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현학파 | “분배 중시하는 진보학자”(김태동·이정우·홍장표)
조순학파 | “한국의 케인스주의자”(정운찬·좌승희·김상조)
서강학파 | “先성장 後분배 테크노크라트”(남덕우·이승윤·김만제)
⊙ 서울대 변형윤 명예교수 따르는 진보 학맥이 학현학파…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주목
⊙ 홍장표 전 경제수석도 학현 학맥…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 많아
⊙ 서강학파는 1960년대 美 경제학 박사의 집결지… 남덕우·이승윤·김만제가 상징인물
⊙ “서강학파는 ‘한강의 기적’을 일군 주역이자 한국 경제사의 산증인”이라는 평가
⊙ 조순학파는 스승 따르는 서울대 제자들의 학맥… 동반성장과 자유주의 이념 강조
⊙ 조순학파는 이념적 스펙트럼 넓어… 우파 경제학자에서 좌파 학자까지 다양
조순학파 | “한국의 케인스주의자”(정운찬·좌승희·김상조)
서강학파 | “先성장 後분배 테크노크라트”(남덕우·이승윤·김만제)
⊙ 서울대 변형윤 명예교수 따르는 진보 학맥이 학현학파…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주목
⊙ 홍장표 전 경제수석도 학현 학맥…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 많아
⊙ 서강학파는 1960년대 美 경제학 박사의 집결지… 남덕우·이승윤·김만제가 상징인물
⊙ “서강학파는 ‘한강의 기적’을 일군 주역이자 한국 경제사의 산증인”이라는 평가
⊙ 조순학파는 스승 따르는 서울대 제자들의 학맥… 동반성장과 자유주의 이념 강조
⊙ 조순학파는 이념적 스펙트럼 넓어… 우파 경제학자에서 좌파 학자까지 다양
지난 4월 13일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영수회담 때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 해임을 요구했다. 홍 수석을 “서민경제 파탄의 주범”으로 꼭 집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 재벌 개혁 등 일련의 동시다발적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우리 경제를 되레 악화시키고 소득격차마저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홍 대표의 ‘찍어내기’ 요구를 굉장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였다.
홍준표 대표의 요구를 거부하던 문 대통령은 경제지표가 호전되지 않자 6월 26일 홍 수석을 전격 경질했다. 그러고 경제관료 출신인 윤종원 주OECD 대사를 새 청와대 경제수석에 임명했다.
두 사람 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는데 홍 전 수석이 79학번, 윤 수석이 80학번이다. 윤 수석은 대학 스승인 정운찬(경제학과 66학번) 교수가 이명박 정권 때 국무총리에 취임하자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직무대리)에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 발탁된 인물이다. 윤 수석은 넓게 보면 ‘조순-정운찬 학맥’에 속한다는 평가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을 일선에서 지휘한 홍장표 전 수석은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를 따르는 학문 집단인 학현학파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학현(學峴)은 변형윤 교수의 아호. 학현학파 경제학자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주목받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조용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조용하다’는 정부 정책에 비판적이나 공개적인 대외활동은 자제했다는 의미다.)
현 정부에서 학현학파의 선두그룹이었던 홍 전 수석이 물러나긴 했으나 역할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긴 이름의 ‘청와대 정책기획위 소득주도성장 특위 위원장’으로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더욱 구체화하고 중장기적 밑그림을 그리는 임무를 맡게 됐다.
홍장표 전 수석을 통해 알려진 학현학파는 서강학파, 조순학파와 더불어 한국 경제학의 ‘빅3 학파’ 중 하나다.
흔히 서강학파는 미국에서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배우고 직접 간접으로 정부 정책에 영향을 끼친 주류 경제학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선(先)성장 후(後)분배 개발노선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입안한 남덕우 전 총리, 이승윤·김만제 전 부총리가 서강학파의 상징이다.
반면, 학현학파는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를 따르는 진보 개혁적 경제학자들의 학문 집단이다. 주류 경제학에 비판적이며 ‘평등’과 ‘분배 정의’를 통해 경제민주화를 강조한다. 학현학파 제자 중에는 고(故) 김수행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처럼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많다.
조순학파는 한국 경제학의 거두인 조순 전 경제부총리를 따르는 제자 그룹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성장 제일주의가 낳은 불균형 성장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안정과 균형성장을 강조”해 온 경제학자들이 주축이다. 정운찬 전 총리, 좌승희 박정희기념재단 이사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조순학파를 상징한다.
한국 경제학의 ‘빅3 학파’ 들여다보기
학현학파는 1980년 변형윤 교수가 서울대 교수직에서 해직된 후 1982년 창립한 ‘학현연구실’이 모태다. 이후 1993년 ‘서울사회경제연구소’로 확대 개편하면서 한국 사회의 진보 개혁적 경제학자들을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변 교수는 또 진보적 경제학자들의 모임인 ‘한국사회경제학회’와 주류 경제학에 비판적인 진보 경제학자들의 모임인 ‘한국경제발전학회’를 직접 창립, 외연을 넓혔다. 1980년대 초 변 교수가 가르치던 서울대 대학원 석·박사 과정 제자들이 초창기 학현학파 멤버들이다.
2012년 간행된 《학현 변형윤 전집》에서 이들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다. 강남훈(한신대 교수), 김견(기아차 부사장), 김기원(한국방송통신대), 김용복(서울사회경제연구소), 김윤자(한신대), 김형기(경북대), 박동철(현대차 미래트렌드 연구소장), 양우진(한신대), 윤진호(인하대), 이병천(강원대), 이재율(계명대), 이재희(경성대), 장지상(경북대), 정일용(한국외대), 홍장표(부경대), 황현기(전 경기대) 교수 등이 초기 학현 그룹에 참여했다.
그 뒤 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제자들과 새롭게 학위를 받은 제자들이 학현연구실에 합류했다. 대표적으로 강명헌(단국대), 강신욱(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강철규(우석대 총장), 김대환(인하대), 김태동(성균관대), 김혜원(한국교원대), 남기곤(한밭대), 박순일(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배영목(충북대), 신상기(경원대), 원승연(명지대), 유재원(건국대), 윤건수(전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윤원배(숙명여대), 이근식(서울시립대·조순학파로 분류하기도 함), 이상철(성공회대), 이은우(울산대), 이정우(경북대), 이제민(연세대), 이진순(숭실대), 이채언(전남대), 장세진(인하대), 조우현(숭실대), 황신준(상지대) 교수 등이다.
학현 인맥에 속하는 서울의 한 사립대 경제학부 K 교수의 말이다.
