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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열전

의리배우 김보성의 새해 각오, “다시 시작하으리!”

“자네가 진짜 《인간시장》 장총찬이네”(김홍신이 김보성에게 한 말)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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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 ‘불의’ 외치는 상남자 스타일… 액션 대신 예능으로 제2의 전성기
⊙ “〈영웅본색〉은 100번도 더 봐. 주윤발을 동경했고 외로울 때마다 그를 떠올려”
⊙ 영화 〈투캅스2〉로 스타 등극… “배우가 되기보다 영웅이 되려고 애써”
⊙ “자식을 위해 온몸을 던지다가 세상 마감하는… 그런 아빠 역할을 하고 싶어요”
의리배우 김보성.
  상남자. 터프가이. 마초적 말투로 “으리”(의리)를 외치는 배우 김보성(金甫城·54). 그가 의리를 외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고 리드미컬하다. 모든 ‘리’자 앞에 ‘으’를 삽입하는 식이다. ‘신토부으리’ ‘아메으리카노’ ‘으리집’…. 마무리도 ‘마무으리’다. 그는 어떤 사물이든 ‘으리’로 변화시키는 마법을 지녔다?
 
  동의할지는 몰라도, 나이 쉰이 넘어 김보성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묵직한 연기보다 엔터테인 기질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아마 2014년 식혜 광고가 불을 지폈는지 모른다. 이후 TV 예능 프로그램과 CF를 오가고 있다.
 

  까마득한, 그러니까 1996년 영화 〈투캅스2〉에서 가죽점퍼를 입은, 늘 햄버거를 입에 달고 사는 ‘오렌지족’ 경찰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했지만, 그때보다 한결 심플하게 오버액션 예능에 몰입하고 있다.
 
  과거 김보성은 최민수, 박중훈, 최재성과 같은 당대 상남자 배우들과 이미지가 겹쳐 보였지만 지금의 그는 이들보다 훨씬 자유분방하게 남성미를 발산한다.
 
 
  장총찬 혹은 피터팬?
 
  얼마 전 종영된 tvN의 〈의리뷰〉에서 핫한 아이템을 ‘언박싱’ 리뷰하며 시청자를 들었다 놨다 했던 그는, 맵기로 소문난 ‘동대문엽기떡볶이’ ‘송주불냉면’ ‘디진다돈까스’를 먹으며 기꺼이 망가졌다.
 
  너무 매워 눈물 콧물 흘리면서도 “으리”를 외치던 그는 우리 시대 무너진 가장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김보성은 “영화배우로서 한(恨)이 있다”고 말하지만, 비록 한이 새로운 방향으로 분출된다 해도, 그는 여전히 연기자로 다시 무대에 서고 싶다.
 
  그러고 보니 2016년 영화 〈사랑은 없다〉에서 멜로 연기를 선보였다. 흥행은 그저 그랬지만 김보성의 연기 변신은 무죄였다. 눈물 흘리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중년의 남자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오래전부터 그는 봉사활동에 ‘투신’해왔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대구를 찾아가 마스크 수천 장을 전했고(천안·진천·아산에도 마스크를 들고 찾아갔다), 세월호 참사 때는 은행대출 1000만원을 받아 유족에게 건넸다. 2016년 12월 10일 소아암 환우를 돕기 위해 종합격투기 대회에 참가했다가 실명(失明) 위기를 겪은 기억도 잊을 수 없다.
 
  2020년 12월 8일 서울 논현동에서 만난 그는 지금도 김홍신의 장편 《인간시장》의 주인공 ‘장총찬’을 꿈꾸고 있다고 고백했다. 악(惡)이 선(善)을 지배하는 사회를 돌려놓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듣고 잠시 피터팬증후군을 의심했지만, 그의 말에는 순수하게 세상에 맞설 용기로 가득했다. 인터뷰가 깊어질수록 굵직한 배우로서의 사명감도 들을 수 있었다.
 
  ― 실제 매운 음식을 좋아하나요? 억지로 먹는 게 아닌가요.
 
  김보성은 한 방송에서 맵기로 소문난 ‘신길동 짬뽕’을 “(아침) 해장으로 먹는다. 빨간색이 아니면 음식으로 안 쳤다”며 허세를 부린 적이 있다.
 
