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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취재

위안부 지원 활동 일부 대학생들, 佛서 親北 인사에게 사상교육 받아

“파리 세르지 퐁트와즈(Cergy Pontoise)에 거점 둔 간첩명 ‘대둔산 905호’가 직접 교육”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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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수배 피해 프랑스로 도주한 국보법 위반자 조덕원·황혜로 2009년 현지서 결혼
⊙ 프랑스 파리 외곽서 위안부 지원 활동하는 일부 대학생에게 친북 교육
⊙ 교재는 《21세기 철학이야기》… “이승만은 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으려 한다”(37페이지)
⊙ ‘원시공산제→고대 노예제→중세 봉건제→자본주의 사회→사회주의 사회→공산주의 사회’ 낡아빠진 논리 전파
⊙ 정대협 前 간부(윤미향·손미희)와 조덕원과의 연관성
⊙ ‘희망나비’ 만든 J씨 조덕원의 통역사 역할
⊙ 희망나비 유럽평화기행단장 역할을 한 K씨… 사실상 조덕원이 구성한 이적단체 코리아연대가 만든 여행사 대표(등기부 등본에는 이사 표기)
⊙ 자비 들여 해외서 위안부 지원 활동하는 대학생과 시민단체 헐뜯을 의도 없어
2014년 프랑스 파리에서 윤미향 전 정대협 대표가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91) 할머니와 함께 베누아 케네데(윤 전 대표와 길 할머니 사이) 등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프랑스인 케네데는 프랑스 정부에 의해 북한 간첩으로 활동한 것이 발각돼 반역죄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이 자리에는 1992년 국내에서 간첩 활동을 하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이 확정돼 7년을 복역한 뒤 프랑스로 떠난 조덕원(맨 오른쪽)씨도 함께했다. 사진=인터넷 캡처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과 함께 유럽 도시들을 돌며 ‘수요집회’를 열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일을 해온 평화·인권운동 청년단체 ‘희망나비’ 소속 일부 대학생들이 친북 세력의 거물인 조덕원·황혜로 부부에게 프랑스서 친북(親北) 사상을 교육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월간조선》이 박근혜 정권 당시 수사자료와 프랑스 유학생, 희망나비 내부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 등을 다수 만나 크로스 체크한 결과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소위 내부고발자와 프랑스 유학생 다수는 “철저한 익명을 보장해달라”면서도 “해도 해도 너무한 것 같아 사실을 밝히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본지는 2015년 12월호 〈검찰이 이적(利敵)단체로 기소한 ‘코리아연대’ 대해부〉, 2016년 5월호 〈이적단체 판결받은 코리아연대 자금줄의 실체〉 기사를 통해 국내에서 엽기적 친북 활동을 벌이다 프랑스로 도주한 조덕원·황혜로 부부가 현지에서 일부 통합진보당 당원과 함께 ‘유럽평화기행’ 프로그램 참석자들에게 사상교육을 하고 있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5년 만에 《월간조선》의 심층보도가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세르지 퐁트와즈에 거점
 
조덕원·황혜로 부부는 프랑스 파리 세르지 퐁트와즈(Cergy Pontoise)에 거점을 두고, ‘유럽평화기행’을 온 20대 초반 대학생 중 반미·친북 성향이 강한 이들을 5~10명 추려 2주가량 직접 교육을 했다. 사진은 세르지 퐁트와즈 거리.
  조덕원·황혜로 부부는 치밀했다. 그들은 자신의 추종 세력과 함께 파리 북부 교외 지역인 세르지 퐁트와즈(Cergy Pontoise)에 거점을 두고, ‘유럽평화기행’을 온 20대 초반 대학생 중 반미(反美)·친북 성향이 강한 이들을 5~10명으로 추려 2주가량 직접 교육을 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서북쪽으로 30km 지점에 자리 잡은 세르지 퐁트와즈는 대표적인 신도시다. 프랑스 정부는 1963년 제2차 세계대전 후 50년대 ‘베이비붐’으로 인해 급격히 늘어난 파리의 인구를 분산시키고 수도권의 체계화된 도시개발을 위해 이곳을 신도시로 개발했다.
 
