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현 SK회장이 삼성으로 넘어가는 油公을 뺏었다”
⊙ 최종현은 사우디, 이건희는 멕시코에서 원유 들여오려고 해
⊙ 노태우 보안사령관 시절 정주영과 김우중 회장이 제일 자주 찾아와
安秉浩
⊙ 1942년 경남 진주 출생.
⊙ 진주高, 육군사관학교 졸업. 단국大 대학원 경영학석사, 경남大 정치외교학박사.
⊙ 제9사단 작전참모, 노태우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수도방위사령관, 제2군 부사령관(중장) 역임.
경남일보 대표이사 회장 역임.
⊙ 저서: <민족생존과 한국 민족주의론> <생명의 끈> 등.
⊙ 최종현은 사우디, 이건희는 멕시코에서 원유 들여오려고 해
⊙ 노태우 보안사령관 시절 정주영과 김우중 회장이 제일 자주 찾아와
安秉浩
⊙ 1942년 경남 진주 출생.
⊙ 진주高, 육군사관학교 졸업. 단국大 대학원 경영학석사, 경남大 정치외교학박사.
⊙ 제9사단 작전참모, 노태우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수도방위사령관, 제2군 부사령관(중장) 역임.
경남일보 대표이사 회장 역임.
⊙ 저서: <민족생존과 한국 민족주의론> <생명의 끈> 등.
참석자는 전두환(全斗煥) 국가보위입법회의 상임위원장(국군보안사령관), 노태우(盧泰愚) 수경사령관, 허화평(許和平) 국보위 상임위원장 비서실장, 안병호(安秉浩) 수경사 정보참모, 허삼수(許三守)·정도영(鄭棹永)·권정달 보안사 처장 등이었다.
노태우 수경사령관의 비서실장격인 안병호 정보참모가 입을 열었다.
“사령관님, 삼성이 유공(油公·대한석유공사)을 가져가면 안되지 싶습니다.”
전두환 상임위원장이 눈을 치켜떴다.
“그건 삼성이 가져가기로 얘기 끝난 것 아닌가? 얼마 안 있다 발표한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안 정보참모가 말을 이었다.
“선경(鮮京·現 SK)이 가져가는 게 맞겠습니다. 최규하(崔圭夏) 대통령이 5월 사우디까지 날아갔다 왔는데, 다른 나라에서 기름을 받으면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선경은 사우디에서, 삼성은 멕시코에서 기름을 받을 예정이랍니다. 최종현(崔鍾賢·최태원 현 SK그룹 회장의 부친)씨 얘기를 들어 보니까, 사우디는 우리한테 안정적으로 기름을 준다고 약속을 했답니다. 외교적으로나 국익(國益) 차원에서나, 기름을 안정적으로 받는 차원에서 삼성보다 선경이 좋겠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다른 어느 누구도 안병호 수경사 정보참모의 ‘갑작스런 제안’을 거들지 않았다. ‘삼성이 유공을 가져가는 것은 결정된 사안인데 무슨 소리냐’는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안병호 말이 맞네. 장관 불러서 선경에 주라고 해.”(실제는 전 상임위원장이 직접 동자부(동력자원부)장관에게 지시)
그 후 전두환 상임위원장은 이른바 ‘체육관 선거’로 1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유공 문제를 다시 회의에 부칠 분위기가 아니었다. ‘유공을 선경에 준다’는 결정은 이래서 바꿀 수 없게 됐다.
1980년 11월 28일, 박봉환(朴鳳煥) 당시 동력자원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8월 초 결정 사항을 그대로 발표했다.
“유공의 인수자로 선경그룹을 선정했습니다. 선경은 상당량의 원유(原油)를 유공에 공급하고 있고, 앞으로 원유를 추가 확보할 능력이 충분합니다. 산유국(産油國)과 친분이 두터워 오일머니를 유치할 능력도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재계(財界)는 경악했다.
