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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 증언

‘보수통합 막후 주역’ 정운천이 털어놓는 통합 秘話

“유승민, 당신이 사는 길은 이순신이 되는 것… 死卽生하라!”

글 :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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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惡法인 공수처법 통과가 통합에 나선 결정적 계기”
⊙ 지상욱 의원, 박형준 겨냥해 ‘왜 한국당 아바타 노릇을 하나’
⊙ 유승민에게 직격탄 ‘새보수당은 유승민 私黨 아냐’
⊙ “유승민의 결단 높이 사… 그때 감정들은 다 사라졌다”
⊙ 보수 在野 세력 다독이는 데에도 앞장서 “大義 우선해달라”
⊙ “공수처법과 공직선거법 폐기하고 석패율제 법제화할 것”
  지난 2월 14일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 전진당 그리고 재야 시민단체가 통합을 선언함으로써 ‘미래통합당’이 닻을 올렸다. 1990년 3당(黨) 합당 이후 정확히 30년 만에 보수정당들이 하나가 된 셈이다. 아무리 같은 이념을 공유한다고 해도 정당 간 통합은 쉬운 일이 아니다. 통합 논의 시 지분 문제 등 흔히 불거질 수 있는 현안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이번 통합의 특징은 ‘박근혜 탄핵’을 기점으로 서로를 경원시했던 보수세력이 다시 한 지붕 아래 모였다는 점이다. 게다가 21대 총선을 불과 두 달여 앞두고 이뤄졌다. ‘남보다 더 남 같았던’ 이들이 선거를 앞두고 통합을 이뤘다면, 거기엔 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진통과 비화(秘話)가 있기 마련이다.
 
  최근 복수의 정치권 인사들에게서 보수 통합을 이끈 ‘막후 주역’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호남 출신의 정운천(鄭雲天·66) 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정 의원은 출신 지역부터 보수적 색채하고는 다소 거리가 멀다. 전북 고창 출신으로 전주(전주을)가 지역구이기 때문이다.
 
  2017년 박근혜 탄핵 이후, 유승민 의원 등 탄핵 찬성 세력이 새누리당을 탈당하고서 바른정당을 창당할 때 그 역시 함께했다. 그런 정운천 의원이 통합에 주도적 역할을 맡은 건 의외다. 지역구도 탄탄히 다져 호남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여권(與圈)에서도 탐을 낼 정도인 그가 보수 통합에 나선 이유는 뭘까.
 
  지난 2월 20일과 3월 6일, 두 차례에 걸쳐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운천 의원을 만나 통합 당시 비화를 들어봤다.
 
 
  공수처법 ‘24조 2항’이 가장 심각한 독소조항
 
2019년 12월 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4+1 협의체가 제출한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이 집단 반발하며 퇴장한 가운데, 재석 176명 중 찬성 159명, 반대 14명, 기권 3명으로 통과됐다. 비밀투표안이 부결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 정치권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운천 의원이 보수통합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하더군요. 통합에 적극 나선 이유는 뭡니까.
 
  “제가 다른 누구보다 통합에 매진한 건 사실입니다. 거의 목숨을 걸었죠. 그 이유는 공수처법 때문입니다. 2019년 12월 30일이 제겐 운명과도 같은 날입니다. 그날은 공수처법이 통과된 날입니다.”
 
  ― 공수처법이 보수통합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는 건지 선뜻 이해가 잘 안 됩니다.
 
  “공수처법은 최악의 악법(惡法)이에요. 공수처법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느낀 게 ‘24조 2항’입니다. 검찰이 범죄 사실을 인지하면 곧바로 공수처에 통보하도록 한 겁니다. 이 말은 2300명의 검사들이, 즉 2300명의 헌법기관이 거기에 예속돼버린다는 얘깁니다. 헌법기관 위에 공수처법이 있고, 대통령이 공수처장을 임명하도록 돼 있으니 사실상 대통령이 3권을 다 장악한다는 거 아닙니까. 판검사들의 비위 사실까지도 공수처에서 조사하게 돼 있잖아요. 그래서 이 대목이 가장 심각한 독소조항입니다. 더구나 그 부분을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추가했습니다. 대통령 권력을 무소불위 수준으로 강화한 것이죠.”
 
  ― 반(反)헌법적이기 때문에 반대했다는 겁니까.
 