조덕원·황혜로 부부의 친북 교육은 파리 외곽 지역의 ‘모빌 홈’에서 이뤄졌다. 컨테이너를 개조한 집쯤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교육은 파리 외곽 지역의 모처에서 이뤄졌다. 이곳은 컨테이너를 개조한 집쯤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이곳에 들어가면 담당자가 시간표를 짜주는데 일정이 꽤 빡빡하다. 오전 7시 기상에 밤 12시 취침이다. 토론시간, 수업시간, 영화감상 시간 등이 있다.
 
  환경은 열악하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 직접 밥을 지어 식사해야 한다. 밥솥 하나만 달랑 있어 한국에서 가져온 밑반찬과 고추장을 넣고 비빈 어설픈 비빔밥으로 배를 채우기 일쑤다. 대부분 부실한 식사가 이어졌다.
 
 
  《21세기 철학이야기》
 
  수업은 조씨의 저서로 한다. ‘공산주의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마르크스의 단짝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을 참고한 《21세기 철학이야기》가 주교재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예가 주인을 이기게 되는 원동력인 ‘노동’에 집중했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마르크시즘의 핵심 원리 중 하나인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둘은 인류의 역사가 ‘원시공산제→고대 노예제→중세 봉건제→자본주의 사회→사회주의 사회→공산주의 사회’의 순서로 발전해간다고 예견했다. 예컨대 자본주의는 빈부격차가 심화하면서 분배의 정의가 와해하는 내적 모순을 겪게 되는데, 그 모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공산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2008년 《21세기 철학이야기》를 ‘반정부·반미’ 이야기라는 이유로 불온서적으로 지정했다. 이 책은 2018년 대법원이 기존 판결을 파기하면서 불온서적이란 타이틀은 뗐다. 그러나 이명박(2012년), 박근혜(2013년) 정권 때 판결이 문재인(2020년) 정부 때 뒤바뀐 탓에 판결의 신뢰성에 금이 갔다는 지적이다.
 
 
  “이승만은 거액의 독립자금 착복한 자”
 
《21세기 철학이야기》 일부 캡처.
  총 167페이지로 이뤄진 《21세기 철학이야기》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이승만은 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으려 한다. 식민지 조선이 일제로부터 민족해방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역시 내적인 측면을 중시하고 민족의 주체역량을 강화해야 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이런 노력 대신 오직 외교를 통해 조선 독립을 이룩하려고 하였다. 이승만은 우리 민중이 피땀으로 모은 거액의 독립자금을 착복하고 미국과의 로비에 탕진하였던 것이다.〉(37페이지)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 전 대통령 김영삼이 1993년 2월 취임하면서 한 발언이다. 이 발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문민정권은 군사정권과 근본적으로 다르겠구나’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은 1990년대 후반 내내 이북을 적대시하며 ‘조문파동’을 일으켜 강희남 전 범민련 의장을 구속하는가 하면 통일운동의 기관차인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며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김영삼 정권 5년은 이 취임사가 100% 거짓말이었음을 확인시켜주었다.〉(88페이지)
 
  〈박정희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미국의 배후 조종에 의해 5·16 군사쿠데타는 누군가가 일으켰을 것이다.〉(118페이지)
 
  〈코리아가 우주과학의 강국이 되는 것도 현실적 가능성이다. 1998년 8월 31일 이북에서 발사한 우주발사체 백두산 1호와 인공위성 광명성 1호는 이 가능성을 인류에게 확인시켜주었다.〉(124페이지)
 
  〈6·15공동선언은 낮은 단계 연방제를 거쳐 높은 단계 연방제로 나아가는 조국통일의 방도를 밝혀주었다. 그래서 6·15공동선언을 21세기 통일 이정표라고 부른다.〉(126페이지)
 
 
  《21세기 철학이야기》에 담긴 가짜뉴스
 
  하나씩 반박하자면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국과 로비에 탕진했다는 독립자금은 한인 기독학원과 인하대학교 설립에 썼다는 연구가 축적돼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이적단체로 규정한 ‘한총련’은 1996년 8월 연세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통일축전’을 열고, 이듬해 평범한 시민을 프락치로 몰아 숨지게 하면서 대중성과 도덕성 모두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에 검찰은 1997년 당시 5기 한총련을 “북한의 대남적화통일노선에 부합하는 투쟁 목표 및 노선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며 ‘이적단체’로 기소했고, 대법원은 1998년 이를 확정했다.
 
