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죄정보기획관실, 김대중 지시로 만든 ‘검찰 내의 안기부’ … 김대중, 범죄정보기획관실의 ‘동향과 정책’ 보고서 무척 신뢰
• ‘옷 로비 사건’ 당시 ‘사직동팀’은 범죄정보기획관실이 만든 문건 내용대로 ‘이희호 여사’ 내사자료를 특검에 제출하지 않았다!
⊙ “이런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김대중 정권 당시 범죄정보기획관실에서 일한 법조인)
⊙ 범죄정보기획관실 “특검이 사직동팀에 제출된 정일순의 자술서를 근거로 영부인에 대한 조사까지 거론할 것”이라 우려
⊙ 사직동팀, 이희호 여사 내사자료 누락한 채 특검 제출
⊙ “진형구 전 공안부장의 진술은 무방하나 (다른 곳에서) 폭탄 발언이 나오지 않도록 계속 접촉할 필요 있음”(범죄정보기획관실 파업유도 발언 특검제 문건 중)
⊙ “유죄 판결이 선고되면 특검제를 계속하자는 야당의 정치공세가 계속될 것”
⊙ 새정치국민회의 경남도지부장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회 활성화가 어렵다는 자잘한 사실까지 보고
⊙ 김일성 동상에 헌화하고 김일성 부자를 찬양한 민노총 간부를 탄력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정권 입맛에 맞는 문건 작성
⊙ 신동아그룹 간부에게 강간당했다는 여성의 고소장 입수해 직보
• ‘옷 로비 사건’ 당시 ‘사직동팀’은 범죄정보기획관실이 만든 문건 내용대로 ‘이희호 여사’ 내사자료를 특검에 제출하지 않았다!
⊙ “이런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김대중 정권 당시 범죄정보기획관실에서 일한 법조인)
⊙ 범죄정보기획관실 “특검이 사직동팀에 제출된 정일순의 자술서를 근거로 영부인에 대한 조사까지 거론할 것”이라 우려
⊙ 사직동팀, 이희호 여사 내사자료 누락한 채 특검 제출
⊙ “진형구 전 공안부장의 진술은 무방하나 (다른 곳에서) 폭탄 발언이 나오지 않도록 계속 접촉할 필요 있음”(범죄정보기획관실 파업유도 발언 특검제 문건 중)
⊙ “유죄 판결이 선고되면 특검제를 계속하자는 야당의 정치공세가 계속될 것”
⊙ 새정치국민회의 경남도지부장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회 활성화가 어렵다는 자잘한 사실까지 보고
⊙ 김일성 동상에 헌화하고 김일성 부자를 찬양한 민노총 간부를 탄력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정권 입맛에 맞는 문건 작성
⊙ 신동아그룹 간부에게 강간당했다는 여성의 고소장 입수해 직보
문무일 검찰총장의 1호 지시는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실 수술’이었다. ‘범죄정보기획관실’은 1999년 초 당시 김대중 대통령(DJ)이 “수사하는 데는 정보가 필수적인데 어째서 검찰에 정보 수집 기능이 없느냐”고 해서 신설한 조직이었다. 검찰의 모든 정보는 ‘범죄정보기획관실’이 쥐고 있었다. 대검 중수부와 공안부가 나눠 맡았던 정보 수집 기능을 한 손에 쥔 범죄정보기획관실이 새 요직으로 떠오른 것은 당연했다.
1999년 2월 전주지검 차장검사에서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으로 자리를 옮긴 서영제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프리미엄 조선’에 연재한 ‘서영제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수사 비화’에서 이렇게 밝혔다.
“범죄정보기획관실은 말 그대로 범죄 정보를 수집하는 곳으로 검찰 내 핵심부서였다. (범죄정보기획관이던) 나는 공안 정보와 일반 범죄 정보로 나누어 휘하의 범죄정보1담당관, 2담당관에게 업무를 전담시키고 있었는데 연구관과 수사관들까지 포함해 소속 직원이 모두 마흔 명 가까이 이르고 있었다. 검찰총장 직속으로 되어 있는 데다 인적 규모도 작지 않았다. 어떤 언론에서는 가히 ‘검찰 내의 안기부’라고 불릴 만하다고 했다.”
범죄정보기획관실은 당초 목적과 달리 범죄 정보뿐 아니라 이른바 ‘동향 정보’도 수집하기에 이르렀다. 실제 범죄정보기획관실에서는 ‘동향과 정책’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매일 작성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범죄정보기획관실에서 근무했던 관계자의 증언이다.
“제가 근무할 당시 범죄정보1담당관이 ‘동향과 정책 보고서’ 작성을 기획 및 총괄했습니다. 범죄정보2담당관은 정치인, 사회 저명인사 등의 동향과 관련한 부분을 담당했습니다. 저는 일선 검찰청에서 수집, 보고한 내용(수사결과에 따라 드러난 문제점이나 제도 개선 사항, 지연 동향 등)을 보고서 틀에 맞게 작성했습니다. 한번은 정부 요직에 있는 한 여성 인사가 심야에 어떤 남자와 둘이서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일으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고, 동승한 남자와의 관계에 관해서까지 적힌 보고서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런 보고서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매일 만든 ‘동향과 정책’ 보고서를 컬러로 출력해 신승남 대검차장, 박순용 검찰총장에게 보고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밀봉돼 곧장 대통령, 대통령비서실장, 민정수석비서관, 법무부 장관에게 보내졌습니다.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보고서 중간 부분에 넘버를 찍어 보고서가 유출됐을 때 누구에게 보고한 보고서가 유출됐는지 알 수 있게 했습니다.”
DJ, 범죄정보기획관실의 ‘동향과 정책’ 신뢰
범죄정보기획관실이 사실상 청와대와 검찰의 연락 통로 역할을 한 것이다. DJ는 범죄정보기획관실이 만든 ‘동향과 정책’을 굉장히 신뢰했다고 한다. 문무일 검찰총장의 1호 지시가 ‘범죄정보기획관실 수술’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실 청와대와 검찰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온 범죄정보기획관실 개편은 전 정부에서도 추진됐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대검찰청은 범죄정보기획관실 규모를 20~30% 축소하는 등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키려 노력했지만, 경찰이 범죄정보과를 신설하고 범죄 정보 수집 활동에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사실상 흐지부지됐다는 지적이다. 경찰을 의식한 검찰이 ‘범죄정보기획관실’ 힘 빼기에 실패한 것이다. 경찰이 범죄정보과를 신설한 배경에는 수사권 독립을 꾸준하게 요구해 온 경찰 내부의 분위기도 한몫했다. 영원히 ‘검찰 내의 안기부’로 불리며 정보를 독점할 것처럼 보인 ‘범죄정보기획관실’은 최근 문 총장의 의지로 ‘수사정보정책관실’로 개편됐다.
“DJ도 보고받았을 가능성 크다”
《월간조선》은 범죄정보기획관실에 대한 취재 중 범죄정보기획관실이 DJ에게 직보했다는 ‘동향과 정책’ 보고서를 입수했다. A4 용지 200페이지 정도 분량의 보고서에는 약 100건 가까이 되는 정보가 담겼다. 자료를 분석한 결과 범죄정보기획관실은 옷 로비 특별검사(특검) 조사 전 특검이 시행될 경우를 대비한 보고서를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이 문건은 DJ에게 매일 보고했다는 ‘동향과 정책’ 보고서와는 작성 양식이 다르다. 따라서 이 문건이 DJ에게 직보됐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직보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다. 가능성은 반반이다.
범죄정보기획관실에서 일했던 관계자에게 ‘고급 옷 로비 사건’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보여주니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매일 직보하던 보고서와는 다른 걸로 봐서는 김 대통령에게 보고됐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문건은 VIP에게 직보하는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만든 초안으로 보인다. 아마, 검찰총장한테는 보고가 됐을 것이다. 영부인이 관련된 사건에 대한 보고서가 검찰총장에게 보고됐다면,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했을 때 DJ도 보고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
만약 DJ가 보고를 받았다면, 그가 특검과 검찰에 ‘옷 로비 사건’ 수사와 관련, 압력을 가했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 추측이 가능하다. DJ의 부인이자, 당시 영부인이었던 이희호 여사가 의혹에 휘말렸을 때라 더욱 그렇다.
옷 로비 사건은 1999년, 당시 외화 밀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남편의 구명을 위해 고위층 인사의 부인들에게 고가의 옷 로비를 한 사건을 말한다.
김대중 정권 1년 차인 1998년 말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 구명을 위하여 아내 이형자씨가 김태정 검찰총장 아내 연정희씨의 고급 옷값을 대납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최 회장이 구속된 뒤 이형자씨가 언론에 옷 로비에 대해 제보해 1999년 5월 24일 보도됐다. 그러자 5월 28일 연정희씨가 이형자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옷 로비 사건이 비화(飛火)했다. 이 과정에서 이희호 여사의 이름도 거론됐다.
특검의 수사 대응 지침처럼 보이는 보고서
5월 31일 러시아-몽골을 순방 중이던 DJ는 결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나는 (수사를) 유리창 들여다보듯 투명하게 해서 국민 앞에 밝히고, 그래서 책임질 사람이 있으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여러분도 알지만 내 나이로는 과중한 스케줄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국가를 위해 성과를 내고 있는데, 국내 신문을 보면 이런 것은 한쪽으로 밀어내고 옷 사건을 대서특필해 때로는 실망스럽기도 하고, 국민들께 걱정 끼쳐 죄송하고 착잡한 생각이다. 국민의 정부는 이 사건을 도덕성 회복의 계기로 삼으려 한다.”
