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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스포츠 소식

WBC, 한국심판 푸대접… 주최측의 ‘한국야구’ 길들이기인가?

글 : 이상희  월간조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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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광남 심판(맨왼쪽). 유독 나광남 심판만 유니폼을 지급받지 못해 다른 심판들과 달리 빌려 입은 상의 속에 자신이 가져온 긴 팔 상의를 껴입어야만 했다.
  전 세계 야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도미니카 공화국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WBC는 축구의 ‘월드컵’처럼 야구의 세계화를 목표로 메이저리그 사무국(MLB)이 2006년 닻을 올린 대회다. 당초 3년 주기였다. 하지만 2009년 제2회 대회가 끝난 뒤 향후 올림픽, 월드컵과 개최시기가 중첩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4년 주기로 변경했다. 이번 3회 대회에는 총 28개국이 참가해 지역별 예선을 거쳐 16개국이 본선에 진출, 지난 3월 2일부터 20일까지 4개조로 나뉘어 자웅을 겨뤘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눈에 띈 점은 한국과 일본 두 아시아 야구 강국이 동반 몰락했다는 것이다. 지난 1, 2회 대회 우승국인 일본은 이번에도 4강에 진출해 세 차례 연속 우승에 도전하는 듯했으나 준결승에서 푸에르토리코에 3-1로 무릎을 꿇었다.
 
  일본과 함께 아시아 야구 강국인 한국은 1회 대회 4강, 2회 대회 준우승이란 호성적을 거둔 바 있어 이번에도 내심 우승을 기대했다. 국내 야구팬들 또한 한국의 첫 WBC 우승을 기원하며 열띤 응원을 펼쳤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한국은 4강 진출은 고사하고 대만에서 열린 1라운드에서 복병 네덜란드에 0-5로 발목을 잡혀 2승 1패의 성적으로 초반 탈락했다. 겉으로 드러난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다득점 승자승 원칙에서 밀렸다. 예상치 못한 결과이자 충격 그 자체였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며 이번 WBC에 도미니카 공화국 대표선수로 출전했던 호세 레이예스(30·토론토 블루베이스) 또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1라운드 탈락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또 “지난 두 번의 대회에서 한국이 보여준 실력에 감탄했다. 이번에도 한국이 2라운드에 진출할 줄 알았는데 탈락해 아쉽다”고 말했다.
 
 
  일본 심판은 주심 맡았는데 한국 심판은?
 
국제야구협회 심판위원장으로 이번 제3회 WBC 1라운드 미국 본선에서 국제심판위원장을 맡은 거스타보 로드리게스(Rodriguez·왼쪽에서 3번째).
  충격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 WBC에 참가한 한국심판이 대회 주최측인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납득할 수 없는 홀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국내에 보도되지 않은 내용으로 《월간조선》이 단독 취재했다.
 
  WBC 주최기관인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1회 대회 때부터 세계 여러 나라의 심판들을 초청해 대회에 배치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소속된 한국프로야구 심판들도 매 대회에 주최측의 초청을 받아 참가했다. 2006년 제1회 대회에는 허운 심판이, 2009년에는 오석환·문승훈, 그리고 이번 3회 대회에는 김풍기·나광남 심판이 참석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기자는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구단 스카우트의 추천을 받아 이번 WBC 지역별 본선 1라운드가 열렸던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조직위원회 측의 공식 통역업무를 맡았다. 주된 임무는 나광남 심판의 미국 현지 통역이었다.
 
  김풍기 심판이 일본 도쿄에서 열린 A조(일본, 중국, 쿠바, 브라질)에, 그리고 나광남 심판이 미국 피닉스에서 열린 D조(미국, 멕시코, 이탈리아, 캐나다) 경기에 누심(壘審)으로 파견된다는 것이 결정된 후 흥미로운 사실이 알려졌다. 모리 겐지 일본심판과 호주 출신의 폴 하이엄 심판이 WBC에 참가했던 역대 외국인 심판 가운데 최초로 주심을 맡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WBC 조직위원회는 제1회 대회 때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심판노조와 임금협상이 결렬돼 마이너리그 심판을 배정했다가 적잖은 오심 사건을 겪은 바 있다. 이런 이유로 국제사회에서 조롱을 받자 2009년 제2회 대회부터 WBC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수준 높은 경기진행을 위해 메이저리그 심판에게만 주심을 맡기기 시작했다.
 
