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本여행 하며 한글 캘리그래피 착상… 2000년 롯데칠성의 사이다 손 글씨 첫 시도
⊙ 소주 ‘참이슬’ ‘화요’,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제품명 ‘제일제면소’ 등 100여 편의 작품 써
⊙ 전시회 열며 순수예술에도 도전… 2010년 ‘뉴욕, 한글 꽃피다’ 전시회 성황
⊙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서예가들 대상으로 강좌… “法古創新만이 한글 살린다”
姜秉寅
⊙ 53세.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광고디자인과 졸업.
⊙ 디자인 전문지 《프로워크》 운영,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명예교사로 손 글씨 강의
(2012~2014년), 충남대 시각디자인학과 출강.
⊙ 전시: ‘뉴욕, 한글 꽃피다’ 초대전(2010년), 개인전 ‘봄날 오후 글꽃 하나 피었네’(2012년).
⊙ 수상: 대한민국 디자인 대상, 은탑산업훈장.
⊙ 現 강병인캘리그래피연구소 ‘술통’ 대표.
⊙ 소주 ‘참이슬’ ‘화요’,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제품명 ‘제일제면소’ 등 100여 편의 작품 써
⊙ 전시회 열며 순수예술에도 도전… 2010년 ‘뉴욕, 한글 꽃피다’ 전시회 성황
⊙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서예가들 대상으로 강좌… “法古創新만이 한글 살린다”
姜秉寅
⊙ 53세.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광고디자인과 졸업.
⊙ 디자인 전문지 《프로워크》 운영,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명예교사로 손 글씨 강의
(2012~2014년), 충남대 시각디자인학과 출강.
⊙ 전시: ‘뉴욕, 한글 꽃피다’ 초대전(2010년), 개인전 ‘봄날 오후 글꽃 하나 피었네’(2012년).
⊙ 수상: 대한민국 디자인 대상, 은탑산업훈장.
⊙ 現 강병인캘리그래피연구소 ‘술통’ 대표.
강 대표의 활동에는 경계가 없다. 〈엄마가 뿔났다〉 〈대왕 세종〉 〈정도전〉 〈내 남자의 여자〉 〈남자가 사랑할 때〉 같은 각종 드라마와 〈의형제〉 등 영화 타이틀, 온 국민이 사랑하는 소주 ‘참이슬’ ‘산사춘’의 로고, 100여 편의 책 제목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한글의 뜻과 글꼴의 아름다움을 살린 그의 순수작품은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며 호응을 얻고 있다. 한글을 읽지도 못하는 외국인들에게까지 팔린다고 하니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도 폭넓게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술통’ 작업실 내부는 온통 그의 손을 거친 한글작품들로 가득했다. ‘봄’에서는 나른한 봄 아지랑이가 이글거리고, ‘꽃’에서는 싱그러운 꽃향기가 느껴진다. 바람 풍(風)자를 쓴 부채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강 대표는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원리인 천지인(天地人)을 반영해 작업실을 나눴다”면서 “천은 갤러리, 지는 교육·소통·작업, 인은 서재로 쓴다”고 했다. 마감 미장을 하지 않은 칸막이용 시멘트 블록에다 먹으로 ‘청춘은 청산에서 꽃이 피고, 나그네의 발길은 돌고 돌아 앞산에서 머물렀네’라고 쓰니 험상궂은 시멘트 벽이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한글 家訓 써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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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통 작업실에서 순수작품을 쓰고 있는 강병인씨. |
“몇 가지 읊어드리면, ‘사랑 또 사랑’ ‘절대 긍정’ ‘천천히 가도 멈추지 말자’ ‘행복하면 됐지, 뭐’ ‘가족이 최고다’ ‘엄마 말 잘 듣자’ ‘쓰임 있는 사람이 되자’ ‘주변을 배려하며 웃으며 살자’ ‘이제 시작이다’ ‘더 사랑하자’ ‘입장 바꿔 생각하기’ ‘뛰어라, 펼쳐라, 날아라’ 등 광고 카피처럼 톡톡 튀는 것들이 많습니다. 옛날처럼 ‘근면 성실’ ‘겸손’ 등 딱딱한 한자어가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한글 가훈으로 소통을 하려는 노력이 담긴 문구입니다.”
