영웅이 노래 들으면서 딱 끊었어요”
⊙ “새로운 플랫폼 참여하는 방식 배우느라 치매 안 걸릴 것 같아”
⊙ “영웅이가 청년 피자 광고할 때는 원주시까지 가서 피자 시켜 먹어”
⊙ “랩,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 있는 1집 앨범 이후 1020 팬들이 엄청 많아졌어요”
⊙ 넓어지는 팬층, 임영웅에게 1020세대는 ‘본업존잘’, 3040세대는 ‘국민새아빠’
⊙ “실버 포함해 全 세대 강타하는 大히트곡이 나올 거 같다는 예감 들어”(‘사월과오월’ 출신 싱어송라이터 백순진)
- 지난해 8월 서울에서 열린 임영웅 공연에서 임영웅이 ‘건행’ 인사를 하고 있다. ‘건행’은 ‘건강하고 행복하시라’는 뜻이다. 사진=임영웅 오피셜 인스타그램
고백하자면 임영웅에 대해 잘 몰랐다. 〈내일은 미스터트롯〉 방송을 한 번씩 챙겨 보긴 했지만 경연이 끝나자 서서히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미스트롯〉 끝나고서는 콘서트도 가보곤 했는데 〈미스터트롯〉 방영 직후엔 코로나19가 한창이라 공연도 가보기 힘들었다. 2020년 〈미스터트롯〉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가수들이 워낙 인기가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냥 그 정도였다. 세상 사람들 거개가 기자 같은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지난 4월 임영웅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매긴 스타 브랜드 평판에서 1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아이돌 방탄소년단, 블랙핑크를 모두 제쳤다. 임영웅 팬카페 ‘영웅시대’는 회원 수 20만 명을 바라보고 있다. 임영웅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150만 명을 넘겼다.
콘서트 실황을 담은 다큐 영화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은 지난 3월 개봉 이후 25만 명이 관람했다. 자꾸 방탄소년단과 비교하는 것 같아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지만, 영화 관람객 수 역시 방탄소년단을 앞섰다. 지난 2월 개봉한 방탄소년단의 공연 영화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BTS Yet To Come in Cinemas)〉는 9만2000여 명이 관람했다. 거의 세 배 차이가 난다. 1991년생, 이제 서른 초반인 임영웅은 대체 어떤 존재가 된 걸까.
‘웅지순례’
임영웅 팬들 사이에 ‘웅지순례’라는 용어가 있다. 임영웅과 관련된 곳을 성지순례하듯 찾아다닌다는 뜻이다. 웅지순례 1번지는 경기도 포천시다. 포천은 임영웅의 고향이다. 실제로는 경기도 연천군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포천시로 이사 와서 쭉 성장했다. 알려진 대로 부친을 사고로 잃은 후 모친이 미용실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렸다. 임영웅은 포천시 홍보대사를 하며 ‘포천의 아들’로 불리기도 한다. 웅지순례 첫 번째 코스로 포천을 가보기로 했다.
포천은 경기도 북부에 위치해 있다. 북쪽으로는 강원도 철원군과 화천군, 남쪽으로는 의정부, 남양주시를 면한다. 경기도의 시 중 가장 면적이 넓다. 번화가가 있는 소홀읍과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는 선단동 정도를 빼면 거개가 농지와 산지다. 일동, 이동 막걸리가 유명하다. (일동과 이동은 지역 이름이다.) 위치가 북한과 가깝다 보니 군사 시설이 집중 배치되어 있다. 인구는 14만5000여 명. 버거킹, 맥도날드 같은 햄버거 가게가 자주 눈에 띄었다.
임영웅이 아르바이트 했던 식당
‘8요일키친’을 찾아갔다. 식당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건물 1층. 식당 창문에 임영웅 사진이 붙어 있었다. 임영웅이 포천 거주 시절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이다. 여기와 대진대학교 안에 있는 편의점에서 일했다.
식당 안에도 온통 임영웅 사진 천지다. 입구 쪽 테이블 하나는 통째로 임영웅 액자 전시대로 쓰고 있었다. 식당 안쪽엔 실물 크기 입간판도 서 있었다. 벽에 걸린 대형 TV에선 임영웅 콘서트 장면이 흐르고 있었다. 지난해 고척돔에서 열린 공연이다. 화장실로 향하는 벽엔 웬 대형 아기 사진도 붙어 있다. 임영웅 돌사진이란다. 원래는 화장실 내부에도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 팬들이 ‘임영웅이 보고 있는 것 같아 일이나 제대로 보겠나’라고 해 뗐다고 한다.
11년 전부터 영업해온 식당은 2020년, 임영웅의 운명과 함께 전환점을 맞았다. 지방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 찾는 명소가 됐다. 명준식 사장은 “손님 10명 중 8명이 임영웅 팬”이라고 말했다.
“영웅이가 여기서 아르바이트는 대여섯 달 정도 했는데, 일 안 할 때도 자주 왔다 갔다 했어요. 친구들이랑 와서 돈가스도 먹고, 제 딸들이랑도 친했어요. 작은 딸이랑은 동갑이거든요. 큰딸 결혼할 때는 결혼식 축가도 불러줬어요.”
〈미스터트롯〉 경연 기간에도 8요일키친을 찾았다고 한다.
“〈미스터트롯〉 결승 직전에 여기 와서 엄마랑 삼촌이랑 밥 먹고 두세 시간 있다가 갔어요. 영웅이 엄마 아는 분들이 사인해달라고 하니까 그걸 군말 없이 다 해주더라고.”
임영웅 성지라는 식당까지 왔는데 밥을 안 먹어볼 수 없었다. 8요일키친에서는 돈가스 종류와 파스타를 판다. 경양식을 생각하면 된다. 메뉴를 들여다보자 명씨는 치즈돈가스를 권했다. 임영웅이 좋아하는 메뉴란다. 어쩐지 방문 후기를 읽어보니 하나같이 치즈돈가스 얘기였는데 그제야 이해가 됐다.
본메뉴가 나오기 전에 명씨가 직접 끓였다는 수프가 나왔는데 꽤 맛있었다. 치즈돈가스와 커피 모두 맛있었다. 공연 영상이 나오는 텔레비전을 힐끔거리느라, 식당에 들어오는 손님들 관찰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맛있게 먹었다.
꽤 많은 손님이 들락날락거렸다. 오늘은 적은 편이란다.
“이번 달 남은 예약이 아직도 많아요. 여기 칠판에 적혀 있는 걸 보세요. 대구에서 58명, 목포에서 15명, 지금까지 관광버스로 수십 대는 왔다 갔어요. 와서 영웅이 노래 들으면서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놀다 가세요. 왔던 분이 또 오세요. 부산에 사는 어떤 분은 일곱 번을 오셨어요. 외국에서도 와요. 일본,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메모지에 적혀 있어요.”
그러고 보니 식당 입구 쪽 벽면이 종이 메모들로 덮여 있다. 팬들의 흔적이다. 임영웅의 팬들은 아예 포천을 한 바퀴 돌며 여행을 하고 간다고 한다. 부근에는 산정호수와 포천아트밸리, 2020년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은 한탄강세계지질공원, 백운계곡 같은 여행지가 있다.
“영웅이 노래 듣고 삶의 기쁨 찾아”
식당은 임영웅 팬들의 사랑방 역할도 했다.
“크리스마스, 영웅이 생일(6월 16일)에 행사를 열었어요. 팬들이 모여서 노래 부르고, 악기 연주도 했지요. 올해 생일은 어떻게 할지 아직 모르겠어요.”
― 팬들은 임영웅을 왜 좋아하는 것 같나요.
“영웅이 팬들 중엔 나이 들고 혼자 외롭게 지냈거나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영웅이 덕분에 정말 많이 치료된 경우가 많아요.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았다고 할까요. 부부가 왔는데 영웅이 노래 들으면서 부인이 막 울어요. 부인이 암에 걸려서 삶의 의지를 잃었는데 영웅이 노래 들으면서 다시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는 거야.
