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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박항서 감독을 베트남에 ‘수출’한 이동준 디제이매니지먼트 대표

“나는 ‘스포츠 개발업자’… 시장은 한국만이 아니다”

글 : 장원재  배나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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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 때까지 태권도 선수, 고교 때 축구하다 부상당한 후 ‘운동선수들에게 교육·직업 제공하는 일’에 관심
⊙ 2010년 FIFA 에이전트 자격 취득… 미래에셋 스포츠마케팅 부서에서 경험 쌓아
⊙ 홍명보 감독 중국 진출, 욘 안데르센 감독 초빙 등 성사시켜

李東俊
1985년 출생.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 미래에셋자산운용 홍보실 근무(스포츠마케팅, 광고, 언론). 現 (주)디제이매니지먼트 대표, (주)인스파이어드아시안매니지먼트 대표, 대한축구협회 공식 중개인, 한국스포츠에이전트협회 정회원, FIFA 에이전트
사진제공=인스파이어드아시안매니지먼트
  이 정도면 폭풍을 넘어 태풍이다. 베트남의 박항서 현상 이야기다. 현지 한인(韓人)들 사이에서는 “외교관 100명이 100년 걸려도 하지 못할 일을 박 감독이 해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영웅’ 박항서 감독을 베트남 축구협회와 연결한 인물이 있다. 이동준(李東俊·34) 디제이매니지먼트/인스파이어드아시안매니지먼트 대표다. 홍명보 감독의 중국 슈퍼리그 항저우 그린타운 감독 부임, 정해성 감독의 베트남 HAGL 감독 부임, 백지훈, 김동진 등 노장(老將) 선수들의 홍콩 프로팀 입단 등을 성사시킨 주역이다. 전 북한 대표팀 감독이던 욘 안데르센 감독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초빙한 사람도 이 대표이다.
 
  직접 고용하고 있는 직원이 15명이 넘는 청년 CEO. 청년 취업이 국가적 관심사인 현재,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곳에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성공사례를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의 사무실이 자리한 효창운동장 인근 카페에서 그를 만난 이유다.
 
  ― 축하합니다. 박항서 감독님 일로 요즘 정말 많이 바쁘겠군요.
 
  “놀랍고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축구 덕분에 베트남 사람들에게 한국이 ‘제일 좋아하는 나라’가 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축구’만의 공로는 아닙니다. 베트남에서는 20년 전부터 한국 드라마가 인기였고 10년 전부터는 K-POP이 유행이었죠. 그동안 누적된 콘텐츠가 축구를 계기로 한꺼번에 분출한 겁니다. 한국이라는 브랜드와 이미지가 이제 베트남 사람들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선까지 올라섰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스토리와 콘텐츠가 결합한 문화상품의 유통량이 늘어나면 소비자들의 행복지수도 올라갑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과 베트남이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이 생긴 거죠.”
 
 
  이근호의 유럽 진출 시도
 
2017년 10월 10일 하노이에 도착한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오른쪽이 이동준 대표.
  이동준은 중학생 때까지 태권도 선수였다. 인천 지역의 소문난 유망주였다. 고등학교 진학 시 특기자 진학을 포기하고 일반고로 입학하면서 선수 생활을 접었다. 고2 때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무릎의 성장판이 부서지는 큰 부상을 당한 것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입원했는데 같은 병원에 재활 중인 운동선수들이 많았습니다. 그곳에서 실패한 선수들의 삶이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본인뿐 아니라, 뒷바라지를 하던 가족 전체의 삶이 어려워지는 거죠. 부모님 노후(老後) 자금을 다 투자했는데 자식은 할 줄 아는 일이 운동 말고는 없고 운동으로 성공할 길은 막혔고…. 그래서 그들에게 교육과 직업을 제공하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성균관대 경영학과에 입학하고 군 복무를 마친 후 바로 FIFA 에이전트 시험을 준비했다. 두 번 도전 끝에 2010년 4월에 합격. 말을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했던가, 자격증을 보니 바로 일이 하고 싶어졌다.
 
