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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 중인 블루문펀드 김진수 대표의 고백

P2P 금융 사고 중 최대 규모인 투자금 576억원 미상환 후 폐업… 현재 동남아 체류 중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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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00만원만 있으면 P2P 금융사 세울 수 있었다. 규제 없다시피 해”
⊙ “허위 대출 함께한 공범들, 추심 피하려 재산 은닉했을까 봐 우려된다”
⊙ 576억원 대부분은 돌려막기 이자와 고액 리워드(reward)로 나가, 이자 외에 리워드로만 30억원 받아 간 투자자 있다”
⊙ P2P업에 대한 불신 커져, 업계 1위였던 테라펀딩도 PF 대출 연체율 99%
블루문 김진수 대표.
  “재킷을 빌렸던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리플리는 말한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거짓말로 이미 여러 일을 일으킨 후였다. 영화 〈리플리〉의 사기꾼 주인공 얘기다. 김진수(43)씨도 기자에게 비슷한 말을 했다.
 
  “그때 P2P 사업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김씨는 9월 중순 현재 해외 도피 중이다. 동남아시아 모처에 머물고 있다. 작년 7월에 출국했으니 벌써 1년이 넘었다. 그는 꽤 조리 있고 정돈된 말투로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과거를 곱씹을 시간이 많은 사람 특유의 유창함이었다. 피곤함이 전해오는 건 그가 말을 멈췄을 때였다. 기약 없는 도피 생활 때문일까. 지친 감정이 말끝에 매달려 있었다.
 
 
  576억원 미상환 후 잠적
 
  한국에서 그는 20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한 금융회사 대표였다. 이제 그 시절의 흔적은 한때 그의 고객이었던 피해자들의 고소장과 수사기관의 서류, 그리고 그의 소셜미디어(SNS) 사용자명 ‘boss’(대표라는 뜻)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가 이끌던 P2P 금융사 ‘블루문펀드’는 지난 7월 문을 닫았다. 상환하지 못한 금액은 576억여원. 피해자는 약 4000명이다. 지금까지 일어난 P2P 금융 사건 중 최대 규모다.
 
  P2P(Peer to Peer) 금융은 대출자와 투자자를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금융서비스를 뜻한다. 일종의 크라우드펀딩을 생각하면 된다. 국내에선 ‘대부중개업’으로 분류한다. 크게 신용 대출과 부동산 대출, 동산 담보 대출로 나뉜다.
 
  신용 대출은 대출자의 신용을 근거로 투자자들이 돈을 모아 빌려주는 형태다. 부동산 대출은 담보 대출과 PF(Project Financing) 대출로 나뉜다. 담보 대출은 말 그대로 아파트나 빌라, 토지를 담보로 돈을 빌려준다. PF 대출은 빌딩 건축, 아파트 건축 등 부동산개발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빌려주는 대출을 뜻한다.
 
  동산 담보 대출은 동산, 즉 의류 등 공산품이나 식자재 등 동산을 담보로 자금을 빌려주는 걸 의미한다. P2P 금융업체들은 투자자들과 돈을 빌리는 차주 사이를 중개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에선 2016년 이후 ‘핀테크 금융’의 하나로 주목받으며 관련 업계의 규모가 갑자기 커졌다.
 
 
  사업가에서 ‘먹튀’ 사기꾼으로
 
  김씨는 기자에게 스스로 연락을 해왔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와 처음으로 통화를 하는데 문득 등록금을 넣었던 대학생, 한 푼이라도 더 모아보려 했던 주부 등의 피해자들이 생각났다. 블루문펀드 블로그에는 ‘제발 살려달라’는 댓글이 보인다. 노후 자금을 투자한 가장(家長)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별 흥도 안 나는 판에, 사기 용의자의 변명을 길게 들어줄 이유가 있을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먹튀’한 돈으로 외국에서 편하게 살고 있지 않나요?”
 
  답이 돌아왔다.
 
  “제가 그렇게 살고 있으면 이렇게 자진해서 언론에 연락했겠습니까.”
 