6월 2일 서울지검 특수2부는 “이형자씨가 ‘남편 구명’을 위해 전 통일부 장관 부인 배정숙씨에게 접근했고 배정숙씨는 김태정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씨를 통해 선처를 부탁하려 했으나 실제로 하지 못했으며, 연정희씨에게 옷을 사준 일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한나라당과 자유민주연합 등 야당은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특검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검 도입을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할 시점인 7월 28일 범죄정보기획관실은 앞서 거론한 ‘고급 옷 로비 사건’이란 제목의 문건을 작성한다. 보고서에는 수사진행방향, 수사예상순서, 수사기초자료 당사자 소환조사 등 특검 수사 대응 지침처럼 보이는 내용이 자세히 담겼다.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수사진행방향 개관
-고급 옷 로비 사건은 검찰의 1차 수사결과 로비가 없었던 것으로 결론지어졌으나 특별검사제도의 존립 차원에서 로비 사실을 결사적으로 규명해 내려고 하는 한편, 로비 사실을 밝혀내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여 언론과 영합하여 영부인이나 장관급 공직자 부인들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선정적인 면으로 흐를 여지가 많을 것으로 보임.
-광범위한 수사가 전개될 것으로 보여 수사의 장기화, 수사 인력 대거 투입 등이 예상되는데 현 단계에서 수사결과를 예측할 수 없음.
○수사예상순서
-몇 갈래로 진행된 관련 사건 수사기록을 검토하고, 모든 관계자의 주거지 압수수색, 로비자금 출처와 관련된 계좌 추적 후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하는 순서로 진행될 것으로 보임.
○수사기초자료
-신동아 최순영 회장과 관련하여 경찰, 검찰이 수사한 일체 기록(최순영 외화도피 사건, 사직동팀의 고급 옷 로비 관련 내사자료, 고급 옷 로비 사건과 관련된 검찰 수사기록, 60억 상당 그림 로비설 관련 검찰 수사기록)
-시중에 나돈 최순영 리스트, 이형자 리스트
-문제점: 사직동팀 내사자료 중 정일순 자술서에 영부인과 관련된 사항이 있고, 연정희의 자술서에는 문제 의상을 입어본 것으로 기술되어 있는 등 검찰 발표와 상이한 진술이 있어 검찰 측의 기존 발표가 흔들릴 여지 있음.
○압수수색(주거지 및 계좌에 대해)
-최순영+이형자+○○생명, 정일순+라스포사, 연정희, 배정숙 등에 대한 주거지, 사무실, 계좌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면서 고위 공직자들의 생활 모습이 방송에 그대로 노출될 가능성이 많고, 신동아그룹 부회장으로 영입되어 신동아 측 로비스트였던 것으로 한나라당 이신범 의원이 폭로한 박○○에 대해서도 주거지 압수수색과 계좌 추적이 예상됨. 박○○은 여비서를 강간한 혐의로 피소되어 서울지검에서 수사 중.
○당사자 소환 조사
-압수수색과 계좌 추적 결과에 따라 소환조사 대상이 상이할 것으로 보이나 최순영, 이형자, 박시언, 배정숙, 연정희, 정일순의 조사는 필수적이고 이들이 고급 옷 로비 건으로 검찰 조사 때 진술한 그대로 진술할지 여부는 불투명함.
-외화도피 사건으로 1심에서 5년형을 선고받은 최순영은 검찰의 눈치를 살피면서 종전 진술을 일단 유지할 것으로 보이나 1심 변론 과정에서 추상적으로 진술했던 로비 부분을 여권 쪽에서 시범 케이스로 구체화시킬 여지가 있음. 검찰 수사 때와 달리 보호막이 걷힌 연정희의 경우도 검찰에서의 진술이 그대로 유지될지 의문시됨.
-사직동팀에 제출된 정일순의 자술서를 근거로 영부인에 대한 조사까지 거론할 것으로 예상.
○기타사항
-경찰에서 언론 쪽에 흘려 고급 옷 로비 사건이 표면화되었듯이 갖가지 제보 가능성 있음.
○수사결과에 따른 파장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 없이 무리한 기소가 예상되고, 일부 로비 사실을 규명하여 기소하게 되면 야당의 정치 공세에 따라 향후 정치적인 사건 모두 특검제 실시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많음.
-로비 사실을 규명하지 못하더라도 영부인 관련 부분, 연정희의 사직동 진술 내용으로 인해 정치적 사건 수사에 편향적인 검찰수사의 문제점이 통박당하여 이 자체만으로도 검찰은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될 것임.〉
이희호 여사 “험한 세월 보내느라 사치할 여유 없었다”
보고서가 작성되고 난 뒤인 8월 23일부터 25일까지 국회 법사위에서 옷 로비 의혹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한 청문회가 열렸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청문회에서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 부인 이형자씨, 라스포사 사장 정일순씨,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씨,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 부인 배정숙씨 등 핵심 증인 4명을 한꺼번에 출석시켜 2시간여 동안 대질신문을 벌였지만 서로 완전히 상반되는 주장을 펴, 진상 규명에 실패했다.
특검 도입을 통한 재조사의 불가피성이 다시 제기됐다. 결국 특별검사제가 도입됐다.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10월 7일 임명된 특별검사는 12월 20일 ‘이형자가 남편 최순영의 구명을 위해 이희호와 연정희에게 접근하려 했으나 연정희로부터 최순영의 구속 방침을 접하고 로비를 포기했다’고 발표했다. 2001년 대법원은 “이형자씨의 로비는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와 관련 이희호 여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나는 원래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사 입었어요. 험한 세월을 보내느라 사치할 여유도 없었고요. 그러다가 야당 총재 부인으로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하니까 강남에 있는 옷가게 라스포사를 가끔 이용했어요. 30% 정도 깎아주었거든요. 그런데 법무부 장관 부인이 거기서 옷을 한 벌 산 적이 있나 봐요. 그런 이유로 내 이름까지 거론된 거지요.”
한편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은 《월간조선》(2009년 3월호)과의 인터뷰에서 신동아그룹 해체에 대한 비화를 털어놨다. 최 전 회장은 “정치적 이유”로 그룹이 해체됐다고 밝혔다. 그는 “주력 기업인 대한생명을 국영화하고 그룹 전체를 공중분해시킨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며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 측에 선거자금을 안 준 기업으로 지목되면서 정치적 보복을 당한 것”이라고 폭로했다. 최 전 회장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 권노갑씨 등 당시 동교동계 실세들로 구성된 9인의 비선조직 모임에서 ‘손 좀 보기로’ 한 첫 번째 그룹으로 지목된 게 신동아였다. 그룹 해체는 김대중 정권의 시나리오에 의해 실행된 거였다”고 말했다.
보고서 내용대로 흘러간 ‘고급 옷 로비 사건’
‘고급 옷 로비 사건’ 문건이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옷 로비 사건 조사는 보고서 내용대로 흘러갔다. 문건은 “사직동팀 내사자료 중 정일순 자술서에 영부인과 관련된 사항이 있고, 연정희의 자술서에는 문제 의상을 입어본 것으로 기술되어 있는 등 검찰 발표와 상이한 진술이 있어 검찰 측의 기존 발표가 흔들릴 여지 있다”고 했다. 특검팀이 사직동팀 내사자료를 입수할 경우, 영부인이 난처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공교롭게도 옷 로비 사건을 내사한 청와대 사직동팀(경찰청 형사국 조사과의 별칭)은 특검팀에 ‘사직동팀 내사자료’를 제출하면서 이희호 여사와 관련한 부분을 빠트린 것으로 드러났다.
1999년 11월 29일 자 《한겨레》 기사 일부다.
〈사직동팀이 누락시킨 부분은 ▲김 대통령 부인 이희호씨를 상대로 이형자씨가 정일순씨를 통해 로비하려 했던 사실을 포함해, 이씨에 대한 로비시도 부분 등이다. 이는 ‘특별검사로부터 자료제출 요청을 받은 국가기관의 장은 반드시 이 요청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한 특검제법(제6조)을 위반한 것이어서 당시 사직동팀을 지휘했던 박주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나 김광식 전 경찰청장 등의 책임 문제와 함께 축소·은폐 의혹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언론보도를 종합해 보면 사직동팀 내사자료에는 ▲1998년 11월 7일 이형자씨가 정일순씨에게 밍크코트 한 벌을 대통령 부인에게 선물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정씨가 거절했다 ▲12월 초 목사 2명이 황아무개 장로에게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을 선처해 달라는 요지의 연판장을 대통령 부인에게 전달해 줄 것을 요청받고,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의 말을 대통령 부인에게 구두로 전달했다 ▲12월 17일 이씨가 정씨에게 대통령 부인에게 육포와 편지를 전해 드리라고 부탁했으나 정씨가 거절했다는 등 이희호 여사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포함돼 있었다.