  북한이 발사한 백두산 1호와 광명성 1호는 인공위성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로서는 환영만 할 게 아니다. 미사일용과 인공위성용의 기본 원리가 같은 만큼 우리를 공격할 수단도 될 수 있는 탓이다.
 
  ‘연방제 통일’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북한은 1945년 이후 70년 동안 한반도 적화통일이라는 기본적인 대남·통일 전략 노선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남북 간 체제 경쟁에서 뒤처지고 소련 및 동구 공산권의 몰락에 이어 경제난까지 가중되자 자기 체제 유지를 위해 ‘남북 2체제 공고화’ 노선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북한 정권의 통일 방안은 연방제를 앞세워 3대 세습을 강화하고 분단 체제를 사실상 영구화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1960년대 들어 북한은 내부적으론 민주기지론을 견지하면서 겉으론 과도적 형태의 남북연방제를 처음 내세웠다. 일종의 이중 전략이었다. 김일성은 1960년 ‘8·15 해방 15주년 기념연설’에서 “남조선이 남북 총선거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과도적 대책으로 연방제를 제의한다”고 했다. 북한이 무력통일론 대신 연방제를 주장한 것은 정치·경제적으로 남한을 압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137달러로 남한의 1.5배였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무력통일론 대신 연방제를 앞세워 남한 사회를 흔들고, 지하당 조직을 통해 공산 혁명을 유도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북한이 1971년 4월 제안한 ‘남북연방제’에는 남북 총선거에 의한 통일 방안이 사라졌다. 당시 한국 경제가 북한을 추월하기 시작하면서 총선거를 시행하면 북한에 불리할 것이란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 북한은 1973년 6월 김일성 유일 지배 체제 확립과 7·4남북공동성명 합의,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등에 업고 ‘고려연방제’ 통일 방안을 내놓았다. 남북 간 군사적 대치 해소와 합작·교류, 대민족회의 소집 등을 거쳐 남북연방제인 고려연방공화국을 수립하자는 내용이었다.
 
  북한의 고려연방제는 점차 통일 과도기를 장기화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북한은 1980년 10월 제안한 ‘고려민주연방제’를 통해 처음으로 ‘남북 1국가·2체제’를 공식화했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미·중 수교, 소련의 지원 축소, 한국의 국력 신장 등에 따라 내부 불안감이 고조된 데 따른 조치였다. 김일성은 1991년 ‘1민족·1국가·2체제·2정부’에 기초한 연방제를 제안했다. 1980년대 연방제 방안에 ‘2정부’를 추가, 분단 체제를 공고화한 것이다.
 
 
  김정은 시대에도 北의 적화통일 본질은 그대로
 
  최악의 식량난인 ‘고난의 행군’을 겪은 김정일 정권은 2000년 체제 유지형인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제기했다. 연방제를 하되 남북 정부가 정치·군사·외교권 등을 유지하자는 내용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1980년대 말 동독이 서독에 흡수 통일되는 것을 보면서 체제 위협을 느낀 북한은 자신감을 잃고 분단 체제를 고착화하는 방향으로 통일정책을 바꿨다”고 했다.
 
  김정은은 3차 핵실험 등을 통해 겉으론 공세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김정일의 수세적 통일 방안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김정은 시대에도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장기 사상범 김선명
 
최장기 사상범 김선명씨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선택〉 (2003). 이 영화와 관련한 내용은 《21세기 철학이야기》에도 나온다. 사진=영화 〈선택〉 포스터
  수업 기간에는 영화도 관람했다. 2003년 최장기 사상범 김선명씨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선택〉이 그것이다. 이 영화와 관련한 내용은 《21세기 철학이야기》에도 나온다. 관련 내용이다.
 
