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論

그 많던 민주주의는 누가 다 망쳤을까?

  • 글 : 박용민 국립외교원 경력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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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위기… ‘민주주의’가 ‘주의(ism)’가 아니라 제도라는 점을 깨달아야
⊙ 후쿠자와 유키치가 ‘democracy’를 民主主義로 번역… 천황제하에서 ‘다소 위험한 외래의 사상’이라는 의미를 담은 ‘의도된 誤譯’
⊙ 민주정을 ‘민주주의’라고 부르면서, 제도와 장치보다 이념적 지향성을 강하게 담은 슬로건이 되어버려
⊙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라고 말할 때, 자유주의가 승객이라면 민주정은 탈것(vehicle)
⊙ 냉전 이후 非자유주의적 민주정 대두… 민주제가 아니라 자유주의와 공화주의가 쇠퇴한 것이 문제
⊙ “민주제는 스스로를 쉬이 낭비하고, 고갈시키고, 결국 살해한다. 자살하지 않은 민주적 체제는 지금껏 없었다”(존 애덤스)

朴容民
1966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英케임브리지대 국제관계 석사 / 駐르완다대사, 駐센다이총영사 역임 / 저서 《맛으로 본 일본》 《뉴욕 영화 가이드북》 《회복된 세계》(역서), 《공기의 연구》(역서)
2021년 1월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사건은 선진 민주국가의 민주주의마저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주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1. 민주주의가 많다니?
 
  과세는 세금 매김, 건폐율은 대지·건물 비율, 하청은 아래도급 또는 밑도급 등으로 풀어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런 단어는 우리말 속 일본어 잔재의 아주 일부입니다.
  - 연합뉴스 2020년 10월 9일 자 기사 중
 
  민주주의(民主主義)가 왜 망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려면 우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제목에서부터 시작해보자. 박완서의 오마주라는 설명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렇다. 민주주의는 많거나 적을 수 없으므로 틀린 표현이다. 그러나 영어의 ‘democracy’는 ‘democracies’라고 가산(可算·countable)명사로 쓸 수 있는 단어다. 서구어를 번역하다 보면 ‘democracy’는 대부분 ‘민주적 통치체제’ ‘민주주의 국가’ 등으로 풀어써야 한다는 사실이 이내 드러난다. democracy를 ‘민주주의’로 번역한 것은 일본인이었다. 일본인들의 번역에 관해서는 저널리스트 고종석이 설명한 바 있다. 좀 길지만 인용한다.
 
 
  일본인이 만든 번역어들
 
  〈인류문화사의 관점에서, 늘상 나를 황홀경으로 몰고 가는 한 시기가 있다.… 내게 감동을 주는 것은 일본 에도 중기 이래의 난가쿠(蘭學)와 메이지 시대 이후의 번역 열풍이다. 에도 시대의 난가쿠와 메이지 시대의 번역 열풍이야말로 한문 문명권과 그리스·로마 문명권을 융화시키며 동서 문화 교섭의 가장 빛나는 장면을 연출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난학의 요체는 번역이었다. 난학자들은 네덜란드어를 통해서 유럽의 개념들을 일본어로 옮기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고, 그것은 메이지 유신 뒤 유럽 문화의 수입이 본격화되면서 훨씬 더 커다란 규모의 번역사업으로 확장됐다.… 그들이 중국을 매개로 삼기를 원했다고 하더라도, 중국의 유럽 문화 흡수는 일본인들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들은 네덜란드어의 한 단어를 일본어로 번역하기 위해, 그 단어의 어원, 변천 과정, 당시의 쓰임새 등 전 역사를 조사한 뒤, 그에 상응한다고 판단된 한자들을 골라내 이를 조립해야 했다.… 그것은 극도의 열정과 재능이 필요한 일이었고, 통역사들과 난학자들은 그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이하 우리말 독음만 인용) 오늘날까지도 쓰이고 있는 형용사, 부사, 일요일, 청산가리, 산소, 수소, 화학, 중력, 구심력, 항성, 세포, 연설, 재판소 따위의 말들은 모두 에도의 난학자들과 나가사키의 통역사들이 네덜란드어를 번역해서 만들어낸 말이다.
 