  “친구의 친구인 이근호 선수에게 연락했죠. 유럽에 진출할 의사가 있냐고. 이근호 선수 매니지먼트사에서는 본인들의 네트워크가 없는 유럽 빅리그와 접촉하는 것은 오케이라고 하더군요. 위임장을 받고 바로 스페인으로 날아갔습니다.”
 
  ― 스페인에 연고가 있었나요.
 
  “전혀 없었습니다. KOTRA, 외교부, 스페인의 모든 구단 등, 이메일 주소를 뒤져서 일일이 수백 통의 소개서와 제안서를 보냈죠. 청와대 신문고까지 활용했습니다. ‘이런 일을 하려고 하는데 응답이 없다, 도와달라’고요. 신문고 청원이 연결이 되었는지, 스페인 대사관에서 한 분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분 연락처만 들고 간 거죠.”
 
  당시 이근호 선수는 일본 J리그 주빌로 이와타에서 뛰고 있었다. 일본에 거주하던 지인에게 구단 홍보 비디오 구입과 배달을 부탁하고 이근호 선수가 나온 부분과 최신 경기 영상을 편집해 CD 300개를 만들고 스페인 구단을 찾아가 하루종일 버티기를 하며 자료를 뿌렸다.
 
 
  미래에셋 다니며 빵집 아르바이트
 
  “두 곳으로부터 오퍼를 받기는 받았는데 최종 이적(移籍)으로 성사되지는 못했습니다. 중동이나 일본 구단의 제안이 2배 이상 좋았거든요. 자신감이나 열정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그쪽에서도 무작정 돌격하는 동양 청년이 신기해서 만나준 건데, 비즈니스를 언제나 이런 식으로 할 수는 없잖습니까.”
 
  그래서 생각한 길이 취업이다. 2010년 9월 미래에셋자산운용에 FP(Financial Planner)로 지원하고 최종면접 때 “스포츠 마케팅이 평생의 꿈이다. 은퇴한 운동선수들 자산관리를 해주고 싶어 지원했다. 내 회사를 하기 전에 이곳에서 제대로 일을 배울 생각이다”라고 했다. 박현주 회장이 ‘독특한 친구가 왔네’라며 정말로 스포츠 마케팅 부서로 발령을 내줬다.
 
  “3년간 신지애・브리타니 린시컴・김세영 등 미래에셋이 후원하는 골프 선수들 관련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에이전트 회사나 스포츠 업계의 사정, 업무 특징 등에 대해 많이 배웠죠. 살아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스페인에서 실탄을 다 소진한 탓에 자기 일을 시작할 자본이 없었다.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투잡(two job)을 뛰기로 했다. 프랜차이즈 회사에 들어가 제빵과 커피 만들기 교육을 받고 퇴근 후 매일 매장에 나가 심야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미래에셋 직원들이 제 몸에서 늘 갓 구운 빵 냄새가 난다고 할 정도였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이 일이 은퇴한 선수들 재취업 업종으로는 그만이다’ 싶어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나중에 창업 지원을 할 계획을 가지고 모든 업무를 다 살펴봤습니다.”
 
 
  “스포츠 비즈니스는 결국 콘텐츠 사업”
 
  2012년 8월, 예비 사업가 이동준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터진다. 한국 축구의 쾌거, 런던올림픽 동메달이다.
 
  “축구가 저한테 말을 거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그만 축구로 돌아오라’고…. 창업을 준비 중이던 누님을 설득하고 제 저축을 보태서 회사 앞에 오피스텔을 하나 임차했습니다. 거기를 회사로 등록하고 퇴근 후 축구 일에 매달렸죠. 시장 조사를 하다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첫째, ‘스포츠 비즈니스는 결국 콘텐츠 사업’이라는 겁니다. 매체 중심이 신문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도 청년들은 늘 스포츠 기사와 연예계 소식을 소비하잖습니까. 미디어나 디바이스가 핵심이 아니라는 거죠.
 
