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법인화된 약국 체인이 과점하는 시장으로 변화에 성공
⊙ ‘인력의 희소성’ 사라진 시대, ‘머리띠 두르는’ 반대 안 통해
⊙ 로봇으로 단순 노동자보다 고급 전문직 대체하는 것이 더 이익
⊙ 작은 이익 포기하더라도, 기술이 전문가의 통제하에 작동하도록 시스템 통제권 쥐어야
박한슬
1991년생. 차의과학대 약학과 졸업, 연세대 통계·데이터사이언스 석사 / 《중앙일보》 《주간조선》 칼럼니스트, 서울시 청년정책자문단 / 저서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숫자 한국》 외 다수
⊙ ‘인력의 희소성’ 사라진 시대, ‘머리띠 두르는’ 반대 안 통해
⊙ 로봇으로 단순 노동자보다 고급 전문직 대체하는 것이 더 이익
⊙ 작은 이익 포기하더라도, 기술이 전문가의 통제하에 작동하도록 시스템 통제권 쥐어야
박한슬
1991년생. 차의과학대 약학과 졸업, 연세대 통계·데이터사이언스 석사 / 《중앙일보》 《주간조선》 칼럼니스트, 서울시 청년정책자문단 / 저서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숫자 한국》 외 다수

- 서울 아산병원은 자메닉스 AI 로봇으로 신장결석 수술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당장 강성 노조의 대표 격인 현대차 노조에서 선제적(先制的) 반발이 나왔다. 현대차 노조는 자동차 생산 현장에 아틀라스와 같은 이족 보행 로봇을 도입하는 건, 노사 간 협약상 노조와의 협의가 꼭 필요하단 입장을 냈다.
이를 두고, 몰지각한 러다이트(Luddite) 운동을 21세기에 재현하려는 것이냐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굴러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 없다”라며 “어떻게든 이런 흐름에 대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불가피성 자체는 다들 인정하는 모양새다. 무작정 반대만 할 일은 아니라는 거다.
실제로 그간 제조업의 역사(歷史)를 살펴보면, 제조업의 역사는 곧 자동화의 역사였다. 장인(匠人)의 손끝 감각에 의존하던 수공업이 컨베이어 벨트라는 시스템으로 대체되었듯, 이제는 인간의 육체 자체가 생산 과정에서 배제되는 완전 자동화의 단계로 넘어갔을 뿐이다.
이중 압박 받는 보건의료 분야
그런데 이게 비단 현대차 공장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자동화의 여파는 전통적 제조업은 물론 지식노동 분야, 심지어는 고도의 전문성으로 높은 직업 독립성을 유지했던 보건의료 분야에까지 미치고 있다.
어찌 보면 보건의료 분야가 맞이하는 위기는 제조업이 직면한 위기와 비교해 더욱 복합적이고 치명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제조업 노동자가 로봇이라는 물리적 대체재(代替財)와의 경쟁에 직면했다면, 보건의료는 수술 로봇 등을 통한 물리적 노동의 대체와 인공지능(AI)을 통한 인지적 노동의 대체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이중고(二重苦)를 겪고 있어서다. 이러니 의료 현장이 마주하고 있는 압력을 이해하면, 우리 사회에 찾아올 자동화의 파도(波濤)가 어떤 형태로 작동할지를 직관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이중의 압박을 받는 보건의료 분야는 자동화에 어찌 대응 중일까.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건, 인간의 노동, 특히 고도의 지적(知的) 훈련을 거친 전문가의 노동이 기계로 대체될 가능성은 어떻게 가늠하느냐는 것이다. 막연한 두려움이나 기술 낙관론에 기대기보다, 경제학적 모델을 통해 냉정하게 숫자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직업의 대체 가능성을 측정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갈래로 나뉜다.
어떤 일부터 자동화될까
첫 번째는 고전적인 직무 분해 방식이다. 하나의 직업을 단일한 덩어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직업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수십, 수백 개의 세부 직무로 잘게 쪼개어 분석하는 접근법이다.