  그를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의 과거에 대해 물었다. 몇 가지 얘기를 듣자, 그의 고백이 듣고 싶어졌다. 어떠한 과정 속에 한 사업가가 576억원의 피해를 낸 ‘먹튀 사기꾼’이 됐는지, 어쩌면 그 단서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전문대학에서 체육 관련 학과를 졸업한 그는 사회에 나와 이런저런 일들을 거쳤다. 인테리어 일도 했고, 사무직으로도 일을 했다. 그러다 2009년, 일종의 대출 알선업을 시작했다. 은행에서 대리인 자격으로 주택 담보 대출을 중개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여럿 알게 된 게 계기였다. 벌이가 괜찮아 보였다. 그러다 2011년 본격적으로 대부업에 뛰어들었다. 경매취하자금 대출을 주로 맡았다. 은행과 계약을 맺고 은행 여신을 활용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렇다. 부동산 경매를 취하하기 위해 자금이 급히 필요한 이들이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도록 중개해주는 일을 했단 얘기다.
 
  “5년 동안 그 일을 했습니다. 아파트, 빌라 딱 두 가지 부동산의 담보 대출만 취급했어요. 그러다 보니 리스크가 없었어요. 꽤 잘됐습니다. 은행 3곳에서 20억, 30억씩 여신을 받아서 했어요.”
 
  2017년 그는 P2P 업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번에도 지인이 계기였다. 그의 설명이다.
 
  “대부업을 할 때 이모씨를 알게 됐어요. 저처럼 경매취하자금 일을 하던 사람인데, 이모씨를 통해 정모씨도 만났고요. 두 사람이 제게 P2P 금융회사를 차려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어요. 어떻게 차리는지 방법도 알려줬고요.”
 
  ― 그 두 사람은 P2P업을 어떻게 알게 된 건가요.
 
  “기존 P2P 업체에 부동산 담보 대출 물건을 갖다주는 일종의 ‘브로커’ 일을 한 거예요. 비욘드펀드, 테라펀딩 같은 업체에 물건을 가져다줬어요. 그러면서 P2P 금융을 배운 거죠. 저와 블루문펀드를 만들 때 두 사람은 비즈펀딩이라는 P2P 회사를 동시에 만들었어요.”
 
 
  사기꾼들과 동업
 
  ― 그건 문제가 되지 않나요.
 
  “그때만 해도 저는 ‘바지사장’이라 깊숙한 사정을 몰랐어요. 비즈펀딩도 서류상 대표는 따로 있었고요. 그런데 정씨는 건축사 자격증을 갖고 있었어요. 부동산 감리 회사도 따로 갖고 있었고요. 예전에 내놓은 상품을 보면 블루문과 비즈펀딩이 함께 대출 상품을 모집했어요. 정씨가 관련된 건설 현장의 PF대출 상품을 블루문과 비즈펀딩이, 때론 비욘드와 블루문이 공동으로 모집한 경우도 있고요. 한 차주(借主)가 세 군데에서 각각 펀딩을 받기도 했어요.”
 
  ― 그러면 한 차주에게 문제가 생기면 세 군데가 다 돈을 못 받겠군요.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서 비욘드와 블루문이 싸우게 되는 일이 어마어마하게 생기는 거예요. 비욘드에서 대출해준 사람에게 저를 속이고 블루문에서 또 펀딩을 해주니 나중에 담보 채권을 두고 다투게 된 거예요. 테라펀딩도 마찬가지고요.”
 
  ― 그걸 역으로 이용하는 차주도 있었겠군요.
 
  “아주 많았어요. P2P에서 대출받은 내역은 조회가 안 되잖아요, 은행 대출은 바로 조회가 되지만요. 부동산 담보 대출 같은 경우에 대출을 내줘도 근저당 설정 하려면 물리적으로 시간이 걸리거든요. 그러니 오전엔 일반 대부업체에 가서 대출을 받고, 하루이틀 안에 우리 같은 P2P 펀딩업체에 와서 이중으로 대출을 받는 거예요. 그런 일이 아주 많았어요.”
 