  … 메이지 유신 이후… 네덜란드나 영국,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와 그 언어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가 따랐고, 그 바탕 위에서 새 번역어들은 더 정교해졌다. 그 번역어들 중에는 이성, 논리, 의식, 의지, 구체, 낙관, 비관, 교환, 분배, 독점, 저축, 정치, 정부, 선거, 경찰, 법정, 판결, 보증, 등기, 세기(世紀), 간첩, 주의(主義), 청원, 교통, 박사, 윤리, 상상, 문명, 예술, 고전, 강의, 의학, 위생, 봉건, 작용, 전형, 사회… 철학, 추상, 객체, 관념, 명제, 공채, 공산, 금융, 정당, 자본, 의회, 사관(士官), 국제, 전보, 원리, 원칙, 과학, 유기, 무기, 원소, 분자, 원자, 광선, 액체, 고체, 기체, 섬유, 온도, 신경, 미술, 건축, 자치, 대리, 표결, 부결, 귀납, 좌익, 우익, 중공업, 경공업, 대통령, 기선, 기차, 철도, 회사, 비평, 대칭, 호외(號外), 종교, 학위, 학기, 민족, 반동, 직접, 간접, 정보, 현실, 결산, 진화, 물질, 의무, 전선, 전통, 집단, 요소, 자료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 에도 시대의 난학자들이 만들어낸 번역어들과 특히 메이지 시대 이래 일본어로 번역된 유럽의 어휘들은 그 대부분이 한자를 매개로 해 한국어 어휘에 흡수되었고, 또 그 상당량은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으로 역수출되었다.… 만약에 우리말에서 일본어의 잔재를 뽑는다는 것이 일부 순수주의자들이 주장하듯 일본어에서 수입된 한자어까지 배척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외마디 소리 말고는 단 한 문장도 제대로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어휘의 태반은 한자어이고, 그 한자어의 태반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들이기 때문이다.〉(고정석 저 《감염된 언어》 중에서)
 
 
  ‘民主’는 원래 ‘民’의 ‘主’, 君主를 의미
 
후쿠자와 유키치
  많은 일본산 한자어의 연원이 그렇듯이, ‘민주(民主)’라는 단어 또한 《서경(書經)》 《좌전(左傳)》 등 중국의 고전(古典)이 바탕이다. 고대(古代)에 이 단어는 ‘민(民)의 주(主)’, 즉 군주(君主)를 의미했다. 이것이 중국에서 ‘민(民)이 주(主)’라는 맥락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때는 신해혁명(辛亥革命) 무렵이었다. 여기에 주의(主義)를 덧붙여 ‘democracy’에 상응하는 단어로 만든 것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년)라고 알려져 있다. 금권제(金權制), 과두제(寡頭制)처럼 ‘democracy’도 정부(또는 통치)의 한 형태를 가리킨다.
 
  그런데 어째서 민주‘주의’가 된 것일까?
 
  ‘주의’란, ‘특정한 일에 대한 일관성 있는 인식과 행동의 원칙, 외부 세계를 일정한 틀로 인식하거나 파악하여 그에 따르는 행동을 설정하는 임의의 관념 체계, 한 개인이나 집단이 평소에 지니고 생활하는 일정한 신념 체계, 또는 그와 유사한 타성(惰性)의 경향, 특정한 사회 체제에 경제·사회적 동인(動因)으로 작용하는 여러 사상 체계들, 또는 체계화된 이론이나 학설’(《고려대한국어대사전》)을 가리킨다.
 
  그러나 ‘democracy’는 주장, 방침, 이론, 학설이 아니라 형식과 실체를 의미한다. 일본의 (어쩌면 의도적이었을지도 모를) 오역(誤譯) 덕분에 한자문화권에서는 민주제가 이념(ism)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사유(思惟)되어왔다.
 
 
  ‘democracy’가 ‘민주주의’가 된 이유
 
우노 시게키 도쿄대 교수. 사진=유튜브 캡처
  에도 시대에서 다이쇼(大正) 시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에서는 여러 지사와 학자들이 ‘democracy’의 번역어를 제시했다. 민의정치[바바 다쓰이(馬場辰猪)], 평민주의[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 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 평민정치[미토미 이치타로(人見一太郞)], 중민(衆民)정치[오노쓰카 기헤이지(小野塚喜平次)], 민본주의[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 민중정치[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 민의주의 및 공주(共主)주의[사사키 소이치(佐々木惣一)], 민화(民和)주의[다바타 시노부(田畑忍)], 민정(民政)주의[미노베 다쓰키치(美濃部達吉)]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결국 민주주의로 결착되었다.
 