  “좋아하죠. 후유증이 어느 정도냐고요?”
 
  ― 그날?
 
  “그렇죠. 하루면 되죠. 근데 소문난 매운 음식 먹어보니 ‘사람에 따라 위험할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위가 튼튼한 편인가 봅니다. 건강검진 시 위염 소견이 없나요.
 
  이 대목에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 좀 외람된 이야기인데 건강검진 안 받아봤어요, 하하하. 받을 나이가 됐는데 멀쩡하니까, 허허허.”
 
 
  상남자와 知天命의 나이
 
  ― 평소 주량은.
 
  “평생 술과 담배에 쩔어(절어) 살았는데, 제가 얼마 전 임플란트를 했어요. 자연스럽게 담배도 끊었어요. 2020년 5월 3일. 그날로 댕가당.
 
  담배를 안 피우니 술자리를 안 가게 되고…. 술은 끊었다기보다는 임플란트 때문에 많이 못 마시는데, 약간 높던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제 몸이 건강해졌어요.”
 
  ― 최고 주량은.
 
  “1시간 반 동안 소주 11병을 마신 기억이 있어요.”
 
  ― 그날 필름이 안 끊겼나요.
 
  “그날 처음으로 오바이트를 했어요. 10년 전 일이죠. 한창 시절엔 주량이란 게 없었으니까.”
 
  ― 대적할 만한 연예인을 꼽는다면….
 
  “(가수) 전진과 무승부였고….”
 
  ― 선배 연예인 중에는.
 
  “술로 대적해서 제가….”
 
  ― (진 적이) 없었군요.
 
  “하하하.”
 

  ― 겉으로 늘 근엄한 모습인데 속은.
 
  “하하하, 화를 내면 냈지 삐치거나 ‘꽁’생원처럼 토라진 적은 없었습니다. 저와 안 맞는 거지.”
 
  ― 속의 말을 쏟아내고 싶을 때 어떻게 합니까.
 
  “젊었을 때는 그냥 해버렸어요. 나이 들면서는 속으로 소리 한 번 지르고 말죠.”
 
  ― 소속사는 어딘가요.
 
  “없어요.”
 
  소속사를 굳이 찾고 싶지 않단다.
 
  “그렇죠. 누구 밑에 들어가기보다 스스로 스케줄 정리하고… 그렇게 하는 게 좋더라고요. 사실은 봉사활동을 많이 가는 편입니다. 대중매체에 알려진 것보다…. 소속사에서 돈벌이 안 하고 봉사 가는 걸 좋아하겠어요?”
 
  ― 진짜 성격은 어떻습니까.
 
  “똑같죠. 요즘은 안 만나는데 건달…, 건달 같은 친구들은 저더러 ‘보성아, 성격 많이 죽이더라’ 하죠. 거꾸로 방송에서는 ‘너무 오버한다’고 합니다.
 
  원래 성격은 조금 더 거칠고… 조금 더 무거운… 그런 면이 있었는데 지금은 나이가 들면서 정제(整齊)되었어요. 흔히 쉰 나이를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하잖아요. 하늘의 명령을 아는 나이가 된 거죠. 쉰이 넘으면 자기 성질대로 살면 안 되잖아요.”
 
 
  《인간시장》의 ‘장총찬’ 꿈꿔
 
배우 김보성은 배우를 꿈꾸던 시절 이현세 만화에 등장하는 ‘까치’ 캐릭터에 열광했다.
  김보성은 키 175cm, 몸무게 85kg의 단단한 체구다. 학창 시절 꿈이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독재자(?)가 되고 싶었던 걸까. 세상을 알아가며 김홍신의 장편 《인간시장》의 주인공 장총찬이 되고 싶었다. 진짜 사나이들의 의리와 정의란 허상이란 걸 간파하면서(?) 배우를 꿈꾸었다.
 
  “학창 시절 친구를 구하기 위해 13대 1로 싸우다 한쪽 눈이 거의 실명된 적이 있었어요. 시각장애 6급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는데 이런 장애를 숨기고 특전사에 지원했지만 신검(身檢)에서 떨어지고 말았죠.
 
  이현세 만화에 등장하는 ‘까치’ 캐릭터에 열광했고, 《인간시장》 장총찬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실제 사회에서는 안 되더라고요.
 