  ― 부동산 대출이 초장부터 문제가 됐군요. 애초에 하던 대로 안전한 담보 대출만 취급하지, 왜 PF 대출에 손을 댔나요.
 
  “처음 P2P 대출을 시작할 때 더 알아봤어야 했어요. 처음 블루문펀드를 시작할 땐 부동산 담보 대출만 하자고 약속하고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그 두 사람이 부동산 담보 대출만 하면 돈이 안 되니 PF 대출을 해야 된다고 하더군요. 그쪽은 전 정말 하나도 몰랐거든요. 제가 끼어들어서 참견도 할 수 없고 그저 바지였죠, 바지.”
 
  ― 대출해준 건설 현장들에 문제가 생겼나요.
 
  “정씨는 PM(부동산 건설 시행사)사도 갖고 있었어요. 차주에게 빌려줄 돈을 일단 자신의 PM사가 관리하도록 계약서를 만든 거예요. 실제 차주가 1억원을 요청하면 8000만원만 주는 식으로 하면서, 남는 돈으로 다른 공사를 하거나, 다른 곳에 돈을 빌려준 거예요. 저도 검찰 조사가 진행되면서 자세히 알게 됐어요.”
 
 
 
동산 대출로 진출

 
  ―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결국 2019년 12월에 이씨는 구속됐어요. 실형을 살고 있고, 정씨는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 그때는 회사 대표였을 텐데 아무리 바지사장이어도 조사를 받지 않나요.
 
  “저도 조사를 받았어요. 저는 그때 회삿돈을 횡령하거나 쓰지 않아서 무혐의로 끝났지만 블루문펀드 자체는 다시 부동산 대출을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 됐어요.”
 
  ― 그래서 동산 담보 대출을 시작했나요? 동산 대출 역시 모르는 분야였잖아요.
 
  “회사를 정리하느냐, 사업을 이어가느냐 갈림길이었어요. 주변에선 여러 사람이 ‘네가 회삿돈을 쓴 것도 아니고 잘못한 거 없으니 회사 문을 닫고 P2P 일도 그만두라’고 조언했어요. 그런데 제가 포기할 수 없었어요.”
 
  ― 왜요.
 
  “모르겠어요. 그 전에 하던 일과 다른 새로운 분야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돈을 모을 수 있구나’ ‘이런 금융 대출도 가능하구나’ 하고. 신세계를 본 것 같았어요.”
 
  ― 투자금이 쉽게 모이니까 포기하지 못한 거 아닌가요.
 
  “네. 그래서 포기하지 못했어요. 동산 대출은 잘될 줄 알았어요.”
 
 
  고액 리워드로 현혹
 
  블루문펀드의 동산 담보 대출은 큰 인기를 끌었다. 모집 시작과 함께 마감된다며 ‘광속 마감’으로 유명해졌다. 고이율과 ‘리워드(reward)’ 덕이었다. 연 15%가량의 높은 이율에 7%의 리워드를 얹어줬다. 무슨 말인가 하면, 100만원을 투자하면 15%의 연이자에, 일종의 보너스로 7만원을 무조건 받을 수 있었단 얘기다. 백화점상품권을 보너스로 걸기도 했다. 지금도 검색해보면 ‘블루문펀드에 투자해 리워드로 △△만원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투자 후기가 보인다.
 
  ― 리워드 지출이 꽤 크긴 했겠네요. 왜 리워드를 내걸었나요.
 
  “모집하는 펀드가 모집완료 안 될 수 있는 상황을 자주 겪었어요. 다른 P2P 업체에서 사고가 생겼을 때 특히 그랬죠. 그러면 투자금이 큰 분들이 회사로 전화를 걸어와요. ‘5억원짜리 기관 투자자 투자 창을 만들어줘라’ ‘3억원짜리 전문 투자자로 들어가게 해줘라’ 이런 식으로요.”
 
  ― 리워드도 요구하나요.
 
  “네. 리워드로 20%를 줘라, 22%를 줘라 이렇게 요구할 때가 있었어요. 그렇게 5억원을 투자하면 이자 외에 20%의 리워드로 1억원을 받아 갔습니다.”
 