강원도에 영웅이 관련 물품 수집으로 유명한 팬이 있는데 이분도 사연이 있어요. 시어머니, 친정어머니가 동시에 병에 걸리셔서 병간호를 하다가 이분들 다 돌아가시니까 너무 허무해서 자살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한데 영웅이 노래 듣고 나서 삶의 기쁨을 찾았다는 겁니다. 이 정도예요.”
‘우리 영웅이 좀 무대에 올려주세요’
임영웅 때문에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한 이도 있다고 한다.
“목포에 사는 분이 식당에 와서 그래요. ‘고향 사람 중에 남진도 있고 유명한 사람이 많지만 노래를 듣고 이렇게 빠진 건 영웅이가 처음이다’ 그러면서 영웅이 가까운 곳에서 살면서 보고 싶다고 서울로 이사하겠다고 하더니 진짜 이사를 한 거예요. 그 정도예요.”
임영웅은 평소 얌전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까불고 그런 스타일이 전혀 아니에요. 말도 별로 없고 얌전해요. 그래서 사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 예전에 외할머니가 애를 많이 썼어요. 포천에서 지역 행사가 열리잖아요. 그러면 외할머니가 주최 측에 쫓아가서 ‘우리 영웅이 좀 무대에 올려주세요’ 부탁하곤 했답니다.”
외할머니가 매니저 역할까지 한 셈이다. 모친은 일을 하다 보니 임영웅은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다. ‘까도 까도 미담(美談) 인생’이 된 건 ‘조손(祖孫)’ 교육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영웅이는 앞으로 더 잘될 것 같아요. 대개 사람들이 남 잘되는 거 안 좋아하잖아요. 누가 잘되면 친구들이 주변에서 배 아파하면서 예전 얘기 퍼트리는 경우가 많은데, 영웅이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학창 시절 친구가 얼마 전 결혼했는데 거기에도 왔더라고요. 사전에 온다 안 온다 말 안 하고 다녀갔더라고. 하객들이랑 사진도 다 찍어줘서 사람들이 참 좋아했대요.”
임영웅 미담 중에 기자가 가장 놀라웠던 건 교통사고 현장 인명구조 건이다. 지난해 1월 21일 서울 올림픽대로 여의도 방향 반포대교 인근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당시 스케줄을 마치고 귀가하던 임영웅은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최초 신고 후 운전자를 차량 밖으로 꺼내고 심폐소생술을 했다. 그런 후 운전자가 의식을 찾고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해 운전자를 후송하는 것까지 확인한 후 떠났다고 한다. 구급대원들이 최초 신고자의 인적 사항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일화다.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 나서기 여러모로 쉽지 않았을 상황이었을 텐데 대단하다 싶다. 정작 본인의 설명은 단순하고 진솔하다.
“TV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면, 어떻게 그 상황에 그런 판단을 할까 나라면 못할 텐데 대단하다 생각했다. 막상 제 앞에서 그런 상황이 벌어지니 저도 배운 대로 그렇게 하게 되더라.”
無名 임영웅 치료해준 사장님
다음 행선지는 서울 합정동. ‘코리아식당 홍대점’이다. 여기도 역시 성지순례 1번지다. 2020년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임영웅이 생활고(生活苦)를 겪던 시절 사연을 털어놓으면서 화제가 됐다. 당시 이런 얘기를 했다.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내려가다 넘어져서 데굴데굴 굴렀다. 온몸이 다 다쳤는데 약을 사기에는 돈이 많지 않았다. 단골 식당 이모님께 연고 좀 얻을 수 있겠냐고 했더니 약을 사다 발라주고 치료해주더라. 과하게 붕대로 칭칭 감아주셨는데 감동을 받았다.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다.”
당시 임영웅은 합정동 부근에 살고 있었다. 정작 코리아식당 홍대점 사장은 치료해줬던 일을 잊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라디오스타〉에서 그 얘기를 하기에 깜짝 놀랐어요. 그걸 기억하고 있다니…. 영웅이를 8년 전부터 알았어요. 가수가 아니고 그냥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오는 총각이었어요. 포천에서 서울 와서 저 건너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할 때부터 우리 집에 다녔죠. 지금 기획사인 물고기뮤직 사장님도 예전부터 우리 집 단골손님이었어요.”
임영웅의 무명(無名) 시절을 지켜본 셈이다.
“영웅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봤으니 좋죠. 〈아침마당〉에 나갔다 1등을 못 해 풀 죽어서 밥 먹으러 들어오고…. 너무 정이 들었어요. 영웅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아요.
변한 게 하나도 없어요. 항상 반듯하고 배려심이 많아요.”
― 예를 들면요?
“이런 거예요. 혼자 왔는데 두 사람 앉는 자리가 없어서 네 사람 앉는 자리에 앉았어요. 그런데 먹다 보니 세 사람이 한 팀인 손님이 왔어요. 그러면 얼른 다른 자리가 있나 보고 자리를 비켜주거나 합석을 마다않는 식이에요.”
메뉴판을 흘깃 보자 사장은 “임영웅은 청국장을 좋아한다”고 말해줬다. 치즈돈가스에 이어 청국장도 먹어봐야 되나 싶었지만, 일부러 식당이 한가한 시간인 낮 3시에 찾아간 거라 뭘 먹기도 어중간했다. 참고로 코리아식당 홍대점은 인근 직장인들이 추천하는 식당이다.
“옛날만큼 자주 보지 못해 아쉬워”
― 〈미스터트롯〉 방송 당시 투표도 했나요?
“당연하죠. 영웅이가 7번이었잖아요? 아침에 오면 식당 식구들이 먼저 투표부터 했어요. 그때가 제일 즐거웠던 것 같아요. 저녁만 되면 방송 챙겨 보고 참 즐거웠는데, 이제는 옛날만큼 영웅이를 자주 보지 못하니까 아쉬움도 있어요. 그래도 그만큼 영웅이가 성장해서 좋아요.”
사장 역시 영웅시대 회원이란다.
“제가 아마 가입 회원 순으로 100명 안에 들걸요? 2월엔 영웅이 미국 LA 공연도 다녀왔어요.”
그러면서 ‘언니들과 얘기해보라’고 기자를 식당 한쪽으로 이끌었다.
식당 안쪽엔 다 같이 하늘색 상의를 입은 여성들이 두 테이블에 나뉘어 앉아 있었다. 영웅시대 회원들이었다. 식사는 끝낸 것 같은데 둘러앉아 노트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열심히 뭘 하고 있었다. 회원들의 ‘스터디’ 시간이었다.
‘투표하고 글 쓰는 법’ 공부하는 70대 할머니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놀라웠다. 이들은 인기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어플을 깔고 광고를 보고 포인트를 쌓아 투표에 이르는 과정을 필기까지 해가며 숙지하고 있었다. 연세를 듣고 또 놀랐다. 60대쯤인 줄 알고 연세를 여쭤보니 다들 70대란다. 식당이 한가한 시간에 모여 식사도 하고 신입 정회원 교육도 하고 있었다.
윤정희(74)씨는 기자의 등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부에 열중했다.
“나는 영웅시대 카페 정회원 된 지가 이제 3~4일밖에 안 됐어요. 투표하고 글 쓰는 법을 배워야 되잖아요. 선배님들한테 배우고 있어요. 저는 전에 우울증 약을 1년 6개월 동안 먹었어요. 영웅이 노래 들으면서 딱 끊었어요. 슬픔이 있었는데 그게 사라졌어요. 스물네 시간, 잠자기 전까지 영웅이 노래를 들어요.”
