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6·3 지방선거 앞둔 대구·경북 민심

“요즘 국민의힘 보면 혈압부터 오른다”

  •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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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힘 골수 지지자였던 형, 주식 활황에 이재명 쪽으로 돌아서”
⊙ “‘이재명이 우찌 됐든 일은 잘한다’는 이야기 나와”
⊙ “‘윤어게인’ 같은 구호는 젊은 층에게 피로감만 줘”
⊙ “이재명이 암만 일 잘해도 민주당은 안 돼”
⊙ ‘보수 성지’ 대구서 “차라리 김부겸 (나오면) 찍자”는 얘기도
⊙ “우리가 핫바지가? 도청 온 지 얼마나 됐다고”… 행정 통합에 소외된 안동·포항
⊙ “물에 물 탄 정치 싫어해”… 이진숙 ‘혁명’에 반응하는 이유?
지난 2월 11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방문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대구 민심의 바로미터라고 불리는 서문시장에도 민심 변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사진=조선DB
민심(民心)보다 민생(民生)이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6·3 지방선거를 약 80일 앞둔 3월 초, 대구·경북(TK) 지역에서는 선거 분위기를 체감하기 어려웠다. 경기 침체의 기운이 더 짙었다. 대구의 관문인 동대구역 광장 택시 승강장에는 빈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기사들은 창문을 닫은 채 손님을 기다렸다. 그중 하나를 잡아타고 동성로로 가자고 했다. 60대로 보이는 기사 우모(某)씨의 말에 한숨이 묻어났다.
 
  “동대구역에 택시 줄 서 있는 거 함 보세요. 한낮에도 차가 안 빠집니다. 손님은 없고 기름값만 오르니 다들 죽겠다고 난린데, 정치하는 양반들은 자기들 공천받는 데만 눈이 뻘게요. 대구시장 나오겠다는 사람이 9명이나 된다카는데, 누가 나와도 내 주머니 사정 낫게 해줄 사람이 어데 있습니까.”
 
 
  “경제를 살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
 
한때 주요 상권이었던 동성로 거리는 활기를 잃은 지 오래다. 사진은 코로나19 당시 폐업한 동성로의 한 상가. 사진=연합

  지역 최대 상권인 동성로는 활기를 잃은 지 오래다. 옛 대구백화점 인근 점포 곳곳에는 ‘임대 문의’ 안내가 붙어 있고, 상당수 식당은 오후 8시30분이면 마지막 주문을 받고 문을 닫는다.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자영업 침체로 도심 상권의 불이 꺼지면서 도시 전반의 경기 위축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민생 부담은 물가에서도 체감된다. 이 교수는 “최근 경북 농촌 지역에서 고령 인구가 요양 시설로 이동하면서 소규모 텃밭 경작이 줄었고, 이 여파로 채소 공급이 감소해 가격이 오르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서문시장 분위기도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서문시장에 자주 간다는 이재열 목사(계명대 겸임교수)는 “얼마 전만 해도 박근혜·윤석열 정부 문제로 억울함을 토로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으니까 ‘경제는 살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좌절감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동대구역 앞 넘쳐나는 빈 택시들. 기다려도 손님이 오지 않는다. 사진=뉴시스

  중구 동대구로에 거주하는 주부 김현미(45)씨는 “서문시장에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왔을 때 현장에 있던 사람이 ‘당대표님이 누구세요?’라고 물은 일이 있다”며 “민심의 바로미터라는 곳에서 이런 장면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상징적인 사건처럼 회자되고 있다”고 했다.
 
  3월 9일 예비후보 등록이 마무리되면서 TK 선거 구도가 윤곽을 드러냈다.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시장 선거에는 주호영·윤재옥·추경호·유영하·최은석 의원 등 현역 의원 5명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홍석준 전 의원,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 김한구 전 달성군 새마을협의회 감사 등 9명이 예비 후보로 등록했다. 경북지사 선거 역시 이철우 현 지사, 김재원 최고위원, 임이자 의원,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백승주 전 의원, 이강덕 전 포항시장 등 6명이 출마해 다자(多者) 구도를 형성했다. 후보가 너무 많다 보니 이름을 정확히 아는 지역민은 드물었다. 누가 출마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수성구 달구벌대로에 사는 정모(68)씨는 “대구가 뭐 보따리만 싸 들고 내려오면 다 찍어주는 동네인 줄 아는 모양”이라며 “요즘 국민의힘 보면 혈압부터 오른다”고 했다.
 
