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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 10대 골프코스 선정위원 이상재 박사

“용평골프장은 김석원(쌍용 전 회장)이 만든 예술, 곤지암골프장은 구본무(故 LG그룹 회장)가 그린 동양화”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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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평리조트는 상업시설이 아니라 예술적인 작품에 가깝게 만들어”
⊙ “나의 붓은 불도저. 30만 평 골프장 위에 불도저라는 붓으로 그림 그려”
⊙ 故 구본무 LG회장, 그룹 청사진을 곤지암에서 그려
⊙ “골프장은 자연 속 또 하나의 자연. 주변 경관과 조화 이루도록 설계해야”
  사람들은 골프를 인생에 비유한다. 멋진 드라이버 샷으로 인생 한 방의 홀인원을 꿈꾼다. 그러다 해저드와 벙커에 빠지기도 한다.
 
  인생에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듯이 골프장도 마찬가지다. 홀 하나하나에 아기자기한 성공과 좌절을 맛볼 수 있게 설계해야 한다. 덮어놓고 코스가 어렵다고 좋은 골프장이 아니다. 잘 치면 점수가 좋고, 못 치면 점수가 나쁘도록 제 실력이 드러나야 한다. 때론 뒤집기 역전이 가능해야 좋은 골프장이다.
 
  조경학 박사인 이상재(李相宰·65)씨는 골프장 설계·시공·관리 파트에서 국내 권위자다.
 
  굴지 기업이던 쌍용양회가 만든 3곳의 용평골프장(용평나인GC, 용평GC, 용평버치힐GC)의 설계·시공·감리 매니저와 기술고문 등을 지냈다. 이 과정에서 쌍용그룹 김석원(金錫元) 전 회장을 만날 수 있었고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500만 평 일대에 조성된 거대한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직접 목도할 수 있었다. 이상재 박사는 “그(김석원)가 얼마나 용평리조트를 사랑하였는지, 그 사랑이 30여 년 후 결국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의 정광산 자락에 자리 잡은 곤지암골프장도 그의 손길이 담겨 있다. 골프장 기술 및 관리부장으로 일하며 1989년에서 95년까지 총 18홀 규모의 골프장을 시공·관리했다.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이 골프장은 LG그룹 고(故) 구본무(具本茂) 회장의 열정이 담긴 곳이다.
 
  이 박사는 “구본무 회장은 곤지암리조트를 너무 좋아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면 곤지암에 내려와 일요일 오전까지 머물렀다”고 말했다. 구 회장이 떠나자 유족들은 곤지암 인근에 ‘수목장’으로 매장했다. 고인의 뜻에 따른 것이다
 
  이상재 박사는 이외에도 100여 곳의 국내 골프장 시공과 감리, 관리운영 등에 관여했다. 현재 한국 10대 코스 선정위원이자 건국대 농축대학원 골프장·잔디전공 겸임교수이며 한국잔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지난 10월 4일 서울 강동구 고덕동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용평골프장과 쌍용 김석원 회장
 
1996년 7월 ‘다빈치에서 현대문명으로’전 개막식 후 전준엽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왼쪽 끝) 안내로 출품작을 관람하고 있는 이종덕 예술의전당 사장, 안병훈 당시 조선일보 전무, 김석원 성곡미술문화재단 이사장, 디마조 伊 무디마미술관장, 김석준 쌍용그룹회장.(왼쪽부터)
  이상재 박사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골프장은 용평골프장이다.
 
  “용평리조트에 가 보셨죠? 평창 동계올림픽의 본거지가 그곳이에요. 제가 스물아홉이던 1982년부터 골프장 프로젝트에 참여했죠. 골프장 디자인은 미국인 설계자가 하고 저는 시공과 감리·관리 운영 등을 총괄했지요.”
 
  1982년에서 88년까지 용평나인 9홀과 용평 18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용평버치힐 18홀 등을 만드는데 관리자로 일조했다.
 