멀리 경기도 판교에서 왔다는 정희중(71)씨는 기자를 보자마자 ‘멜론(음악감상 어플)을 깔았냐’고 물어왔다. 멜론이나 지니 같은 음악감상 어플에서는 스트리밍, 즉 음악 재생 횟수에 따라 가요 인기 순위를 정한다. 그는 가수를 이렇게 좋아한 게 생전처음이라고 말했다.
“저는 생전 트로트를 안 좋아하고 연예인도 좋아한 적이 없어요. 〈미스터트롯〉 경연하는 줄도 몰랐어요. 경연 끝나고 6개월 후인가 9월에 TV를 보다가 우연히 영웅이가 노래하는 걸 봤어요. 한 소절 듣는 순간 가슴을 파고드는데 울컥하더라고. ‘얘는 세계 최고의 가수가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불렀던 게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예요.”
― 그 전에는 전혀 몰랐나요?
“저는 원래 인터넷 바둑을 좋아해요. 저를 예전부터 알던 사람들은 어떻게 가수에 빠졌냐는 말을 엄청 해요. 그만큼 연예인에 관심이 없었어요. 저 같은 사람들이 영웅이 팬들의 절반 이상이에요.”
― 임영웅이 왜 좋으세요?
“노래를 워낙 탁월하게 잘하잖아요. 세상을 다 둘러봐도 영웅이만큼 노래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노래를 집중해서 들으면 어떤 설렘도 느껴져요. 10년 후가 되면 제 말이 맞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거기에 잔망미도 있고, 외모도 뛰어나잖아요.”
임영웅의 팬들은 약속한 듯 ‘잔망미’란 말을 자주 썼다. 팬카페 게시판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인 듯했다. ‘잔망’의 사전적 의미는 ‘얄밉도록 맹랑함’인데 현실에서는 ‘쾌활하고 장난기 많다’는 뜻 정도로 쓰인다. 잔망미는 그런 종류의 매력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외모에 있어서는 임영웅이 운이 좋은 경우다. 얼굴은 호감형의 누가 봐도 아들 삼고 싶은 얼굴인데, 몸은 전체적으로 비율이 좋아 남자처럼 느껴진다. 얼굴과 몸의 느낌이 반대였다면 좀 곤란했을 것 같다.
정씨는 회사 퇴직 후 공허함을 임영웅이 채워주고 있다고 말했다.
“영웅시대 회원들이 만나면 형제 같아요. 인정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있는 걸 처음 봤어요. 원래 전혀 몰랐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학교 친구들보다 나아요. 회사 퇴직하고 처음엔 뭐랄까 혼자 뚝 떨어져 있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모임도 하면서 소속감을 느껴요. 그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20년 전 ‘욘사마’ 열풍 연상케 해
이들의 얘길 들으며 문득 기자의 일본인 지인이 떠올랐다. 2003년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가 방영됐다. 이듬해부터 ‘욘사마’ 열풍이 일본을 강타했다. 일본 중장년 여성들이 한국 드라마와 배용준을 비롯한 한국 연예인에게 빠져들었다. 당시 일본 언론은 이를 두고 ‘빈 둥지 증후군’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ENS)이란 자녀 등 가족 구성원이 독립하면서 가정에 빈 둥지만 남고 자신은 빈 껍데기 신세가 됐다는 심리적 불안감을 강하게 느끼고 이 때문에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걸 뜻한다. 생애주기상 갱년기 증세와 맞물려 특히 중년 이후 여성들에게서 나타난다.
기자의 지인은 배용준을 좋아하다 배우 차태현으로 애정이 옮겨간 경우다. 차태현의 스케줄에 맞춰 거의 매달 한국을 찾았다. 이게 10년이 넘게 이어졌다. 생각해보면 그 지인도 당시 심리적으로 공허했던 것 같다. 20여 년 전 차태현의 팬미팅을 따라다니던 지인의 모습과 영웅시대 회원들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졌다.
“휴대폰 10대씩 스트리밍 돌리는 사람들도 많아”
임영웅 팬덤의 첫 번째 특징은, 이렇듯 스타와 팬의 유대(紐帶)관계가 두텁고 견고하다는 점이다. 이들은 임영웅을 만나 인생 설계도 바뀌었다. 정희중씨의 얘기다.
“저는 원래 80세까지 사는 게 목표였어요. 지금은 영웅이 노래가 정말 좋고 행복하니까 그냥 사는 데까지 건강하고 그냥 잘 살아야 되겠다는 방향으로 조금 바뀌었어요. 영웅이 좋아하니까 젊어지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도 없고 웃는 일이 많아요. 우리는 치매는 안 걸릴 거예요. 가수와 관련해 계속 새로운 플랫폼이 나오니, 가입하고 참여하는 방식을 배워야 되잖아요.”
공연을 가려고 해도 구매 방식에 적응해야 한다. 임영웅 공연 입장권 구매는 ‘피켓팅’이라 불린다. ‘피 튀기는 전쟁 같은 티켓팅’이란 뜻이다. ‘임영웅 공연 입장권 구매에 성공했더니 바로 대견한 아들 대우를 받았다’는 구매 후기를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매 공연이 발매 당일, 아니 발매 시작 순간 매진됐고 상당한 가격에 암표가 거래되기도 했다.
강경자(70)씨는 요즘 주변에 간단히 선물할 때 ‘본죽’을 사서 들고 간단다. 임영웅이 본죽 광고에 출연한 후부터다. LA 공연도 보고 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임영웅 노래를 스트리밍 하는 건 기본이다.
“24시간 영웅이로 시작해서 영웅이로 하루가 끝납니다. 휴대폰 10대로 스트리밍을 돌리는 사람들도 많아요. 공기계를 모아서 계속 돌려요. 이게 영웅이에게 도움이 되니까 하는 거예요.”
온종일 스트리밍은 아이돌 팬들도 한다. 그런데 특히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으로 탄생한 스타들의 장년층 팬들을 지켜보니 유독 스트리밍에 열심이다.
한동안 멜론 차트 1위부터 10위는 모두 임영웅 노래였던 시절도 있다. 멜론 차트에는 왜 임영웅 노래가 많을까 분석하는 기사가 종종 보도되기도 했다. 요즘도 지니 차트 1~30위권을 살펴보면 임영웅 노래가 대부분이다. 다른 신인가수가 차트에 진입하는 걸 막는다는 둥 비판의 목소리도 일부 있지만, 현상을 들여다보면 비판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지켜보니 이들이 스트리밍에 열심인 이유는 단순하다. 이게 그나마 가장 쉬워서다. 10대나 20대들은 스타들의 스케줄을 직접 쫓아다니고 굿즈를 만들어 나눠가지며 애정을 표현할 수 있지만 노년층은 물리적으로 그러기 힘들다. 스타에 대한 애정은 10대, 20대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그러니 집에서 손가락만 움직여도 할 수 있는 스트리밍에 열을 올린다. 거의 컴퓨터 자동클릭 프로그램 수준이다. 이들이 애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장이 있다면 어떨까. 이런 점에서 임영웅의 K리그 나들이는 좋은 기회가 됐다.
“임영웅 시축 때문에 처음으로 축구경기 현장관람”
지난 4월 8일 임영웅은 FC서울과 대구FC 경기 시축(始蹴)을 했다. 그날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은 관중 수는 4만5007명. 코로나19 이후 프로 스포츠 최다 관중 기록이자, K리그가 유료 관중을 공식 집계하기 시작한 2018년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임영웅 팬들의 힘이다. 이들은 임영웅이 당부한 대로 경기를 끝까지 관람하고, 자리의 쓰레기를 모두 수거하는 등의 모습으로 K리그 팬들에게 찬사를 들었다. 대구FC의 유니폼 색이 하늘색이라 이날만은 하늘색 옷을 입지 않았다. 임영웅 팬덤의 두 번째 특징은 바로 ‘장년(長年) 문화의 힘’이다.