당시 선경은 재계 10위권 밖이었다. 재벌 그룹 반열에 끼지도 못하는 ‘새우’가 연매출 1조원이 넘는 ‘고래’를 삼킨 격이었다. 더구나 유공은 모든 재벌이 자산 규모, 현금 동원력, 정부와의 로비력 등을 앞세워 가장 탐을 냈던 회사였다.
삼성의 충격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이미 신군부의 내락(內諾)을 받아 기름 사업을 시작할 채비를 마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국내 재계에서 있었던 드라마틱한 사건 중의 하나다.
1980년代 최고의 利權 ‘석유사업’
“벌써 오래됐구먼.”30년 전 얘기를 풀어놓는 안병호 전 수방사령관은 잠시 회상(回想)에 잠겼다. 그는 정확하게 말하면 5공(共)보다는 6공(共)의 실세였다. 육사 20기 출신인 그는 제9사단 작전참모, 노태우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육군본부 작전처장을 거쳐, 노태우 대통령 시절 군 최고 요직인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수도방위사령관을 지냈다. 그는 박정희(朴正熙) 전(前) 대통령의 서거(逝去)로 세상이 어수선하던 시기에 신군부의 핵심 인사 중 한 명으로서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현대사(史)의 증인이다.
지난 2월 4일, 11일 두 차례에 걸쳐 경남 진주에서 그를 만났다. 일흔을 바라보고 있지만, 부리부리한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며 악수를 하기 위해 잡은 두툼한 손에서는 여전히 군인의 기운이 느껴졌다.
“1980년 중순이었습니다. 최규하 전 대통령 때 미국 회사가 유공에서 손을 뗀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유공 민영화(民營化) 얘기가 나왔는데, 삼성이 매우 적극적이었죠. 기름 사업을 할 준비가 끝났다는 겁니다. 다들 ‘그럼 삼성이 (유공) 가져가면 되겠네’ 했습니다. 삼성은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이었습니다. 발표만 남기고 있었는데, 최종현씨 얘기를 들어 보니 거기(선경그룹)가 낫겠더라고. 그래서 전두환 사령관(그는 전두환 대통령을 계속 이렇게 불렀다)한테 얘기해서 틀었지.”
SK그룹이 유공을 인수한 것과 관련해서는 여러 주장이 나왔었다. 하지만 ‘유공이 원래 삼성 몫’이었다는 것은 카인즈 등 언론검색 사이트를 살펴본 결과, 처음 나오는 얘기다.
신군부, 삼성이 믿을 만하니 油公을 주자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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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역시절의 안병호 장군. |
‘기름이 재계의 새로운 강자를 낳을 것이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유공 인수전은 1980년도 정부의 최대 이권(利權) 사업이었다. 실제 선경그룹은 자금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유공을 인수해 단숨에 재계 서열 5위로 뛰어올랐다. 오늘날 재계 서열 4위(자산규모 기준)의 발판이 이때 마련된 셈이다.
―유공을 인수할 돈이 없는 선경이 낙찰(落札)을 받아서 말이 많았었죠.
“회사 인수 자금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정부에서 회사를 ‘준다, 만다’는 식(式)으로 얘기했던 시절입니다. 어느 그룹에 유공을 줄 것인지에 대한 권한은 동력자원부(현 지식경제부)가 갖고 있었습니다.”
―동력자원부에서 결정하면 끝나는 겁니까.
“아니지. 권한을 갖고 있지만 사실 장관은 집행만 했지. 최종 결정은 ‘위’에서 했습니다.”
―‘위’가 어딥니까.
“모든 결정은 신군부에서 했지. 회사 사고파는 것은 물론이고, 많은 일을 군 수뇌부에서 했죠. ‘어디에 줘라’ 하면 장관은 집행만 하는 겁니다.”