  ― 골프장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만 3년은 걸립니다. 입지를 선정해 기본 디자인을 하고, 중간 중간에 ‘오너’에게 보고해 오케이 사인을 받아야 하는 절차들이 꽤 지난(持難)합니다. 잔디가 파릇파릇하게 자라야 하고 자연 경관, 코스 정비 등 준비기간이 필요합니다.”
 
  이 박사는 “용평리조트가 아시아 최고의 사계절 휴양지로 변신한 데는 쌍용 김석원 전 회장의 땀과 의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1980년대만 해도 쌍용양회에 취업하는 것이 요즘 삼성전자에 취업하는 것처럼 선망하는 직장이었어요. 쌍용이 잘나갈 때는 재계 랭킹 6위 정도였습니다.
 
  그 시절, 김석원 회장은 매주 용평(강원도 평창군 용평면)에 내려왔어요. 당시 대관령 길이 험했으나 매주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왔다가 일요일 오후, 혹은 월요일 아침에 서울로 갔죠.”
 
  외환위기(IMF)를 겪기 전인 1996년에 쌍용은 계열사 26개를 거느린 재계 4위의 그룹이었다. 계속된 이 박사의 이야기다.
 
  “김석원 회장은 수집광이었죠. 전 세계 온갖 유명한 자동차는 다 있었고 명품 오토바이, 산악 오토바이, 사막을 달리는 지프, 군용 차량들… 없는 차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김 회장이 쌍용자동차를 운영하게 됐잖아요. 그리고 그 쌍용차 때문에 IMF 때 어려움을 겪었고요.
 
  보세요. 할리데이비슨이라는 유명한 오토바이를 벌써 35년 전에 타고 다녔으니까요. 할리데이비슨을 선두에서 몰고 뒤에 10여 대 오토바이 무리가 뒤따르며 대관령 길을 달릴 땐 장관이었어요. 심지어 그 어른이 헬기를 직접 몹니다. 기업 중에 가장 먼저 전용 비행기를 구입했고요. 그 정도로 모험과 스릴을 좋아했습니다.”
 
  해발 700m 강원도 평창군 백두대간 청정 고원지대에 자리 잡은 용평리조트는 국내 최초의 종합 휴양지다. 골프장과 스키장, 콘도미니엄 등에 해마다 14만명의 해외 관광객이 머무른다고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과 동계아시아경기대회, 대관령 국제음악제, 국제인터스키대회, 국제알파인스키대회 등 많은 국제행사를 이곳에서 열었다.
 
  “제가 듣기로 김석원 회장은 쌍용의 창업주인 김성곤(金成坤·호는 省谷·1913~1975) 회장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쌍용을 맡게 됐는데, 그때 시작한 사업이 용평에 리조트 단지를 올리는 것이었다고 해요. 김 회장이 스물아홉 때입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죠. ‘애국하는 게 다른 게 아니다. 용평이란 곳이 외국인이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대단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말이죠. 그러다 보니 용평은 상업시설이 아니라 예술적인 작품에 가깝게 만들었어요.”
 
 
  용평 골프장에 붙은 ‘한국 최초’ 타이틀
 
용평골프클럽의 미국인 설계자인 로버트 트렌트 존슨 주니어(오른쪽에서 두번째)와 조형가 니클스. 왼쪽 끝이 이상재 박사다.
  이상재 박사는 “용평골프장에 ‘한국 최초’라는 타이틀이 많다”고 했다.
 
  “한국 최초로 양잔디(사철 푸른 잔디)를 깔았고 한국 최초의 남자 캐디를 고용했으며 한국 최초로 외국인이 조형(shaping·형태를 다듬는 것)하고 설계한 골프장입니다.
 
  용평나인과 버치힐 골프장은 로널드 프리임이란 분이 디자인했고, 용평골프클럽은 로버트 트렌트 존슨 주니어란 분이 맡았죠. 로버트는 세계 명문 100대 코스 10~20개를 만든 유명한 분이죠. 삼성이 운영하는 안양CC의 개·보수 설계도 이분이 맡았어요.
 