팬들은 이제 FC서울에도 관심을 보인다. 이날(5월 10일) 식당에서 공부하던 이들은 저녁에 다 함께 상암 월드컵경기장으로 건너갔다. FC서울 경기를 보기 위해서다. FC서울 응원 머플러도 챙겼다. “시축 때문에 축구 경기를 처음으로 현장에서 관람했는데 생각보다 즐거웠다”고 입을 모았다.
임영웅 팬덤의 세 번째 특징은 확장성이다. 팬의 세대층이 넓어지고 있다. 서바이벌 출신 스타로서는 이례적이다. 보통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스타가 되는 경우 방송 직후 정점을 찍고 인기가 하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슈퍼스타K〉 〈프로듀스 101〉 같은 프로그램으로 탄생한 스타들을 떠올리면 된다. 그런데 임영웅은 시간이 흐를수록 인기가 점점 올라가고 팬의 연령대가 확장되고 있다.
수도권이 아닌 다른 지역의 팬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강원도로 향했다. 영웅시대 강원도 모임인 ‘영웅시대 위드 히어로 인 강원’은 영웅시대 지역 모임 중 최초로 헌혈증 기부를 시작했다. 임영웅 생일에 맞춰 매년 헌혈증과 장학금을 기부한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전통시장 중간에 있는 카페 ‘가방속커피향기’ 허태은(57) 사장도 ‘히어로 인 강원’ 회원이다. 카페에서 회원들과 임영웅 생일파티를 열기도 했다.
자그마한 카페 안을 둘러보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임영웅의 얼굴이 보인다. 임영웅 사진으로 온 사방을 도배하거나 하진 않았다. 일정 공간에만 사진과 미니 액자, 머그컵을 진열해놨다.
“연예인을 이렇게 좋아한 건 생전처음”
허태은씨는 〈미스터트롯〉 경연 당시 병원에 입원해 있던 남편을 돌보며 임영웅의 노래를 들었다. ‘바램’과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듣고 임영웅의 팬이 됐다.
“노래를 듣는데 가슴이 막 미어져요. 눈물이 흘렀어요. 지금도 두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핑 돌아요. 이게 계기가 됐어요. 연예인을 이렇게 좋아한 건 생전처음이에요.”
임영웅 사진으로 액자를 주문 제작해 카페 한쪽에 전시해놨다. 임영웅 생일이면 생일상을 차린다. 미역국을 끓이고 잡채를 만들고, 카페 손님들에겐 떡을 돌린다. 초창기엔 가족들이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단다.
“아들이 그래요. ‘엄마는 나보다 임영웅이 좋아?’ 그래서 제가 답했어요. ‘응, 영웅이 얼굴 보면 웃음이 나와.’ 남편한테도 그러죠. ‘영웅이는 갱년기를 잘 이기게 해준 주인공이야.’ 이제는 아무 말도 안 해요.”
“영웅이에게 직접 만든 빵을 전달하고 싶은데…”
임영웅 사진으로 카페를 장식하는 게 사실 매출에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심지어 카페에 들어왔다가 ‘여기 임영웅 팬카페냐’며 나가는 경우도 있단다. 100명 중 1명 정도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아니라서 그런 거겠죠. 우리는 안 그러거든요. 우리는 다 좋아해요. 〈미스터트롯〉에 같이 나왔던 일곱 명 가수들의 공연도 갔다 왔어요.”
허씨는 원래 꽃차 전문가다. 카페 한쪽엔 꽃차들이 즐비하다. 카페 메뉴 중 들깨꼬소커피, 메밀싹라떼를 먹었는데 아주 맛있었다. 유기농 밀가루로 만들었다는 메밀 번도 근사했다. 허씨는 “영웅이에게 유기농 밀가루로 직접 만든 빵을 전달하고 싶은데 전달할 방법이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허씨의 가족 중 어머니와 네 자매가 모두 임영웅 팬이라고 한다. 네 자매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임영웅 얘기로 바쁘다.
“영웅이가 청년 피자 광고할 때는 원주시까지 가서 피자 시켜 먹었어요. 간장 사고, 죽 사 먹고 영웅이가 광고하면 다 사죠. 가만히 보면 일반인들이 쉽게 살 수 있는 생활 필수품 광고를 우선적으로 하는 것 같아요. 비싼 제품을 광고하면 팬들이 부담되니까요.”
“1020 팬 엄청 늘어”
― 그럴 수도 있겠네요.
“작년에 고척에서 공연하면서 미국 공연 얘길 했어요. 그러자 관객 중 누가 ‘땅 팔아서 LA 공연 간다’ 이런 피켓을 들어요. 그걸 보더니 영웅이가 절대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아들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LA 공연 표만 구하면 보내준다고. 그런데 미국 동포분들도 임영웅 공연을 볼 기회를 누려야 되잖아요. 주변 팬들끼리 그랬어요. ‘우리는 한국에서 보면 되니까 우리가 양보합시다’ 그래서 안 갔어요.”
나중엔 아들의 여자친구까지 임영웅 팬이 됐단다. 함께 하늘색 옷을 맞춰 입고 공연에 다녀왔다.
“처음에는 트로트 가수로 등장했기 때문에 트로트 가수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1집 앨범을 냈는데 거기엔 다양한 장르가 들어 있어요. 랩도 있고 발라드도 있어요. 그 후로 1020 팬들도 엄청 많아졌어요.”
10대와 20대들은 임영웅을 두고 ‘본업존잘’이라 표현한다. 본업인 가수로서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다. 혼자 피나는 연습을 해 실력을 갖췄다는 점도 높이 평가한다. ‘이제 나만 믿어요’를 만든 조영수 작곡가는 ‘가사를 이야기하듯 전달하는 능력’을 임영웅의 장점으로 꼽았다. 〈미스트롯〉 출신 가수 홍자는 ‘부드러움’을 임영웅의 특장점으로 꼽았다. “그 정도로 부드럽게 노래할 수 있는 목소리는 거의 없어요.”
어머니나 할머니를 공연에 보내드린 후 팬이 됐다는 3040들도 많다.
“티켓을 한 장밖에 못 구해 70대 어머니를 혼자 들여보내고 걱정을 많이 했어요. 키오스크 사용하는 걸 정말 힘들어하시는데, 굿즈 구매하는 키오스크에서 스태프가 일대일로 붙어서 도와주고 자리까지 모셔다드리고,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어줬다는 얘기 듣고 임영웅씨에게 정말 고마웠어요.”
이들이 우스갯소리로 임영웅을 ‘국민새아빠’라 부르는 이유다.
옆 공연장에서 헤매는 노년층 관객을 스태프가 찾아서 모셔왔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임영웅 공연에서 공연 안내 아르바이트를 했던 대학생들도 좋은 후기를 들려줬다.
“임영웅 공연은 스태프 수가 많아서 일하기 편한 공연이에요. 관객들도 질서를 잘 지키고 친절히 대해주세요. 춥지 않냐며 핫팩도 주시고 귤도 주세요.”
“기획사들, 임영웅 공연 보고 배워야”
10대와 20대들이 주로 활동하는 인터넷 게시판에는 ‘기획사들이 임영웅 공연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글이 여러 건 올라왔다. “좋아하는 아이돌 공연을 몇 번 갔더니 인간으로서 존엄성이 무너질 지경이더라. 임영웅 공연은 스태프가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어준다는데, 아이돌 공연에선 휴대폰을 빼앗아 데이터 검사를 안 하면 다행일 지경”이라며 개탄하는 글도 있었다.
임영웅 팬덤은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까.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팬덤을 목격하게 되는 걸까. 임영웅 투어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오며 든 생각이다.⊙
지난 4월 임영웅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매긴 스타 브랜드 평판에서 1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아이돌 방탄소년단, 블랙핑크를 모두 제쳤다. 임영웅 팬카페 ‘영웅시대’는 회원 수 20만 명을 바라보고 있다. 임영웅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150만 명을 넘겼다.