  한번은 공원에서 양아치 3명과 싸웠어요. 이들이 지나가던 남녀를 괴롭히기에 구해줬는데 결국 경찰에 잡혀갔어요. 증인이 없어서 쌍방 폭력으로 사건이 처리되는 것을 보고 ‘정의감… 순수한 마음만으로 내 의지를 펼칠 수 없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런 ‘의협심, 의리를 대중매체를 통해 펼쳐보자’ 해서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죠.”
 
  그러나 금방 될 수 없었다. 길은 험했다. 오랜 무명(無名)의 시간을 보낸 뒤에 장총찬이 될 수 있었다.
 
  ― 어머니(설정혜 여사)는 맏아들에게 무얼 원하셨어요.
 
  해방공간 당대 최고 지식인으로 필봉을 날렸던 월북(越北)시인 설정식의 딸이 그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원하는 게 없으셨어요. 기도를 많이 하셨지만 (아들에게) 구체적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셨어요. 공부하라 권하지도 않으셨죠. 그냥 자유인으로 저를 키우셨던 것 같아요.”
 
 
 
“자네, 중훈이 냄새가 나는구먼”

 
1996년 영화 〈투캅스2〉 출연하던 시절의 가죽점퍼 입은 김보성.
  엑스트라로 연기를 시작했지만 기회가 금방 찾아오지 않았다. 영화 속 행인이나 싸움꾼 중의 한 명이었고, 고층 건물에서 몸을 던지고 얼굴을 파묻은 채 물 위에 둥둥 떠 있어야 했다. 연극판도 기웃거렸다. 연극 포스터를 붙이려고 맨손으로 양잿물을 만졌다가 손바닥이 다 벗겨진 적도 있었다.
 
  연출부 보조로 일명 ‘스모그 맨’ 시절, 커피가루를 돌려 연기를 뿜어내던, 그것도 마음대로 안 돼 감독에게 면박을 당하기 일쑤였다.
 
  “제임스 딘을 좋아했고, 〈영웅본색〉은 100번도 더 봤을 겁니다. 당연히 주윤발을 동경했고 외로울 때마다 그를 떠올렸어요. 이소룡에게 반했지요. 이소룡은 지금도 존경합니다. 이소룡 피규어를 꽤 많이 소장하고 있어요.”
 
  그는 “이소룡을 존경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 주윤발 이미지와 닮은, 비슷한 시기에 활약했던 박중훈·최재성 배우와 이미지가 겹쳐 보입니다. 그들을 라이벌로 생각했나요.
 
  “‘제2의 최재성’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라이벌로 생각은 안 했어요. 중훈이 형이랑 작품을 같이했으니까 이미지가 겹칠 수는 있어요. 〈투캅스〉 이후 제가 출연한 작품이 정형화되어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뭐, 후회는 없습니다. 제임스 딘도 ‘제2의 말런 브랜도’라는 말을 들었으니까요.”
 
  김보성은 강우석 감독의 데뷔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로 처음 빛을 보기 시작했다. 강 감독이 그를 보며 “자네, 중훈이 냄새가 나는구먼” 했다고 한다.
 
  베스트셀러 영화 〈투캅스2〉에서 박중훈과 김보성은 함께 출연해 대박을 터뜨렸다. 이 영화의 감독도 강우석이었다.
 
  “감독님이 베푼 은혜를 평생 잊을 수 없지요.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지금도 명절마다 찾아뵙고 인사드리려고 해요.”
 
  김보성은 지금도 강 감독과의 의리를 목숨처럼 여긴다.
 
 
  〈사랑은 없다〉로 멜로 연기에 도전
 
2016년 멜로영화 〈사랑은 없다〉에 도전한 김보성. 바바리 깃을 한껏 세우고 왼손엔 담배, 오른손엔 꽃다발을 든 그의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의리남 김보성은 놀랍게도 2016년 작 〈사랑은 없다〉에서 멜로 연기를 선보였는데 아주 인상적이었다.
 
  약간 진부해 보이는 스토리는 대강 이렇다. 40대 가장인 동하(김보성 분)는 오랜 시간 대표작을 내지 못한, 과거의 영광 속에 사는 영화배우다.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고, 그를 흔드는 작은 바람이 시작된다. 첫사랑 민정(반민정)을 만나면서 설렘이란 감정이 일어나지만 현실은 고통스럽다. 가정을 버릴 수 없다.
 