예를 들어 ‘약사’라는 직업은 처방 검수, 조제, 복약 지도, 재고 관리, 환자 상담 등의 직무 묶음으로 구성된다. 이 모델에 따르면, 명확한 매뉴얼과 프로토콜이 존재하는 업무일수록 기계로 대체되기가 쉽다. 처방전에 적힌 약물을 집어 포장하는 단순 조제 업무나 약물 상호작용 데이터를 대조하여 금기 약물을 걸러내는 처방 검수 업무가 대표적이다. 이건 기계가 더 잘한다. 반면 환자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읽어내거나, 복잡한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상담하는 업무는 자동화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분류된다.
직무 분해 방식은 기술적 관점에서 어떤 ‘행위’가 대체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그리고 전체 직무 중 대체될 수 있는 직무가 많은 직업일수록 자동화를 통한 대체 가능성이 크다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보다 최근에 대두된 기술 노출도를 파악하는 방식이다.
특정 기술을 개발하는 개발사 혹은 개발자가 기술을 개발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애덤 스미스가 이야기했듯, 빵집 주인의 이기심이 후생(厚生)을 늘리는 구조와 같다. 그런데 기술 개발을 통한 수익을 가늠해 보려면 비용-편익 분석을 수행해 보아야만 한다. 쉽게 말해 같은 비용을 들일 때, 얼마만큼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 논리를 적용하면 상황이 묘하게 바뀐다. 예컨대 로봇을 개발한다고 할 때, 그 로봇으로 청소 노동자를 대체하는 것과 의사 혹은 약사 같은 의료 전문직을 대체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기대 이익이 더 클까? 당연히 청소 노동자를 로봇으로 대체해서 얻을 수 있는 인건비 절감 효과보다, 훨씬 고(高)임금을 받는 의사나 약사를 대체했을 때 발생하는 이익이 훨씬 크다. 그러니 개발회사는 저임금 청소 노동보다는 고임금 의료인 대체에 더 몰두하게 된다. 전문직 우선 대체라는 역설(逆說)이 관찰되는 것이다.
로봇, 고숙련 전문직 더 위협할 것
현대차의 로봇 아틀라스. 현대차 노조는 로봇 도입에 선제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사진=현대차이런 기술 노출도 방식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안전하다’고 믿었던 고숙련 전문직의 위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흔히 단순 반복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기 쉽다고 생각하지만, 거대언어모델(LLM)과 같은 생성형 AI는 방대한 양의 문헌을 학습하고, 논리적 인과관계를 추론하며,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는 데 특화(特化)되어 있다. 이는 정확히 의사, 약사, 변호사, 회계사와 같은 고급 전문직이 수행하는 업무의 본질과 겹친다.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투입되는 막대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개발사는 인건비가 극도로 높은 전문직의 업무를 자동화하는 데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발 난도(難度)의 문제가 아니라 개발에 성공했을 때의 실익(實益) 문제다. 그렇기에 전문직은 기술 진보의 수혜자가 아니라 가장 직접적인 타격권에 들어선 당사자다. 이미 대형 로펌들이 신참 변호사 채용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 중인 이유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봐야 할 건, 그간 전문직들이 특수한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다양한 논리가 동원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론 방대한 지식을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집어넣고 사용하는 능력이 그만큼 희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발달로 지식 처리에 있어 인간 전문직보다 더 뛰어난 역량을 보이는 기계들이 싼값에 이용 가능해진다면, 방대한 지식을 갖춘 인력의 값어치는 자연스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요컨대 그간 희소하게 취급되었던 전문성이 일상재(日常財)로 바뀌는 게 AI 시대 변화의 본질이라는 얘기다.