  “잘 보세요. 이런 악법을 보고만 있으면, 결국 부역(附逆)하는 꼴입니다. 만약 보수통합도 안 된 채 이대로 21대 국회가 출범하면 보수가 더불어민주당한테 먹혀버립니다. 그걸 막는 방법은 통합밖에 없어요. 보수가 총선에서 승리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문재인 정권의 ‘사회주의 폭정(暴政)’을 막아낼 수 있고, 대한민국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주 回軍
 
  ― 듣기로는 그날 지역구인 전주에 있다가 서울로 올라왔다면서요.
 
  “그때 저는 전주에서 출마 준비 중이었습니다. 사실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당선 안정권이에요. 자유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으로 가면 반 토막이 나고…. 인지도가 있으니까요. 무소속으로 출마계획을 세우고 출마 준비를 하던 중인데, 30일 그날 딱 하루 서울에 올라왔어요.”
 
  ― 올라와 보니 국회 상황이 어떻든가요.
 
  “세 가지 안(案)이 올라와 있었어요. 공수처법 여당안, 권은희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이 발의(發議)한 독소조항을 뺀 공수처법 수정안, 그리고 비밀투표 이렇게요. 공수처법을 막으려면 우선 비밀투표 법안이 올라와야 했어요. 오신환 당시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비밀투표 법안이 일단 통과되면 공수처법은 막을 수 있다’고 해요.”
 
  ― 비밀투표 법안과 공수처 법안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거죠.
 
  “보통 투표를 하면 국회 본회의장 전광판에 누가 어떻게 투표했는지 다 공개가 되니까 반대할 수 없잖아요. 비밀투표를 하면 민주당 내에서 공수처법에 반대하는 사람도 당론(黨論)과 무관하게 투표할 수 있다고 본 거죠. 하지만 비밀투표 법안, 권은희안 모두 부결됐어요. 여당이 내놓은 공수처 법안에 160명이 찬성표를 던져 통과됐는데, 호남 국회의원 중에서 제가 유일하게 반대했어요. 그 바람에 욕도 먹었죠.”
 
  ― 새보수당은 창당할 때부터 보수통합을 생각한 겁니까.
 
  “꼭 그랬던 건 아닙니다. 새보수당 입장에서 ‘경우의 수’는 여러 개가 있었어요. 통합, 연대, 독자노선까지요. 하지만 국민 여망은 통합에 있었어요. 공수처법이 통과된 후 하루 동안 고민하다가 오신환 원내대표에게 요구를 했지요. 통합에 창구 역할을 맡게 해준다면 새보수당 창당에 참여하겠다고요. 그래서 ‘새보수당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통합 창구를 나에게 달라’고 했어요. 유승민·하태경 의원의 동의를 받아달라고 해서 동의도 받았어요. 전주 회군(回軍) 후 통합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1월 14일 혁신통합위원회(혁통위)가 만들어졌어요. 한국당 2명, 새보수당 2명, 전진당 1명, 장기표씨 등 재야 인사 4~5명으로 구성됐는데 그때부터 파열음이 있었어요.”
 
  ― 어떤 파열음이죠.
 
  “우선 위원장 선임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들어가기 전에 이미 박형준 위원장이 선임된 상태였어요. 우리 쪽에서 정병국 의원이 개인 자격으로 혁통위에 참여하고는 있었어요. 근데 새보수당의 의지를 확인하지 않고, 박형준씨를 위원장으로 하는 혁통위를 구성하게 되었어요. 새보수당 내부에서 ‘박형준 불신임안을 내자’는 얘기도 나왔던 게 사실입니다. 그 외에 ‘국회의원에 출마할 사람이 위원으로 들어와선 안 된다’는 얘기도 있었고요. 그럼 보수통합의 진정성이 훼손되잖아요. 국민에게 감동도 줄 수 없고요.”
 
 
  왜 한국당 아바타 노릇을 하나
 
2020년 1월 9일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 및 보수·중도 진영에 속한 정당·시민단체들이 혁신통합추진위원회(통추위)를 구성하는 데 합의한 뒤 통추위 위원장으로 선출된 박형준 전 국회사무총장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정병국 의원은 나중에 혁통위에서 나오지 않았나요.
 