  이런 전례 때문에 일본과 호주 심판의 WBC 주심 첫 배정은 적잖은 파장을 불러왔다. 이 내용이 보도되자 조종규 KBO 심판위원장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 심판이 WBC에서 주심을 본 적도 없고 일본도 없었다. 모두 누심이었다. 이번에 일본인 심판이 주심으로 출장하게 된 것은 일본 야구계의 입김이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심판들도 메이저리그 심판 못지않게 그동안 WBC에서 심판을 잘 봤다. 이제는 한국심판들도 주심을 볼 수 있도록 위상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그는 “우리도 주심을 볼 수 있도록 형평성 고려 차원에서라도 심판배정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KIA 투수 ‘로만 콜론’ 사건으로 알려진 KBO의 무사안일주의
 
  온라인을 통해 이런 내용을 접한 국내 네티즌들은 “라이벌 일본은 주심을 보는데 한국은 뭐하고 있는 거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일부 야구팬들은 KBO가 국제사회에서 전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며 그들의 안일한 업무태도를 비꼬기도 했다. 사실 KBO의 무사안일주의는 그동안 꾸준히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며 부정적인 인식을 형성한 게 사실이다. 실제로 기자가 지난해 단독 보도했던 ‘로만 콜론’ 케이스가 좋은 예이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투수 로만 콜론은 지난 2010년 한국프로야구 기아에서 뛰었다. 당시 시즌 중반(5월)에 팀에 합류했지만 그해 8승7패의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기아는 이듬해 콜론과 재계약하지 않았다. 기자가 미국에서 콜론을 만났을 때 그는 “나는 억울한 피해자다. 한국에서 다시 던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계약하겠다는 기아를 믿고 기다렸다. 하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재계약하지 못했다. 괜찮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기아가 나를 향후 5년간 한국 내 다른 팀에서 뛸 수 없도록 보류권을 행사해 묶어 놓을 줄은 몰랐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외국인 선수와 관련된 KBO 규정 제10장 ‘독점교섭기간 및 보류권’ 조항에 의하면 ‘구단은 계약연도 11월 30일까지 재계약 의사를 서면으로 선수와 그의 지정 대리인에게 통지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기아 운영팀은 당시 콜론의 미국 에이전트에게 보냈다는 재계약 통지서를 기자에게 이메일로 보내 왔다.
 
  이 통지서에 보면 ‘기아는 콜론과 재계약할 의사가 있으며 KBO 규정에 따라 전년도 계약금을 포함한 연봉 총액 75% 또는 그 이상을 2011년 연봉으로 지급할 의사가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콜론은 이 서류를 받지 못했으며 아울러 당시 그의 에이전트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콜론은 또 기아 운영팀으로부터 재계약과 관련해 구두로 언질을 받았으며 설령 재계약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재계약을 원했기 때문에 기아가 자신에 대한 보류권을 행사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KBO 규정 제10장 A조항에 따르면 ‘구단이 외국인 선수에게 재계약 의사를 통보했음에도 재계약하지 못하면 구단은 재계약 제안을 함으로써 다음 5년간 한국 구단에 대한 보류권을 갖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즉 구단은 외국인 선수에게 재계약 통보만 하면 해당선수를 한국 내 다른 팀에서 5년간이나 뛸 수 없도록 묶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조항은 ‘먹기는 싫고 남 주기는 아까울 때’ 충분히 악용될 소지가 있다. 구단은 계약내용과 상관없이 선수에게 재계약 의사만 밝히면 향후 5년간 한국 내 다른 팀에서 뛸 수 없도록 보류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콜론의 경우 기아가 재계약 통지서만 콜론의 에이전트에게 보냈을 뿐 재계약과 관련해 구단이 정확히 얼마의 연봉을 제시했으며 콜론이 어떤 이유로 재계약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그 어떤 증거나 관련서류도 없었다. KBO 또한 구단이 재계약 통지서 사본만 제출하면 해당선수의 소명이나 서명이 없더라도 구단이 원하는 선수에 대한 보류권을 인정해 주고 있다.
 