캘리그래피(Callygraphy)란 아름다운(calli) 글씨(graphy)라는 뜻이다. 붓과 손으로 휘갈겨 쓴 듯한 아름다운 글씨를 뜻한다. 우리말로는 ‘손 글씨’라고 부른다. 캘리그래피가 우리 삶 속에서 대중화된 것은 불과 10년 전이었다. 캘리그래피는 영화 포스터에서부터 고유의 영역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상점 간판에서도 쉽게 손으로 휘갈겨 쓴 글씨를 볼 수 있게 됐고, 요즘 베스트셀러의 제호 중 30%는 캘리그래피로 쓴 책이다. ‘참이슬’과 ‘아침처럼’ 혹은 ‘참’ 소주 등 서민들이 즐겨 찾는 술도 예외가 아니다.
캘리그래피가 하나의 ‘문화 코드’로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강병인 대표 등 서울의 몇몇 캘리그래퍼 덕분이다. 이들은 캘리그래피라는 용어도 생소했던 시절부터 손 글씨의 상업화에 나섰다.
—한자 혹은 영어의 캘리그래피와 달리 한글 캘리그래피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인쇄체 글자인 ‘폰트(font)’가 아닌 캘리그래퍼의 붓에 따라 글자에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꽃’이라는 별다를 것 없는 글자 하나가 붓의 굵기를 어떻게 하느냐, 획 모양은 어떻게 꺾느냐에 따라 소박한 풀꽃이 되기도 하고, 꽃잎을 활짝 펼친 봄꽃이 되기도 하죠. 한글은 공간적으로나 구조적으로 천지인의 사상을 반영한 글자죠. ‘ㅣ’는 하늘, ‘ㅡ’는 땅, ‘·’는 사람을 나타냅니다. 한글 캘리그래퍼들은 한글의 조형성에 주목합니다. 한글 자체의 디자인 요소를 극대화한 것이 한글 캘리그래피의 핵심입니다.”
永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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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병인씨의 순수작품 〈봄날 긴 그리움〉과 〈꽃〉. |
“김인수 선생님이 서예반에 들어오면 꿀을 실컷 먹게 해주겠다고 하셨어요. 학교에서 선생님이 양봉(養蜂)도 했었는데, 시골이라 간식거리도 없으니 꿀의 ‘유혹’에 넘어간 거죠. 원래 그림 그리는 것을 더 좋아해서 화가를 꿈꿨는데 서예를 해보니 정말 좋더라고요. 칭찬도 많이 받았고요. 꿀과 칭찬이라는 ‘당근’이 있었기 때문에 서예반 대표를 해가며 즐겁게 했습니다.”
우연히 서예의 세계에 들어선 강병인은 중학교 때 ‘영원히 먹과 함께하겠다’는 다짐을 담아 스스로 ‘영묵(永墨)’이라는 호를 짓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서예를 접했으니 묵향(墨香)과 함께한 세월이 30년을 훌쩍 넘는다.
“정형화된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선생님의 ‘판본체’만 보다가 교과서에서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의 글씨를 보고 ‘나도 이 길을 가자’고 결심했어요. 어렸지만 추사의 글씨의 상형성을 보면서 ‘한자로는 내가 따라갈 수 없겠다. 나는 한글 서예로 일가를 이루겠다’는 꿈을 갖게 된 거죠. 마냥 글씨 쓰는 게 좋아서 중학교(용주중)에 가서도 늘 붓과 함께였고, 신기하게 늘 글씨와 인연이 닿았습니다.”
—군에서 붓글씨로 ‘대우’를 받진 않았나요.
“군(백두산부대)에서는 독학으로 배운 솜씨라 아무래도 거칠어 초기에는 고참병들에게 혼도 났죠. 근무를 마치고 새벽 1시까지 먹을 갈아 글씨를 쓰기도 했어요. 보직도 기록병이었고요. 연대 인사과에 있었는데, 글씨체가 예쁘다고 연대장 훈시와 표창장은 도맡아 썼죠.”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고무신 공장, 가구 공장 등을 전전하며 일할 때도 붓글씨를 한순간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강 대표는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다 망해보기도 했고, 빚지고 시작한 그래픽 잡지 《프로워크》가 폐간되기도 했다”면서 “그때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해 지금도 직원 없이 모든 걸 혼자 해결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했다.