  〈영화 〈선택〉은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 선생의 옥중생활을 그리고 있다. 영화 속에서 김선명 선생은 사상 전향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45년 동안 교도소 생활을 한다. 교도관과 조직폭력배의 온갖 고문과 협박, 회유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다. 결국 1995년 사면되어 출소하고, 2000년 6·15공동선언이 채택되면서 이북으로 송환된다. 영화 〈선택〉의 절정은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할 것 아니냐?’는 교도관의 물음에 ‘나에게 선택은 어느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다’라고 김선명 선생이 답변하는 대목이다. 이남과 이북 모두가 나의 조국이므로 어느 쪽 하나도 버릴 수 없다는 의미심장한 철학적 고백이다.〉
 
  김선명씨는 1925년 경기도 양평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모두가 평등하게 잘살 수 있다는 말에 매료돼 공산당원이 되었으나 만 25세이던 1951년 유엔군에 생포됐다. 이후 1953년 15년형에서 사형, 다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지난 1995년 광복절 특사로 석방돼 95세의 어머니와 45년 만에 재회한다. 두 달 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김씨는 2000년 비전향 장기수들과 함께 북송됐다.
 
 
  2000년 북송된 김선명씨 北 선전 도구로 이용
 
  그토록 원하던 북으로 간 김씨는 북한체제 선전 도구로 이용됐다. ‘데일리NK’가 입수한 동영상을 보면 김씨는 2010년 2월 15일(김정일 생일 전날) 평양시 평천구역에 있는 공연장 ‘운정관’에서 함께 북으로 간 장기수들과 공연을 한다. 공연의 주 내용은 김정일 체제의 우월성과 남한 사회에 대한 비난이다.
 
  영상에서 사회자는 김씨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신라, 고려, 이조시대 3대 왕족에서 고관 내력을 지낸 가문(출신)이다. 이조시대 할아버지 관직은 병조판서, 할머니는 막내딸인 공주였다. 이런 가문에서 태어난 김선명 동지는 사회주의자가 되고, 또한 비전향 장기수가 되고, 세계 최장기수가 됐다. 이건 우리 당이 얼마나 위대한 당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김씨는 동료와 ‘조국이 무엇인지 알게 한 사람, 혁명이 무엇인지 알게 한 사람’이란 가사를 담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사랑의 화신’인 김정일이 있었기에 오랜 감옥 생활을 이겨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북한을 미화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도 시청한다고 한다.
 
  조씨를 잘 알고 있는 수사당국 관계자는 “조씨가 핵심 조직원들을 수시로 프랑스로 소집, 사상 및 교양을 학습시키고 지령을 내리는데 이때 이런 말을 자주 내뱉는 것으로 파악했었다”고 했다.
 
  “북 코리아가 선군의 사상과 노선을 제시하면서 우선적으로 군대를 강화하고 동시에 민중을 조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북 코리아가 혁명정신이 강하고 핵·미사일·잠수함으로 무장한 자위군사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전향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정세 속에서 오래전에 전쟁의 참화를 당했을 것이다.”
 
  조덕원씨의 아내인 황혜로씨도 수업을 했다. 수업 참석자들은 한국에서부터 조·황 부부를 동경하거나 반미·친북 성향이 강한 활동을 해온 터라 수업 내용에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조덕원의 실체
 
2015년 6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KT 사옥 앞에서 코리아연대 회원들이 유엔 북인권사무소 개소식 반대와 시설 폐쇄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조선DB
  20대 초반 대학생들에게 사상교육을 하는 조덕원씨는 1991년 7월 반국가단체인 ‘1995년 위원회’에 가입했다. ‘1995년 위원회’에서 그는 북한과의 접촉에 신경 썼다. 조직원 변○○을 평양에 파견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서울고등법원 판결문을 보면 ‘1995년 위원회’는 조선노동당의 대남선전기구인 ‘한국민족민주전선’의 정책과 노선을 따르는 국가변란 목적의 지하조직이다.
 