  골프장 설계자들은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화가는 작은 붓으로 그림을 그리지만 나의 붓은 불도저다. 최소 30만 평 위에 불도저라는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더군요. 이분들을 데려온 것도 김석원 회장의 의지 때문이죠. 김 회장에게 직접 들었는데 ‘내가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용평리조트만큼은 지키겠다’고 할 정도였어요.
 
  그는 매주 내려왔지만 눈만 오면 용평으로 왔어요. 제설차량인 유니목(Unimog)을 직접 몰고 허리춤엔 무전기를 차고서 제설작업을 진두지휘했지요. ‘니는(너는) 콘도 앞을 치우고, 니는 호텔 앞 진입로를 치우고…’ 이런 식으로 말이죠.
 
쌍용 김석원 전 회장은 용평골프장을 애정을 쏟아 만들었다.
  골프장 주변은 아름드리 금강송이 장관입니다. 낙락장송이라 부르잖아요. 김 회장은 나무 한 그루, 가지 하나도 함부로 자르지 못하게 했죠. 늘 하던 말이 ‘나무를 자르는 데는 5분, 10분이면 된다. 하지만 나무가 자라는 데는 50년, 100년이 걸린다. 니는 그것 생각해 봤나? 생각해 보고 잘라야 한다’고 할 정도로 자연을 사랑했죠.
 
  그런데 조경수목이 자라면서 햇볕을 못 봐 봄에 죽은 잔디가 많았어요. 가지치기라도 해야 했는데 김 회장 눈치를 보느라 감히 못하는 것이죠. 제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서 나뭇가지를 솎아낼 수 있었어요.”
 
  한때 김석원 회장은 건설, 금융, 자동차 등으로 사세를 확장했고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금배지를 단 일도 있다. 재계 4위 그룹에 올랐으나 IMF를 겪으며 2003년부터 아예 순위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 박사의 말이다.
 
  “한번은 김석원 회장이 그래요. IMF로 한참 힘들었을 때인데 ‘이제, 인천 앞바다에 배를 띄웠다’는 겁니다. 한숨 돌렸다는 뜻인 것 같았어요. ‘용평(리조트)만큼은 잘될 끼다(거다)’고 했는데 2003년에 결국 통일교로 넘어갔어요. 들리는 말로 김 회장은 삼성그룹에 용평리조트를 넘기려 했는데 통일교가 현금 베팅을 많이 했다고 해요.”
 
지난 1월 29일 김석원 전 회장의 공적을 기리는 조형물 제막식에서 김 회장(가운데)과 주민들이 기뻐하고 있다.
  지난 1월 2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을 열흘 앞두고 강원 평창군 올림픽스타디움에서 김석원 회장의 공적을 기리는 조형물 제막식이 열렸다. 불모지인 대관령 기슭을 동계스포츠의 요람으로 일궈 낸 김 회장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이날 행사는 대관령 일대 주민대표들이 위원회를 구성하고 뜻을 모아 이루어지게 됐다고 한다.
 
  “TV를 통해 휠체어를 탄 김석원 회장의 모습을 보고 놀라고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그분 아들인 김지용(국민대 이사장)씨가 평창 올림픽 한국선수단장을 맡았더라고요. 부전자전(父傳子傳)이더군요.
 
  평소에 듣기로 김 회장의 꿈은 은퇴해서 용평으로 돌아오겠다는 것이었어요. ‘골프장 잔디 키우며 스키 타고, 눈 오면 눈 치우고 살겠다’는 말을 제가 자주 들었습니다. 그 정도로 애착이 컸는데….”
 
 
  곤지암골프장과 故 LG 구본무 회장
 
LG그룹 故 구본무 회장이 사랑했던 곤지암골프장 모습이다.
  곤지암리조트는 중부고속도로 곤지암IC에서 4km 거리에 있다. 서울 강남에서 40분 만에 도착한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 수도권 최대 규모인 스키장과 476실의 콘도미니엄, 스파와 수목원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췄다.
 