日本에서 캘리그래피의 원형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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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병인씨의 드라마, 영화 포스터 작품들. 왼쪽부터 〈미생〉 〈내 남자의 여자〉 〈대왕 세종〉 〈의형제〉. |
“서점, 백화점, 식품점을 가도 다 붓글씨였어요. 그때 처음으로 서예가 상업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주변을 살펴보니 우리나라 방송국에서도 조금씩 쓰고 있더라고요. 그때는 캘리그래피란 개념 대신 방송국 그래픽 디자이너가 그때그때 필요한 글씨를 써서 사용하는 식이었어요. 광고회사 AE로 광고카피 시안(試案)을 만들면서 폰트와 붓글씨를 번갈아 써가며 광고주의 니즈를 살폈습니다. 그러다 IMF가 터지고 운영해 오던 디자인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마지막으로 이 일을 하다 죽자’라는 심정으로 달려들었던 겁니다. A제품과 B제품을 차별화하려면 캘리그래피밖에 없다는 확신을 한 겁니다.”
—캘리그래피 측면에서 보면, 일본의 히라가나·가타카나는 한글에 비해 표현이 다양한 것 같습니다만.
“일본은 중학까지 서예 과목이 정규 과목에 포함돼 있어 서예 문화가 굉장히 뿌리가 깊습니다. 그러나 캘리그래퍼는 우리보다 많지 않아요. 캘리그래퍼가 글씨를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랄까요. 개인적으로 히라가나가 감정이입(感情移入)이 잘 되질 않아요. 한자를 해체시켜 단순화한 획들이 공간성이나 입체성을 갖고 있지 못해 조형성이 떨어지거든요. 알파벳과 똑같이 한 획이잖아요. 한글과 마찬가지로 한자만 해도 수풀 림(林)자라면 공간이 있어 글자에 표정이 있습니다. 일본어에는 그런 구조가 없다는 거죠.”
일본에서 다양한 붓글씨를 보고 온 강병인은 한문은 다양한 서체가 많은데 왜 한글은 궁서체나 판본체밖에 없는지 한글 서예전을 다니며 고민했다. 그는 “구도는 왜 하나같이 똑같고 가지런히 예쁘게만 한 건지도 이해가 안 됐다”면서 “‘한글도 추사처럼 내용과 글귀에 맞게 글을 쓰면 안 되나’하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캘리그래피를 시작했는데 처음엔 쉽지 않았다. 광고회사에서 광고디자인을 하다 그만두고 처음으로 캘리그래피를 맡게 된 게 롯데칠성의 캘리그래피 작품이었다.
“2000년으로 기억해요. 롯데칠성의 사이다 ‘따자마자 축제’의 이벤트 광고를 제작했습니다. ‘따자마자’라는 느낌을 표현하려면 아무래도 인쇄체 폰트보다 붓글씨로 써야 ‘손맛’이 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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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0월 22일 문화체육부 명예교사로 태안 안흥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서예를 지도하는 강병인씨. |
“김희애(金喜愛)씨와 김상중(金相中)씨가 나온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타이틀을 제가 작업했습니다. 사실 정을영(鄭乙榮) PD는 ‘행복한 이기주의자’란 책 로고를 보여주며 전체를 발랄한 한글체로 써달라고 주문했어요.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니 중년 남녀의 정열적인 사랑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여자’를 한문으로 쓴 ‘내 남자의 女子’를 끼워 넣었어요. 두 한문이 합쳐지면 좋을 호(好)자도 되니 남녀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에 어울린다고 생각한 거죠. 한자도 적절히 사용하면 극적 효과를 냅니다.”
—캘리그래피 작업 과정은 보통의 디자인 작업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그 제품의 콘셉트를 파악하는 일이 가장 시간이 걸립니다. 먼저 붓으로 종이에 글자를 직접 써보면서 느낌을 잡아나가요. 물론 붓 아닌 다른 도구를 사용할 때도 많습니다. 한글 캘리그래피는 대부분 붓으로 쓰지만, 다양한 느낌을 내기 위해 브러시는 물론이고 휴지에 먹을 묻혀서 글씨를 쓰기도 해요. 그렇게 글꼴이 나오면 컴퓨터그래픽 작업을 통해 디자인의 세세한 부분을 완성합니다.”