  ‘Democracy’가 사상(ism)이 아님에도 민주‘주의’라고 번역된 이유에 대해, 우노 시게키(宇野重規) 도쿄대 정치사상사 교수는 “당시의 일본은 덴노제(天皇制)였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힘을 가지게 되면 덴노의 주권과 충돌한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라며, 다소 위험한 외래의 ‘사상’이라는 형태로 받아들여진 탓이라고 설명한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선택하기 전에 당초 제시했던 ‘democracy’의 번역어는 ‘하극상(下剋上)’이었다고 한다. 후쿠자와가 대미(對美)사절단의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1860년대는 덴노가 신격화(神格化)되기 이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막번(幕藩)체제하의 계급사회에 살던 그로서는 민중이 통치한다는 관념이 정치적 상상력을 뛰어넘을 정도로 혁명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컨대, 당시의 일본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정치체제를 덜 위협적인 의미로 수용하기 위해 “서구에서는 ~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더라”라는 완충적 뉘앙스를 담아 ‘주의’를 첨가했다고 볼 수 있다. ‘democracy’가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데는 일본의 특유한 정치현실이 강하게 영향을 미친 셈이다. 우리말에서 모든 ‘일본어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옳다면, 민주주의만큼 원 개념의 본질을 크게 흐린, 다른 일본산 단어를 찾기는 어렵다.
 
 
  2. 그럼 민주주의란 뭐란 말인가?
 
  민주제가 늘 사회를 더 문명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민주제는 언제나 그것이 작동하는 사회의 건강 상태를 무자비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 로버트 캐플런 《무정부 시대가 오는가》 중에서
 
  ‘Democracy’라는 단어에 추상성(抽象性)이나 이념적 지향성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이 단어는 프랑스혁명 이래 목적의식적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사용되었고,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세계 온갖 정치 세력이 상이(相異)한 의미로, 때로는 상반된 의미로 사용하여 모호한 단어가 되어버린 면이 있다. 이제는 민주제를 자처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시피 한다. 온갖 현란한 수식어를 동반한 사이비(似而非) ‘민주주의’가 난무하고, 심지어 민족주의나 권위주의에 대한 동경을 ‘민주주의’로 포장하는 이들도 있다. 인민을 위하지도 않고, 민주정도 아니고, 공화국도 아닌 나라가 그 모든 수식어를 국호(國號)에 내걸기도 한다.
 
 
  아테네의 민주주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럼에도 어쨌든 민주제는 본질적으로 정부의 형태 또는 통치의 방식을 가리킨다. 민중(demos)이 지배(kratos)한다는 뜻이다. 주지하듯, 본디 그것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여자와 미성년자와 노예와 외국인을 제외한” 모든(?) 시민이 광장에 모여 다수결로 행정수반과 최고재판장을 선발하는 직접민주제를 일컫는 말이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민주정이 쇠퇴하던 시기의 아테네에서 살았다. 그는 소피스트들의 회의론(懷疑論)과 상대주의(相對主義)에 맞서 가르침을 설파하다가 ‘신성모독죄’와 ‘젊은 세대를 타락시킨 죄’로 사형을 당했다.
 
  소크라테스 자신은 저서를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제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목소리를 후세에 전했다. 이들이 민주정을 높이 평가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정부의 형태를, 바람직한 순서로, 귀족정(또는 철인정치, Aristocracy), 금권정(또는 명예정치, Timocracy), 과두정(Oligarchy), 민주정(Democracy), 참주정(Tyranny)의 다섯 가지를 꼽았고, 계급 관계가 타락함에 따라 정부 형태도 점차 (전자에서 후자 쪽으로) 타락해간다고 보았다.
 
 
  暴政으로 타락한 민주주의
 
  민주정이 폭정(暴政)으로 타락한다고? 예컨대 빅토리아 시대(1837~1901년)를 살았던 영국인이나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1871~1914년)를 살았던 프랑스인이 그런 현상을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위대한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는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주년 기념식(1897년) 때 12세 소년이었다. 삼촌의 어깨에 걸터앉아 전 세계 방방곡곡의 대영제국 축하사절단의 행렬을 지켜보았던 토인비는 후일 그날의 소감을 이렇게 적었다.
 