  멜로 연기 변신도 흥미로웠어요.
 
  “고맙습니다. 장훈 감독이 친구입니다. 개런티 없이 연기를 했는데 나름의 연기 변신이었어요. (받은 개런티를 동료 스태프에게 기부했다고 한다.) 마초적 연기나 액션 신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진지한 모습이 남다르게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바바리 깃을 한껏 세우고 왼손엔 담배, 오른손엔 꽃다발을 든 그의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다만 촌스럽기까지 한 구시대적 로맨스는 관객 확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 앞으로 같이 연기하고 싶은 여배우가 있나요.
 
  “여배우가 저랑 (연기)하려고 할까요? 하하하.”
 
  그는 동료 배우 시사회에 초대받아 가서 ‘갑(甲)질’하는 투자자 대표에게 의리를 가르치다가(?) 이후 충무로 영화판에서 배척을 당했다고 한다.
 
  “‘돈이 많으면 얼마나 많냐’ 하고 대들었는데, 그걸 못 참아서 뒤집어엎었어요. 그때부터 영화가 끊겼다고 봐야죠. 후회는 없는데, 동료 배우에게 정말 미안하죠. 동료를 위해 분개했지만 제 의협심이 친구까지 영화판에서….”
 
 
 
“영화배우로 恨이 있어요”

 
연탄배달을 하고 있는 배우 김보성. 그에게 봉사와 기부는 생활이다. 그는 “의리가 곧 사랑”이라고 말한다.
  ― 그 사건 이후 영화 캐스팅이 어려웠군요.
 
  “그렇다고 봐야죠. 돈이나 물질이 다 건달이잖아요. 그런 기득권 세력이 군림하는 걸 보고…. 저는 조폭과도 많이 붙었어요. 물질이나 힘으로 약자 위에 군림하는 행태를 못 참습니다. 지금은 정제가 되어서….”
 
  ― 지금은 돈과 힘에 굴복한다?
 
  “하하하. 지금은 그분들에게 사과드리고 싶고….”
 
  ― 하하하.
 
  “농담으로 하는 얘기지요. 지금 생각해도 후회는 없어요. 영화판이 저를 받아주지 않자 예능으로 갔죠. 예능에 가서 돈도 벌고 괜찮으니까… 후회는 없습니다. 많이 번다기보다 조금씩 줄여서 쓰면 (생활이) 되니까.”
 
  ― 배우로서 아쉬움은 있겠지요.
 
  “영화배우로 한(恨)이 있어요. 한이 남아 있어요. 죽기 전에 한을 풀고 싶어요.
 
배우 김보성은 2020년 3월 코로나19로 위기를 겪고 있는 대구를 찾아가 시민들에게 마스크를 전달했다.
  대한민국의 부정부패를 다 박살 내는… 대중이 통쾌하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그런 작품을 하고 싶어요. 《인간시장》 장총찬 역할을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습니다.
 
  사실 작가 김홍신 선생님과 친분이 있어요. 코로나19로 대구가 어려웠을 때 마스크를 들고 찾아간 적이 있었어요. 그 모습을 김홍신 선생님이 보고 전화하셨습니다. ‘자네가 바로 장총찬이네.’ 이 말씀이 두고두고 잊히지 않아요. 제가 근래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영광스런 말입니다. 앞으로 봉사활동을 더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어요.”
 
  ― 늘 옷깃을 세우나요? 일종의 콘셉트인가요.
 
  “자동으로… 옷깃 세우는 걸 좋아하죠. (옷깃을) 내리는 게 어색해요.”
 
 
  “망가지는 게 두렵지 않다”
 
  ― 선글라스는 몇 개입니까.
 
  “기부도 많이 했지만 협찬받은 것도 있고, 30~40개 정도? ‘라이방’이나 ‘보스’ 같은 브랜드를 좋아하는데 직사각형 스타일로 기다란 모양을 좋아해요.”
 
  ― 가죽점퍼는 집에 몇 벌 있나요.
 
  “의외로 많지 않아요. 바자회 기부도 하고 해서 5~6벌 정도 될까요?”
 
  ― 가죽점퍼는 어디서 사나요.
 
