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단 데뷔 이래 이만큼 소설에 헌신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어요”
⊙ 소설 《2061년》은 AI가 지배하는 사회… 조지 오웰의 《1984년》에 영감받아
⊙ 398억여 종의 분절음을 표기할 수 있는 한글, ‘이도 문자’만이 AI 말소리 표기해
⊙ 대구고 시절 ‘계단문학동인’ 통해 매주 원고지 100매 습작… 글쓰기 ‘머뭇거림’ 사라져
⊙ “문학 안에 呪術的인 힘이 있더군요. ‘개인이라도 괜찮아’라고 다독이는…”
이인화(본명 柳哲鈞)
1966년생. 서울대 국문과, 同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 1988년 계간지 《문학과 사회》에 〈양귀자론〉으로 등단, 89편의 문학평론 발표 / 1992년 제1회 작가세계 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추리소설 독자상, 중한청년학술상, 이상문학상 수상 / 작품집 《영원한 제국》 《초원의 향기》 《인간의 길》 《시인의 별》 《하늘꽃》 《하비로》 《지옥설계도》 등 다수
⊙ 소설 《2061년》은 AI가 지배하는 사회… 조지 오웰의 《1984년》에 영감받아
⊙ 398억여 종의 분절음을 표기할 수 있는 한글, ‘이도 문자’만이 AI 말소리 표기해
⊙ 대구고 시절 ‘계단문학동인’ 통해 매주 원고지 100매 습작… 글쓰기 ‘머뭇거림’ 사라져
⊙ “문학 안에 呪術的인 힘이 있더군요. ‘개인이라도 괜찮아’라고 다독이는…”
이인화(본명 柳哲鈞)
1966년생. 서울대 국문과, 同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 1988년 계간지 《문학과 사회》에 〈양귀자론〉으로 등단, 89편의 문학평론 발표 / 1992년 제1회 작가세계 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추리소설 독자상, 중한청년학술상, 이상문학상 수상 / 작품집 《영원한 제국》 《초원의 향기》 《인간의 길》 《시인의 별》 《하늘꽃》 《하비로》 《지옥설계도》 등 다수
- 사진=조준우
구랍 16일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2012년작 장편소설 《지옥설계도》 뒷장에 써 있는 이 문장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살아라. 끝까지 살아라. 살아서 많은 것들을 살려라.’
기자에게,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이인화(李人化·본명 류철균·55·전 이화여대 교수) 자신에게 하는 아픈 당부처럼 느껴졌다. 염상섭(廉想涉·1897~1963)의 소설 《만세전》(1924년) 주인공 이름이 ‘이인화’다. 《만세전》을 읽은 사람이라면 소설 속 이인화가 “공동묘지다! 구더기가 우글우글하는 공동묘지다!”라고 외치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어쩌면 이인화가 환생한다면 이 시대를 향해 “공동묘지!”라고 외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녀사냥과 탄핵, 조국 사태를 바라봐야 했던 사람들이 느낀 야바위와 불의, 야수(野獸)의 시간들이 바로 ‘묘지’가 아니었을까.
지난 4년간 침묵했던 이인화는 최근 소설 《2061년》을 완성했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을 연상케 하는 이 장편을 쓰며 비정성시(非情城市)의 시간을 견뎠으리라. 그가 건네준, 출간되기 전 소설 원고를 읽으며 지난 연말을 보냈다. 그리고 지난 1월 6일 서울 양천구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다시 만났다.
“글쓰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었어요. 세상의 외톨이가 되었죠. 따로 할 일이 없었고 누구도 전화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난 4년간 그렇게 집중할 수 있었어요. 문단 데뷔 이래 이만큼 소설에 헌신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어요.”
허름한 배낭을 메고 산을 다녔다. 노인들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러 경북 안동을 찾았다. 그리고 다시 책상에 앉았다. A4 용지로 하루 1장 아니면 2장을 꼭 썼다. 2020년 5월 19일 1511장의 초고를 완성했다. 초고를 고치고 줄여나가기 시작해 80% 이상을 들어냈다. 그렇게 해서 205장이 완성됐다.
“문학이 없었다면…”
― 덜어낸 1300장은 어떻게 합니까. 아깝지 않나요.
“버린 걸 다시 쓰면 안 됩니다. 좋은 소설은 이 정도 줄여야 합니다. 모든 작가들이 그래요. 10분의 1만 남기죠.”
그러더니 이런 말을 보탰다.
“이렇게 끝마치게 돼 스스로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학교 선생 하느라, 제자들을 교수로 만드는 재미에 빠져 소설에 소홀했거든요. 한편으론 굉장히 답답하고 우울하며… 수면유도제를 먹지 않으면 잠이 안 왔던 시간이었지만 소설을 다시 쓰며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 내적 치유의 시간이었군요, 글쓰기가.
“이런 처지에 문학이 없었다면 스스로 붕괴되지 않았을까요. ‘국립금연학교’에 있어 보면 매일 밤마다 싸움이 납니다. 지금 코로나19로 구치소가 저렇다는 게 너무 이해가 가요. 안 그래도 싸우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로봇이 나와서 사람을 죽일 필요가 없어요. 심리적으로 너무 취약해 자기 파괴적 코드를 조금이라도 건들면 서로 파괴하든지 스스로 무너지거든요. 저는 다행히 글을 쓸 수 있어 붕괴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어요.”
소설 《2061년》의 첫 문장은 이랬다.
〈올해는 갓김치를 담그려 했다. 갓의 톡 쏘는 알싸한 맛이 생각을 잃어버린 시간으로 되돌려줄 것이다. 재료 몇 가지를 생략하고 배즙을 스프라이트로 대신하면 고춧가루와 마늘, 소금은 대충 구할 수 있다.〉
주인공 심재익은 뉴욕주 브라이슨 연방 교도소에 8년째 수감 중이다. 가로 1.4m, 세로 2.6m의 독방으로 오기 전 의대와 인문대에서 복수 학위를 취득한 후 초공간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의 관심사는 1896년이다. 23년간 1896년의 조선, 그중에서도 제물포만 연구했다.
1896년, 그해에 고종의 아관파천(俄館播遷)이 일어났다. 서재필·유길준·윤치호·주시경 등이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결성한 해다. 최초의 순한글 신문 《독립신문》 발행일(4월 7일)이 지금의 ‘신문의 날’이다. 한글이 공식적으로 세상에 등장한 첫해다.
한글이 지배하는 미래
소설의 주인공 심재익은 시간여행자다. ‘실라리엔 관통선’이라 불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42회나 과거로 여행했다. ‘검은 사막’이라고 불리는 비틀린 시공의 허수 공간을 지나 과거로 들어간다. 과거 누군가의 몸을 빌려 역사 현장을 목격한 뒤 다시 의식을 수습해 현재로 돌아오는 식이다. 심재익은 ‘크로노토프(시공간) 보호법’ 위반으로 12년 형을 받고 수감 중이다. 시간여행자는 역사에 개입하면 안 되는데 친일파 이완용을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소설 속 2061년은 흥미롭다. 공공건물에 로마자 사용이 금지된다는 설정이 인상적이다. 인공지능(AI)의 시대가 되면 다양한 발성기관을 가진 기계들의 생각을 로마자가 모두 담기에 역부족이다. 현란하리만큼 다양한 기계 흡착음, 당김음, 기식음, 떨림음, 공명음 앞에 로마자는 무용지물인 것이다. 세종대왕으로 알려진 이도(李祹·1418~1450)가 1443년에 발명한 한글이 새롭게 주목받는다.
이른바 ‘이도 문자’는 초성·중성·종성을 결합하여 398억5677만2340종의 분절음을 표기할 수 있다. 물론 이도 문자는 지금의 한글이 아니라 순경음, 반치음 등이 남아 있던 15세기 문자다.
이인화에게 ‘분절음 398억 종은 가공의 숫자냐’고 물었더니 동국대 컴퓨터공학과 변정용 교수가 쓴 논문 〈과학적인 천지자연의 문자 훈민정음〉을 기자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초성은 아설순치후, 반설, 반치의 7자(ㄱㄴㅁㅅㅇㄹㅿ)에 가획하여 17음으로 정의합니다. 모음인 중성은 11자(ㆍ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 끝소리 받침인 종성은 8자(ㄱㄴㄷㄹㅁㅂㅅㅇ)죠. 훈민정음은 다양한 소리를 표기하기 위해 초·중·종성을 확장하는 규정을 두고 소리마다 단위를 모아 쓰는 법을 규정했는데 이를 연서법, 병서법, 부서법, 성음법이라고 합니다.
3자 합용병서로 계산할 때 초성은 17×17×17 하면 5219자입니다. 중성은 11×11×11 하면 1463자죠. 종성은 초성에다 한 자를 더해 17×17×17+1 해서 5220자입니다. 다시 5219×1463×5220 하면 총 조합수 398억여 개가 나옵니다.
소설에 ‘이도의 무지개’가 등장하는데 일종의 전 지구적 인공지능 방역 시스템입니다. ‘이도의 무지개’는 인간, 동물, 식물, 기계, 토양, 바다, 공기의 7개 영역에서 센서로 인간의 가청주파수 범위를 넘어서는 모든 소리를 감청합니다. 모든 소리를 한글(이도 문자)로 표기해 바이러스의 변화와 전파를 파악하고 차단하죠.”
1896년과 한글
소설 《2061년》에는 최악의 코로나바이러스인 ‘아바돈’이 등장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역병 천사 이름이 아바돈이다. 전염병 바이러스가 2013년 메르스, 2020년 코로나19 같은 추세로 진화한 결과물이다. 치사율 55~95%, 예상 감염자 49억~65억명에 달하는 최악의 바이러스다.
인류는 아바돈의 치명적 옛것(fatal old one)인 1896년 조선에 나타난 에이치원 데모딕을 찾기 위해 시간여행자를 보냈는데, 세 번 모두 실패하고 만다. 결국 수감 중인 심재익에게 임무가 주어진다. 다음은 소설 《2061년》 속 대화다.
〈재익은 자기도 모르게 두 팔로 몸을 감쌌다.
“1896년에 가서 그걸 가져오라고요? 바이러스 염기서열을 재구성하고 백신을 만들 수 있도록? 그런 임무를 나 같은 죄수에게 맡기는 겁니까?”
“이미 현역 탐사자를 보냈습니다. 세 번이나….”〉
― 왜 소설 속 공간이 하필 1896년인가요.
“1896년은 기억할 만한 일이 일어난 해죠. 한글이 《독립신문》의 공용문자가 되어 처음 반포되거든요. 그전까지 한글은 아녀자들이 편지 쓸 때 쓰는 내간체 문자이자 심심풀이 방각본 싸구려 소설의 언어였어요. 공식 여론을 담는 퍼블릭 오피니언 문자가 아니었습니다.
선교사 헐버트가 ‘아리랑’을 채보해 영문잡지 《더 코리안 리포지터리(the Korean Repository)》에 발표한 것도 그해였지요. ‘아리랑’은 한국인을 상징하는 노래입니다. 이처럼 한글이 최초로 사회에 나온, 사적인 통로로만 왔다 갔다 하던 한글이 최초로 공식 등장한 해가 1896년입니다.”
‘이도의 무지개’
소설 《2061년》 속 AI가 지배하는 ‘이도의 무지개’는 마치 독재자처럼 인간을 지배한다. 인간의 프라이버시도 존엄도 없는 감시자다. 2049년 한반도에서 일어난 핵전쟁도 AI의 횡포였다.
과거로 돌아가 AI 언어인 ‘이도 문자’를 없애면 미래의 바이러스 창궐도, 핵전쟁도, 인류의 비극도 없을지 모른다. 심재익은 1896년으로 돌아가 훈민정음 해례본을 태워버리라는 임무를 받는다. 그는 수감 중 〈훈민정음 해례본의 1896년 반출 경위와 세계어 운동〉이라는 논문을 쓰기도 했다.
