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의 비밀

‘자유의 학풍’이 만든 노벨상 산실, 교토대의 힘

“당대에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도 기다려주는 문화… 그 결실이 노벨상”

  • 글 : 고기정 월간조선 기자  yamkoki@chosun.com
  • 글 : 정재훈 인턴기자  wognsqhdl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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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33명의 노벨상 수상자 배출한 日… 그중 10명이 교토대 출신
⊙ “진리에 파고들 수 있도록 지원 아끼지 않는 학교”(교토대 교환학생 A씨)
⊙ “‘성과’ 중심 연구보다는 ‘창의성’ 있는 연구 선호”
⊙ 교토의 한적하고 안정적인 분위기, 수도 도쿄와 떨어진 점도 영향
⊙ 안전한 연구 반복한 韓, 도전 축적한 日
⊙ “일본과의 협력과 교류는 필수… 서로가 윈윈일 것”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2025 노벨상 시상식에 참가한 기타가와 스스무 교수. 사진=뉴시스
2024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이로써 한국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을 포함해 노벨상 수상자 2명을 배출한 나라가 됐다.
 
  하지만 노벨상 전체 부문 가운데 절반을 차지하는 과학상(생리의학상·물리학상·화학상)에서는 아직 단 한 명의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반면 중국은 3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은 27명의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은 1949년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 사회에 자신감을 회복시킨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1907~1981년)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33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2025년 기준 수상자 세계 6위, 아시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경제학상을 제외한 모든 노벨상 분야에서 수상자를 배출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일본 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도쿄대(국제 순위 36위)를 제치고, 지방에 위치한 교토대가 일본 내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했다는 점이다. 유카와 히데키도 교토대 출신이며, 혼조 다스쿠(本庶 佑·1942년~), 요시노 아키라(吉野 彰·1948년~) 등 다수의 수상자를 배출해 왔다. 2025년에는 기타가와 스스무(北川 進·1951년~) 교수가 금속유기골격체(MOF)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학부 출신 노벨상 수상자를 기준으로 하면 교토대는 10명, 도쿄대는 9명이다. 한 대학에서 한국 전체가 받은 노벨상 수의 약 5배에 달하는 성과를 낸 셈이다. 나아가 2025년에는 노벨생리의학상과 화학상을 교토대 출신 연구자들이 동시에 수상, 한 해 ‘2관왕’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교토대의 성과는 비단 한 대학의 영광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일본 사회 전반에 자부심을 안겨주었고, 기초과학을 공부하는 미래 과학자들에게는 희망이 되고 있다. 교토대 학생과 교수, 임직원들에게도 강한 자긍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교토대가 이처럼 노벨상의 산실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한국과는 무엇이 달랐고, 일본, 더 나아가 교토대는 어떤 과정을 거쳐 노벨상 배출 구조를 만들어냈을까. 그리고 한국에는 앞으로 노벨상을 받을 저력이 얼마나 있을까.
 

교토대학(京都大學)의 역사


교토대학(Kyoto University)은 교토부 교토시에 본부를 둔 국립대학으로, 1897년 개교한 일본의 두 번째 제국대학(한국식으로는 지방거점 대학)이다. 본부 격인 요시다(吉田) 캠퍼스를 비롯해 우지(宇治), 가쓰라(桂) 캠퍼스 등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일본 내 대학 평가에서는 도쿄대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대표적 명문대다.
 
  교토대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연구 중심 대학으로 꼽힌다. 지금까지 학부 출신을 기준으로 1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해 수학 분야의 필즈상·아벨상·울프상 수상자 5명, 의학 분야의 래스커상 수상자 5명을 배출했다. 이공계 분야를 중심으로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교토학파(京都學派)’라 불리는 학문적 흐름을 형성해 온 것도 특징이다.
 