  ― 그렇군요.
 
  “저는 펀딩이 모집완료가 안 되면 큰일나니까 틀어막으려고 요구하는 대로 20%를 지급할 수밖에 없었어요. 정식으로 받는 이자는 페이게이트를 통해 받고, 리워드는 다른 사람 통장을 이용해 차명으로 받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분들도 많았어요. 일종의 세탁이죠. 그런 자금을 3개월간 30억원만 투자받아도 리워드로 6억원이 지출되는 거예요.”
 
  ― 이자보다 리워드 수익을 노린 투자자들도 있었겠군요.
 
  “어떤 투자자는 1년 6개월간 운용하며 리워드로만 30여억원을 받아 갔어요. 그분은 45일 상품에 16%, 22%의 리워드를 가져갔으니까요.”
 
  ― 그런 고객이 많았나요.
 
  “40여명 정도 있었어요. 일반 투자자보다 리워드를 많이 받는 분들은 70여명, 10% 이상 받는 분들은 20명가량이었어요”
 
  ― 그러면 리워드로 지급한 돈이 총 얼마인가요.
 
  “180억원쯤 될 겁니다. 금융감독원에서 2020년 4월 감사 나왔을 때 회사에서 자체 집계를 했어요. 당시엔 리워드 합계가 180억원이 좀 안 됐거든요.”
 
 
  돌려막기와 허위 펀딩
 
  ― 왜 그렇게까지 절박하게 펀딩을 했나요.
 
  “동산에서도 연체가 나오는 거예요. 차주가 한 달만 상환을 유예해달라고 하면 회사가 먼저 갚아주고, 나중에 받고 이런 일이 반복되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제가 자체적으로 물건을 사서 되팔기 시작했어요.”
 
  ― 도매업을 했다는 얘긴가요.
 
  “네. 예를 들면 수산업자에게 10억원을 펀딩하면, 차주에겐 실제로는 4억원만 지급하고 6억원은 제가 받아서 물건을 샀어요. 그 물건은 후에 다른 곳에 팔고요. 펀딩 모집을 위해 올라갔던 동산 담보들의 90% 이상이 블루문펀드가 보유한 물건이었어요.”
 
  ― 차주들에게 담보를 허위로 빌려줬단 얘긴가요.
 
  “네. ‘당신 담보는 5억원어치밖에 안 되니, 내가 갖고 있는 담보물 10억원어치를 얹어서 15억원을 만들자. 그러면 그걸 담보로 펀딩을 8억원 할 테니, 당신은 절반만 쓰고 나머지 돈은 가져와라’ 이렇게 한 겁니다. 명의만 빌려 허위 차주를 만들어 펀딩하기도 했고요.”
 
  ― 물건을 사고파는 게 돈이 됐나요.
 
  “수익이 많이 났어요. 예를 들면 냉장고 사업을 하는 사람이 현금이 없어서 우리에게 냉장고 200대를 담보로 돈을 빌려요. 100만원짜리 냉장고를 제가 각 20만원씩 담보를 매겨서 100대를 맡아요. 이 사람이 돈을 못 갚으면 냉장고는 제 소유가 되잖아요. 그러면 저는 20만원 주고 산 걸 50만원, 60만원에 넘겼어요. 두 배 가격에 판 적도 여러 번 있었어요.”
 
  ― 과외(課外)로 돈을 벌었군요.
 
  “사실 그러다 보니 제가 희망의 끈을 못 놨어요. 그래서 물건을 계속 사들였던 겁니다. 누군가가 그게 필요하다고 하면 수익을 붙여서 팔았고, 수출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희망이 보였거든요. 잠시 동안은요. 그래서 무리하게 리워드를 주더라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잘될 거라는 잘못된 생각을 한 겁니다.”
 
  ― 그런데 무슨 일이 생겼나요.
 
  “코로나19가 터졌잖아요.”
 