강 대표는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이 정도는 내가 써도 되겠다는 등의 무시를 당할 때도 많았다”면서 “서예를 배웠다고 하더라도 글씨에 표정과 감성을 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제품의 타이틀이나 로고를 제작할 땐 작업기간이 꽤 길다면서요?
“드라마의 경우는 이미 스케줄이 짜여 있으니 데드라인을 맞춰야죠. 보통 두어 달 작업합니다. 계속 쓰고 리뷰하고 다시 쓰곤 하죠. 똑같은 글자를 400~500번씩 쓸 때도 있어요. 배우가 배역에 빠져들 듯, 나 또한 감정이입할 수밖에 없어요.”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캘리그래퍼로서 업계에 명함을 내민 것은 소주 ‘참이슬’,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억할 정도로 대중과 친숙해진 작품일 겁니다. 《행복한 이기주의자》는 다른 제목으로 발간했다가 판매가 잘 안 돼 제목을 바꿔 재출간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경우예요. 2006년 펴낸 책인데 20만 부 이상 팔렸고 지금도 팔리고 있다니 대단하죠.”
‘화요’ 캘리그래피 탄생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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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병인씨의 상업작품들. 왼쪽부터 화요, 참이슬, 산사춘, 제일제면소, 중구와 충무로. |
“광주요의 전통 소주 ‘화요(火堯)’도 처음에 한문으로 출시했다가 한글로 바꾼 제품입니다. 한문이 너무 어려워 사람들이 읽지 못한 거죠. ‘불처럼 일어났다가 점점 평화로워지면서 마음속에 꽃이 핀다’라는 한문의 의미를 살리려고 노력했고, 한글로 바뀌어 출시된 후 매출이 올라갔어요. 일본 최고의 캘리그래퍼 오기노 단세쓰(萩野丹雪)가 쓴 산토리의 세계적 위스키 ‘히비키(響)’처럼 술이 좋으면 그만한 글씨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전통 술과 도자기, 현대적 감성의 디자인과 마케팅이 어우러져 성과를 낸 사례라 디자이너로서 기억에 남습니다. 홍대 앞 주점에 가면, ‘화요’를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진로의 ‘참이슬’도 애주가들에게는 익숙할 것 같은데요.
“‘참이슬’은 20대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했기 때문에 처음 콘셉트를 잡을 때부터 유난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진로에 처음 보냈던 시안만 200장이 넘어요. 처음 보낸 시안 가운데 ‘술’이라는 상품에 맞게 술에 취한 듯 흘려 쓴 글씨체가 있었는데, 신선한 느낌이 약해 밀렸으나 아까운 글꼴이라 아직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작업한 제품 중에 주류가 많은데, 작업실 이름도 ‘술통’이네요.
“술이 과하면 나쁘지만 술이란 존재가 사람 간의 관계를 부드럽게 해주잖아요? 관계를 술술 풀리게 하죠. 지인들은 꽤나 반대한 이름인데, 의외로 한 번 듣고 잊어버리지 않아 지금도 고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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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8월 15일 영등포 핫트랙스 타임스퀘어점에서 강병인씨가 약 10m 길이의 한지에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그래요? 〈미생〉에서 장그래는 덜 성숙한 인간, 뛰어나지 못한 인간을 대표합니다. 장그래가 성공이라는 사다리를 오르려고 눈물겹게 노력하는 모습을 담아보려 했어요.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 그리고 자음과 모음 사이에 공간이 존재합니다. 글자와 글자 사이도 중요하지만, 초성·중성·종성 사이의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감정을 좌우하지요. 그걸 좁혀놓으면 답답한 사다리로 느껴지겠지만, 넓혀놓으면 내가 좀 더 뭔가를 추구할 수 있는 게 생기는 겁니다. ‘중구’는 소나무의 상징성을, ‘충무로’는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기상이 뻗어 올라가도록 표현합니다.”
강 대표는 얼마 전 CJ의 ‘제일제면소’도 제작했다. 그는 “전통 궁서에서 파생한 글씨로, 손으로 만드는 전통 있는 정직한 손맛을 표현했다”면서 “어렸을 적 국수 만드는 집의 풍경을 생각해 일부러 글씨를 흘려 쓰지 않았다”고 했다.