―1980년대 초반은 삼성이 반도체 진출을 하느라 무척 바빴던 시기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그거고, 삼성은 기름 사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때 기름은 요즘 생각하는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1970년대에 유류(油類) 파동을 겪으면서 기름의 중요성이 남달랐을 때였으니까요. 삼성은 이를 겪으면서 기름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특별팀을 꾸려서 장사 준비를 열심히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로비도 많았지요. 공식 발표만 남겨 놓고 일이 틀어졌으니, 파이프라인(로비 라인)을 잘못 박은 본부장들이 피해를 많이 봤을 겁니다.”
―삼성은 어떤 라인을 통해서 로비를 했습니까.
“하나회 출신으로 삼성 계열사에 있던 K씨를 통해서 했죠. K씨가 옷 벗었을 때 삼성이 많이 챙겼잖아요. K씨가 삼성의 첨병(尖兵) 역할을 했죠.”
―이런 사실을 당시에 알고 있었습니까.
“저는 잘 몰랐습니다. 군 수뇌부들이 경제에 대해 잘 모르니까 ‘삼성’이라는 이름만 보고, 믿을 만하니까 그곳에 주면 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군 수뇌부 결정이 곧 법이던 시대
사실 안씨는 5공, 6공의 숨은 이야기를 알 만한 위치에 줄곧 있었다. 보안사 수뇌부 회의에 참석했고, 1980년대에는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으로서 사령관의 일정을 체크하는 것이 그의 업무였다.
―군부(軍部)에서 공기업 민영화까지 간섭했다는 것은 요즘으로는 상상이 안되는 일입니다.
“그때는 군, 정치, 경제, 사회 그런 것이 별 의미가 없던 시기였지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나라를 부강(富强)하게 할 목적으로 끌고 온 경제였으니까요. 시스템이라는 것 자체가 아예 없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시스템은 1980년대 중반이 넘어서 생겼습니다.”
―안 장군은 원래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과 알고 지냈습니까.
“아닙니다. 딱 두 번 만난 것이 전부입니다. 손길승(孫吉丞)씨를 통해서 요청이 왔는데, ‘왜 봐야 하느냐’고 했더니 설명할 일이 있다는 겁니다. 뭐 굳이 만나야 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간곡하게 무슨 할 말이 있다기에 만났습니다.”
―최종현 회장이 뭐라고 하던가요.
“사우디에서 기름을 가져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당시 삼성은 멕시코와 콜롬비아에서 기름을 가져온다고 했었습니다. 사우디가 세계 최대 산유국 아닙니까. 사실 사우디에서 우리한테 안정적으로 원유를 주겠다고만 하면 사우디가 훨씬 좋은 상대국이었습니다. 안 줄 것 같아서 문제였지. 그런데 최종현씨는 이미 그 얘기(안정적 공급)는 끝났고, 자신이 있다는 겁니다.
삼성이 선을 댔던 멕시코는 좌파 정권이 잡고 있었습니다. 최종현씨 말이 ‘멕시코의 좌파 정권이 석유회사를 국유화(國有化)해서 우리한테 기름을 안정적으로 안 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맞는 말이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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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5명의 보안사 핵심참모들. 왼쪽부터 이학봉 수사국장, 허화평 비서실장, 정도영 보안처장, 전두환 보안사사령관, 권정달 정보처장, 허삼수 인사처장. |
삼성은 다른 라인으로 로비
―선경이 사우디, 삼성이 멕시코에 선을 댄 것이 승패를 좌우하게 된 겁니까.
“그렇죠. 사우디 국왕가(家)에 로비를 할 때, 여러 루트로 해야 한다고 하데요. 멕시코는 로비 자금을 주더라도 한 사람한테만 주면 되는 시대였던 모양입니다. 그렇다 보니 삼성이 선이 확실한 곳을 뚫자고 해서 남미로 갔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경이랑 사우디랑 어떤 밀약이 있었는지 뭐 그런 거는 모르겠습니다.”
―만약 삼성이 사우디와 선이 닿았다면 달라질 수 있었겠군요.
“그런 일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최종현 회장이 미국에서 유학할 때, 사우디 왕족 중 한 명이랑 공부를 했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그때부터 쌓은 친분으로 오일파동이 났을 때에도 사우디에서 받아올 수 있었던 겁니다.”
