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슈 진단

150조원 자사주 소각법의 허상과 실체

기업은 물론 노조도 피해… 기업사냥꾼·행동주의 헤지펀드만 혜택

  • 글 :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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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가삼간 태우는 갈라파고스적 기업사냥꾼 육성법
⊙ 미국, 자사주 매입 → 일자리 해외 유출 → 노조 약화
⊙ 기업들이 소각해야 할 150조원은 올해 인공지능(AI) 투자 예상액 약 60조원의 2.5배
⊙ 자사주 소각론자들, “지금까지 자사주가 특정 주주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쓰였다” 주장
⊙ 자사주 매입은 단기 주가 상승 효과 있지만, 자사주 소각은 없어
⊙ ‘자본 차감 → 미발행 전환 → 소각 의무’라는 《환단고기》 수준의 논리 창조
⊙ 10년간 약 800억 달러의 자사주 매입한 인텔, 주가 곤두박질

申璋燮
1962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박사 / 기획재정부 장관 자문관, 한국금융연구원 초빙 연구위원, KDI정책대학원 초빙 교수, 現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 교수 / 저서 《기업이란 무엇인가》 《김우중과의 대화》 《The Rhetoric and Reality of Shareholder Democracy and the Rise of Hedge-Fund Activism(주주 민주주의의 수사와 실체, 그리고 헤지펀드 행동주의의 부상)》
경제 8단체 부회장단은 2025년 7월 24일 상법 개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사진=뉴시스
자사주(自社株)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제3차 상법 개정안이 지난 2월 25일 국회를 통과했다. 상법 개정안은 3월 5일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10일 공포됐다. 약 150조원(코스피 5500 기준)에 달하는 거액의 자산을 불태워 없애고, 다른 나라 기업들이 다 하고 있는 자사주를 활용한 주가 방어·인수합병(M&A)·인재 유치 등의 정상적 경영 활동을 극도로 제한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필자는 구정 연휴 직전 2월 13일에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에 참가했으나, 처음부터 방향이 정해져 있는 분위기였다. 구정 연휴가 지난 뒤 공청회 내용에 대한 검토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채, 열흘도 안 되는 기간에 법사위와 본회의 통과가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이번 상법 개정은 일반 주주(株主) 보호나 주가(株價) 상승, 자본 시장 발전 등의 목표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그 목표라는 것들을 달성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이다. 오히려 주주에게 이익을 주긴커녕 자본 시장 발전을 저해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업의 정상적 활동에 범죄 혹은 편법의 굴레를 씌워 기업을 옥죄면서 반(反)기업 정서를 강화하는 데 있다. 이 결과 기업은 자사주를 이용해 경영권 방어에만 급급한 ‘악한 세력’이고, 이들을 공격하는 기업사냥꾼이나 행동주의(行動主義) 헤지펀드들은 ‘정의(正義)의 사도(使徒)’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한마디로 이번 자사주 소각 의무화 상법 개정은 오직 행동주의자들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기업사냥꾼 육성법’이라 할 수 있다.
 
 
  빈대 잡는다는 핑계로 초가삼간 불태우는 법
 
  국내 자사주 소각 의무화론자들은 ‘경영권 방어 대(對) 소각’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상법 개정을 밀어붙였다. 예를 들어 한국거버넌스포럼의 이남우 회장은 “회삿돈으로 자사주를 매입해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쓰는 것은 반칙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자사주를 매입하면 소각해 주주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자사주를 기업 자산으로 여기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오기형 코스피 5000 특위 위원장도 “지금까지 자사주가 특정 주주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쓰였으니, 그렇게 못 하게 하려는 게 3차 상법 개정안의 취지”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자사주는 경영권 방어 이외에 훨씬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또 소각만이 자사주 매입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내세울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재무 이론에서는 통상 자사주 매입을 (1)자본구조 조정 (2)신호 보내기(Signaling) (3)M&A 화폐 (4)옵션·보상 수단으로 이해한다. (1)은 자사주 소각과 조금 연결될 수 있을지 몰라도 (2) (3) (4)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2)신호 보내기는 주가가 지나치게 낮을 때 회사가 자사주를 매입해 시장에 회사의 자신감을 보여줘서 주가를 방어하는 것이다. 이후 매입한 자사주를 주가가 좋아졌을 때 시장에 되팔아 차익을 회사에 귀속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지, 손실을 감수하며 소각해서 주가를 올리는 경우는 드물다. (3)M&A 화폐와 (4)옵션·보상 수단은 자사주를 활용하는 것이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3) (4)는 불가능해진다.
 

