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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지적에 50년 전 전과 들춰낸 보훈부

“50년 전 과거를 들춰내는 국가가 국민에게 무슨 충성을 요구하는가”(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 글 : 김광주 월간조선 기자  kj96100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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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는 6·25 때 켈로부대원으로 활약
⊙ 1967년 아버지 납북으로 집안 풍비박산 난 후 방황하다 폭행으로 복역
⊙ 2000년 이후 납북자·국군포로 구출 활동에 헌신
⊙ 보훈부, 감사원 지적에 뒤늦게 2015년 받은 무공수훈자 유족증 박탈
⊙ 보훈 급여 중지 사유 ‘성범죄, 절도·강도, 살인, 특경, 폭행’ 順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가 지인에게 보낸 자필 편지.
2025년 여름, 최성룡(崔成龍·74)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가족을 태운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휴대폰 벨이 울렸다. 대수롭지 않게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충남서부보훈지청이라는 말에 반가운 마음이 앞섰던 것도 잠시, 곧바로 “2015년 발급받은 무공수훈자 유족 자격을 박탈하니 유족증을 반납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온 가족이 발칵 뒤집혔다. 최 대표가 결혼할 때, 아내에게 전과를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는 울었고, 딸과 사위까지 이 소식을 알게 됐다. 평생 가정을 지탱하던 남편이자 존경받는 아버지로 자랑스럽게 살아왔지만, 상습 폭력 전과가 가족에게 낱낱이 알려지자 가족은 집안에서 입을 다물었다.
 
 
  납북 켈로부대원의 아들
 
  최성룡 대표가 폭력 전과자가 된 데는 기구한 사연이 있다. 최 대표의 부모는 한국 전쟁 당시 대북 첩보 부대로 활약한 KLO8240(통칭 ‘켈로부대’) 유격 백마부대 대원이었다.
 
  부친 최원모씨는 한국 전쟁 당시 유격 백마부대의 유일한 동력선인 ‘북진호’ 함장이었다.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고, 미군 대령과 중위를 구출하기도 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6월 국방부로부터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모친 김애란씨도 켈로부대원이었고 중공군에 맞서 싸운 국가유공자다. 최 대표 부친의 위패(位牌)는 국립서울현충원에 봉안되어 있다. 모친은 서울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최 대표 부친 최원모씨의 위패만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게 된 이유는, 그가 1967년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납북(拉北)됐기 때문이다.
 
  이후 가세가 기울었다. 그나마 남은 재산인 배 두 척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오던 어머니는 경찰 등 방첩 기관에 불려 가 조사를 받기 일쑤였다. 하사로 군을 전역한 형은 모진 고문을 받았다. 수중에 돈이 떨어지자 주변에서도 외면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 최성룡은 엇나가기 시작했다. 1969년 폭력행위등처벌에 관한 법률(폭처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고, 1974년에도 폭행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최성룡 대표에 의하면, 아들의 방황을 보다 못한 어머니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군산 지부장을 찾아가 “아들이 엇나가고 있으니 군대에 보내서 정신 차리게 해달라”고 담판을 지었다고 한다. 전과 때문에 군 입대 대상자가 아니었던 최 대표는 이렇게 해서 출소 이듬해인 1976년 현역으로 입대해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26년간 납북자 구출에 헌신
 
2004년 국군 포로 이완섭씨를 구출하고 그와 포옹하고 있는 최성룡 대표.

  어두운 과거를 넘어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최성룡 대표는 납북자 구출 활동을 활발하게 벌여왔다.
 
  2000년 4월에는 이재근씨를 비롯한 7명의 납북자를 구출했다. 국군 포로 이완섭씨 등 11명도 구했다. 2004년 4월엔 국군 포로 백종규 하사의 유해를 송환했다. 납북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이 한국에서 납북된 김영남씨라고 특정한 이도 최성룡 대표였다. 경기도 파주 등 군사분계선 인접 지역에서 납북자들 가족의 사연을 담은 대북 전단을 보내려다가 지방자치단체와 인근 주민 등에 저지당하기도 했다.
 
  돈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이사장, KLO8240 유격백마부대 회장,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로 활동하면서 보람을 느꼈고, 인정도 받았다. 2015년에는 국방부에서 무공수훈자 유족증이 나왔다. 최 대표는 “매달 받는 20만원 남짓한 돈으로 PX(군 매점)에 가서 손주들 과자 사주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런 보람과 인정, 즐거움이 한 통의 전화로 무너진 것이다.
 
  이후 최성룡 대표는 답답한 마음에 잠 못 이루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부친과 모친 모두 한국 전쟁에 참전하셨는데, 부친은 납북되고 모친은 발에 총상 장애를 입었지만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며 상이(傷痍) 신청을 거부했습니다. 어머니의 부탁으로 군 제대 후 지금껏 국가를 위해 납북자와 국군 포로를 구출했습니다.
 
