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계 최대 여의도순복음교회 이끄는 李永勳 당회장 목사

“대형교회의 적극적인 나눔은 시대적 요구다”

  • 글 :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ksdhan@chosun.com
  •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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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순복음교회가 늘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 힘없는 자들이 사랑받고 대우받는 서민교회로 머무르게 하고 싶다.

⊙ 교회 예산의 3분의 1이 넘는 연 400억원 이상을 사회 공헌 활동으로 써
⊙ ‘조용기 목사는 나의 영적 스승’, 세상의 법으로 심판하려는 것은 유감
⊙ ‌큰아들 국내에 들어오면서 여러 문제 발생 안타까워… 형제들 싸움 어느 편도 들 수 없어
⊙ ‌담임목사 취임 후 교회 모든 재산 재단법인화… 교회 사유화 불가능하게 만들어
⊙ ‌“‘진보적 보수’라는 교회 안팎의 평가에 나도 동의한다. 교회는 늘 변화해야 한다”
⊙ ‌평양에 짓고 있는 조용기 심장병원 하루속히 공사 재개됐으면

이영훈
⊙ 59세. 연세대 신학과 졸업. 미국 템플대 종교철학 박사.
⊙ 미국 워싱턴순복음교회·일본 순복음도쿄교회·미국 LA순복음교회 담임목사, 국제신학연구원 원장,
    한세대 교수, 미국 베데스다대학교 총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CCK) 공동회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 등 역임.
⊙ 저서 : 《성령과 교회》 《영적 성장의 길》 《감사의 기적》 등 다수.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조용히, 그러나 확 변했다. 일요일이면 교회를 가득 메우는 신자들, 새벽부터 뜨거운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교회. 그 외양은 과거나 현재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신도 수 50만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이 초대형 교회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과거에는 신도들의 신앙적 열정이 뿜어내는 뜨거움이 교회와 그 주변만을 맴돌았다면, 지금은 그 뜨거움이 교회 울타리를 넘어 세상 구석구석을 따뜻하게 데워 주는 온기(溫氣)로 진화했다는 점이 이 교회의 놀랍게 달라진 점일 것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지난 3월 말 부활절을 맞아 “매년 교회 예산의 3분의 1을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구제(救濟) 및 선교 사업에 쓰겠다”고 대내외에 천명했다. 구제와 선교 가운데 방점이 찍혀 있는 단어는 ‘구제’다. 올해 부활절 기념 예배가 있던 날에는 ‘이웃사랑 대축제-사랑의 상자 전달식’을 열어 종교와 상관없이 형편이 어려운 4500가정에 식료품 등 생필품을 담은 ‘사랑의 상자’를 전달했다. 이날 생필품 구입에 쓴 예산은 1억2000만원이었다. 구제와 선교에 힘쓰겠다는 약속과 동시에 그 실천의 장(場)도 함께 만들었던 것이다.
 
  교회 예산의 3분의 1을 구제와 선교에 쓰겠다는 약속이 세상의 이목을 끈 이유 중 하나는 결과적으로 비교적 구체적인 예산액을 제시했다는 점과 그 집행 예산규모가 웬만한 대형교회의 1년 예산을 훨씬 상회하는 액수이기 때문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1년 예산은 1200억원 정도라고 한다. 구제와 선교에 연간 400억원 이상을 쓰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런 예산을 바탕으로 사회적 구제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교회 창립 55주년 행사가 열린 지난 5월 19일에는 영등포실버케어센터 등 사회복지단체 55곳과 대학생 55명에게 각각 100만원씩의 후원금과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 행사에 총 1억1000만원을 썼다. 지난 6월 21일에는 서울시 노숙인들에게 여름옷 5000벌을 기증했다. 이틀 후인 6월 23일에는 6·25 참전용사 295명에게 격려금 30만원씩을 전달했다. 이외에도 다문화가정 자녀에 대한 장학금 전달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구제 활동은 그 보폭을 점차 넓혀 가고 있다. 교회 예산 3분의 1을 구제와 선교에 쓰겠다는 약속을 하나하나 실천해 가고 있는 것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이런 조용하지만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는 이가 조용기(趙鏞基) 목사에 이어 2008년 5월부터 담임목사로서, 당회장으로서 이 교회를 이끌고 있는 이영훈(李永勳) 목사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부임 후 지난 5년 반 동안 나눔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사회적 약자를 ‘섬기는’ 교회로의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오면서 이 목사는 전임(前任) 조용기 목사가 정통 보수 우익 성향이 강한 목사로 평가받아 온 데 비해 진보적 보수 성향의 목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1월 6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월간조선(月刊朝鮮)》과 만난 이 목사는 “사회구원, 생태계구원 등으로의 기독교인의 관심 변화를 강조하다 보니 진보적 보수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그런 평가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또 “조용기 목사님은 재 개인적으로 영적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분”이라면서 조 목사와 관계된 법적 사건들에 대해 “그런 분을 세상 법의 잣대로 판단하려는 행위에 대해서는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자신이 이끌고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대해 이 목사는 “우리 교회가 늘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 힘없는 자들이 사랑받고 대우받는 서민교회로 머무르게 하고 싶다”면서 “알게 모르게 서민보다는 중산층, 좀 더 가진 자들의 교회로 중심축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도 했다.
 