  “여행 갔다가 사기도 하고… 이태원에 가죽점퍼 시장이 있어요. 영화 찍다가 스타일리스트가 선물로 주기도 하고….”
 
  ― 아내를 위해 설거지·빨래하기, 요리를 자주 하나요.
 
  “잘 안 해요. 떡볶이, 찌개류… 김치찌개 같은 음식은 할 수 있어요. 집에 이모님이 같이 사는데 이모님이 다 하시니, 제가 도울 일이 잘 없어요.”
 
  ― 남편으로 몇 점?
 
  “젊었을 때는 거의 뭐… 50점 이하라면, 요즘에는 거의 100점에 가깝죠.”
 
  ― 100점요?
 
  “아니, 90점 넘는… 정도. 사람이 변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저는 많이 변했어요. 원래 가정적이긴 했는데, 술자리 이런 것 때문에 집을 많이 비운 것이 미안해서 나이 들면서 점점 더 가정적으로 변하고… 지금은 완벽하게, 그냥 집사처럼 지내고 있어요, 하하하.”
 
  ― 오히려 근엄한 모습보다 예능에서 무너지는 모습에 사람들이 더 열광합니다.
 
  “저는 망가지는 게 두렵지 않아요. 단지… 대의명분이 있다면….”
 
  ― 대의명분이라면.
 
  “어떤 목적의식이 있어야 망가지더라도 괜찮다는 것이죠. 코미디도 블랙코미디를 선호합니다. 사회성이 있고, 망가지더라도 뭔가 이슈가 되고, 많은 이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다면 나 하나 망가지는 건 두렵지 않아요.”
 
 
  “자랑스런 두 아들의 아빠가 되는 게 꿈”
 
김보성은 영화 〈영웅〉에 이종격투기계의 황제 에밀리아넨코 표도르와 함께 출연했다. 그에겐 잊을 수 없는 작품으로 기억된다.
  2013년 개봉작 〈영웅: 샐러멘더의 비밀〉이란 영화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 사건’ 이후 처음 주연으로 출연한 상남자 영화였다. 이종격투기계의 황제 에밀리아넨코 표도르가 출연했으니 시선을 끌 만했다. 김보성은 종래의 다소 코믹하던 이미지를 벗고, 치명적 바이러스로부터 인류를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한국의 국정원 요원 장현우 역을 소화했다. 이 영화는 2010년 작이지만 국내 개봉까지 3년이 흘렀다.
 
  그는 “우연히 이종격투기 경기장에서 표도르 한국 쪽 매니저를 만났는데, 영화를 한 편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라. 한국 첩보원이 세계의 평화를 위해 희생하는 내용도 있다고 해서 시나리오를 부탁해 읽어봤다. 앞뒤 안 보고 바로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누적 관객 수 5987명으로 끝이 났다.
 
  “촬영 전 술자리를 가졌는데, 무지막지하게 마시기에 똑같이 마셨어요. 한국의 강한 면을 어필하려고 말이죠. 그 후 저를 인정하면서 조금씩 친근하게 대하더군요. 표도르는 비교적 사교적이지 않았지만 기본 태도는 우호적이었어요. 남자들의 우정과 의리는 눈빛만 교환해도 다 아는 것 아닌가요? 저를 ‘마이 프렌드, 마이 프렌드’라고 계속 불러주더라고요. 하하하.”
 
  ― 천신만고 끝에 개봉됐지만 아쉽게도 끝이 났네요.
 
  “당시 대기업 배급사들이 영화관을 장악하기 시작할 때였어요. 자기네가 투자 안 한 영화는 일절 극장에 안 걸었어요. 저는 그 영화가 국내 개봉된 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사실상 배급을 제가 했으니까…. 전국 30곳에서 개봉이 됐는데 너무 아쉽습니다.”
 
  2013년 당시 그는 영화잡지 《시네21》과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의 애국심에 불타는 사나이들이 이 영화를 꼭 봐줘서 의리가 불꽃 같은 파이팅으로 번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잠시 침묵 후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흥행과 상관없이 히어로 역할을 했다는 게 중요하죠.”
 
  ― 지금도 포털 사이트에서 이 영화를 다운로드할 수 있나요.
 
  “그럼요.”
 
  ― 출연한 영화 중 의기소침할 때 꺼내 보는 작품이 있나요.
 