  그중에서도 곤지암골프장은 남성적이고 도전적인 ‘마운틴 코스’와 여성적이고 섬세한 ‘레이크 코스’를 갖춘 32만평(106만 9667m²) 규모의 18홀이다. 이상재 박사는 곤지암골프장의 기술 및 관리부장으로 재직했다.
 
  ― 용평골프장을 다 만들고 곤지암골프장 건설에 참여한 것이죠?
 
  “고(故) 구본무 회장이 ‘제대로 만든 골프장이 용평골프장’이란 말을 듣고 저를 스카우트한 겁니다. 구 회장은 리조트 사업에 커다란 비전이 있었어요. 그래서 충남 태안의 안면도 땅을 다 사려 했어요. 헬기 타고 안면도를 많이 돌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남양주 마석 일대 100여만 평과 곤지암 일대 100여만 평을 샀어요. 훗날 안면도를 살 생각이었죠.
 
  정부가 손을 안 댔으면 다 샀을 겁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여신관리대상 기업은 비업무용 토지를 다 내놔라’고 발표를 해 버렸어요. 당시 부동산 가격이 막 올라갈 때였거든요.
 
  할 수 없이 안면도 리조트 사업을 포기하고 마석 땅도 되팔아 버렸어요.
 
  그리고 곤자암도요. 처음엔 3개 골프장, 54홀을 허가받았는데 18홀만 남기고 반납해 버렸어요. 나머지 땅에 스키장, 콘도, 수목원을 만들었죠.
 
  당시 삼성은 에버랜드 땅을 막 살 때였는데 LG와 달리 정부가 그런 발표를 해도 안 내놓았습니다. LG만 정부 시책에 바보처럼 따랐던 거지요.”
 
1995년 4월 19일 곤지암컨트리클럽에서 전경련 회장단을 비롯한 재벌기업 총수들이 LG 구본무 회장의 초청으로 골프회동을 갖고 있다. 최종현 회장을 비롯해 강신호, 강진구, 양재봉, 이맹기, 김석원, 조석래, 김각중, 이준용, 변규칠, 성낙정, 박건배, 박용일 씨 등 총수 16명이 참가했다.
  ― 곤지암골프장으로 자리를 옮겨 쌍용 측에서 항의는 안 했나요.
 
  “말도 마세요. 1995년인가 곤지암 골프장이 완공돼 재계 회장들을 다 초청한 행사를 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 전경련 회장이 최종현 선경 회장이었고, 정주영 현대 회장도 왔어요. 제 기억으로 삼성 이건희 회장만 안 왔어요.”
 
  대기업 총수들이 모두 모인 그날 라운딩은 1995년 4월 19일 열렸는데 최종현 전경련 회장 등 그룹 총수를 포함, 16명의 재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고 전해진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불참했는데 대신 강진구 삼성전자 회장이 참석했다.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 양재봉 대신증권 회장, 이맹기 대한해운 회장, 김각중 경방회장, 이준용 대림그룹 회장, 성낙정 한화그룹 부회장, 박건배 해태그룹 회장, 박영일 대농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구본무 회장은 최종현 회장과 김석원 쌍용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과 한 팀이 되어 라운딩을 했다고 한다. 이 박사의 계속된 말이다.
 
  “제가 알기로 구본무 회장하고 김석원 회장은 1945년생 동갑입니다. 그날 김 회장이 손짓으로 저를 부르더니 ‘언제부터 (곤지암에) 왔노?’ 그래요. 제가 여기 온 것을 알면서 말이죠. 저를 쳐다보는 눈길이 반기듯 화난 듯… 그랬습니다.
 