“당시 민주화 열기가 불어올 때 새로운 학문에 대한 갈증이 컸습니다. 역사의 주체로서 민중의 자리에서 우리 경제사회와 민족운동을 살펴보는 일이 가능해졌다고 할까요? 자본주의의 모순과 기업윤리, 종속이론 등 당시 한국 사회의 정치적 이슈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곤 했어요.”
K 교수는 “우파 경제학이 독점한 1970년대를 지나 1980년대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 내지 ‘따뜻한 가슴의 경제학’이라는 관점에서 경제학을 새롭게 배우고 토론하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학현학파,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입각…비주류 경제학의 변신
학현 그룹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이후부터다. 김대중 정부 시절 관계로 진출한 학현 인사들로는 강철규(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 김태동(대통령 경제수석), 이진순(한국개발연구원장), 윤원배(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교수 등이다.
그 수가 많지 않으나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았다. 변형윤 교수는 《학현 변형윤 전집》을 통해 “우리 연구소 소속 회원 그룹을 ‘학파’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그저 생각과 지향점이 비슷한 학자들의 ‘그룹’ 정도로 보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고 했다. K 교수도 “학현학파 출신들이 정부 정책에 관여한 것은 개인적인 참여지 ‘학현연구실’ 차원의 집단적인 선택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에서 탈피, 처음으로 성장과 분배를 등가의 관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학현 학맥이 관료사회에 진입하면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위상이 달라졌다. 하루아침에 한국 경제학 내의 주류가 된 것이다.
학현 학맥은 노무현 정부 출범 때도 강철규(공정거래위원장), 이정우(청와대 정책실장), 김대환(노동부 장관) 교수 등이 요직에 기용됐다.
변 교수는 그러나 학현학자들의 정치 참여에 기본적으로 부정적이다.
“나는 학자들이 정부에 직접 참여하는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포부를 가지고 참여한 것일 테지만 결과적으로 정치에 이용당하거나 혹은 ‘자리’에 대한 욕심으로 애초의 순수한 마음을 버리고 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직 연구만을 통해 세상에 대해 발언했던 앨프리드 마셜을 본받고 싶습니다. 학자가 현실에 참여하고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길은 직접 정부에 참여하는 것 말고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변 교수는 김대중 정부 당시 제2의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공동대표위원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 고문을 맡으며 간접적으로 정부에 참여했다. “DJ를 지지했고 DJ정부 출범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한 것이다. 또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노무현 청와대의 정책실장이 됐을 때 이 교수를 격려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변 교수는 “개혁정책을 실행하고자 정부에 참여한 학자와 이른바 ‘정치교수’ ‘어용교수’를 구별해야 한다”며 제자들의 관료 집단화에 힘을 보탰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과 학현학파는…
한편,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학현 그룹 일원인 홍장표 전 수석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역할을 맡아왔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 특별위원회 전문위원,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미래캠프’에서 경제민주화위원을 지냈다. 소득주도 성장론을 국내 처음 소개하며 현 정권의 경제정책의 근원을 제공했다.
지난 4월 임기 3년의 산업연구원장에 부임한 장지상 경북대 교수도 학현학파로 분류된다. 장 원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74학번. 홍 전 수석과 장 원장은 지난 2015년 6월 공동 논문 〈대기업 성장의 국민경제 파급효과〉를 발표한 일도 했다. 두 사람은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 비중과 역할이 큰 것은 사실이나 국민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약화되었다면 낙수효과(대기업 성장이 중소기업 성장으로 이어진다는)에 의존하는 기왕의 대기업 위주 성장전략은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김성구 한신대(경제학과 73학번), 이재희 경성대(75), 정성진 경상대(75), 조원희 국민대(76), 김진방 인하대(77), 전강수 대구가톨릭대(78), 신정완 경북대(82), 류동민 충남대(83), 안현효 대구대(83) 교수도 학현학파로 분류된다. 이들 중 조원희·안현효 교수 등 상당수는 학현의 제자인 김수행 서울대 교수(61)의 직간접 영향으로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했다. 1980년대를 거치며 민주화 과정에서 좌파 경제학도 합법적으로 유통돼 다양성이 확장된 데 따른 것이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담당 부원장에 임명된 원승연 명지대 교수(83)도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제자이면서 학현학파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문재인 정부의 경제팀은 홍 전 수석과 같은 학현학파 중심으로 꾸려지지 않았다. 이질적인 배경을 지닌 이들로 동거 중이다. 문 대통령의 복심일 수 있으나 오히려 정책 혼선으로 시너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대기업 개혁과 분배를 강조하는 참여연대 출신이다. 반면 현 정부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장은 대통령)은 서강학파로 꼽히는 서강대 김광두 명예교수가 맡고 있다. 한국 거시경제 정책을 이끄는 김동연 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 잘나가던 관료다. 새롭게 경제수석에 부임한 윤종원 수석도 관료 출신이다. 윤 수석은 정운찬 전 총장의 제자 그룹에 속한다.
이와 관련, 조순 경제부총리는 기자와 만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주도하는 청와대 참모들은 일관성이 없다. 정부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이 방향이 옳다고 하는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홍장표, 김광두, 김동연, 장하성 등이 (경제정책을) 따로따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강학파의 탄생 이야기
지난 1999년 5월 14일 ‘서강경제인 포럼’이 탄생했다. 서강대 동문과 전·현직 교수 200명이 참여해 성대하게 진행됐다. 이날 남덕우 전 총리는 ‘서강학파’를 이렇게 정의했다.
“서강학파라는 말은 미국에서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배우고 직접 간접으로 정부 정책에 영향을 끼친 신진 경제학자들을 대표적으로 지칭한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서강대는 1960년 개교했다. 천주교 예수회 재단인 서강대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외국대학 박사 학위자를 대거 채용했다. 특히 경제학과는 미국 유학 1세대 가운데 3분의 1을 교수진으로 끌어들였다. 서강대 경제학부 김경환 교수의 말이다. 김 교수 역시 지난 박근혜 정권 때 국토부 제1차관으로 국정에 참여한 대표적인 서강학파다.
“1960년에 설립된 서강대는 우수한 교수를 유치해 대학 교육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실제 통계를 봐도 1960~70년대 초 서강대는 미국에서 교육받은 경제학 박사의 가장 큰 집결지였어요.