 
 
금감원 감사 후 도피 결심

 
블루문펀드는 종합격투기 단체인 로드FC와 협약을 맺기도 했다. 사진출처=로드FC
  그 와중에 블루문펀드는 로드FC 후원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후원은 왜 했냐고 묻자, 그는 “스포츠마케팅을 통한 홍보였다”고 답했다. 그가 ‘핀테크 금융사 대표’ 자리에 어떻게든 계속 머물고 싶었던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뒤에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새로운 업종의 전도유망한 기업인’이라는 허상을 유지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2020년 4월, 그가 쌓은 모래성이 파도를 만났다. 금융감독원에서 조사를 나왔다.
 
  ― 금융감독원에 다 들켰나요.
 
  “예고 없이 나온 조사였어요. 제보받고 왔다고 해요. 3주 넘게 금융감독원에서 우리 회사에 상주하며 조사를 했어요. 저랑 마찰이 심했어요. 우리 직원을 불러서 ‘솔직히 얘기하면 넌 봐주겠다’는 식으로 빈번하게 회유하더군요. 금감원에서 조사를 끝내고 상부에 보고하는 데 2, 3개월 걸렸나 봐요.”
 
  ― 그럼 조사받을 때부터 회사를 정리하고 도주할 준비를 한 거 아닌가요.
 
  “금융감독원 조사가 나온 후부터, 우리 회사에서 돈을 빌려 간 사람들에게 빨리 돈을 다 갚으라고 독촉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았어요. 창고에 있는 물건을 빨리 처분하려 했는데 그것도 잘 되지 않았어요. 코로나19 때문에요. 그러다 7월 초순 금감원에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거란 얘기를 들었어요. 그때 사실 다 포기했습니다.”
 
  금감원 조사 결과가 외부로 알려질 즈음 그는 해외로 출국했다. 2020년 8월의 얘기다.
 
  ― 해외로 왜 도망쳤나요.
 
  “일단 피하고 싶었어요. 제가 부동산 대출 문제 때문에 2018년 말부터 2년 동안 4명의 검사를 거치며 조사를 받았잖아요.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요. 그때 너무 힘들었어요. 그땐 제가 잘못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잖아요. 전 제가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어요.”
 
  ― 도망친다고 해결이 되나요.
 
  “내가 없어지면 나와 공모해 허위 펀딩에 가담한 자들이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막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신들이 처벌받지 않도록요. 그런 후에 내 죗값을 치르자고 생각했어요.”
 
  그의 출국이 알려지자, 투자자들은 격분했다. 투자자 대표단이 꾸려졌다. 이들은 동산 담보가 있는 블루문펀드 창고로 향했다고 한다. 그의 설명이다.
 
  “투자자 대표단이 용역직원 100명가량과 함께 창고로 갔대요. 경찰서에서 창고를 열지 말라고 저지했는데도 창고 문을 뜯고 물건을 가져갔답니다. 그 과정에서 일부 투자자들이 물건을 빼돌려 고소·고발이 됐답니다. 창고엔 담보가 기준으로 약 200억원어치 물품이 있었어요.”
 
  ― 그게 사실이라면 물건을 옮기는 것도 힘들었겠는데요.
 
  “듣기론 덤프트럭 40대가 왔답니다. 몇 대는 몇몇 투자자만 알고 있는 다른 창고로 가서 물건을 내려놨다고 들었어요.”
 
  ― 투자자들이 창고에 가보니 값나가는 물품은 거의 없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요.
 
  “아닙니다. 제가 이 마당에 죄를 축소하려 거짓말을 하겠나요? 금감원에서 우리 회사에 타깃(target) 감사를 나왔어요. 8일 동안 우리 회사 전 창고에 있는 물건을 다 확인했습니다. 그때 물건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확인이 됐고요.”
 
 
  “투자금보다 더 많이 챙겨 간 투자자도 있다”
 
김진수씨가 도피 중 작성한 자술서.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 않더라도, 창고에 물품을 일정량 보관하고 있던건 사실이다. 물품을 팔기 위해 2020년 4월엔 자체 쇼핑몰을 열기도 했다. 도산 직후 상환금을 돌려받지 못한 투자자들이 블루문펀드 창고로 가서 물건들을 실어내온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P2P 업계 내막을 잘 아는 A씨에게서 이날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A씨의 설명이다.
 