  2022년 기준 학부생은 1만3038명, 대학원생은 9308명으로, 규모 면에서는 한국의 서울대학교와 비슷하다. 외국인에게도 비교적 개방적인 대학이다. 2019년 기준 교토대에 재학 중인 외국인 학생은 약 2000명에 이른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 국립대학들이 중국계 화교학교 등 외국인학교 졸업생에게 수험 자격을 부여하지 않던 관행과 달리, 교토대는 교수들의 “학문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국립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민족학교와 외국인학교 졸업생에게도 수험 자격을 부여했다. 학문 연구에서는 정치·사회적 차이를 넘어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교토대는 표어가 ‘자유의 학풍(自由の學風)’일 정도로 자유로운 분위기로도 유명하다. 매년 열리는 졸업식에서는 학생들이 각자의 개성을 살린 ‘코스프레’를 하고 참석해 소셜미디어(SNS)에서 화제가 되곤 한다. 독일어 시험에서 교수가 “시험 때 무엇이든 가져와도 좋다”고 말하자 실제로 독일인을 데려온 학생이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자유롭고 유쾌하다.
 
  이러한 자유로움 탓에 유급률이 높다는 점도 교토대의 특징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일본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를 비롯해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됐다. 2025년 기준, 순수하게 교토대에서의 연구 성과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 분야 수상자는 10명으로, 9명인 도쿄대보다 많다.
 
  일본 내에서는 도쿄대가 관료 양성에 중점을 둔 대학이라면, 교토대는 학자를 길러내는 대학원 중심 대학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도쿄대는 국가 운영에 필요한 ‘국가 유용(有用)의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해 관료나 관료 출신 정치인을 다수 배출해 온 반면, 교토대는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검찰을 많이 배출했다는 농담도 있다.

 
  “무언가에 ‘꽂혀 있는’ 학생들 많아”
 
  “한국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다 교토대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한 학기 동안 교토대를 경험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고 싶지 않을 정도로 긍정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교토대 교환학생이었던 A씨(26)의 말이다. A씨는 “교환학생으로 짧게 체험했는데, 한국 대학과의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고 했다.
 
  ―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컸나요.
 
  “교토대 표어인 ‘자유의 학풍’이라는 말이 딱 맞는 표현입니다. 한국은 대학가가 시끌벅적한 반면, 교토대는 주변이 조용하고 사람들도 온순합니다. 기숙사에서 자고 일어나면 새소리가 들릴 정도였어요. 학점이나 자격증 취득에 집착하는 한국과 달리, 교토대는 학문적 경쟁보다는 동아리나 여가 활동을 자유롭게 즐기는 걸 중요하게 여깁니다. 동아리 팸플릿을 나눠주는 거리도 대학 안에 따로 있을 정도였죠. 열기구 동아리, 휘파람 동아리처럼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취미 활동도 존중받는 분위기였습니다. 모든 게 자율적이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안 하는 것도 아닙니다. 무언가에 ‘꽂혀 있는’ 학생이 많았고, 학교는 학생들이 그렇게 몰두한 대상의 진리에 파고들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 실적을 중시하는 한국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네요.
 
  “맞아요. 시험 기간에 교토대 친구들이 헤이안신궁(平安神宮)을 보러 가자고 하더군요. ‘시험 기간에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20분쯤 걸으니 멋진 관광지가 나왔습니다. 불안해하는 저를 보고 교토대 친구들은 ‘한 번쯤은 놀아도 괜찮아’라고 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험이 제가 원하는 점수가 나온 첫 시험이었습니다. 한국에 와서도 여유를 갖고 무언가에 몰두하고 싶은데, 사회문화적으로 쉽지 않아 아쉽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왜 교토대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 차별 전혀 없어”
 
박근준 써모 피셔 사이언티픽 이사.

  1993년 유학길에 올라 교토대에서 생물전공학(Bioinformatics Master) 석·박사 과정을 마친 박근준 써모 피셔 사이언티픽(Thermo Fisher Scientific) 이사 역시 교토대가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배경으로 ‘자유로운 학풍’과 학생을 믿고 지원하는 대학의 역할을 꼽았다. 그의 말이다.
 