강 대표는 “캘리그래피는 제품에 표정과 냄새, 감성을 입히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는 “캘리그래피의 1차 목표는 제품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드러내 신뢰도를 높이고 결국 구매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계적인 폰트와 예술적인 서예가 놓쳤던 신선함, 생명력, 인간적 매력을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게 캘리그래피의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강 대표는 “직업 특성상 하루 만에 결과물을 내놔야 할 때도 있는데 그것의 허술함은 소비자들이 먼저 알더라”면서 “캘리그래피 역시 희로애락 등 사람을 드러내는 글이기 때문에 지식이나 마음을 정화하는 단계가 전제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발한다”고 말했다.
—영화 타이틀 〈의형제〉를 쓰기도 했는데, 일반 상품보다 작품 가격이 더 높을 것 같은데요?
“영화나 드라마가 제품 캘리그래피보다 보수가 낮을 때도 많습니다. 영화 제작자들이 영화 성공에 부담을 갖는 바람에 낮은 단가를 제시해요. 맨 처음 관객과 만나는 것이 영화 제목 캘리그래피인데, 기업체 상품만 못해요. 그들에게 계약단계에서 성공보수를 요구해도 봤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습니다(웃음).”
‘한글세움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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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월 14일, 뉴욕 퀸스에 있는 예감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강병인씨의 전시회(왼쪽). 전시회에 출품된 강병인씨의 작품 〈봄서다〉(철물제작 이근세, 2010). |
“우려와 비판이 섞여 있었죠. 심하게 말하는 분들은 ‘한글 서예를 망가뜨리고 있다’고도 했고, ‘저게 뭐 하는 짓이냐’는 막말도 했어요. 어떤 분야든 기존의 틀을 깨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당대 예술가들의 몫인데, 계속 전통에만 가두려고 하는 게 저는 답답했어요. ‘봄, 꽃, 춤, 숲 등 내 순수작품을 통해 한글의 새로운 꼴과 조형적 가치, 아름다움도 보게 될 거다’라는 확신을 갖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한글을 자꾸 못났다고 하는 것에 대한 오기(傲氣)였어요.”
결국 강병인의 도전은 통했고, 2000년대 중반 이후 대한민국에는 캘리그래피 열풍이 시작됐다. 전통 서예를 고집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강병인을 인정하고 그가 걸어온 길을 뒤따르려 하고 있다.
“2013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최고 서예가들을 대상으로 캘리그래피 강좌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가장 기분 좋은 건, 예전에는 서예가들 사이에서 한문 서예를 해야 더 가치 있고 인정받는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다들 ‘한글, 한글’ 하고 있다는 거예요. 한편으론 ‘내가 그 길을 앞서 가서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해요.”
—상업적인 작품 말고 순수작품들도 꽤 많이 눈에 띕니다. 상업적인 작품들과 어떻게 다른 건가요.
“서법은 기본적으로 같아요. 문자를 해석하거나 표현하는 건 같은데, 순수서예는 정신, 상업작품은 디자인적으로 접근합니다. 소비자의 니즈나 제품의 성격, 마케팅 전략이나 패키지 디자인을 고려하지요. 작가의 시선과 소비자의 시선, 제품을 만든 이의 시선이 각각 다르니 내 작품이 아닌 이상 다른 이의 시선을 반영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글을 활용한 조형물을 만들어 거리 곳곳에 전시하는 ‘한글세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죠?
“한글로 된 한국의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어요. 외래어가 프린트된 옷은 자연스럽게 입고 다니는데 한글은 피하더라고요. 우선 한글을 이미지화해야 한다고 봐요. 도심에 우뚝 솟은 건물 앞을 보면 생경스러운 외국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잖아요? 그게 한글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바람이 있다면 인천공항이나 시청처럼 외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에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한글 조형물을 세우고 싶어요.”
강 대표는 “얼마 전 ‘한글세움 프로젝트’를 위해 봄이라는 글자 원도(原圖)를 조각가를 통해 철제로 제작했더니 놀랍게도 거기에 ‘사람’이 들어 있었다”면서 “2010년 뉴욕전시회 때 미국 학생이 ‘누나가 아침에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한글이 이처럼 우주 만물의 철학을 담은 오묘한 문자”라고 했다.
—유관순(柳寬順) 열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내 귀와 코가 잘리고/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을 썼지요?