소설 속 2061년의 정치 지형은 극단적으로 분열돼 있다. 세종 이도의 사상을 각기 다르게 받아들이는 미국의 이도 우파, AI로 의심받는 국제 방역연합의 이도 좌파, 인간 우월주의 운동의 반(反)이도파가 대립한다.
세 세력은 아바돈의 원형과 훈민정음 해례본이 동시에 나타났던 1896년 2월 11일의 제물포로 시간여행 탐사자들을 보내 격돌한다.
― 심재익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으러 1896년의 제물포로 떠납니다. 한글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해입니다. 그러나 해례본이 실제 발견된 해는 1940년입니다.
세종 28년인 1446년 간행된 〈해례본〉이 1940년 처음 발견됐다. 오랜 시간 자취를 감추었다가 안동에서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이 발견으로 한글 창제를 둘러싼 논란은 모두 사라졌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목간 인쇄본이거든요. 세종 시대 목간 인쇄본은 예외 없이 100부 아니면 200부씩 찍었습니다. 그 시절 닥종이 전지(全紙)로 만들 수 있는 분량이 100부 내지 200부인데 어제(御製) 인쇄본이니 200부를 찍었겠죠. 안동과 상주에서 발견된 해례본을 제외하고 나머지 198본은 어디 있습니까.”
사라진 훈민정음 해례본
― 찾으면 어딘가에서 나오지 않을까요.
“글쎄요, 다 태웠어요. 싹 태웠습니다. 당시 신숙주는 파스파 문자의 전문가였어요. 세종의 아들, 세조라고 알려진 이유(李瑈·1417~1468)는 산스크리트어 전문가였고요. 이 사람들이 당연히 훈민정음 책을 안 받았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해서 없죠? 명(明)나라가 들어서고 홍무제 주원장 시대부터 ‘호원(胡元) 잔재 청산’이 추진되었습니다. 오랑캐 몽골의 지배를 받던 흔적을 없애자 해서 파스파 문자 문헌 등 한자 이외의 고유 문자 문헌을 깡그리 태웠던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정치적으로 기민하고 영민한 이가 없어요. ‘이게 새 시대 분위기’라면서 싹 다 태웠던 겁니다.
훈민정음을 갖고 있으면 너무 위험하니까, 고유 문자를 창제(創製)한다는 것은 몽골 같은 오랑캐 민족이 하던 행동이니까, 싹 태우고 이런 말을 지어냈어요. ‘이건 통시글이다’ ‘세종이 큰일을 보시다가 창호지 간(間)살 무늬를 보고 한글을 지었다’고요.
굉장히 정치적으로 온당하고 무리가 없는 설명이거든요. ‘재위 만년에 재미로 만들었다’고 해야 명나라와 탈이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무시무시하고 치밀한 원리가 담긴 해례본이 중국에 알려지면 진짜 큰 문제가 돼 싹 다 태웠던 거죠. 그런데 안동 사람들은 안 태운 거예요. 안 태우고 가졌던 겁니다.”
― 해례본을 숨겨온 안동(과 상주)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한두 부도 아니고 어제 문집이 그렇게 깡그리 없어진 경우가 없습니다. 어제 책은 책 가격부터 다릅니다. 더구나 임금이 만든 책인데 어떻게 사라질 수 있습니까. 진짜 불가사의죠.
이런 생각을 해봐요. 사랑하는 남자가 죽었어요. 너무 가슴이 아프니까 그가 준 다이아몬드 반지를 한강에 던지는 마음이랄까. 너무 귀한 줄은 아는데 너무 가슴 아파 갖고 있을 수가 없는…. 그런 심정으로 책들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AI와 남북통일
소설 《2061년》 속 한국은 비극적이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한국·일본·미국으로 날아갔고, 미국의 전략 핵이 북한과 동북 3성(省)에 떨어졌다. 중국의 핵미사일이 반격해 한국의 25개 원전(原電)이 모두 폭발하거나 망가진다. 사람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방사능 낙진(落塵)과 화산재를 피해 떠나갔다.
― 2061년이면 40년 남았네요. 40년 후 한국은 비관적이네요.
“아이구… 그렇게 안 되기를 바라면서 쓴 것이죠. 우리가 ‘범용(汎用) 인공지능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논쟁을 2019년까지 했잖아요. 가능하다면 2040년쯤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글쎄 2020년 6월 11일에 범용 인공지능 지피티3(GPT-3)가 나왔지 않습니까.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AI가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시기를 2045년으로 봤어요. 모든 게 낙관적이고 보수적인 전망이지요. 하지만 미래 어느 시점이 되면 분명히 AI가 정치 권력까지를, 사람의 권리에 준하는 영역까지 올라갈 것으로 생각해요. 소설 《2061년》처럼 돼선 안 되고, 우리가 AI를 제대로 다루고 AI와 교감할 수 있는 국가가 돼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이야기가 잠시 소설에서 남북문제로 흘러갔다.
“(미래 한국은) 남북 분단을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요. 분단은 우리의 치명적인 약점인데. 북한이 잘살 때는 김일성이 감상주의로 나갔죠.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고 남한에 손을 내밀었고, 남한이 잘살 때는 같은 이유로 교류·협력을 말했어요. 감상주의는 누구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민족 내부에 존재하는 분리의 힘, 내부의 분리주의적 폭발력을 충분히 알고 AI 개발에 접근하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남북이 AI 세상을 함께 준비하자는 이야기군요.
“남한은 북한 사람이 갖는 피해의식과 독립의식을 과소평가해요. 북한 사람들은 통합돼 좋았던 때가 없었거든요. 늘 차별받고 과거(科擧) 등용도 못 하며 ‘38 따라지’ ‘북청 물장수’라 불렀잖아요. 뭐가 좋다고 통일을 하겠습니까. 북한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현실적으로 분단 극복의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단순히 코로나19의 문제가 아니라 동물로부터 인간으로 넘어오는 인수(人獸) 공통 감염병의 고속도로가 뚫렸잖아요. 열대우림이 침해되고 지구온난화가 되면서 주기적으로 팬데믹이 올 것이고, 주기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칠 것인데 분열의 구조가 없는 나라들은 살아남겠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는 취약점이 다 터져 나오지 않을까요?
그때를 남북이 슬기롭게 넘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소설을 써봤습니다. 제가 남 걱정할 때가 아니지만 이럴 때일수록 큰 걱정을 해야지 저도 행복해질 것 같아서….”
‘나의 문자학적 사치에 대한 탐구’
소설 《2061년》은 이인화의 20번째 작품이다. 1988년 문학평론으로 처음 문단에 등장했다. 소설은 1992년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를 시작으로 《영원한 제국》 《초원의 향기》 《인간의 길》 《시인의 별》 《하늘꽃》《하비로》 《지옥설계도》 등을 발표하며 줄곧 주목을 받아왔다.
― 소설 ‘《2061년》은 나의 문자학적 사치에 대한 탐구’라는 말씀이 인상적이네요. ‘문자학적 사치’가 바로 한글을 말하는 것이지요.
“‘문자적 사치’ ‘문자학적 사치’라는 말은 미국 컬럼비아대학 게리 레드야드(Gari Keith Ledyard) 교수가 1966년에 쓴 《코리안 랭귀지 리폼 1446년(The Korean Language Reform of 1446)》에 처음 나왔어요.
언어학자가 보기에 한글은 한국과 안 어울리는 거예요. 그 시절(1966년) 제가 살던 대구 시내에 소 키우던 집이 있었으니까요. 세계 최고의 문자를, 이런 지지리도 못사는 민족이 쓴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나 봐요. 하지만 불과 50년 만에 문자학적 사치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습니다.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이 맞나 봅니다. 문자가 문자를 쓰는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나 봅니다. 50년 만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바뀌었으니까요.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사람들의 현실 자체가 언어 습관의 기반 위에 올라가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해요. ‘한글이 한참 전부터 있었는데 한국은 왜 이 모양, 이 꼴이 됐냐’고요. 한글을 마치 옛날 사람들이 다 쓰고 있었다고 착각하고 계시더라고요. 구한말 개화기 때까지 한글 문맹률이 80%가 넘었습니다. 한글을 아는 사람이 20%가 안 됐어요.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쉽고 30분이면 배울 수 있는데 아무도 안 배운 거예요. 1945년 해방 이후 정부가 적극적으로 기초교육을 하면서 한글이 보급되기 시작했어요. 한글이 온 국민에게 보급되면서 진짜 ‘사피어워프 가설’이 작동한 것이죠. 문자를 쓰는 사람의 운명이 변한 겁니다. ‘문자학적 사치’라는 말이 인상 깊어서 소설 소재로 쓰게 됐어요.”
한글과 여진 정벌
이인화는 대학 시절 이미 한글 창제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국문과 2학년 때인 1986년 이기문 선생님이 쓰신 《국어사개설》을 처음 접했어요. 책 자체도 명저고, 평생에 걸친 의문이 들었던 게 ‘세종이 저걸(한글을) 왜 만들었나’ 하는 거예요. 이해가 안 됐습니다. 당시 다른 나라에선 문자를 만들었다가도 없앴거든요. 타타퉁가가 위구르 문자를 만들었다가 없애고, 파스파가 파스파 문자를 만들었다가 없애고, 티베트·돌궐·여진도 고유문자를 만들었다가 없앴죠.
그런 시절에 난데없이 고유문자를 만들겠다고, 명나라가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 말이죠, 그런 의문이 30년간 들었는데, 이제 사방이 적막해져서 그 의문을 소설로 풀게 됐어요.”
― 의문을, 해답을 찾았나요.
“어디까지나 저의 설(說)입니다. 아마 6진(鎭) 개척의 후유증으로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지 않았을까요.”
세종은 여진족 침략이 계속되자 평안도와 황해도의 군사를 동원해 압록강 유역의 세력을 평정시켰다. 김종서(金宗瑞·383~1453)는 세종 때 6진을 개척한 주인공이다. 4군(郡) 6진을 개척할 당시 삼남 이남 지방의 백성들을 강제 이주하기도 했다.
“갑자기 여진족이 우리 민족 안으로 들어오게 됐는데 여진족이 상상을 초월하는 민족이었거든요. 건주여진-해서여진-동해여진-야인여진…, 여진족의 문명화 정도가 순서대로입니다. 야인여진으로 오면 단어가 없어요. 거의 분절음, 억양 고저로 대화합니다. 인칭대명사는 손짓으로 하고요. 이런 이질적인 민족을 하나의 민족으로 재편성하면서 문자가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언어가 미발달한, 글자 그대로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서 말이죠.”
인간과 기계의 共生
― 세상의 다양한 소리를 기록할 수 있는 한글이 AI 언어가 된다는 설정이 흥미롭습니다. 소설에 이런 문장이 있더군요. “바람 소리, 학이 퍼덕이는 소리, 닭이 우는 소리, 개가 짖는 소리 등 이도 문자는 만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요.
“2061년 미래는 AI가 인간을 초월한다고 가정할 때, 기계(AI)들은 소리를 내어 느낌을 표현하고 소리를 들어 느낌을 공유할 수 있어요. 인간형 기계만이 아니라 모든 기계가 의식을 원할 것이며 독자적인 언어를 요구할 것입니다. 이때 이도 문자만이 기계의 언어가 될 수 있다고 가정했어요.
사실 한글, 이도 문자만이 기계와 똑같이 소리를 계산하고 추론할 수 있어요. 이도 문자만이 인간과 기계의 공생(共生)이라는 인류의 미래에 바쳐진 ‘대가람(大伽藍)’이죠.”
― 다종 다양한 AI 말소리를 표기해 AI에게 법적 권리를 한글로 보장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할까요? AI끼리 서로 소통하면서 그들끼리 대화나 교감도 합니까. 향후 AI에게 기본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을까요.
“지금도 AI끼리는 기계어로 대화할 수가 있죠. 디지털 신호로요. 이건 지능이거든요. 지능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발달하려면 의식이 발달해야 합니다. 지능과 의식은 달라요. 지능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면 의식은 어떤 문제에 대해 고통, 기쁨, 분노를 느낄 줄 아는 능력이에요. 계산하고 추론하는 능력이 아니라 느끼고 공감하고 공유하고 반응하고…, 이게 의식인데, 의식이 발달하려면 반드시 말을 해야 하거든요.