  조용기 목사 가족들 간에 벌어진 다툼에 대해서 이 목사는 “조 목사님의 큰아들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해 안타깝다”면서 “형제들 싸움에 어느 편도 들 수 없는 게 내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또 자신이 담임목사에 취임한 후 “교회의 모든 재산을 재단법인화함으로써 교회 재산의 사유화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어 놨다”고 덧붙였다. 이 목사는 인터뷰에서 조용기 목사와의 관계, 한국 교회의 문제, 남북관계, 목회 방향 등에 대해 진솔하게 토로했다.
 
 
  많은 사람이 몰려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
 
여의도순복음교회 전경.
  —5년 반째 교회를 이끌어 오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교회를 이끈다는 중압감은 없습니까.
 
  “기독교에 ‘은혜’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의미하죠. 제게 하나님의 그런 은혜가 없었다면 중압감을 견뎌 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취임한 날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이 교회에 와서 목회를 하면서 느낀 하나님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요.
 
  “저는 취임하고 첫 설교할 때부터 지금까지가 다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주일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오는 것이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거고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많은 사람이 주차장 시설이 없어서 교회 주변을 20~30분 돌다가 와야 하죠. 오면 자리가 없어서 부속 성전으로 가야죠. 막 몰렸다가 떠밀려 나가듯이 나가야 하고요. 그런 불편함이 있어도 수많은 사람이 몰려옵니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잘난 것도 없는데 그 은혜로 교회가 움직여 나가고 있고 큰 무리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포털에서 인물검색을 하면 세계 최대 교회를 이끄는 목사님이 먼저 나오는 게 아니라 영화배우, 가수 등 다른 이영훈씨들이 먼저 나오더군요. 너무 조용하게 지내시는 것 아닌가요.
 
  “성경적으로 보면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그것이 큰 문제는 없다고 보고요.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나타나면 좋은 것 아닌가요? 제가 ‘은퇴하고 난 후에 이 교회에서 어떤 목사로 기억되길 원하십니까’ 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은퇴하고 난 후에 이 교회에서 내 이름이 기억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만 남기를 원한다’고 말이죠. 그 마음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조용기 목사에 이어 교회를 이끌게 됐을 때 우리 종교계의 거목(巨木)인 조용기 목사의 큰 그림자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까.
 
  “그 누구라도 이 자리에 서게 된다면 부담이 컸으리라 생각합니다. 조용기 목사님께서 워낙 세계적으로 크신 분이므로 저는 목사님의 비교 대상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취임 시부터 지금까지 조용기 목사님께서 저를 아버지처럼 이끌어 주시고 지도해 주셔서 큰 부담 없이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조 목사님이 어떤 지도를 해 주나요.
 
  “저를 늘 격려해 주시고요. 제가 목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 조 목사님이 제게 지침으로 주었던 것 중 하나는, ‘이영훈 목사 설교가 너무 빨라서 나이 많은 사람들이 듣기에 내용을 놓칠 수도 있으니 천천히 하라’고 하셨어요. 원래 제 설교 스타일이 굉장히 빨랐거든요. 빠른데 강단에 올라가서 말을 천천히 하는 훈련을 하다 보니까 요즘 와서는 다들 편하다고 합니다. 그때는 젊은 사람들한테 하듯 속사포처럼 쏟아붓는 설교를 했죠. 우리 조 목사님도 젊은 시절에는 그랬거든요. 조 목사님 말씀을 귀담아 듣고 곰곰이 생각하면 저에게 크게 도움을 주시고 유익을 주시는 일들이 많아요.”
 
  —한동안 개그맨들이 조 목사님 성대모사를 많이 했는데 듣기에 어땠습니까.
 
  “언젠가 본 적이 있는데 그 내용에 따라서 조금 불편할 때도 있고요. 왜냐하면 어르신네에 대해서 좋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희화화한다고 그럴까, 그럴 때는 좀 불편한 맘이 들어요. 우리나라가 어르신에 대해 존경하는 분위기는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09년 5월 《순복음가족신문》과의 취임 1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조용기 목사님이 계시는 한 언제나 부목사일 뿐”이라는 심정을 밝혔는데 지금도 그 마음으로 목회를 합니까.
 