  “당시 생물전공학은 굉장히 희귀한 분야였습니다. 바이오인포메틱스(Bioinformatics)라는 용어도 없던 시절이었죠. 생물학이긴 한데 실험은 없고, 전부 컴퓨터만 사용하는 학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교토대만 대학교 연구실에 슈퍼컴퓨터 센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1993년 당시는 ‘슈퍼컴퓨터’라는 말 자체도 낯설 때였고, 한국에도 몇 대 없던 시절이었죠. 교토대는 그런 슈퍼컴퓨터를 연구에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개방하고 있었습니다. ‘슈퍼컴퓨터로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교토대에 지원하게 된 이유입니다.”
 
  ― 학부는 한국에서 마쳤는데, 석·박사 과정을 일본에서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학부 때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실력이 크게 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으로 마음이 기울었고, 슈퍼컴퓨터 등 연구 인프라를 갖춘 과학 분야 명문인 교토대 진학을 꿈꾸게 됐습니다.”
 
  ― 외국인이라고 차별을 겪은 적은 없었나요.
 
  “전혀 없었습니다. 당시 교토대 캠퍼스 통틀어 한국 학생이 100명 정도 있었는데, 제가 있던 우지 캠퍼스에는 20명 정도 있었습니다. 소수였지만 차별은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각 나라 출신자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다만 석사 과정에 들어가려면 일본어로 된 대학원 시험을 치러야 했는데, 전공 시험을 영어가 아닌 일본어로 서술해야 하니 이게 조금 힘들었습니다.”
 

  ― 교토대는 일본 대학 가운데 노벨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대학입니다. 자부심이 클 것 같은데요.
 
  “자부심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교토대에 재학 중’이라고 하면 주변의 시선이 달라지는 게 느껴집니다.”
 
  ― 한국보다 학벌주의(學閥主義)가 심한 편인가 보군요.
 
  “네, 심합니다. 다만 ‘어려운 대학에 들어왔다’는 자부심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며 탐구할 수 있는 대학이라는 점에서 느끼는 자부심이 더 컸습니다.”
 
 
  “교토는 와(和) 문화 때문에 성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
 
교토대는 본부 격인 요시다(吉田) 캠퍼스를 비롯해 우지(宇治), 가쓰라(桂) 캠퍼스 등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요시다 캠퍼스를 상징하는 시계탑과 녹나무. 사진=교토대 유튜브 갈무리

  박근준 이사는 “교토대 학생 사이에서 자주 나오는 농담이 있다”며 이렇게 귀띔했다. “도쿄대는 정부 부처와 가까워 위원회나 심사회 일정에 자주 불려 다니고 제출해야 할 서류도 많지만, 교토대는 수도인 도쿄와 떨어져 있어 간섭이 적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 교토는 일본의 옛 수도로 전통 가옥 등을 잘 보존한 도시인데, 이런 거리 분위기도 교토대 학생들의 학업에 영향을 줄까요.
 
  “정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저는 교토대 근처에서 살면서 한적함과 심리적인 안정감,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이런 편안한 심리 상태가 노벨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루는 데 한몫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경우 서울에 있는 대학들은 대부분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한 것은 물론 상권이 밀집해 있고, 지방 대학은 또 지나치게 외진 곳에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 교토는 관광 도시라 나름의 운치와 일본적인 분위기를 느끼면서 연구에 집중할 수 있고, 기숙사로 돌아오면 조용합니다.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인 셈이죠.”
 
  교토대에서 건축학 박사 학위를 받은 김정곤 방재관리연구센터 연구실장 역시 교토만의 문화적 특성이 노벨상 수상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교토는 일본 특유의 문화를 아주 잘 간직한 곳입니다. 일본에는 ‘와(和)’라는 문화가 있는데,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 맞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사회 구성원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중시합니다. 교토는 천 년 넘게 일본의 수도였던 만큼 이런 문화를 그대로 이어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엔 일본, 특히 교토는 와 문화 때문에 성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성실함이 교토대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 같습니다.”
 