  “계엄 문제와 단절 못 하는 모습 때문에 장동혁 대표와 당에 대한 실망이 큽니다. 자기 뜻과 안 맞다고 쫓아내는 행태도 보기 싫고요. 당 이름 바꾼다 어쩐다 해놓고 또 안 하는 걸 보면 대표가 왜 그렇게 가볍게 말을 하나 싶어요. 지금 나온다는 사람들도 솔직히 그중에 누가 돼도 매가리(힘)가 없어 보입니다. 민주당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중앙정부 상대로 뭘 해내기나 하겠습니까.”
 
  그는 “요즘에는 차라리 민주당 쪽에 예산을 받아올 수 있는 사람이 낫지 않겠나라는 말도 나온다”고 했다.
 
  “내가 예전에 김부겸을 찍었다 아입니까. 그때 김밥집에서 일할 때였는데, 같이 일하던 식구들이 전부 ‘언니야 이상하다’ 카면서 따돌렸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내 같은 생각 하는 사람이 드문드문 보인다니까요.”
 
 
  “이재명이 일은 잘한다”
 
  이 같은 분위기는 한 여론조사 수치에서도 나타났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3월 12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대구·경북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29%, 국민의힘 25%였다. 2주 전 조사에서는 양당이 28%로 같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국민의힘이 더 낮게 나타났다. 전국 기준으로는 민주당 43%, 국민의힘 17%였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운영 긍정 평가는 67%, 부정 평가는 24%로 집계됐다.
 

  올해 중학생이 된 자녀를 둔 김현미씨는 이재명 정부의 일부 정책이 실생활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비싼 돈 들여 교복을 사는 게 맞느냐는 의견이 많았는데, 교복 업계 반발에도 거품을 뺀 생활복 도입을 추진한 것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기름값 문제에 대해서도 “리터당 1900원까지 올랐던 가격이 단속 발표 후 하루 50원씩 떨어져 1800원 초반대까지 내려왔다”며 “학부모들 사이에 ‘이재명이 우찌 됐든 일은 잘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라고 했다.
 
  수성구에서 회사를 다니는 이동현(33)씨도 “대구가 예전처럼 한쪽으로 단단하게 쏠린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두 살 터울 형이 원래 국민의힘 골수 지지자였는데, 주식 활황 때문에 얼마 전 이재명 쪽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그의 형은 이재명을 ‘갓재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누가 되든 관심 없어’
 
지난 3월 10일 열린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및 중앙당 관할 기초단체자 후보자 면접에서 기념촬영 중인 국민의힘 대구시장 예비 후보들. 왼쪽부터 최은석 의원, 추경호 의원, 윤재옥 의원, 주호영 의원, 유영하 의원,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홍석준 전 의원, 김한구 전 현대차 노조 대의원. 사진=뉴시스

  이재열 목사는 대구 지역 민심의 이반이 국민의힘의 ‘정체성 상실’과 ‘투쟁력 부재’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그동안 대구에는 ‘보수의 수성(守城)’이라는 명확한 어젠다가 있었지만, 최근 국힘은 ‘보신 정치’에 급급한 지리멸렬(支離滅裂)한 모습으로 실망감만 안기고 있습니다. 가령 민주당은 교복값 인하나 기름값 단속처럼 시민들이 ‘내 주머니 돈이 덜 나간다’고 느끼는 정책을 달콤한 사탕처럼 포장해 보여주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경제 정책의 문제점을 냉철하게 짚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국민의힘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어요.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2030 세대는 현실적으로 보수화되는 측면이 있는데, ‘윤어게인’ 같은 정치 구호는 민생과 연결되지 않아 젊은 층에게 피로감만 줍니다.”
 
  이 목사는 이어 “최소한 운동권 세력과는 다르다는 선명한 메시지를 보여줘야 하는데 지금의 국힘이 과연 보수주의인지 의문이 든다”면서 “후보는 아니지만 실리적으로 ‘김부겸’ 같은 인물을 찍어 정부 지원과 예산이라도 더 가져오자는 현실론이 밑바닥 민심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정태 교수는 지역 경제의 어려움을 돌파할 계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현재 민심의 핵심으로 꼽았다. 이 교수는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는 발전이나 전환의 계기가 필요한데 지금은 행정 통합이나 공항 이전 같은 이벤트성 사업조차 여의치 않아 시민들이 기대할 만한 모티브가 없다”고 분석했다.
 
  정치권의 움직임과 현장 민심 사이의 괴리도 지적했다. 그는 “정치권은 분위기를 띄우려 하지만 시민들은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해 정치에 눈 돌릴 여유가 없다”며 “누가 후보로 나오든 대구나 경북을 살릴 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정치 자체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가 깊어지고 있다”고 했다.
 