  “제가 2008년 5월 취임한 후 교회 대표 되시는 당회 장로님들 앞에서 ‘부목사의 심정으로 조용기 목사님을 잘 모시고 목회하겠다’고 했는데 뒤에서 ‘몇 달이나 가나 보자’고 했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심정으로 조 목사님을 모시고 성도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몇 달이나 가나 보자’ 하는 말은 무슨 뜻이었습니까.
 
  “그것은 일반적인 이야기 같아요. 우리나라 대형교회에서 후임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 다들 갈등이 생겼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영훈 목사도 이제 얼마 가지 않아서 원로 목사님과 갈등이 생기지 않겠나’ 하는 추측을 해서 그런 말들을 했던 거죠.”
 
 
  사회구원이 나눔이자 섬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예배당 내부 모습.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혹시 ‘이것만은 바꾸고 싶다’ 하는 것은 없었습니까.
 
  “바꾼다기보다는 우리 교회가 늘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 힘없는 자들이 사랑받고 대우받는 서민교회로 머무르게 하고 싶은데, 알게 모르게 서민보다는 중산층, 좀 더 가진 자들의 교회로 중심축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아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회의 나눔을 강조하시더군요.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부유한 자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놓아 가난한 자를 섬기는 나눔의 공동체였어요. 이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경이롭게 비쳤고 그로 인해 교회가 사회에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연중 수시로 교회 내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나눔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나눔의 강조와 실천이 그동안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해 온 기존 목회 방향에서 전환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요.
 
  “기존에도 나눔 사역이 계속됐는데요. 다만 그 중심이 60, 70년대에는 성장과 부흥에 포커스 맞추고 개인구원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 교회가 성숙되고 나서 다음 단계는 사회구원입니다. 사회구원이라는 것은 나눔입니다, 섬김이고요. 우리 한국 교회가 꼭 회복해야 할 것이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교회입니다. 기독교 영향력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영향력으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을 하죠.”
 
  —교회의 1년 예산이 1200억원으로 알려져 있고 그중 3분의 1을 사회공헌 활동에 쓴다면 400억원 이상을 쓴다는 말인데요.
 
  “그 정도 되죠. 400억 좀 넘게 구제선교비로 책정이 돼 있습니다. 저희 교회가 출산장려금 같은 것을 시행해 보니까 굉장히 도움을 받아요. 아기 가진 엄마들한테 순복음교회 나가면 교회에서 출산장려금 준다는 소문이 퍼지니까 전도에 도움도 되고요. 사회공헌 활동은 결국 우리 교회에도 도움이 된다는 거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선교 활동을 소개해 주시죠.
 
  “교회에 구제위원회가 있어서 1년 내내 극빈자를 위한 사랑나눔과 무료심장병수술, 출산장려금 지급, 의료센터 및 이동병원 차량을 통한 무료진료 활동, 전국의 미자립 농어촌교회 돕기 등 다양하게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교회가 만든 NGO(비정부기구) 단체인 굿피플과 엘림복지회, 영산자선재단 등을 통하여서도 나눔 활동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교회 예산의 3분의 1을 구제와 선교사업에 쓰겠다고 했을 때 당회에서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반발은 없었습니까.
 
  “일부 장로님들의 우려하는 시선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장로님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그런 결정이 평소 꿈꿔 온 목사님의 목회 방향이었는지요.
 
  “대학교 다닐 때 난지도에 있는 철거민촌에 나가 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 이처럼 비참하게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이웃이 있음을 보고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게 되면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적이 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최근 들어 사회공헌 활동에 부쩍 관심을 기울이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오래 전부터 사회공헌 활동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성장기에는 자체적인 성장에 더 관심이 가 있었던 것이고, 이제 안정기를 맞았으니 사회공헌에 더 주력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사회공헌 활동이 다른 대형 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봅니까.
 
  “대형교회들이 물량주의로 인해 공격과 비판을 받아 온 게 사실이긴 합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는데 그동안 너무 대형교회의 부정적인 면만 이야기돼 온 측면이 있습니다. 대형교회만이 할 수 있는 사회공헌 활동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뿐 아니라 대형교회들도 이 부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최근 광림교회가 사회복지관을 지어 지역을 섬기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죠.”
 
 
  정치인 찾아오면 여야 가리지 않아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예전 대조동 시절 천막교회 모습.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데,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이 우리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돼야 한다고 봅니까.
 