의료 자동화는 정해진 미래
지금까지 파악한 바를 토대로 의료 전문직의 고유한 역할을 다시 한 번 파악해 보자. 병원과 약국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반드시 방문해야만 하는 물리적 공간의 독점권(獨占權)을 누렸다. 의사를 만나야 진단을 받고, 약국에 가야 약을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재 의료 전문직의 핵심 업무인 진단과 조제가 자동화된다면 어떨까. 진단, 조제와 같이 규칙성이 뚜렷하고 데이터화가 용이한 직무는 실제로 자동화 가능성이 크다. 다른 표현으로 기술 노출도가 높다.
과거 IBM의 왓슨(Watson)과 같은 초기 의료 인공지능은 실패했으나, 그 후계자인 LLM들은 영상 의학 판독(判讀)이나 병리(病理) 진단에서 인간 전문의에 버금가는 성과를 내고 있다.
약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자동 조제기(ATC)가 보편화된 지 오래고, 이제는 재고 관리와 발주까지 알고리즘이 처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과거 전문가의 ‘숙련’이라 불리던 영역들이 기술적 표준화 과정을 거쳐, 기계가 더 잘하고 더 싸게 수행하는 ‘기능’으로 전락해 버린 셈이다.
기존 의료는 전문가의 직관과 경험, 그리고 손기술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수공업적 형태를 띠었다. 명의(名醫)라는 칭호가 보여주듯, 의료 행위의 주체는 오롯이 인간이었으며 시스템은 이를 보조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런데 데이터가 쌓이고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이런 패러다임은 붕괴됐다. 보건의료 역시 전문가의 개인기(個人技)에 의존하던 시대를 지나, 데이터와 자동화 설비가 하부 구조를 지배하는 장치산업(裝置産業)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거대한 자본과 기술이 집약된 시스템이 의료의 본질적 가치를 생산하고, 인간 전문가는 그 시스템의 관리자 혹은 지시를 수동적으로 따르는 단말(端末)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약국의 물리적 독점권 사라질 것
구글 모기업 알파벳의 자회사인 윙은 2019년 버지니아주에서 약국 체인 월그린 등과 손잡고 드론을 이용한 약품·일용품 배송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진=알파벳이처럼 의료 전문직의 핵심 직무가 데이터 처리와 물류 배송의 영역으로 편입된다면 더는 병원이나 약국이 물리적 독점권을 누릴 이유가 사라진다.
당장 금융권의 사례를 살펴보자. 모바일 뱅킹이 활성화되면서 은행 지점은 급격히 소멸했다. 돈을 맡기고 찾는 ‘기능’이 디지털로 이전되자, 은행 지점이라는 ‘공간’의 쓸모가 상당수 사라졌기 때문이다. 은행 지점을 찾아가면 디지털 약자(弱者)인 노인들만 잔뜩 번호표를 뽑아 들고 앉아서 순번을 기다린다.
보건의료 역시 금융권의 변화 경로를 따를 공산이 크다. 현재 의료 전문직의 핵심 업무가 자동화 시스템으로 위임될수록, 병원과 약국이 점유하던 지역 내 물리적 거점으로서의 지위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의료 역시 디지털화되고, 플랫폼(platform)화되는 형태로 재편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비대면(非對面) 진료와 의약품 배송의 보편화된 시대가 온다는 건데, 근래 관련 논쟁이 사회적으로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것 자체가 기술적으로 이미 공간적 제약이 거의 무의미해졌음을 방증한다. 다른 분야의 변화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반쯤 정해진 미래다.
심지어 이미 일선 의료 현장에선 부적절한 인공지능 사용이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환자가 인공지능에 본인 증상에 대해 질의한 결과를 맹신(盲信)한 탓에 되레 의사의 전문성 있는 판단을 부정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지금도 이런데 인공지능 성능이 높아진 미래는 어떻겠나.