  “투자자 대표단이 창고로 갔어요. 물건을 빼돌려서 그걸 처분했답니다. 40억원가량 회수했다고 해요. 그 돈을 본인들이 나눠 갖고 빠졌답니다. 본인이 투자한 돈보다 더 많은 물건을 챙긴 이들도 있다고 해요.”
 
  ― 제겐 왜 연락했어요.
 
  “이런 얘기들이 알려져야 저와 공모했던 이들이 돈을 내놓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갚아야 할 채무가 있는데도 돈을 안 갚고 있어요. 이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안 갚는 게 아니거든요.”
 
  ― 왜 안 갚죠.
 
  “‘나는 돈을 빌린 건데, 못 갚았을 뿐이다. 추심이 들어오면 파산하면 된다’ 다들 약속한 듯이 이렇게 말하고 있단 얘길 전해 들었어요. 블루문캐피탈소셜대부나 채권 추심을 할 수 있지, 투자자들에겐 채권을 관리하고 추심할 권한이 없잖아요. 그러니 김진수가 들어오거나 잡히지 않는 한 대출금은 그냥 먹어도 된다 생각하는 것 같아요.”
 
 
  투자자들에게 채권 양도하고 싶어
 
도피 중인 김진수씨는 블루문펀드 블로그를 통해 채권 목록 등을 공개하고 있다.
  ― 귀국은 안 할 건가요.
 
  “사실 지난 5월 17일에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어요.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코로나19 음성확인서까지 발급받아 놨었어요.”
 
  ― 그런데 비행기를 안 탔잖아요.
 
  “제가 귀국하면 바로 체포가 될 텐데… 그 전에 제가 갖고 있는 채권과 차용증을 투자자들에게 양도하고 싶었어요.”
 
  ― 추심하면 받을 수 있는 채권은 얼마나 갖고 있나요.
 
  “대략 57억원어치예요.”
 
  ― 예상보다 갖고 있는 채권의 금액이 낮네요.
 
  “원래 19억원짜리 채권이 있었어요. 투자자 대표단에게 그 채권을 양도했어요. 그러면 채권을 추심해서 받은 돈이 전체 투자자들한테 배분되어야 하잖아요? 적어도 피해자들이 다 알 수 있게 추심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어요. 그래서 채권을 양도하는 걸 일단 멈췄어요.”
 
  ― 투자자 대표단을 신뢰할 수 없단 뜻이군요.
 
  “심지어 창고에 있던 물건 처분을 블루문의 채무자에게 부탁했답니다.”
 
  몇 차례 대화를 나눠보니 김씨는 정신적으로 지친 듯했다. 불법 체류자로 지낸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현재 머무르고 있는 곳은 브로커에게 돈을 내고 불법 입국했다고 한다. 코로나19 유행이 길어지니 무섭다는 말도 했다. 별로 중요한 얘긴 아니지만 그는 백신 접종도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배신감이 그를 지치게 한 듯했다. 같은 편이라 생각했던 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소위 ‘배 째라’는 식으로 돌아서는 걸 당하니 놀라고 분노한 듯 보였다. 블루문에 투자했다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들이 느낄 분노보단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와 대화를 나누기 전에 궁금했던 건 두 가지였다.
 
  첫째, 투자자들에게 돌려주지 않은 570억원은 어디로 갔을까. 둘째, 나름 건실한 실업가(實業家)였던 그는 어떻게 3년 만에 P2P 사기꾼이 됐을까.
 
  다른 P2P 업체 관계자는 돈의 행방을 두고 ‘도박’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가 예전에 도박했다는 얘길 들었다며. 김진수씨에게 직접 물었다.
 
  ― 도박을 했나요.
 
  “도박은 안 했습니다. 직원들과 해외 출장을 갔다가 카지노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게 와전된 것 같습니다.”
 
  ― 그럼 나머지 돈은 어디로 갔나요.
 
