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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그 이후…

문재인 정부 ‘통일부’ 인맥 大해부

대북 교류·지원 분야에 몸담았던 인물 상당수가 고위직 올라

글 : 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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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新) 햇볕정책’ 라인 부상” (전직 통일부 관계자)
⊙ 교류협력국, 인도협력국,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 주목해야
⊙ 이른바 ‘회담 3인방’은 누구인가?
⊙ “적어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엔 원칙이 있었다”
  최근 남북고위급회담 등 일련의 남북 접촉을 주도하는 문재인 정부 통일부(장관 조명균)의 인적 구조를 확인한 결과, 고위직 상당수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대북 교류·지원 관련 직위에 몸담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통일부 인사 중 일부는 좌천되거나 한직으로 밀려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분석은 통일부 자료와 ‘조선닷컴’ 인물 데이터베이스 등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현재 통일부는 크게 ‘기획조정실’ ‘통일정책실’ ‘정세분석국’ ‘교류협력국’ ‘인도협력국’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 등 2실·3국·1단으로 구성돼 있다. 그 밖에 ‘남북회담본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구 하나원)’ 등의 부속기관이 있다. 문재인 정부 통일부 조직 중 주목해야 할 곳은 교류협력국과 인도협력국, 그리고 개성공단을 관장하는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이다. ‘남북회담본부’와 더불어 대북 교류·협력 정책을 실무적으로 주도하는 부서이기 때문이다.
 
 
  ‘신(新) 햇볕정책’ 라인
 
  전직 통일부 고위 관계자 A씨는 “현재 통일부 내에는 신(新) 햇볕정책 라인이 형성돼 있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고 주장했다. 먼저 조명균 장관을 살펴보도록 하자. 성균관대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행시 23회로 관계(官界)에 입문한 조 장관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 통일부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 김대중 정부 때에는 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을 지냈다. 조 장관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10·4 남북공동선언을 성사시킨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남북 문제와 대북 정책에 정통한 정책통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 장관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남북 철도 연결 사업 등 남북 경협 업무를 실무적으로 담당했었다. 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으로 제기된 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당시 새누리당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고의로 폐기·은닉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과 조명균 장관을 검찰에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법원은 2015년 2월 1심과 그해 11월 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했고, 현재 대법원 판단을 앞두고 있다.
 
  통일부 안팎의 평가에 의하면 천해성 차관은 통일부 내 ‘실세’로 불린다고 한다. 서울대 공법학과를 졸업하고 행시 30회인 천 차관은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인수위원회에 파견된 적이 있다. 이후 노(盧)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실 정책담당관, 청와대 안보정책실 행정관, 남북회담본부 운영부장 및 기획부장을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 때에는 통일연구원 교수부장, 통일부 대변인, 박근혜 정부에선 남북회담본부 본부장, 통일정책실장을 역임했다. 천해성 차관은 남북대화 관련 업무뿐 아니라 정책 부서에도 근무해 통일부 업무를 훤히 꿰뚫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천 차관은 지난 1월 17일 열린 남북고위급회담 수석대표를 맡아 전종수 북한 조평통 부위원장과 마주 앉기도 했다.
 