서강대 개교 당시 경제학과 전임교수는 김병국(미 위스콘신대)과 송주영(일 교토대), 유계준(M.A. 컬럼비아대) 등 3명이었습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경제학계 주류는 2차 세계대전 전에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자들 아니면 그들로부터 국내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승받은 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여러 경제학파로 갈라져 있었지만 일본 경제학계의 영향이 컸음은 부인할 수 없었다. 또 마르크스 경제학이 여전히 학자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이어졌다. 그러나 서강대만은 달랐다.
김경환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서강대 경제학과 개교 당시 김병국·송주영·유계준을 비롯해 1963년 3월 박대위 교수(M.A. 하버드)가 임명됐고 1964년 3월 이승윤 교수(위스콘신, 1960), 1964년 9월 남덕우 교수(오클라오마 주립, 1961)가 부임했다. 또 1966년 9월 김만제 교수(미주리대, 1964), 1968년 2월 김정세 교수, 1969년 3월 조성환 교수(예일, 1976), 1970년 3월 김병주 교수(프린스턴대, 1976), 1970년 9월 김덕중 교수(미주리, 1970)가 서강대 경제학과에 합류했다.
1971년을 기점으로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경제학과 교수는, 서울대는 조순 교수(1967년 부임)를 포함해 2명, 연세대 2명에 불과했다. 고려대는 이때까지도 미국 경제학 박사 출신 교수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김경환 교수의 계속된 말이다.
“서강대의 내실있는 경제학 기본교육에 따른 가시적인 성과 중 하나는 배출된 졸업생 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국 대학에서의 박사 학위 취득자가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1960~67년 사이 입학한 214명 중 경제학 박사 16명 등 21명이 졸업 후 경상 계통 박사 학위를 주로 미국에서 취득했어요. 이는 서울대보다는 적지만 연세대, 고려대에 비해선 학생 수를 감안할 때 높은 수치입니다.”
작년 9월 서강대에 세워진 ‘게페르트–남덕우 기념관’
아무래도 서강학파의 시작은 남덕우다. 1969년 재무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서강학파의 경제정책 관여가 시작됐다. 남덕우는 이후 1974~78년까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재직한 후 다시 1980~82년 사이 국무총리를 지냈다.
뒤이어 이승윤 교수가 금융통화위원과 유정회 국회의원을 거쳐 1980~81년 재무부 장관, 1990~91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됐다. 김만제 교수는 1971~82년 KDI 원장을 거쳐 1983~86년 재무부 장관, 1983~86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역임했다.
기자는 지난 7월 6일 서강대 ‘게페르트-남덕우 경제관’을 찾았다. 경제학부가 입주한 건물인데 작년 9월 개관했다. 이 건물의 맨 위층(8층)에 ‘남덕우 기념관’이 마련돼 있었다.
기념관에 들어서니 서강학파로 꼽히는 교수들의 면면과 업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덕우를 비롯, 김병국·이승윤·김만제·김병주·김덕중·김종인 교수의 사진이 밝은 조명 아래 미소짓고 있었다. 이들 7인방이 바로 서강학파의 자부심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기념관 벽에 적힌 서강학파의 정의(定義)가 눈길을 끌었다. 이른바 서강대 경제학부가 내린 서강학파 정의였다. 낮은 소리로 읽어보았다. 이른 아침이어서 관람하는 이가 없었다.
〈…서강학파의 등장은 한국 시장경제의 태동이었다. 서강학파는 1960년대 미국에서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수학한 신진 학자들로, 귀국 후 서강대 경제학부에 둥지를 틀고 조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단순히 학문적 사조를 공유하는 학파(學派)의 의미를 넘어 경제이론을 실제 정책으로 구현, ‘한강의 기적’을 일군 주역이자 한국 경제사의 산증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 최초의 경제학파인 서강학파는 오늘날 세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학파로 인정받고 있다.…〉
서강대 경제학과 76학번인 김경환 교수는 남덕우·이승윤·김만제 3인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분들 강의는 직접 안 들었으나 강연은 들었죠. 우선 경제학을 체계적으로 강의한 최초의 학자들입니다. 두 번째는 현대 경제학을 소개하는 경제학 교과서를 쓰셨고 세 번째는 정책 연구를 미국식 방법론으로 하신 최초의 분들로 기억됩니다.
특히 남 총리의 1960년대 당시 통화량 분석은 당시 미국에서 개도국 금융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미국 정부·기관에서 한국에 연구용역을 줄 곳이 없었는데 서강대는 가능했어요. 미국에서 공부하고 영어도 가능했으니 말입니다.”
서강학파의 역할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긍정과 부정의 양 측면이 있다.
1970~80년대 한국 경제의 병폐인 대외 의존적 경제구조, 독과점 체제 아래에서의 중소기업과 농업의 위축, 소극적인 재벌 정책, 소득 불균형의 심화, 경제력의 대도시 집중과 지방경제의 위축 등을 서강학파 경제 관료들의 과오라고 지적하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나 군사정권 시절, 서강학파 관료들의 고민이 적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남덕우 전 총리는 1999년 5월 14일 ‘서강경제인 포럼’에 참석해 “정부 역할과 시장원리 사이의 충돌이 신진 정책 담당자들의 고민이었고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정치적 사회적 요인의 제약하에서 시장경제 원리를 수호하려는 노력을 계속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또 “정치적 사회적 요구를 이런 식, 저런 식으로 시장경제 원리에 두드려 맞추는 기술자(Technocrats)의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서강학파도 세월이 흐르면서 진화하고 있다. 남덕우·김병국·이승윤·김만제 등이 ‘1세대 서강학파’라면 김병주(대통령 직속 반부패특별위원회 위원,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김종인(더불어민주당 대표)·김덕중(교육부 장관) 등은 ‘2세대 서강학파’다.
‘3세대 서강학파’는 타대학 출신 서강대 교수가 아니라 서강대 경제학부 출신들이 계보를 이었다. 김광두(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김경환(서강대 교수)·김인기(중앙대 교수)·남성일(서강대 교수)·이덕훈(전 수출입은행장) 등이 꼽힌다. 또 서강대 학부 출신은 아니지만 서강대 교수 중에 주미대사로 발탁된 조윤제 대사도 있다.
조순을 스승으로 모시는 제자 집단
학현학파와 함께 서울대 상대 학파의 또 다른 축이 조순학파다. 조순 전 부총리를 따르는 서울대 경제학과 제자들이 주축이다. 언론에서 조순학파라고 부르지만 서강학파나 학현학파처럼 일관된 이념을 지향하거나 집단적인 모임으로 학맥이 형성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조순 전 부총리도 “조순학파란 없다. 나를 따르던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온 말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집단적인 모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조순학파 핵심 멤버인 좌승희 박정희기념재단 이사장의 말이다.