  기자가 KBO 운영팀에 현 외국인 선수 보류권과 관련된 행정상의 미숙함을 지적하자 “앞으로는 외국인 선수 보류권을 인정할 때 해당선수가 재계약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관련 서류 등을 확보하는 등 좀 더 합리적인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당시 콜론은 보류권 문제를 해결하고 한국무대에 복귀하기 위해 한국인 에이전트를 따로 고용했다. 그 에이전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KBO의 규정을 존중한다”는 말로 운을 뗀 뒤 “만약 추신수가 인디언스 구단과 재계약하지 않았다고 인디언스 구단이 추신수를 다른 메이저리그 팀에서 뛸 수 없도록 5년씩이나 묶어 놓으면 말이 되겠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기사가 보도되고 여론이 악화되자 기아는 KBO와의 협의하에 지난해 겨울 콜론에 대한 보류권을 철회했다. 현재 미국에서 뛰고 있는 콜론은 한국에서 그를 원하는 팀만 나서면 언제든지 국내로 복귀할 수 있는 자유계약선수 신분을 얻었다.
 
 
  한국프로야구 외국인 선수 연봉의 비밀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프로야구에는 지난 1998년에 도입된 외국인선수 제도라는 게 있다. 이에 따르면 한국프로야구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는 계약금과 연봉을 합쳐 연간 30만 달러 이상을 받을 수 없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전·현직 프로야구 관계자들 말에 따르면 현재 한국프로야구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 대부분은 연간 100만 달러 정도는 줘야 영입할 수 있다고 한다. 두산에서 뛰고 있는 더스틴 니퍼트의 경우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고 지금 당장 미국에 돌아가도 충분히 메이저리그에 진입할 수 있는 선수다. 작년 메이저리그 최저연봉은 48만 달러로 한화 50억원이 넘는 고액이다. 자국에서 받던 연봉보다 적은 돈을 받으며 힘든 타향살이를 할 선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언론에는 외국인 선수의 연봉을 30만 달러로 발표하지만 실제로는 뒷거래를 통해 차액을 현금으로 채워 주거나 해당 선수의 소득세도 구단에서 납부해 준다고 한다. 이런 공공연한 비밀은 웬만한 야구팬들조차 다 아는 사실이지만 KBO는 여전히 뒷짐만 지고 있다. 이는 엄연한 불법이자 탈세 또는 탈루 등의 또 다른 범죄로 이어지는데도 말이다.
 
  기자가 이번 WBC에 파견된 나광남 심판을 미국에서 처음 만난 것은 지난 3월 초였다. WBC 조직위원회에서 대회를 앞두고 마련한 심판 오리엔테이션 장소에서였다. 이날 이곳에는 메이저리그 심판협회장 랜디 마시(Marsh), 국제야구협회(IBAF) 심판위원장이자 이번 WBC 국제심판위원장을 맡은 거스타보 로드리게스(Rodriguez), 그리고 3명의 현직 메이저리그 심판과 나광남 심판을 비롯해 2명의 외국인(스페인, 베네수엘라) 심판이 참석했다.
 
 
 
WBC 조직위, 한국심판에게만 유니폼 미지급

 
  경기운영과 규칙에 대한 내용을 숙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오리엔테이션은 2시간 가량 진행됐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자 조직위원회는 모자, 바지, 상의, 점퍼 등 심판들이 대회기간 동안 착용할 공식유니폼을 지급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유독 나광남 심판의 유니폼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조직위원회 측에서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인턴사원이 배송과 관련된 업무를 처리했는데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며 “대회 시작 전까지 여유가 있으니 차질 없이 준비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나광남 심판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며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갔다.
 