  “그 무렵 정병국 의원은 유승민 의원과 사이가 안 좋았어요. ‘왜 네 마음대로 하느냐’는 거였죠. 유승민 의원 입장에서는 ‘당의 내락이 없는 상태에서 왜 박형준과 보조를 맞추느냐. 왜 개인 자격으로 참여해놓고 박형준을 위원장에 선임되도록 했느냐’ 뭐 이런 취지의 불만이었던 거 같아요. 그런 갈등이 생긴 겁니다. 결국 정병국 의원은 뒤로 빠졌어요. 난상토론 끝에 제가 혁통위에 참여하게 됐죠.”
 
  ― 박형준 위원장을 둘러싼 불만은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우선 박형준 위원장 사퇴는 말이 안 됐죠. 우리가 혁통위 참여하기 전에 위원장 선임이 이뤄진 거잖아요. 기자회견을 통해 위원장 선임에 나섰던 한국당의 사과를 받는 선에서 위원장 추인(追認)을 해주자는 중재안을 냈어요. 혁통위원 중에 출마를 염두에 둔 세 명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은 혁통위원에서 배제하자는 제안도 했고요.”
 
  ― 세 명은 누굽니까.
 
  “안형환·신용한·김은혜 위원이 빠진 거죠. 그렇게 정리가 된 다음에 혁통위가 본격적으로 출범한 겁니다. 근데 우리 새보수당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유승민 의원은 본인이 새보수당을 창당했으니까, 창당을 하면서 통합하는 게 조금 안 맞잖아요.”
 
  ― 유승민 의원 입장에선 난감한 상황이었겠네요.
 
  “그렇죠. 그래서 다른 한편으로는 통합에 조금 미온적일 수밖에 없었죠. 혁통위의 물결에 같이 헤엄치고 가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나는 어찌 됐든 ‘같이 가야 한다’는 입장이었고요. 그러다 보니 새보수당 내에서 파열음이 났던 거죠.”
 
  ― 그 와중에 김형오 전 의장이 공관위원장으로 선임됐죠.
 
  “그게 1월 15일이었죠. 박형준 위원장이 우리 당에 ‘김형오 공관위원장 선임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선거가 얼마 안 남았는데 ‘공천 작업 진행은 양해해줘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운 거죠. 그랬더니 지상욱 의원이 박 위원장을 겨냥해 ‘왜 한국당 아바타 노릇을 하느냐’고 따졌죠. 지상욱 의원이 ‘박형준 위원장 사퇴하라’고 대변인 성명을 내는 바람에 지 의원과 내부 갈등이 증폭됐습니다. 제가 ‘박형준 위원장 사퇴 요구는 지나치다. 판 깨려고 하는 것이냐’고 지 의원을 설득했고, 지 의원은 혁통위원에서 사퇴를 합니다. 제가 총대를 멘 거죠. 지 의원 후임은 유의동 의원이 맡았죠.”
 
 
  ‘양당 협의체’를 둘러싼 밀고 당기기
 
2020년 1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로운보수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하태경 책임대표와 공동대표단 등이 인사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지상욱, 유의동, 하태경, 오신환, 정운천 의원.
  ― 하태경 의원이 ‘양당 협의체’를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는데, 그 과정은 어떻습니까.
 
  “양당 협의체는, 혁통위에 통합을 맡기는 건 어려우니 신설 합당을 위해 한국당과 새보수당이 직접 통합 협상을 진행하자는 취지로 나온 제안입니다. 그 얘기가 나온 게 1월 15일이었어요. 양당 협의체와 별개로 혁통위 회의는 죽 이어갔는데, 1월 20일까지 한국당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20일 하태경 의원이 최후통첩을 했죠. ‘(한국당이) 양당 협의체 안 받으면 우린 빠지겠다’고 한 겁니다. 큰일이 난 거죠.”
 
  ― 하태경 의원이 독자적으로 한 건가 보네요.
 
  “그런 셈이죠. 한국당 입장에서 양당 협의체를 받을 수 없었던 게 대통합을 얘기하고 있었으니까요. 새보수당하고만 통합하면 양당 협의체가 필요하지만, 보수 전체를 위해선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됐죠. 양당이 해버리면 박형준 위원장은 또 뭐가 됩니까. 4시간 장고(長考) 끝에 제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하태경 의원이 내놓은 양당 간 협의체는 양당 간 신설 합당을 위한 실무논의를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협의체 구성에 대한 시기와 공개·비공개 여부는 양당 간에 조율해서 결정한다’는 거였습니다. 그럼 통합은 통합대로 진행하면서 협의체 구성에 따른 시기는 언제든 뒤로 미룰 수 있으니까요. 양측에 명분을 준 겁니다.”
 