  “그날의 분위기를 기억한다. 그것은 ‘자, 이제 우리는 세상의 꼭대기에 있고, 여기 영영 머물 것이다’는 분위기였다. 역사라는 것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것은 다른 국민들에게 벌어지는 불쾌한 무언가였다. 우리는 그런 것들의 바깥에서 평안하게 존재했다.”
 
  역사가 종언(終焉)을 고한다는 느낌은 어쩌면 모든 제국의 최전성기에 그 나라 시민들이 가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패한 민주정권에 스승을 잃은 플라톤에게는 민주정에서 폭정으로의 타락은 학문적 공상이 아니라 치를 떨며 몸소 체감한 화두(話頭)였을 것이다. 크롬웰 치하에서 의회제도의 실패를 경험한 홉스가 투키디데스의 저술을 번역해 출간한 목적은 아테네 몰락의 최대 요인이 바로 민주제였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제3제국으로 자리를 내주는 과정이라든지, 일본의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가 군국주의(軍國主義)로 무너지는 과정과 그 결과를 경험한 세대도 비슷한 감상을 느꼈을 것이다. 스포일러를 양해하신다면, 이 글의 결론은 어쩌면 지금 생존한 세대도 플라톤을 공감하는 경험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민주주의보다는 공화주의를 지향했다.
  오늘날의 세계가 민주제의 전형으로 이해했던 정부 형태는 아테네식 직접민주제가 아니다. 인류가 지난 200년 가까이 현실에서 민주정으로 받아들인 체제는 실은 보통선거를 통해 지배엘리트를 선발하는 간접민주제였다.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어의(語義)가 너무 헐거워져서 이제는 논란거리일 수도 있겠지만, 교과서적 의미에서 현대 민주제의 전형은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된 입헌(立憲)군주제와 대통령제 두 갈래였다.
 
  입헌주의는 왕실과 귀족 및 평민들 간의 투쟁 끝에 국왕의 권리를 의회가 제한하는 형태로 구현되었다. 여기서 핵심은 통치권력의 합법적 제약에 있다.
 
  미국의 경우, 정부 형태를 설계한 국부(國父)들은 고전적 민주제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다수의 폭정과 분파주의에 취약한 직접민주제에 비관적이던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은 “모든 아테네 시민이 소크라테스였더라도 아테네의 모든 집회는 폭도들의 모임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고,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도 “우리가 얻고자 투쟁한 정부는 선출된 독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국부들이 마련한 것은 ‘부조화의 정치’에 견제를 통해 균형을 부여하는 장치들이었다. 미국은 왕정(王政)에서 대통령을, 귀족정에서 상원을, 민주정에서 하원을 빌려왔다. 법의 지배가 기관들을 규율하는 원리였으므로, 사법부가 그들 모두를 견제하도록 했다. 다시 말해, 영국식 입헌주의든 미국식 대통령제든, 간접민주제는 엘리트들이 통치하는 정부였다. 굳이 비교하자면 그것은 아테네의 민주정보다는 오히려 원로원(元老院)이 이끌던 로마의 공화정(共和政)을 좀 더 닮은 체제다.
 
  직접민주제의 약점을 보완하려고 제임스 매디슨을 비롯한 미국의 국부들이 중점을 두었던 정부 형태는 공화정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정치를 지배하던 가치는 자유주의(Liberalism)였다.
 
 
  민주주의는 그릇이다
 
  그러나 민주정을 ‘민주주의’라고 부르면서, 한자문화권에서는 유교적 ‘민본주의(民本主義)’와의 혼동도 일어났고, 제도와 장치보다 오히려 이념적 지향성을 강하게 담은 슬로건이 되었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민주정은 제도이자 수단이고, 거기 담겨야 할 이념과 제도가 긍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들은 따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라고 말할 때, 자유주의가 승객이라면 민주정은 탈것(vehicle)이다. 유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자유주의와 공화주의가 도(道)이자 이(理)라면, 민주제는 기(器)이자 기(氣)라고도 할 수 있겠다. 쉽게 말해, ‘민주주의’는 그릇이다.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 되고, 재를 떨면 재떨이가 되는.
 
 
  3. 쿠오 바디스, 데모크라티아?
 