  1년 뒤인 1992년 4월 13일 조씨는 ‘남한조선노동당(민족해방애국전선)’에도 가입했다. 이 역시 주체사상을 신봉한 반국가단체다. 강원도당 정보·재정참모직을 맡은 그는 ‘유영수’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 암호명은 ‘대둔산 905호’였다. 조씨는 상부선 이○○의 명령으로 주한미군 핵 보유 및 핵 기지 실태를 파악했다. 공안당국은 1992년 9월 21일 국가기밀 수집 활동 중인 조씨를 국가보안법(간첩) 위반으로 구속했다.
 
  1993년 2월 28일 징역 8년을 선고받은 조씨는 2001년 3월 출소했다. 2년 뒤인 2003년 4월 30일 사면복권 된 그는 7월 3일 ‘21세기코리아연구소’(향후 ‘코리아연대’로 발전)를 창립했다. 연방제 통일,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투쟁을 위해서였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21세기코리아연구소(코리아연대)는 ‘예속과 분단, 파시즘으로 얼룩진 KOREA를 지양하고 자주와 통일, 민주주의로 열어나갈 21세기 COREA를 지향한다’는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인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 수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은 주한미군 철수 요구와 남한 내 지하당 구축 시도(통일부 남북관계 지식사전)이다.
 
  실제 조씨는 코리아연대 결성 당시를 ‘결정기가 임박한 시기’로 평가하고 〈코리아반도 대전환기〉 〈코리아반도 대격변기〉라는 논문집을 발간했다.
 
  〈코리아반도 대격변기〉 논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04년은 민주노동당의 주동적인 활동으로 민중연대와 통일연대가 하나의 거대한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해가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민중연대와 통일연대를 하나로 통합하면 코리아반도에서 단계적 미군 철거가 추진되고 낮은 단계 연방제가 실시되는 객관 정세와 이남의 지역민족민주전선이 형성되는 주관 정세가 결합하며 자주통일의 대격변기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코리아연대는 이런 내용의 논문을 대중에게 팔기도 했다. 〈코리아반도 대전환기〉의 경우 가격이 회원은 권당 8000원, 비회원은 1만원이었다.
 
  공안당국은 국가보안법 전과가 있는 조씨를 주목했다. 2005년 8월 17일 조씨는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 본관 1층 커피숍에서 8·15 민족대축전 해외 민주인사 자격으로 서울을 방문한 재미 친북 교포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과 회합했다. 워커힐호텔에는 북한 대표단도 묵고 있었다. 당시 북측 단장은 현 북한 선전 책임자인 김기남 노동당 비서였다.
 
  한 소장은 북한의 연방제 통일을 지지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연방제 통일국가 건설에 합의하여 통일전선 정부를 세우는 것은 세계 정치사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전혀 새로운 형태와 내용의 정부를 창조하는 대사변이다.〉
 
  회합 이틀 뒤인 2005년 8월 19일 조씨는 공안당국의 감시를 피해 해외로 출국했다. 그는 그때부터 현재까지 프랑스에 체류 중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연방제 통일은 북한의 대남 전술의 핵심이다. 홍관희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연방제 통일에 대해 “남한에 용공(容共) 정부를 세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킨 뒤 연방정부를 구성, 북한 주도로 통일하겠다는 음모”라고 했다.
 
 
  조덕원의 아내 황혜로
 
  황혜로씨는 조덕원씨의 아내이다. 두 사람은 2009년 11월 도피처인 프랑스에서 결혼했다. 황씨는 1990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년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형을 마친 황씨는 1999년 6월 1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대표 자격으로 밀입북했다. ‘1999년 범청학련 통일대축전 및 범민족대회’를 앞두고 북한과 협의하기 위해 일본 오사카와 스위스 취리히를 거쳐 평양에 간 것이다. 황씨의 밀입국 사실은 북한 중앙방송을 통해 알려졌다. 당시 밀입국으로 인해 황씨는 또다시 2년6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황씨는 조씨가 2003년 코리아연대의 모태(母胎)인 ‘21세기코리아연구소’를 결성할 때부터 함께했다. 이 시기(2004년) 황씨는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했는데 핵심 공약은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민중생존권 쟁취운동 ▲6·15공동선언 실천 ▲한총련 이적 규정 철폐였다.
 