안씨가 확인해 본 결과, 최종현 SK그룹 회장의 얘기는 모두 사실이었다고 한다. 최 회장이 사우디와 안정적 석유 공급을 약속받았고, 최규하 대통령이 이를 재차 확인하기 위해 사우디를 다녀왔다고 했다.
“사우디 국왕이 자기 마음대로 다른 나라에 기름을 주고 말고를 결정하던 때였습니다. 국왕 문지기가 ‘10분입니다’라고 하면, 10분 만 보고 올 수밖에 없었답니다. 최규하 대통령이 사우디 국왕과 ‘악수만 하고 돌아오는 시나리오’, ‘10분 시나리오’, ‘30분 시나리오’를 만들어 갔답니다. 유양수(柳陽洙) 전 사우디 대사한테 들었는데, 최 대통령이 ‘한국에는 안정적으로 기름을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확답을 듣고 돌아왔다는 겁니다. 최종현씨 말이 맞았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당연히 유공은 선경이 경영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성이 순순히 포기했습니까.
“제가 한 줄 모를 겁니다. 안병호 정도는 무시했겠죠. K씨를 통해서 노태우를 챙겼으니까 걱정 안 했을 겁니다. 이후에 전두환 사령관이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에 입성하고 난 뒤, ○○○이 K씨를 앞세워서 허화평 대통령비서실 보좌관을 만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유공 얘기를 하러 청와대에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으나, ○○○과 허 보좌관을 연결시켜 줬습니다. 하지만 벌써 끝난 뒤였는데 뭐. 전두환 사령관이 동력자원부 장관에게 직접 지시할 때 옆에 있던 이승윤(李承潤) 재무부장관이 씩 웃더라고. 이 장관과 최종현씨는 미국 유학 시절 한집에서 하숙하면서 친해진 사이라데.”
―삼성이 유공을 가져갔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멕시코에서 안정적으로 기름 받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이 일 이외에도 삼성에 계신 선배들이 이런저런 부탁을 하고 그랬었는데 제가 삼성에 있는 육사 선배 한 명과 골프를 하다 ‘삼성은 선배님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겁니다’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화가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요.”
“수방사령관 해임 뒤 계좌추적, 감시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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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故) 최종현 SK그룹 회장이 1988년 울산 신규공장 건설 현장을 방문해 유공의 한 임원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그래 봐야… 두 번째 봤을 때 일이 잘되면, 친구 한 명 부탁한다고 했지. 아직까지 SK계열사 최고위층에 있어.”
―선경의 로비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을 텐데요.
“돈 받은 것 있으면 벌써 죽었을 겁니다. 김영삼 정부 때 계좌추적이며 감시를 다 당했잖습니까. 감시, 감청, 도청 다 당했지. 하나라도 나왔으면 벌써 끝났지.”
―결국 안 장군이 오늘의 SK그룹 기틀을 마련하게 해준 셈이네요.
“자기들(선경 측)이 오랫동안 쌓은 노하우로 하게 된 거죠.”
―최종현 회장은 어땠습니까.
“좀 리버럴(자유스럽다)합디다. 순박하고 예의가 발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집안에서 좌파 활동을 한 사람이 있었어요. 예전에는 군납(軍納)을 하지 않으면 사업이 안되던 시기였잖습니까. 그런데 최씨 집안이 그런 사정 때문에 군납이 안되니까 사업 규모가 커질 수가 없는 거야. 예전에 누가 묻기에 ‘책임자 바꿔라. 최씨는 돈만 대고, 사장 등 앞에 나서는 사람은 다른 성씨로 해라’라고 말해 줬습니다. 그래서 군납도 할 수 있게 됐고, 사업 규모도 커졌던 겁니다.
최종현 회장이 손길승씨도 끝까지 챙겼지요. 선경이 유공을 가져갈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 손길승씨라고 생각해서 키워줬지. 최태원(현재 SK그룹 회장)씨는 그때 학생이어서 이런 얘기 모를 겁니다.”