  국내 소각 의무화론에는 재무 일반 이론에 나오는 (2) (3) (4)가 완전히 삭제되어 있다. “자사주를 기업 자산으로 여기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라고 말하지만 (2) (3) (4)는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이고 자사주가 기업의 자산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1)자본구조 조정 논의도 소각 의무화와 직접 연결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자사주를 매입하면 그만큼이 자본과 유통 주식 숫자에서 빠지기 때문에 자기자본이익률(ROE·이익/자기자본)이나 주당순익(EPS·이익/유통주식수) 등의 분모를 줄여 이 지표들이 기계적으로 상승해서 자본효율이 높아진 것으로 나온다. 이러한 ‘자본효율화’ 자체가 직접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분자인 이익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지 등 다른 변수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자사주 소각은 자본효율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매입할 때 이미 지표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3차 상법 개정은 일반 재무 이론과 세계적 현실을 편파적으로 삭제하고 “한국만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용으로 쟁여놓고 있으니까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소각을 강제해야 한다”라는 단선적 프레임을 관철시켰다.
 
  이것은 빈대 잡는다는 핑계로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경영권 방어라는 것이 문제라면 그에 맞는 ‘빈대약’을 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소각을 강제해 모든 자사주 활용을 죄악시하고 150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불태워 없애는가?
 
 
  《환단고기》 수준의 자사주 소각 논리
 
  국내 자사주 소각론자들이 소각 의무를 합리화하기 위해 동원한 것이 ‘미발행 주식설’이다. 이남우 회장은 “자기 주식은… 발행되지 않은 주식과 같이 주주 지분에서 차감하는 항목으로 처리하는 것이 정답이고 글로벌 스탠더드다. 미발행 주식설이라고도 하는데 한국이 채택한 국제 회계 기준 및 미국 기업 회계 기준에서는 대단히 상식적인 얘기”라고 말한다. 오기형 위원장도 3차 상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미발행설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것은 《환단고기》와 한국사를 동급에 놓고 비교한 뒤 《환단고기》에 맞춰 사회 체제를 다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또 회계 기준과 상법을 동일시해 회계 항목의 이름에 맞춰 상법을 고쳐야 한다는 ‘회계 원리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법의 다양성과 회계 기준의 글로벌화를 먼저 알아야 한다.
 
  중앙집권 국가인 한국과 달리 연방 국가인 미국에서 상법은 주(州)정부가, 금융규제는 연방정부가 관장한다. 각 주마다 다양한 상법을 운영하고 이 결과 자사주에 대한 규제도 다양하다. 유럽·일본 등 다른 나라들도 자신들의 역사 발전 과정을 반영해 다양한 상법을 갖고 있다.
 
  그러나 회계 기준은 그동안 금융의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각 나라 간에 상당히 유사해졌다. 한국도 이 회계 기준을 따른다.
 
  기업 회계 기준에서는 자사주를 매입하더라도 이를 자산으로 계상하지 않고 그만큼 자본이 차감(差減)된 것으로 처리한다. 이런 방식을 정한 가장 큰 이유는 기업 청산 때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회사가 망하면 주식 가치가 없어진다. 자사주도 마찬가지다. 만약 자사주를 자산으로 분류한다면 채권자는 그만큼 회사의 자산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게 된다. 그러나 회사 정리 절차에 들어간 뒤 자산이라고 여기던 것이 없어지는 낭패를 당한다. 그래서 자사주 매입이 자본이 차감된 것으로 인식되도록 하는 보수적 접근을 취했고 이것이 회계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할 수 있다.
 
 
  자사주 규제, ‘글로벌 스탠더드’ 없다
 
  그러나 기업 경영을 관리하는 상법은 회계학계와 다른 길을 걸었다. 회사가 청산될 때보다 살아 있는 주체(going concern)일 때에 더 주안점을 두고 상법이 운용되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구글, 메타, 애플 등 미국 상장사의 60% 이상이 본사를 두고 있는 델라웨어주는 매입한 자사주를 금고주(treasury stock)로, 즉 ‘기(旣)발행 주식’으로 남겨두고 자본 차감에 별도의 계정을 만들어 집어넣는다. 유통 주식에서 제외되고 배당, 투표권 등이 정지되지만 기업의 자산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다른 자산과 마찬가지로 이사회에 처분권이 부여된다. 단지 경영진이나 대주주가 사익(私益)을 위해 자사주를 활용했다는 사실이 나오면 처벌하는 ‘사후 책임 모델’을 사용한다. 미국에서 자사주에 대해 가장 보수적 접근을 취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주도 금고주를 허용한다.
 