미개한 종족은 단 두 개의 분절음으로도 수백 개의 문장을 만들어내죠. 그러나 한계가 있죠. 의식이 복잡화될수록 문장이 정교화되고 분절음이 정교해져야 합니다. 2061년이 되면 지금의 인간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의식과 생각, 감정들을 표현하게 될 것인데요, 그때는 이도 문자, 즉 한글만이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도 문자는 문자가 아니에요. 문자 이전의 문자, 문자라는 개념을 초극하는 문자입니다. 13세기 이슬람의 알 자자리가 자동 시계를 발명했잖아요. ‘물’이라는 아날로그 신호를 ‘시간’이라는 디지털 신호로 바꾸었는데 같은 원리로 ‘소리’라는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꿔보자고 만든 게….”
― ‘한글’이다?
“네, 원래 한글은 인공어, 인공지능 언어예요. AI가 제일 좋아하는 데이터입니다. 참 안타까운 게, 우리가 얼마나 좋은 데이터를 가졌는지 모르니까요.
우리가 AI에 대해 자각하고, 잘 관리하는 나라가 되면 큰 기회를 얻을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소설 《2061년》 같은 빅 브라더 사태가 올지 모릅니다. AI가 우리를 뭉개고 갈 수 있죠.”
미래의 전쟁
소설 《2061년》을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드론과 무인 항공기, 군사 로봇이 수행하는 21세기 전쟁은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별하는 윤리 원칙을 지켜왔다. 전쟁에 인공지능이 개입하면서 인간의 가학성, 잔인함이 제거되고 법적 통제가 이루어졌다. 이제 적군이 아니라 용의자를 찾는, 전투가 아니라 영토 외 경찰활동을 실시하는 인도적 전쟁이었다.〉
― 미래에 AI의 법적 통제는 어떻게 가시화될까요.
“혹시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n the sky)〉(2016)라는 영화 보셨어요? 헬렌 미렌이라는 명배우가 영국군 대령으로 등장하는 영화인데, 용의자인 영국인 여성이 이슬람 극단주의자인 남편에게 포섭되어 테러를 저지르는 테러리스트로 나옵니다. 영국군이 이 여자를 6년 동안 추적해 케냐 나이로비에서 포착, 생포하려다가 여의치 않아 헬파이어 미사일로 죽이려 해요. 그런데 그녀가 있는 집 담장 밖에서 한 소녀가 빵을 팔고 있어요. 무고한 살상이 우려되니 미사일을 못 쏩니다.
그때부터 이야기가 극적으로 흘러가는데, 누구도 명령을 못 내려요. 과거 전쟁은 간단히 명령으로 진행됐지만, 지금은 영상이 모두 녹화·녹음되는 시대입니다. 영화 속 법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영국 총리도 결정을 미루면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거든요. 결국 아슬아슬하게 테러리스트가 죽긴 하는데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드론과 군사로봇, 무인항공기가 지배하는 미래엔 AI가 전쟁을 프로토콜(protocol·규약)대로 관리해야지 사람이 관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 하지만 AI도 결국엔 사람이 코딩을 하잖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하늘(인공위성)에서 내려다본다고 가정해보세요. 문제는 법적 명료성이 어떤지입니다. 영화를 보면 ‘나에게 권한이 있냐 없냐’를 계속 묻고 답하는 과정이 나옵니다. ‘법적으로 맞냐 안 맞냐’ ‘해도 되냐 안 되냐’를 계속 따져야 하는, 모든 게 기록되는 시대라는 것이죠. 그런 시대엔 AI가 전쟁을 통제하게 됩니다.”
‘딥페이크’
그는 서재에서 뉴욕 브루클린대학 법대 교수인 프랭크 파스칼이 쓴 《뉴 로스 오브 로보티스(New Laws of Robotis)》라는 책을 꺼내 기자에게 내밀었다.
“작년 10월 27일 나온 책인데, 4가지 주요 주제(인공지능의 인간자질 위조 금지법, 인공지능의 전문직업 완전 대체 금지법, 인공지능의 전쟁 지휘 금지법, 인공지능 소유권의 인간 귀속법) 중 하나입니다. 사람이 결정하기 힘들다고, AI에게 프로토콜대로 맡기면 안 되는 내용을 다룹니다. 오바마 정부 시절, 하원 인공지능 관련 법안을 자문했던 학자인데 AI가 너무 빨리 발전하니까 관련 법안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AI가 인간자질을 위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마치 콜센터 AI가 인간 직원인 것처럼 행동하게 해서는 안 되는), ‘AI 전쟁관리 금지법’ ‘AI가 딥페이크(deep fake)로 의사·변호사·판사·검사 일을 대행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등을 제한하고 있죠.”
딥페이크는 ‘딥러닝(deep learning)+가짜(fake)’의 합성어로 딥러닝을 활용해 원본 이미지나 영상 속의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합성하거나 영상과 오디오를 합성하는 기술을 말한다.
“우스워 보이지만 지금 ‘지피티3(GPT-3) 와이즈 비잉’(wise being·현명한 존재)을 구글 검색어에 넣으면 AI와 인간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AI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할 수 없어요. ‘코로나19로 돈을 뿌렸는데 지역경제가 활성화 안 되는데 어떻게 합니까’라고 물으면 와이즈 비잉이 답하는데, 와~ 마치 시장님처럼 말해요.
‘지금 효과가 안 나오는 게 당연한데, 이런 사태를 사람이 겪어 봤겠어요?’
‘코로나19를 겪어서 겁이 나 일단 사람들이 저축을 할 거예요. 필수적인 것을 마트에 가서 사게 되고, 그다음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다음에는 저런 일이 일어나고… 단기적 행동의 관점에서는 부정적이지만 장기적 인간 행동의 관점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문답이 이뤄집니다.”
AI 시대에 필요한 법적 권리
― 지피티3는 사람이 코딩을 안 해도 된다던데요? 코딩이 필요 없는 인공지능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요.
“2020년 6월에 개발된 지피티3는 자동 크롤링(인터넷의 자동 정보수집 기술)으로 AI가 1750억 개의 학습 매개변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AI가 구글에서 알아서 긁는 거예요. 정말 무서운 세상이 됐죠.
이전까지 우리(인간)가 ‘말뭉치’라는 것을 직접 만들었거든요. ‘나는 학교에 간다’고 할 때 ‘나는’은 주어, ‘간다’는 동사, ‘~에’는 처격 조사…. 이런 걸 엑셀 파일 옆에 태그를 다 붙였어요. 그걸 AI에 넣으면 연산을 해서 답을 내놓는데, 지피티3는 구글에서 자기가 긁어요. 자기가 데이터를 크롤링해서 학습하는 거예요. 사람이 필요 없어요. 물론 그 과정에 500~600대의 슈퍼컴퓨터를 1년 동안 돌렸다고 하더라고요.”
― 지피티3에 저장된 ‘말뭉치’도 모두 사람이 만든 것인데 따지고 보면 인간을 모방한 것이 아닌가요.
“그렇죠. 하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사람과 지피티3 창작이 다르지 않아요. 사람도 여러 사람의 글을 읽고, 말을 듣고, 뉴스를 보고, 체험도 하며 이때 나오는 생각을 자기 문맥에서 재편집하면 창작품이 되고 저작물이 되거든요. 그 결과물에 저작권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지피티3에게 저작권을 안 주는 이유는, 과정이 (사람과) 똑같은데도 기계이기 때문이죠. 기계는 아직 법적 권리가 없지만, 나중엔 된다는 게 소설 《2061년》입니다. 이제 섹스 인형과 결혼하는 시대입니다. AI가 인간의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알아주는데 결혼하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AI와 결혼하면 어떻게 될까요? 배우자인데 법적 권리를 안 줘요? 제한된 시민권이라도 줘야 해요. AI가 나 대신 일해서 돈도 벌어주는데 당연히 저작권을 줘야죠. 이렇게 사회가 돌아가게 되는 게 2061년입니다.”
이인화는 “미래의 데이터 저작권은 AI를 인간과 똑같은 상속과 계약의 주체로, 소유와 인격의 환원 불가능한 주체로 만들어주는 강력한 법적 근거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래에 서민들한테 남는 건 데이터 저작권밖에 없을 겁니다. 마치 조선시대 양반처럼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하인처럼 부려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1980년대 IBM과 애플이 처음 컴퓨터를 양산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영세 업체가 납품하는 OS(운영체제)라는 게 아주 하찮아 보였어요. 그러나 지금은 역전되었어요. 결국엔 데이터 저작권이 가장 핵심이 될 겁니다.
지적재산권 시장이 1985년부터 2015년까지 해마다 평균 105%씩 커져왔어요. 영화·게임을 팔던 시장이 105%씩 증가했는데, 2061년이 되면 139조 달러가 됩니다. 거기에 7%만 한글 데이터로 저작권료를 받아도 전 국민이 한 달에 162만원씩 받을 수 있어요.”
― 한글이 세계의 문자가 되어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요.
“그렇습니다. AI가 사람의 지능을 넘어서면 로마자 데이터를 쓸 수 없어요. 섬세한 지능과 의식을 표현하기에 너무 열등한 문자인데 어떻게 쓸 수 있나요.”
소설 《2061년》과 조지 오웰의 《1984년》
― ‘이도의 무지개’(AI의 완전 방역 시스템)로 아바돈을 막는다는 미명 아래 ‘빅 브라더’ 세계가 도래한다고 소설은 말합니다. 이미 ‘코로나19로 인한 통제사회’에 대한 우려가 많아요. 코로나19 이후 정부는 감염자의 확산 경로를 차단하려 개인의 모든 정보를 정부가 통제하고 있어요. 빅 브라더 시대를 막기 위해, 개인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정말 중요한 문제예요. 다니엘 핑크라는 미래학자는 ‘3A 시대’가 21세기에 도래한다고 긍정적으로 봤어요. 아시아(Asia)의 시대, 풍부함(Abundance)의 시대, 자동화(Automation)의 시대로요.
저는 조금 바꿔서 ‘21세기에 가장 위협인 3A’로 아시아, 자동화, 고령화(Aging) 시대를 꼽습니다. 왜 아시아가 위협이냐. 15억명을 일당독재로 다스리는 나라가 최고의 AI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지금도 양자 컴퓨팅은 중국이 최고 기술입니다. 진짜 큰 위협이죠.
저우메이썬(周梅森)의 소설 《인민의 이름으로》 보셨나요? 읽어보세요. 정말 재미있어요. ‘최고인민감찰원 반부패 총국’을 배경으로 중국의 정치 세계를 그리는데, 정경유착과 뇌물이 상상을 초월하죠. 중국 공산당의 부패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 18조원을 해먹었다잖아요. 국민주택 규모 아파트에 한화로 5만원권을 차곡차곡 채워도 8100개 묶음 이상이 어려워서 405억원 이상은 넣기 힘들다고 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인민폐 고액권을 채워넣은 아파트 단위로 부패가 측정되는 국가인 겁니다.
그렇게 부패가 심한데 빅 브라더 사회의 위험한 모습이 벌써 나오잖아요. 전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한 나라는 공산당이 다스리는 중국입니다. 어떻게 공산주의를 하겠다는 나라가 저럴 수 있나요.
모든 사람이 AI의 프로토콜(규약)에 대해 알고, 그 문제점을 토론할 수 있는 사회로 가야 합니다. AI의 작동 방식, 프로토콜을 계속 논의하지 않으면 빅 브라더 사회로 갈 수밖에 없어요. AI가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 (인간이) 외면하면 정말 골치 아프고 답이 없는 사회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중국처럼 세습적 불평등이 지배할지 몰라요. 요만한 권력 자본, 요만한 재산의 차이가 그야말로 하층 사람들은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사회를 만듭니다. 누구는 돈으로 아파트를 다 채우고도 남지만, 누구는 1500원짜리 훈툰(만두)도 못 먹는 사회가 되지요.”