고 최종현 회장은 인수 자금 없이 유공을 인수한 이후, ‘사우디와의 친분’을 앞세워 사우디 친구들이 운영하고 있던 아랍계 은행으로부터 1억 달러를 빌려 유공 대금을 갚아 나갔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SK에너지다. SK에너지는 지난 2008년, 총 45조7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같은 해 SK그룹 총 매출은 105조원이었다.
안병호씨 얘기에 따르면, 노태우 보안사령관을 만나기 위해 가장 자주 왔던 경제인은 고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회장과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그룹 회장이었단다. 안 장군은 당시 노태우 보안사령관의 비서실장이었다.
“정주영, 김우중 회장은 그냥 별일이 없는데 무작정 사무실로 찾아와서 소파에 앉아 있는 겁니다. 하루종일 앉아서 무작정 기다립니다. 그 방에 앉아서 둘(정주영과 김우중)이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지. 저는 군인이라 그런지, ‘현대가 자동차를 하고, 대우는 배를 만들고’ 뭐 이렇게 사업을 나눠서 하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사업가들은 하나라도 더 갖고 싶은 모양입니다.”
안 장군은 김우중 회장과 이상용씨의 만남을 주선한 적이 있다고 했다.
“뽀빠이 이상용이라고 있잖아요. 이상용씨가 ROTC 5기인데, 군에서부터 잘 따르고 마당발이었습니다. 하루는 어린이보호회라는 사단법인을 만들었는데, 애들이 있을 집이 없다고 찾아온 겁니다. 그러더니 김우중씨한테 후원을 해달라고 얘기하고 싶은데 만날 수가 없으니, 전화 한 통만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김 회장, 밑에서 자꾸 면담 못하게 한다는데 이상용 한 번 만나보시죠’ 했습니다. 나중에 들어 보니 어린이보호회에 1억원을 지원해 줬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김우중씨가 각서를 써달라고 하더랍니다. ‘1억원 줬다는 사실을 부인(정희자씨)한테 말하지 마라’, ‘정치하지 마라’고요. 직접적인 도움은 아니지만, 받은 건 받은 거네.”
안씨는 모 그룹 회장의 행각이 생각났는지 ‘참 나쁜 ○’이라며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저녁에 보자고 해서 나갔더니, 비서를 시켜서 007가방을 가져왔습니다. 딱 보니까 돈이 들어 있는 가방이었어요. 비서한테 가방을 받더니, 자기 의자 밑으로 숨기더라고요. 비서가 보면, 그 사람이 나한테 로비자금을 준 줄 알 거 아닙니까. 사실은 회사 돈을 개인이 착복하는 건데 말입니다. 재벌 회장 중에 별별 사람 다 봤습니다.”
6공 정확히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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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경의 유공인수 과정에서 한 축을 담당한 한 손길승 전(前) SK그룹 회장. |
“5공은 박정희 정권의 공백 위에서 세워진 군부 정권입니다. 하지만 6공은 군인 출신인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의해 세워졌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군부와 연결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스스로도 군인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외교에 치중했습니다. 6공은 군사 정권과 민간 정부의 과도기 상태에서 존립한 정부입니다. 여러 치적(治績)이 많은데, 그 점이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두 번째 인터뷰는 안씨의 자택에서 이뤄졌다. 안씨 자택은 경남 진교 시외버스터미널에서 20여 분을 들어간 외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된 나무 집이었는데, 지하 1층에는 그가 군인 시절에 찍었던 사진과 각종 서류가 쌓여 있었다.
“이제 고희(古稀)가 됐으니 과거에 대해 말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떳떳하고요. 너무 잘못 알려진 것들이 많아요. 그러니 죽기 전에 그때 있었던 얘기들을 분명히 해야죠. 그리고 제가 군인시절에 공산주의 국가여서 방문하지 못했던 헝가리, 체코를 다녀올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