또 사직동팀 내사자료 중 정일순 자술서에 영부인과 관련된 사항이 있고, 연정희의 자술서에는 문제 의상을 입어본 것으로 기술되어 있는 등 검찰 발표와 상이한 진술이 있어 검찰 측의 기존 발표가 흔들릴 여지가 있다고 한 내용도 맞았다. 특검팀은 “이형자가 남편 최순영의 구명을 위해 이희호와 연정희에게 접근하려 했으나 연정희로부터 최순영의 구속 방침을 접하고 로비를 포기했다”는 것은 물론, 사직동팀과 검찰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축소, 은폐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사직동팀’은 사무실이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경찰청의 한 조직이지만 실질적 상급기관은 청와대에서 사정업무를 담당하는 법무비서관이었다. 직제상 상급자인 형사국장으로부터는 지시도 받지 않고 보고도 하지 않았다. 이들은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정보 수집과 수사에 나섰다. 청와대 하명 사건을 다루는 까닭에 ‘사직동팀’의 팀장인 조사과장은 정권이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 맡아왔다. 사직동팀은 DJ의 지시로 2000년 10월 폐지됐다.
조폐공사 파업유도의 몸통은 누구?
1999년 10월 19일 ‘옷 로비 사건’ 특검법과 함께 ‘조폐공사 파업유도’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특검팀은 진형구 당시 대검 공안부장이 ‘우리가 조폐공사가 파업을 하게 만들었다’고 말한 취중 발언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구성됐다.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의 발단은 1998년 9월 중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은 사무실로 찾아온 당시 강희복 조폐공사 사장에게 “임금 삭감안으로 협상하지 말고 정부 방침대로 구조조정을 단행해라. 구조조정에 반대하면 불법파업이므로 즉시 공권력으로 제압해 주겠다”며 옥천-경산 조폐창의 통폐합(구조조정)을 지시했다.
당시 조폐공사 노조는 임금교섭을 놓고 2개월간 부분파업과 직장폐쇄로 맞서고 있었다. 그 후 진 부장은 세 차례 전화를 걸어 통폐합 강행을 독촉, 강 사장이 10월 2일 통폐합을 결정한 뒤, 11월 25일 노조 측이 파업에 돌입하자 즉각 대의원 34명을 고발하도록 지시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도록 했다.
이 같은 사실은 1999년 6월 진 부장이 오찬에서 폭탄주를 마신 뒤 기자들에게 “조폐공사 파업은 우리(검찰)가 유도했다”고 말해 알려졌다. 야당은 누가 조폐창 조기 통폐합을 통해 파업을 유도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검찰은 진 부장이 구조조정의 전범(典範)을 만들려고 고교 후배인 강 사장에게 임금삭감안 대신 조폐창 조기 통폐합을 단행하도록 압력을 넣어 노조 파업을 유도했다며 7월 진 부장을 구속했다.
야당은 검찰이 진 부장에게만 책임을 떠넘겼다는 의심을 했다. 당시 정부는 구조조정을 강력히 추진하던 때였던 만큼, 몸통이 존재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사건을 맡은 강원일 특검은 진형구 공안부장의 단독 행위라는 검찰 수사 결과를 뒤집고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을 구속했다. 정부 차원의 조직적 개입은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범죄정보기획관실은 ‘파업유도 발언 특검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고급 옷 로비 사건’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매일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것과 형식이 다른 것으로 봤을 때 김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됐는지는 알 수 없다. ‘고급 옷 로비 사건’ 보고서와는 다르게 작성일도 적혀 있지 않다. 다만 내용이 특검 조사를 예측하는 것으로 봤을 때 특검이 구성되기 전 작성됐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특검 조사 가이드라인 같은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보고서
다음은 문건 내용이다.
〈○수사예상순서
-명분 축적을 위해 각 부처에 자료 제출을 요구함과 아울러 당사자를 소환 조사하고, 이어 각종 압수수색과 계좌추적 작업을 벌인 후, 취중 발언을 들은 기자들의 진술과 조폐공사가 파업으로 치달았다가 종결된 경위가 취중 발언대로 라는 정황증거만 가지고 노사관계조정법 위반(제3자 개입), 직권남용으로 진형구 공안부장, 강희복 조폐공사 사장을 구속기소할 것으로 추측됨.
-김태정 검찰총장의 관여 여부까지 수사하기 위해 조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고 청와대 안기부 경찰의 관여 여부 및 개입 정도에 대해서도 관계자 진술 또는 압수물에 따라 부수적인 조사가 예상됨.
○자료제출요구
-조폐공사 파업과 관련하여 조폐공사 노조 측이 보유하는 회의록 등 각종 자료와 대검 공안부, 대전지검 공안부, 노동부가 조폐공사 파업과 관련하여 취급한 정보보고 등 각종 보고서, 디스켓, 구조조정 일정을 취급한 기획예산위원회 관계자료
-자료제출 요구에 적극 응하여 압수수색에 나서지 못하도록 함이 타당함. 타 부처에서 제출할 자료는 특검제 논의 중인 현 시점에서 각 부처마다 따로 점검하고, 수사착수 이후는 최대한 접촉하지 않아야 하고, 접촉하더라도 보안이 유지되어야 함.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설 가능성 커
-압수수색 전 단계로 명분 축적을 위해 자료제출을 1차 요구한 후 자료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압수수색 실시, 대검은 주무부서인 공안부장, 공안2과장, 검찰연구관, 공안2과 사무실과 대전지검 공안부장, 담당검사, 공안과 사무실 및 관련서류 은닉 예상지인 이들의 주거지가 압수수색되고, 나아가 구조조정을 담당한 기획예산위, 노동정책 주무부서인 노동부에 대해서도 압수수색할 가능성 있음.
-자료은닉 또는 관련부서라는 이유로 대검의 경우 공안부 내 인접 과도 압수수색할 가능성 있음. 압수수색 과정에서 특별검사가 원하는 자료가 아닌 여타 자료들이 포함되면 예기치 못하는 사태가 초래될 가능성 농후
-압수수색 해당 부서는 자체 보관 중인 서류 사전 점검하고, 관련부처에도 점검토록 사실상 고지. 특검제 입법 과정에서 또는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 시 파업유도 발언과 관련된 사항만 제한 수사토록 반드시 명기하여 그와 관련이 없는 자료는 압수치 못하도록 해야 하고, 본건과 무관한 자료를 고의 또는 과실로 언론 등에 유출 시 특별검사의 직무정지 또는 교체할 수 있어야 함.
○자금흐름 추적도 병행할 듯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의 판공비 사용내역, 사용처를 조사하고, 진형구 전 공안부장과 자주 만난 음식점, 술집 등을 탐문하여 종업원 상대로 파업유도 발언을 보강할 자료를 수집하고, 이들 간의 금품수수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계좌추적이 예상됨.
-계좌추적과 관련해서는 추적작업에 능한 상당수의 직원을 요청할 것으로 보이는데 검찰의 비협조로 수사에 장애가 많았다는 비난을 듣지 않도록 협조하는 것이 좋을 듯하나 이 문제 역시 특검제 법안 성안 시 지원범위 등을 결정할 때 고려되어야 할 사항임.
○당사자 및 참고인 조사
-조폐공사 노조 관계자, 기자들 조사는 별다른 문제가 없고, 당사자인 진형구 전 공안부장과 강희복 조폐공사 사장은 협의 차원의 대화는 시인하나 파업을 유도한 것은 부인할 것으로 예상됨.
-검찰 측 참고인인 이준보 전 공안2과장, 정윤기 감찰연구관, 대전지검 김진오 전 공안부장 역시 파업유도와 관련된 사실은 없는 것으로 진술이 예상됨. 수사기관에 오래 종사해 온 검사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관련사실을 추궁해 내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나 특히 당사자인 진형구 전 공안부장의 경우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대전 이종기 변호사처럼 본인의 실수가 검찰의 획기적 개선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며 얼토당토않은 의외의 진술이나 폭탄선언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
-또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은 불구속을 전제로, 이준보 전 공안2과장은 불기소를 전제로 파업유도 발언을 사실로 진술하게끔 협상하려 들 것임. 파업유도 발언에 대해서는 진형구 전 공안부장이 사실인 것처럼 진술해도 무방하나 여타 폭탄 발언이 나오지 않도록 계속 접촉할 필요 있음.
-김태정 전 검찰총장에 대해서는 보고를 받거나 그에 대해 지시한 사실이 있는지 조사할 것으로 예상됨.
○기타사항
-한국전기통신공사 상대로 통화내역을 조회할 것으로 예상되나 시외전화는 6개월, 시내전화는 3개월이면 통화내역을 없애고 있어 자료입수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임. 검찰 내 내부 고발자 발생 가능성 있음.
○결론은 구속기소로 갈 듯
-이미 기자들에게 한 진형구 전 공안부장의 발언이 전 국민에게 알려졌고, 조폐공사의 파업 경위가 이 발언과 유사하다면 구속기소는 피할 수 없을 것임. 진형구 공안부장과 강희복 사장은 이렇게 처리되나 발언 가운데 포함된 이준보 전 공안2과장의 처리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음.
-법원에서 기소한 사건이 무죄로 선고되면 미국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특검제의 폐해로 지적되어 특검제 폐지 위한 유리한 여건이 조성될 것임. 이 경우 무리하게 기소한 특별검사에 대해 통상 검사가 무죄를 선고받은 것과 달리 취급하여 특별검사가 받은 보수, 수당 등은 반납하도록 법안제정 시 명시하여야 할 것임. 유죄판결이 선고되면 특검제를 계속하자는 야당의 정치공세가 계속되어 특검제를 폐지하기는 어려울 것임.