 
  문(文) 정부서 주목해야 할 통일부 내 3개 부서
 
  현재 통일부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부서 중 하나는 교류협력국이다. 이 부서는 교류협력기획과와 남북경협과, 사회문화교류과, 개발지원협력과로 나뉜다. 이들 네 개 과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정책의 수립·추진 ▲남북한 간 교역·수송 및 경제협력에 관한 정책의 수립·추진 ▲사회문화 분야 교류협력 관련 현안에 대한 대책의 수립·시행 ▲개발지원협력에 관한 정책의 수립 및 시행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교류협력국장은 이주태씨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행시 35회 출신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통일정책실 정책총괄과 사무관, 통일정책실 정책총괄과 서기관, 통일부 교류협력국 총괄과 서기관, 통일부 개성공단사업지원단 개발기획팀 팀장 서기관 등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 때 정책협력과와 정책기획과, 류우익 장관 비서관으로 근무하다 박근혜 정부 들어 다시 교류협력국으로 복귀했다. 이후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팀장과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이주태 국장은 지난 1월 23일부터 2박 3일간 북한의 마식령스키장과 금강산 지구 방문을 위한 남측 선발대 12명 중 한 명이었다. 향후 교류협력국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 교류·협력 사업을 총괄할 부서 중 하나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을 비롯해 이산가족 상봉 행사 등을 주관하는 인도협력국장은 행시 37회 출신의 김병대 국장이다. 이 부서는 민간단체를 통해 북한에 의약품, 이유식, 밀가루 보내기 등을 해 왔던 곳이라고 한다. 향후 교류협력국과 함께 대북 지원 사업을 펼칠 곳으로 주목된다. 김 국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행정관, 통일부 정책기획팀장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에서 경협지원과장, 남북경협과장, 남북회담본부 3과장 등 대북 교류 지원 부서를 두루 거쳤다. 박근혜 정부 때에도 통일준비위원회 사무국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장은 이강우씨다. 이강우 단장은 부산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한 행시 34회 출신이다. 이 단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아닌 박근혜 정부 때 주로 교류 협력 지원 부서에서 근무했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장으로 줄곧 일한 것. 이 부서는 과거 개성공단 관련 업무를 관장했는데, 만약 문재인 정부에서 개성공단이 재개되면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서 경질된 서호 실장의 ‘컴백’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6월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평통 간부위원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남북회담본부 회담운영부장과 통일부 대변인의 이력도 눈여겨볼 만하다. 김기혁 부장과 백태현 대변인이다. 행시 37회 출신으로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김기혁 부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경협지원과 서기관과 남북경제협력국 남북경협2팀장을 역임했다. 2006년 2월부터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의 실무 책임을 맡아 북측과 다수의 공식·비공식 접촉을 통해 시험운행의 밑그림을 그려 나간 인물이다. 한 인터넷 매체 보도에 따르면, 2007년 5월 남북 철도 시범 운행 행사에서 “작년에 행사 하루 전에 시험 운행이 무산되자 마치 벼락을 맞은 것같이 멍하고 북한의 협상 파트너들 얼굴도 보기 싫었지만 곧 더욱 철저히 준비하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김기혁 부장이 속해 있는 남북회담본부는 남북대화가 재개될 때마다 주목을 받는 자리다. 남북회담 추진 전략의 수립과 남북회담 기획 및 대북교섭 전략의 수립·조정을 주로 하고, 모든 남북대화의 실무를 맡고 있다.
 
  백태현 대변인은 서울대 공법학과를 졸업한 뒤 행시35회로 관계(官界)에 입문했다. 최근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남북대화가 성사되자 기자들에게 자주 브리핑을 하면서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 되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통일부 차관 비서관을 시작으로 교류협력과 총괄과 사무관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핵심 요직인 통일정책실 정책총괄과 서기관, 정책홍보본부 정책총괄팀장을 역임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교류협력국장에 오른 백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중용된 케이스다.
 
  통일부의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부서는 기획조정실이다. 기획조정실장은 서호씨다. 서호 실장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이세기 전 통일원 장관 비서관(6급 특채)으로 통일부에 들어갔다. 서 실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정책실 국제협력담당관, 혁신인사기획팀장, 재정기획팀장으로 근무했다. 노무현 정부의 이종석 통일부 장관 때 혁신인사기획팀을 맡아 당시 통일부 인사에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 교류·협력 관련 부서에서 근무, 2009년 1월 남북회담본부 회담지원과장을 시작으로 남북회담본부 회담기획부장, 교류협력국장,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 등을 역임했다.
 
  서 실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3년 7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린 남북 실무회담 도중 경질됐다. 당시 수석대표가 서호 실장이었다. 청와대는 통일부에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북한의 약속을 받아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개성공단을 재개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혀 경질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경질 배후엔 박근혜 정부 국가안보실 소속 군 출신들이 있다는 얘기도 돌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한직을 맴돌다 문재인 정부에서 기획조정실장에 기용됐다.
 