  ―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낸 겁니까.
 
  “통합으로 가야 하는데 깨져선 안 되니까요. 안 깨지게 하면서 양당 협의체를 받아야 하는데 ‘방법이 뭐냐’를 놓고 고심하다가 나온 겁니다. 결국 한국당에 숨 쉴 틈을 만들어준 동시에 박형준 위원장의 동의도 받을 수 있었죠. 제가 박형준 위원장에게 전화를 해서 제 아이디어를 전했고, 한국당 쪽에도 연락해 ‘빨리 황교안 대표에게 양당 협의체 받을 것을 보고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1월 20일 자유한국당의 박완수·이양수·김상훈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양당 협의체를 수용하겠다는 발표를 합니다.”
 
 
  유승민 의원과 高聲 오가기도
 
  ― 양당 협의체는 누구의 아이디어였습니까.
 
  “저하고 하태경 의원 아이디어였죠. 유승민 의원이 통합에 미온적이니까 저하고 하 의원이 양당 협의체를 만들어 유승민 의원이 대표 역할을 해달라고 한 겁니다. 유승민 의원을 통합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거였죠. 근데 저는 하 의원이 ‘양당 협의체를 자유한국당이 받으라’고 최후통첩까지 할 줄은 몰랐죠. 최후통첩을 한국당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통합은 끝장나는 거였어요. 저는 통합은 통합대로 진행하면서 양당 협의체도 모양새 있게 끌고 가야 하는 입장이었고요.”
 
  ― 한국당과의 창구는 언제 생긴 겁니까.
 
  “유승민-황교안 창구가 그 이튿날인 1월 21일 생겼습니다.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메신저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을 만큼 아주 극비리에 이뤄졌습니다. 그건 우리도 모릅니다. 협상이 공개되면 안 되니 완전한 비공개로 갔어요. 1월 26일 새보수당 5인 공동대표가 만났어요. 5인 공동대표가 당에 관한 법적 권한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때부터 통합에 따른 갑론을박이 이뤄졌죠. 그때 유승민 위원장이 연대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것은 안 된다고 통합으로 협상을 해야 된다고 의견이 모였습니다. 그렇게 열흘간 시간이 흘렀어요.”
 
  ― 어떤 갑론을박이 오갔습니까.
 
  “사생결단(死生決斷)에 가까운 얘기가 오간 건 2월 5일입니다. 이날이 결정적인 날입니다. 저는 ‘그간 통합 논의에 별다른 소득이 없었고, 연대 얘기만 오갔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저하고 유 의원 둘 사이에 격론(激論)이 오갔습니다. 목소리 톤도 올라갔고요. 저는 유승민 의원한테 ‘새보수당이 유승민 사당(私黨)은 아니지 않으냐’며 ‘통합이 아닌 연대로 가면 안 된다’고 했죠. 공교롭게도 유 의원도 이날 연대 얘기를 꺼내더라고요. 하태경 의원은 유승민 의원에게 ‘우리(5인 공동대표)가 당의 실질적인 대표이기 때문에 통합을 거부할 거면 탈당하라’고도 말했어요. 사실 제가 그 이틀 전에 ‘연대로 가지 않게끔 확실하게 하라’고 하태경 의원 등에게 못을 박아둔 상태였거든요. 그러니까 ‘탈당할 거면 유승민이 탈당해야 한다’고 다들 목소리를 높인 거죠.”
 