“선생님(조순)이 젊은 시절, 제자들과 경제학 고전을 읽고 토론하던 모임이 ‘경제사상연구회’입니다. 학현학파의 ‘서울사회경제연구소’처럼 사상적 이념을 강조하며 연계된 조직이 아니라 사적인 공부 모임에 가까워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또 기존 국내 경제학회가 너무 완고하고 학풍이 폐쇄적인 면이 있었어요. 조순 제자 중 유학을 다녀오신 분들이 모여 학회가 개방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면에서 ‘한국국제경제학회’를 만드셨어요.”
조순을 따르는 제자들 모임인 ‘고전연구회’의 발전된 형태가 ‘경제사상연구회’다. 요즘도 매달 회합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서울대 경제학부 출신만이 아니라 타대학 교수나 경제학자도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보다 모임이 활발하지는 않다.
1977년 창립한 ‘한국국제경제학회’는 대학의 경제학 교수들과 공·사립 연구기관, 기업체 및 정부의 경제학 박사들이 정회원이다. 현재 1500여 명이 참여하는 한국 경제학계의 대표적인 학회 중 하나다. 조 전 부총리는 초대 국제경제학회장이다. 지금은 명예회장으로 있다. 물론 이 학회가 조순 전 부총리의 학맥 집단이라 통칭하긴 어렵다. 좌승희 이사장의 말이다.
“조순 선생님은 해외에서 공부한 1세대 경제학자십니다. 자유시장의 철학을 갖고 계신 분이세요. 사실 주류 경제학도 자유주의 이념이 별로 없어요. 테크니컬한 이코노믹스죠. 주류 신고전학파나 서강학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념적인 고민이 없는 경제학파죠.
선생님은 초기에 자유주의 이념에 많이 심취하셨어요. 경제학에서 자유시장의 중요성과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공부하셨어요. 제자들도 그런 면(자유주의)에서 다양성이 있어요. 주류 경제학자도 있고 분배를 강조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제자들이 글로벌한 사고를 지니고 있습니다. 분배는 폐쇄적인 면이 있잖아요. 글로벌한 시각과는 다르지요. 우리끼리, 폐쇄된 경제구조 안에서 지지고 볶고 나눠 먹을 수 있지만 개방된 경제체제, 국제적인 글로벌 경쟁사회에서는 우리 하고 싶은 대로 나눠 먹을 수 없거든요.”
조순학파가 바라보는 서강학파·학현학파
조순학파의 근원은, 마흔의 조순 교수가 미국 UC버클리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1967년 9월 학기부터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탄생했다.
제자들은 “선생님이 부임 후 첫 강의 때부터 정해진 시간에서 단 1분도 일찍 끝내는 일이 없었고 가르침에 혼신의 힘을 다 쏟았다”(한국외대 김승진 교수)고 말한다. 졸업 후 많은 제자가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된 계기도 대부분 조순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당시만 해도 조순 교수는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유일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였다.
아무래도 조순학파의 정체성은 ‘한국의 케인스주의’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의 무한 신뢰를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대신 정부의 시장개입 불가피성을 지지한다.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 정부의 시장 개입이라는 비자본주의적 방법도 불사해야 한다”는 케인스주의를 ‘분배’ ‘동반성장’이란 관점에서 바라보려 한다.
다 같은 분배를 강조하지만, 학현학파는 불평등한 경제구조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지만, 조순학파는 자유주의 이념을 강조하며 글로벌한 시각에서 분배에 접근한다.
기자와 만난 조순학파의 한 경제학자는 서강학파를 이렇게 평가했다.
“서강학파는 개발연대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원하는 바를 열심히 도와준 분들이죠. 박정희의 경제정책은 주류 경제학이 요구하는 정책과 달랐어요. 예를 들어 ‘기업부국’이란 말처럼, 주류 경제학에서 기업의 역할은 없거든요. 공장은 있지만 기업은 없어요. 박정희는 기업의 중요성을 알고 그 사람들을 잘 활용해 나라의 부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셨죠.
서강학파 관료들은 이를 위해 어디서 돈을 빌려오고,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관여한 분들이죠. 그런데 그분들이 어떤 학문적인 관(觀)이 있었느냐? 저는 없다고 봐요.”
이에 대해 반론이 존재한다. 서강대 김경환 교수의 말이다.
“서강학파 관료들은 시장경제원리에 맞지 않는 정책의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면 이를 증거로 정치권을 설득해 이론적 명제(시장경제원리)의 회귀를 꾀했습니다. 과거 남덕우 총리는 이런 말씀을 하셨죠.
‘(박정희 정권 시절) 수출확대회의에서 업계가 자금난을 호소하면 금융확대를 실시해야 했고, 이는 통화증발과 인플레로 이어졌다. 그러면 재무장관(서강학파)은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무리한 정책금융을 자제하는 사례로 활용했다’고요. 그런 사례는 허다했다고 합니다.”
서강학파들은 적어도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거수기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 학현학파와 조순학파의 차이점은 뭡니까.
다시 좌승희 이사장의 말이다.
“학현학파는 주류 경제학보다 훨씬 좌파적인 생각…, 좌파라기보다 분배를 중시하는 학자 모임입니다. 신고전파라는 주류 경제학은 분배 문제엔 천착을 안 해요. 시장이 알아서 한다는 쪽입니다. 학현학파는 마르크스에서 나온 사회주의 이념에 영향받은 분배정신을 지향한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분배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분배를 어떻게 실천하느냐는 다른 문제죠. 그러나 현 정부의 분배 정책처럼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조순 선생님은 자본주의 모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셨어요. 제자들도 ‘자본주의의 기초는 도덕감정론(Theory of Moral Sentiments)에 있다’는 애덤 스미스 사상에 공감을 했습니다. 적어도 조순학파는 분배를 개선하는 성장전략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의미에서 분배를 중시하고, 자유주의 사상도 중시했다고 볼 수 있어요. 정운찬 전 총리의 동반성장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조순학파의 뿌리는 서울대 경제학과 66학번과 67학번이다. 스승에 자극받아 서울대 상대 역사상 가장 많이 유학을 떠났다. 66학번으로 정운찬 전 총리를 비롯해 김승진 한국외국어대 교수, 김중수 주OECD 대표부 대사(전 KDI 원장), 이근식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전 경실련 공동대표), 이영선 경기도일자리재단 이사장(전 한림대 총장), 서준호 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등이 있고 67학번은 고(故) 이계식 전 부산발전연구원장, 좌승희 박정희기념재단 이사장 등이 있다.