 
  “참여정부가 햇볕정책 계승”
 
  기획조정실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부서는 정책기획관실로, 박광호 국장이 맡고 있다. 정책기획관실은 대(對)국회 업무를 비롯해 예산·대외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박 국장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5급 특채로 들어와 줄곧 통일부 대북 교류·협력 부서에서 근무해 왔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즈음해 통일부 남북회담사무국 기획과장을 시작으로 교류2과장, 문화교류과장, 사회문화교류1팀장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사회문화지원과장과 사회문화교류과장을 역임하다 교류협력기획과장에 올랐다. 거의 모든 교류·협력·지원 부서를 다 거친 셈이다.
 
  통일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국장은 ‘햇볕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한다. 실제로 2003년 11월 민주화합추진협의회(민화협) 주관으로 열린 세미나에서 박광호 당시 통일부 교류2과장은 그해 초 남북관계뿐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냉각기로 몰아넣었던 대북송금 특검을 언급했다. 박 국장은 “특검법을 떠나서 참여정부가 들어선 후 실제로 북에 대해서 어떤 정책을 취해 왔느냐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아니겠냐”고 반문한다. 이어 “제가 보기에는 햇볕정책 계승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며 참여정부의 햇볕정책 계승 의지가 확고함을 내비쳤다.
 
  통일정책실장은 김남중씨다. 건국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행시 33회인 김 실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남북회담사무국, 사회문화교류국(현 교류협력국), 인도협력단(현 인도협력국)을 두루 거쳤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교류협력기획과장으로 승진했지만, 박근혜 정부 때에는 통일교육원 교수부장,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육훈련 과정을 밟는 등 상대적으로 한직을 맴돌았다. 2015년 2월 교류협력국장으로 승진한 뒤 2016년 7월 통일정책실장을 지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도 현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 A씨는 “김남중 실장은 조명균 장관과 비슷한 교류·협력 라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6월 ‘연합뉴스’와 통일부가 공동주최한 ‘한반도 통일 심포지엄’에서 김 실장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남북합의가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며 ‘통일국민협약’ 체결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김 실장은 “정부가 그간 대북 정책을 독점하고,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통일국민협약’은 그런 부분에 반성의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김남중 실장은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 추진 방향의 모토가 ‘평화로운 한반도’라고 밝히며 ▲북핵 문제 해결과 평화체제 구축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실행을 큰 틀로 제시했다.
 
  통일정책실 산하 통일정책협력관실의 박형일 국장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행시 37회 출신이다. 박형일 국장도 대북 교류·협력 관련 부서에 상당 기간 몸담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개성공단사업지원단 지원총괄과 서기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행정관, 통일부 개성공단사업지원단 개발기획팀장을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 때에는 통일부 개성공단사업지원단 운영지원팀장, 통일부 장관 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정책기획과장, 청와대 통일비서관실 행정관, 통일정책협력관을 지내다 현 정부에서 유임됐다. A씨에 따르면, 통일정책협력관실은 대통령에게 하는 보고서를 주로 작성한다고 한다. 보고서 작성 실무는 통일정책협력관실 산하의 정책총괄과(과장 조중훈)에서 담당한다고 한다.
 
 
  “납북자 등의 용어 고집하는 건 북한에 범죄행위 시인하라고 하는 것과 같아”
 
  통일부 산하의 공공기관인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고경빈씨도 대북 교류·협력·지원 분야에 오래 몸담아 왔다. 행시 23회로 서울대 사회교육과를 졸업했다. 통일부 인도지원기획과 과장,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북한이탈주민정착사무소(구 하나원) 소장, 사회문화교류국장,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 정책홍보본부장을 역임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행시 동기이기도 한 고씨는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 때 정책홍보본부장 자격으로 정상회담 준비기획단의 간사 역할을 맡았다. 고경빈 이사장이 과거 몸담고 있던 평화재단(이사장 법륜)은 대표적인 남북교류협력을 추진하는 민간단체다. 지난해 4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시민평화포럼이 주관한 세미나에서 발표된 ‘대북정책 전환을 위해 남북관계 법률 다시보기’란 발제문에 고 이사장이 썼던 글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북한인권법 제정과 시행에서의 논란
 