  “가진 자가 많이 갖게 된 것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들의 리더십 아래에 많은 사람이 함께 노력하고 희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따라서 가진 자는 과감히 내놓고 나누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미국이 오늘같이 부강한 나라가 된 배경에 가진 자가 내놓는 기부문화가 있어요. 세계 최고의 재벌이었던 록펠러가 죽기 전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았는데 자신이 기부한 금액이 당시 일본 국가 예산의 8배였다고 합니다. 이 같은 아름다운 전통이 오늘의 미국사회를 이룬 힘인 것이죠.”
 
  —기독교 지도자로서 ‘경제 민주화’라는 말을 어떻게 바라보시죠?
 
  “경제 민주화는 이렇게 간단히 설명할 수 있죠. ‘더불어 함께 잘사는 사회’를 이루는 것이죠. 초대교회처럼 교회 공동체 내에 궁핍한 사람이 없었던 아름다운 사랑 나눔의 실천이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경제 민주화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더불어 함께 못사는 사회’가 될 가능성도 있는데요.
 
  “그렇죠. 하지만 제가 말하는 초점은 가진 자가 내려놓는 걸 말하는 거죠. 가진 사람들이 내놓는 문화가 정착되기 전에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답이 없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 10위권에 올라온 상황에서도 가진 자에 대한 편중은 앞으로 심각한 저항과 문제를 가져올 겁니다. 사회주의적인 그룹들이 생겨나고 강해지는 것은 그 만큼 빈부 격차가 컸다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세계나 마찬가지입니다. 남미 해방신학이 왜 생겨났습니까. 가난한 사람은 너무 가난하고 가진 자는 너무 많이 가지니까 참된 해방은 부의 공동 분배로부터 온다는 생각에서 생겨난 것이거든요. 우리나라가 구조적으로 자꾸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만들어 내고 있는 상황도 봐야 합니다. 그거를 못 보고 있거든요. 못사는 사람들이 많으면 자연적으로 사회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어요. 이 사람들은 같이 잘살자는데 무조건 동의할 수밖에 없죠.”
 
  —혹시 젊은 시절에 남미 해방신학이나 우리나라 민중신학에 관심을 갖고 접해 본 것 아닙니까.
 
  “민중신학에 관심을 두었다기보다는 잘 알고 있고, 제가 알고 있는 분들 중 그쪽에 심취한 분들이 있었는데요. 저는 신학적·사상적인 차원에서가 아니고 젊은 시절 가난한 이들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가져본 적이 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대학 시절 철거민촌에 봉사 활동을 갔을 때 저는 해방신학, 민중신학을 떠나서 같은 서울 하늘 아래서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고 기독교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같은 서울 시내에 이렇게 차이가 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다.”
 
  —대형교회, 그것도 초대형교회이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 등 큰 선거가 있으면 많은 정치인들이 찾아올 텐데 어떻게 대처하는지요.
 
  “정치인들이 찾아 올 때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교회를 찾아온 손님으로서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또 소개를 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전부이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대한민국 사회에서 교회가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봅니까.
 
  “교회와 정치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복지, 행복을 위한 일에는 적극 협력할 수 있으나, 권력의 남용으로 인한 불의에는 강력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설교에서 정치 얘기는 아예 안 하나요.
 
  “거의 안 합니다. 왜 안 하느냐면 기독교의 복음만 전해서 복음이 바로 들어가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바로 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담임목사 후보 추천 사실 몰라
 
교회 창립 55주년을 맞아 지난 5월 19일 사회복지단체 55곳과 대학생 55명을 선정해 후원금 및 장학금 100만원씩을 전달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나눔 실천을 위해 교회 예산의 3분의 1인 400억원을 매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선교와 구제에 쓰겠다고 천명했다.
  —주로 대형교회에서 벌어지는 ‘교회세습 문제’가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는 벌어지지 않은 이유는 뭣 때문이라고 보는지요.
 
  “조용기 목사님의 업적 중 큰 업적의 하나로 꼽는 것이 민주적 절차에 따른 후계자 선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회에서 추천된 7명의 후보에 대해 검증을 거쳐 운영위원회에서 1차 투표를 한 후 다수 득표자 3명을 선정합니다. 이 3명을 놓고 다시 전 당회원의 투표를 거쳐 최다 득표한 사람을 후임으로 선정한 후 전체 성도의 투표를 거쳐 최종적으로 후임을 확정했습니다. 이 같은 대형교회의 민주적 후임선정 절차는 국내외에서 그 전례를 찾기가 힘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대형교회 후계자 선정에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담임목사 후보 당사자로서 당시 심정은 어땠습니까.
 