‘탈인간화’됐던 전문가들의 최후
기계가 생산의 주도권을 쥔 상황에서 인간 전문가에게 남은 자리는 어디일까. 이를 규명하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기술이 무엇을 가장 헐값으로 만들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가치가 폭락한 자산은 다름 아닌 지능(IQ)이다. 과거에는 방대한 의학 지식을 암기하고, 증상을 분석해 병명(病名)을 찾아내는 능력이 희소했기에 높은 경제적 보상이 따랐다.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 대접받던 시절의 얘기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휴대폰 하나로 초거대 AI에 접속할 수 있고, 몇 초 안에 최신 논문을 요약해 치료법을 제시하는 세상에서 지식의 한계비용(限界費用)은 영(零)에 수렴한다. 누구나 정답을 알 수 있는 시대에 ‘정답 제공자’로서의 전문가는 더 이상 매력적인 상품이 아니다. 기술적 정확도가 높아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술을 다루는 인간의 지적 숙련도는 경제적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주목할 게 과거 전문가들의 ‘탈인간화’ 경향이다. 근래까지도 전문가들은 개개인의 주관을 최대한 억누르고, 냉정하고 객관적인 정보 전달과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을 체계적으로 받아왔다. 그러니 인간성을 극복하는 수준이 아닌, 애초에 비(非)인간으로서 철저한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공지능 혹은 로봇이 이런 전문가들을 대체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기능적인 측면에서의 우열(優劣)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할은 남아 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비대면 진료의 확산을 앞당겼다. 성남시의료원 재택치료상황실에서 의료진이 환자와 비대면 진료를 하는 모습. 사진=사진공동취재단그렇지만 기계가 객관적 정보 전달에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이는 차가운 데이터의 일방적 나열일 뿐이다. 고대(古代) 그리스인들이 델포이의 신탁을 해석하기 위해 사제(司祭)를 필요로 했듯, 환자에게도 기계의 진단 결과를 자신의 삶과 언어로 번역해 줄 존재가 필요하다.
예컨대 ‘생존 확률 70%’라는 건조한 통계 수치를 ‘꽤 확실한 성공 가능성’으로 전달할지 혹은 ‘30%라는 위험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우회할지는 순전히 환자의 반응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인간이 인간을 대면(對面)하는 과정에서만 얻을 수 있는 귀한 정보다. 정서적 숙련(EQ)이 과거에는 부가적인 서비스에 불과했다면, 인공지능의 도움을 통해 지능(IQ)이 범용(凡庸)해진 지금은 치료 과정에서 겪게 될 정서적 마찰을 조율하는 인간화된 전문가의 가치가 오히려 커지고 있다. 기계가 흉내낼 수 없는 불완전함, 공감, 그리고 설득의 영역이 역설적으로 전문가의 생존을 떠받치는 최후의 보루(堡壘)가 된 것이다.
더 나아가, 환자는 기계에게 진료받을지언정, 잘못됐을 경우 기계가 아닌 책임자를 찾는다. 분노하고, 원망하고, 때로는 용서할 대상으로서의 ‘인간’이 의료의 마침표를 찍어줘야만 한다.
기술철학자 안드레아스 마티아스(Andreas Matthias)가 지적한 ‘책임 공백’ 개념을 상기해 보자. 법체계와 사회적 규범은 반드시 응보(應報)를 감당할 수 있는 도덕적 행위자(moral agent)를 요구한다. 알고리즘은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데이터는 반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시스템의 사법적, 윤리적 완결성을 위해선 비정형적 고통을 해석하는 것을 넘어, 그 결과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법적 주체(主體)로서의 인간이 필수적으로 결합되어야만 한다. 기계적 진보가 필연적으로 남기는 책임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맡게 될 개연성이 크다는 얘기다.