  최근 민주당 지지율 상승세에 대해서도 “여권에서 뚜렷한 주자를 내세우지 못한 상황이라,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누가 되든 상관없다’는 식의 허탈한 정서가 투영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변해봤자 90에서 85 된 수준”
 
보수의 성지로 불리는 대구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결국 “민주당은 안 된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사진은 동대구역 앞의 박정희 동상. 사진=월간조선

  그러나 결국 ‘미워도 다시 한 번’이었다. 김현미씨는 “이재명이 암만 일을 잘해도 민주당을 뽑을 순 없다”고 했다. 실제로 변화의 조짐은 극히 일부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충청도 출신으로 결혼 후 대구에 정착해 초등학생 대상 보습학원을 운영 중인 김모(52)씨는 “여전히 대구는 사람보다 당을 보고 뽑는 경향이 절대적”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수업 중 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이 ‘이재명은 바보래요’ ‘없어져야 해요’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면서 “부모들이 밥상머리에서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 하는 걸 보면서 ‘이곳은 정말 답답한 곳이구나’ 싶었다”고 했다.
 
  달서구 달서대로에 사는 주부 조모(50)씨 역시 “여기서 50년을 살았는데 대구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변해봤자 90에서 85 된 수준이에요. 민주당 이야기를 꺼내면 뒷목부터 잡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식당에서 ‘이재명이 일은 잘하는갑네’ 한마디 했다가 옆 테이블 아저씨와 다툼이 일어난 적도 있어요. 매번 ‘대구가 우습냐’ ‘이번엔 심판하겠다’ 하다가도 투표소에 들어가면 ‘많이 혼났으니까 정신 차렸겠지’ 하면서 결국 찍는 거예요.”
 
  표병관 (사)몸과문화 이사장은 이런 투표 양상을 ‘낙동강 방어선’에 빗댔다. 그는 “투표 전에는 ‘국민의힘 정신 차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투표소에 가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좌파 집단 쪽으로는 표를 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면서 “국민의힘이 좋아서 찍는 게 아니라, 아무리 더러워도 친중·친북 식의 진보 사회주의 흐름으로는 갈 수 없다는 마음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표 이사장은 이어 “6·25 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했듯, 지방 권력마저 좌파화되는 상황에서 대구 시민들이 마지막 보루를 지키려는 마음으로 투표에 임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행정 통합 둘러싼 내홍
 
  선거 국면에서 다시금 최대 변수로 떠오른 의제는 대구·경북 행정 통합이다. 지난 2019년 이철우 경북지사와 권영진 당시 대구시장이 ‘대구경북특별시’ 구상을 내놓으며 시작된 논의는 홍준표 시장 취임 이후 부침을 겪다, 올해 초 국민의힘 지역 의원들이 ‘TK 통합 특별법’을 발의하며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국민의힘 내부의 전략 부재와 갈등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2월 11일 대구 방문 당시 “행정 통합에는 찬성하지만 졸속 추진은 안 된다”며 속도 조절론을 폈다. 이는 결국 여당에 빌미를 제공했다. 2월 24일,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대구시의회의 반대 의견과 여당 내 이견을 이유로 TK 통합 특별법 상정을 거부하고 광주·전남 특별법만 단독 처리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지도부 책임론을 둘러싼 극심한 내홍에 휩싸였다. 송언석 원내대표가 사퇴 의사를 밝히는 등 파열음이 커지자, 결국 2월 26일 지역 의원 전원 투표를 거쳐 ‘지방선거 전 통합 찬성’을 당론으로 확정하며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이러한 혼선은 정부의 파격적인 균형 발전 정책과 맞물려 지역 민심을 자극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5극 3특’ 구상을 바탕으로 광주·전남 행정 통합에 4년간 최대 20조원을 지원하겠다는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충청권 통합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TK 통합마저 정치권의 엇박자로 진통을 겪으면서 지역 내에서는 여권을 향한 실기(失機)론과 함께 역차별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는 모양새다.
 
 
  들러리 통합 우려
 
  이상락 전 대구시 민원보좌관은 행정 통합이 지자체의 만성적인 재정 구조 문제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짚었다. 그는 “대구 예산은 연간 12조원이 채 안 되고 경북도 14조원 수준인데, 복지와 기존 SOC 사업을 제외하면 시장이 독자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은 500억원도 안 된다”면서 “중앙정부가 세수의 70%를 가져가는 구조를 바꾸고 지방 재정 비중을 높이려면 통합 논의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인구 감소도 통합 필요성이 제기된 배경으로 꼽았다. 이 전 보좌관은 “경북 인구가 한때 350만 명에서 지금은 260만 명대로 줄었고 대구도 230만 명 수준까지 감소했다”면서 “행정 효율성과 인구 소멸 대응 차원에서 통합 논의가 이어져온 이유”라고 설명했다.
 