  솔직히 죄가 무슨 죄가 있어. 그 죄를 저지르는 ×같은 새끼들이 나쁜 거지.
  - 영화 〈넘버3〉에서 마동팔 검사(최민식 분) 대사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수만에서 수억에 이르는 무리를 이루어 삶을 영위하는 동물로 진화했다. 궁극적으로 그 무리는 국가를 이루었으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폴리스적 존재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언명은 인간이 국가에 거주함으로써 정체성(正體性)을 부여받는(state-dwelling) 동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국가를 벗어나 살 수 있는 존재는 인간 이하이거나 인간 이상의 존재였다.
 
  인간의 무리에는 필연적으로 질서가 필요했기 때문에 다양한 통치제도가 고안되고 시도되고 강요되었다. 인간은 자유를 희구하는 강력한 본능도 가지고 있는 반면, 무질서의 투쟁 상태를 막기 위해 ‘자유로부터 도피’하고 싶어 하는 본능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종종 인간은 ‘예속의 길’을 자발적으로 걷는다. 슬프지만, 전제정치(autocracy)도 실은 인간 본성의 한 면 위에 서 있는 제도인 셈이다.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키케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이 고안한 수많은 방식을 두 가지로 나눈다면, 뛰어난 지도자(또는 지도자 집단)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는 방식과 지도자들까지 구속하는 객관적이고 절차적인(그러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이상적이지 못할 수도 있는) 기준을 만드는 방식이다.
 
  자유주의는 인간에게 자연적인(양도 불가하고 생래적인) 권리가 있다고 믿으므로 지도자의 권능(權能)을 불신(不信)한다. 자유주의는 인민에게 예속으로부터 벗어날 원심력을 제공한다. 하이에크 같은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의 궁극적 목표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누리는 자유의 총량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모두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자면 한 가지 자유는 부득이 제한해야 했는데, 그것은 ‘남의 자유를 침해할 자유’였다. 그것을 제한하는 수단이 법의 지배(rule of law)이다.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오늘날 민주제라는 그릇과 자주 혼동되고 있는 알맹이에는 공화주의(共和主義·Republicanism)도 있다. 공화주의의 원류(源流)는 고대 로마 공화정의 스토아 학파다.
 
  공화정은 ‘공공(公共)의 것’을 의미하는 ‘res publica’가 결합한 단어로서, 어느 개인의 소유가 아닌 공공의 정치체를 뜻한다. 공화주의는 사적(私的) 이익의 추구보다 공적(公的) 이익을 중시하고 인민의 복리 증진을 추구한다. 인민이 자주적 주체로서 공민적(公民的) 덕(civic virtue)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조건이다. 키케로에 따르면, “공화국은 법에 대한 합의(iuris consensu)와 이익의 공유(共有)에 의해 결속된 대중의 연합”이다. 그러므로 공화주의를 지키는 수단도 법의 지배로 귀결된다. 핵심은 ‘합의와 공유’에 있다. 법에 합의하지 않고 이익을 공유하지 않는 집단은 공화국을 이룰 수 없다. 협량(狹量)한 민족주의의 한계를 넘어 국가 공동체를 유지하는 자발적 구심력은 공화주의로만 성취할 수 있다.
 
 
  非자유주의적 민주정의 대두
 
  민주제는 그릇이므로, 엉뚱한 내용물이 담길 수도 있다. 냉전(冷戰) 종식 직후 비자유주의적(非自由主義的) 민주정(illiberal democracy)의 대두에 관한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로버트 캐플런(Robert Kaplan)은 미국이 전 세계의 여러 지역에 권하고 있는 민주제는 신종 권위주의를 향한 변화를 필연적으로 일으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파리드 자카리아(Fareed Zakaria)는 민주적 선거제도를 우선적으로 이식함으로써 자유주의적 민주정을 만들 수 있다는 관념이 서구의 착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곳곳에 이식된 선거제도가 정치적 불안과 내전(內戰)과 심지어 대량 학살을 낳고 있었다.
 

  지난 10년간에도 많은 저명한 학자와 연구소가 비슷한 우려를 표했다. 2021년 프리덤 하우스는 15년 연속으로 세계의 민주제가 쇠퇴했다고 발표했다. 허약한 법의 지배, 권력의 남용, 정치적·경제적 양극화(兩極化), 포퓰리즘, 다원주의(多元主義)에 대한 공격 등이 원인으로 제시되었다. 캐플런은 중산층과 문민(文民)제도가 민주제의 성공에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자카리아는 견제와 균형을 갖춘 건전한 제도와 자유시장이 선거제도보다 우선임을 강조했다.
 