― AI의 위험성을 미래학자나 법학자, 공학자가 말하기보다 소설가가 역동적으로 그리는 게 더 의미 있어 보입니다.
“보세요. 조지 오웰의 《1984년》이 말하는 빅 브라더 사회는 지금 시각에서 보면 순진하고 착하게 보입니다.”
― 소설 《2061년》은 조지 오웰의 《1984년》에 영감을 받은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그것과 다른, 지금의 《1984년》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계단문학동인’
이인화는 1966년 1월 5일 대구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경북대 국문과 교수인 류기룡(柳基龍·1935~2014)이다. 만화 〈우주소년 아톰〉 〈황금박쥐〉, 길창덕의 〈꺼벙이〉를 읽다가 선친의 서재에서 소설을 접하게 됐다. 이어령(李御寧) 선생이 《문학사상》 주간이던 시절의 잡지를 읽고 알 듯 말 듯한 소설의 세계, 인간 심연의 저수지를 엿보게 된다.
대구고 시절, 문학서클 ‘계단문학동인’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습작 시절을 보낸다. 동아리 방이 학교 3층에서 옥상으로 향한 계단 사이의 좁디좁은 공간에 위치하였기에 붙여진 명칭이다. 문인수·윤성근·이하석·송재학 시인이 있었고, 가까이로는 영화감독 이창동이 ‘계단’을 거쳐 간 문인들이다. 이태수·박해수·강현국 같은 대구의 이름난 ‘자유시 동인’들과 연배를 떠나 같이 어울렸다고 한다.
“우리는 서울에 가서 글쟁이로 출세하고 싶었다. 풍문만 무성한 지방 도시의 수선스러움을 떠나 진짜 작가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스스로 인생의 의미를 깊이 통찰하며 언어로 삶의 전체상을 부활시킬 힘을 지닌 작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 쓰신 작품들을 보면 ‘대구’라는 공간이 조금씩 언급됩니다. 작가에게 대구는 어떤 곳인가요.
“경북이 보수적이라면 대구는 좀 달랐어요. 대구는 자유주의적이고 보헤미안적인 도시로 기억합니다. 마치 남프랑스의 가톨릭 분위기가 있는 시골에서 자란 촌놈이 파리에 왔을 때 느끼는 해방감을 대구의 시인과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었어요. 확실히 대구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작품들을 만드는, 굉장히 의식이 열려 있는 도시입니다. 인터넷의 악플에서 고담시 운운하는 그런 대구 이미지와는 아주 달라요.
선친 서재에서 읽은 책들이 정말 충격이었어요.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연작을 읽었는데 소설 속 구강성교 묘사를 읽고 놀라서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낭독하면 여학생들이 꽥꽥 대고… 뜻도 모른 채 말이죠. 《문학사상》에 실린 〈희랍인 조르바〉 연재도 충격이었죠. 인생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욕망의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가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학년 때입니다. 그때 《문학사상》은 세계 최고의 문학 잡지가 아니었을까요? 그땐 저작권이 없던 시절이어서 전 세계에서 좋은 작품이라면 가차 없이 긁어다가 (《문학사상》에) 실었으니까.”
‘빳다’로 맞으며 매주 원고지 100매씩 글을 써
대구고 재학 중이던 ‘계단문학동인’ 시절, 원고지 100매를 매주 메워야 했다. 메우지 못하면 선배에게 ‘빳다’(몽둥이)로 맞아야 했다. 그렇게 1년을 버텨 5000매를 쓸 수 있었다.
“5000매를 쓰고 나면 어떤 글을 쓰려 해도 무섭지 않게 돼요. 처음 글을 쓸 때의 머뭇거림, 주저함이 사라집니다. 이후 각종 공모전에 시·소설을 투고해 50여 차례나 당선됐습니다.
지갑에는 늘 빳빳한 현찰이 20만~30만원이 있었죠. 국립대 교수시던 선친의 월급이 100만원이 안 됐을 겁니다. 운문보다 산문을 많이 쓴 것은 상금이 많아서였어요. 공부는 거의 안 하고 글만 썼어요. 매일 후배들한테 술 사주고….”
― 후배들을 거느리셨네요.
“그 재미도 있었죠. 골목대장 놀이처럼. 후배들 데리고 청마백일장, 목월백일장, 진해군함제 백일장에 참가하느라 돌아다녔죠. 선친에게 많이 맞았어요. 술 마시고 들어가 꼬장을 부렸으니. 불효를 많이 했어요.”
― 창작 욕망이 활활 타올랐나 봅니다.
“그 시절이니까 가능했다고 할까요? 지금처럼 학교 내신이 중요하다면 못 했을 겁니다. 그땐 대학입시에서 내신 반영비율이 10% 정도도 안 됐어요.”
이인화는 1984년 학력고사에서 280점대를 맞고 낙방하고 말았다.
― 그때도 서울대 국문과에 대입 원서를 냈나요.
“아뇨. 국문과에 낼 성적이 안 됐습니다. 그때 미달이어서 원서를 냈다면 결과적으로 합격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재수 시절, 공부가 재미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점수는 30점 가까이 올랐다. 문과 계열 전국 108등을 차지했다. 거의 2만등 가까이 수직 상승했다
“법대에도 합격할 점수였지만 국문과에 미련이 많이 남았어요.”
평론가에서 소설가로
장학생으로 국문과 85학번이 된 이인화는 서울 신림동 하숙촌에 섞여들었다. 그는 “나태와 정열이, 극단적인 이기주의(利己主義)와 극단적인 이타주의(利他主義)가 혼효(混淆)된 신림동 숲에서 동류(同類)가 없는 이상한 짐승”이 되어갔다. 학과 공부를 하는 학생이 아주 드물었기에 “매해 우등장학금을 받았고 월급처럼 학업장려금”도 받을 수 있었다.
이인화는 대학 4학년이던 해인 1988년에 계간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양귀자론〉을 써 등단했다.
“그땐 문학평론이 좋았어요. 인터넷이 되고, 모든 게 구글링 되는 시대가 아니었으니까요. 뭔가 좀 더 필터링 된 고급정보를 지닌 전문가들이 각 분야에 평론가라는 이름으로 있었고, 그들에게서 배울 게 있는 시절이었죠. 지금은 구글신(神)이 평론가들을 다 망가뜨려 놨어요. 이제 (평론가는) 권위가 없죠. 학부 시절 학생운동 대신 ‘예술운동’이라 불리던 창작집단에서 시나리오를 썼어요.”
대구의 한 공군기지에서 방위병 시절을 보냈다. 기지 안 정비공장에서 땀을 흘리고 나면 독서의 욕망이 불타올랐다. 한편으론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은 시인 이성복이 《논어》에 심취한 한 사람의 현자로 변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성복은 그에게 “한국에서 서구적인 근대성이 가진 허약한 지반을 보여주었고 동아시아적 가치의 힘을 일깨웠다”고 한다.
1991년 서울로 돌아온 이인화는 “옛날에 읽던 위르겐 하버마스나 모리스 블랑쇼의 책 대신 《논어》를 끼고 서당에 드나들며 한국문학의 근대성을 보는 눈”마저 바꾸었다. 서구적 근대성에 의지한 문학 비평의 미래에 대해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었다고 한다.
1992년 그는 첫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를 발표하며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때부터 슈테판 츠바이크의 표현을 빌려 “용광로에 석탄을 던져넣듯 인생을 책상에 던져넣어 밤과 낮을 거꾸로 살며 소설을 써내는 달음박질이 시작되었다”고 술회한다. 표절 혹은 혼성모방의 논란이 있었으나 1993년 두 번째 소설 《영원한 제국》을 발표하며 문단 가운데 안착할 수 있었다.
소설과 영화, 게임, 뮤지컬 등 장르를 넘나들며 ‘좋은 스토리란 무엇인가’, 나아가 ‘좋은 스토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란 주제에 천착했다. 그 결과물로 국내 최초의 스토리 창작 지원도구인 ‘스토리 헬퍼’를 개발했다. 4년 전 탄핵 광풍(狂風)이 몰아치기 전까지 그는 ‘이화여대 교수 류철균’ ‘작가 이인화’로 늘 각광(脚光) 받았다.
“세상 인심이란 뜬구름같이 느껴지죠”

― 큰일을 겪고, 세상 인심이 어떻다고 느꼈나요.
“말해 뭐하겠습니까.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세상 인심이란 뜬구름같이 느껴지죠. 그런데 인심이 야박하고 각박해서 그런 게 아니고 그분들도 저한테 전화하기가 민망한 거죠.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고, 원망할 것도 없어요. 적막하게 자기 일을 해야겠다고 느꼈어요.”
― 요즘 세상을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해요. 좌파 지식인 진중권씨가 우파 쪽에 메시지 메이커 역할을 하고 윤석열 검찰총장이 우파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아이러니한 분위기 말입니다.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모르겠어요.
“이게 아관파천 패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근현대 역사에서 반복되던 일입니다. 아관파천 직후에는 이완용이 친일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했습니다. 총리대신 김홍집과 탁지부대신 어윤중은 길거리에서 타살됐어요. 3년간 친일파를 열심히 청산하던 이완용이 친일파가 되지 않았습니까. ‘아, 반복되던 패턴이구나’. 맹목 속에서 사람들이 한쪽으로 확 쏠렸다가 바로 반대쪽으로 틀어지는….
친일파를 숙청하던 이완용과 친일파 이완용이 다른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 않아요. 문제는 이완용에게 권력을 부여했던 사람들이에요. 그들에게 본인이 직접 보고 들었으면서도 믿으려 하지 않는, 방법론적 맹목이 있었던 거예요. 자기 기만의 자동화 구조라고 할까요. 소설 《2061년》 안에 다 나옵니다.”
― 신(神)을 믿으시나요.
“믿습니다. (신이) 없다면 삶의 목적이 없지 않습니까. 모든 게 수단이 돼버리면 안 되지 않습니까. 교회에 나가지는 않습니다.”
― 왜 안 나가나요.
“함석헌 선생도 교회는 안 나가지만 목사셨죠.”
― 함석헌 선생의 영향을 받으신 거예요.
“어릴 때부터 함석헌 선생을 좋아했어요. 《씨알의 소리》를 정기구독하고 그랬습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 문학이란 무엇인가요. 왜 문학을 하나요.
“개인이 말이죠, 개인이 개인으로 빛났던 시절이 세계사에서 별로 없었습니다. 개인은 자기 가문이나 자기 나라와 민족, 자기가 속한 직책이나 지위로 존재했지, 개인이 개인으로 빛났던, 근대문학이 반짝였던 시기는 불과 200~300년 전입니다. 우리나라는 서구적 의미의 문학을 더 늦게 배웠죠.
개인이 개인으로 빛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문학을 통해 열립니다. 모든 것이 흔들리고 다 잃을 때 비로소 문학이 삶을 구원합니다. 그런 처지가 돼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아, 이래서 문학이 정말 좋은 것이구나’. 저는 평생 문학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처음으로 문학이 무엇이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문학 안에 주술적(呪術的)인 힘이 있더군요. ‘개인이라도 괜찮아’라고 다독이는…. 이래서 문학이 사람을 위로하는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됐어요.”
― ‘소설이 인간을 구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면 ‘그렇다’고 답하시겠죠.
“잘살고 평온무사한 사람을 문학이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굉장히 자괴(自愧)스럽고 부끄럽고 흔들리고 휘청거리고… 이런 사람은 구원할 수 있어요.”
― 소설 《2061년》을 탈고한 지금도 매일 씁니까.
“네, 일요일에도 씁니다. 365일, 최소 365쪽을 써야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야기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서울역 앞에 가면 돈을 주고서라도 듣고 싶은 이야기꾼들이 있거든요. 그런 분들이 작가가 아닌 이유는 글을 안 쓰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매일 1쪽씩은 써야 합니다.