  ― 수도인 도쿄와 거리가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맞습니다. 교토는 지방에 위치해 있지만, 도쿄에 있는 와세다대(早稻田大學)·게이오기주쿠대(慶應義塾大學)보다 노벨상을 더 많이 수상했습니다. 두 학교 모두 명문대지만 노벨상 수상자는 없지요. 저는 결국 학교가 어떤 사람을 길러내고, 어떤 교육을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대학 입시 점수와 학교 간판을 중시하는데, 사실 대학의 핵심 목표는 대학의 시스템이 어떤 인재를 만들어내느냐입니다.”
 

 
  “네 연구에서 오리지널이 뭐야?”
 
  ― 그럼, 교토대는 학생을 키우기 위한 지원에 적극적인가요?
 
  “일본 국립대 전반이 연구 환경이 좋은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교토대는 학생에게 특히 많은 투자를 합니다. 한국 대학들은 대학원생을 연구 인력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강한데, 교토대는 다릅니다. 제가 처음 연구실에 들어갔을 때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있었는데, 일을 시키지 않고 그냥 하고 싶은 걸 하게 놔두더군요. 공부하고 연구만 계속하도록 두는 겁니다. 자유라기보다는 방임에 가까울 정도였습니다.”
 
  ― 결과에 대한 압박은 없었나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교수들은 어떻게 학생을 지도합니까.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창의성을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는 말이 ‘네 연구에서 오리지널(original)이 뭐야’라는 질문입니다. 너만이 할 수 있는 연구는 무엇인지 계속 묻습니다. 그러다 보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나만 할 수 있는 연구’를 찾게 됩니다. 교토대는 크고 화려한 연구보다 독창성 있는 연구를 중시합니다.”
 
  ― 독창적인 연구가 당장은 쓸모없어 보일 수도 있지 않나요?
 
  “그래도 지원합니다.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학생의 논리가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끝까지 밀어줍니다. ‘언제까지 성과를 내라’기보다는 ‘열심히 해서 빨리 성과가 나면 빨리 끝나는 거고, 아니면 계속 파고들어 보라’는 식입니다.”
 
 
  “수십 년간 연구 지원하는 日”
 
  박근준 이사는 미노루 가네히사(金久 實·1948년~) 교수의 사례를 들어 교토대의 학풍을 설명했다. 미노루 가네히사 교수는 교토 유전자 및 게놈 백과사전(Kyoto Encyclopedia of Genes and Genomes·KEGG)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인물로, 2018년 노벨생리학·의학상 후보로도 거론된 바 있다. 그의 말이다.
 
  “미노루 가네히사 교수가 만든 KEGG는 1세대 생명과학 데이터베이스입니다. 생명과학과 바이오 분야에서는 지금도 널리 활용되고 있죠. 유전자가 어떻게 활성화되면 어떤 단백질이 생성되고, 이 결과 어떤 에너지가 만들어지는지 등 복잡한 생화학 사이클을 컴퓨터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한 것입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선뜻 나서기 어려웠습니다.”
 

  ― 방대한 표본이 필요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미노루 가네히사 교수는 해냈습니다. 10~20년에 걸쳐 교토대의 지속적인 연구비 지원을 받으며 데이터베이스를 확장해 왔습니다. 교토대가 연구자를 믿고 꾸준히 지원한 결과입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데이터는 결국 어느 나라에서도 따라 할 수 없는 독보적인 자산이 됐고,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박 이사는 또 다른 사례로 2012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한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弥·1962년~) 교수를 언급했다. 그는 “노벨상을 받기 전, 교토대에서는 신야 교수를 ‘자마(邪魔) 교수’라고 불렀다”며 “‘쟤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다소 무모해 보이는 연구자였다”고 회상했다. ‘자마’는 일본어로 ‘폐’ ‘신경 쓰이는 존재’를 뜻하는 말이다.
 