  2015년에 무공수훈자 유족증은 제가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정부가 줬습니다. 제 과거 잘못은 인정합니다. 부친의 납북 이후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어린 마음에 심정도 어지러웠기에 그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정부가 유족증을 발급해 준다고 했을 때, 그에 대해 말했고, 괜찮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국가가 좋은 의미로 혜택(보훈 급여)을 준 것이, 가족이 제 과거를 다 알게 하는 일로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최 대표는 “혜택을 박탈한다는 통지를 해도 꼭 그런 식으로 해야 했는지 아쉽다”고 말했다. 그에 대해서는 담당 공무원들도 “그 부분은 미안하다”고 했다고 한다.
 
  최 대표는 “서울현충원에 모신 부친과 모친을 다른 장소로 옮기고, 그동안 받은 훈장과 국가유공자증, 자신이 받은 국민훈장까지 정부에 반납하겠다”고 했다.
 
 
  “50년 전 과거 들춰낸 국가가 무슨 충성을 요구하나”
 
  지난해 최성룡 대표는 자신이 겪게 된 어려움을 해결해 주려 애쓰는 지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서 최 대표는 “매달 받는 20만원 남짓한 돈으로 PX(군 매점)에 가서 손주들 과자 사주는 게 유일한 낙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큰 후회로 돌아올 줄 몰랐다”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돈 안 받을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잠을 이룰 수 없어 적어본다. ○○○, 고맙소. 내 과거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번처럼 (전과까지) 자세히 알게 된 식구들이 갑자기 아프고 말을 하지 않고 있어 답답하다. 애들 집에 왔는데 너무 후회가 된다.
 
  국방부에서 돈을 신청하라고 문서가 왔다. 최원모(부친), 김애란(모친) 각각 1000만원씩 신청하라고. 모친은 생전 당신 앞으로 어떤 돈도 받지 말라고 국가에 부담 주지 말라고 상이(보상금)도 신청 못 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2000만원을 신청 않기로 식구와 애들에게 약속했다. 차라리 무공수훈자 유족증을 받지 말았으면 식구와 딸들에게 나의 과거가 지금처럼 부끄럽게 되지 않았으리. 보훈병원, PX에서 외손자들 과자 사주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아버지 계실 때 형은 단기 하사로 제대했고 모친의 부탁으로 당시 논산 육군훈련소장이 나를 입대시켜 병장으로 제대하고 사망한 동생도 단기 하사로 제대, 생선 장사로 살아온 어머님이지만 항상 떳떳하게 살아온 엄마다. 불쌍한 우리 식구는 아무것도 모르고 나와 모친과 함께 모진 고생을 했다. 식구의 얼굴을 보니 너무 아프다. 형은 고문으로, 막내는 교통사고로 나만 남았는데 그런 과거를 이런 식으로 들추나 싶다. 유공자 유족에게 이런 식으로 아프게 해야만 하는가. 북한 국경에서 납북자와 국군 포로를 구해올 때 모친과 식구들은 적극적으로 지원해 줬고 나는 보람을 느꼈다. (중략) 보훈병원, PX는 안 가면 된다. 하지만 우리 식구가, 우리 애들이 너무 아프다.
 
  ○○○, 이제 보훈부에 사정할 것 없소. 저도 마음을, 신변을 정리하고 싶소. 보훈자 유족에게 50년 전 과거를 들춰내는 국가가 국민에게 무슨 충성을 요구하는가. 보훈 카드를 보내는(반납하는) 것으로 부친, 모친 정리하고 우리 식구에게 마지막 용서를 빌고 마음을 정리하겠다.

 

국가보훈부의 보훈 급여 등 중단 조치


국가보훈부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간 중대 범죄전과가 확인된 국가 유공자 또는 그 유족 387명에 대한 보훈 급여금 등의 보상을 중단했다.
 
  2021년 7월 21일 감사원은 보훈부(당시는 국가보훈처)에 대한 정기 감사 보고서를 공개하고, 중대 범죄 경력이 확인된 전과자가 보훈 대상자로 등록돼 보훈 급여금 등의 보상을 받고 있으며 부당하게 지급된 보훈 급여금은 총 119억5604만원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보훈 관계 법령에 따르면 중대 범죄로 금고(禁錮) 1년 이상의 실형(實刑)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되면 보훈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감사원의 지적이 나온 다음 날 보훈부는 “보훈 대상자에 대한 범죄 경력을 조회할 양이 많아 행정 부담이 과다하고, 기존에 확인된 범죄 이후 시점부터만 조회하다 보니 확정 판결의 시스템 입력에 시간차가 발생해 누락됐다”고 해명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듬해 10월, 회수율이 3%에 불과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보훈부는 “환수 대상자 대부분이 고령 및 생계 곤란 등으로 일시 회수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회수를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최근 5년간 중대 범죄가 확인돼 보훈 급여가 중지된 이들의 죄목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내용은 성범죄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3월 27일 보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까지 보훈 급여가 중지된 사유는 강간과 추행이 74건, 성폭력이 17건,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 관련 전과 7건으로 성범죄가 98건을 차지한다. 절도 및 강도가 96건이고, 살인은 61건이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47건, 폭행 등이 43건으로 뒤를 이었다. 국고 손실 등과 같은 특정범죄 가중처벌의 경우 31건, 상습 사기 11건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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