물론 더 쓰고 덜 쓸 때도 있었지만 소설 《2061년》을 쓰기 위해 지난 4년 동안 매일 A4 용지로 1장씩을 써서 1511장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그러면 그때부터 ‘아, 이제 줄여서 소설로 내야겠다’ ‘첫 페이지는 이렇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가 필립 로스는 ‘이제 소설 첫 페이지를 써도 되겠다는 순간이 올 때까지 계속 쓴다’고 했어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 ‘이인화’와 ‘류철균’, 가끔 두 이름이 헷갈립니까.
“헷갈립니다. (웃음) 이인화라는 이름으로 계속 쓰고 싶습니다. 이 이름으로 소설을 썼으니 끝까지 써야지요.”
나의 조촐한 희망 노래
― 어느 인터뷰를 보니 ‘(소설가로서) 교과서에 실릴 단편, 다른 하나는 생활인들이 많이 읽을 수 있는 장편 하나를 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단편을 꼭 쓰고 싶고…, 〈초원을 걷는 남자〉는 개인적으로 흡족한 단편이고요. 장편을 4년 써보니까… 돈이 되든 안 되든, 읽히든 안 읽히든 소설은 계속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만이 제가 정직하게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직장생활을 해보니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더군요. 그게 너무 상처가 되고…. 어쨌든 혼자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은 했습니다.”
소설 《2061년》의 ‘작가의 말’에 실린 이인화의 고백이 기자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지진이 나고 폭풍우가 휘몰아칠 때가 사실은 가장 행복한 때라고 믿고 싶다. 그럴 때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뭔가를 깨달으니까. 우리는 위기 때문에 더 강해질 것이고 더 멋진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나의 조촐한 희망 노래를 출판한다. 나는 쓰러졌다. 하지만 다시 일하고 있다. 앞으로도 일할 생각이다. 나는 나의 의지가 현실에 조금이나마 반영된다는 확신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나는 그런 것을 통해서만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사람이다. 한글이 일깨워 준 이 희망에 이 책을 헌정한다. 이인화〉⊙
‘살아라. 끝까지 살아라. 살아서 많은 것들을 살려라.’
기자에게,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이인화(李人化·본명 류철균·55·전 이화여대 교수) 자신에게 하는 아픈 당부처럼 느껴졌다. 염상섭(廉想涉·1897~1963)의 소설 《만세전》(1924년) 주인공 이름이 ‘이인화’다. 《만세전》을 읽은 사람이라면 소설 속 이인화가 “공동묘지다! 구더기가 우글우글하는 공동묘지다!”라고 외치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어쩌면 이인화가 환생한다면 이 시대를 향해 “공동묘지!”라고 외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녀사냥과 탄핵, 조국 사태를 바라봐야 했던 사람들이 느낀 야바위와 불의, 야수(野獸)의 시간들이 바로 ‘묘지’가 아니었을까.
지난 4년간 침묵했던 이인화는 최근 소설 《2061년》을 완성했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을 연상케 하는 이 장편을 쓰며 비정성시(非情城市)의 시간을 견뎠으리라. 그가 건네준, 출간되기 전 소설 원고를 읽으며 지난 연말을 보냈다. 그리고 지난 1월 6일 서울 양천구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다시 만났다.
“글쓰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었어요. 세상의 외톨이가 되었죠. 따로 할 일이 없었고 누구도 전화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난 4년간 그렇게 집중할 수 있었어요. 문단 데뷔 이래 이만큼 소설에 헌신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어요.”
허름한 배낭을 메고 산을 다녔다. 노인들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러 경북 안동을 찾았다. 그리고 다시 책상에 앉았다. A4 용지로 하루 1장 아니면 2장을 꼭 썼다. 2020년 5월 19일 1511장의 초고를 완성했다. 초고를 고치고 줄여나가기 시작해 80% 이상을 들어냈다. 그렇게 해서 205장이 완성됐다.
“문학이 없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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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ㆍ로봇공학 전문가들은 “늦어도 2035년이면 로봇들이 전쟁터에서 인간을 보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을 대신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사진은 인공지능 전쟁시스템과 로봇이 세계를 지배하는 암울한 미래를 그린 영화 〈터미네이터〉. |
“버린 걸 다시 쓰면 안 됩니다. 좋은 소설은 이 정도 줄여야 합니다. 모든 작가들이 그래요. 10분의 1만 남기죠.”
그러더니 이런 말을 보탰다.
“이렇게 끝마치게 돼 스스로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학교 선생 하느라, 제자들을 교수로 만드는 재미에 빠져 소설에 소홀했거든요. 한편으론 굉장히 답답하고 우울하며… 수면유도제를 먹지 않으면 잠이 안 왔던 시간이었지만 소설을 다시 쓰며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 내적 치유의 시간이었군요, 글쓰기가.
“이런 처지에 문학이 없었다면 스스로 붕괴되지 않았을까요. ‘국립금연학교’에 있어 보면 매일 밤마다 싸움이 납니다. 지금 코로나19로 구치소가 저렇다는 게 너무 이해가 가요. 안 그래도 싸우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로봇이 나와서 사람을 죽일 필요가 없어요. 심리적으로 너무 취약해 자기 파괴적 코드를 조금이라도 건들면 서로 파괴하든지 스스로 무너지거든요. 저는 다행히 글을 쓸 수 있어 붕괴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어요.”
소설 《2061년》의 첫 문장은 이랬다.
〈올해는 갓김치를 담그려 했다. 갓의 톡 쏘는 알싸한 맛이 생각을 잃어버린 시간으로 되돌려줄 것이다. 재료 몇 가지를 생략하고 배즙을 스프라이트로 대신하면 고춧가루와 마늘, 소금은 대충 구할 수 있다.〉
주인공 심재익은 뉴욕주 브라이슨 연방 교도소에 8년째 수감 중이다. 가로 1.4m, 세로 2.6m의 독방으로 오기 전 의대와 인문대에서 복수 학위를 취득한 후 초공간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의 관심사는 1896년이다. 23년간 1896년의 조선, 그중에서도 제물포만 연구했다.
1896년, 그해에 고종의 아관파천(俄館播遷)이 일어났다. 서재필·유길준·윤치호·주시경 등이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결성한 해다. 최초의 순한글 신문 《독립신문》 발행일(4월 7일)이 지금의 ‘신문의 날’이다. 한글이 공식적으로 세상에 등장한 첫해다.
한글이 지배하는 미래
소설의 주인공 심재익은 시간여행자다. ‘실라리엔 관통선’이라 불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42회나 과거로 여행했다. ‘검은 사막’이라고 불리는 비틀린 시공의 허수 공간을 지나 과거로 들어간다. 과거 누군가의 몸을 빌려 역사 현장을 목격한 뒤 다시 의식을 수습해 현재로 돌아오는 식이다. 심재익은 ‘크로노토프(시공간) 보호법’ 위반으로 12년 형을 받고 수감 중이다. 시간여행자는 역사에 개입하면 안 되는데 친일파 이완용을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소설 속 2061년은 흥미롭다. 공공건물에 로마자 사용이 금지된다는 설정이 인상적이다. 인공지능(AI)의 시대가 되면 다양한 발성기관을 가진 기계들의 생각을 로마자가 모두 담기에 역부족이다. 현란하리만큼 다양한 기계 흡착음, 당김음, 기식음, 떨림음, 공명음 앞에 로마자는 무용지물인 것이다. 세종대왕으로 알려진 이도(李祹·1418~1450)가 1443년에 발명한 한글이 새롭게 주목받는다.
이른바 ‘이도 문자’는 초성·중성·종성을 결합하여 398억5677만2340종의 분절음을 표기할 수 있다. 물론 이도 문자는 지금의 한글이 아니라 순경음, 반치음 등이 남아 있던 15세기 문자다.
이인화에게 ‘분절음 398억 종은 가공의 숫자냐’고 물었더니 동국대 컴퓨터공학과 변정용 교수가 쓴 논문 〈과학적인 천지자연의 문자 훈민정음〉을 기자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초성은 아설순치후, 반설, 반치의 7자(ㄱㄴㅁㅅㅇㄹㅿ)에 가획하여 17음으로 정의합니다. 모음인 중성은 11자(ㆍ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 끝소리 받침인 종성은 8자(ㄱㄴㄷㄹㅁㅂㅅㅇ)죠. 훈민정음은 다양한 소리를 표기하기 위해 초·중·종성을 확장하는 규정을 두고 소리마다 단위를 모아 쓰는 법을 규정했는데 이를 연서법, 병서법, 부서법, 성음법이라고 합니다.
3자 합용병서로 계산할 때 초성은 17×17×17 하면 5219자입니다. 중성은 11×11×11 하면 1463자죠. 종성은 초성에다 한 자를 더해 17×17×17+1 해서 5220자입니다. 다시 5219×1463×5220 하면 총 조합수 398억여 개가 나옵니다.
소설에 ‘이도의 무지개’가 등장하는데 일종의 전 지구적 인공지능 방역 시스템입니다. ‘이도의 무지개’는 인간, 동물, 식물, 기계, 토양, 바다, 공기의 7개 영역에서 센서로 인간의 가청주파수 범위를 넘어서는 모든 소리를 감청합니다. 모든 소리를 한글(이도 문자)로 표기해 바이러스의 변화와 전파를 파악하고 차단하죠.”
1896년과 한글
소설 《2061년》에는 최악의 코로나바이러스인 ‘아바돈’이 등장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역병 천사 이름이 아바돈이다. 전염병 바이러스가 2013년 메르스, 2020년 코로나19 같은 추세로 진화한 결과물이다. 치사율 55~95%, 예상 감염자 49억~65억명에 달하는 최악의 바이러스다.
인류는 아바돈의 치명적 옛것(fatal old one)인 1896년 조선에 나타난 에이치원 데모딕을 찾기 위해 시간여행자를 보냈는데, 세 번 모두 실패하고 만다. 결국 수감 중인 심재익에게 임무가 주어진다. 다음은 소설 《2061년》 속 대화다.
〈재익은 자기도 모르게 두 팔로 몸을 감쌌다.
“1896년에 가서 그걸 가져오라고요? 바이러스 염기서열을 재구성하고 백신을 만들 수 있도록? 그런 임무를 나 같은 죄수에게 맡기는 겁니까?”
“이미 현역 탐사자를 보냈습니다. 세 번이나….”〉
― 왜 소설 속 공간이 하필 1896년인가요.
“1896년은 기억할 만한 일이 일어난 해죠. 한글이 《독립신문》의 공용문자가 되어 처음 반포되거든요. 그전까지 한글은 아녀자들이 편지 쓸 때 쓰는 내간체 문자이자 심심풀이 방각본 싸구려 소설의 언어였어요. 공식 여론을 담는 퍼블릭 오피니언 문자가 아니었습니다.
선교사 헐버트가 ‘아리랑’을 채보해 영문잡지 《더 코리안 리포지터리(the Korean Repository)》에 발표한 것도 그해였지요. ‘아리랑’은 한국인을 상징하는 노래입니다. 이처럼 한글이 최초로 사회에 나온, 사적인 통로로만 왔다 갔다 하던 한글이 최초로 공식 등장한 해가 1896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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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 창간호(왼쪽)와 2014년 간송문화전에 전시된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 |
과거로 돌아가 AI 언어인 ‘이도 문자’를 없애면 미래의 바이러스 창궐도, 핵전쟁도, 인류의 비극도 없을지 모른다. 심재익은 1896년으로 돌아가 훈민정음 해례본을 태워버리라는 임무를 받는다. 그는 수감 중 〈훈민정음 해례본의 1896년 반출 경위와 세계어 운동〉이라는 논문을 쓰기도 했다.
소설 속 2061년의 정치 지형은 극단적으로 분열돼 있다. 세종 이도의 사상을 각기 다르게 받아들이는 미국의 이도 우파, AI로 의심받는 국제 방역연합의 이도 좌파, 인간 우월주의 운동의 반(反)이도파가 대립한다.