  - 제정 : 실효성 문제
 
  - 시행 : 대북인권운동과 대북지원을 동일 법률에 규정하여 법 체계나 법 시행 양 측면에서 어려움 예상
 
  → 여야합의로 제정된 북한인권법이 임원추천 문제로 어려움 봉착
 
  → 북민협은 대북지원을 인권법에서 분리하여 별도 입법 요구
 
  ○ 접적지역에서의 대북전단 살포 규제근거 미비
 
  - 예민한 접경지역과 남북회담장 주변에서의 불필요한 자극행위는 규제가 필요하나 법 근거 미비로 행정과 경찰력을 소진하는 상황.〉
 
  요약하면 북한인권법 제정에 실효성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북한정권을 규탄하기 위해 날리는 대북전단에 대해서도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고경빈 이사장은 인터넷 ‘통일뉴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납북자 문제에 대해 이런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대북협상에서 납북자 등의 용어를 고집하는 것은 북한에게 먼저 범죄행위를 시인하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 것입니다. 이 때문에 협상에서는 납북자 용어를 ‘전쟁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이라는 다소 긴 용어로 남북이 합의하여 대신하고 있습니다.〉
 
  고경빈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14일 인터넷 ‘프레시안’에 쓴 칼럼에서 “촛불은 국민주권이 바로 선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라는 요구였다”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탄핵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지금은 대통령만 바뀌었을 뿐 촛불이 요구하는 과제는 상당 부분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촛불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나라만의 제대로 된 나라 만들기에 그치지 않고 극우 보수적 보호주의 물결 속에 인류문명사의 역주행을 막고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협력의 보편정신을 되살리는 동방의 등불이 되는 데 있다고 본다.〉
 
 
  소위 ‘회담 3인방’은 누구인가?
 
  이덕행 청와대 통일비서관도 눈여겨봐야 할 인물이다. 행시 32회 출신으로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이 비서관은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정책실 국제협력담당관, 정동영 통일부 장관 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2003년 6월 3일자 《서울신문》은 이덕행 비서관에 대해 ‘금강산 사업 등 남북 경제협력 현안을 매끄럽게 실무조정, 지원해 온 것으로 평가 받는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이 비서관이 통일부 교류협력국 과장(2002년 8월~2004년 1월)으로 근무할 때 작성한 〈남북교류협력사업의 현황과 과제〉란 보고서를 보면, 남북경협 등 남북 교류협력에 관한 현안이 자세히 실려 있다. 보고서는 크게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건설의 성과를 담고 있다. 이 비서관은 보고서에 다음과 같이 썼다.
 
  〈○ 남북한 협력사업의 안정적 추진을 위해 남북경협 제도화 조속 추진
 
  - ‘투자보장’ ‘이중과세방지’ ‘상사분쟁해결절차’ ‘청산결제’ 등 4대 합의서 조속 서명·발효
 
  ○ 남북간 통행·통신합의서 체결 등 경협 여건 조성을 위한 일반 법제도 마련
 
  ○ 비무장지대·금강산 등지의 자연환경 보호와 경제협력사업 추진이 조화롭게 이루어질 수 있는 방안 강구.〉
 
  A씨는 “조명균, 조용남, 고경빈은 과거 통일부 내에서 소위 ‘회담 3인방’으로 불렸다”고 주장했다. 이 중 조용남씨도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기획조정본부장을 지냈었다. 이들 세 명은 모두 행시 23회 동기인 데다가, 노무현 정부 시절 각종 남북회담을 주도해 그렇게 불렸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언론 보도도 있다. 2010년 3월 22일자 《한경닷컴》은 “이전 정부 시절 요직을 거쳤던 조명균 전 청와대 비서관, 고경빈 전 정책홍보본부장, 조용남 전 기조실장(이상 행시 23회) 등이 정권 교체 후 1년여 사이에 줄줄이 물러난 마당에 또 다시 대규모 물갈이를 할 경우 ‘일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가 나올 상황”이라고 전했다. 참여정부 시절 통일부 내에서 이 세 사람의 비중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조명균씨와 고경빈씨는 현 정부에서 중용됐으나 조씨는 현재 어떤 직함을 맡고 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국장직에서 사실상 좌천된 지승우 국장
 