조순학파의 면면은…
조순학파의 특징은 이념적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것이다. 이 역시 자유주의적 경향 때문이다. 학파 인물 중 좌승희 이사장은 우파적인 성향의 경제학자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대기업 저격수로 알려진 대표적인 진보 경제학자다.
최근 김상조 위원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진보 진영의 개혁 조급증과 경직성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실패할 수 있다”고 했다. 소신 발언이지만 학현학파 진영을 자극하는 말이었다.
조순·정운찬·김영식과 함께 《경제학원론》 제10판의 공동저자인 홍익대 전성인 교수 역시 진보 진영의 대표적 경제학자다.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시민단체 활동에 적극적이다.
전 교수는 김상조 위원장의 말을 반박하며 “(진보 진영의 조급성은) 사실과 다른 얘기다. 진보 진영은 지난 1년 동안 개혁입법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며 문재인 정부를 궁지로 몰거나 대립한 적이 없다”고 비난했다. 또 홍장표 수석이 경질되자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개혁과 맞지 않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최종구 금융위원장을 경질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조순학파의 제자들은 스펙트럼이 넓다.
조순학파의 신진 경제학자 그룹으로 신관호 고려대 교수, 정지만 상명대 교수 등도 있다. 최근 금감원 부위원장으로 발탁된 원승연 교수는 학현학파 범주에 넣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 재벌 개혁 등 일련의 동시다발적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우리 경제를 되레 악화시키고 소득격차마저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홍 대표의 ‘찍어내기’ 요구를 굉장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였다.
홍준표 대표의 요구를 거부하던 문 대통령은 경제지표가 호전되지 않자 6월 26일 홍 수석을 전격 경질했다. 그러고 경제관료 출신인 윤종원 주OECD 대사를 새 청와대 경제수석에 임명했다.
두 사람 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는데 홍 전 수석이 79학번, 윤 수석이 80학번이다. 윤 수석은 대학 스승인 정운찬(경제학과 66학번) 교수가 이명박 정권 때 국무총리에 취임하자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직무대리)에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 발탁된 인물이다. 윤 수석은 넓게 보면 ‘조순-정운찬 학맥’에 속한다는 평가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을 일선에서 지휘한 홍장표 전 수석은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를 따르는 학문 집단인 학현학파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학현(學峴)은 변형윤 교수의 아호. 학현학파 경제학자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주목받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조용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조용하다’는 정부 정책에 비판적이나 공개적인 대외활동은 자제했다는 의미다.)
현 정부에서 학현학파의 선두그룹이었던 홍 전 수석이 물러나긴 했으나 역할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긴 이름의 ‘청와대 정책기획위 소득주도성장 특위 위원장’으로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더욱 구체화하고 중장기적 밑그림을 그리는 임무를 맡게 됐다.
홍장표 전 수석을 통해 알려진 학현학파는 서강학파, 조순학파와 더불어 한국 경제학의 ‘빅3 학파’ 중 하나다.
흔히 서강학파는 미국에서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배우고 직접 간접으로 정부 정책에 영향을 끼친 주류 경제학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선(先)성장 후(後)분배 개발노선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입안한 남덕우 전 총리, 이승윤·김만제 전 부총리가 서강학파의 상징이다.
반면, 학현학파는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를 따르는 진보 개혁적 경제학자들의 학문 집단이다. 주류 경제학에 비판적이며 ‘평등’과 ‘분배 정의’를 통해 경제민주화를 강조한다. 학현학파 제자 중에는 고(故) 김수행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처럼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많다.
조순학파는 한국 경제학의 거두인 조순 전 경제부총리를 따르는 제자 그룹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성장 제일주의가 낳은 불균형 성장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안정과 균형성장을 강조”해 온 경제학자들이 주축이다. 정운찬 전 총리, 좌승희 박정희기념재단 이사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조순학파를 상징한다.
한국 경제학의 ‘빅3 학파’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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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일 홍장표 청와대 전 경제수석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계소득 동향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홍 전 수석은 학현학파에 포함되는 진보적인 경제학자다. 사진=뉴시스 |
변 교수는 또 진보적 경제학자들의 모임인 ‘한국사회경제학회’와 주류 경제학에 비판적인 진보 경제학자들의 모임인 ‘한국경제발전학회’를 직접 창립, 외연을 넓혔다. 1980년대 초 변 교수가 가르치던 서울대 대학원 석·박사 과정 제자들이 초창기 학현학파 멤버들이다.
2012년 간행된 《학현 변형윤 전집》에서 이들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다. 강남훈(한신대 교수), 김견(기아차 부사장), 김기원(한국방송통신대), 김용복(서울사회경제연구소), 김윤자(한신대), 김형기(경북대), 박동철(현대차 미래트렌드 연구소장), 양우진(한신대), 윤진호(인하대), 이병천(강원대), 이재율(계명대), 이재희(경성대), 장지상(경북대), 정일용(한국외대), 홍장표(부경대), 황현기(전 경기대) 교수 등이 초기 학현 그룹에 참여했다.
그 뒤 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제자들과 새롭게 학위를 받은 제자들이 학현연구실에 합류했다. 대표적으로 강명헌(단국대), 강신욱(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강철규(우석대 총장), 김대환(인하대), 김태동(성균관대), 김혜원(한국교원대), 남기곤(한밭대), 박순일(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배영목(충북대), 신상기(경원대), 원승연(명지대), 유재원(건국대), 윤건수(전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윤원배(숙명여대), 이근식(서울시립대·조순학파로 분류하기도 함), 이상철(성공회대), 이은우(울산대), 이정우(경북대), 이제민(연세대), 이진순(숭실대), 이채언(전남대), 장세진(인하대), 조우현(숭실대), 황신준(상지대) 교수 등이다.
학현 인맥에 속하는 서울의 한 사립대 경제학부 K 교수의 말이다.
“당시 민주화 열기가 불어올 때 새로운 학문에 대한 갈증이 컸습니다. 역사의 주체로서 민중의 자리에서 우리 경제사회와 민족운동을 살펴보는 일이 가능해졌다고 할까요? 자본주의의 모순과 기업윤리, 종속이론 등 당시 한국 사회의 정치적 이슈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곤 했어요.”