  ‘자본충실원칙’이 강하게 남아 있는 유럽에서 독일, 프랑스 등 대륙 국가들은 자사주 매입에 대해 ‘원칙적 불허, 예외적 허용’이라는 틀을 유지하고 있다. 발행 주식의 10%와 순자산 범위 내에서 이사회가 자사주 매입 및 활용을 한다. 매입 자사주는 회사 자산으로 인정된다. 영국은 자사주를 매입하려면 주주총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2003년에 법 개정을 통해 자사주를 즉시 소각하지 않고 일정 조건하에 금고주로 보유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독일법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은 자사주 매입에 예외조차 인정하지 않는 가장 엄격한 자본충실원칙을 지켜왔었다. 이러다가 2001년 델라웨어와 같이 유연한 방식으로 대전환했다. 자사주를 통해 기업의 ‘재무적 기동성’을 확보해 경기 침체에서 탈출하려는 목적이었다. 소프트뱅크, 토요타 등이 확장에 자사주를 적극 사용했다([표] 참조).
 
  세계적으로 비교해 보면 자사주를 자산으로 인정하는 것이 절대다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소각론자들은 이 사실을 편파적으로 삭제했다. 특히 델라웨어 상법을 지운 것은 1차 상법 개정 때 델라웨어의 ‘주주충실 의무’를 적극 동원했던 사실에 비추어볼 때 역설적이다. 거의 동일한 그룹의 사람들이 상법 개정을 주도했고 자사주 소각은 ‘주주충실’이라는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제시됐다. 그런데 목적을 논할 때는 델라웨어를 떠받들고 실현 수단을 얘기할 때는 델라웨어를 지웠다. 델라웨어가 한국 상법 개정에 끌어들여져서 ‘×고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발행 전환 = 소각’이라는 왜곡
 
  ‘자사주 소각론 《환단고기》’의 핵심인 ‘미발행 전환’도 실상을 따져보면 ‘소각’이 아니라 이사회가 언제든지 다시 발행할 수 있는 ‘가역적 자기자본’이다. 워싱턴, 텍사스, 네바다 등 수정표준회사법(RMBCA·Revised Model Business Company Act)을 채택한 30여 개 주에서는 자사주를 매입하면 금고주로 남기지 않고 즉시 ‘미발행’으로 전환된다. 여기에는 미국 상장 법인의 15~20%가 있고 이들의 시총 비중은 1520%로 추산된다.
 
  RMBCA에서는 자사주를 매입한 만큼이 자본에서 직접 차감되기 때문에 자사주가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미 승인된 주식 발행 한도 내에서 이사회 결의로 미발행 전환분을 발행으로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임직원에게 주식이나 스톡옵션을 줄 때 미발행분을 그냥 발행으로 전환해서 지급한다. 임직원은 추후 이 주식을 시장에 팔아서 현금화할 수 있다.
 
  발행 전환은 델라웨어에서 금고주를 시장에 재유통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같고 따라서 주식 시장의 수급에 미치는 영향도 동일하다. 비유를 들자면 델라웨어에서는 필요할 때 사용하기 위해 총을 금고주로 갖고 있지만, RMBCA에서는 총을 분해해서 갖고 있다가 필요할 때 조립해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사주 소각론자들이 RMBCA의 ‘미발행 전환’이라는 문구만 내세워 소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재발행 가능성을 숨기거나 왜곡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소각 의무화를 끌어내기 위해 이들은 델라웨어를 작위적으로 배제하고 왜곡된 RMBCA 방식을 끌어들여 ‘자본 차감 → 미발행 전환 → 소각 의무’라는 《환단고기》를 창조해 냈다. 이러고 이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강변한다[그림].
 

 
  자사주 매입이 주가를 올린다?
 