  “대출금을 계속 돌려막았으니,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이자와 수수료가 가장 크고요. 개인적으로도 썼고, 회사 운영비로도 지출됐겠지요.”
 
  그의 답이 모두 사실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그가 이런 상황에서 검찰 조사 한두 번이면 금방 드러날 거짓말을 늘어놓진 않을 것 같았다. 진실은 그가 귀국하면 곧 밝혀질 터이다.
 
 
  배금주의의 향연
 
  P2P 회사 ‘바지사장’이 되기 전, 그는 대부업체를 그럭저럭 잘 꾸려가고 있었다. 경기도 남양주에 터를 잡고 주로 부동산 담보 대출을 다뤘다. 당시 그를 알던 사람들의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붙임성도 있고, 친화력이 있어서 여기저기 인맥을 잘 쌓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어떻게 3년 만에 도피 생활로 들어섰을까.
 
  P2P 대출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들어와서 그는 핀테크 금융업체의 대표가 됐다. 화려해 보이는 허명(虛名)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싶은 그의 헛된 갈망이 금융 규제의 허점과 만나 비극이 일어나는 무대를 마련했다.
 
  여기에 몇몇 인간 군상의 배금주의(拜金主義)가 대본(臺本)을 제공했다. 느슨한 법망을 피해 타인의 돈을 가로채는 데 능했던 블루문의 전직 이사들, 일부 차주, 그리고 사기꾼인 줄 알면서 그 등에 올라타 쉽게 돈을 벌어보려 했던 일부 투자자의 배금주의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두 번째 질문의 답이 될 수 없다. 인간의 이기심과 배금주의는 21세기 들어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다. 이걸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하기 위해 법령과 규제가 존재한다.
 
  지난 3년여간 P2P 대출업계엔 제대로 된 규제가 없었다. 진입장벽도 낮았고, 규율은 없다시피 했다. 김진수씨도 같은 지적을 했다.
 
  “P2P 회사를 만드는 게 생각보다 너무 쉬웠어요. 제가 설립할 땐 자본금 5000만원만 있으면 됐으니까요. 대부업체 내는 것보다 쉬웠어요. 대부업은 신고하면 관할구청에서 사업장 실사를 하고 정기적으로 나와서 확인하거든요. 대부거래 계약서나 중요한 자료들을 확인해요. P2P업은 검증 자체를 안 하더라고요.”
 
 
  규제 무풍지대였던 P2P
 
  사실 돌아보면 P2P 업계에 대한 정부 규제는 미비를 떠나 방치 수준이었다. 이미 2018년부터 P2P 업체들의 사기가 기승을 부렸다. 업체들이 돌아가면서 금요일 오후면 문을 닫고 도망쳐버려 ‘금요일의 공포’라는 말까지 돌았다. 주말에는 경찰・검찰의 신고 절차가 빨리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노려서였다.
 
  사기 규모가 작은 것도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루프펀딩은 460억원, 아나리츠는 322억원, 오리펀드의 조성환과 더하이원의 이철규는 둘이 합쳐 239억원을 ‘먹튀’했다. 빌리는 162억원, 폴라리스는 50억원의 피해액을 냈다. 마찬가지로 50억원 이상의 돈을 가로챈 더좋은펀드의 경우 회장과 대표이사였던 허동호와 이민희는 2심 재판에서 각각 징역 5년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는 3000여명인데, 가해자는 1년 6개월만 감옥에서 살고 나오면 된단 얘기다.
 
  상황이 이런데도 본격적인 규제 법령은 2020년 8월에야 제정됐다.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온투법)’이다. 금융권 근무 경력이 있는 준법감시인을 채용하도록 하는 등 갖춰야 할 기준을 강화했다. 그나마 법 시행까지 1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지난 8월 26일에 유예기간이 끝났다.
 