  둘째는 이익을 낼 수 있는 시장을 찾고 자산운용의 성공원리를 대입(代入)해서 블루오션을 개척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 시장을 주목했습니다. 일단 K리그에서 은퇴 직전인 선수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수출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금요일 퇴근 후 저가항공 밤 비행기를 타고 중국・태국・홍콩에 도착, 토요일에 축구 경기를 보고 관계자들에게 명함과 경력을 전달, 월요일 새벽에 귀국해 공항에서 바로 회사로 출근하는 생활이 반년 정도 이어졌다. 2012년 겨울, 드디어 중국에서 선수를 소개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강원FC와 연장계약이 불발된 김태민 선수를 중국 충칭 FC에 입단시켰다. 사업가 이동준의 첫 작품이다.
 
  “김태민 선수는 2012시즌에 K리그에서 26경기 이상을 출전했습니다. 내구성(耐久性)은 입증된 셈이죠. 수비형 미드필더이면서 센터백도 볼 수 있어서 중국에서는 희귀한 유형이었습니다. 그 가치를 입증하는 자료를 만들어 구단에 보냈습니다. 검토 후 바로 ‘좋다, 계약하자’고 하더군요. 연봉도 한국에서보다 3배나 더 받았습니다.”
 
 
  자산운용사 방식 도입
 
  이동준은 자산운용사의 방식으로 자료를 만들었다. 아시아 각국 리그에서 뛰고 있는 역대 외국 선수들의 연령・출전시간・포지션・몸값・가격 대비 성적 등을 일일이 도표와 그래프로 제작했다. 그리고 본인이 수출하고 싶은 선수의 가치를 객관적 수치로 자료화하고 직접 편집한 플레이 동영상을 첨부해서 구단들과 접촉했다.
 
  김태민 선수가 투자액을 뛰어넘는 활약을 보여주자 중국 다른 구단들에서도 연락이 왔다. 그 결과가 손대호・김근철・김동진・장경진 등 K리그에서 현역 연장이 어려웠던 선수들의 중국 진출이다.
 
  축구 관련 일이 늘어나니 회사 업무와 병행이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2013년 5월에 사표를 냈다. 본격적으로 축구에만 매달리며 홍콩・베트남・태국・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시장 개척에 나선 것이 그 무렵이다.
 
  “인구 구성비로 보나 대체재(代替財)가 없다는 점에서 동남아 축구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했습니다. 2014년에 태국 1부 리그로 진출한 한국 선수가 15명인데 제가 성사시킨 계약이 5건이었습니다.”
 
  정확한 선수를 정확한 사람에게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성공 비결이었다. 선수를 수출하니 이번에는 K리그 경기를 수출하고 싶었다. 동남아 구단주 중 방송국 관계자도 있어 이야기를 전달하니 긍정적인 피드백이 왔다. 피아퐁(태국·1985년 K리그 득점왕) 감독의 도움을 받아 정규편성 시간까지 받았지만 방송은 불발됐다.
 
  “위성사용료가 한 경기당 3000달러쯤 됩니다.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가 문제였죠. 태국에서는 다운링크 비용은 자기들이 낼 테니 한국에서 업링크 비용을 내라고 했습니다. J리그는 당시 모든 비용을 자기들이 부담하고 동남아에 생중계를 하고 있었거든요. 태국 방송국과의 협상이 무산되었을 때 베트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2015년 8월의 일이다. 기회를 준 것이 고마워 10경기 위성사용료 3만 달러를 자비(自費)로 부담했다. 기회를 놓치기 싫었고, 이 비용을 대겠다고 한 스폰서가 단 한 군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K리그 생중계는 의미 있는 일이었으나 시청률은 0.4%에 그쳤다. 베트남 축구 전문가들이 ‘좋은 경기를 보여줘서 고맙다’며 감사인사를 전해왔지만 상업적으로는 완벽한 실패였다.
 