-특별검사가 수사결과 발표 시 검찰직원 차출 불응 등을 트집 삼아 비협조 내지 수사방해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지 못하였다고 할 가능성이 많아 협조 범위 한계를 명확히 할 것임.〉
문건은 증거인멸 등 특검 조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란 인상을 주기 충분한 내용으로 이뤄졌다. 이 문건 내용과 정부 차원의 조직적 개입은 없었다는 조사 결과와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훗날 진 전 부장과 강 전 사장은 파업유도와 관련된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혐의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 사건에 아무도 죄가 없다는 판결이 나온 이유와 범죄정보기획관실 문건 내용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동아그룹 예의주시
범죄정보기획관실은 옷 로비 사건에 연루된 신동아그룹을 예의주시했다. 신동아그룹의 고위 간부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다. 해당 보고서의 내용이다.
〈▲지난 5. 10 서울지검에 신동아그룹 부회장이었던 박○○으로부터 강간을 당했다는 내용의 고소장이 접수돼 수사 중인데 ▲고소인인 여비서 김○○(익명 처리·24세) 98. 9. 11부터 99. 4 사이에 6회에 걸쳐 강간을 당하였고 그 과정에서 구타당하거나 해고 위협을 받았다고 함 ▲이에 대해 박○○은 두 사람 사이에 성관계가 있었던 것은 시인하면서도 화간(和姦)이고, 고소인을 구타하거나 해고 위협을 가한 바 없다고 주장한다 함.〉
보고서는 “박○○은 지난 6. 29 이신범 의원(당시 한나라당-기자 주)이 국회 개회식 때 신상 발언을 하면서 그림 의혹 사건과 관련하여 ‘목포 출신으로, 국민회의 실세의 소개로 신동아그룹에 영입된 박모씨가 정관계 로비 활동을 하면서 누구를 만났는지 수사해야 한다’고 지목했던 그 인물임”이라고 덧붙였다. 박○○씨는, 1999년 옷 로비 사건을 내사하던 이른바 사직동팀의 보고서를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 측으로부터 구해 이를 공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보고서 존재
범죄정보기획관실이 김 대통령에게 직보한 것으로 확인된 문건 중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한 내용도 있었다. ‘노무현 경남도지부장, 후원회 활성화 어려울 듯’이란 제목의 보고서였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노무현 국민회의 경남도지부장은 지난 5. 13 도지부 후원회장으로 박창식 창원상의 의장을 위촉하고 6·11 후원의 밤 행사를 개최하는 등 후원회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노무현 지부장의 경우 내년 총선 때 당선을 버리고 부산으로 갈 가능성이 많고, 도지부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전세보증금 1억원이 없어 3000만원만 보증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월세로 입주하여 자금력 부족이 드러났기 때문에 경남도에서 노 지부장을 적극 후원하려는 사람이 없고 ▲후원회원으로 가입하였더라도 후원회장인 박창식 창원상의 의장은 오랫동안 한나라당 황낙주 의원(창원乙)의 후원회장이었는데 정권이 바뀐 후 지나치게 변신한 데 대해 주위의 비난이 많다고 하고 다른 후원회원도 지역정서상 후원회 활동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어 후원회가 활성화되기 어렵다고 함. ▲실제로 6·11 치러진 후원의 밤 행사장에는 3000명의 초청객 중 500명만 참석하여 썰렁한 분위기였다 함.〉
‘6·11 치러진 후원의 밤 행사장에는 3000명의 초청객 중 500명만 참석하여 썰렁한 분위기였다 함’이라는 내용으로 봤을 때, 이 문건은 6월 11일 밤에 작성돼 당일, 혹은 다음날 DJ에게 직보됐을 가능성이 크다. 경남도지부장이었던 노 전 대통령이 후원회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의 문건을 읽은 DJ가 어떤 조처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당시 후원회 풍경을 다룬 기사들을 보면 보고서 내용과는 달리 낙관적이다.
《경향신문》(1999년 6월 12일 자) 기사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국민회의 지도부는 이날 경남 창원에서 열린 도지부(지부장 노무현 의원) 후원회에 대거 참석했다. 김영배 총재 권한대행을 비롯해 이만섭 상임고문, 서석재 부총재, 장영철 정책위의장, 한화갑 총재특보단장, 김운환, 설훈, 한영애, 김태랑 의원 등 10여 명의 당 지도부가 내려갔다. 이날 후원회에는 700여 명의 지역 주민들이 참석, 목표 금액인 3억원을 무난히 달성했다고 주최 측은 밝혔다. 후원회장을 맡은 박창식 창원상공회의소 회장을 포함해 추한식 마산상의 의장, 박홍진 거제상의 회장 등 지역 상공인들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 지부장은 “지역감정 해소라는 정치적 접근보다는 주민들의 애로를 당과 정부에 전달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겠다”며 국민회의에 대한 지원을 호소했다.〉
같은 날 《중앙일보》의 후원회 관련 기사 중 일부다.
〈11일 김영배 총재권한대행 등 국민회의 지도부는 경남도지부(지부장 노무현 의원) 후원회 참석차 대거 PK(부산·경남) 지역을 방문했다. 이날 후원회는 대구시지부(98년 11월), 경북도지부(4월), 부산시지부(5월) 후원회 창립에 이은 국민회의 영남 지역 후원회의 완결편인 셈이다. 창원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는 후원회장인 박창식 창원상공회의소 소장 등 이 지역 상공인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후원금도 5억원 이상이 걷혀 당초 목표를 초과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후원회 기사가 나간 직후 노 전 대통령은 언론에 의해 차세대 리더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한겨레21》(1999년 6월 23일 자)이 선정한 ‘차세대 지도자 선호도’에서 노 전 대통령은 1위를 차지했다. 6월 29일에는 정치주식시장 ‘포스닥’이 개장했는데, 노 전 대통령은 3위(주당 2만9040원)에 오르기도 했다.
VIP 입맛에 맞는 내용 다수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작성한 흔적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민노총 방북목적위반활동 탄력적 처리해야’ 제목의 문건이다.
문건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민주노총 축구단의 방북 활동 중 김일성 동상에 헌화하고 찬양하는 발언은 국민정서상 용인되기 어려운 행동으로 실정법 위반 행위가 있었는지 조사하되 처벌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여론임.
남북노동자축구대회 참석차 방북한 민노총 대표단이 김일성 동상에 헌화하고 김일성 부자를 찬양하는 등 입북 목적을 벗어난 행동을 한 것으로 보도되었는데(각종 집회에서 ‘김정일 장군님이 통일로 이끌어주시는데 감사’ ‘김일성 주석님이 노동자들을 이만큼 키워왔고… 가슴 뿌듯함을 느끼는 자리’라고 찬양)
일부에서는 북한 노동자들이 남한을 방문해 국립묘지 참배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북측에서의 의전 관례상 어쩔 수 없는 것이면 문제 삼을 필요 없다고 하나 정치권 일각이나 보수층은 경솔한 행동으로 국민정서상 용납되기 어렵다고 하면서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도록 검토한 후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임. 이에 대해 검찰은 정부가 승인한 방북 목적에 어긋나고 북한의 강요가 아닌 자발적 헌화라면 명백한 국가보안법 위반이므로 이들을 조사한 후 탄력적으로 처리할 예정임.〉
보고서 뒤에는 대학교수, 무역업 종사자 등 6명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첨부했는데 ‘조사하되 처벌은 신중해야’와 ‘굳이 문제 삼을 것까지는 없다’는 의견뿐이었다. 당시 민노총 축구단 대표가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찬양하는 듯한 발언, 행동을 한 것에 대한 일반적 여론은 ‘김대중 정부식 햇볕의 필연적 귀결이냐, 총체적 검증이 시급하다’였다. 당시 검찰은 민주노총 축구단 일부의 이적성 여부를 정밀히 조사한 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흐지부지됐다.
재벌개혁에 대한 편협한 시각 존재
재벌개혁에 대한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이 보고서는 “대통령님께서는 작년 1. 13 당선자로서 5대 재벌총수와 기업 구조조정에 관한 5대 원칙을 합의하신 데 이어 8·15 경축사를 통해 추가로 3가지의 재벌 개혁 방안을 밝히심에 따라 국민들 사이에서도 과거 정권은 못했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재벌을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음”이라고 적었다. 이어 “정치권은 여야 모두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있지만, 재계는 “정부의 압박강도가 더 세질 것으로 보고 긴장”이라고 전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대우그룹 관련 기술이다. 보고서의 일부다.