콘서트 실황을 담은 다큐 영화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은 지난 3월 개봉 이후 25만 명이 관람했다. 자꾸 방탄소년단과 비교하는 것 같아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지만, 영화 관람객 수 역시 방탄소년단을 앞섰다. 지난 2월 개봉한 방탄소년단의 공연 영화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BTS Yet To Come in Cinemas)〉는 9만2000여 명이 관람했다. 거의 세 배 차이가 난다. 1991년생, 이제 서른 초반인 임영웅은 대체 어떤 존재가 된 걸까.
‘웅지순례’
임영웅 팬들 사이에 ‘웅지순례’라는 용어가 있다. 임영웅과 관련된 곳을 성지순례하듯 찾아다닌다는 뜻이다. 웅지순례 1번지는 경기도 포천시다. 포천은 임영웅의 고향이다. 실제로는 경기도 연천군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포천시로 이사 와서 쭉 성장했다. 알려진 대로 부친을 사고로 잃은 후 모친이 미용실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렸다. 임영웅은 포천시 홍보대사를 하며 ‘포천의 아들’로 불리기도 한다. 웅지순례 첫 번째 코스로 포천을 가보기로 했다.
포천은 경기도 북부에 위치해 있다. 북쪽으로는 강원도 철원군과 화천군, 남쪽으로는 의정부, 남양주시를 면한다. 경기도의 시 중 가장 면적이 넓다. 번화가가 있는 소홀읍과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는 선단동 정도를 빼면 거개가 농지와 산지다. 일동, 이동 막걸리가 유명하다. (일동과 이동은 지역 이름이다.) 위치가 북한과 가깝다 보니 군사 시설이 집중 배치되어 있다. 인구는 14만5000여 명. 버거킹, 맥도날드 같은 햄버거 가게가 자주 눈에 띄었다.
임영웅이 아르바이트 했던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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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에 있는 8요일키친. 임영웅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식당이다. |
식당 안에도 온통 임영웅 사진 천지다. 입구 쪽 테이블 하나는 통째로 임영웅 액자 전시대로 쓰고 있었다. 식당 안쪽엔 실물 크기 입간판도 서 있었다. 벽에 걸린 대형 TV에선 임영웅 콘서트 장면이 흐르고 있었다. 지난해 고척돔에서 열린 공연이다. 화장실로 향하는 벽엔 웬 대형 아기 사진도 붙어 있다. 임영웅 돌사진이란다. 원래는 화장실 내부에도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 팬들이 ‘임영웅이 보고 있는 것 같아 일이나 제대로 보겠나’라고 해 뗐다고 한다.
11년 전부터 영업해온 식당은 2020년, 임영웅의 운명과 함께 전환점을 맞았다. 지방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 찾는 명소가 됐다. 명준식 사장은 “손님 10명 중 8명이 임영웅 팬”이라고 말했다.
“영웅이가 여기서 아르바이트는 대여섯 달 정도 했는데, 일 안 할 때도 자주 왔다 갔다 했어요. 친구들이랑 와서 돈가스도 먹고, 제 딸들이랑도 친했어요. 작은 딸이랑은 동갑이거든요. 큰딸 결혼할 때는 결혼식 축가도 불러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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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한쪽엔 한국 및 전 세계에서 찾아온 팬들이 쓴 메모가 붙어 있다. |
“〈미스터트롯〉 결승 직전에 여기 와서 엄마랑 삼촌이랑 밥 먹고 두세 시간 있다가 갔어요. 영웅이 엄마 아는 분들이 사인해달라고 하니까 그걸 군말 없이 다 해주더라고.”
임영웅 성지라는 식당까지 왔는데 밥을 안 먹어볼 수 없었다. 8요일키친에서는 돈가스 종류와 파스타를 판다. 경양식을 생각하면 된다. 메뉴를 들여다보자 명씨는 치즈돈가스를 권했다. 임영웅이 좋아하는 메뉴란다. 어쩐지 방문 후기를 읽어보니 하나같이 치즈돈가스 얘기였는데 그제야 이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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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의 돌사진이 붙어 있다. |
꽤 많은 손님이 들락날락거렸다. 오늘은 적은 편이란다.
“이번 달 남은 예약이 아직도 많아요. 여기 칠판에 적혀 있는 걸 보세요. 대구에서 58명, 목포에서 15명, 지금까지 관광버스로 수십 대는 왔다 갔어요. 와서 영웅이 노래 들으면서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놀다 가세요. 왔던 분이 또 오세요. 부산에 사는 어떤 분은 일곱 번을 오셨어요. 외국에서도 와요. 일본,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메모지에 적혀 있어요.”
그러고 보니 식당 입구 쪽 벽면이 종이 메모들로 덮여 있다. 팬들의 흔적이다. 임영웅의 팬들은 아예 포천을 한 바퀴 돌며 여행을 하고 간다고 한다. 부근에는 산정호수와 포천아트밸리, 2020년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은 한탄강세계지질공원, 백운계곡 같은 여행지가 있다.
“영웅이 노래 듣고 삶의 기쁨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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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요일키친 사장 명준식씨가 ‘건행’ 인사를 하고 있다. |
“크리스마스, 영웅이 생일(6월 16일)에 행사를 열었어요. 팬들이 모여서 노래 부르고, 악기 연주도 했지요. 올해 생일은 어떻게 할지 아직 모르겠어요.”
― 팬들은 임영웅을 왜 좋아하는 것 같나요.
“영웅이 팬들 중엔 나이 들고 혼자 외롭게 지냈거나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영웅이 덕분에 정말 많이 치료된 경우가 많아요.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았다고 할까요. 부부가 왔는데 영웅이 노래 들으면서 부인이 막 울어요. 부인이 암에 걸려서 삶의 의지를 잃었는데 영웅이 노래 들으면서 다시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는 거야.
강원도에 영웅이 관련 물품 수집으로 유명한 팬이 있는데 이분도 사연이 있어요. 시어머니, 친정어머니가 동시에 병에 걸리셔서 병간호를 하다가 이분들 다 돌아가시니까 너무 허무해서 자살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한데 영웅이 노래 듣고 나서 삶의 기쁨을 찾았다는 겁니다. 이 정도예요.”
임영웅 때문에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한 이도 있다고 한다.
“목포에 사는 분이 식당에 와서 그래요. ‘고향 사람 중에 남진도 있고 유명한 사람이 많지만 노래를 듣고 이렇게 빠진 건 영웅이가 처음이다’ 그러면서 영웅이 가까운 곳에서 살면서 보고 싶다고 서울로 이사하겠다고 하더니 진짜 이사를 한 거예요. 그 정도예요.”
임영웅은 평소 얌전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까불고 그런 스타일이 전혀 아니에요. 말도 별로 없고 얌전해요. 그래서 사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 예전에 외할머니가 애를 많이 썼어요. 포천에서 지역 행사가 열리잖아요. 그러면 외할머니가 주최 측에 쫓아가서 ‘우리 영웅이 좀 무대에 올려주세요’ 부탁하곤 했답니다.”
외할머니가 매니저 역할까지 한 셈이다. 모친은 일을 하다 보니 임영웅은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다. ‘까도 까도 미담(美談) 인생’이 된 건 ‘조손(祖孫)’ 교육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영웅이는 앞으로 더 잘될 것 같아요. 대개 사람들이 남 잘되는 거 안 좋아하잖아요. 누가 잘되면 친구들이 주변에서 배 아파하면서 예전 얘기 퍼트리는 경우가 많은데, 영웅이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학창 시절 친구가 얼마 전 결혼했는데 거기에도 왔더라고요. 사전에 온다 안 온다 말 안 하고 다녀갔더라고. 하객들이랑 사진도 다 찍어줘서 사람들이 참 좋아했대요.”