  “저는 사실 그때 미국에 가서 사역하고 있어서 추천된 줄도 몰랐어요. 언제 알았냐면 1차 투표에서 최다표가 나왔다고 연락이 와서 알았어요. 저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추천위원회에서 저를 추천한 거죠. 세 사람을 놓고 투표할 때는 사람마다 ‘이 사람이 좋습니다. 저 사람이 좋습니다’ 하니까 조 목사님이 ‘세 사람 다 똑같은 내 제자니까 난 누가 돼도 좋으니 여러분들이 기도하고 뽑으라’고 하셨어요.”
 
  —세계 최대 교회라는 이면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임으로써 그만큼의 갈등도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당회장의 역할 중 갈등을 조정하는 일도 중요한 일인 것 같은데 어떻게 갈등을 조정하는지요.
 
  “당회장의 역할은 오케스트라 지휘자같이 조화와 협력을 통해 하모니를 이루어야 한다고 봅니다. 주로 양측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상대편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권면하죠. 서로의 의견이 강할 경우 조정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교회가 크다 보니 교회 내 조직 간 행정적 절차로 인한 갈등도 상당할 텐데요.
 
  “저희 교회는 다행히 당회 기능이 잘돼 있어요. 1000명이 넘는 장로님들이 각 분과위원회에 소속돼 전문성을 가지고 다 처리하기 때문에 사실 일일이 간섭하는 게 아니라 저는 방향만 주고 나머지는 장로님들이 다 협력해서 하시고 있습니다.”
 
  —조용기 원로 목사와 그 가족들에 대한 일부 신도들의 고발 같은 행위가 있었는데요.
 
  “이 같은 일이 생겨난 것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교회 문제는 교회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했어야 하는데 세상법정까지 나가게 되어 참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조 목사님이 기소까지 됐는데요.
 
  “제 입장은 변함이 없는데, 첫째로 기소된 것은 심히 유감이고요. 또 하나는 과거사를 가지고 문제 삼기 시작하면, 우리 교회가 미래 지향적이 되지 않고 과거 회귀형이 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교회 일을 교회에서 해결하는 게 아니라 법정으로 끌고 가게 된 아쉬움과 또 법정으로 갔을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를 보는 시선 등의 복합적 요인 때문에 저는 개인적으로 안타깝습니다. 물론 그분들이 나름대로 주장하는 것에는 자기들 나름대로 교회 내에서 하는 것이라고 주장은 합니다만, 제가 목회하는 입장에서 볼 때는 꼭 그렇게 했어야만 했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실제로 그 도화선은 목사님이 1차 책임이 아니라 큰아들이 외국에서 들어오면서 시작된 것인데, 조 목사님이 그 당시 결재권자였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참 안타깝습니다.”
 
 
  “반대파들이 내 뒤를 캤지만…”
 
지난 8월 24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하디 1903 성령한국청년대회’에 참석해 설교하고 있는 이영훈 목사.
  —내부적으로는 순복음교회에서 큰어르신이고 외부적으로는 세계적인 종교지도자인 조 목사님의 가족 간 갈등과 다툼이 있는 것으로 많이 비치는데, 그럴 때 이 목사께서는 어떤 스탠스를 취합니까.
 
  “담임목사로서 제일 어려운 게 가족 문제입니다. 조 목사님께서도 가족 문제에 당신은 중간에서 가만히 있으라 하시죠. 왜냐하면, 첫째가 둘째에게 국민일보를 내려놓으라고 하고 둘째는 방어 차원에서 첫째를 공격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까 일파만파로 커지거든요. 그게 양쪽에 동조하는 분들이 알게 모르게 그룹이 지어지고, 그러다 보니까 충돌이 커진 거죠.”
 
  —교회를 사유재산으로 생각한 데서 그런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닙니까.
 
  “글쎄요, 뭐… 그런 문제를 만들어 낸 분들은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죠. 저는 우리 교회의 재산을 제가 취임한 이후에 다 재단법인화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정부 관련 부처에서 다 들여다보지 않습니까.”
 
  —교회의 모든 재산을요?
 
  “네. 땅, 건물 등 모두요. 그러니까 사유화가 불가능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조 목사님도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고요. 제가 취임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것이 재단법인으로 만들어서 다 거기다가 묶은 겁니다. 우리 재단법인으로 큰 게 두 개가 있습니다. 순복음선교회하고 여의도순복음재단하고 두 개 있습니다. 양쪽 재단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제가 양쪽 재단에 이사장을 하고 있고요. 지금 염려하는 대로 사유화 시도는 불가능합니다.”
 
  —조 목사님을 따르는 일부 신도들이 목사님을 물러나게 하려 한다는 소문도 있었는데요.
 
  “그 같은 악성루머를 들은 적이 있어요. 루머는 루머일 뿐이죠. 들리는 소문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면서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런 악성 루머가 나왔을까요.
 