  코리아연대 창립 멤버인 황씨는 ‘김정일 조문’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2011년 12월 17일 북한 김정일이 사망하자 코리아연대는 12월 20일 통일부에 방북신청서를 제출했다. 당연히 통일부는 불허했다. 프랑스에 머물던 황씨는 통일부의 결정을 무시하고 2011년 12월 24일 중국 베이징발 순안행 고려항공 JS152편으로 밀입북했다. 황씨는 2012년 1월 3일까지 평양에 머물며 세 가지 공식 일정을 소화했다.
 
  첫 번째 일정은 2011년 12월 26일 ‘민족통신’ 대표 노길남과의 인터뷰였다. 민족통신은 노길남이 운영하는 친북 성향 인터넷 매체다. 북한을 62차례나 방문했다는 노씨는 2014년 평양에서 김일성상(賞)을 받았다. 그는 북한의 대남 선전 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주최한 경연대회에서 ‘북녘 동포들 가슴 깊이 젖어든 령도자’라는 작품을 제출해 입상하기도 했다.
 
  황씨는 노씨와의 인터뷰에서 밀입북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통일을 위해 수고하신 북녘 지도자이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조의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정부도 지금 당장 조문단을 보내야 한다. 남녘 정부가 조문단을 꾸리지 않는 안타까운 사정에 대해 분노마저 느낀다.”
 
  ‘무단 방북으로 인해 남한으로 돌아가면 옥살이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남녘과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하시던 북의 지도자가 세상을 떠났는데 어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남녘 정부는 상식에 부합된 범위에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춰주기를 호소한다”고 답했다.
 
  노씨는 지난 4월 25일(현지시각) 코로나19에 감염돼 숨졌다. 그는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가 이날 오후 5시41분쯤 사망했다.
 
 
  김정일 시신 앞에서 묵상
 
정부 허가 없이 방북해 김정일을 조문한 황혜로씨가 2012년 1월 3일 베이징을 거쳐 로마로 떠났을 때 모습. 사진=KBS 뉴스 캡처
  두 번째 일정은 2011년 12월 27일 김정일 시신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아 조문하는 것이었다. 황씨는 김정일 시신 앞에서 묵상하고 조의록에 글을 남겼다.
 
  〈민족의 화해와 단합,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헌신하신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의 명복을 삼가 비옵니다.〉
 
  세 번째 일정은 12월 29일 김정일 추도대회 참석이었다. 이 시기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정부 허가 없이 방북한 황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김정일 추도대회 이후 닷새를 더 평양에 머문 황씨는 2012년 1월 3일 고려항공 편으로 중국 베이징을 거쳐 이탈리아 로마로 도주했다. 이후 황씨는 프랑스로 가 남편 조씨와 친북 사상 전파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희망나비’ 만든 J씨, 조덕원의 통역 지원
 
  ‘희망나비’의 대표 이소영씨는 지난 6월 12일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의 기고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조선일보》는 평화기행 참가자들이 ‘친북’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는 평화기행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평화기행에는 청소년, 대학생, 교사, 대학교수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해 평화활동을 펼쳤고, 일본인 평화활동가까지도 우리 뜻에 함께하며 참가하기도 했다.”
 
  희망나비 평화기행의 민간외교적 성과를 헐뜯을 의도는 전혀 없다. 유럽에서 세계인들을 상대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알리는 활동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따라서 사실만 나열하겠다.
 