  다만 추진 과정에 대해서는 피로감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홍준표 시장 취임 이후 논의가 끊겼다가 선거를 앞두고 다시 이슈가 되면서 시민들 사이에서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다”면서 “통합 자체를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절차가 지나치게 급박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실익 없는 ‘들러리 통합’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했다. 이 전 보좌관은 “정부가 대구가 건의한 특례 상당수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결국 광주·전남 통합의 들러리만 서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나온다”고 했다. 실제로 정부는 TK 통합 특별법의 335개 특례 조항 가운데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경북 북부 의대 설립, TK 신공항 조성 등 주요 사업을 포함한 137개를 불수용하기로 했다.
 
 
  “평생 국힘만 찍어왔는데…”
 
  이 같은 ‘빈 껍데기 통합’ 논란은 지역 내부의 이해관계 충돌로도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 주민들은 통합 논의 자체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내용을 알고 있는 이들은 대체로 우려감을 드러냈다. 특히 경북 일각에서는 대구의 ‘빨대 효과’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동 시민들은 경북도청 소재지라는 자부심이 강한 만큼, 최근 다시 불붙은 TK 행정 통합이 안동의 행정 중심지 기능을 약화시키지 않을까 걱정했다. 안동 서동문로에 사는 최모(68)씨는 “여기 사람들은 평생 국민의힘만 찍어왔는데, 요즘은 우리가 핫바지냐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라면서 “도청 옮겨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대구 위주로 행정 통합 판을 짜느냐”고 했다.
 
  포항은 경북 최대 도시라는 자부심과 함께 통합 시 모든 인프라와 결정권이 대구로 쏠리는 ‘대구 일극(一極) 체제’에 대한 경계심이 강했다. 포항시 북구 삼흥로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서모(61)씨는 “대구랑 합쳐서 덩치 키우는 것도 좋지만 포항은 엄연히 바다를 낀 해양 산업 도시”라면서 “우리가 공들여 온 이차전지나 수소 산업 같은 신산업 예산이 순위에서 밀릴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통합은 필수적”
 
  이정태 교수는 지역 소멸 위기 속에서 행정 통합은 피할 수 없는 생존 전략이라고 짚었다. 이 교수는 “대구 시민들은 정주 여건의 우월함 때문에 통합의 실익에 무관심하지만, 인구 500만 선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통합은 필수적이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문제는 논의가 지역의 미래보다 공무원 조직의 이동 부담이나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휘둘리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정책적 판단보다 각자의 자리 계산에 따라 찬반이 갈리고 있다”라고 했다.
 
  표병관 이사장은 행정 통합 논의가 더 큰 틀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했다. 표 이사장은 “통합 자체는 좋지만 통합 차원을 떠나 지방이라는 얼개 자체를 국가 단위에서 입법과 행정이 함께 재설정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분권만 던져주면 망하는 지방만 천지가 된다”라면서 “국회의원은 공천이 꿈이고 단체장은 당선이 꿈이니 50년, 100년 대계를 세울 수가 없다”라고 했다.
 
 
  “경제 전문가형 시장 필요”
 
  정치적 수사 위주의 행정 통합 논의에 피로를 느낀 민심은 이제 지역 경제를 실제로 살릴 인물을 찾고 있다. 차기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에게는 정치적 투쟁보다 민생 현안을 해결할 능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상락 전 보좌관은 “대구 지역내총생산(GRDP)은 30년 넘게 전국 최하위 수준”이라면서 “신공항 이전과 K2 군공항 이전, 후적지 개발 등 사업 규모만 수십조원에 달하는 대형 사업들이 동시에 추진되는 시기인 만큼 중앙정부와 협의하고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경제 전문가형 시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재열 목사는 “대구 시민들은 정치보다 경제적 민감도가 높아 ‘저 사람이 하면 삶이 나아지겠다’는 확신만 주면 표를 줄 준비가 돼 있다”면서 “보수적 가치를 지키되 경제 정책에서는 디테일한 실행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이정태 교수 역시 “지금 중요한 것은 정치 투쟁이 아니라 민생을 챙길 수 있다는 확신을 시민들에게 주는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 유치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은 이제 현실감이 떨어집니다. 자동화된 공장은 예전만큼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거든요.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게 있죠. 삶이 팍팍해지면 무단횡단이나 신호 위반 같은 기초 질서부터 무너지기 마련인데, 이런 자포자기 심리를 방치하면 도시 전체가 침체됩니다. 결국 정치가 할 일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시민의 일상을 지키는 일입니다. 일본의 냉장고 건강 정보 제도처럼 이웃이 서로를 돌보고 있다는 연결감을 주는 시스템도 고민해야 합니다. 큰 정치 투쟁보다 무너진 공동체 의식을 살리고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작은 변화부터 하나씩 만들어갈 인물이 필요합니다.”
 