 
  여긴 유승민 의원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다
 
2020년 1월 7일 황교안(오른쪽에서 둘째)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국회에서 새로운보수당 하태경(왼쪽에서 둘째) 책임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 황교안 대표는 유승민 의원이 내세운 ‘보수 재건 3원칙’을 수용한다는 뜻을 밝히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당내 반발로 유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왼쪽부터 새보수당 정운천 공동대표, 하 대표, 한국당 황 대표, 김성원 대변인.
  ― 유승민 의원은 새보수당을 지키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럼요. 유승민 의원의 행보를 보면, 통합을 통해서 얻을 건 없다고 본 거 같아요. 나름대로 ‘보수 3원칙’을 내걸고 혁신도 했는데, 그런 부분을 한국당 쪽에 전달했지만 반응은 별로 없고…. 유 의원 입장에선 ‘그럴 바엔 우리가 자강해 연대하는 게 낫지 않으냐’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럼 유 의원 입장에선 모든 걸 보호할 수 있으니까요. 근데 협상을 잘하지 못해 그냥 흡수통합을 해버리면 본인의 존재 의미가 없어지잖아요. 나름 갑갑했겠죠. 아예 연대가 아니라 통합으로 가자고 했으면 그 방향으로 죽 갔을 텐데, 그건 또 아니었으니까요. 제가 유승민 의원한테 ‘전주 회군할 때 그냥 한 게 아니다. 보수 대통합은 국민의 명령이고 시대의 소명이다. 누구 한 사람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건 용서가 안 된다’고 그랬어요.”
 
  ― 그랬더니 유승민 의원은 뭐라고 하던가요.
 
  “유승민 의원은 우리처럼 큰소리를 내지 못했어요. 워낙 통합파 목소리가 세니까요. 통합파들은 ‘여긴 유승민 의원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니 나가시오’라는 식으로 대응했죠. ‘우리 5인 공동대표가 결정할 테니까 그렇게 아시오’라고도 했고요.”
 
  ― 5인 공동대표는 다 통합에 찬성하는 쪽이었나요.
 
  “저를 포함해 오신환·유의동·하태경·정병국 의원은 찬성하는 입장이었지만, 지상욱 의원은 유승민 의원과 궤를 같이하는 편이었죠. 이혜훈 의원은 연대 쪽에 무게를 뒀고요.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운천·정병국은 완전통합, 준(準)통합파는 오신환·하태경, 통합이 싫진 않지만 유승민 말을 따라야 하는 쪽이 유의동·이혜훈·지상욱이었습니다. 이렇게 3개 파벌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저는 비(非)통합파까지 다 아울러야 하는 입장이었고요. ‘3일 정도는 유승민한테 통합에 필요한 시간을 주자’고 결론을 냈고, 마침내 2월 9일 유승민 의원이 신설 합당 추진과 함께 불출마 선언을 했죠.”
 
 
  당신이 사는 길은 이순신이 되는 길… 死卽生 하라
 
정운천 의원(왼쪽)과 유승민 의원.
  ― 유승민 의원이 통합과 불출마 결단을 하기까지 당초 예상보다 시간이 좀 걸린 거네요.
 
  “원래 ‘설(1월 25일) 전에 불출마 선언을 해 설 밥상에 뉴스가 올라가도록 하자. 그날을 유승민의 날로 만들자’고 했는데, 결국 2월 9일까지 간 거죠.(웃음) 유승민 의원은 불출마 기자회견 후, 모든 권한을 5인 공동대표에게 줬습니다. 우리는 발 빠르게 통합에 대처할 수 있었고, 2월 14일 천신만고 끝에 합당 결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전에 저는 대구로 유승민 의원을 찾아가 장시간 간절히 얘기한 적도 있어요. ‘당신이 사는 길은 이순신이 되는 길’이라고요. 사즉생(死卽生·죽으려고 하면 산다)을 하라고 한 거죠. 유승민 의원을 보니까 그때도 내려놓을 생각이 있었어요. 심지어 유승민 의원한테 ‘우리 둘이 불출마 선언 하자’고 했어요. ‘당신이 원한다면 해주겠다. 나는 보수 대통합을 전제로 했을 때에는 전주고 뭐고, 그 어떤 기득권도 내려놓을 각오가 돼 있다’고 했죠.”
 
  ― 유승민 의원도 속으론 고민이 참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유승민 의원이 어려운 시기에 결단함으로써 모든 걸 내려놓아 살아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대권 주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가 된 거죠. 저는 사즉생을 강조했어요. ‘어영부영하면 죽는다. 사는 길은 사즉생뿐이다.’ 난 개인적으로 사즉생을 해봐서 알아요. 제 인생은 ‘사즉생의 인생’이거든요. 2008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으로 있을 때 광우병 사태가 났잖아요. 당시 시위가 얼마나 심했습니까. 그때 목숨 걸고 서울시청 앞 시위대 속으로 뛰어든 것도 그렇고요. 전주라는 불모지에 내려간다는 것도 어디 쉬운 일인가요. 그런 경험이 많기 때문에 유승민 의원이 사는 길은 그 길이라고 본 거죠. 타이밍이 조금 늦긴 했지만 유 의원의 결단은 높이 삽니다. 대단한 결단을 한 겁니다. 유 의원에게 쌓였던 감정들은 다 사라졌어요.”
 