  ① ‘유럽평화기행단’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평화·인권운동 청년단체 희망나비가 2014년 함께 만든 모임이다. 매년 자발적 신청자들을 모아 제1·2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남아 있는 유럽 도시들을 돌며 수요집회를 열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② 희망나비는 2013년 10월 프랑스 유학생이던 J씨가 주축이 돼 만든 정대협의 연대 단체다. 100여 명의 젊은이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각종 캠페인과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J씨는 2013년 추석 때 파리에 온 김복동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만난 것이 계기가 돼 희망나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통역을 맡았던 J씨는 휴학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희망나비 활동을 시작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젊은 사람들이 나설 때 힘이 클 것 같았어요. 정대협은 정대협의 역할이 있고 그 옆에서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연대단체가 필요할 것 같았거든요. 좀 더 젊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발랄하게, 좀 더 강하게 1인 시위도 하고 서명도 받고요. 이 활동이 할머니들이 본인들의 인권을 위해 하는 활동이 아니라 평화운동이고, 젊은 사람들도 나서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2014년 7월 말 《여성신문》 보도 중)
 
  J씨가 조덕원씨의 통역을 도맡아 한다는 증언이 지역 유학생들로부터 나왔다. 조씨는 2011년 세네갈에서 열린 ‘다카르세계사회포럼’에 참석했는데, 이때 통역을 J씨가 맡았다. 이 포럼에는 아내인 황씨도 함께했다.
 
 
  유럽평화기행단장 K씨, 코리아연대가 설립한 여행사 대표
 
  ③ K씨는 희망나비 유럽평화기행단장이다. 희망나비의 주축 멤버로 J씨와 함께 전국의 대학 캠퍼스를 돌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서명운동과 캠페인을 벌여왔다. 그런데 K씨는 조덕원씨가 만든 코리아연대(2016년 대법원 이적단체 판결받고 해산)가 과거 설립한 P여행사의 대표 또는 이사였다. 과거 코리아연대를 조사한 검찰 관계자는 “코리아연대가 여행사를 통해 수억원대의 자금을 마련, 조직원들의 활동비로 사용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했다.
 
  취재 결과 코리아연대는 P와 S 두 개의 여행사를 각각 2009년, 2012년에 설립했다. 두 여행사는 현재도 영업 중이다. 등기부 등본에 K씨는 사내이사로, P여행사 홈페이지에는 대표(CEO)로 나와 있다. 검찰 조사 결과 K씨는 코리아연대 창립 멤버다. 사내이사였던 나○○(2017년 3월 31일 퇴임)은 조씨의 최측근이고, 감사 최○(2017년 3월 31일 퇴임)은 코리아연대 내 ‘교육위원회’에서 청년 학생을 대상으로 선전활동을 한 인물이다. P여행사는 조씨의 부인 황씨와도 관련이 깊다. 황씨는 2010~2011년 P여행사에 대한 홍보 글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는 등 애정을 보였다.
 
  ④ 유럽평화기행단은 코리아연대가 설립한 P와 S 두 개 여행사를 통해 행사를 진행했다.
 
 
  정대협과 조덕원의 연관성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4급 보좌관은 ‘통일뉴스’ 출신이다. ‘통일뉴스’ 통신원으로 활동한 조덕원씨는 2011년 2월 16일 ‘아프리카 민중의 항쟁과 세계사회포럼의 성과는 이어진다’는 기사를 통신원 자격으로 썼다. 사진=통일뉴스 사이트 캡처
  ⑤ 정대협과 이 단체를 이끈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조씨 부부와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정대협 대외협력위원장이었던 손미희 현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공동대표는 2013년 6월 8일 독일 보흠에서 통합진보당 유럽당원 등 6·15공동선언실천유럽지역위원회 주최로 연 6·15공동선언실천 13돌 행사에 조씨와 함께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조씨는 1993~1994년, 1998~2000년, 2006~2007년, 2008~ 2009년, 2012~2013년 전쟁위기를 언급하며 “이 5개 기간은 전쟁 직전까지 간 상황”이라며 “핵과 미사일이 없었으면 북이 이라크와 리비아처럼 됐다”며 “코리아반도에서 전쟁을 막은 것은 북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⑥ 2014년 윤미향 의원은 프랑스 파리 출장 중 조씨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윤 의원의 4급 보좌관은 ‘통일뉴스’ 출신이다. 조씨는 ‘통일뉴스’ 통신원으로 활동했다. 조씨는 2011년 2월 16일 ‘아프리카 민중의 항쟁과 세계사회포럼의 성과는 이어진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신원 자격으로 썼다.
 