  이렇게 논리와 실증이 전무(全無)한데도 자사주 소각론이 일반인들로부터 지지를 받거나 큰 반대가 없는 것은 자사주를 소각하면 주가가 올라갈 거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그 실상과 심리에 대해 솔직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자사주 매입이 주가를 올리는가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상당히 많은 연구가 축적되어 있다. 필자도 나름 이 분야를 제법 연구했다. 실증연구 결과는 대체적으로 자사주 매입이 단기 주가를 상승시킨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EPS(주당순익)나 ROE(자본수익률)가 기계적으로 상승하면서 주가 상승이 기대되기도 한다. 또 자사주를 매입하는 동안 시장 수요가 보통 때보다 늘어난다. 큰 기업들은 1년에 걸쳐 나누어서 자사주를 매입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자사주 매입이 주식 투자자들에게 주가 안전판으로도 작용한다.
 
  하지만 자사주 매입이 중장기 주가를 상승시키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필자는 자사주 매입 이후 중장기 주가가 오른 기업은 자사주 매입 때문이 아니라 자사주를 매입한 다음에도 경영을 계속 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규모 자사주 매입을 했는데도 중장기적으로 주가가 하락한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기업이 인텔이다. 인텔은 2011년부터 10년간 약 800억 달러(117조원)의 자사주를 매입했는데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그래서 필자는 배당은 주주 환원이지만 자사주 매입은 주주 환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배당은 주가가 떨어져도 계속 받을 수 있지만 자사주 매입은 주가가 떨어지면 ‘환원’이라는 걸 아예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 돈 100억원을 불태운다면?”
 
  자사주 매입과 달리 자사주 소각은 단기적으로도 주가가 올라갈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매입 때 이미 유통 주식수와 자본이 감소했기 때문에 소각을 하더라도 EPS, ROE 등 지표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하는 추가 수요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자사주 소각론자들은 자사주가 회사 안에 있으면 나중에 다시 시장에 풀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주가 상승의 발목을 잡는다며 소각을 해야 주가 상승 효과가 제대로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기업이 신주(新株)를 발행하면 무조건 주가가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벤처기업들이 앞으로 주가가 오를 것이라며 신주를 발행해 외부 자금을 끌어들이는데, 만약 자사주 소각론자들의 ‘우려’가 사실이라면 이는 벤처기업들이 투자자들에게 사기를 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 논리대로라면 자사주를 소각할 뿐만 아니라 유상증자도 금지해야 주가도 오르고 자본 시장도 발전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주식 시장에서는 전망이 좋으면 신주가 공급되더라도 주가가 오른다. 자사주도 기업의 성과가 좋으면 재유통시킬 때 주가가 오를 수 있다.
 
  일반 주식 투자자들은 대체로 자사주 소각이 ‘주주 환원’으로 도달하게 된다고 주장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단지 소각이 주가를 올린다는 말이 시장에 많이 돌아다니니까 막연한 주가 상승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듯싶다.
 
  여기에는 일반 투자자들의 무책임한 인식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당신 돈 100억원을 불태우면 당신 재산이 그 이상 늘어난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말을 믿고 태워 없애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이니까 150조원이 아무리 큰 액수라도 “그 돈을 불태워서 내가 갖고 있는 주식 가격이 오르면 좋고 안 되더라도 내 돈 아닌데…”라는 속내가 자사주 소각론 지지에 깔려 있는 것 같다. 공익(公益)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주식 투자자라면 소각론의 메커니즘을 곰곰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누굴 위한 자사주 소각 의무화인가?
 
2025년 2월 27일 상법 개정안 상정을 촉구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국장 살리는 상법 개정’이라는 주장이 눈에 띈다. 사진=연합뉴스

  3차 상법 개정으로 기업들이 소각해야 할 150조원은 올해 인공지능(AI) 투자 예상액 약 60조원의 2.5배에 달한다. 이 자산을 불태워 없애는 것이 국가 경제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이 돈을 잘 쓰도록 유도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좋은 일 아닌가?
 