  “… 의기소침할 때 꺼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못 봤습니다. 제가 보기보다 제 두 아들이 아빠 작품들을 봤으면 좋겠어요. 자랑스런 아빠가 되는 게 제 꿈입니다.”
 
  그는 아내 박지윤씨와의 슬하에 두 아들 정우(20)·영우(19)가 있다.
 
 
  “惡役, 어차피 때를 놓쳤어요”
 
2015년 4월 7일 서울 마포구 공덕초등학교 앞에서 (왼쪽부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강신명 경찰청장, 명예경찰인 배우 김보성, 노웅래 민주당 의원 등이 경찰 인형 옆에 나란히 서서 학생들을 향해 ‘멈춰! 학교폭력’이라 적힌 손바닥 글자판을 흔들고 있다.
  사람들에게 김보성은 여전히 영화 〈투캅스〉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의와 의리를 위해 죽고 못 사는 상남자. ‘돈 뜯는 고참’에게 저돌적으로 대드는 그는 〈더티 해리〉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깡패보다 더 지독한’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정지영 감독의 〈하얀 전쟁〉(1992)에서는 남성미를 물씬 풍기는 거친 군인이었고, SBS TV 24부작 드라마 〈모래시계〉(1995)에선 경찰 역을 맡아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영화 〈투캅스〉는 제 인생영화지요. 지금도 명예경찰인데 경사에서 계속 승진해 경정까지 올랐어요.”
 
  그러더니 지갑을 꺼내 ‘명예경찰증’을 보여주었다. 명예경찰증 속 사진은 20대의 불같은 김보성이었다.
 
  ― 영웅 이미지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안 한 겁니까, 못 한 겁니까.
 
  “이미지 변신을 안 했어요. 배우가 되기보다 영웅이 되려고 애썼어요. 배우로서 마이너스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해요. 악역(惡役)이 들어오면 다 거절했어요. 멋있는 악역도 있지만, 무조건 ‘정의의 사나이’ ‘나는 영웅’이라고 생각했어요.”
 
  ― 본인이 마다한 악역으로 성공한 배우가 누군가요.
 
  “너무 많아서….”
 
  ― 앞으로는 악역도 멜로도 하고 싶은 거죠.
 
  “안 하겠다고 말할 순 없지만 다시 처음부터 하기에는 조금…. 나이도 있고,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생활배우로서, 누구의 아빠로 분한다? 죄송하지만 저는 아직도 한방(?)을 치더라도 불의와 싸우는 의리배우로, 끝날 때 끝나더라도, 그런 연기를 하고 싶어요.”
 
  ― 아버지 역을 잘하는 배우가 롱런한다더군요.
 
  “좋은 아빠도, 생활 속 아빠보다는, 자식을 위해 온몸을 던지다가 세상을 마감하는…, 그런 아빠 역할을 하고 싶어요. 하하하.”
 
  ― 늘 온몸을 던져야 하는군요.
 
  “저는 항상 온몸을 던지죠.”
 
  ― 악역을 앞으로도 안 한다?
 
  “어차피 타임을 놓쳤어요. 지금 이 상황에서 한다면… 제가 생각하는 영화를 못 하지 않을까요?”
 
 
  소아암 환우를 위해 프로 격투기에 도전
 
2016년 10월 20일 김보성이 종합격투기 데뷔를 앞두고 연습하고 있다. 그는 이 사진을 보며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파이터의 눈빛과 주먹이다. 꼭 이 사진을 실어달라”고 부탁했다.
  배우 김보성은 몇 해 전 난치질환인 척수성근위축증(SMA) 환우들을 위해 1000만원을 기부하며 유일한 치료제 ‘스핀라자’의 보험 적용을 위해 캠페인을 벌였다. 그리고 결국 건강보험료 혜택을 보게 됐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몇 년 동안의 봉사활동 중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기억돼요. 2020년에 건강보험 적용이 된 겁니다. 몇억원이나 되는 약값이 연간 500만원으로 줄었으니까요.”
 
  ― 소아암 환우를 위해 프로 격투기에 도전하셨죠.
 