〈○대우는 그룹 분해까지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어… 대우는 증권과 건설에 대한 분리 매각 방침이 정해진 데 이어 자동차 경영권이 GM으로 넘어가 그룹이 공중분해 되는 경우까지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다 함.〉
대우그룹은 그해(1999년) 사실상 공중분해 됐다. 대우그룹의 해체는 당시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던 재벌개혁의 칼날에 의해 해체됐다는 게 정설이다. 김대중 정부 초반인 1998년 11월,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대우에 관한 비관적인 보고서를 올렸다고 한다. 그해 10월엔 일본계 노무라증권이 펴낸 〈대우그룹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제목의 보고서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와의 대담집인 《김우중과의 대화》(2014년)에서 “경제관료들이 나를 제거하려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다고 믿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직 대우그룹 임직원 모임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회장 장병주)가 2010년 펴낸 〈대우 ‘세계경영’ 내용과 시사점〉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대우의) 세계경영은 당시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붕괴에 따라 출현한 ‘신흥시장’에 있어서 한국 기업이 선택할 수 있었던 가장 효과적인 ‘진입 및 선점 전략’ 모델이었다”고 자평했다. 이 보고서는 “세계경영은 한국 기업의 세계화 방향을 뚜렷이 제시한 경영전략이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999년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직전 대우그룹은 396개의 해외 현지법인을 두고 있었다. 해외 현지고용 인원은 15만명에 달했을 정도로, 경영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상황이 이랬음에도 범죄정보기획관실이 “대우는 그룹 분해까지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어”란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청와대에 입맛에 맞는 보고를 한 것이란 지적이다.
재벌개혁과 관련해 범죄정보기획관실은 언론의 동향도 전했다. 보고서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재벌이 담당해 온 경제성장, 고용, 수출 등의 순기능을 새로운 경제주체로 예시된 벤처기업과 중기에서 대신하기는 부족하고 개혁은 합법적 제도적 절차를 거쳐 다음 정권까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재벌비호론’이 자리 잡고 있음”이라고 적시했다. 이는 양대 신문이 재벌의 편만 든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보고서는 “전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재벌개혁은 다가오는 21C를 위한 시대적 소명이라고 할 것이다. 과거 어느 정권도 이루지 못했던 재벌개혁을 이번에는 어떤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반드시 성취함으로써 경제정의를 이룩해야 함”이라고 적었다.
재벌에 문제가 있고 개혁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전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재벌개혁을 반드시 성취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을뿐더러 편협한 주장이다. 재벌개혁을 전 국민이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에게 재벌은 애증이 교차하는 대상이다. 국민 경제 차원에서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말처럼 “재벌은 개혁의 대상이지만 우리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현재 재벌 총수들은 창업 세대가 아니지만,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의 외형을 키우고 내실을 다진 게 사실이다. 또 취업준비생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직장이며, 한국 경제를 떠받드는 수출의 주역이다.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총망라
이 밖에도 《월간조선》이 입수한 범죄정보기획관실 보고서에는 ▲검사들 특검제법 내용 좋지만, 파장 우려해 ▲국민회의, 《한겨레》 상대 민사소송 흐지부지 ▲최기선 시장 불구속, 형평성 논란 ▲화성 씨랜드 참사는 인재 그 자체 등 ▲현직검사, KBS 상대 손해배상소송 승소 ▲YS, 페인트 달걀에 명예훼손 피소까지 ▲사학재단 고질적 비리 근절되어야 ▲용주골에 36억원짜리 윤락용 건물 등장 등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망라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1999년 2월 전주지검 차장검사에서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으로 자리를 옮긴 서영제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프리미엄 조선’에 연재한 ‘서영제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수사 비화’에서 이렇게 밝혔다.
“범죄정보기획관실은 말 그대로 범죄 정보를 수집하는 곳으로 검찰 내 핵심부서였다. (범죄정보기획관이던) 나는 공안 정보와 일반 범죄 정보로 나누어 휘하의 범죄정보1담당관, 2담당관에게 업무를 전담시키고 있었는데 연구관과 수사관들까지 포함해 소속 직원이 모두 마흔 명 가까이 이르고 있었다. 검찰총장 직속으로 되어 있는 데다 인적 규모도 작지 않았다. 어떤 언론에서는 가히 ‘검찰 내의 안기부’라고 불릴 만하다고 했다.”
범죄정보기획관실은 당초 목적과 달리 범죄 정보뿐 아니라 이른바 ‘동향 정보’도 수집하기에 이르렀다. 실제 범죄정보기획관실에서는 ‘동향과 정책’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매일 작성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범죄정보기획관실에서 근무했던 관계자의 증언이다.
“제가 근무할 당시 범죄정보1담당관이 ‘동향과 정책 보고서’ 작성을 기획 및 총괄했습니다. 범죄정보2담당관은 정치인, 사회 저명인사 등의 동향과 관련한 부분을 담당했습니다. 저는 일선 검찰청에서 수집, 보고한 내용(수사결과에 따라 드러난 문제점이나 제도 개선 사항, 지연 동향 등)을 보고서 틀에 맞게 작성했습니다. 한번은 정부 요직에 있는 한 여성 인사가 심야에 어떤 남자와 둘이서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일으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고, 동승한 남자와의 관계에 관해서까지 적힌 보고서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런 보고서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매일 만든 ‘동향과 정책’ 보고서를 컬러로 출력해 신승남 대검차장, 박순용 검찰총장에게 보고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밀봉돼 곧장 대통령, 대통령비서실장, 민정수석비서관, 법무부 장관에게 보내졌습니다.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보고서 중간 부분에 넘버를 찍어 보고서가 유출됐을 때 누구에게 보고한 보고서가 유출됐는지 알 수 있게 했습니다.”
DJ, 범죄정보기획관실의 ‘동향과 정책’ 신뢰
범죄정보기획관실이 사실상 청와대와 검찰의 연락 통로 역할을 한 것이다. DJ는 범죄정보기획관실이 만든 ‘동향과 정책’을 굉장히 신뢰했다고 한다. 문무일 검찰총장의 1호 지시가 ‘범죄정보기획관실 수술’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실 청와대와 검찰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온 범죄정보기획관실 개편은 전 정부에서도 추진됐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대검찰청은 범죄정보기획관실 규모를 20~30% 축소하는 등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키려 노력했지만, 경찰이 범죄정보과를 신설하고 범죄 정보 수집 활동에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사실상 흐지부지됐다는 지적이다. 경찰을 의식한 검찰이 ‘범죄정보기획관실’ 힘 빼기에 실패한 것이다. 경찰이 범죄정보과를 신설한 배경에는 수사권 독립을 꾸준하게 요구해 온 경찰 내부의 분위기도 한몫했다. 영원히 ‘검찰 내의 안기부’로 불리며 정보를 독점할 것처럼 보인 ‘범죄정보기획관실’은 최근 문 총장의 의지로 ‘수사정보정책관실’로 개편됐다.
“DJ도 보고받았을 가능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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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8월 23일 ‘옷 로비 의혹 청문회’에서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 부인 배정숙씨,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 부인 이형자씨의 동생 이형기씨, 이씨의 사돈 조복희씨, 횃불재단센터 이사장 비서 고민경씨(오른쪽부터) 등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
범죄정보기획관실에서 일했던 관계자에게 ‘고급 옷 로비 사건’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보여주니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매일 직보하던 보고서와는 다른 걸로 봐서는 김 대통령에게 보고됐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문건은 VIP에게 직보하는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만든 초안으로 보인다. 아마, 검찰총장한테는 보고가 됐을 것이다. 영부인이 관련된 사건에 대한 보고서가 검찰총장에게 보고됐다면,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했을 때 DJ도 보고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
만약 DJ가 보고를 받았다면, 그가 특검과 검찰에 ‘옷 로비 사건’ 수사와 관련, 압력을 가했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 추측이 가능하다. DJ의 부인이자, 당시 영부인이었던 이희호 여사가 의혹에 휘말렸을 때라 더욱 그렇다.
옷 로비 사건은 1999년, 당시 외화 밀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남편의 구명을 위해 고위층 인사의 부인들에게 고가의 옷 로비를 한 사건을 말한다.
김대중 정권 1년 차인 1998년 말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 구명을 위하여 아내 이형자씨가 김태정 검찰총장 아내 연정희씨의 고급 옷값을 대납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최 회장이 구속된 뒤 이형자씨가 언론에 옷 로비에 대해 제보해 1999년 5월 24일 보도됐다. 그러자 5월 28일 연정희씨가 이형자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옷 로비 사건이 비화(飛火)했다. 이 과정에서 이희호 여사의 이름도 거론됐다.
특검의 수사 대응 지침처럼 보이는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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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로비 사건의 핵심 인물이었던 김태정 검찰총장(오른쪽)의 부인 연정희씨(왼쪽). 연씨는 이형자씨로부터 고급 옷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
“나는 (수사를) 유리창 들여다보듯 투명하게 해서 국민 앞에 밝히고, 그래서 책임질 사람이 있으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여러분도 알지만 내 나이로는 과중한 스케줄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국가를 위해 성과를 내고 있는데, 국내 신문을 보면 이런 것은 한쪽으로 밀어내고 옷 사건을 대서특필해 때로는 실망스럽기도 하고, 국민들께 걱정 끼쳐 죄송하고 착잡한 생각이다. 국민의 정부는 이 사건을 도덕성 회복의 계기로 삼으려 한다.”