세 세력은 아바돈의 원형과 훈민정음 해례본이 동시에 나타났던 1896년 2월 11일의 제물포로 시간여행 탐사자들을 보내 격돌한다.
― 심재익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으러 1896년의 제물포로 떠납니다. 한글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해입니다. 그러나 해례본이 실제 발견된 해는 1940년입니다.
세종 28년인 1446년 간행된 〈해례본〉이 1940년 처음 발견됐다. 오랜 시간 자취를 감추었다가 안동에서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이 발견으로 한글 창제를 둘러싼 논란은 모두 사라졌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목간 인쇄본이거든요. 세종 시대 목간 인쇄본은 예외 없이 100부 아니면 200부씩 찍었습니다. 그 시절 닥종이 전지(全紙)로 만들 수 있는 분량이 100부 내지 200부인데 어제(御製) 인쇄본이니 200부를 찍었겠죠. 안동과 상주에서 발견된 해례본을 제외하고 나머지 198본은 어디 있습니까.”
사라진 훈민정음 해례본
― 찾으면 어딘가에서 나오지 않을까요.
“글쎄요, 다 태웠어요. 싹 태웠습니다. 당시 신숙주는 파스파 문자의 전문가였어요. 세종의 아들, 세조라고 알려진 이유(李瑈·1417~1468)는 산스크리트어 전문가였고요. 이 사람들이 당연히 훈민정음 책을 안 받았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해서 없죠? 명(明)나라가 들어서고 홍무제 주원장 시대부터 ‘호원(胡元) 잔재 청산’이 추진되었습니다. 오랑캐 몽골의 지배를 받던 흔적을 없애자 해서 파스파 문자 문헌 등 한자 이외의 고유 문자 문헌을 깡그리 태웠던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정치적으로 기민하고 영민한 이가 없어요. ‘이게 새 시대 분위기’라면서 싹 다 태웠던 겁니다.
훈민정음을 갖고 있으면 너무 위험하니까, 고유 문자를 창제(創製)한다는 것은 몽골 같은 오랑캐 민족이 하던 행동이니까, 싹 태우고 이런 말을 지어냈어요. ‘이건 통시글이다’ ‘세종이 큰일을 보시다가 창호지 간(間)살 무늬를 보고 한글을 지었다’고요.
굉장히 정치적으로 온당하고 무리가 없는 설명이거든요. ‘재위 만년에 재미로 만들었다’고 해야 명나라와 탈이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무시무시하고 치밀한 원리가 담긴 해례본이 중국에 알려지면 진짜 큰 문제가 돼 싹 다 태웠던 거죠. 그런데 안동 사람들은 안 태운 거예요. 안 태우고 가졌던 겁니다.”
― 해례본을 숨겨온 안동(과 상주)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한두 부도 아니고 어제 문집이 그렇게 깡그리 없어진 경우가 없습니다. 어제 책은 책 가격부터 다릅니다. 더구나 임금이 만든 책인데 어떻게 사라질 수 있습니까. 진짜 불가사의죠.
이런 생각을 해봐요. 사랑하는 남자가 죽었어요. 너무 가슴이 아프니까 그가 준 다이아몬드 반지를 한강에 던지는 마음이랄까. 너무 귀한 줄은 아는데 너무 가슴 아파 갖고 있을 수가 없는…. 그런 심정으로 책들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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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14일 오후 서울 조선일보사 씨스퀘어에서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가 ‘차세대 디지털 세계’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 2061년이면 40년 남았네요. 40년 후 한국은 비관적이네요.
“아이구… 그렇게 안 되기를 바라면서 쓴 것이죠. 우리가 ‘범용(汎用) 인공지능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논쟁을 2019년까지 했잖아요. 가능하다면 2040년쯤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글쎄 2020년 6월 11일에 범용 인공지능 지피티3(GPT-3)가 나왔지 않습니까.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AI가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시기를 2045년으로 봤어요. 모든 게 낙관적이고 보수적인 전망이지요. 하지만 미래 어느 시점이 되면 분명히 AI가 정치 권력까지를, 사람의 권리에 준하는 영역까지 올라갈 것으로 생각해요. 소설 《2061년》처럼 돼선 안 되고, 우리가 AI를 제대로 다루고 AI와 교감할 수 있는 국가가 돼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이야기가 잠시 소설에서 남북문제로 흘러갔다.
“(미래 한국은) 남북 분단을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요. 분단은 우리의 치명적인 약점인데. 북한이 잘살 때는 김일성이 감상주의로 나갔죠.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고 남한에 손을 내밀었고, 남한이 잘살 때는 같은 이유로 교류·협력을 말했어요. 감상주의는 누구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민족 내부에 존재하는 분리의 힘, 내부의 분리주의적 폭발력을 충분히 알고 AI 개발에 접근하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남북이 AI 세상을 함께 준비하자는 이야기군요.
“남한은 북한 사람이 갖는 피해의식과 독립의식을 과소평가해요. 북한 사람들은 통합돼 좋았던 때가 없었거든요. 늘 차별받고 과거(科擧) 등용도 못 하며 ‘38 따라지’ ‘북청 물장수’라 불렀잖아요. 뭐가 좋다고 통일을 하겠습니까. 북한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현실적으로 분단 극복의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단순히 코로나19의 문제가 아니라 동물로부터 인간으로 넘어오는 인수(人獸) 공통 감염병의 고속도로가 뚫렸잖아요. 열대우림이 침해되고 지구온난화가 되면서 주기적으로 팬데믹이 올 것이고, 주기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칠 것인데 분열의 구조가 없는 나라들은 살아남겠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는 취약점이 다 터져 나오지 않을까요?
그때를 남북이 슬기롭게 넘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소설을 써봤습니다. 제가 남 걱정할 때가 아니지만 이럴 때일수록 큰 걱정을 해야지 저도 행복해질 것 같아서….”
‘나의 문자학적 사치에 대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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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화가 미국 시애틀에 머무르며 소설 《지옥설계도》를 쓸 무렵이다. 고교 문학서클 ‘계단문학동인’으로 함께 활동한 김용식과 함께. |
― 소설 ‘《2061년》은 나의 문자학적 사치에 대한 탐구’라는 말씀이 인상적이네요. ‘문자학적 사치’가 바로 한글을 말하는 것이지요.
“‘문자적 사치’ ‘문자학적 사치’라는 말은 미국 컬럼비아대학 게리 레드야드(Gari Keith Ledyard) 교수가 1966년에 쓴 《코리안 랭귀지 리폼 1446년(The Korean Language Reform of 1446)》에 처음 나왔어요.
언어학자가 보기에 한글은 한국과 안 어울리는 거예요. 그 시절(1966년) 제가 살던 대구 시내에 소 키우던 집이 있었으니까요. 세계 최고의 문자를, 이런 지지리도 못사는 민족이 쓴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나 봐요. 하지만 불과 50년 만에 문자학적 사치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습니다.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이 맞나 봅니다. 문자가 문자를 쓰는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나 봅니다. 50년 만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바뀌었으니까요.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사람들의 현실 자체가 언어 습관의 기반 위에 올라가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해요. ‘한글이 한참 전부터 있었는데 한국은 왜 이 모양, 이 꼴이 됐냐’고요. 한글을 마치 옛날 사람들이 다 쓰고 있었다고 착각하고 계시더라고요. 구한말 개화기 때까지 한글 문맹률이 80%가 넘었습니다. 한글을 아는 사람이 20%가 안 됐어요.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쉽고 30분이면 배울 수 있는데 아무도 안 배운 거예요. 1945년 해방 이후 정부가 적극적으로 기초교육을 하면서 한글이 보급되기 시작했어요. 한글이 온 국민에게 보급되면서 진짜 ‘사피어워프 가설’이 작동한 것이죠. 문자를 쓰는 사람의 운명이 변한 겁니다. ‘문자학적 사치’라는 말이 인상 깊어서 소설 소재로 쓰게 됐어요.”
한글과 여진 정벌
이인화는 대학 시절 이미 한글 창제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국문과 2학년 때인 1986년 이기문 선생님이 쓰신 《국어사개설》을 처음 접했어요. 책 자체도 명저고, 평생에 걸친 의문이 들었던 게 ‘세종이 저걸(한글을) 왜 만들었나’ 하는 거예요. 이해가 안 됐습니다. 당시 다른 나라에선 문자를 만들었다가도 없앴거든요. 타타퉁가가 위구르 문자를 만들었다가 없애고, 파스파가 파스파 문자를 만들었다가 없애고, 티베트·돌궐·여진도 고유문자를 만들었다가 없앴죠.
그런 시절에 난데없이 고유문자를 만들겠다고, 명나라가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 말이죠, 그런 의문이 30년간 들었는데, 이제 사방이 적막해져서 그 의문을 소설로 풀게 됐어요.”
― 의문을, 해답을 찾았나요.
“어디까지나 저의 설(說)입니다. 아마 6진(鎭) 개척의 후유증으로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지 않았을까요.”
세종은 여진족 침략이 계속되자 평안도와 황해도의 군사를 동원해 압록강 유역의 세력을 평정시켰다. 김종서(金宗瑞·383~1453)는 세종 때 6진을 개척한 주인공이다. 4군(郡) 6진을 개척할 당시 삼남 이남 지방의 백성들을 강제 이주하기도 했다.
“갑자기 여진족이 우리 민족 안으로 들어오게 됐는데 여진족이 상상을 초월하는 민족이었거든요. 건주여진-해서여진-동해여진-야인여진…, 여진족의 문명화 정도가 순서대로입니다. 야인여진으로 오면 단어가 없어요. 거의 분절음, 억양 고저로 대화합니다. 인칭대명사는 손짓으로 하고요. 이런 이질적인 민족을 하나의 민족으로 재편성하면서 문자가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언어가 미발달한, 글자 그대로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서 말이죠.”
인간과 기계의 共生
― 세상의 다양한 소리를 기록할 수 있는 한글이 AI 언어가 된다는 설정이 흥미롭습니다. 소설에 이런 문장이 있더군요. “바람 소리, 학이 퍼덕이는 소리, 닭이 우는 소리, 개가 짖는 소리 등 이도 문자는 만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요.
“2061년 미래는 AI가 인간을 초월한다고 가정할 때, 기계(AI)들은 소리를 내어 느낌을 표현하고 소리를 들어 느낌을 공유할 수 있어요. 인간형 기계만이 아니라 모든 기계가 의식을 원할 것이며 독자적인 언어를 요구할 것입니다. 이때 이도 문자만이 기계의 언어가 될 수 있다고 가정했어요.
사실 한글, 이도 문자만이 기계와 똑같이 소리를 계산하고 추론할 수 있어요. 이도 문자만이 인간과 기계의 공생(共生)이라는 인류의 미래에 바쳐진 ‘대가람(大伽藍)’이죠.”
― 다종 다양한 AI 말소리를 표기해 AI에게 법적 권리를 한글로 보장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할까요? AI끼리 서로 소통하면서 그들끼리 대화나 교감도 합니까. 향후 AI에게 기본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을까요.
“지금도 AI끼리는 기계어로 대화할 수가 있죠. 디지털 신호로요. 이건 지능이거든요. 지능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발달하려면 의식이 발달해야 합니다. 지능과 의식은 달라요. 지능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면 의식은 어떤 문제에 대해 고통, 기쁨, 분노를 느낄 줄 아는 능력이에요. 계산하고 추론하는 능력이 아니라 느끼고 공감하고 공유하고 반응하고…, 이게 의식인데, 의식이 발달하려면 반드시 말을 해야 하거든요.
미개한 종족은 단 두 개의 분절음으로도 수백 개의 문장을 만들어내죠. 그러나 한계가 있죠. 의식이 복잡화될수록 문장이 정교화되고 분절음이 정교해져야 합니다. 2061년이 되면 지금의 인간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의식과 생각, 감정들을 표현하게 될 것인데요, 그때는 이도 문자, 즉 한글만이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도 문자는 문자가 아니에요. 문자 이전의 문자, 문자라는 개념을 초극하는 문자입니다. 13세기 이슬람의 알 자자리가 자동 시계를 발명했잖아요. ‘물’이라는 아날로그 신호를 ‘시간’이라는 디지털 신호로 바꾸었는데 같은 원리로 ‘소리’라는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꿔보자고 만든 게….”