임영웅 미담 중에 기자가 가장 놀라웠던 건 교통사고 현장 인명구조 건이다. 지난해 1월 21일 서울 올림픽대로 여의도 방향 반포대교 인근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당시 스케줄을 마치고 귀가하던 임영웅은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최초 신고 후 운전자를 차량 밖으로 꺼내고 심폐소생술을 했다. 그런 후 운전자가 의식을 찾고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해 운전자를 후송하는 것까지 확인한 후 떠났다고 한다. 구급대원들이 최초 신고자의 인적 사항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일화다.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 나서기 여러모로 쉽지 않았을 상황이었을 텐데 대단하다 싶다. 정작 본인의 설명은 단순하고 진솔하다.
“TV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면, 어떻게 그 상황에 그런 판단을 할까 나라면 못할 텐데 대단하다 생각했다. 막상 제 앞에서 그런 상황이 벌어지니 저도 배운 대로 그렇게 하게 되더라.”
無名 임영웅 치료해준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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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합정동에 있는 코리아식당 홍대점. 임영웅이 단골로 다니던 식당이다(사진 왼쪽). 코리아식당의 사장은 임영웅이 자전거를 타다 다쳤을 때 치료를 해주기도 했다. |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내려가다 넘어져서 데굴데굴 굴렀다. 온몸이 다 다쳤는데 약을 사기에는 돈이 많지 않았다. 단골 식당 이모님께 연고 좀 얻을 수 있겠냐고 했더니 약을 사다 발라주고 치료해주더라. 과하게 붕대로 칭칭 감아주셨는데 감동을 받았다.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다.”
당시 임영웅은 합정동 부근에 살고 있었다. 정작 코리아식당 홍대점 사장은 치료해줬던 일을 잊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라디오스타〉에서 그 얘기를 하기에 깜짝 놀랐어요. 그걸 기억하고 있다니…. 영웅이를 8년 전부터 알았어요. 가수가 아니고 그냥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오는 총각이었어요. 포천에서 서울 와서 저 건너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할 때부터 우리 집에 다녔죠. 지금 기획사인 물고기뮤직 사장님도 예전부터 우리 집 단골손님이었어요.”
임영웅의 무명(無名) 시절을 지켜본 셈이다.
“영웅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봤으니 좋죠. 〈아침마당〉에 나갔다 1등을 못 해 풀 죽어서 밥 먹으러 들어오고…. 너무 정이 들었어요. 영웅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아요.
변한 게 하나도 없어요. 항상 반듯하고 배려심이 많아요.”
― 예를 들면요?
“이런 거예요. 혼자 왔는데 두 사람 앉는 자리가 없어서 네 사람 앉는 자리에 앉았어요. 그런데 먹다 보니 세 사람이 한 팀인 손님이 왔어요. 그러면 얼른 다른 자리가 있나 보고 자리를 비켜주거나 합석을 마다않는 식이에요.”
메뉴판을 흘깃 보자 사장은 “임영웅은 청국장을 좋아한다”고 말해줬다. 치즈돈가스에 이어 청국장도 먹어봐야 되나 싶었지만, 일부러 식당이 한가한 시간인 낮 3시에 찾아간 거라 뭘 먹기도 어중간했다. 참고로 코리아식당 홍대점은 인근 직장인들이 추천하는 식당이다.
― 〈미스터트롯〉 방송 당시 투표도 했나요?
“당연하죠. 영웅이가 7번이었잖아요? 아침에 오면 식당 식구들이 먼저 투표부터 했어요. 그때가 제일 즐거웠던 것 같아요. 저녁만 되면 방송 챙겨 보고 참 즐거웠는데, 이제는 옛날만큼 영웅이를 자주 보지 못하니까 아쉬움도 있어요. 그래도 그만큼 영웅이가 성장해서 좋아요.”
사장 역시 영웅시대 회원이란다.
“제가 아마 가입 회원 순으로 100명 안에 들걸요? 2월엔 영웅이 미국 LA 공연도 다녀왔어요.”
그러면서 ‘언니들과 얘기해보라’고 기자를 식당 한쪽으로 이끌었다.
식당 안쪽엔 다 같이 하늘색 상의를 입은 여성들이 두 테이블에 나뉘어 앉아 있었다. 영웅시대 회원들이었다. 식사는 끝낸 것 같은데 둘러앉아 노트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열심히 뭘 하고 있었다. 회원들의 ‘스터디’ 시간이었다.
‘투표하고 글 쓰는 법’ 공부하는 70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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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0일 임영웅 팬카페 ‘영웅시대’ 회원들이 코리아식당 홍대점에 모였다. 왼쪽부터 정희중씨, 강경자씨, 최순애씨, 윤정희씨 |
윤정희(74)씨는 기자의 등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부에 열중했다.
“나는 영웅시대 카페 정회원 된 지가 이제 3~4일밖에 안 됐어요. 투표하고 글 쓰는 법을 배워야 되잖아요. 선배님들한테 배우고 있어요. 저는 전에 우울증 약을 1년 6개월 동안 먹었어요. 영웅이 노래 들으면서 딱 끊었어요. 슬픔이 있었는데 그게 사라졌어요. 스물네 시간, 잠자기 전까지 영웅이 노래를 들어요.”
멀리 경기도 판교에서 왔다는 정희중(71)씨는 기자를 보자마자 ‘멜론(음악감상 어플)을 깔았냐’고 물어왔다. 멜론이나 지니 같은 음악감상 어플에서는 스트리밍, 즉 음악 재생 횟수에 따라 가요 인기 순위를 정한다. 그는 가수를 이렇게 좋아한 게 생전처음이라고 말했다.
“저는 생전 트로트를 안 좋아하고 연예인도 좋아한 적이 없어요. 〈미스터트롯〉 경연하는 줄도 몰랐어요. 경연 끝나고 6개월 후인가 9월에 TV를 보다가 우연히 영웅이가 노래하는 걸 봤어요. 한 소절 듣는 순간 가슴을 파고드는데 울컥하더라고. ‘얘는 세계 최고의 가수가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불렀던 게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예요.”
― 그 전에는 전혀 몰랐나요?
“저는 원래 인터넷 바둑을 좋아해요. 저를 예전부터 알던 사람들은 어떻게 가수에 빠졌냐는 말을 엄청 해요. 그만큼 연예인에 관심이 없었어요. 저 같은 사람들이 영웅이 팬들의 절반 이상이에요.”
― 임영웅이 왜 좋으세요?
“노래를 워낙 탁월하게 잘하잖아요. 세상을 다 둘러봐도 영웅이만큼 노래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노래를 집중해서 들으면 어떤 설렘도 느껴져요. 10년 후가 되면 제 말이 맞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거기에 잔망미도 있고, 외모도 뛰어나잖아요.”
임영웅의 팬들은 약속한 듯 ‘잔망미’란 말을 자주 썼다. 팬카페 게시판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인 듯했다. ‘잔망’의 사전적 의미는 ‘얄밉도록 맹랑함’인데 현실에서는 ‘쾌활하고 장난기 많다’는 뜻 정도로 쓰인다. 잔망미는 그런 종류의 매력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외모에 있어서는 임영웅이 운이 좋은 경우다. 얼굴은 호감형의 누가 봐도 아들 삼고 싶은 얼굴인데, 몸은 전체적으로 비율이 좋아 남자처럼 느껴진다. 얼굴과 몸의 느낌이 반대였다면 좀 곤란했을 것 같다.
정씨는 회사 퇴직 후 공허함을 임영웅이 채워주고 있다고 말했다.