 
  보수통합에서 在野는 울타리 역할 해야
 
장기표 국민의소리 공동대표는 통합 논의에서 빠지겠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정운천 의원의 설득으로 다시 통합에 참여했다. 사진은 2019년 9월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3번 출구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퇴직 촉구 시민단체 연합 출범집회에서 발언하는 장기표 대표.
  ― 장기표(국민의소리 공동대표) 측에서 통합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있었잖아요.
 
  “2월 13일 장기표 등 재야(在野) 보수 인사들이 (통합 논의에서) 빠지겠다고 그랬죠. 그분들이 빠지면 또 반 토막이 나는 거잖아요. 개인적으로 장기표 대표가 날 좋아해요. 그 다음 날 장기표 대표를 만났어요. ‘신당 창당을 한다고 하면 모든 제(諸) 정당이 해산하고 창당을 하는 게 맞다. 그럼 여러분이 어느 정도 참여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신설 합당이다. 이건 각 당이 합치는 거다. 거기서 재야는 울타리 역할을 해주실 수밖에 없다. 울타리 역할을 넘어 공관위나 지도체제 참여를 조건으로 내세울 순 없다. 이건 정당 인사들이 하는 거다’라고 말했어요.”
 
  ― 생각의 차이가 있었군요.
 
  “그렇죠. 우린 신설 합당이잖아요. 그래서 장기표 대표에게 우선 그 부분을 설득시켰어요. ‘장 대표가 여기 울타리 역할 좀 해달라. 큰 숲을 보며 대의(大義)를 우선해달라. 그리고 (통합을 하면) 선대위로 갑시다’라고요.”
 
  ― 쉽사리 동의를 하던가요.
 
  “쉬운 동의는 아니었고, 잘 경청해줬죠. 솔직히 문재인 정권을 잘 알고 때릴 수 있는 두 사람이 있다면 그건 진중권하고 장기표입니다. 그쪽 진영에 있었던 분들이잖아요. 우리가 100번 얘기하는 것보다는 두 사람이 하는 게 낫죠. 그런 분이 오셔서 같이 어깨동무를 해줘야 국민들이 진정성을 압니다.”
 
  ― 장기표 대표의 선대위 합류는 황교안 대표 측과 얘기가 된 겁니까.
 
  “그럼요. 통합신당준비위원회 공동위원장 5명 중 장기표씨가 있잖아요. 2월 17일 미래통합당 출범식 이후 장 대표와 통화를 했죠. ‘출범식에 대의를 위해 참석해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장 대표가 ‘정운천 의원님이 해주신 말씀, 황교안 대표와 통화한 것 등을 고려해 결정했다’고 하더라고요. 일이라는 게 뒤에서 이끌어내고 집중하는 사람이 해내는 겁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또 하나 문제가 생겼어요.”
 
 
  고심했던 미래한국당行
 
  ― 그게 뭡니까.
 
  “미래한국당에 현역 의원 4명이 있는데, 추가로 1명이 더 와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그 1 명이 안 온다고 한 거예요. 저더러 오라고 하는데 통합 작업 때문에 제가 갈 수 없는 상황이었죠.”
 
  ― 그건 누가 제안한 겁니까.
 
  “박완수 미래통합당 사무총장하고 한선교 미래한국당 대표가요. 두 사람이 ‘기왕에 전주에서 회군을 했으면 호남을 살리면서 전국정당화를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정운천이 와야 한다’고요. 그래서 일단 통합 때문에 못 간다고 했어요. 그게 2월 11일이었어요. 제가 2월 14일까지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데 못 간다고 한 거죠. 결국 통합 작업이 사실상 끝난 상황인 2월 14일 가기로 최종 결정한 겁니다.”
 
  ― 미래한국당에 간 이유는 뭡니까.
 