― ‘한글’이다?
“네, 원래 한글은 인공어, 인공지능 언어예요. AI가 제일 좋아하는 데이터입니다. 참 안타까운 게, 우리가 얼마나 좋은 데이터를 가졌는지 모르니까요.
우리가 AI에 대해 자각하고, 잘 관리하는 나라가 되면 큰 기회를 얻을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소설 《2061년》 같은 빅 브라더 사태가 올지 모릅니다. AI가 우리를 뭉개고 갈 수 있죠.”
미래의 전쟁
소설 《2061년》을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드론과 무인 항공기, 군사 로봇이 수행하는 21세기 전쟁은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별하는 윤리 원칙을 지켜왔다. 전쟁에 인공지능이 개입하면서 인간의 가학성, 잔인함이 제거되고 법적 통제가 이루어졌다. 이제 적군이 아니라 용의자를 찾는, 전투가 아니라 영토 외 경찰활동을 실시하는 인도적 전쟁이었다.〉
― 미래에 AI의 법적 통제는 어떻게 가시화될까요.
“혹시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n the sky)〉(2016)라는 영화 보셨어요? 헬렌 미렌이라는 명배우가 영국군 대령으로 등장하는 영화인데, 용의자인 영국인 여성이 이슬람 극단주의자인 남편에게 포섭되어 테러를 저지르는 테러리스트로 나옵니다. 영국군이 이 여자를 6년 동안 추적해 케냐 나이로비에서 포착, 생포하려다가 여의치 않아 헬파이어 미사일로 죽이려 해요. 그런데 그녀가 있는 집 담장 밖에서 한 소녀가 빵을 팔고 있어요. 무고한 살상이 우려되니 미사일을 못 쏩니다.
그때부터 이야기가 극적으로 흘러가는데, 누구도 명령을 못 내려요. 과거 전쟁은 간단히 명령으로 진행됐지만, 지금은 영상이 모두 녹화·녹음되는 시대입니다. 영화 속 법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영국 총리도 결정을 미루면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거든요. 결국 아슬아슬하게 테러리스트가 죽긴 하는데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드론과 군사로봇, 무인항공기가 지배하는 미래엔 AI가 전쟁을 프로토콜(protocol·규약)대로 관리해야지 사람이 관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 하지만 AI도 결국엔 사람이 코딩을 하잖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하늘(인공위성)에서 내려다본다고 가정해보세요. 문제는 법적 명료성이 어떤지입니다. 영화를 보면 ‘나에게 권한이 있냐 없냐’를 계속 묻고 답하는 과정이 나옵니다. ‘법적으로 맞냐 안 맞냐’ ‘해도 되냐 안 되냐’를 계속 따져야 하는, 모든 게 기록되는 시대라는 것이죠. 그런 시대엔 AI가 전쟁을 통제하게 됩니다.”
‘딥페이크’
그는 서재에서 뉴욕 브루클린대학 법대 교수인 프랭크 파스칼이 쓴 《뉴 로스 오브 로보티스(New Laws of Robotis)》라는 책을 꺼내 기자에게 내밀었다.
“작년 10월 27일 나온 책인데, 4가지 주요 주제(인공지능의 인간자질 위조 금지법, 인공지능의 전문직업 완전 대체 금지법, 인공지능의 전쟁 지휘 금지법, 인공지능 소유권의 인간 귀속법) 중 하나입니다. 사람이 결정하기 힘들다고, AI에게 프로토콜대로 맡기면 안 되는 내용을 다룹니다. 오바마 정부 시절, 하원 인공지능 관련 법안을 자문했던 학자인데 AI가 너무 빨리 발전하니까 관련 법안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AI가 인간자질을 위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마치 콜센터 AI가 인간 직원인 것처럼 행동하게 해서는 안 되는), ‘AI 전쟁관리 금지법’ ‘AI가 딥페이크(deep fake)로 의사·변호사·판사·검사 일을 대행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등을 제한하고 있죠.”
딥페이크는 ‘딥러닝(deep learning)+가짜(fake)’의 합성어로 딥러닝을 활용해 원본 이미지나 영상 속의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합성하거나 영상과 오디오를 합성하는 기술을 말한다.
“우스워 보이지만 지금 ‘지피티3(GPT-3) 와이즈 비잉’(wise being·현명한 존재)을 구글 검색어에 넣으면 AI와 인간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AI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할 수 없어요. ‘코로나19로 돈을 뿌렸는데 지역경제가 활성화 안 되는데 어떻게 합니까’라고 물으면 와이즈 비잉이 답하는데, 와~ 마치 시장님처럼 말해요.
‘지금 효과가 안 나오는 게 당연한데, 이런 사태를 사람이 겪어 봤겠어요?’
‘코로나19를 겪어서 겁이 나 일단 사람들이 저축을 할 거예요. 필수적인 것을 마트에 가서 사게 되고, 그다음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다음에는 저런 일이 일어나고… 단기적 행동의 관점에서는 부정적이지만 장기적 인간 행동의 관점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문답이 이뤄집니다.”
AI 시대에 필요한 법적 권리
― 지피티3는 사람이 코딩을 안 해도 된다던데요? 코딩이 필요 없는 인공지능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요.
“2020년 6월에 개발된 지피티3는 자동 크롤링(인터넷의 자동 정보수집 기술)으로 AI가 1750억 개의 학습 매개변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AI가 구글에서 알아서 긁는 거예요. 정말 무서운 세상이 됐죠.
이전까지 우리(인간)가 ‘말뭉치’라는 것을 직접 만들었거든요. ‘나는 학교에 간다’고 할 때 ‘나는’은 주어, ‘간다’는 동사, ‘~에’는 처격 조사…. 이런 걸 엑셀 파일 옆에 태그를 다 붙였어요. 그걸 AI에 넣으면 연산을 해서 답을 내놓는데, 지피티3는 구글에서 자기가 긁어요. 자기가 데이터를 크롤링해서 학습하는 거예요. 사람이 필요 없어요. 물론 그 과정에 500~600대의 슈퍼컴퓨터를 1년 동안 돌렸다고 하더라고요.”
― 지피티3에 저장된 ‘말뭉치’도 모두 사람이 만든 것인데 따지고 보면 인간을 모방한 것이 아닌가요.
“그렇죠. 하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사람과 지피티3 창작이 다르지 않아요. 사람도 여러 사람의 글을 읽고, 말을 듣고, 뉴스를 보고, 체험도 하며 이때 나오는 생각을 자기 문맥에서 재편집하면 창작품이 되고 저작물이 되거든요. 그 결과물에 저작권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지피티3에게 저작권을 안 주는 이유는, 과정이 (사람과) 똑같은데도 기계이기 때문이죠. 기계는 아직 법적 권리가 없지만, 나중엔 된다는 게 소설 《2061년》입니다. 이제 섹스 인형과 결혼하는 시대입니다. AI가 인간의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알아주는데 결혼하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AI와 결혼하면 어떻게 될까요? 배우자인데 법적 권리를 안 줘요? 제한된 시민권이라도 줘야 해요. AI가 나 대신 일해서 돈도 벌어주는데 당연히 저작권을 줘야죠. 이렇게 사회가 돌아가게 되는 게 2061년입니다.”
이인화는 “미래의 데이터 저작권은 AI를 인간과 똑같은 상속과 계약의 주체로, 소유와 인격의 환원 불가능한 주체로 만들어주는 강력한 법적 근거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래에 서민들한테 남는 건 데이터 저작권밖에 없을 겁니다. 마치 조선시대 양반처럼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하인처럼 부려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1980년대 IBM과 애플이 처음 컴퓨터를 양산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영세 업체가 납품하는 OS(운영체제)라는 게 아주 하찮아 보였어요. 그러나 지금은 역전되었어요. 결국엔 데이터 저작권이 가장 핵심이 될 겁니다.
지적재산권 시장이 1985년부터 2015년까지 해마다 평균 105%씩 커져왔어요. 영화·게임을 팔던 시장이 105%씩 증가했는데, 2061년이 되면 139조 달러가 됩니다. 거기에 7%만 한글 데이터로 저작권료를 받아도 전 국민이 한 달에 162만원씩 받을 수 있어요.”
― 한글이 세계의 문자가 되어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요.
“그렇습니다. AI가 사람의 지능을 넘어서면 로마자 데이터를 쓸 수 없어요. 섬세한 지능과 의식을 표현하기에 너무 열등한 문자인데 어떻게 쓸 수 있나요.”
소설 《2061년》과 조지 오웰의 《19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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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이인화. 〈우주소년 아톰〉 〈황금박쥐〉, 길창덕의 〈꺼벙이〉를 읽다가 선친의 서재에서 소설을 접하게 됐다. |
“정말 중요한 문제예요. 다니엘 핑크라는 미래학자는 ‘3A 시대’가 21세기에 도래한다고 긍정적으로 봤어요. 아시아(Asia)의 시대, 풍부함(Abundance)의 시대, 자동화(Automation)의 시대로요.
저는 조금 바꿔서 ‘21세기에 가장 위협인 3A’로 아시아, 자동화, 고령화(Aging) 시대를 꼽습니다. 왜 아시아가 위협이냐. 15억명을 일당독재로 다스리는 나라가 최고의 AI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지금도 양자 컴퓨팅은 중국이 최고 기술입니다. 진짜 큰 위협이죠.
저우메이썬(周梅森)의 소설 《인민의 이름으로》 보셨나요? 읽어보세요. 정말 재미있어요. ‘최고인민감찰원 반부패 총국’을 배경으로 중국의 정치 세계를 그리는데, 정경유착과 뇌물이 상상을 초월하죠. 중국 공산당의 부패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 18조원을 해먹었다잖아요. 국민주택 규모 아파트에 한화로 5만원권을 차곡차곡 채워도 8100개 묶음 이상이 어려워서 405억원 이상은 넣기 힘들다고 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인민폐 고액권을 채워넣은 아파트 단위로 부패가 측정되는 국가인 겁니다.
그렇게 부패가 심한데 빅 브라더 사회의 위험한 모습이 벌써 나오잖아요. 전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한 나라는 공산당이 다스리는 중국입니다. 어떻게 공산주의를 하겠다는 나라가 저럴 수 있나요.
모든 사람이 AI의 프로토콜(규약)에 대해 알고, 그 문제점을 토론할 수 있는 사회로 가야 합니다. AI의 작동 방식, 프로토콜을 계속 논의하지 않으면 빅 브라더 사회로 갈 수밖에 없어요. AI가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 (인간이) 외면하면 정말 골치 아프고 답이 없는 사회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중국처럼 세습적 불평등이 지배할지 몰라요. 요만한 권력 자본, 요만한 재산의 차이가 그야말로 하층 사람들은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사회를 만듭니다. 누구는 돈으로 아파트를 다 채우고도 남지만, 누구는 1500원짜리 훈툰(만두)도 못 먹는 사회가 되지요.”
― AI의 위험성을 미래학자나 법학자, 공학자가 말하기보다 소설가가 역동적으로 그리는 게 더 의미 있어 보입니다.
“보세요. 조지 오웰의 《1984년》이 말하는 빅 브라더 사회는 지금 시각에서 보면 순진하고 착하게 보입니다.”
― 소설 《2061년》은 조지 오웰의 《1984년》에 영감을 받은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그것과 다른, 지금의 《1984년》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계단문학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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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이자 문학 스승인 경북대 국문과 류기룡 교수와 함께. |
대구고 시절, 문학서클 ‘계단문학동인’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습작 시절을 보낸다. 동아리 방이 학교 3층에서 옥상으로 향한 계단 사이의 좁디좁은 공간에 위치하였기에 붙여진 명칭이다. 문인수·윤성근·이하석·송재학 시인이 있었고, 가까이로는 영화감독 이창동이 ‘계단’을 거쳐 간 문인들이다. 이태수·박해수·강현국 같은 대구의 이름난 ‘자유시 동인’들과 연배를 떠나 같이 어울렸다고 한다.