K 교수는 “우파 경제학이 독점한 1970년대를 지나 1980년대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 내지 ‘따뜻한 가슴의 경제학’이라는 관점에서 경제학을 새롭게 배우고 토론하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학현학파,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입각…비주류 경제학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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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0월 2일 제2의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서울 적선동 소재) 현판식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변형윤 공동대표위원장이 자리를 같이했다. 사진 오른쪽부터 김종필 총리, 김 대통령, 변형윤 위원장. |
그 수가 많지 않으나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았다. 변형윤 교수는 《학현 변형윤 전집》을 통해 “우리 연구소 소속 회원 그룹을 ‘학파’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그저 생각과 지향점이 비슷한 학자들의 ‘그룹’ 정도로 보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고 했다. K 교수도 “학현학파 출신들이 정부 정책에 관여한 것은 개인적인 참여지 ‘학현연구실’ 차원의 집단적인 선택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에서 탈피, 처음으로 성장과 분배를 등가의 관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학현 학맥이 관료사회에 진입하면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위상이 달라졌다. 하루아침에 한국 경제학 내의 주류가 된 것이다.
학현 학맥은 노무현 정부 출범 때도 강철규(공정거래위원장), 이정우(청와대 정책실장), 김대환(노동부 장관) 교수 등이 요직에 기용됐다.
변 교수는 그러나 학현학자들의 정치 참여에 기본적으로 부정적이다.
“나는 학자들이 정부에 직접 참여하는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포부를 가지고 참여한 것일 테지만 결과적으로 정치에 이용당하거나 혹은 ‘자리’에 대한 욕심으로 애초의 순수한 마음을 버리고 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직 연구만을 통해 세상에 대해 발언했던 앨프리드 마셜을 본받고 싶습니다. 학자가 현실에 참여하고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길은 직접 정부에 참여하는 것 말고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변 교수는 김대중 정부 당시 제2의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공동대표위원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 고문을 맡으며 간접적으로 정부에 참여했다. “DJ를 지지했고 DJ정부 출범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한 것이다. 또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노무현 청와대의 정책실장이 됐을 때 이 교수를 격려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변 교수는 “개혁정책을 실행하고자 정부에 참여한 학자와 이른바 ‘정치교수’ ‘어용교수’를 구별해야 한다”며 제자들의 관료 집단화에 힘을 보탰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과 학현학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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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총리, 이정우 당시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이 2004년 11월 5일 정부종합청사 별관에서 열린 제1회 국가경쟁력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학자 출신인 이정우 위원장은 학현학파의 대표적 인사다. |
지난 4월 임기 3년의 산업연구원장에 부임한 장지상 경북대 교수도 학현학파로 분류된다. 장 원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74학번. 홍 전 수석과 장 원장은 지난 2015년 6월 공동 논문 〈대기업 성장의 국민경제 파급효과〉를 발표한 일도 했다. 두 사람은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 비중과 역할이 큰 것은 사실이나 국민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약화되었다면 낙수효과(대기업 성장이 중소기업 성장으로 이어진다는)에 의존하는 기왕의 대기업 위주 성장전략은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김성구 한신대(경제학과 73학번), 이재희 경성대(75), 정성진 경상대(75), 조원희 국민대(76), 김진방 인하대(77), 전강수 대구가톨릭대(78), 신정완 경북대(82), 류동민 충남대(83), 안현효 대구대(83) 교수도 학현학파로 분류된다. 이들 중 조원희·안현효 교수 등 상당수는 학현의 제자인 김수행 서울대 교수(61)의 직간접 영향으로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했다. 1980년대를 거치며 민주화 과정에서 좌파 경제학도 합법적으로 유통돼 다양성이 확장된 데 따른 것이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담당 부원장에 임명된 원승연 명지대 교수(83)도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제자이면서 학현학파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문재인 정부의 경제팀은 홍 전 수석과 같은 학현학파 중심으로 꾸려지지 않았다. 이질적인 배경을 지닌 이들로 동거 중이다. 문 대통령의 복심일 수 있으나 오히려 정책 혼선으로 시너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대기업 개혁과 분배를 강조하는 참여연대 출신이다. 반면 현 정부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장은 대통령)은 서강학파로 꼽히는 서강대 김광두 명예교수가 맡고 있다. 한국 거시경제 정책을 이끄는 김동연 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 잘나가던 관료다. 새롭게 경제수석에 부임한 윤종원 수석도 관료 출신이다. 윤 수석은 정운찬 전 총장의 제자 그룹에 속한다.
이와 관련, 조순 경제부총리는 기자와 만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주도하는 청와대 참모들은 일관성이 없다. 정부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이 방향이 옳다고 하는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홍장표, 김광두, 김동연, 장하성 등이 (경제정책을) 따로따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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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5월 8일 김만제 당시 부총리와 미국 슐츠 국무장관. |
“서강학파라는 말은 미국에서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배우고 직접 간접으로 정부 정책에 영향을 끼친 신진 경제학자들을 대표적으로 지칭한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서강대는 1960년 개교했다. 천주교 예수회 재단인 서강대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외국대학 박사 학위자를 대거 채용했다. 특히 경제학과는 미국 유학 1세대 가운데 3분의 1을 교수진으로 끌어들였다. 서강대 경제학부 김경환 교수의 말이다. 김 교수 역시 지난 박근혜 정권 때 국토부 제1차관으로 국정에 참여한 대표적인 서강학파다.
“1960년에 설립된 서강대는 우수한 교수를 유치해 대학 교육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실제 통계를 봐도 1960~70년대 초 서강대는 미국에서 교육받은 경제학 박사의 가장 큰 집결지였어요.
서강대 개교 당시 경제학과 전임교수는 김병국(미 위스콘신대)과 송주영(일 교토대), 유계준(M.A. 컬럼비아대) 등 3명이었습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경제학계 주류는 2차 세계대전 전에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자들 아니면 그들로부터 국내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승받은 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여러 경제학파로 갈라져 있었지만 일본 경제학계의 영향이 컸음은 부인할 수 없었다. 또 마르크스 경제학이 여전히 학자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이어졌다. 그러나 서강대만은 달랐다.
김경환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서강대 경제학과 개교 당시 김병국·송주영·유계준을 비롯해 1963년 3월 박대위 교수(M.A. 하버드)가 임명됐고 1964년 3월 이승윤 교수(위스콘신, 1960), 1964년 9월 남덕우 교수(오클라오마 주립, 1961)가 부임했다. 또 1966년 9월 김만제 교수(미주리대, 1964), 1968년 2월 김정세 교수, 1969년 3월 조성환 교수(예일, 1976), 1970년 3월 김병주 교수(프린스턴대, 1976), 1970년 9월 김덕중 교수(미주리, 1970)가 서강대 경제학과에 합류했다.