“작년 광복절 마포구청과 함께 ‘독립열사의 말씀 강병인의 글씨로 보다’라는 특별전을 상암동 옛 일본군 관사(상암월드컵파크10단지 부엉이공원 내)에서 한 달 동안 했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모진 고문 속에 스러져 간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유언이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유관순 열사의 살아 있는 육성을 듣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비수같이 비장한 느낌이 나도록 표현했습니다.”
姜秉寅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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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트아동복지회 주최로 열린 2013년 국외장애입양인 및 가족 초청 모국연수인 ‘2013 Happy Together’에서 초청자들이 강병인씨의 지도로 붓글씨를 ‘그려봤다’. |
“캘리그래피가 한글 대중화에 작은 역할을 했다지만 그러다 보니 실력이 없는 이들도 뛰어들어 가르치려 합니다. 또 하나, 상업적으로 의뢰받은 작품은 작가의 의도보다 오너의 취향에 이끌리는 경우가 많아요. 친숙해진 만큼 귀하게 지켜야 하는데, 그런 점이 아쉽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루하고 고리타분하게 여겨지고 있는 서예를 재미있게 가르쳐서 알려야 한다는 게 강 대표의 또 다른 고민이다. 그는 “캘리그래피의 기본인 서예를 탄탄히 해야 전통을 깨뜨리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뜻)이 가능하다”며 “우리나라 전통 서예의 명맥이 이어져야 캘리그래피와 서예, 모두 좋은 방향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서예를 바탕으로 기본을 다져야 진정한 캘리그래퍼의 길이 열립니다. 그런데 서예라는 것이 단박에 되는 것이 아니죠. 때문에 일단 많은 어린이가 서예에 재미를 느끼고 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 현재 서예 교육은 전통과 법도를 너무 따지다 보니 재미가 없어요. 법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일단 흥미를 불러일으킨 후 법도를 가르쳐도 늦지 않는다는 거죠. 문화체육부 명예교사로 임명된 후 자청해서 초등학교에 가서 캘리그래피 수업을 열고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잖아요.”
—캘리그래피 작품들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일반인들의 관심도 부쩍 늘고 있습니다. 캘리그래피를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캘리그래피의 발전을 위해서 능력 있는 신진 디자이너의 양성도 중요하지만, 일반인들도 생활 속에 캘리그래피를 활용하면 훨씬 감각적으로 장식할 수 있어요.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수강자들이 부쩍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술통’에서는 캘리그래피 일반 강좌를 통해 1대 1로 서예의 기본(8주)부터 가르치고 있습니다.”
강 대표는 “지금은 ‘캘리그래피’ ‘손 글씨’ 등 용어 자체도 혼선이 많지만, 국립국어원에서 ‘멋글씨 예술’로 순화했다”면서 “2014년 10월 한글 캘리그래피협회가 창립되면서 현안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강병인 대표는 “추사 김정희의 명언인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책을 많이 읽고 교양을 쌓아야 글씨에 문자의 향기가 나고 책의 기운이 풍긴다는 뜻)’를 마음에 새기고 작업한다”면서 “끊임없이 정진하려고 한다”고 했다.
“제가 쓴 글이 세상을 어떻게 장식할지를 생각하면 막 쓸 수 없어요. 예전에 쓴 거 보면 상업적으로 쓴 글씨는 ‘좀’ 볼 만한데, 작품으로 쓴 것은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어요. 하지만 전 다 오픈하죠. 그것도 제가 살아온 과거이고 아직 공부를 하는 중이니까 부끄러울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누가 부족하다고 말하면 더 즐거워요. 공부할 게 생기는 거잖아요.”
강 대표의 작업실 ‘술통’은 3월 초 경복궁 근처로 옮겼다. 강 대표는 “위대한 한글을 디자인하고 만드신 ‘세종 임금’이 계셨던 곳으로 옮겨 더 좋은 기운을 받고 싶다”면서 “왕이 태어나신 곳에 작업실 ‘술통’을 들고 가는 게 민망해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갈등이 생긴다”고 했다. ‘한글의 아름다움이/온 세상에 피어나는 그날까지/나의 붓은/춤추리라.’ 강 대표의 명함 글은 ‘아름다운 한글’을 지키려는 그의 ‘독립선언서’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