6월 2일 서울지검 특수2부는 “이형자씨가 ‘남편 구명’을 위해 전 통일부 장관 부인 배정숙씨에게 접근했고 배정숙씨는 김태정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씨를 통해 선처를 부탁하려 했으나 실제로 하지 못했으며, 연정희씨에게 옷을 사준 일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한나라당과 자유민주연합 등 야당은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특검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검 도입을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할 시점인 7월 28일 범죄정보기획관실은 앞서 거론한 ‘고급 옷 로비 사건’이란 제목의 문건을 작성한다. 보고서에는 수사진행방향, 수사예상순서, 수사기초자료 당사자 소환조사 등 특검 수사 대응 지침처럼 보이는 내용이 자세히 담겼다.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수사진행방향 개관
-고급 옷 로비 사건은 검찰의 1차 수사결과 로비가 없었던 것으로 결론지어졌으나 특별검사제도의 존립 차원에서 로비 사실을 결사적으로 규명해 내려고 하는 한편, 로비 사실을 밝혀내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여 언론과 영합하여 영부인이나 장관급 공직자 부인들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선정적인 면으로 흐를 여지가 많을 것으로 보임.
-광범위한 수사가 전개될 것으로 보여 수사의 장기화, 수사 인력 대거 투입 등이 예상되는데 현 단계에서 수사결과를 예측할 수 없음.
○수사예상순서
-몇 갈래로 진행된 관련 사건 수사기록을 검토하고, 모든 관계자의 주거지 압수수색, 로비자금 출처와 관련된 계좌 추적 후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하는 순서로 진행될 것으로 보임.
○수사기초자료
-신동아 최순영 회장과 관련하여 경찰, 검찰이 수사한 일체 기록(최순영 외화도피 사건, 사직동팀의 고급 옷 로비 관련 내사자료, 고급 옷 로비 사건과 관련된 검찰 수사기록, 60억 상당 그림 로비설 관련 검찰 수사기록)
-시중에 나돈 최순영 리스트, 이형자 리스트
-문제점: 사직동팀 내사자료 중 정일순 자술서에 영부인과 관련된 사항이 있고, 연정희의 자술서에는 문제 의상을 입어본 것으로 기술되어 있는 등 검찰 발표와 상이한 진술이 있어 검찰 측의 기존 발표가 흔들릴 여지 있음.
○압수수색(주거지 및 계좌에 대해)
-최순영+이형자+○○생명, 정일순+라스포사, 연정희, 배정숙 등에 대한 주거지, 사무실, 계좌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면서 고위 공직자들의 생활 모습이 방송에 그대로 노출될 가능성이 많고, 신동아그룹 부회장으로 영입되어 신동아 측 로비스트였던 것으로 한나라당 이신범 의원이 폭로한 박○○에 대해서도 주거지 압수수색과 계좌 추적이 예상됨. 박○○은 여비서를 강간한 혐의로 피소되어 서울지검에서 수사 중.
○당사자 소환 조사
-압수수색과 계좌 추적 결과에 따라 소환조사 대상이 상이할 것으로 보이나 최순영, 이형자, 박시언, 배정숙, 연정희, 정일순의 조사는 필수적이고 이들이 고급 옷 로비 건으로 검찰 조사 때 진술한 그대로 진술할지 여부는 불투명함.
-외화도피 사건으로 1심에서 5년형을 선고받은 최순영은 검찰의 눈치를 살피면서 종전 진술을 일단 유지할 것으로 보이나 1심 변론 과정에서 추상적으로 진술했던 로비 부분을 여권 쪽에서 시범 케이스로 구체화시킬 여지가 있음. 검찰 수사 때와 달리 보호막이 걷힌 연정희의 경우도 검찰에서의 진술이 그대로 유지될지 의문시됨.
-사직동팀에 제출된 정일순의 자술서를 근거로 영부인에 대한 조사까지 거론할 것으로 예상.
○기타사항
-경찰에서 언론 쪽에 흘려 고급 옷 로비 사건이 표면화되었듯이 갖가지 제보 가능성 있음.
○수사결과에 따른 파장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 없이 무리한 기소가 예상되고, 일부 로비 사실을 규명하여 기소하게 되면 야당의 정치 공세에 따라 향후 정치적인 사건 모두 특검제 실시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많음.
-로비 사실을 규명하지 못하더라도 영부인 관련 부분, 연정희의 사직동 진술 내용으로 인해 정치적 사건 수사에 편향적인 검찰수사의 문제점이 통박당하여 이 자체만으로도 검찰은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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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은 훗날 “그룹 해체는 김대중 정권의 시나리오에 의해 실행된 거였다”고 폭로했다. |
특검 도입을 통한 재조사의 불가피성이 다시 제기됐다. 결국 특별검사제가 도입됐다.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10월 7일 임명된 특별검사는 12월 20일 ‘이형자가 남편 최순영의 구명을 위해 이희호와 연정희에게 접근하려 했으나 연정희로부터 최순영의 구속 방침을 접하고 로비를 포기했다’고 발표했다. 2001년 대법원은 “이형자씨의 로비는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와 관련 이희호 여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나는 원래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사 입었어요. 험한 세월을 보내느라 사치할 여유도 없었고요. 그러다가 야당 총재 부인으로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하니까 강남에 있는 옷가게 라스포사를 가끔 이용했어요. 30% 정도 깎아주었거든요. 그런데 법무부 장관 부인이 거기서 옷을 한 벌 산 적이 있나 봐요. 그런 이유로 내 이름까지 거론된 거지요.”
한편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은 《월간조선》(2009년 3월호)과의 인터뷰에서 신동아그룹 해체에 대한 비화를 털어놨다. 최 전 회장은 “정치적 이유”로 그룹이 해체됐다고 밝혔다. 그는 “주력 기업인 대한생명을 국영화하고 그룹 전체를 공중분해시킨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며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 측에 선거자금을 안 준 기업으로 지목되면서 정치적 보복을 당한 것”이라고 폭로했다. 최 전 회장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 권노갑씨 등 당시 동교동계 실세들로 구성된 9인의 비선조직 모임에서 ‘손 좀 보기로’ 한 첫 번째 그룹으로 지목된 게 신동아였다. 그룹 해체는 김대중 정권의 시나리오에 의해 실행된 거였다”고 말했다.
보고서 내용대로 흘러간 ‘고급 옷 로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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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로비 사건’을 내사한 사직동팀(경찰청 형사국 조사과)의 서울 종로구 안가. 사직동팀의 주임무는 정치인, 고위 공직자, 기업인들의 비리를 캐내는 일이었다. |
1999년 11월 29일 자 《한겨레》 기사 일부다.
〈사직동팀이 누락시킨 부분은 ▲김 대통령 부인 이희호씨를 상대로 이형자씨가 정일순씨를 통해 로비하려 했던 사실을 포함해, 이씨에 대한 로비시도 부분 등이다. 이는 ‘특별검사로부터 자료제출 요청을 받은 국가기관의 장은 반드시 이 요청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한 특검제법(제6조)을 위반한 것이어서 당시 사직동팀을 지휘했던 박주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나 김광식 전 경찰청장 등의 책임 문제와 함께 축소·은폐 의혹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언론보도를 종합해 보면 사직동팀 내사자료에는 ▲1998년 11월 7일 이형자씨가 정일순씨에게 밍크코트 한 벌을 대통령 부인에게 선물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정씨가 거절했다 ▲12월 초 목사 2명이 황아무개 장로에게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을 선처해 달라는 요지의 연판장을 대통령 부인에게 전달해 줄 것을 요청받고,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의 말을 대통령 부인에게 구두로 전달했다 ▲12월 17일 이씨가 정씨에게 대통령 부인에게 육포와 편지를 전해 드리라고 부탁했으나 정씨가 거절했다는 등 이희호 여사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포함돼 있었다.
또 사직동팀 내사자료 중 정일순 자술서에 영부인과 관련된 사항이 있고, 연정희의 자술서에는 문제 의상을 입어본 것으로 기술되어 있는 등 검찰 발표와 상이한 진술이 있어 검찰 측의 기존 발표가 흔들릴 여지가 있다고 한 내용도 맞았다. 특검팀은 “이형자가 남편 최순영의 구명을 위해 이희호와 연정희에게 접근하려 했으나 연정희로부터 최순영의 구속 방침을 접하고 로비를 포기했다”는 것은 물론, 사직동팀과 검찰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축소, 은폐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사직동팀’은 사무실이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경찰청의 한 조직이지만 실질적 상급기관은 청와대에서 사정업무를 담당하는 법무비서관이었다. 직제상 상급자인 형사국장으로부터는 지시도 받지 않고 보고도 하지 않았다. 이들은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정보 수집과 수사에 나섰다. 청와대 하명 사건을 다루는 까닭에 ‘사직동팀’의 팀장인 조사과장은 정권이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 맡아왔다. 사직동팀은 DJ의 지시로 2000년 10월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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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9월 3일 국회 파업유도 의혹 청문회에서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왼쪽)과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이 대질 신문을 받고 있다. |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의 발단은 1998년 9월 중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은 사무실로 찾아온 당시 강희복 조폐공사 사장에게 “임금 삭감안으로 협상하지 말고 정부 방침대로 구조조정을 단행해라. 구조조정에 반대하면 불법파업이므로 즉시 공권력으로 제압해 주겠다”며 옥천-경산 조폐창의 통폐합(구조조정)을 지시했다.
당시 조폐공사 노조는 임금교섭을 놓고 2개월간 부분파업과 직장폐쇄로 맞서고 있었다. 그 후 진 부장은 세 차례 전화를 걸어 통폐합 강행을 독촉, 강 사장이 10월 2일 통폐합을 결정한 뒤, 11월 25일 노조 측이 파업에 돌입하자 즉각 대의원 34명을 고발하도록 지시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도록 했다.