‘죄수의 딜레마’
경제학자 맨슈어 올슨(Mancur Olson)은 저서 《집단행동의 논리》에서 소수(少數)의 조직된 이익 집단이 다수(多數)의 산만해진 대중보다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쉽다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이익은 소수에게 집중되고 비용은 사회 전체로 널리 분산될 때, 그 소수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결사적으로 뭉치지만 대중은 굳이 저항할 유인(誘因)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의사와 약사를 비롯한 보건의료 전문가 집단이 비대면 진료나 법인 약국 같은 개혁 과제 앞에서 강력한 사회적 거부권을 행사하며 현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동력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기술 진보를 통한 변화 압력이 이 정도로 거세진 상황에선 과거처럼 이익 단체 차원의 ‘묻지 마 반대’가 통하긴커녕 직종 내에서 ‘죄수의 딜레마’를 유발할 개연성이 크다.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전문직 직업들을 살펴보자. 대체 시의 기대 이익이 큰 전문 분야일수록 기술 기업들이 눈독 들이기가 쉽다는 걸 앞서 기술 노출도를 설명하며 논증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전문가 집단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끝까지 기술 도입을 거부, 규제를 쌓아 올리며 수성(守城)하는 것(=배신하지 않음)이고, 다른 하나는 일찍이 투항해 기술 기업의 플랫폼을 빠르게 선점, 플랫폼에서 상대 우위를 노리는 것(=배신함)이다.
만약 모든 전문가가 단합하여 끝까지 저항한다면 당분간은 현상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대 자본이 투입된 기술 기업들이 규제 샌드박스나 입법 로비를 통해 우회로를 뚫어버리는 순간, 저항하던 집단은 도태되고 플랫폼에 먼저 올라탄 일부만이 생존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에 대한 가장 훌륭한 반면교사(反面敎師)가 택시 시장이다.
택시의 전철 밟을 것인가
‘타다’가 등장하자 택시 기사들은 반대 집회 등을 통해 이를 퇴출시켰다. 사진=조선DB택시 시장 초기에는 ‘타다’와 같은 혁신 기업이 나오자 택시 업계가 일치단결해 규제를 강화해 결국 ‘타다’와 같은 대안적 택시 서비스가 뿌리내리지 못하게 하는 데 성공하긴 했다. 한데 현재의 택시 업계를 보자. 카카오택시에 종속(從屬)된 방식으로 간신히 연명(延命) 중이다. 카카오택시 운영사 카카오모빌리티가 법인 택시회사를 각개 격파하며 인수하여 점유율을 높였기 때문이다. 과거 춘추전국시대 진(秦)나라가 이웃한 중견국들의 합종(合從)을 막고, 결국 연횡(連橫)으로 천하를 통일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보건의료 분야라고 결과가 다를까. 업계 전체의 이익이 감소하더라도, 내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제적 합리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이런 방식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선제적으로 일부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전반적으로 영향력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의약품 배송이 진즉부터 합법화된 형태로 돌아가고 있다. 이런 게 가능한 이유는 고만고만한 동네 약국 간 무한 경쟁 방식 대신 법인화(法人化)된 약국 체인이 과점(寡占)하는 시장으로 변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동네 약국 간 경쟁 환경에선 환자가 약을 원격으로 어딘가에서 배송받으면, 동네 약국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구조다. 그런데 법인화된 체인 약국에선 약 배송 여부가 큰 영향이 없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책을 사든, 교보문고 온라인몰에서 책을 사든 둘 다 교보문고 매출로 잡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애초에 시장 구조가 이러니 의약품 배송 플랫폼 기업이 새로 시장에 파고들 여지가 적고, 이들이 시장을 독점해 모든 약국이 해당 플랫폼에 종속될 일도 없다. 소비자 후생도 증진되고, 직역(職域) 영향력도 지키는 방식의 구조 개혁에 성공한 셈이다.
더군다나 이런 방식으로 업계에 선도적으로 진입하면, 어떤 환자군에게, 어떤 종류의 약물을, 어떤 기준을 갖춰 배송할 때만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표준 결정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다. 시스템의 규칙을 장악하는 자가 결국 그 시스템의 주인이 된다.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면, 그 물길을 내가 유리한 방향으로 파내는 것이야말로 ‘죄수의 딜레마’에서 탈출해 생존을 도모하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 셈이다.