  민주제를 이런 식으로 바라보면 허무한 동어(同語) 반복에 귀착된다. 민주제는 그것을 성공시킬 만큼 풍요롭고 평화로운 나라에서만 성공한다는 의미가 되어 어떠한 실천적 지침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캐플런은 “우리가 민주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도덕적 논증으로(많은 경우 오로지 도덕적 논증만으로) 후퇴한다는 사실 자체가 세계의 많은 지역에 민주제를 뒷받침하는 역사적·사회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릇에는 무엇이든 담을 수 있으니까.
 
  여기서 우리는 분별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민주제가 쇠퇴했다기보다, 자유주의와 공화주의가 쇠퇴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민주제를 탓하는 것은 칼을 휘두른 사람 대신 칼을 탓하는 것과도 흡사하다.
 
 
  공화주의·자유주의의 쇠퇴가 문제
 
  민주제가 쇠퇴와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보통선거를 통한 대의(代議)민주제라는 그릇이 잘못된 장소에 놓이거나 거기에 잘못된 내용물이 담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신뢰가 작고 중산층(中産層)이 얇고 권위주의적 정치문화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서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손쉬운 선택지인 나라에서 민주제도는 모래땅에 이식된 묘목처럼 이내 시들어, 오히려 국민이 누리는 자유의 총량을 줄이는 도구나 통로로 전락한다. 식민지 독립 직후나 냉전 종식 직후 외부로부터 민주제를 이식받은 많은 개발도상국이 이런 운명에 처했다. 문화적·물적 토대가 취약한 나라에서는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자유주의, 공동체의 보전을 위해 사적 이익을 양보해야 한다는 공화주의가 빈 그릇을 채우기 전에 질서에 대한 현실적 필요가 그릇을 채워버리는 탓이다. 나쁜 질서조차 무질서보다는 낫다. 근년에 중동(中東) 지역에서 벌어진 ‘아랍의 봄’이 이를 실증했다. ‘민주주의’가 그릇이라는 점을 잊으면 이런 일은 언제 어디서건 반복될 수 있다. 새롭게 생겨난 현상도 아니다. 새로운 걱정거리는 다른 곳에 있다.
 
 
  4. 열린 사회가 그 적들
 
  민주제가 영속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민주제는 스스로를 쉬이 낭비하고, 고갈시키고, 결국 살해한다. 자살하지 않은 민주적 체제는 지금껏 없었다.
  - 존 애덤스
 
  인기에 영합하고, 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경시하고, 절제와 시민적 덕목이 무시되고, 법질서를 침해할 위험이 있고, 선동가들이 지도적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단점을 안고 있음에도 민주제가 실현가능한 최선의 제도임은 분명하다(처칠의 냉소적 유머를 빌린다면, 민주정은 최악의 정부 형태다. 종종 실험되었던 다른 모든 정부 형태를 제외한다면). 단점들을 상쇄할 수 있는 합의와 합리가 작동하는 한은 그렇다. 합의와 합리라는 지지대가 완전히 망가진다면 민주정치는 중우(衆愚)정치(ochlocracy)로 전락하고, 독재적 민중이 법질서를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게 될 위험을 안고 있다. 민주제가 ‘쇠퇴’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무엇이 이런 지지대를 약화시키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칼 포퍼. 사진=도리안 케이반디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경험한 후, 철학자 칼 포퍼는 플라톤 후기 철학과 헤겔주의, 마르크시즘을 ‘열린 사회의 적(敵)들’이라고 규정했다. 이것은 이성(理性)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둔 서구 계몽주의가 그 모든 변용을 실험해본 뒤에 다다른 절망의 목소리였다.
 
  배반당한 믿음은 회의(懷疑)를 부른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탈근대(脫近代)’라는 그 이름이 암시하듯, 근대적 이성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려는 운동을 가리킨다. 절대적 진리에 대한 믿음이 전체주의(全體主義)로 귀결되는 것을 경험한 세대가 해체와 탈중심적 다원적(多元的) 사고(思考)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그리고 쉽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근대에 대한 부정이었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은 그것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무엇이 아닌지’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진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진실은 개인적이고 상대적인 것으로 ‘해체’되었다.
 