  이틀 후, 심판들의 연습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조직위원회 숙소인 호텔에서 나광남 심판을 다시 만났지만 그의 유니폼은 여전히 도착해 있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심판협회장 마시는 “배송에 문제가 생겨서 유니폼이 호텔이 아닌 경기장으로 갔을 수도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 달라”며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차로 1시간 정도 이동해서 도착한 경기장에도 나광남 심판의 유니폼은 없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한국에서 가져온 하의를 입고 상의는 베네수엘라 심판의 것을 빌려 입은 채 경기에 투입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른 심판들에게는 적당한 사이즈의 모자가 지급됐지만 유독 나광남 심판에게만 맞는 모자가 없어 결국 그는 큰 모자를 안쪽에 종이를 말아 넣고 써야 했다. 연봉 수백억원을 받는 선수들이 즐비한 야구 종주국이자 경제대국인 미국에서 이런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나광남 심판도, 그의 통역을 맡았던 기자도 그저 쓴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따라 날씨가 추워 다른 심판들은 이미 지급된 바람막이 긴 팔 점퍼를 입고 심판을 봤지만 남광남 심판만 빌려 입은 반팔 유니폼 안에 긴 소매를 껴입어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 조직위원회에서는 심판들을 위한 만찬을 준비했다. 해당 장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나광남 심판은 기자에게 상황이 되면 마시 또는 로드리게스 심판위원장에게 향후 한국심판의 WBC 주심 배정에 대해 건의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국프로야구심판 팀장을 맡고 있는 나광남 심판은 올해로 경력 22년 차의 베테랑이다. 그는 자신이 받는 푸대접에 대한 서운함보다 한국심판의 위상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국제야구협회의 한국야구위원회와 한국야구협회에 쌓인 불만?
 
WBC 1라운드 미국 본선 경기에 참가한 심판들이 경기후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스페인, 미국 메이저리그 주심, 베네수엘라, 그리고 한국(나광남) 심판.
  만찬이 끝나 갈 무렵 기자가 나광남 심판의 생각을 로드리게스 심판위원장에게 전하자 그는 “외국인 심판 가운데 한국심판만 주심에서 배제된 건 아니다. 외국심판이 주심을 맡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라는 설명과 함께 “다음부터는 한국심판의 WBC 주심배정도 고려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로드리게스 심판 위원장은 KBO와 얽힌 사연을 들려줬다.
 
  “작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주최한 국제야구심판들을 위한 캠프가 열렸다. 국제야구협회 산하 20개 회원국에 참가협조를 요청했지만 유독 한국만 불참했다. 캠프기간 동안 심판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불참한 한국에 대해 말이 많았다.”
 
  그는 또 한국아마추어야구를 주관하는 대한야구협회(KBA)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한국에 이메일 등으로 질문을 보내면 답변을 받아 보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국가간의 업무를 진행하려면 원활하고 신속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런 식이면 어떻게 상호 우호적이고 긴밀한 국제업무를 진행하겠나.”
 
  로드리게스 위원장은 지난 이야기를 털어놓는 동안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동안 한국야구위원회와 대한야구협회에 쌓인 불만이 적잖은 듯 보였다. 기자가 그에게 이런 사실을 기사화해도 되겠냐고 묻자 그는 “물론”이라며 명쾌하게 말했다. 이런 사실을 전해 들은 나광남 심판은 적잖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기자에게 “KBO 측으로부터 국제심판캠프와 관련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한국심판의 WBC 주심배정과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했다.
 
  그 후 매번 ‘곧 도착할 것’이라던 나광남 심판의 유니폼은 끝내 도착하지 않았다. 결국 나광남 심판은 WBC 1라운드 미국 본선 경기에 초청된 심판 중 유일하게 유니폼을 지급받지 못한 채 귀국해야 했다. 조직위원회의 설명처럼 메이저리그 사무국 인턴사원의 단순한 업무실수가 사실이라 해도 대회기간 중에 충분히 봉합될 수 있었던 문제는 결국 그렇게 미해결 사태로 남았다. 명백한 푸대접이었다.
 
 
 
한국야구위원회, 국제야구협회, 그리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각기 다른 말

 
  나광남 심판이 귀국한 후 기자는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로 KBO와 접촉했고 그곳 운영팀장과 통화할 수 있었다. 그에게 나광남 심판이 미국에서 겪었던 일을 설명한 후 무슨 연유에서 지난해 국제야구심판캠프에 불참하게 된 건지 묻자 “금시초문”이란 답변을 내놓았다.
 