  이처럼 이른바 ‘신햇볕정책’ 라인이 부상한 반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근무한 통일부 간부 상당수가 한직으로 밀려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예가 지승우씨다. 이명박 정부에서 통일교육원 교육운영과장, 박근혜 정부에서 인도지원과장이었던 지승우 전 과장은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산하 행정관으로 대북 전략 수립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현 정부 출범 후 통일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구 하나원) 교육훈련팀장으로 사실상 좌천됐다.
 
  행시 35회로 고려대 행정학과를 나온 이상민 전 통일부 남북협력지구발전단장도 비슷한 케이스다. 이상민 전 단장은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에서 근무했고, 노무현 정부 때에는 개성공단지원사업지원단 운영지원과장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정책총괄과장, 박근혜 정부에선 교류협력과장,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장직을 맡았다. 개성공단을 총괄 관리하는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장 재직 시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개성공단이 폐쇄될 때, 이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평창동계올림픽 정부합동지원단에서 근무 중이다. 통일부 안팎에선 이 전 단장이 좌천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박근혜 정부 때 교류협력국장, 정책기획관을 지내다가 평창동계올림픽 정부합동지원단에서 근무하는 최영준(행시 35회)씨도 이상민 전 과장과 유사한 경우다. 최영준 전 정책기획관은 교류협력국장 재직 시 북한의 잇따른 무력도발로 인해 개성공단이 폐쇄되자 그에 따른 출입 차단 조치 등에 간여했다고 한다. 대북 국제제재에도 일부 간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종석 국장과 홍진석 과장의 경우
 
  강종석 전 통일부 교류협력국장도 비슷한 케이스다. 행시 37회로 서울대 공법학과를 졸업한 강종석 전 국장은 이명박 정부 때 개성공단사업지원단 법제지원팀장, 통일정책실 정착지원과장을 지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외교·국방·통일 분과) 실무위원을 시작으로 청와대 통일비서관실 선임행정관, 교류협력국장을 역임했다. 2009년 개성공단 근로자 유성진씨가 북한에 의해 억류됐을 때 그를 송환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통일부 내에서도 대북 원칙론자 중 한 명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남북출입사무소장으로 발령을 받았다고 한다. 이 직책 역시 통일부 내에서 한직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홍진석(행시 41회) 전 통일부 정책총괄과장은 이명박 정부 때 남북회담본부 회담3과장, 박근혜 정부에서 관리총괄과장을 지냈다. 홍진석 전 과장은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인 ‘비핵개방 3000’ ‘원칙 있는 대북정책’ 등 정부의 수많은 정책을 기안한 주역이라고 한다. 그 역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남북출입사무소 총괄과장이란 비교적 한직에 보임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지낸 김기웅씨도 정권이 바뀌면서 통일부로 복귀하지 못했다. 2009년 개성공단사업지원단 지원총괄팀장, 기획총괄팀장으로 있을 때 유성진씨가 북한에 의해 억류됐고, 이때 강종석 당시 교류협력국장과 함께 억류된 유씨를 송환하는 데 큰 역할을 했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통일정책실장을 역임하기도 했었다. 현재는 통일부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현재의 통일부 고위 간부 구성에 우려를 표하며 “통일부에 내재된 전략 없는 ‘퍼주기 본능’이 조건 반사적으로 튀어나올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현 정부가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페달을 밟고 있는데, 이를 통일부가 더 앞장서 수행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통일부는 목표를 위해 수단을 다양하게 해야 한다”며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강화하고 ▲교류협력을 북한을 다루는 하나의 수단으로 삼아 궁극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현 정부가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을 초청할 때 취했던 방식은 본래의 방향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게 A씨의 주장이었다. 물론 A씨의 주장대로 앞서 언급한 문재인 정부 통일부 실무자들이 모두 햇볕정책 등 대북 포용정책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고 단정할 순 없다. 다만 대북 교류·협력 분야에서 일을 해 온 점,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그것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추진하는 남북대화나 통일정책이 자칫 ‘대북 저자세’나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시혜(施惠)’로 흐를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또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 교류·협력 지원과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고도 했다. 적어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은 원칙이 서 있었다는 주장이다.
 
