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경우

  • 글 : 최병묵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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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밥 자리, 술 자리에 가면 정치 분야 화제는 단연 박근혜와 안철수지요. 두 사람을 빼면 도토리 키재기이긴 합니다만, 유시민(柳時敏)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어느 경우든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갑니다. 제가 유 대표와 대학동기라 더욱 얘기를 많이 듣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영향력 있는 집권당 사람이 아닙니다. 제1 야당 소속도 아니고요. 현역 국회의원도 물론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왜 그를 자주 안줏거리로 삼을까요. 그의 독특한 캐릭터 때문입니다. 그는 열광적인 지지자를 갖고 있습니다. 대선 여론조사에서 항상 3% 이상 나오는 것을 보면 절반만 쳐도 족히 50만명은 “유시민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이 정도면 현재 야권(野圈) 정치인 중에서 가장 앞서 있는 것 아닐까요. 안철수 서울대교수의 선호도가 유 대표보다 압도적으로 높지만 지지가 그리 단단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유 대표는 반면에 적극적인 반대자, 이른바 안티(Anti)도 야권 정치인 중 가장 많을 것입니다. 민주통합당에도 많습니다. 민주통합당은 유 대표와 뿌리가 같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런 극단의 정치인이 유시민입니다. 그런 면에서 연구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불똥 각오한 금품살포 고백
 
  유 대표는 1월 6일 기자회견에서 “(전당대회 등에서) 금품 살포를 목격한 바도, 경험한 바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나라당 고승덕(高承德) 의원이 박희태(朴熺太) 전 한나라당 대표의 300만원짜리 돈봉투를 폭로한 데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마침 대표 경선을 치르고 있던 민주통합당이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사이 유 대표가 질러버린 것이었습니다.
 
  정치판에 난무하는 돈봉투. 이거 하루 이틀의 관행이 아닙니다. 그 앞엔 여(與)와 야(野)도, 좌(左)도 우(右)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정치에는 사람의 ‘이동’이 필수적이기 때문이지요. 전국적인 투표를 하는데 제 돈 들여 투표소에 갈 열혈 당원이 얼마나 될까요. 제 정치부 기자 경험으로는 아무리 별볼일없는 정당의 경선에서도 돈봉투는 있습니다.
 
  10여 년 전, 있는지 없는지 모르던 정당의 경선 때도 사무처 요원들이 1점당 만원짜리 고스톱 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후보들이 돌린 눈먼 돈으로요. 평상시에 된장찌개 정도 먹던 이들이 선거만 있으면 여기저기서 쇠고기를 굽습니다.
 
  이걸 구태(舊態)라고 욕하지만 지금도 근본적으로는 변한 게 없다고 합니다. 여전히 사람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 이동이 필요 없는 ‘모바일 투표’가 대안이라고요? 글쎄요. 모바일 투표도 자기 편이 많이 투표하도록 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더군다나 이건 실제 휴대전화의 주인이 투표하는지, 다른 사람이 대신 해주는지도 모르잖습니까. 단 몇 표로 당락과 순위가 바뀌는 정치판에서 ‘묘수(妙手)’가 나올 수밖에요. 이전 정치판에서 드는 비용과는 다른 새로운 회계(會計) 항목이 나올 판입니다.
 
  어찌됐든 유 대표는 ‘과감하게도’ “야당도 예외가 아니다”고 고백해 버렸습니다. 민주통합당으로선 정말 미울 것입니다. 폭풍우를 한나라당만 맞아야 하는데, 같이 맞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유시민다움’
 
  작년 4월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정부가 동남권 신공항을 백지화했지요. TK(대구·경북)가 미는 밀양과 PK(부산·경남)가 미는 부산 가덕도가 치열하게 다퉜습니다. 누가 봐도 난처한 상황이었습니다. 정부는 타당성 조사 등을 거쳐 백지화라는 ‘타협안’을 내놓았습니다. 영남권 전체가 난리가 났지요. 이런 상황이면 바른 말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정치인은 특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유 대표는 인터뷰를 통해 “정부가 공약을 지키려고 노력한 것 같고, 국책사업인 만큼 타당성 조사 등의 노력을 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고 했습니다. “대통령과 정부에 일방적으로 뭐라고 하기는 그렇다”고도 했습니다.
 