 
  “실리 챙길 수 있는 수완 있는 일꾼 필요”
 
  경북 지역에서도 ‘실리’와 ‘검증된 일꾼’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였다. 포항 삼흥로 서모씨는 “이강덕 시장이 닦아온 이차전지 산업과 영일만 대교는 포항의 명운이 걸린 사업”이라면서 “중앙정부 눈치만 볼 게 아니라 싸우지 않고도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수완 있는 일꾼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동 서동문로 최씨는 노련한 행정 경험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그는 “행정 통합 같은 큰일은 예산 확보 경로를 잘 아는 힘 있는 사람이 밀고 나가야 성사된다”면서 “도청 신도시가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데 경험 없는 사람이 와서 판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경북 구석구석을 잘 아는 이철우 지사 같은 검증된 인물이 역할을 계속 해야 한다”고 했다.⊙
 

지지율 1위 이진숙의 ‘혁명’이란?


대구시장 경선 구도에서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모습이다. 2월 리서치웰 조사에서 대구시장 적합도를 묻는 질문에 이 전 위원장은 22.6%로 추경호 의원(14.4%), 주호영 의원(12.7%)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이 전 위원장은 3월 10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면접에서 “대구 혁명이 필요하다. 산업혁명, 정신혁명이다. 어떤 저항이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할 일은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호영 의원은 “대구시장은 정부와 싸워서는 곤란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대구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진숙 혼자 싸우는 구도”라는 말과 “언제까지 투쟁 구도로 갈 거냐”는 냉소가 동시에 나온다.
 
  표병관 (사)몸과문화 이사장은 이 전 위원장의 ‘혁명’ 발언을 지방 구조 문제와 연결해 해석했다. 그는 “1995년 지방자치제 재시행 이후 서울과 수도권은 급팽창했고 지방은 급격히 약해졌다. 과거에는 대구 집값이 100이면 서울은 125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네다섯 배 차이가 난다”면서 “정치는 결국 국가 세수와 자원의 배분을 결정하는 일인데 지방자치단체는 집행만 할 뿐 가치 배분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이진숙의 ‘혁명’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지방자치를 넘어 지방정부로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는 구조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표 이사장은 이진숙 전 위원장의 지지율에 대해 “최근 대구 일각에서 ‘차라리 민주당과 협력해 정부 지원을 받자’는 말이 나오는데 중앙정부와 같은 당이라고 해서 대구가 발전한 적은 없다. 지난 30년 동안 대구 GRDP는 전국 최하위였고 그 기간 동안 한나라당, 새누리당, 국민의힘 정권이 모두 있었다”면서 “대통령과 시장이 같은 당이었던 시기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 가운데 공천만 바라보며 중앙당에 종속된 지역 의원들과 달리 국회에서 홀로 소신을 지킨 이진숙의 선명성이 대구 유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어 “광주가 5·18 정신을 동력으로 산업 기반을 다졌듯 대구도 ‘정부 지원을 구걸하는 사고’에서 벗어나 국가 자원 배분 구조 자체를 바꾸는 지방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상락 전 대구시 민원보좌관은 실제 경선 구도는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는 “이진숙 후보가 언론 노출이 많아 지지도가 높아 보일 수 있지만 국민의힘 경선은 국민 여론 50%, 당원 50% 구조”라면서 “당원 조직에서는 현역 의원들이 훨씬 강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구에는 12개 당협 조직이 있고 당원들은 오랫동안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인을 더 잘 안다”며 “이런 점에서 현역 의원들의 조직력은 무시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재열 목사는 대구 정치 문화의 특징을 언급했다. 그는 “대구 사람들은 ‘물에 물 탄 정치’를 싫어한다”며 “먹고살게 해주든지, 아니면 확실하게 밀어붙이든지 둘 중 하나를 원하기 때문에 전투력이 강한 정치인에게 관심이 쏠리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보수는 가치를 지키는 능력과 동시에 그 가치를 지키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며 “단순히 태극기를 들고 싸우자는 방식으로는 이길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침착하게 전략을 세우고 실력을 보여주는 보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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