“우리는 서울에 가서 글쟁이로 출세하고 싶었다. 풍문만 무성한 지방 도시의 수선스러움을 떠나 진짜 작가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스스로 인생의 의미를 깊이 통찰하며 언어로 삶의 전체상을 부활시킬 힘을 지닌 작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 쓰신 작품들을 보면 ‘대구’라는 공간이 조금씩 언급됩니다. 작가에게 대구는 어떤 곳인가요.
“경북이 보수적이라면 대구는 좀 달랐어요. 대구는 자유주의적이고 보헤미안적인 도시로 기억합니다. 마치 남프랑스의 가톨릭 분위기가 있는 시골에서 자란 촌놈이 파리에 왔을 때 느끼는 해방감을 대구의 시인과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었어요. 확실히 대구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작품들을 만드는, 굉장히 의식이 열려 있는 도시입니다. 인터넷의 악플에서 고담시 운운하는 그런 대구 이미지와는 아주 달라요.
선친 서재에서 읽은 책들이 정말 충격이었어요.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연작을 읽었는데 소설 속 구강성교 묘사를 읽고 놀라서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낭독하면 여학생들이 꽥꽥 대고… 뜻도 모른 채 말이죠. 《문학사상》에 실린 〈희랍인 조르바〉 연재도 충격이었죠. 인생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욕망의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가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학년 때입니다. 그때 《문학사상》은 세계 최고의 문학 잡지가 아니었을까요? 그땐 저작권이 없던 시절이어서 전 세계에서 좋은 작품이라면 가차 없이 긁어다가 (《문학사상》에) 실었으니까.”
‘빳다’로 맞으며 매주 원고지 100매씩 글을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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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고 문학서클 ‘계단문학동인’ 후배들과 함께.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고3 시절의 이인화. |
“5000매를 쓰고 나면 어떤 글을 쓰려 해도 무섭지 않게 돼요. 처음 글을 쓸 때의 머뭇거림, 주저함이 사라집니다. 이후 각종 공모전에 시·소설을 투고해 50여 차례나 당선됐습니다.
지갑에는 늘 빳빳한 현찰이 20만~30만원이 있었죠. 국립대 교수시던 선친의 월급이 100만원이 안 됐을 겁니다. 운문보다 산문을 많이 쓴 것은 상금이 많아서였어요. 공부는 거의 안 하고 글만 썼어요. 매일 후배들한테 술 사주고….”
― 후배들을 거느리셨네요.
“그 재미도 있었죠. 골목대장 놀이처럼. 후배들 데리고 청마백일장, 목월백일장, 진해군함제 백일장에 참가하느라 돌아다녔죠. 선친에게 많이 맞았어요. 술 마시고 들어가 꼬장을 부렸으니. 불효를 많이 했어요.”
― 창작 욕망이 활활 타올랐나 봅니다.
“그 시절이니까 가능했다고 할까요? 지금처럼 학교 내신이 중요하다면 못 했을 겁니다. 그땐 대학입시에서 내신 반영비율이 10% 정도도 안 됐어요.”
이인화는 1984년 학력고사에서 280점대를 맞고 낙방하고 말았다.
― 그때도 서울대 국문과에 대입 원서를 냈나요.
“아뇨. 국문과에 낼 성적이 안 됐습니다. 그때 미달이어서 원서를 냈다면 결과적으로 합격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재수 시절, 공부가 재미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점수는 30점 가까이 올랐다. 문과 계열 전국 108등을 차지했다. 거의 2만등 가까이 수직 상승했다
“법대에도 합격할 점수였지만 국문과에 미련이 많이 남았어요.”
평론가에서 소설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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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26일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가 디지털스토리텔링연구소 자신의 컴퓨터에 ‘스토리 헬퍼’와 워드프로세서를 띄워 놓고 이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
이인화는 대학 4학년이던 해인 1988년에 계간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양귀자론〉을 써 등단했다.
“그땐 문학평론이 좋았어요. 인터넷이 되고, 모든 게 구글링 되는 시대가 아니었으니까요. 뭔가 좀 더 필터링 된 고급정보를 지닌 전문가들이 각 분야에 평론가라는 이름으로 있었고, 그들에게서 배울 게 있는 시절이었죠. 지금은 구글신(神)이 평론가들을 다 망가뜨려 놨어요. 이제 (평론가는) 권위가 없죠. 학부 시절 학생운동 대신 ‘예술운동’이라 불리던 창작집단에서 시나리오를 썼어요.”
대구의 한 공군기지에서 방위병 시절을 보냈다. 기지 안 정비공장에서 땀을 흘리고 나면 독서의 욕망이 불타올랐다. 한편으론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은 시인 이성복이 《논어》에 심취한 한 사람의 현자로 변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성복은 그에게 “한국에서 서구적인 근대성이 가진 허약한 지반을 보여주었고 동아시아적 가치의 힘을 일깨웠다”고 한다.
1991년 서울로 돌아온 이인화는 “옛날에 읽던 위르겐 하버마스나 모리스 블랑쇼의 책 대신 《논어》를 끼고 서당에 드나들며 한국문학의 근대성을 보는 눈”마저 바꾸었다. 서구적 근대성에 의지한 문학 비평의 미래에 대해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었다고 한다.
1992년 그는 첫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를 발표하며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때부터 슈테판 츠바이크의 표현을 빌려 “용광로에 석탄을 던져넣듯 인생을 책상에 던져넣어 밤과 낮을 거꾸로 살며 소설을 써내는 달음박질이 시작되었다”고 술회한다. 표절 혹은 혼성모방의 논란이 있었으나 1993년 두 번째 소설 《영원한 제국》을 발표하며 문단 가운데 안착할 수 있었다.
소설과 영화, 게임, 뮤지컬 등 장르를 넘나들며 ‘좋은 스토리란 무엇인가’, 나아가 ‘좋은 스토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란 주제에 천착했다. 그 결과물로 국내 최초의 스토리 창작 지원도구인 ‘스토리 헬퍼’를 개발했다. 4년 전 탄핵 광풍(狂風)이 몰아치기 전까지 그는 ‘이화여대 교수 류철균’ ‘작가 이인화’로 늘 각광(脚光) 받았다.
“세상 인심이란 뜬구름같이 느껴지죠”

― 큰일을 겪고, 세상 인심이 어떻다고 느꼈나요.
“말해 뭐하겠습니까.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세상 인심이란 뜬구름같이 느껴지죠. 그런데 인심이 야박하고 각박해서 그런 게 아니고 그분들도 저한테 전화하기가 민망한 거죠.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고, 원망할 것도 없어요. 적막하게 자기 일을 해야겠다고 느꼈어요.”
― 요즘 세상을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해요. 좌파 지식인 진중권씨가 우파 쪽에 메시지 메이커 역할을 하고 윤석열 검찰총장이 우파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아이러니한 분위기 말입니다.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모르겠어요.
“이게 아관파천 패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근현대 역사에서 반복되던 일입니다. 아관파천 직후에는 이완용이 친일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했습니다. 총리대신 김홍집과 탁지부대신 어윤중은 길거리에서 타살됐어요. 3년간 친일파를 열심히 청산하던 이완용이 친일파가 되지 않았습니까. ‘아, 반복되던 패턴이구나’. 맹목 속에서 사람들이 한쪽으로 확 쏠렸다가 바로 반대쪽으로 틀어지는….
친일파를 숙청하던 이완용과 친일파 이완용이 다른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 않아요. 문제는 이완용에게 권력을 부여했던 사람들이에요. 그들에게 본인이 직접 보고 들었으면서도 믿으려 하지 않는, 방법론적 맹목이 있었던 거예요. 자기 기만의 자동화 구조라고 할까요. 소설 《2061년》 안에 다 나옵니다.”
― 신(神)을 믿으시나요.
“믿습니다. (신이) 없다면 삶의 목적이 없지 않습니까. 모든 게 수단이 돼버리면 안 되지 않습니까. 교회에 나가지는 않습니다.”
― 왜 안 나가나요.
“함석헌 선생도 교회는 안 나가지만 목사셨죠.”
― 함석헌 선생의 영향을 받으신 거예요.
“어릴 때부터 함석헌 선생을 좋아했어요. 《씨알의 소리》를 정기구독하고 그랬습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 문학이란 무엇인가요. 왜 문학을 하나요.
“개인이 말이죠, 개인이 개인으로 빛났던 시절이 세계사에서 별로 없었습니다. 개인은 자기 가문이나 자기 나라와 민족, 자기가 속한 직책이나 지위로 존재했지, 개인이 개인으로 빛났던, 근대문학이 반짝였던 시기는 불과 200~300년 전입니다. 우리나라는 서구적 의미의 문학을 더 늦게 배웠죠.
개인이 개인으로 빛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문학을 통해 열립니다. 모든 것이 흔들리고 다 잃을 때 비로소 문학이 삶을 구원합니다. 그런 처지가 돼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아, 이래서 문학이 정말 좋은 것이구나’. 저는 평생 문학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처음으로 문학이 무엇이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문학 안에 주술적(呪術的)인 힘이 있더군요. ‘개인이라도 괜찮아’라고 다독이는…. 이래서 문학이 사람을 위로하는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됐어요.”
― ‘소설이 인간을 구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면 ‘그렇다’고 답하시겠죠.
“잘살고 평온무사한 사람을 문학이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굉장히 자괴(自愧)스럽고 부끄럽고 흔들리고 휘청거리고… 이런 사람은 구원할 수 있어요.”
― 소설 《2061년》을 탈고한 지금도 매일 씁니까.
“네, 일요일에도 씁니다. 365일, 최소 365쪽을 써야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야기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서울역 앞에 가면 돈을 주고서라도 듣고 싶은 이야기꾼들이 있거든요. 그런 분들이 작가가 아닌 이유는 글을 안 쓰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매일 1쪽씩은 써야 합니다.
물론 더 쓰고 덜 쓸 때도 있었지만 소설 《2061년》을 쓰기 위해 지난 4년 동안 매일 A4 용지로 1장씩을 써서 1511장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그러면 그때부터 ‘아, 이제 줄여서 소설로 내야겠다’ ‘첫 페이지는 이렇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가 필립 로스는 ‘이제 소설 첫 페이지를 써도 되겠다는 순간이 올 때까지 계속 쓴다’고 했어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 ‘이인화’와 ‘류철균’, 가끔 두 이름이 헷갈립니까.
“헷갈립니다. (웃음) 이인화라는 이름으로 계속 쓰고 싶습니다. 이 이름으로 소설을 썼으니 끝까지 써야지요.”
나의 조촐한 희망 노래
― 어느 인터뷰를 보니 ‘(소설가로서) 교과서에 실릴 단편, 다른 하나는 생활인들이 많이 읽을 수 있는 장편 하나를 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단편을 꼭 쓰고 싶고…, 〈초원을 걷는 남자〉는 개인적으로 흡족한 단편이고요. 장편을 4년 써보니까… 돈이 되든 안 되든, 읽히든 안 읽히든 소설은 계속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만이 제가 정직하게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직장생활을 해보니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더군요. 그게 너무 상처가 되고…. 어쨌든 혼자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은 했습니다.”
소설 《2061년》의 ‘작가의 말’에 실린 이인화의 고백이 기자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지진이 나고 폭풍우가 휘몰아칠 때가 사실은 가장 행복한 때라고 믿고 싶다. 그럴 때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뭔가를 깨달으니까. 우리는 위기 때문에 더 강해질 것이고 더 멋진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나의 조촐한 희망 노래를 출판한다. 나는 쓰러졌다. 하지만 다시 일하고 있다. 앞으로도 일할 생각이다. 나는 나의 의지가 현실에 조금이나마 반영된다는 확신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나는 그런 것을 통해서만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사람이다. 한글이 일깨워 준 이 희망에 이 책을 헌정한다. 이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