  동남권 신공항은 해당 지역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정부를 공격했던 사안입니다. 어떤 계산을 했든 간에 야당 정치인이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입니다. 모른 체하고 있어도 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우리가 아는’ 유시민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달에 유 대표는 《국가란 무엇인가》란 책을 냈습니다. 거기에선 또 보수주의 국가론에 대해 배척해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유주의 국가론이나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이념형 보수’를 무식하다고 경멸하거나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현실과 희망사항을 잘 구별하지 못한 소치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그 스스로 현재 통합진보당이란 좌파 정당을 이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좌파들의 비난을 받기에 충분한 내용을 책에 담은 것을 보면 유시민의 독특함이 묻어납니다. 정말 ‘유시민다움’의 극치입니다.
 
 
  DNA가 다른 것인가
 
  뿐만 아닙니다. 기억하시는 분들 계실 것입니다. 6년 전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청년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였습니다. 한참 청년실업이 이슈가 될 때였지요. 그는 이 자리에서 또 안 해도 될 말을 합니다. 그는 “취업에 관한 것은 전적으로 청년들 각자가 책임지는 것이다. 특정 대학생을 어디에 취직시키는 일은 국가가 할 수 없는 일이다. 방법이 있으면 왜 해결이 안 되겠나. 모든 산업국가가 고학력 청년층의 실업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교육에 대한 투자는 리스크가 가장 높은 투자”라고 했습니다.
 
  부적절하거나 정교하지 못한 언어 구사가 있지만, 틀린 얘기는 아니지요. 국가가 나서서 취업이 잘 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지만, 실제 취업은 개인 책임이긴 하지요. 1차적으로 그렇다는 얘깁니다. ‘책임’이란 표현이 애매하긴 하지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아무래도 2차, 3차 책임이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유 대표가 이렇게 말하니 네티즌이야 말할 것도 없고요, ‘유빠’라 불리는 그의 맹목적 지지자들도 엄청난 비판을 퍼부었습니다. 그런 피드백(Feedback)을 유 대표가 몰랐을 리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그는 ‘무릅쓰고’ 해버렸습니다. 아마도 본인이 옳다고, 또는 청년들에 아부나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다른 사람들과 확실히 다른 DNA를 갖고 태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變異의 안타까움
 
  그런데 그런 유시민이 최근 들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몇몇 사항, 특히 한미 FTA 관련입니다. 작년 7월 그는 전국농민회총연맹을 방문해 “(노무현 정부가) 아직도 원망의 대상이 되는 정책적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는 정책의 오류를 말하기 전에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정책이 옳더라도 당장 FTA를 하지 않으면 국가가 망하는 것도 아닌데, (나라면) 지지자가 반대하는 FTA를 추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이어 작년 11월 FTA 국회 비준이 문제됐을 때도 유 대표는 반성(反省) 모드로 일관했습니다.
 
  “정부 각료로서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것뿐 아니라 경제학자로서 소신을 이야기한 것” “한미 FTA가 사회제도를 바꾸는 측면이 강해 외환위기 당시에 못지않은 효과를 갖게 될 것”이라는 2007년 3월의 주장과 딴판입니다. 2007년 3월에도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 상당수는 FTA를 반대했습니다. 2007년과 2011년이 달라진 것은 유 대표의 입지뿐입니다.
 
  ‘분위기가 아니라도, 흐름이 달라졌더라도 옳은 것은 옳은 것이다’가 유시민 DNA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최근에는 이런저런 변명을 붙이기도 합니다. 그 또한 전혀 유시민답지 않습니다.
 
  안희정(安熙正) 충남지사는 FTA가 논란이 되자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협상은 잘됐지만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으로 이익균형이 깨졌으니 비준에 반대한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논리적 모순”이라고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안 지사도 친노(親盧)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만은 안 지사가 훨씬 ‘유시민다움’에 어울립니다. 유시민도 이제 나이가 든 탓일까요. 이 판에 그런 정치인 하나쯤은 있어도 되는 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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