“영웅시대 회원들이 만나면 형제 같아요. 인정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있는 걸 처음 봤어요. 원래 전혀 몰랐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학교 친구들보다 나아요. 회사 퇴직하고 처음엔 뭐랄까 혼자 뚝 떨어져 있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모임도 하면서 소속감을 느껴요. 그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20년 전 ‘욘사마’ 열풍 연상케 해
이들의 얘길 들으며 문득 기자의 일본인 지인이 떠올랐다. 2003년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가 방영됐다. 이듬해부터 ‘욘사마’ 열풍이 일본을 강타했다. 일본 중장년 여성들이 한국 드라마와 배용준을 비롯한 한국 연예인에게 빠져들었다. 당시 일본 언론은 이를 두고 ‘빈 둥지 증후군’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ENS)이란 자녀 등 가족 구성원이 독립하면서 가정에 빈 둥지만 남고 자신은 빈 껍데기 신세가 됐다는 심리적 불안감을 강하게 느끼고 이 때문에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걸 뜻한다. 생애주기상 갱년기 증세와 맞물려 특히 중년 이후 여성들에게서 나타난다.
기자의 지인은 배용준을 좋아하다 배우 차태현으로 애정이 옮겨간 경우다. 차태현의 스케줄에 맞춰 거의 매달 한국을 찾았다. 이게 10년이 넘게 이어졌다. 생각해보면 그 지인도 당시 심리적으로 공허했던 것 같다. 20여 년 전 차태현의 팬미팅을 따라다니던 지인의 모습과 영웅시대 회원들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졌다.
“휴대폰 10대씩 스트리밍 돌리는 사람들도 많아”
임영웅 팬덤의 첫 번째 특징은, 이렇듯 스타와 팬의 유대(紐帶)관계가 두텁고 견고하다는 점이다. 이들은 임영웅을 만나 인생 설계도 바뀌었다. 정희중씨의 얘기다.
“저는 원래 80세까지 사는 게 목표였어요. 지금은 영웅이 노래가 정말 좋고 행복하니까 그냥 사는 데까지 건강하고 그냥 잘 살아야 되겠다는 방향으로 조금 바뀌었어요. 영웅이 좋아하니까 젊어지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도 없고 웃는 일이 많아요. 우리는 치매는 안 걸릴 거예요. 가수와 관련해 계속 새로운 플랫폼이 나오니, 가입하고 참여하는 방식을 배워야 되잖아요.”
공연을 가려고 해도 구매 방식에 적응해야 한다. 임영웅 공연 입장권 구매는 ‘피켓팅’이라 불린다. ‘피 튀기는 전쟁 같은 티켓팅’이란 뜻이다. ‘임영웅 공연 입장권 구매에 성공했더니 바로 대견한 아들 대우를 받았다’는 구매 후기를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매 공연이 발매 당일, 아니 발매 시작 순간 매진됐고 상당한 가격에 암표가 거래되기도 했다.
강경자(70)씨는 요즘 주변에 간단히 선물할 때 ‘본죽’을 사서 들고 간단다. 임영웅이 본죽 광고에 출연한 후부터다. LA 공연도 보고 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임영웅 노래를 스트리밍 하는 건 기본이다.
“24시간 영웅이로 시작해서 영웅이로 하루가 끝납니다. 휴대폰 10대로 스트리밍을 돌리는 사람들도 많아요. 공기계를 모아서 계속 돌려요. 이게 영웅이에게 도움이 되니까 하는 거예요.”
온종일 스트리밍은 아이돌 팬들도 한다. 그런데 특히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으로 탄생한 스타들의 장년층 팬들을 지켜보니 유독 스트리밍에 열심이다.
한동안 멜론 차트 1위부터 10위는 모두 임영웅 노래였던 시절도 있다. 멜론 차트에는 왜 임영웅 노래가 많을까 분석하는 기사가 종종 보도되기도 했다. 요즘도 지니 차트 1~30위권을 살펴보면 임영웅 노래가 대부분이다. 다른 신인가수가 차트에 진입하는 걸 막는다는 둥 비판의 목소리도 일부 있지만, 현상을 들여다보면 비판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지켜보니 이들이 스트리밍에 열심인 이유는 단순하다. 이게 그나마 가장 쉬워서다. 10대나 20대들은 스타들의 스케줄을 직접 쫓아다니고 굿즈를 만들어 나눠가지며 애정을 표현할 수 있지만 노년층은 물리적으로 그러기 힘들다. 스타에 대한 애정은 10대, 20대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그러니 집에서 손가락만 움직여도 할 수 있는 스트리밍에 열을 올린다. 거의 컴퓨터 자동클릭 프로그램 수준이다. 이들이 애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장이 있다면 어떨까. 이런 점에서 임영웅의 K리그 나들이는 좋은 기회가 됐다.
“임영웅 시축 때문에 처음으로 축구경기 현장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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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8일 서울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FC 서울과 대구FC의 경기가 열렸다. 경기를 관전한 임영웅이 경기 종료 후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스포츠조선 |
팬들은 이제 FC서울에도 관심을 보인다. 이날(5월 10일) 식당에서 공부하던 이들은 저녁에 다 함께 상암 월드컵경기장으로 건너갔다. FC서울 경기를 보기 위해서다. FC서울 응원 머플러도 챙겼다. “시축 때문에 축구 경기를 처음으로 현장에서 관람했는데 생각보다 즐거웠다”고 입을 모았다.
임영웅 팬덤의 세 번째 특징은 확장성이다. 팬의 세대층이 넓어지고 있다. 서바이벌 출신 스타로서는 이례적이다. 보통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스타가 되는 경우 방송 직후 정점을 찍고 인기가 하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슈퍼스타K〉 〈프로듀스 101〉 같은 프로그램으로 탄생한 스타들을 떠올리면 된다. 그런데 임영웅은 시간이 흐를수록 인기가 점점 올라가고 팬의 연령대가 확장되고 있다.
수도권이 아닌 다른 지역의 팬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강원도로 향했다. 영웅시대 강원도 모임인 ‘영웅시대 위드 히어로 인 강원’은 영웅시대 지역 모임 중 최초로 헌혈증 기부를 시작했다. 임영웅 생일에 맞춰 매년 헌혈증과 장학금을 기부한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전통시장 중간에 있는 카페 ‘가방속커피향기’ 허태은(57) 사장도 ‘히어로 인 강원’ 회원이다. 카페에서 회원들과 임영웅 생일파티를 열기도 했다.
자그마한 카페 안을 둘러보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임영웅의 얼굴이 보인다. 임영웅 사진으로 온 사방을 도배하거나 하진 않았다. 일정 공간에만 사진과 미니 액자, 머그컵을 진열해놨다.
“연예인을 이렇게 좋아한 건 생전처음”
허태은씨는 〈미스터트롯〉 경연 당시 병원에 입원해 있던 남편을 돌보며 임영웅의 노래를 들었다. ‘바램’과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듣고 임영웅의 팬이 됐다.
“노래를 듣는데 가슴이 막 미어져요. 눈물이 흘렀어요. 지금도 두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핑 돌아요. 이게 계기가 됐어요. 연예인을 이렇게 좋아한 건 생전처음이에요.”
임영웅 사진으로 액자를 주문 제작해 카페 한쪽에 전시해놨다. 임영웅 생일이면 생일상을 차린다. 미역국을 끓이고 잡채를 만들고, 카페 손님들에겐 떡을 돌린다. 초창기엔 가족들이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단다.
“아들이 그래요. ‘엄마는 나보다 임영웅이 좋아?’ 그래서 제가 답했어요. ‘응, 영웅이 얼굴 보면 웃음이 나와.’ 남편한테도 그러죠. ‘영웅이는 갱년기를 잘 이기게 해준 주인공이야.’ 이제는 아무 말도 안 해요.”