1971년을 기점으로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경제학과 교수는, 서울대는 조순 교수(1967년 부임)를 포함해 2명, 연세대 2명에 불과했다. 고려대는 이때까지도 미국 경제학 박사 출신 교수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김경환 교수의 계속된 말이다.
“서강대의 내실있는 경제학 기본교육에 따른 가시적인 성과 중 하나는 배출된 졸업생 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국 대학에서의 박사 학위 취득자가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1960~67년 사이 입학한 214명 중 경제학 박사 16명 등 21명이 졸업 후 경상 계통 박사 학위를 주로 미국에서 취득했어요. 이는 서울대보다는 적지만 연세대, 고려대에 비해선 학생 수를 감안할 때 높은 수치입니다.”
작년 9월 서강대에 세워진 ‘게페르트–남덕우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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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제학부 건물인 ‘게페르트–남덕우 경제관’ 8층에 위치한 ‘남덕우 기념관’ 모습이다. |
뒤이어 이승윤 교수가 금융통화위원과 유정회 국회의원을 거쳐 1980~81년 재무부 장관, 1990~91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됐다. 김만제 교수는 1971~82년 KDI 원장을 거쳐 1983~86년 재무부 장관, 1983~86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역임했다.
기자는 지난 7월 6일 서강대 ‘게페르트-남덕우 경제관’을 찾았다. 경제학부가 입주한 건물인데 작년 9월 개관했다. 이 건물의 맨 위층(8층)에 ‘남덕우 기념관’이 마련돼 있었다.
기념관에 들어서니 서강학파로 꼽히는 교수들의 면면과 업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덕우를 비롯, 김병국·이승윤·김만제·김병주·김덕중·김종인 교수의 사진이 밝은 조명 아래 미소짓고 있었다. 이들 7인방이 바로 서강학파의 자부심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기념관 벽에 적힌 서강학파의 정의(定義)가 눈길을 끌었다. 이른바 서강대 경제학부가 내린 서강학파 정의였다. 낮은 소리로 읽어보았다. 이른 아침이어서 관람하는 이가 없었다.
〈…서강학파의 등장은 한국 시장경제의 태동이었다. 서강학파는 1960년대 미국에서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수학한 신진 학자들로, 귀국 후 서강대 경제학부에 둥지를 틀고 조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단순히 학문적 사조를 공유하는 학파(學派)의 의미를 넘어 경제이론을 실제 정책으로 구현, ‘한강의 기적’을 일군 주역이자 한국 경제사의 산증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 최초의 경제학파인 서강학파는 오늘날 세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학파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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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 서강학파’인 서강대 경제학부 김경환 교수. |
“그분들 강의는 직접 안 들었으나 강연은 들었죠. 우선 경제학을 체계적으로 강의한 최초의 학자들입니다. 두 번째는 현대 경제학을 소개하는 경제학 교과서를 쓰셨고 세 번째는 정책 연구를 미국식 방법론으로 하신 최초의 분들로 기억됩니다.
특히 남 총리의 1960년대 당시 통화량 분석은 당시 미국에서 개도국 금융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미국 정부·기관에서 한국에 연구용역을 줄 곳이 없었는데 서강대는 가능했어요. 미국에서 공부하고 영어도 가능했으니 말입니다.”
서강학파의 역할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긍정과 부정의 양 측면이 있다.
1970~80년대 한국 경제의 병폐인 대외 의존적 경제구조, 독과점 체제 아래에서의 중소기업과 농업의 위축, 소극적인 재벌 정책, 소득 불균형의 심화, 경제력의 대도시 집중과 지방경제의 위축 등을 서강학파 경제 관료들의 과오라고 지적하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나 군사정권 시절, 서강학파 관료들의 고민이 적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남덕우 전 총리는 1999년 5월 14일 ‘서강경제인 포럼’에 참석해 “정부 역할과 시장원리 사이의 충돌이 신진 정책 담당자들의 고민이었고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정치적 사회적 요인의 제약하에서 시장경제 원리를 수호하려는 노력을 계속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또 “정치적 사회적 요구를 이런 식, 저런 식으로 시장경제 원리에 두드려 맞추는 기술자(Technocrats)의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서강학파도 세월이 흐르면서 진화하고 있다. 남덕우·김병국·이승윤·김만제 등이 ‘1세대 서강학파’라면 김병주(대통령 직속 반부패특별위원회 위원,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김종인(더불어민주당 대표)·김덕중(교육부 장관) 등은 ‘2세대 서강학파’다.
‘3세대 서강학파’는 타대학 출신 서강대 교수가 아니라 서강대 경제학부 출신들이 계보를 이었다. 김광두(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김경환(서강대 교수)·김인기(중앙대 교수)·남성일(서강대 교수)·이덕훈(전 수출입은행장) 등이 꼽힌다. 또 서강대 학부 출신은 아니지만 서강대 교수 중에 주미대사로 발탁된 조윤제 대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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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강당에서 정운찬 전 총리가 동반성장연구소 창립식을 갖고 있다. 오른쪽부터 조순 전 총리, 정운찬, 정 총리 부인 최선주씨, 당시 민주통합당 김영환 의원,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 |
그렇다고 집단적인 모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조순학파 핵심 멤버인 좌승희 박정희기념재단 이사장의 말이다.
“선생님(조순)이 젊은 시절, 제자들과 경제학 고전을 읽고 토론하던 모임이 ‘경제사상연구회’입니다. 학현학파의 ‘서울사회경제연구소’처럼 사상적 이념을 강조하며 연계된 조직이 아니라 사적인 공부 모임에 가까워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또 기존 국내 경제학회가 너무 완고하고 학풍이 폐쇄적인 면이 있었어요. 조순 제자 중 유학을 다녀오신 분들이 모여 학회가 개방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면에서 ‘한국국제경제학회’를 만드셨어요.”
조순을 따르는 제자들 모임인 ‘고전연구회’의 발전된 형태가 ‘경제사상연구회’다. 요즘도 매달 회합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서울대 경제학부 출신만이 아니라 타대학 교수나 경제학자도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보다 모임이 활발하지는 않다.
1977년 창립한 ‘한국국제경제학회’는 대학의 경제학 교수들과 공·사립 연구기관, 기업체 및 정부의 경제학 박사들이 정회원이다. 현재 1500여 명이 참여하는 한국 경제학계의 대표적인 학회 중 하나다. 조 전 부총리는 초대 국제경제학회장이다. 지금은 명예회장으로 있다. 물론 이 학회가 조순 전 부총리의 학맥 집단이라 통칭하긴 어렵다. 좌승희 이사장의 말이다.