  기술의 진보와 정보의 민주화는 철학적·도덕적 상대주의를 일상으로 불러들였다. 영화 〈매트릭스(Matrix)〉는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에 내포된 심오한 회의주의를 21세기 대중문화에 소환했다. 현실과 삶이 시뮬라크르(Simulacres)와 시뮬라시옹(Simulation)에 불과할 수 있다고 자조(自嘲)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곳곳에서 흔들리는 민주주의
 
  세계화(世界化)는 유례없는 성장과 번영을 견인했지만, 그 대가로 정치적·경제적 양극화와 적대감의 확대를 낳았다.
 
  인터넷은 실제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망(web)으로 연결된, 지도로는 표현할 수도 인식할 수도 없는 복잡한 세상을 만들었다. 스마트폰은 정보의 한계비용을 거의 0에 가깝게 만들었고, 그럼으로써 주류(主流) 언론과 전문가들의 권위를 허물었다. 소셜미디어는 아무리 허무맹랑한 신념을 가진 사람도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를 찾을 수 있는 가상의 아고라(agora)가 되어 사람들의 집단 확증 편향을 강화했다. 댓글 문화는 정치 참여의 비용을 낮추었고, 심지어 외부 세력이 공동체에 영향을 미칠 뒷문도 열어주었다.
 
  한때나마 역사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고 여겼던 권위주의 체제가 국제질서에 도전하고 있다. 세계 도처의 민주국가에서는 사실관계를 비틀고, 증오를 부추기고, 선동에 편승하는 포퓰리스트형 정치가들이 집권하거나 당선권역에 다가서고 있다.
 
  인류는 과거 어느 시점보다 직접민주제에 근접한 시대를 살고 있다. 오늘날 많은 학자와 연구기관이 ‘민주주의의 쇠퇴’를 우려하는 것은 ‘이식된 민주정치’의 실패 사례들이 꾸준히 늘어난다는 것만이 아니라, 민주정의 전범(典範)이라고 여겨졌던 체제들에서도 민주제에 내재된 문제점들이 제어장치를 뚫고 뛰쳐나오고 있다는 데도 있다. 2021년 1월 6일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의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을 무력(武力)으로 점거하고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플라톤이 살아 있었다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을 것 같다.
 
  “내가 그럴 거라고 했잖소.”
 
 
  ‘열린 사회의 敵’이 되어버린 열린 사회
 
  열린 사회가 열린 사회의 적이 되었다. 우리의 과잉이 우리의 절제를 삼키고, 우리의 방종이 우리의 자유를 제약한다. 이미 실패를 경험했으므로, 다음 세대가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를 지켜내려면 합리에 관해 과거보다 더 강한 신념을 가지고 과거보다 더 강한 합의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유혈(流血)이 낭자한 대규모 전란(戰亂)을 경험하지 않고, 다음 세대가 ‘법의 지배를 통해 구성원의 자유의 총량이 최대화되는 공동체’를 일구고 지켜낼 수 있을까? 평화를 바라는 마음만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사치스러운 가정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속 시원한 선동가 대신 말재주나 매력이 없더라도 공동체에 필요한 쓴 약을 처방해줄 현명한 지도자를 옹립할 수 있을까? 학교와 가정이 공민적 덕(德)을 함양하는 교육의 장(場)으로 부활할 수 있을까? 모두가 자기 권리를 주장하면서 ‘갑질’을 할 기회를 엿보는 만인(萬人) 대 만인의 투쟁 상태를 막을 수 있을까? 질서라는 공공재에 무임(無賃)승차하는 얌체 짓을 현명함으로 포장하는 도덕적 해이(解弛)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절제와 중용(中庸)에서 이익을 발견할 수 있을까? 보편적인 가치에 관한 믿음과 합의를 창출할 수 있을까?
 
  제발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지금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러기가 쉽지 않겠다는 비관(悲觀)을 자극한다. 총체적 무질서를 막기 위한 첫걸음이, ‘민주주의’가 ‘주의(ism)’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를 담기에 민주제보다 더 적절한, 다른 그릇은 없다. 그러나 제도가 우리를 구하지 않는다. 우리가 제도를 구해야 한다. 그릇이 아니라 내용이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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