  운영팀장에게 국제야구협회 심판위원장 로드리게스의 이름을 전하고 그가 운영팀장이 국제업무 시 사용하는 영문명인 마이클(Michael)이란 이름도 알고 있다고 하자 그는 “내 영문명이 마이클인 것은 맞다. 하지만 나는 로드리게스라는 사람도 모르고 국제야구심판캠프와 관련해 그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나광남 심판의 유니폼과 관련해서는 WBC 조직위원회로부터 사전에 연락을 받아 그의 신체 사이즈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다음 날 기자는 로드리게스에게 전화를 걸어 KBO 운영팀장과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이어 어떤 식으로 KBO에 연락을 취했는지 묻자 그는 기자에게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국제업무 담당자인 래리 영(Larry Young)의 연락처를 주며 그와 통화하면 좀 더 자세한 내역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영과의 연락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취재를 진행할 당시 영은 WBC 준결승과 결승전 업무를 맡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파견된 상태였다.
 
  영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WBC 결승전이 끝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지난 3월 말쯤이었다. 그에게 기자의 신분을 밝히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주최했던 국제심판캠프에 대해 묻자 그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겨울 그러니까 2012년 겨울에는 WBC 지역예선 때문에 국제야구심판 캠프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11년에는 열렸던 게 맞습니다. 그리고 당시 한국이 참가하지 않은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 캠프는 아마추어 심판들을 위한 캠프이기 때문에 이미 자국 내에 프로야구리그가 운영중인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심판들은 참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기자가 다시 KBO 운영팀장에게 연락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 직원인 래리 영은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로드리게스라는 사람은 전혀 모릅니다. 아마도 국제야구협회 측에서 KBO와 KBA를 혼돈한 것 같습니다. 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거든요.”
 
 
  美日과 달리 한국야구위원회에 귀속된 한국심판협회의 현실은?
 
현 메이저리그 심판위원장이자 이번 제3회 WBC 1라운드 미국 본선 경기에서 심판위원장을 맡았던 랜디 마시(Randy Marsh·왼쪽).
  독립된 심판협회를 구성하고 있는 메이저리그, 일본프로야구(NPB)와 달리 한국프로야구 심판협회는 KBO에 소속된 산하단체이다.
 
  한국프로야구 심판협회는 메이저리그나 일본처럼 독립된 기관으로 변모하기 위해 그동안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고 한다. 자세한 이유에 대해서는 함구했지만 KBO의 반대가 가장 컸던 것 같다. 기자가 한국프로야구 심판협회에 접촉했을 때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아시겠지만 한국프로야구 심판협회는 KBO 산하기구입니다. 그렇다 보니 예산문제는 고사하고 심판들의 복지도 늘 KBO의 눈치를 봐야 하고 그들의 허락이 있어야만 집행이 가능합니다. 국제야구협회나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발송한 공문도 당연히 KBO로 전달됩니다. KBO에서 알려주지 않으면 저희들은 전혀 알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 관계자는 이어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32년이나 됐지만 아직도 심판들이 현장에서 부상을 당해도 단순치료비 외에는 그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공에 맞아 치아가 깨져도 깨진 치아에 대한 치료비만 지원받을 뿐 그로 인해 야기되는 다른 치아의 부상에 대해서는 전혀 지원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공에 맞아 깨진 치아로 인해 다른 치아의 임플란트 시술을 한 심판이 여럿 있지만 모두 사비로 해결했다고 한다. 한국프로야구는 지난해 사상 첫 700만 관중을 돌파하며 명실상부한 국민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
 
  기자가 다시 국제야구협회 심판위원장 로드리게스에게 전화해 KBO 운영팀장 그리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래리 영과 나눈 이야기를 전하자 그는 “시기를 착각한 것 같다”며 “2012년이 아닌 2011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통화하자”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 후로는 로드리게스가 이 문제가 기사화되는 것에 부담을 느꼈는지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인 국제야구협회와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자신들의 단순한 업무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럴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KBO 관계자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다. 그간 발생한 정황들로 미루어 볼 때 국제야구협회 측에 그동안 한국야구위원회 또는 한국야구협회에 쌓인 불만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불똥은 아무 잘못도 없는 나광남 심판에게 튀었다. 분명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가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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