 
  통일부 공무원들이 가진 콤플렉스?
 
국토통일원 개원을 알리는 당시의 신문 기사. 사진=《동아일보》 1969년 3월 1일자
  그는 “통일부의 전신인 국토통일원은 원래 남북대화 기능이 없었다”고도 했다. 국토통일원 직제(1977년 10월 5일 제정) 1조에 따르면, 국토통일원은 ‘국토통일에 관한 문제를 종합적으로 조사·연구하고 국토통일의 방안과 국토통일 후의 제반정책 및 국토통일에 관한 교육·홍보·선전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설립됐다고 명시돼 있다. 지금의 통일부처럼 남북대화를 하기 위해 구성된 조직이 아닌, 북한에 대한 심층 연구 및 통일 연구·교육 등이 주목적이었다. 당시 국토통일원 산하 부서를 보면 ▲조사연구실 ▲교육홍보국 ▲자료관리국 ▲기획관리실 ▲비상계획관 ▲정책기획실이 있었다. 부서만 보더라도 남북대화가 국토통일원의 임무는 아니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정보기관(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이 도맡아 하던 남북대화 업무를 점차 통일부가 관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통일부의 주된 업무가 남북대화에만 무게중심을 두는 구조로 굳어 갔다. 통일부를 오래 출입해 온 한 일간지 기자는 이런 요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통일부 공무원들은 일종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외교부와 국가정보원 중간쯤의 위치에 있어 자신들의 위치가 애매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목말라하는 경향이 있다. 통일부 입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바로 남북대화이다. 통일부의 이러한 경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뿐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줄곧 이어져 왔다.”
 
  국토통일원의 경우 통일 이후의 중장기 대책 수립만 다뤘기에 그다지 빛을 볼 수 없는 부서였던 게 사실이다. 그런 전례 때문인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통일부가 무리한 남북대화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정부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정책이 좌지우지될 수 있는 것도 통일부의 맹점 중 하나다. 박근혜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로 교체되면서 전(前) 정부 통일부 관료들이 밀려난 것도 그런 한계를 드러낸 사례이다.
 
 
  “통일부 기능에서 남북대화 업무는 빼야”
 
2008년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는 한때 통일부 폐지를 검토했었다. 사진=조선DB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한때 통일부 폐지를 검토한 적이 있었다. 이와 관련해 과거 국토통일원과 안기부에 근무하며 남북대화를 주도해 온 이동복 전 국회의원은 당시 한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칼럼에서 ‘통일부가 남북대화에서 손을 떼야 한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필자는 거두절미하고 이명박 당선인에게 그 가운데서 ‘통일부’ 문제에 관해서는 특단의 결단을 내려 줄 것을 건의하고 싶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통일부’는 살려내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나는 ‘통일부’는 ‘남북대화’로부터 손을 떼고 ‘통일정책’만을 전담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1960년대처럼 ‘통일부’의 명칭을 ‘통일원’으로 바꿔서 그 위상을 한 단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권고한다.〉
 
  이동복 전 의원 주장에 따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상반된 정책 영역인 ‘통일정책’과 ‘남북대화’를 차별화하지 않고 ‘통일부’로 하여금 일괄하여 담당하게 함으로써 ‘통일정책’의 소실을 초래했다고 한다.
 