  저녁 만찬 자리에서 김 회장이 대기업 총수들 다 있는 자리에서 그랬다고 합니다. ‘아이고, 마… 쌍용에서 공부시켜 놓고 키운 사람을 (LG에서) 돈도 안 들이고 쏙 빼갔다’고요. 그 말씀이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 같은데, 그만큼 곤지암골프장을 잘 만들어서 한 말씀이 아닐까요? 덕분에 제 주가가 올라간 것 아니겠어요? (웃음)
 
  사실, 김 회장이 저를 미국과 뉴질랜드 등지에 유학을 보내 주셨거든요. 그땐 여행자율화가 되기 전이어서 마음대로 외국에 갈 수 없었어요. 김 회장 주선으로 초청장을 받아 갈 수 있었고 회삿돈으로 공부한 셈이지요.”
 
 
  “누구 집 사우(사위)고. 그놈, 힘~ 좋다”(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회장은 ‘자연’과 ‘사람’을 중시하는 기업 가치와 철학을 실천한 경영인으로 평가받는다. 생전 취미가 탐조(探鳥)였다. ‘탐조’는 자연에 있는 새가 놀라지 않게 지켜보는 것을 말한다. 평소 서울 LG트윈타워 30층 집무실에서 망원경으로 밤섬 철새들을 관찰하곤 했다. 1999년 천연기념물 황조롱이 한 쌍이 LG트윈타워 꼭대기 난간에 둥지를 틀자 각별히 보살폈다는 일화도 있다. 이후 황조롱이는 새끼까지 깠다고 한다. 또한 곤지암리조트에 무척이나 애착을 가졌다.
 
  “구 회장은 곤지암을 너무 좋아했어요. 당신이 살던 집… 골프장 티하우스 1번 스타트 홀 옆에다 집을 지었잖아요. 돌아가시기 전까지 예외 없이 목요일 오후에 곤지암 내려와 금요일과 토요일엔 오전이든 오후든 공을 쳤어요. 항상 일요일 점심을 들고 올라갑니다. 그 정도로 곤지암에서 살았죠.”
 
  ― 곤지암이 제2의 집무실이었겠네요.
 
  “곤지암에서 골프도 치고 생각도 하고 중요한 사람도 만나고 의사결정도 내리고… 그렇게 근 20년 넘게 LG그룹의 미래 청사진을 그곳 곤지암에서 그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5월 20일 숙환으로 별세한 구 회장의 장지는 생전에 즐겼던 곤지암이었다. 유족들은 그곳에 수목장으로 고인을 모셨다. 고인은 평소 신념대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비공개 가족장으로 화장과 수목장을 택했다.
 
  “구 회장은 낚시를 좋아했는데 물고기를 잡으면 다시 연못에 놓아 줍니다. 사냥도 좋아했어요. 아호가 화담(和談)입니다. 화담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이죠. 주위 사람들을 다 포복절도하게 만들었어요. 무슨 말이든 울리고 웃기고 그냥 죽여 버립니다. 당신 스스로 ‘내가 말이야, ‘와이단’(わいだん·속칭 Y담)에서 뽀빠이 이상용보다 낫다’고 했어요. 그분 아호를 따서 수목원을 ‘화담숲’이라고 명명했잖아요.”
 
  ― 골프 실력은 어느 정도였나요.
 
  “저는 구자경(具滋暻) 명예회장과도 가끔 공을 쳤는데 당신이 잘 맞으면 ‘아따, 그놈 참! 공을 잘 친다. 누구 집 사우(사위)고’, ‘그놈, 힘~ 좋다’면서 스스로를 기분 좋게 치켜세웠죠.
 
  구본무 회장은 골프도 완전한 싱글이었습니다. 핸디캡이 10 이하면 싱글이라고 해요. 승부욕이 얼마나 강한지, 뜻대로 안 맞으면 밤새워 연습을 합니다. 싱글을 유지하려고 잠도 안 자고 연습한다고 제게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 정도로 승부욕이 강했죠.”
 