  2016년 12월 10일 장충체육관에서 일본의 곤도 테쓰오를 상대로 종합격투기 로드 FC 데뷔전을 치렀다. 대전료 전액을 소아암 환자 수술비로 내놓았고 소아암 환자들에게 가발용 머리카락을 기부하기 위해서 삭발식을 가졌다. 그런데 1라운드에서 눈 부상으로 TKO 패를 하고 말았다. 오른쪽 눈 주위가 함몰되는 안와골절 부상을 입었다. 시력 보호를 위해 수술을 포기했다.
 
  “링 위에서 3분간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양쪽 눈이 다 실명하는 게 아닌가 걱정을 했어요. 왼쪽 눈도 원래 안 좋아서 뿌옇게 보여요. 다행히 오른쪽 눈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지만 2mm 정도가 함몰됐어요.
 
  오른쪽 눈을 감은 채 왼쪽 눈으로 보는 세상은 뿌옇습니다. 뿌옇게 보이는 세상도 제 세상이고, 오른쪽 눈으로 보는 선명한 세상도 제 세상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진짜 나는 누굴까’ 하고요.”
 
  ― 주위에서 도와달라는 요청이 지금도 옵니까.
 
  “네, 이곳저곳에서 와요. 사랑의열매, 월드비전, 시각장애인협회 등 NGO 단체들과 관련이 많아요. 하다못해 연탄 배달, 김장 담그기 봉사활동과도 연결돼 있어요.
 
  그게 제 삶의 목적입니다. 영화 〈쉰들러리스트〉를 보면 유대인을 구한 독일 사업가 이야기잖아요. 마지막 대사가 ‘최소한 한 명은 더 빼 올 수 있었어(살릴 수 있었어)’입니다. 이 세상의 가치 있는 일은 한 사람의 생명을 더 살리는 일이에요.”
 
 
  김보성의 ‘의리론’
 
2020년 2월 김보성(본명 허석)의 큰아들 허정우의 졸업식날 모습이다. (왼쪽부터) 김보성, 큰아들 정우, 아내 박지윤, 작은아들 영우.
  ― 이타적(利他的)인 삶, 대단합니다.
 
  그는 자신의 ‘의리론’을 이렇게 설파했다.
 
  “1단계는 우정의 의리입니다. 벗에게 돈 꿔주고, 빌려주고, 보증 서주고… 하는 의리죠. 잘못된 방향으로 변질될 수 있어 항상 경계해야 되죠.
 
  2단계 의리는 저스티스(justice), 정의입니다. 공익을 위한 정의감이 있어야 하고, 그런 정의감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나보다 못 한 사람을 돌볼 줄 압니다.
 
  그런데 의리는 사랑이죠. 사랑이 가슴에 충만해야 의리를 실천할 수 있어요. 그래서 나눔의 의리, 그게 3단계 의리죠. 의리가 완성되려면 사랑이 필요합니다. 의리는 결국 사랑이고, 사랑이 의리죠.”
 
  김보성은 스스로 ‘의리 계몽운동가’라 부른다.
 
  “자선사업가는 아니지만 스스로 돌아보면 어쨌거나 계몽운동가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의리 계몽운동가…. 하하하. 제 인생, 김보성 인생에서 이 일(봉사)이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 아내는 계몽운동가 남편을 지지하나요.
 
  “지지하죠. 하하하.”
 
  ― 아내는 경제적으로 힘들어하지 않았나요.
 
  “살며 중간중간에 기복(起伏)은 있었죠. 다 이겨내 ‘주시니’ 감사하고요.
 
  후배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삶의 기복, 인생의 굴곡을 잘라서 보지 말라고요. 큰 물결의 흐름 속에서 보라 말하죠. 정상에 있을 때 밑을 내려다보는 겸허함이 있어야 하고, 낭떠러지로 미끄러져도 다시 올라갈 길이 있다고요. 인생의 파고를 헤쳐가려면 사나이의 배짱을 가져야 합니다.”
 
  ― 멋진 말씀입니다.
 
  “그렇게 살아왔어요.”
 
  ― 지금은 긴 파고의 어느 단계쯤 와 있나요.
 
  “안정권에서 위로 올라가는…, 그렇다고 큰 욕심을 바라는 건 아니니까.”
 
  ― 기부의 꿈은?
 
  “인생에서 최고 가치 있는 일은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끝까지 (기부)할 생각입니다.”
 
  ― 《월간조선》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다시 시작하으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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