노동 지형 변화의 예고편
역사적으로 노동자가 자본가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단결권이나 파업권 같은 법적 권리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그 기저에는 희소성이라는 경제학적 철칙이 자리 잡고 있다. 숙련된 노동자가 수행하는 과업을 대체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기에, 노동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위협이 실질적인 협상력으로 전환될 수 있었단 얘기다. 기차가 멈추면 물류가 마비되고, 전기가 끊기면 공장이 멈추는 상황에서 숙련공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자본도 무력(無力)할 수밖에 없어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현재 보건의료 분야가 직면한 위기는 우리 사회 전체의 노동 지형이 어떻게 변할지를 보여주는 가장 예민한 시금석(試金石)이나 다름없다. 앞서 살펴봤듯, 보건의료는 제조업 노동자가 겪는 로봇에 의한 육체노동 대체와 화이트칼라가 겪는 AI에 의한 인지노동 대체를 동시에 겪는 이중고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가장 견고한 성채(城砦)라 여겨지던 의료 전문직마저 이토록 거센 자동화의 파도에 휩쓸리고 있다면, 다른 직업군이 겪게 될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의사와 약사라는 특정 직역의 언어로 서술되었을 뿐, 이는 곧 회계사, 변호사, 그리고 엔지니어 등 고숙련 지식노동자 전반이 겪게 될 보편적 미래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예고편인 셈이다.
문제는 변화의 파고(波高)가 턱밑까지 차올랐음에도, 대응하는 방식은 여전히 구(舊)시대의 문법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많은 직능(職能) 단체가 여전히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서는 투쟁 방식을 고수한다. 그러나 과거, 투쟁이 유효했던 건 앞서 언급한 ‘인력의 희소성’이 건재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지식의 한계비용을 0으로 만들고, 휴머노이드가 육체적 숙련의 가치를 폭락시키는 시대에 “우리가 일하지 않으면 사회가 멈춘다”라는 협박은 이제는 말장난과 같을 수밖에 없다.
냉정하게 따져보자. 의사가 진료를 거부해도 AI가 1차 진단을 내리고, 약사가 조제를 거부해도 자동 조제기와 배송 시스템이 약을 제조·전달하는 인프라가 갖춰졌는데, 파업의 효과는 반감(半減)될 수밖에 없다. 종국(終局)에는 전문가 집단의 협상력 자체가 구조적으로 무력화(無力化)될 것이다.
그러니 희소성이 증발해 버린 시대에 낡은 투쟁 방식을 고집하는 건, 이미 무너진 둑을 몸으로 막아보겠다는 무모한 객기(客氣)에 가깝다. 사람의 몸으로 범람(氾濫)하는 물길을 막을 수는 없다. 물길을 트고 방향을 유도하는 치수(治水)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명확하다. 앞서 미국의 약국 체인 사례나 플랫폼 선점 전략에서 살펴봤듯, 당장의 작은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거대한 시스템의 설계권, 즉 ‘판’을 그려 쥐는 것이다. 내어줄 것은 내어주되, 핵심적인 관리 권한을 전문가의 배타적 영역으로 못 박아두는 전략적 포지셔닝이 필요하다.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한다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술이 노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전문가의 통제하에 작동하도록 주종(主從) 관계를 재설정하는 작업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변화 수용하고 판 다시 짜야
그렇지만 이러한 해법이 현실화되기는 무척이나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그간 투쟁을 통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희소성 위에서 막대한 지대(地代)를 추구해 온 이들이 조직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어서다. 변화를 수용하고 판을 새로 짜자는 주장은 당장 이들의 기득권(旣得權)을 훼손하는 배신 행위로 간주되기 십상이다.
“나 때는 안 그랬다”라며 과거의 투쟁 방식에 취해 있는 이들에게, 기술적 특이점이 도래했으니 생존 문법을 바꾸자고 설득하는 건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투쟁 중독에 빠진 옛 노조의 완고한 면모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러면 그 직종은 미래에는 온전한 직종으로 남기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이 역시 기술 범람 시대가 가져올 또 다른 풍경 변화가 아닐까. 투쟁력보단 현명함이 요구되는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