  ― 구본무 회장과 김석원 회장의 골프 실력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정교하게 치는 것은 구 회장이 낫죠. 성격은 급하지만 섬세하고 정교한 분이죠. 골프는 힘이 들어가면 안 되거든요. 마음을 비우고 쳐야 잘 나가고 멀리 가지, 멀리 보내려고 치면 공이 안 맞는 게 골프의 생리입니다.”
 
 
  양잔디와 전두환 연희동 사저
 
  한번은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이 곤지암골프장에 와서 주위 자연경관과 수목에 감탄, 이상재 박사를 서울 연희동 자택으로 불렀다.
 
  “전두환 전 대통령 쪽에서 연락이 와서 연희동으로 찾아간 일이 있어요. 아마 그때가 백담사에 다녀온 이후일 겁니다. 그 인연으로 근 10년간 매달 연희동을 찾아가 정원수를 돌봤지요.
 
  수관(樹冠)이란 말을 들어 보셨어요? 나무 위쪽 가지와 잎이 무성해 ‘갓 모양’을 이룬 부분을 말해요. 전 전 대통령은 ‘수관’을 언급하며 나무의 위쪽 가지를 눈으로 좇다 보면 자연히 스카이라인과 이어질 수 있기를 원하셨죠. 때로 나무 전지도 하고 잔디를 양잔디로 바꾸었습니다.”
 
  ― 양잔디가 뭔가요.
 
  “한국잔디는 가을, 겨울이면 누렇게 변하지만 양잔디는 상록성을 띱니다. 겨울에도 파랗죠. 한국잔디는 난지(暖地)형 잔디인데 5월이 되어야 파랗고 9월이 지나면 누렇게 변하죠. 상록성이 특징인 한지(寒地)형 잔디를 양잔디라 부르죠. 겨울이 돼도 푸름을 유지하니까 골프장의 그린에 주로 사용되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고온다습하고 비가 많이 오잖아요. 양잔디가 견디기 어려운 환경이에요. 비료도 잘 줘야 하고 집중적으로 관리를 많이 해야 하니 손이 많이 가는 단점이 있습니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골프 스타일에 대해 들은 적은 있으신가요.
 
  일설에 따르면 전두환의 골프 실력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최고였다고 한다. 핸디캡이 12 정도이고 비거리 230m의 장타를 날렸다고 한다. 또 대통령 재임 때는 청와대에 연습장을 만들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공을 치러 오면 스태프들이 항상 클럽하우스에 30~40분 먼저 와 줄지어 대기합니다. 라운딩 도중 잔디를 보수하거나 청소하는 분, 캐디 등에게 봉투를 건네시며 격려했다고 해요.
 
  반면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은 스태프보다 항상 먼저 클럽하우스에 도착합니다. 영부인(김옥숙)과 같이 오시면 티업을 할 수 있게 손수 티에 공을 올려놓았다고 해요.”
 
 
  골프장 설계의 기준
 
용평 퍼블릭 골프장인 용평나인 설계자 로널드 프리임과 이상재 박사.
  ― 골프장 설계 기준이 뭔가요.
 
  “우선 입지나 지형 자체가 좋아야 합니다. 골프장이 대자연에 위치하지만 인공적으로 조성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니 주위 자연과 어울릴 수 있게 자연 속 또 하나의 자연이어야 합니다. ‘백 투 더 네이처(Back to the Nature)’라고 부릅니다.
 
  자연은 직선이 없습니다. 자연 하천은 절대 직선이 없지요. 뱀이 기어가듯 사행(蛇行)곡선을 이루죠. 골프장 내에서도 직선이 있거나 각이 있거나 모가 나면 안 됩니다. 하나부터 열 가지 모두가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해야 하죠.
 
  상주 블루원, 용평 버치힐, 해남 파인비치 골프장 등의 지형이 무난하고 자연스럽죠.”
 
  ― 좋은 골프장의 조건이 따로 있나요.
 
  “샷 밸류(shot value)라는 말이 있어요. 난이도가 있는 코스여야 한다는 뜻이죠. 플레이를 거듭할수록 난이도를 점점 높여 6, 7, 8번 홀로 갈수록 점점 어려워지고 9번 홀에서 한 번의 절정에 이르게 설계하는 것을 말합니다.
 