이 같은 사실은 1999년 6월 진 부장이 오찬에서 폭탄주를 마신 뒤 기자들에게 “조폐공사 파업은 우리(검찰)가 유도했다”고 말해 알려졌다. 야당은 누가 조폐창 조기 통폐합을 통해 파업을 유도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검찰은 진 부장이 구조조정의 전범(典範)을 만들려고 고교 후배인 강 사장에게 임금삭감안 대신 조폐창 조기 통폐합을 단행하도록 압력을 넣어 노조 파업을 유도했다며 7월 진 부장을 구속했다.
야당은 검찰이 진 부장에게만 책임을 떠넘겼다는 의심을 했다. 당시 정부는 구조조정을 강력히 추진하던 때였던 만큼, 몸통이 존재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사건을 맡은 강원일 특검은 진형구 공안부장의 단독 행위라는 검찰 수사 결과를 뒤집고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을 구속했다. 정부 차원의 조직적 개입은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범죄정보기획관실은 ‘파업유도 발언 특검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고급 옷 로비 사건’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매일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것과 형식이 다른 것으로 봤을 때 김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됐는지는 알 수 없다. ‘고급 옷 로비 사건’ 보고서와는 다르게 작성일도 적혀 있지 않다. 다만 내용이 특검 조사를 예측하는 것으로 봤을 때 특검이 구성되기 전 작성됐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특검 조사 가이드라인 같은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보고서
다음은 문건 내용이다.
〈○수사예상순서
-명분 축적을 위해 각 부처에 자료 제출을 요구함과 아울러 당사자를 소환 조사하고, 이어 각종 압수수색과 계좌추적 작업을 벌인 후, 취중 발언을 들은 기자들의 진술과 조폐공사가 파업으로 치달았다가 종결된 경위가 취중 발언대로 라는 정황증거만 가지고 노사관계조정법 위반(제3자 개입), 직권남용으로 진형구 공안부장, 강희복 조폐공사 사장을 구속기소할 것으로 추측됨.
-김태정 검찰총장의 관여 여부까지 수사하기 위해 조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고 청와대 안기부 경찰의 관여 여부 및 개입 정도에 대해서도 관계자 진술 또는 압수물에 따라 부수적인 조사가 예상됨.
○자료제출요구
-조폐공사 파업과 관련하여 조폐공사 노조 측이 보유하는 회의록 등 각종 자료와 대검 공안부, 대전지검 공안부, 노동부가 조폐공사 파업과 관련하여 취급한 정보보고 등 각종 보고서, 디스켓, 구조조정 일정을 취급한 기획예산위원회 관계자료
-자료제출 요구에 적극 응하여 압수수색에 나서지 못하도록 함이 타당함. 타 부처에서 제출할 자료는 특검제 논의 중인 현 시점에서 각 부처마다 따로 점검하고, 수사착수 이후는 최대한 접촉하지 않아야 하고, 접촉하더라도 보안이 유지되어야 함.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설 가능성 커
-압수수색 전 단계로 명분 축적을 위해 자료제출을 1차 요구한 후 자료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압수수색 실시, 대검은 주무부서인 공안부장, 공안2과장, 검찰연구관, 공안2과 사무실과 대전지검 공안부장, 담당검사, 공안과 사무실 및 관련서류 은닉 예상지인 이들의 주거지가 압수수색되고, 나아가 구조조정을 담당한 기획예산위, 노동정책 주무부서인 노동부에 대해서도 압수수색할 가능성 있음.
-자료은닉 또는 관련부서라는 이유로 대검의 경우 공안부 내 인접 과도 압수수색할 가능성 있음. 압수수색 과정에서 특별검사가 원하는 자료가 아닌 여타 자료들이 포함되면 예기치 못하는 사태가 초래될 가능성 농후
-압수수색 해당 부서는 자체 보관 중인 서류 사전 점검하고, 관련부처에도 점검토록 사실상 고지. 특검제 입법 과정에서 또는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 시 파업유도 발언과 관련된 사항만 제한 수사토록 반드시 명기하여 그와 관련이 없는 자료는 압수치 못하도록 해야 하고, 본건과 무관한 자료를 고의 또는 과실로 언론 등에 유출 시 특별검사의 직무정지 또는 교체할 수 있어야 함.
○자금흐름 추적도 병행할 듯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의 판공비 사용내역, 사용처를 조사하고, 진형구 전 공안부장과 자주 만난 음식점, 술집 등을 탐문하여 종업원 상대로 파업유도 발언을 보강할 자료를 수집하고, 이들 간의 금품수수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계좌추적이 예상됨.
-계좌추적과 관련해서는 추적작업에 능한 상당수의 직원을 요청할 것으로 보이는데 검찰의 비협조로 수사에 장애가 많았다는 비난을 듣지 않도록 협조하는 것이 좋을 듯하나 이 문제 역시 특검제 법안 성안 시 지원범위 등을 결정할 때 고려되어야 할 사항임.
○당사자 및 참고인 조사
-조폐공사 노조 관계자, 기자들 조사는 별다른 문제가 없고, 당사자인 진형구 전 공안부장과 강희복 조폐공사 사장은 협의 차원의 대화는 시인하나 파업을 유도한 것은 부인할 것으로 예상됨.
-검찰 측 참고인인 이준보 전 공안2과장, 정윤기 감찰연구관, 대전지검 김진오 전 공안부장 역시 파업유도와 관련된 사실은 없는 것으로 진술이 예상됨. 수사기관에 오래 종사해 온 검사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관련사실을 추궁해 내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나 특히 당사자인 진형구 전 공안부장의 경우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대전 이종기 변호사처럼 본인의 실수가 검찰의 획기적 개선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며 얼토당토않은 의외의 진술이나 폭탄선언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
-또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은 불구속을 전제로, 이준보 전 공안2과장은 불기소를 전제로 파업유도 발언을 사실로 진술하게끔 협상하려 들 것임. 파업유도 발언에 대해서는 진형구 전 공안부장이 사실인 것처럼 진술해도 무방하나 여타 폭탄 발언이 나오지 않도록 계속 접촉할 필요 있음.
-김태정 전 검찰총장에 대해서는 보고를 받거나 그에 대해 지시한 사실이 있는지 조사할 것으로 예상됨.
○기타사항
-한국전기통신공사 상대로 통화내역을 조회할 것으로 예상되나 시외전화는 6개월, 시내전화는 3개월이면 통화내역을 없애고 있어 자료입수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임. 검찰 내 내부 고발자 발생 가능성 있음.
○결론은 구속기소로 갈 듯
-이미 기자들에게 한 진형구 전 공안부장의 발언이 전 국민에게 알려졌고, 조폐공사의 파업 경위가 이 발언과 유사하다면 구속기소는 피할 수 없을 것임. 진형구 공안부장과 강희복 사장은 이렇게 처리되나 발언 가운데 포함된 이준보 전 공안2과장의 처리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음.
-법원에서 기소한 사건이 무죄로 선고되면 미국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특검제의 폐해로 지적되어 특검제 폐지 위한 유리한 여건이 조성될 것임. 이 경우 무리하게 기소한 특별검사에 대해 통상 검사가 무죄를 선고받은 것과 달리 취급하여 특별검사가 받은 보수, 수당 등은 반납하도록 법안제정 시 명시하여야 할 것임. 유죄판결이 선고되면 특검제를 계속하자는 야당의 정치공세가 계속되어 특검제를 폐지하기는 어려울 것임.
-특별검사가 수사결과 발표 시 검찰직원 차출 불응 등을 트집 삼아 비협조 내지 수사방해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지 못하였다고 할 가능성이 많아 협조 범위 한계를 명확히 할 것임.〉
문건은 증거인멸 등 특검 조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란 인상을 주기 충분한 내용으로 이뤄졌다. 이 문건 내용과 정부 차원의 조직적 개입은 없었다는 조사 결과와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훗날 진 전 부장과 강 전 사장은 파업유도와 관련된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혐의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 사건에 아무도 죄가 없다는 판결이 나온 이유와 범죄정보기획관실 문건 내용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동아그룹 예의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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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신동아그룹 부회장에 관한 정보가 담긴 보고서. |
〈▲지난 5. 10 서울지검에 신동아그룹 부회장이었던 박○○으로부터 강간을 당했다는 내용의 고소장이 접수돼 수사 중인데 ▲고소인인 여비서 김○○(익명 처리·24세) 98. 9. 11부터 99. 4 사이에 6회에 걸쳐 강간을 당하였고 그 과정에서 구타당하거나 해고 위협을 받았다고 함 ▲이에 대해 박○○은 두 사람 사이에 성관계가 있었던 것은 시인하면서도 화간(和姦)이고, 고소인을 구타하거나 해고 위협을 가한 바 없다고 주장한다 함.〉
보고서는 “박○○은 지난 6. 29 이신범 의원(당시 한나라당-기자 주)이 국회 개회식 때 신상 발언을 하면서 그림 의혹 사건과 관련하여 ‘목포 출신으로, 국민회의 실세의 소개로 신동아그룹에 영입된 박모씨가 정관계 로비 활동을 하면서 누구를 만났는지 수사해야 한다’고 지목했던 그 인물임”이라고 덧붙였다. 박○○씨는, 1999년 옷 로비 사건을 내사하던 이른바 사직동팀의 보고서를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 측으로부터 구해 이를 공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보고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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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범죄정보기획단실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보고서도 작성해 직보했다. |
〈▲노무현 국민회의 경남도지부장은 지난 5. 13 도지부 후원회장으로 박창식 창원상의 의장을 위촉하고 6·11 후원의 밤 행사를 개최하는 등 후원회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노무현 지부장의 경우 내년 총선 때 당선을 버리고 부산으로 갈 가능성이 많고, 도지부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전세보증금 1억원이 없어 3000만원만 보증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월세로 입주하여 자금력 부족이 드러났기 때문에 경남도에서 노 지부장을 적극 후원하려는 사람이 없고 ▲후원회원으로 가입하였더라도 후원회장인 박창식 창원상의 의장은 오랫동안 한나라당 황낙주 의원(창원乙)의 후원회장이었는데 정권이 바뀐 후 지나치게 변신한 데 대해 주위의 비난이 많다고 하고 다른 후원회원도 지역정서상 후원회 활동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어 후원회가 활성화되기 어렵다고 함. ▲실제로 6·11 치러진 후원의 밤 행사장에는 3000명의 초청객 중 500명만 참석하여 썰렁한 분위기였다 함.〉
‘6·11 치러진 후원의 밤 행사장에는 3000명의 초청객 중 500명만 참석하여 썰렁한 분위기였다 함’이라는 내용으로 봤을 때, 이 문건은 6월 11일 밤에 작성돼 당일, 혹은 다음날 DJ에게 직보됐을 가능성이 크다. 경남도지부장이었던 노 전 대통령이 후원회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의 문건을 읽은 DJ가 어떤 조처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당시 후원회 풍경을 다룬 기사들을 보면 보고서 내용과는 달리 낙관적이다.