 
  “내가 몰랐기 때문에 용감했다”
 
교토 기요미즈데라는 세 개의 언덕길을 통해 오를 수 있다. 화과자 등 단 음식을 파는 가게와 카페, 일본의 전통 공예점 등이 즐비한 이 길은 하루 종일 북적이고 활기가 넘친다. 사진=킨키 일본 철도 주식회사 홈페이지

  “신야 교수는 줄기세포 분야에서 ‘이런 방식으로 연구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랫동안 연구를 이어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노벨상을 받고 나서 ‘내가 몰랐기 때문에 용감했다’고 말했어요. 그 분야를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그게 될 리가 없다’며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연구였다는 겁니다. 나쁘게 말하면 다소 무식하게 연구를 밀어붙인 셈이죠. 그래서 주변에서는 ‘자마 교수’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결국 꾸준히 연구를 이어가면서, 모두가 무모하다고 했던 역분화줄기세포(iPS) 연구로 노벨상을 받지 않았습니까. 이후 교토대는 아예 iPS 세포연구소를 설립해 신야 교수를 해당 연구소의 소장으로 발탁했습니다. 현재도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지요.
 
  결국 노벨상을 받는 연구라는 건, 당대에는 무모해 보일 수 있는 도전입니다. 그 도전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끊임없이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줄 때 비로소 결과가 빛을 발하는 것이죠. 그런데 한국은 어떻습니까. R&D 예산을 삭감하기도 하고, 국책 연구 역시 최대 3년짜리 ‘안전한 연구’만 반복하게 만듭니다. 요즘에는 AI를 활용하지 않는 연구 과제가 없을 정도로 추세에 민감한 연구만을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과연 노벨상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서로 토론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시스템 잘 갖춰져”
 
김정곤 방재관리연구센터 연구실장.

  김정곤 연구실장은 “노벨상은 이제 하나의 국가 브랜드가 돼버렸다”며 “개인에게는 큰 영예, 국가적으로 보면 그 나라의 브랜드 가치가 함께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역시 국가 브랜드 차원에서 노벨상의 의미를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다.
 
  “한국에서 정말 순수과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유학을 떠나는 실정입니다. 아니면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미래를 고민하다가 의대에 진학하거나, 빠른 취업을 목표로 대학 선택을 하게 되죠. 결국 가장 큰 문제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입니다. 반면 일본은 변화 속도가 느린 대신, 사회가 변화에 적응할 충분한 시간을 줍니다. 미래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지요. 한국이 노벨상을 받으려면 바로 이 지점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박근준 이사는 ‘한국이 노벨상을 수상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자유로운 토론과 학술 교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토대학에는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세미나가 많습니다. 배경이 다른 연구실끼리 교차해 토론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연구 도중 알고리즘이 필요하면 그 분야 연구자에게 설명을 듣고, 저 역시 컴퓨터 전산을 전공한 학생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전공은 제각각이지만, 서로 토론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대학원생끼리 다른 대학과 1박 2일로 세미나 교류를 하기도 하는데, 하루 종일 토론만 합니다. 공부할 양이 늘어난다는 단점은 있지만, 배울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한국도 자유롭게 자신의 연구를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으면 합니다.”
 
 
  “韓·日 공동 연구는 서로에게 윈-윈”
 
  박 이사는 또 “한국과 일본은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은 나라”라며 한일 공동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어떤 연구 결과가 나오면 미국은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투입해 규모를 키우지만, 한국이나 일본이 이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미국과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종속적인 구조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 일본과 한국은 어떤 점에서 비슷하다고 봅니까.
 
  “무엇보다 생물학적 특성이 굉장히 유사합니다. 몽골보다도 더 비슷하죠. 국민보험 체계도 닮았고, 국민 다수의 경제 수준이나 국가 재정 규모 역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두 나라가 상당히 유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바이오 연구는 의료와 직결되는데, 미국에서 나온 연구 결과는 한국이나 일본인의 생체 구조와 다른 점이 많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한국인과 일본인은 거의 흡사합니다.
 
  그래서 공동 연구 주제를 설정하거나 연구 성과를 산업화하고 비즈니스로 연결할 때도 한국과 일본을 하나의 큰 시장으로 묶어 접근해야 합니다. 특히 순수 학문 분야에서는 함께 연구할수록 효과가 커집니다. 교토대를 포함해 한국에서도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인재가 지속적으로 배출되려면 일본과의 협력과 교류는 필수이며, 이는 양국 모두에게 윈윈(win-win) 전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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