  경제 관련 규제는 국민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와 확신이 있어야 고치든지, 새로 도입하는 것이 원칙이다. 150조원을 불태워 없애는 것이 성장, 고용, 분배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필자는 공청회에서 “이에 관한 이론이나 실증이 있으면 제발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국민 경제에 바람직하다는 근거가 없다면 자사주 소각이 여러 이익집단 중 누구에게 좋은 것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것으로 내세워지는 그룹이 주식 투자자들이다. 그러나 앞서 논의했듯이 중장기 주가는 고사하고 단기적으로도 주가를 끌어올릴 만한 뚜렷한 이유조차 찾을 수 없다. 많은 주식 투자자가 지난 1년 동안 상법 개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코스피가 크게 오른 사실을 1대1로 연결시켜서 상법 개정 때문에 주가가 이렇게 올랐으니 상법 개정추진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치권도 이런 인식을 부추긴다. 오기형 위원장은 공청회 이틀 전인 2월 11일 기자 간담회에서 “소각 의무화를 하지 말자는 것은 ‘코스피 2500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코스피가 2500부터 5000까지 올라온 가장 큰 요인이 상법 개정이라는 주장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정청래 민주당 대표도 자사주 소각 법안의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2월 25일 “이제 주가지수가 6000을 넘어 7000, 8000까지 훨훨 날아오를 수 있도록 우리 주식 시장에 효율성을 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주가는 훨씬 더 다양한 요인 때문에 움직인다. 최근 미국·이란 전쟁이 벌어지면서 코스피가 폭락한 것처럼 국제 환경이 영향을 미친다. 관세 부과에 따라 인플레가 우려됐는데도 불구하고 미국 금리가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면서 유동성이 풍부하게 공급되고 있는 것도 그동안 주가 상승에 우호적인 환경이었다. 전 세계적인 AI 투자 붐도 굉장히 크게 작용했다.
 
 
  가장 큰 피해자는 기업
 
  다행히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그동안 역량을 잘 쌓아두어서 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방위 산업이나 조선(造船)도 지정학적 갈등이 커지면서 그동안 쌓았던 역량이 꽃을 피운 측면이 많다. 현대차의 약진도 로봇과 모빌리티에 선제적으로 투자한 것들이 피지컬 AI가 각광을 받으면서 빛을 보는 것이다.
 
  이런 대표 기업들과 얽혀 있는 다른 기업들의 주가가 함께 상승한 것까지 감안하면 기업 부문의 기여가 대단히 크다. 필자가 추산한 바로는 반도체, 방산 등 주요 14개 기업이 코스피 5000 달성에 거의 절반가량을 기여했다. 정책 담당자들이나 주식 투자자들은 주가 움직임에 대해 보다 겸허해져야 한다.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여러 가지 요인을 제대로 따져야지 자신이 중시하는 한 가지 요인만을 지나치게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기업은 자사주 소각법의 가장 큰 피해자다. 보유하고 있던 150조원 자산의 커다란 손실이다. 이와 함께 그동안 자사주를 보유하던 이유도 다 상실되고 마치 불법이나 변칙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해온 집단으로 매도되는 점 역시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가장 큰 손실은 향후 자사주 활용 가능성이 원천 봉쇄되는 데 있다. 외국의 빅테크들이나 다른 기업들은 자사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회사를 키워나가는데, 한국 기업들은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축소된다. 일부 예외를 허용했지만 1년 내에 다 사용하든지 아니면 소각해야 한다는 것은 기업의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기업 활동에는 불확실성이 많다. 모든 가능성을 예측해 이만큼, 이 기간만 자사주를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울 수 없다. 델라웨어와 일본이 유연성이나 재무적 기동성을 내세우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일정 한도 내에서 ‘상시적 활용’을 할 수 있게 하고 그것이 기업경영에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거액의 기업 자산을 소각하는 것은 노동자에게 손해가 되면 됐지 이득 될 일이 하나도 없다. 필자가 갖고 있는 커다란 궁금증의 하나는 한국의 강력한 노동 세력이 왜 자사주 소각에 반대하지 않는가라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자사주 매입 광풍이 불면서 ‘비용 절감’의 기치하에 많은 일자리가 해외로 나가 숙련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많이 감소했다. 양극화(兩極化)가 심화됐고 노조도 당연히 약화됐다.
 
  반면 노조가 이사회에 참여하는 독일에서는 자사주 매입이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일 상법이 자사주 매입에 제한을 두고 있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노조가 반대하기 때문에 이사회 안건으로 거의 상정되지 않았다.
 
  한국의 노조도 정말 노동자를 위하고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면 150조원의 거금을 태워 없애기보다 일자리 창출에 사용하게끔 정부에 건의했어야 한다.
 
 
  엘리엇의 삼성전자 공격
 
삼성전자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공세로 홍역을 치렀다. 2015년 7월 17일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장을 나서는 엘리엇 측 변호사. 사진=뉴시스

  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유일하고 확실하게 혜택을 보는 집단은 기업사냥꾼이나 행동주의 헤지펀드 같은 세력일 것이다. 실제로 한국거버넌스포럼에는 토종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거의 다 들어가 있다. 기업을 크게 흔들면 거기에서 딸려 나오는 부산물이 많고 행동주의자들은 그 이익을 챙긴다.
 