 
  “금감원이 실기했다”
 
  유예기간을 둔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갑자기 업체들을 규제하면 최종적으로 투자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으니 업체들이 자율적으로 시스템을 정비할 수 있게 시간을 줬다는 것이다. 그 기간 동안 대출 잔액은 계속 늘었다. 업계 내부에서도 금감원이 유예기간을 길게 둬 오히려 실기(失期)한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P2P 금융이 처음 등장했을 때, 기자도 호기심을 가졌다. 잘 정착되면 일반 서민들을 위한 중위험 중금리 혹은 중위험 고금리 투자 상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후 빈번하게 터지는 사고들을 지켜보면서 P2P 금융에 대한 기대를 상당 부분 접었다. 업계 전반에 도덕적 해이 문제가 심각했다. 현 상황으론 고위험 중금리 상품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원인이 무엇일까.
 
  첫째, 김진수씨가 얘기해준 대로 사기꾼들이 대거 진출해왔다. 앞서 지적한 대로 규제가 허술한 틈을 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기 위해 작정하고 P2P 회사를 세운 경우다.
 
  둘째, 부동산 PF에 무리하게 손을 댄 회사들이 문제가 됐다. PF는 특정 사업을 두고 향후 기대되는 수익성을 평가해서 대출해주는 걸 뜻한다. 부동산 PF라면, 특정 건물을 짓는다는 계획을 두고 완공 시 기대되는 수익을 계산해 대출을 내어준다. 대출의 성격 자체가 이미 완공된 부동산을 담보로 해 내어주는 담보 대출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부동산 입지와 시행사, 건설사에 대한 평가, ‘첨담보’ 평가 능력, 부동산 시장 상황에 대한 시각 등 다각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회사 규모를 키우기 위해 무리해서 대형 부동산 PF에 발을 들인 업체들이 문제가 됐다. 테라펀딩이 대표적이다. 대출 규모를 늘리기 위한 의도였는지, 몇 번이나 시공이 엎어진 악성 공사 현장에도 대출을 내어준 걸 기자가 직접 확인했다. 2021년 7월 기준 테라펀딩 PF 대출의 연체율은 99.43%다. 모든 PF 상품이 연체 중이란 얘기다. 업계 1위였던 테라펀딩의 몰락이다. 연체가 계속되다 부실이 되어버리면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모두 날릴 수 있다.
 
  투게더펀딩의 김항주 대표도 “P2P 회사가 부동산 PF 대출을 취급하는 건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투게더펀딩도 한때 PF 상품을 다루다 이제는 부동산 담보에만 집중하는 상황이다.
 
 
  금융교육 부재
 
  셋째, 투자자들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투자는 잃지 않는 게 우선이다. 내가 어떤 상품에 투자하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몇백만원, 몇천만원을 투자한 이들이 꽤 있었다. ‘피자모’ ‘크사모’ 등 P2P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 접하는 정보만 보고 투자하는 식이다. 업체 직원들이 아이디를 여러 개 만들어 마치 일반 투자자인 척 띄우는 글을 쓰고 댓글을 달면 여기에 부화뇌동해 투자가 몰리는 경우가 많았다. 투자에 도움을 받으려고 가입한 인터넷 모임이 오히려 독이 된 경우다.
 
  어니스트펀드의 서상훈 대표는 가장 당황스러웠던 사례로 폴라리스펀딩을 들었다.
 
  “금을 담보로 펀딩을 한다는 겁니다. 금은 바로 현금화가 되는데, 이걸 담보로 대출을 해준다고 투자자를 모으고 여의도 IFC빌딩에 광고까지 하더라고요.”
 
  역시 사기극으로 판명 났다. 조금만 금융 지식이 있는 투자자라면 이런 상품에 투자할 수 없다. 청소년 시기부터 최소한의 금융교육을 해야 하는 이유다.
 
  김진수씨는 자신이 누구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진술서를 써서 강남경찰서에 보냈지만, 수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아 답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만간 한국에 들어오겠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투자자 모임이 꾸려지면, 자신이 갖고 있는 채권을 모임에 양도하겠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공범들이 추심을 피해 재산을 은닉했을까 우려된다고도 했다.
 
  블루문펀드 건을 수사 중인 검찰 관계자는 “김진수가 자기 책임을 희석하기 위해 물타기를 하는 것 같다”며 “밖에서 해명하지 말고 일단 들어와서 수사를 받으라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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