  이 전 의원은 “국가안보의 최후 불침번인 국가정보원을 ‘햇볕정책’의 하수기관으로 만들어 ‘남북대화’의 연락병 역할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만드는 엉뚱한 짓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같은 상황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통일정책’과 ‘남북대화’의 두 상반된 정책 영역을 분리하고 차별화해 관리할 필요가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독일의 예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자 동·서독 주민들이 베를린 장벽 위에 서 있다.
  실제적인 예로 독일을 들 수 있다. 독일이 동·서독으로 분단됐던 시절 서독은 ‘통일정책’을 전담하는 부서로 ‘전독부(全獨部)’를 설치, 동독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독일 통일’에 대한 장기적인 방안을 마련했다. 통일 이후에 필요한 법적·제도적 조치에 대한 연구와 홍보 및 교육 등을 전담시킨 것이다. 전독부의 명칭은 동독의 항의 때문에 ‘내독부(內獨部)’로 바뀌었지만 임무와 기능에는 변화가 없었다.
 
  내각책임제였던 서독은 수상실에 ‘특수임무 담당 무임소 국무상’이란 직책을 두었다. 정부 부처로부터 담당 분야 국장급 간부들을 차출 받았다. 그들로 구성된 ‘혼성 전담반’을 특수임무 담당 무임소 국무상 산하에 편성, 대(對)동독 협상을 전담케 했다. ‘혼성 협상 전담반’에는 내독부의 주무 정치국장이 참여했지만, 동독과의 협상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 있을 때마다 해당 부처로부터 실무자를 대표단에 참여시켜 협상을 벌이도록 했다.
 
  여기서 합의된 내용은 해당 부처로 이관해 동독의 해당 부처와 쌍무적으로 그 이행을 책임지도록 했다.
 
  대동독 부서를 수상실에 따로 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그 하나는 양독(兩獨) 협상이 ‘고도의 통치행위’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정부의 수반인 수상이 이를 직접 책임지고 장악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또 하나는 양독 협상의 현안들이 정부 전반에 걸친 사안들이고, 부처간 이해가 걸려 있기 때문에 이들의 입장을 조정·통제하기 위해서는 수상실의 ‘권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독일처럼 통일부가 갖고 있는 남북대화 기능을 이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통일부 고위 간부를 지낸 B씨는 “남북대화 기능을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가 맡는 방법이 있다”고 주장했다.
 
  2017년 12월 현재 평통에 속해 있는 자문위원(직능대표, 해외자문위원, 지역대표)의 수는 1만9710명에 달한다. 구성원은 주로 ‘지방자치법’에 따라 해당 지역주민이 선출한 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시·도·특별자치도 및 구·시·군의회의 의원인 인사, 이북5도 대표, 재외동포 대표 등이다. 관(官)이 아닌 이들 민간의 역량에 맡기면 남북대화의 명분이 설 수 있고, 좀 더 합리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 것이란 게 그의 주장이었다.
 
  B씨는 “예컨대 평통 내부에 ‘남북대화국’이라는 독립 기구를 만들어 민간이 참여하도록 하면 정부의 입김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정부 측 관계자는 참여하되 유관 부처와의 업무연락 정도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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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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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연    (2018-02-17)     수정   삭제 찬성 : 81   반대 : 117
남북통일을 평화롭게 이룰려면 문화통일이 먼저이고 그다음에는 경제통일 그다음에는 사회통일 마지막에는 정치통일인데....!!!! 문제는 애국우파랑 종북좌파들땜에....!!!
  박혜연    (2018-02-17)     수정   삭제 찬성 : 7   반대 : 148
하루빨리라도 문죄인이 원하는 신햇볕정책을 이루어 북한고위층들뿐만이 아니라 북한백성들도 잘살게해줘야된다!!!! 단 적화통일은 어떤이유에서라도 결코 아니된다!!!! 무조건 평화통일!!!! (보수입장에서는 자유통일, 멸공통일이겠지만)

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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