  “제가 형제싸움에 중립에서 한쪽 편을 안 들어 주다가 보면 저한테 불만이 생기겠죠.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교회 담임이 된 게 제 뜻대로 된 것도 아니고, 성도들이 투표해 세워서 제가 서게 된 겁니다. 저는 제게 맡겨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고, 성도들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소용돌이가 있을 때 물러나면 그 후의 혼란은 누가 수습합니까. 뭐 저에 대해서 벼의별 걸 다 뒷조사하고 해요. 뭐, 과거 10년치를 다 했다는데 딱 하나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뭡니까.
 
  “2000년도에 집사람이 주택청약을 부었어요. 집사람이 대학교수로 있을 때죠. 그래서 5년 후에 당선이 돼 가지고 집사람 이름으로 집 한 채 산 게 나왔어요.”
 
  —집 한 채 산 게 뭐가 잘못입니까.
 
  “아니, 그분들은 말을 만들려고 찾다가 보니까 그렇게 집이 세 채고, 네 채고 1년에 100억을 모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중에 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어요. 그런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듭니까.
 
  “들긴 드는데요. 그런 주장들을 누가 믿습니까. 제가 1년에 100억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웃음). 불가능하고요. 저희 교회는 예산 공개가 원칙이라 예산 운영 투명성 때문에 개인적으로 교회 돈에 손을 못 대게 돼 있어요.”
 
  —최근에 조 목사님의 큰아드님 혼외자 문제 때문에 시끄러웠을 때 신도들은 어떤 입장을 보이던가요. 오히려 다른 고소 고발 문제보다 그 문제에 사람들의 관심이 더 쏠려 있었는데요.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자면 정치적으로 하도 싸우고 하는 게 피곤해서인지 그런 뉴스가 나오면 관심이 더 그리로 쏠리는 것 같아요. 성도들은 안타깝게 생각해서 더 기도를 하죠. 그렇다고 해서 크게 동요되는 것은 없었고요.”
 
 
  “나의 영적 아들이자 제자”
 
이영훈 목사가 지난 3월 7일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설교하고 있다.
  —지난 10월 20일 주일 설교에서 조용기 목사께서 자신의 거취 문제를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그만두라고 하시면 그만둘 것이고 당회장 이영훈 목사님이 ‘이제 그만두시오’ 하면 그만둔다”면서, “그 외에는 나의 시체를 메고 이 강단 밑에 내려가야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것은 강단에서 설교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신 것인데 목사의 강단권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그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만일 어느 교회나 교회 목회자의 강단권에 대해 문제를 삼는다면 총회에서 총회헌법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고 봅니다.”
 
  —조 목사님의 가족들과는 잘 지내는지요.
 
  “목사님 가족과는 잘 지내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큰아들이 일본에서 귀국한 이래 형제들 간에 많은 일들이 생겨나게 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조 목사님은 이 목사님에 대해 “나의 영적 아들이자 제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에게 조용기 목사는 어떤 존재입니까.
 
  “저는 4대째 장로교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평양에 살았던 제 증조부께서 선교사가 들어오셨을 때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었고, 독실한 신앙을 가진 할아버지께서 1948년 6월 전 가족을 데리고 월남하셨죠. 그 후 1964년 서대문으로 이사 오게 되었는데, 바로 집 앞에 순복음교회가 있어 할아버지께서 새벽기도를 매일 나가신 것을 계기로 순복음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10살 때부터 조용기 목사님 설교를 듣고 성령체험을 하고 절대 긍정의 믿음을 배웠습니다. 조 목사님은 개인적으로 영적 스승이요, 아버지 같은 분이죠. 평생 잘 모실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 목사님은 지금도 자주 뵙는지요.
 
  “건강하셔서 매일 교회에 나오십니다. 매일 아침 5시 목사님께서 교회에 도착하시면 조 목사님을 사무실로 모셔 들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수시로 목사님을 뵙고 보고도 드리고 조언도 듣습니다. 목사님께서도 뒤에서 많은 격려를 해 주시고요.”
 
  —조 목사님에 대해서는 정통 보수, 이 목사님은 진보적 보수라는 평가를 하는데요.
 
  “신앙은 조 목사님이나 저나 똑같은 보수 신앙을 유지한다고 봅니다. 조 목사님의 목회 시기는 한국이 가난 속에서 ‘잘살아 보자’는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자연히 개인구원과 축복에 초점이 맞춰졌죠. 그러나 지금의 사회적·경제적 상황은 이제는 사회구원에 당연히 관심이 맞춰져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구원, 생태계구원, 장애인, 홈리스 등 소외 계층 그리고 다문화가정을 섬기는 일 등을 강조하다 보니 진보적 보수라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진보적 보수라는 평가에 동의하십니까.
 