  미국에서도 자사주 소각론은 ‘기업사냥꾼’의 단골 메뉴였다. 기업사냥꾼의 후예인 행동주의 펀드들의 단골 메뉴도 소각을 위한 자사주 매입이다. 이들이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사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공익도 달성된다고 포장한다. 하지만 국민 경제의 주요 집단을 살펴봤을 때 이익을 보는 다른 집단이 전혀 없다면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이들의 사익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경영권 방어 논란도 이런 이해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소각론자들은 경영권 방어 자체가 부적절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회사 경영을 잘하면 공격이 들어오지 않고, 경영을 잘못하니까 공격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행동주의 펀드들이 공격하는 대상은 경영을 잘하는지 여부를 떠나 약점이 보이고 뜯어먹을 것이 많아 보이는 회사들이다.
 
  대표적 사례가 2016년 말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삼성전자를 공격한 사례다. 당시 삼성전자는 영업이익이 개선되는 추세였고 2017년에는 역대 최고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그러나 삼성은 이재용 당시 부회장이 승마용 말 지원 혐의로 구속됐고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를 받고 있던 상태였다. 삼성은 정부와 엘리엇 두 개의 전선을 만들기가 버거웠고 엘리엇의 요구를 상당 부분 들어주며 대결을 피했다. 2017년에 삼성전자는 9.3조원의 역대 최대 자사주를 매입했고 그해 주식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최대 매수 세력은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 주가는 60% 이상 상승했고 엘리엇은 쏠쏠한 이득을 챙기고 떠났다.
 
 
  미국·일본·유럽의 경영권 방어 장치들
 
  미국의 경우는 행동주의자들의 공격이 있더라도 주정부가 기업의 입장에서 많이 방어해 주며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행동주의자들은 1990년대에 미국 경제가 부활한 것이 자신들 덕이라고 내세우지만 필자가 이해하기에는 주정부들이 상법을 통해 지나친 공격을 막아주고 기업들도 노력을 한 것이 종합적으로 나타난 결과다. 반면 한국은 방어는 악이고 공격은 선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상법에서조차 행동주의를 적극 지원하는 형국이 됐다.
 
  이해관계의 시각에서 봤을 때 행동주의자들이 경영권 방어를 비판하는 것은 자신들이 경영권 공격을 통해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경영권 방어는 단순히 특정 대주주의 지배권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경영권이 흔들리면 장기 투자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주주 경영인이건 전문 경영인이건 내가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는 상황이면 어떻게 장기 투자를 하겠는가? 델라웨어 법원은 그래서 공격과 방어의 균형을 맞추는 ‘비례성’의 원칙을 채택한다. 공격의 강도에 비례하는 방어 기제를 허용하는 ‘유노칼(Unocal) 테스트’를 확립했다. 이에 따라 ‘차별적 자사주 매입’, 즉 모든 주주가 아니라 우호 세력으로부터만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는 또 차등의결권 제도를 통해 경영권 방어가 가능하다. 버크셔해서웨이의 워런 버핏은 주당 200개의 의결권을 보유하고 있고 알파벳의 래리 페이지와 메타의 저커버거 등은 주당 10개의 의결권을 갖고 있다.
 
  반면 1주 1의결권이 상법에 규정된 한국에서는 순환출자가 복수의결권의 대체재 역할을 해왔지만 현재는 거의 금지된 상태다. 그나마 남아 있던 자사주를 통한 경영권 방어도 이번 상법 개정으로 박탈됐다.
 
 
  기업사냥꾼을 위한 ‘기울어진 운동장’
 
  한국 주식 시장은 따라서 기업사냥꾼이나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가장 편하게 뛰어놀 수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버렸다. 행동주의 공격이 벌어질 때 단기적으로 주가가 오를 수는 있다. 그러나 기업의 장기 투자 능력, 유연한 대응 능력 등은 크게 제약을 받게 된다.
 
  결국 주식 투자자들도 피해자가 될 공산이 높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나라가 없고 행동주의 세력 이외에는 이익을 볼 집단이 없다는 사실을 조합하면 이번 상법 개정은 갈라파고스적 기업사냥꾼 육성법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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