《경향신문》(1999년 6월 12일 자) 기사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국민회의 지도부는 이날 경남 창원에서 열린 도지부(지부장 노무현 의원) 후원회에 대거 참석했다. 김영배 총재 권한대행을 비롯해 이만섭 상임고문, 서석재 부총재, 장영철 정책위의장, 한화갑 총재특보단장, 김운환, 설훈, 한영애, 김태랑 의원 등 10여 명의 당 지도부가 내려갔다. 이날 후원회에는 700여 명의 지역 주민들이 참석, 목표 금액인 3억원을 무난히 달성했다고 주최 측은 밝혔다. 후원회장을 맡은 박창식 창원상공회의소 회장을 포함해 추한식 마산상의 의장, 박홍진 거제상의 회장 등 지역 상공인들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 지부장은 “지역감정 해소라는 정치적 접근보다는 주민들의 애로를 당과 정부에 전달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겠다”며 국민회의에 대한 지원을 호소했다.〉
같은 날 《중앙일보》의 후원회 관련 기사 중 일부다.
〈11일 김영배 총재권한대행 등 국민회의 지도부는 경남도지부(지부장 노무현 의원) 후원회 참석차 대거 PK(부산·경남) 지역을 방문했다. 이날 후원회는 대구시지부(98년 11월), 경북도지부(4월), 부산시지부(5월) 후원회 창립에 이은 국민회의 영남 지역 후원회의 완결편인 셈이다. 창원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는 후원회장인 박창식 창원상공회의소 소장 등 이 지역 상공인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후원금도 5억원 이상이 걷혀 당초 목표를 초과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후원회 기사가 나간 직후 노 전 대통령은 언론에 의해 차세대 리더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한겨레21》(1999년 6월 23일 자)이 선정한 ‘차세대 지도자 선호도’에서 노 전 대통령은 1위를 차지했다. 6월 29일에는 정치주식시장 ‘포스닥’이 개장했는데, 노 전 대통령은 3위(주당 2만9040원)에 오르기도 했다.
VIP 입맛에 맞는 내용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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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총 방북 관련 보고서는 정부 성향에 맞춰 작성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
문건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민주노총 축구단의 방북 활동 중 김일성 동상에 헌화하고 찬양하는 발언은 국민정서상 용인되기 어려운 행동으로 실정법 위반 행위가 있었는지 조사하되 처벌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여론임.
남북노동자축구대회 참석차 방북한 민노총 대표단이 김일성 동상에 헌화하고 김일성 부자를 찬양하는 등 입북 목적을 벗어난 행동을 한 것으로 보도되었는데(각종 집회에서 ‘김정일 장군님이 통일로 이끌어주시는데 감사’ ‘김일성 주석님이 노동자들을 이만큼 키워왔고… 가슴 뿌듯함을 느끼는 자리’라고 찬양)
일부에서는 북한 노동자들이 남한을 방문해 국립묘지 참배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북측에서의 의전 관례상 어쩔 수 없는 것이면 문제 삼을 필요 없다고 하나 정치권 일각이나 보수층은 경솔한 행동으로 국민정서상 용납되기 어렵다고 하면서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도록 검토한 후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임. 이에 대해 검찰은 정부가 승인한 방북 목적에 어긋나고 북한의 강요가 아닌 자발적 헌화라면 명백한 국가보안법 위반이므로 이들을 조사한 후 탄력적으로 처리할 예정임.〉
보고서 뒤에는 대학교수, 무역업 종사자 등 6명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첨부했는데 ‘조사하되 처벌은 신중해야’와 ‘굳이 문제 삼을 것까지는 없다’는 의견뿐이었다. 당시 민노총 축구단 대표가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찬양하는 듯한 발언, 행동을 한 것에 대한 일반적 여론은 ‘김대중 정부식 햇볕의 필연적 귀결이냐, 총체적 검증이 시급하다’였다. 당시 검찰은 민주노총 축구단 일부의 이적성 여부를 정밀히 조사한 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흐지부지됐다.
재벌개혁에 대한 편협한 시각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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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에 관한 보고서에는 재벌에 관한 다소 편향적인 시각이 담겨 있다. |
〈○대우는 그룹 분해까지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어… 대우는 증권과 건설에 대한 분리 매각 방침이 정해진 데 이어 자동차 경영권이 GM으로 넘어가 그룹이 공중분해 되는 경우까지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다 함.〉
대우그룹은 그해(1999년) 사실상 공중분해 됐다. 대우그룹의 해체는 당시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던 재벌개혁의 칼날에 의해 해체됐다는 게 정설이다. 김대중 정부 초반인 1998년 11월,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대우에 관한 비관적인 보고서를 올렸다고 한다. 그해 10월엔 일본계 노무라증권이 펴낸 〈대우그룹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제목의 보고서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와의 대담집인 《김우중과의 대화》(2014년)에서 “경제관료들이 나를 제거하려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다고 믿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직 대우그룹 임직원 모임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회장 장병주)가 2010년 펴낸 〈대우 ‘세계경영’ 내용과 시사점〉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대우의) 세계경영은 당시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붕괴에 따라 출현한 ‘신흥시장’에 있어서 한국 기업이 선택할 수 있었던 가장 효과적인 ‘진입 및 선점 전략’ 모델이었다”고 자평했다. 이 보고서는 “세계경영은 한국 기업의 세계화 방향을 뚜렷이 제시한 경영전략이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999년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직전 대우그룹은 396개의 해외 현지법인을 두고 있었다. 해외 현지고용 인원은 15만명에 달했을 정도로, 경영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상황이 이랬음에도 범죄정보기획관실이 “대우는 그룹 분해까지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어”란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청와대에 입맛에 맞는 보고를 한 것이란 지적이다.
재벌개혁과 관련해 범죄정보기획관실은 언론의 동향도 전했다. 보고서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재벌이 담당해 온 경제성장, 고용, 수출 등의 순기능을 새로운 경제주체로 예시된 벤처기업과 중기에서 대신하기는 부족하고 개혁은 합법적 제도적 절차를 거쳐 다음 정권까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재벌비호론’이 자리 잡고 있음”이라고 적시했다. 이는 양대 신문이 재벌의 편만 든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보고서는 “전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재벌개혁은 다가오는 21C를 위한 시대적 소명이라고 할 것이다. 과거 어느 정권도 이루지 못했던 재벌개혁을 이번에는 어떤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반드시 성취함으로써 경제정의를 이룩해야 함”이라고 적었다.
재벌에 문제가 있고 개혁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전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재벌개혁을 반드시 성취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을뿐더러 편협한 주장이다. 재벌개혁을 전 국민이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에게 재벌은 애증이 교차하는 대상이다. 국민 경제 차원에서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말처럼 “재벌은 개혁의 대상이지만 우리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현재 재벌 총수들은 창업 세대가 아니지만,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의 외형을 키우고 내실을 다진 게 사실이다. 또 취업준비생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직장이며, 한국 경제를 떠받드는 수출의 주역이다.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총망라
이 밖에도 《월간조선》이 입수한 범죄정보기획관실 보고서에는 ▲검사들 특검제법 내용 좋지만, 파장 우려해 ▲국민회의, 《한겨레》 상대 민사소송 흐지부지 ▲최기선 시장 불구속, 형평성 논란 ▲화성 씨랜드 참사는 인재 그 자체 등 ▲현직검사, KBS 상대 손해배상소송 승소 ▲YS, 페인트 달걀에 명예훼손 피소까지 ▲사학재단 고질적 비리 근절되어야 ▲용주골에 36억원짜리 윤락용 건물 등장 등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망라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