백순진 함께하는음악저작인협회 이사장, ‘사월과오월’ 멤버 출신 싱어송라이터
“실버 세대들에게 엄청나게 인기를 얻는 가수가 탄생할 거라고 늘 생각했어요. 아이돌이 판치는 세상에서 실버들이 소외된 듯한 느낌이었는데 여러 상황이 맞물리며 폭발이 일어난 거죠. 실버 세대들이 이제는 유튜브로 동영상을 마음대로 보잖아요. 그 영향이 큽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공연을 잘 못 보니 갈증이 있기도 했고요.” - 가요계엔 좋은 일일까요? “노년층의 외로움을 노래로 달래주잖아요. 정신 건강에도 참 좋을 겁니다. 임영웅은 트로트로 알려졌지만 그 후엔 발라드나 다른 장르도 부르잖아요? 이건 상당히 좋은 것 같습니다. 한국 가요계가 너무 트로트 일변도로 가는 것 아닌가 우려했는데 다행스러워요.” - 임영웅의 매력이 뭘까요. “기획사에서 연습생으로 뽑아서 훈련시켜서 만들어진 스타가 아닌 거죠. 〈미스터트롯〉 나오기 전에 아마 여러 장소에서 노래를 불러봤을 겁니다. 시장에서도 불러보고 음향시설이 안 좋은 곳에서도 노래를 부르고요. 여러 가지 경험을 충분히 해본 거죠. 일본에는 수없이 많은 공연을 해본 사람이어야 가수가 될 수 있다는 문화가 있거든요. 임영웅이 그런 유형인 거죠. 어릴 때부터 아마 여러 일을 겪으면서 헝그리 정신도 갖췄고요. 그래서 노래할 때 감정이 진하게 나오는 것 같아요.” 백 이사장은 ‘임영웅이 좋은 노래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버들을 포함해 전 세대를 강타하는 대(大)히트곡이 나올 거 같다는 예감이 들어요.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국민가요 같은 노래죠. 예를 들면 ‘마이웨이(My Way)’나 일본의 ‘스키야키’ 같은 노래 말입니다.” 일본 가요 중 ‘위를 보고 걷자’(해외 발표 제목:스키야키)라는 노래가 있다. 사카모토 큐가 1961년에 발표했다. 일본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미국에서도 히트했다. 아시아 음악으로선 이례적으로 빌보드차트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제목의 의미는 ‘눈물이 떨어지지 않게 위를 보고 걷자’는 뜻이다. 힘든 현실을 희망(하늘)을 보며 이겨내자는 내용이다. 전쟁의 여파에서 벗어나고 있던 1960년대 일본의 시대상이 담겨 있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국민가요로 사랑받고 있다. 백 이사장의 말이 이어졌다. “이런 대히트곡은 시대상도 담고 있어요. 요즘 정치나 각종 뉴스들 때문에 피곤하고 기분 나쁜 일이 많잖아요? 사람들 마음을 달래주는 노래가 나올 때가 된 것 같아요. 이런 히트곡이 임영웅한테 나올는지도 모를 일이에요. 좋은 곡을 찾기 위해 필사적이 되어야 합니다.” |
“영웅이에게 직접 만든 빵을 전달하고 싶은데…”
임영웅 사진으로 카페를 장식하는 게 사실 매출에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심지어 카페에 들어왔다가 ‘여기 임영웅 팬카페냐’며 나가는 경우도 있단다. 100명 중 1명 정도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아니라서 그런 거겠죠. 우리는 안 그러거든요. 우리는 다 좋아해요. 〈미스터트롯〉에 같이 나왔던 일곱 명 가수들의 공연도 갔다 왔어요.”
허씨는 원래 꽃차 전문가다. 카페 한쪽엔 꽃차들이 즐비하다. 카페 메뉴 중 들깨꼬소커피, 메밀싹라떼를 먹었는데 아주 맛있었다. 유기농 밀가루로 만들었다는 메밀 번도 근사했다. 허씨는 “영웅이에게 유기농 밀가루로 직접 만든 빵을 전달하고 싶은데 전달할 방법이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허씨의 가족 중 어머니와 네 자매가 모두 임영웅 팬이라고 한다. 네 자매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임영웅 얘기로 바쁘다.
“영웅이가 청년 피자 광고할 때는 원주시까지 가서 피자 시켜 먹었어요. 간장 사고, 죽 사 먹고 영웅이가 광고하면 다 사죠. 가만히 보면 일반인들이 쉽게 살 수 있는 생활 필수품 광고를 우선적으로 하는 것 같아요. 비싼 제품을 광고하면 팬들이 부담되니까요.”
“1020 팬 엄청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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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있는 카페 ‘가방속커피향기’. 임영웅 관련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사진 왼쪽).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있는 카페 ‘가방속커피향기’를 운영하는 허태은씨는 휴대전화에 임영웅의 사진을 넣고 다닌다. |
“작년에 고척에서 공연하면서 미국 공연 얘길 했어요. 그러자 관객 중 누가 ‘땅 팔아서 LA 공연 간다’ 이런 피켓을 들어요. 그걸 보더니 영웅이가 절대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아들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LA 공연 표만 구하면 보내준다고. 그런데 미국 동포분들도 임영웅 공연을 볼 기회를 누려야 되잖아요. 주변 팬들끼리 그랬어요. ‘우리는 한국에서 보면 되니까 우리가 양보합시다’ 그래서 안 갔어요.”
나중엔 아들의 여자친구까지 임영웅 팬이 됐단다. 함께 하늘색 옷을 맞춰 입고 공연에 다녀왔다.
“처음에는 트로트 가수로 등장했기 때문에 트로트 가수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1집 앨범을 냈는데 거기엔 다양한 장르가 들어 있어요. 랩도 있고 발라드도 있어요. 그 후로 1020 팬들도 엄청 많아졌어요.”
10대와 20대들은 임영웅을 두고 ‘본업존잘’이라 표현한다. 본업인 가수로서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다. 혼자 피나는 연습을 해 실력을 갖췄다는 점도 높이 평가한다. ‘이제 나만 믿어요’를 만든 조영수 작곡가는 ‘가사를 이야기하듯 전달하는 능력’을 임영웅의 장점으로 꼽았다. 〈미스트롯〉 출신 가수 홍자는 ‘부드러움’을 임영웅의 특장점으로 꼽았다. “그 정도로 부드럽게 노래할 수 있는 목소리는 거의 없어요.”
어머니나 할머니를 공연에 보내드린 후 팬이 됐다는 3040들도 많다.
“티켓을 한 장밖에 못 구해 70대 어머니를 혼자 들여보내고 걱정을 많이 했어요. 키오스크 사용하는 걸 정말 힘들어하시는데, 굿즈 구매하는 키오스크에서 스태프가 일대일로 붙어서 도와주고 자리까지 모셔다드리고,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어줬다는 얘기 듣고 임영웅씨에게 정말 고마웠어요.”
이들이 우스갯소리로 임영웅을 ‘국민새아빠’라 부르는 이유다.
옆 공연장에서 헤매는 노년층 관객을 스태프가 찾아서 모셔왔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임영웅 공연에서 공연 안내 아르바이트를 했던 대학생들도 좋은 후기를 들려줬다.
“임영웅 공연은 스태프 수가 많아서 일하기 편한 공연이에요. 관객들도 질서를 잘 지키고 친절히 대해주세요. 춥지 않냐며 핫팩도 주시고 귤도 주세요.”
“기획사들, 임영웅 공연 보고 배워야”
10대와 20대들이 주로 활동하는 인터넷 게시판에는 ‘기획사들이 임영웅 공연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글이 여러 건 올라왔다. “좋아하는 아이돌 공연을 몇 번 갔더니 인간으로서 존엄성이 무너질 지경이더라. 임영웅 공연은 스태프가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어준다는데, 아이돌 공연에선 휴대폰을 빼앗아 데이터 검사를 안 하면 다행일 지경”이라며 개탄하는 글도 있었다.
임영웅 팬덤은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까.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팬덤을 목격하게 되는 걸까. 임영웅 투어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오며 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