 
  “네가 스타 된 뒤, 부가가치 나누자”
 
이동준 대표가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시킨 쯔엉 뜨엔 아이 선수.
  “콘텐츠화에 대한 아이디어가 부족했던 겁니다. 그때 ‘스타’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죠. 제 꿈은 동남아 전체에 축구 한류(韓流)를 수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역발상을 했습니다. 베트남 선수를 K리그에 입단시키고 그 경기를 베트남에 중계하자고. 그래서 K리그에서 통할 만한 선수를 찾아보았습니다. 현재 박항서호의 핵심인 쯔엉 뜨엔 아이 선수죠. 중앙 미드필더인 쯔엉은 패스 능력이 좋습니다. 체격의 열세를 만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거죠. 게다가 미남이어서 여성 팬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2016년 인천 유나이티드에 쯔엉이 입단하자 베트남 전역에서 난리가 났다. 박찬호 선수 데뷔 무렵 한국에서 메이저리그 열풍이 불었던 것과 흡사했다. 기자들이 한국을 찾고 쯔엉의 근황이 거의 매일 베트남 TV에 나왔다. 그해 베트남 축구 최고인기상을 쯔엉이 70%의 압도적인 득표로 수상할 정도였다.
 
  ― 화제를 모으기는 했지만 쯔엉 선수가 경기 출전은 거의 못 했잖아요.
 
  “2군 경기 최다 골 득점자였지만 1군 경기는 단 4경기에 그쳤습니다. 당시 인천이 강등 전쟁을 벌이고 있어서 쯔엉에게 기회를 주기가 쉽지 않았죠. 이듬해 강원으로 이적해서도 여러 사정이 겹쳐 거의 출전을 못 했습니다. 너무 아쉬웠죠.”
 
  이동준은 2년간 쯔엉을 돌보며 이적 수수료는 물론, 커미션을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네 수입은 온전히 너의 몫이다”라고 했다. 대신 “너를 스타로 만들고 싶다. 스타가 된 뒤, 너로 인해 생기는 부가가치를 나누자”고 했다. 언젠가 광고 계약이 들어오면 50 대 50으로 수익을 나누자는 약속이었다.
 
  쯔엉의 K리그 프로젝트도 실패로 끝났다. 적자가 누적되어 곤란한 일도 생겼다. 하지만 무형(無形)의 자산이 이동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연이은 국제대회 성적 부진으로 코너에 몰려 있던 베트남 축구협회가 그에게 ‘한국인 감독 추천’을 의뢰한 것이다.
 
 
  박항서 수출
 
사상 최초의 외국인 북한 축구대표팀 감독이었던 안데르센은 UN의 대 북한 제재로 북한 축구협회가 더 이상 외화로 급여를 지불할 수 없게 되어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이동준에게 연락을 해왔다.
  “쯔엉이 그랬다더군요. 제가 아무런 조건 없이 2년 동안 자기를 헌신적으로 케어(care)해 줬다고. 나중에 들었는데, 방송 경비를 자비로 부담했던 것도 베트남 축협 관계자들이 저를 선택한 이유랍니다.”
 
  연락을 받고 바로 자료 분석을 시작했다. 베트남 축구협회가 원하는 지도자는 하위권 팀을 상위권으로 도약시키는 인물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적합한 후보자가 떠올랐다. 박항서 감독이었다. 박항서 감독에게 전화를 하고 “만약 동남아 국가대표팀 감독 제안을 받으면 가실 의향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대답은 예스.
 
  이 대표는 2시간 만에 미친 듯이 박항서 감독에 대한 자료를 만들어 베트남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아시안게임 대표 감독·국가대표 코치로 월드컵 2회 참가 경력에 덧붙여 “외국인 감독과 오랫동안 같이 생활을 했기에 문화적 적응력도 최고”라고 적극적으로 세일즈했다. 바로 전화가 왔다.
 
  “다 좋다. 딱 하나만 빼고. ‘이렇게 대단한 분이 왜 현재 3부 리그 격인 N리그 창원시청팀 감독을 하고 있느냐’고 기자들이 물을 거다. 준비한 답이 있나?”
 