  “저는 보수주의자가 진보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지 않다면 폐쇄성에 갇힐 우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수의 약점은 폐쇄성이거든요. 진보의 강점은 개방성인데, 양쪽에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보수는, 정통성을 유지하는 데는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변화를 가져와야 할 때는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개혁시켜 나가야 하거든요. 그런데 개혁을 원치 않는 게 보수성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저는 보수적인 신앙관을 견지하면서 교회는 사회를 향해 공헌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진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 평가에 별 이의 없습니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조용기 목사. 조 목사는 후임인 이영훈 목사를 “나의 영적 아들이자 제자”라고 말했다.
  —비약적 성장을 거듭하던 한국 교회가 성장을 멈추었거나 후퇴하는 감이 없지 않은데요.
 
  “한국 교회가 시대적 부름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잘살아 보세’에서 ‘더불어 함께’ 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답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죠. 교권주의, 물량주의, 기복주의, 개교회주의, 교파 및 교회의 끊임없는 분열과 갈등 등이 오늘의 모습을 자초했다고 봅니다.”
 
  —한국 교회는 수십 개의 교단으로 나눠지는 등 가톨릭에 비해 상대적으로 분열 양상이 도드라져 보이는데,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지요.
 
  “한국 개신교 내에 수많은 교단이 생겨난 배경에는 교파를 가지고 들어온 선교사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고, 둘째로는 교리나 신학 그리고 교권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끊임없이 교단이 분리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의 분열이 성장의 한 축이 되기도 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물론 분열과 경쟁적 대립이 교회 성장에 기여한 바 있으나 이로 인한 상처나 부작용도 함께 뒤따랐죠. 이 같은 모습은 지양해야 합니다.”
 
  —개신교 내 진보와 보수의 갈등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인데, 교회 지도자로서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지요.
 
  “보수는 진보에서 개방성과 개혁을 배워야 하고, 진보는 보수에서 신앙의 순수성과 복음의 열정을 배워 감으로써 상호 협력하며 하나님 나라 확장에 힘써야 합니다.”
 
  —부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에 대한 보수교단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순복음교회 당회장으로서 어떤 입장이었나요.
 
  “보수교단들이 WCC에 대한 오해가 많아 WCC 총회를 적극 반대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WCC가 종교다원주의라든가, 동성애를 허락했다거나,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용공이라고 하는데, 이 같은 문제들이 단 한 번도 총회에서 인정된 적이 없어요.”
 
  —WCC 총회가 진행 중인데 한반도평화선언문에 예장 통합의 이종윤 목사가 북한 인권 문제 삽입을 주장했는데, 이 시간까지 아직 그 문제를 넣을지 말아야 할지 결정이 안 됐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를 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북한에 압력을 넣어서 북한이 좀 더 세계 교회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인권 문제를 언급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계 교회가 자꾸 언급하다가 보면 본인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 조심하고 지금보다 완화시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요. 결국 세계 교회가 유일한 분단국인 한국 상황에 대해서 얘기한 것이기 때문에 유·무언의 압력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구원에 관해서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우리의 선조들은 어떻게 됐다고 봐야 하는지요.
 
  “우리 기독교는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선조들에 대해서는 성경 로마서 2장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봅니다. 그러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개인구원과 사회구원 중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한다고 보는지요.
 
  “둘 중 어느 한쪽을 더 강조할 수는 없는 문제죠. 단 순서상 개인구원이 먼저 있고 난 후 자연히 모여진 힘이 사회구원으로 펼쳐져야 한다고 봅니다.”
 
  —개신교계에서는 구원 문제를 놓고 사이비 이단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유독 개신교계에서 사이비 이단 시비가 많다고 생각합니까.
 
  “개신교의 여러 교파들은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나 교리와 신앙에 있어 강조하는 부분에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장로교가 예정론을 강조한다면 순복음은 성령론을 강조하는 식이죠. 이러한 견해 차이를 가지고 자기 교리만 옳다고 주장하게 되면 그렇지 않은 교회에 대해서는 사이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수 있죠.”
 
  —순복음교회도 한때는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는데요.
 
  “개신교 각 교파마다 근본적인 진리는 같으나 강조하는 부분이 다르다 보니 그런 오해가 생겼던 거죠. 오래전 장로교회에서 순복음교회에 대해 사이비 시비를 한 것은 병 고침, 성령세례와 방언 등 순복음교회(오순절)의 교리적 특징을 잘못 이해한 데서 온 오해였습니다.”
 
  —순복음교회는 1970년대부터 목회자들이 세금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목회자 납세 어떻게 봅니까.
 