  “지역 정치를 타파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입니다. 저는 선거 때마다 끊임없이 석패율제를 주장했어요. 지역 정치를 깨려고요. 석패율제를 제도화해야 호남에서도 우리가 국회의원 몇 명은 배출할 거 아닙니까. 근데 패스트트랙에서도 석패율제는 최종 단계에서 빼버렸더군요. 민주당이 자기들이 손해볼까 봐 뺀 거 같아요.”
 
  ― 여당은 왜 미래한국당행(行)을 비판하는 겁니까.
 
  “팔려갔다고요.(웃음) 꼼수 부렸다는 건데 말이 안 되죠. 지금의 비례정당이 나오게끔 선거법을 주도한 게 여당 아닙니까. 그러면서 비례정당 만든 게 선거법을 훼손하는 거라고 주장하는 건 억측이죠. 사실 제가 미래한국당에 안 갔으면 그 당이 국고보조금도 못 받고 쪼그라들었을 텐데 제가 참여해서 보조금을 5억7000만원이나 받게 됐으니까 여당 입장에선 곱게 보일 리가 없죠. 전주 지역 민주당·정의당 당원들도 미래한국당으로 갔다고 저를 비난하더라고요.”
 
  ― 사실 지역주의 타파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도 주장해온 건데요.
 
  “그러니까요. 화가 나죠. 지금 불출마한 사람들이 비례정당에 가야지 왜 안 가는지 모르겠어요. 희생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나는 공짜로 뭘 얻을 생각이 없습니다”
 
2016년 4월 13일 실시된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승리한 새누리당 정운천(전주을) 당선자가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당시 정운천 의원은 이정현 의원(전남 순천)과 더불어 호남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후보였다.
  ― 어려운 시기에 어려운 결단을 했다는 얘기군요.
 
  “옛날에 정운천, 이정현이 당선되면서 보수가 호남에서 15%까지는 지지를 받았어요. 이번에 보수에서 호남에 출마할 사람은 없는 거 같아요. 내 욕심이지만 전남, 전북, 광주에서 한 명씩 세 명은 나와야죠. 정 안 되면 두 명이라도요. 중요한 건 호남에 거주하는 550만명만 생각할 게 아니라 수도권에 거주하는 호남인들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겁니다. 수도권에 호남인이 호남의 3배가 거주하고 있어요. 그들을 배려해야죠. 2010년 전북도지사 출마해서 18% 얻고 낙선한 뒤, 2012년 총선에서 저더러 비례대표로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전주 출마를 원했어요. 공짜로 뭘 얻을 생각이 없습니다.”
 
  ― 험로(險路)만 걸은 거네요.
 
  “제가 농업으로 시작해 25년을 올곧게 걸어 장관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치권에서 좋은 일을 해야죠. 그중 제1과제가 앞서 말한 지역 벽을 깨는 겁니다. 지역 벽을 깨기 위해 ‘10년 계획’을 세웠습니다. 저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호남에서 두 번 떨어지고, 2016년 당선됐습니다. 10년을 생각하고 하는 사람은 하루만 보고 사는 사람들과 다르게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 아까 무소속 출마 얘기를 했는데, 최대 지지율이 얼마까지 나오던가요.
 
  “40%까지는 나오더라고요. 한국당이나 미래당 소속으로 가면 20~25%밖에 안 나오고요. 그쪽은 3~4명이 나오는 곳이라 40%면 당선 안정권입니다. 지난 선거 때 37.5%를 얻어 당선이 됐거든요.”
 
  ― 처음 불출마 결심을 했을 때 집안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사실 아내는 출마에 따른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불출마 결심을 하니까 아내는 바로 올라오지 못하고 전주에 일주일가량 더 있었어요. 수습을 해야 하니까요. 주변에 인사도 해야 하고요. 아무리 출마를 안 한다고 해도 그렇게 하는 게 주민들에 대한 예의죠.”
 
  ― 만약 21대 국회에 등원한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이 뭡니까.
 
  “공수처법과 공직선거법을 폐기하고 석패율제를 법제화할 겁니다.”
 
  한편 한선교 미래한국당 대표는 3월 11일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운천 의원은 보수당 소속으로 호남에서 힘겹게 정치를 해와 업적을 인정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 의원의 비례대표 공천을 강하게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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