  “있다. 창원시청은 박 감독 고향 팀이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처음 전화를 받은 지 12일 만인 9월 27일, 베트남 축구협회 수뇌부가 한국으로 총출동했다. 이동준은 2002년 월드컵 때 박항서 감독이 한국팀 수석 코치였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장소를 골랐다. 한국이 독일과 준결승전을 벌인 상암 월드컵경기장이다. 스카이박스에서 진행된 면접은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이어졌다. 축구 철학・각오・전술 등을 묻고 답하는 질의응답이 4시까지 이어졌고, 8시까지 코치 인선・급여・계약 기간 등을 조율하는 실무과정이 뒤따랐다.
 
  “창원시청이 10월 전국체전에 출전해야 하기에 당장은 부임할 수 없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너무나 아쉽지만 계약을 할 수 없다”는 박 감독의 대답도 책임감・신뢰성 면에서 오히려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 이후의 성공신화는 모두가 아는 바다. 베트남 현지에서 벌어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지만 지면 관계상 다음 기회로 미룬다. 홍명보 감독의 중국 진출 프로젝트, 욘 안데르센 감독의 K리그 정착기도 역시 ‘다음 기회에’다.
 
 
  “나는 스포츠 개발업자”
 
2017년 10월,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서 첫 기자회견을 하던 날, 베트남 1부리그 HAGL 구단이 정해성 감독을 감독으로 영입한다는 공식 발표를 했다. 계약식 당일 HAGL 관계자와 정해성 감독(사진 중앙), 맨 오른쪽이 이동준.
  이동준의 사업영역은 최근 들어 다방면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아시아에 관심이 있는 북유럽 리그와 선수・스태프・자원을 교류하는 작업, 말레이시아의 대학과 협정을 맺고 프로구단의 부름을 받지 못한 한국 선수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뒤 현지 프로구단 입단을 타진하며 은퇴 후의 생활도 설계하는 FC 아브닐 프로젝트, 여대생 동아리 축구대회를 열고 올스타 팀을 선발해 훈련과정과 해외 친선경기를 영상 콘텐츠로 제작하는 꽃길사커 플랜 등이 그 면면이다.
 
  ―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어떤 겁니까.
 
  “저는 스스로를 ‘스포츠 개발업자’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츠를 통해 교육, 인력의 수입·수출, 스포츠 부지 개발 및 도시재생 등을 수행하며 콘텐츠를 창출하고 부가가치를 높이는 사람이죠.
 
  한국 스포츠는 아직 금융과 제대로 만난 적이 없습니다. 정확한 수익모델과 실현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전 세계의 투자자들이 한국 스포츠를 찾아올 겁니다.
 
  또 하나, 시장은 한국만이 아닙니다. 경계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동남아 어느 나라 대표팀의 유럽인 감독을 한국 회사가 관리한다든가, 한국식 유소년 육성 프로그램을 중앙아시아에 수출할 수도 있는 겁니다. 아시아의 용, 한류의 본산이라는 브랜드파워는 대한민국의 자산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한국의 스포츠 문화 콘텐츠와 스토리를 동남아와 전 세계에 널리 퍼뜨리고 싶습니다.”
 
  무작정 찾아간 베트남 축구협회에서 다섯 번이나 문전박대를 당하고 서러운 마음에 인근 카페에서 혼자 흐느꼈다던 남자는 지금 한국 축구계 인사 가운데 동남아 및 중앙아시아에 가장 끈끈한 네트워크를 가진 인물이 되었다. 현재는 덴마크・노르웨이와 아프리카로도 사업 범위를 넓혀가는 중이다.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 시장을 개척하며 구단과 선수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중도에 운동을 포기한 청춘들의 미래도 챙겨주는 사람.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하면서 꾸준히 수익을 창출하는 사람. 그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곳에서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길을 만들었다. 국내외의 많은 사람이, 축구 관계자와 선수, 그리고 팬들이 그 덕분에 돈도 벌고 행복해졌다. 멋진 청년 이동준이 가는 길은 그래서 한국 축구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등반로 가운데 하나일는지 모른다. 그의 모험에 박수를 보낸다.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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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ㅅㅈㅎ    (2019-01-21)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멋있으십니다. 앞으로도 화이팅!

20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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