윤미향 의원의 남편인 김삼석씨가 대표로 있는 ‘수원시민신문’은 2014년 4월 15일 조덕원씨가 주축인 ‘코리아국제포럼’ 관련 기사를 게재했다. 사진=구글 캡처
  ⑦ 윤 의원의 남편인 김삼석씨가 대표로 있는 ‘수원시민신문’은 2014년 4월 15일 조씨가 주축인 ‘코리아국제포럼’ 관련 기사를 게재했다. 신문사가 기사를 쓰는 건 당연하지만 당시 코리아국제포럼 관련 기사를 쓴 곳은 ‘21세기 민족일보’를 포함, 극소수였다. 당시 기사 내용을 자세히 보기 위해 ‘수원시민신문’ 홈페이지에 들어가 ‘조덕원’이란 이름을 검색했지만 ‘로그인 후 관리자 승인받은 사람만 검색 가능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코리아국제포럼 기사를 단골로 쓰는 ‘21세기 민족일보’는 코리아연대가 운영하는 인터넷 기관지다. 코리아연대는 이적단체로 규정, 해체됐지만 ‘21세기 민족일보’는 여전히 운영 중이다. 포털사이트에서 ‘21세기 민족일보’만 검색하면 누구나 접속이 가능하다.
 
  과거 코리아연대를 수사한 검찰은 이 사이트가 수년 동안 북한 주장을 그대로 퍼 나르면서 북한의 대남 선전선동 활동에 동조해온 것으로 파악했었다. 그럼에도 사이트 폐쇄 등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21세기 민족일보’가 2012년 서울시에 인터넷신문으로 등록된 정기간행물로 분류돼 신문법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신문은 등록은 쉽고 폐간하기는 쉽지 않다. 폐간 조치를 위해서는 등록지 지방자치단체가 법원에 인터넷 신문 등록 취소 심판을 청구해 발행 목적을 위반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지자체가 3개월 이내 발행정지를 명령할 수 있지만, 이는 발행인이나 편집인 등이 국가보안법 등으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거나 등록사항을 임의로 변경한 경우에나 가능하다.
 
 
  ‘희망나비’ 활동 헐뜯을 의도 전혀 없어
 
  희망나비는 젊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아무 대가 없이 위안부 할머니를 지원하는 훌륭한 일을 하는 단체다. 하지만 이 단체의 몇몇 관계자는 조덕원·황혜로 부부와 강하게 연결돼 있었다. 지금은 희망나비와 관련 없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상식적으로 희망나비 창립의 주역을 쉽게 손절할 순 없다. 그들과 조덕원·황혜로 부부 세력은 순수한 마음으로 희망나비에서 활동하는 학생 중 소위 싹수가 보이는 몇몇을 선정했다. 물론 이 두 부부와 반미·친북에 관심이 있어 자원한 학생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모인 학생들에게 조덕원·황혜로 부부는 친북·반미 사상을 주입했다.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시민단체 희망나비의 활동 자체를 부정하거나 지적하는 게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각에서 위안부 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운동의 대의를 손상시키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면서 “위안부 대의는 결코 부정하거나 폄훼할 수 없는 역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라면서 “위안부 할머니 없는 위안부 운동은 생각할 수 없다”고도 했다. 혹시 친북 사상 교육과 관련해서도 대깨문(극성 대통령 지지자)들을 비롯, 문 대통령과 같은 시각을 견지하는 세력이 존재할 것으로 예상돼 미리 알리는 것이다. 순수한 의도로 나름 거액을 들여 유럽까지 가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에게 마수를 뻗치는 세력을 막든가, 정리하든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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