  “현재 한국에 5만4000개 교회, 10만명의 목회자가 있다고 하는데, 그 교회 중 70~80%가 미자립 교회입니다. 따라서 목회자 납세 문제는 자립한 교회 목회자에게는 해당되는 사항이기 때문에 목회자가 정식으로 세금을 납부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통일을 준비하는 교회 돼야
 
  —평양에 짓고 있는 조용기 심장병원은 어떻게 돼 가고 있는지요
 
  “8층 건물에 280베드의 대규모로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4년간 남북관계 경색으로 건축이 35% 공정에 머물러 있는 상태입니다. 공사가 재개되면 6~8개월 내로 완성할 수 있습니다. 총 건축비는 200억원 정도로 예상하는데, 이 병원이 노동력(인부)과 모래, 자갈은 북한에서, 모든 건축자재는 남한에서 담당하고 있는 남북합작 건물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남북 간의 대화 물꼬를 트기 위해서라도 속히 공사가 재개되기를 희망합니다.”
 
  —심장병원은 북한의 요청에 의해서 짓게 된 겁니까.
 
  “그렇죠. 북한에는 없는 심장병원을 지었으면 좋겠다고 위쪽에서 지시가 내려와서 조선그리스도연맹이 우리 남측에 요청을 하고,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펀드를 모아서 하겠다고 한 거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도 역임했고 평화통일기독교연대 공동대표도 맡고 있는데, 교회는 통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한다고 봅니까.
 
  “단기적으로는 인도주의적 의약지원·식량지원 등을 계속 추진하고, 장기적으로는 통일을 대비한 기금준비, 통일 후 북한 사람들을 교육하고 신앙적으로 인도할 젊은 지도자들을 양성해야 합니다.”
 
  —남북관계가 얼어붙었다는 표현들을 많이 하는데,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 같습니까.
 
  “서로 자존심 싸움 하지 말고 양보하며 협력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우리가 훨씬 더 많이 가진 자로서 크게 양보하고 그들의 주장을 대폭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싶습니다.”
 
  —기독교계 일부에서는 무신론을 기본으로 하는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도 있는데, 기독교 신앙과 배치되는 것은 아닌가요.
 
  “저도 무조건적인 종북은 반대합니다. 우리의 기본적인 신앙을 포기하면서 북한과 대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봉수교회 등 북한에도 선전용 교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에 있는 교회가 참다운 의미의 교회라고 봐야 할까요.
 
  “현재 북한에 봉수교회, 칠골교회 두 교회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교회일 뿐 참다운 의미의 교회의 모습은 아직 덜 갖춰졌다고 봅니다.”
 
 
  설교 준비는 평생 스트레스
 
  —술도 못하게 하고 담배도 못 피우게 하며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교회는 무미건조하다 못해 재미없는 곳인데, 왜 교회를 다니려면 세상의 ‘재미’를 포기해야 하는 것인지요.
 
  “교회는 교회 안에서 느끼는 새로운 기쁨이 있습니다. 결코 무미건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술·담배를 금하는 것도 아닙니다.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 보니 어린아이부터 담배를 피우고, 술을 먹어도 과음하는 것이 사람에게 득이 안 돼 금한 것이고, 이 전통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실제 흡연이 몸에 백해무익하고, 과음이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남긴 보수적 전통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첨예화하지는 않고 있지만 우리나라도 종교적 갈등이 내재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우리가 사회 내의 산적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선한 사업을 전개하는 일에 종교 간 서로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서로가 사회를 섬기는 데 협력하다 보면 갈등이 사라지고 서로의 입장을 더 존중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신앙에 대한 회의 등 종교적 갈등을 겪은 적은 없습니까.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고, 순복음교회로 온 12살 때 성령체험을 하였기 때문에 사춘기 시절을 무난하게 지났습니다. 신앙의 깊은 회의와 갈등의 경험은 별로 기억에 없습니다.”
 
  —설교 준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지요.
 
  “설교 준비는 평생 스트레스일 것입니다. 한 주일 설교가 끝나는 그 순간 다음 주 설교를 고민하게 되죠.”
 
  —설교 준비는 언제, 어떻게 합니까.
 
  “늘 새벽에 성경을 묵상하면서 본문을 택하고 설교 주제와 내용을 정리하게 되는데, 주초에 설교 개요가 나오면 예화를 찾기 위해 그 나머지 시간을 보냅니다.”
 
  —영적 무장을 위해서 늘 스스로 다짐하는 게 따로 있습니까.
 
  “늘 첫사랑, 그러니까 처음 감격의 순간을 기억하고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처음의 모습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리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이 목사는 인터뷰 중 조용기 목사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신앙에 대해서도 늘 ‘첫 마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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