“조순 선생님은 해외에서 공부한 1세대 경제학자십니다. 자유시장의 철학을 갖고 계신 분이세요. 사실 주류 경제학도 자유주의 이념이 별로 없어요. 테크니컬한 이코노믹스죠. 주류 신고전학파나 서강학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념적인 고민이 없는 경제학파죠.
선생님은 초기에 자유주의 이념에 많이 심취하셨어요. 경제학에서 자유시장의 중요성과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공부하셨어요. 제자들도 그런 면(자유주의)에서 다양성이 있어요. 주류 경제학자도 있고 분배를 강조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제자들이 글로벌한 사고를 지니고 있습니다. 분배는 폐쇄적인 면이 있잖아요. 글로벌한 시각과는 다르지요. 우리끼리, 폐쇄된 경제구조 안에서 지지고 볶고 나눠 먹을 수 있지만 개방된 경제체제, 국제적인 글로벌 경쟁사회에서는 우리 하고 싶은 대로 나눠 먹을 수 없거든요.”
조순학파가 바라보는 서강학파·학현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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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25일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중앙당 후원행사 및 대선출정식’에서 이승윤 후원회장, 이한동 대표, 이회창 당시 대선 후보와 조순 한나라당 총재, 김수한 국회의장(사진 왼쪽부터) 등이 모금함에 후원금을 넣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
제자들은 “선생님이 부임 후 첫 강의 때부터 정해진 시간에서 단 1분도 일찍 끝내는 일이 없었고 가르침에 혼신의 힘을 다 쏟았다”(한국외대 김승진 교수)고 말한다. 졸업 후 많은 제자가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된 계기도 대부분 조순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당시만 해도 조순 교수는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유일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였다.
아무래도 조순학파의 정체성은 ‘한국의 케인스주의’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의 무한 신뢰를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대신 정부의 시장개입 불가피성을 지지한다.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 정부의 시장 개입이라는 비자본주의적 방법도 불사해야 한다”는 케인스주의를 ‘분배’ ‘동반성장’이란 관점에서 바라보려 한다.
다 같은 분배를 강조하지만, 학현학파는 불평등한 경제구조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지만, 조순학파는 자유주의 이념을 강조하며 글로벌한 시각에서 분배에 접근한다.
기자와 만난 조순학파의 한 경제학자는 서강학파를 이렇게 평가했다.
“서강학파는 개발연대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원하는 바를 열심히 도와준 분들이죠. 박정희의 경제정책은 주류 경제학이 요구하는 정책과 달랐어요. 예를 들어 ‘기업부국’이란 말처럼, 주류 경제학에서 기업의 역할은 없거든요. 공장은 있지만 기업은 없어요. 박정희는 기업의 중요성을 알고 그 사람들을 잘 활용해 나라의 부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셨죠.
서강학파 관료들은 이를 위해 어디서 돈을 빌려오고,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관여한 분들이죠. 그런데 그분들이 어떤 학문적인 관(觀)이 있었느냐? 저는 없다고 봐요.”
이에 대해 반론이 존재한다. 서강대 김경환 교수의 말이다.
“서강학파 관료들은 시장경제원리에 맞지 않는 정책의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면 이를 증거로 정치권을 설득해 이론적 명제(시장경제원리)의 회귀를 꾀했습니다. 과거 남덕우 총리는 이런 말씀을 하셨죠.
‘(박정희 정권 시절) 수출확대회의에서 업계가 자금난을 호소하면 금융확대를 실시해야 했고, 이는 통화증발과 인플레로 이어졌다. 그러면 재무장관(서강학파)은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무리한 정책금융을 자제하는 사례로 활용했다’고요. 그런 사례는 허다했다고 합니다.”
서강학파들은 적어도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거수기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 학현학파와 조순학파의 차이점은 뭡니까.
다시 좌승희 이사장의 말이다.
“학현학파는 주류 경제학보다 훨씬 좌파적인 생각…, 좌파라기보다 분배를 중시하는 학자 모임입니다. 신고전파라는 주류 경제학은 분배 문제엔 천착을 안 해요. 시장이 알아서 한다는 쪽입니다. 학현학파는 마르크스에서 나온 사회주의 이념에 영향받은 분배정신을 지향한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분배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분배를 어떻게 실천하느냐는 다른 문제죠. 그러나 현 정부의 분배 정책처럼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조순 선생님은 자본주의 모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셨어요. 제자들도 ‘자본주의의 기초는 도덕감정론(Theory of Moral Sentiments)에 있다’는 애덤 스미스 사상에 공감을 했습니다. 적어도 조순학파는 분배를 개선하는 성장전략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의미에서 분배를 중시하고, 자유주의 사상도 중시했다고 볼 수 있어요. 정운찬 전 총리의 동반성장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조순학파의 뿌리는 서울대 경제학과 66학번과 67학번이다. 스승에 자극받아 서울대 상대 역사상 가장 많이 유학을 떠났다. 66학번으로 정운찬 전 총리를 비롯해 김승진 한국외국어대 교수, 김중수 주OECD 대표부 대사(전 KDI 원장), 이근식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전 경실련 공동대표), 이영선 경기도일자리재단 이사장(전 한림대 총장), 서준호 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등이 있고 67학번은 고(故) 이계식 전 부산발전연구원장, 좌승희 박정희기념재단 이사장 등이 있다.
조순학파의 면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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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좌승희 이사장. |
최근 김상조 위원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진보 진영의 개혁 조급증과 경직성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실패할 수 있다”고 했다. 소신 발언이지만 학현학파 진영을 자극하는 말이었다.
조순·정운찬·김영식과 함께 《경제학원론》 제10판의 공동저자인 홍익대 전성인 교수 역시 진보 진영의 대표적 경제학자다.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시민단체 활동에 적극적이다.
전 교수는 김상조 위원장의 말을 반박하며 “(진보 진영의 조급성은) 사실과 다른 얘기다. 진보 진영은 지난 1년 동안 개혁입법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며 문재인 정부를 궁지로 몰거나 대립한 적이 없다”고 비난했다. 또 홍장표 수석이 경질되자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개혁과 맞지 않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최종구 금융위원장을 경질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조순학파의 제자들은 스펙트럼이 넓다.
조순학파의 신진 경제학자 그룹으로 신관호 고려대 교수, 정지만 상명대 교수 등도 있다. 최근 금감원 부위원장으로 발탁된 원승연 교수는 학현학파 범주에 넣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