  도전하는 사람에겐 도전의 기회도 주고, 점수를 잃었으면 만회할 수 있는 기회도 주는, 그러다가 실패하기도 하겠지만, 도전과 만회의 기회를 동시에 주는 골프장, 단조롭지 않고 다양성을 주는 골프장이 좋은 골프장입니다.
 
  보통 골프클럽이 14개거든요. 14개를 골고루 칠 수 있는 코스가 좋은 코스입니다. 어떤 골프장 가면 채를 10개밖에 쓸데가 없어요. 14개를 골고루 다 쓸 수 있는 코스를 갖춰야 좋은 골프장이죠.”
 
  ― 골프장 설계가 잘못된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요.
 
  “그러니까 다양한 위험과 보상이 가능한 해저드의 적절한 배치가 필요한데, 다른 말로 ‘공정성’이 요구됩니다. 잘 치는 사람과 못 치는 사람에게 똑같은 보상이 주어져서야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친 대로 공정하게 보상이 주어져야 해요.
 
  이런 경우가 있어요. 불공정한 코스설계의 예인데, 골퍼가 공을 살짝 건드리는 정도로 퍼팅을 했는데 멀리 굴러가는, 경사가 심한 그린이 있어요. 설계가 잘못된 경우죠.”
 
  ― 경기 진행 속도도 좋은 골프장에 영향을 미치나요.
 
  “그럼요. 한 라운드를 마치는 데 4시간 이내가 될 수 있도록 설계를 해야 합니다. 라운드 시간이 길면 골퍼들은 집중력이 떨어져 플레이 질(質)이 떨어지고 즐거움도 반감되니까요.
 
  경기 진행 속도는 페어웨이가 넓을수록, 홀 내에 해저드가 적을수록, 홀이 짧을수록 빨라지죠. 경기의 진행속도를 느리게 하는 요인은 깊은 러프나 빠른 그린, 풀이 많이 자란 해저드 등이죠.”
 
  ― 국내 골프장 중 어떤 골프장이 기억에 남습니까.
 
  “라운딩을 하면 10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골프장이 있고 어제 쳤어도 기억에 없는 골프장이 있잖아요. 제 경우에 제주의 나인브릿지, 여주의 해슬리나인브릿지가 떠오르네요.”
 
  ― 한국과 일본, 미국의 골프설계에 차이가 있나요.
 
  “한국은 대개 산악지형에 위치합니다. 땅이 좁으니, 좁은 땅에 홀을 많이 집어넣으려고 하니 난잡해집니다. 자연을 훼손한 경우도 많아요. 여름철에 집중호우가 잦아 식물이 자라기 어렵고 겨울엔 추워서 골프를 칠 수가 없어요.
 
  일본은 한국과 유사하지만 훨씬 ‘젠틀’합니다. 섬나라여서 온화한 날씨이다 보니 훨씬 (골프치기가) 풍요롭죠. 미국에선 골프장 설계를 조경학에서 합니다. 한국은 토목학에서 하고요. 미국은 지형이 편안하니까 아름답게 꾸밀 수 있어 조경학에서 골프 코스를 설계하죠.”
 
  이 박사는 대학에 골프 설계와 시공 관련 강의를 오래 했었고 박사과정을 가장 먼저 대학에 설치한 장본인이다.
 
  “골프는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으로 자리 잡았고 골프장 성공요소가 ‘잔디, 음식, 서비스’는 기본이고 ‘건설원가, 서비스 브랜드, 마케팅 능력’이 요구되고 있어요. 앞으로 골프장은 생존전략으로 저비용의 설계, 시공 및 관리와 전략적인 코스, 건강한 잔디를 지녀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빚이 없는 골프장은 제조업보다 낫습니다. 골프장만한 사업이 없어요. 가을엔 어딜 가도 부킹하기 어려워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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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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