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하게 계산된 멘트만 내놓는, 외국 특파원들에겐 ‘지긋지긋한 존재’
⊙ 외교부 대변인 자리는 출세 코스
⊙ 그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말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와 “앞으로 지켜보겠다”
⊙ 어느 나라 정부 대변인들의 대답보다 짧고 내용이 없으며 까다로운 질문 피해가는 화법을
능수능란하게 구사
⊙ 외교부 대변인 자리는 출세 코스
⊙ 그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말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와 “앞으로 지켜보겠다”
⊙ 어느 나라 정부 대변인들의 대답보다 짧고 내용이 없으며 까다로운 질문 피해가는 화법을
능수능란하게 구사

- 외국 언론에 직설적인 화법으로 대응해 유명해 진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
친강의 입에 오른 아사히신문의 보도는 지난 6월 18일 “金正日(김정일)의 아들 김정운이 6월 10일을 전후하여 중국을 방문해 중국 지도자들과 만났다”는 것이었고, 파이낸셜 타임스의 보도는 친강이 “아사히신문의 보도가 007소설 같다”고 했는데도 6월 29일 또다시 ‘김정운이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 지도자들과 만났다’는 내용이었다. 친강은 아사히의 보도에 대해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고, 파이낸셜 타임스에 대해서는 “그 집착에 대해 존경심을 표시한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친강 대변인은 지난해 5월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고 있을 때 “한미동맹은 냉전시대가 남긴 역사적 유물”이라고 말해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역사적 유물’ 발언 때문에 “상대방 국가 원수 방문 중에 어떻게 그런 논평을…”이라고 우리 외교 라인이 항의하자 이틀 뒤 “내가 한 표현은 완전하면서도 계통을 밟아 이뤄진 것”이라면서 우리 외교라인의 항의를 깔아뭉개 더 큰 화제를 만들어 냈다.
당시 주중 한국대사관은 “친강이 말을 너무 무례하게 해서 곧 경질될 것으로 안다”고 했으나 그는 지금까지 인사상 변동이 없고, 마침내 아사히, 파이낸셜 타임스를 혀끝으로 농락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중국이라는 아직까지는 닫힌 사회의 스타’라고 표현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개방이 됐지만 정치적으로는 아직도 사회주의 통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관리가 외교부 대변인이다. 국가 고위 통치자들을 빼놓고, 유일하게 관영 매체에 매주 두 차례씩 꼬박꼬박 이름을 올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의 國益(국익)을 위해 외국 특파원들과 입씨름을 벌이는 애국자然(연)하는 모습에, 대체로 잘생기고 외국어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이미지 때문에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인기는 자신들이 깜짝깜짝 놀랄 정도다. 대변인들의 인기가 하도 높다 보니 외교부의 공식 간행물 출판사인 세계지식출판사는 지난 2005년 <외교부 대변인의 비밀을 벗긴다(外交部發言人揭秘)>는 책까지 냈다. 여기에 실린, 외교부 대변인의 인기를 ‘대변’하는 이야기를 몇 가지 소개한다.
중국 내 최고의 인기 스타
언젠가 중국 외교부의 한 부부장이 국제정세에 관한 연설을 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그런데 일정이 바빠 틈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부부장은 외교부 대변인을 대신해서 보냈다. 그랬더니 그 모임의 사회자가 이런 개회 인사를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외교부 지도자들이 우리 모임을 이렇게 중시할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가 원래 요청한 것은 외교부 부부장이 나와서 국제정세에 관한 설명을 해달라는 부탁이었는데, 놀랍게도 외교부에서는 대변인을 보내 주셨습니다.”
외교부의 한 지도자급 인물이 어느 날 고향엘 갔다. 고향에서 촌로를 만나 인사했더니, 그 촌로가 하는 말이 “계속 노력해서 대변인이 되도록 노력하게…”라는 것이었다.
한 외교부 부부장이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가는데 스튜어디스가 물었다.
“동지께서는 어디서 일하시나요?”
“외교부에서 일하네.”
“그러면 ○○○ 대변인을 아시겠네요?”
“잘 알지.”
“자주 보시나요?”
“거의 매일 보지.”
“동지께서는 정말 복이 많은 분이시네요.”
어느 날 외교부의 대변인이 자전거를 타고 퇴근을 했다. 자전거로 함께 같은 방향으로 가게 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다.
“아니, 저 사람 외교부 대변인 아닌가?”
그랬더니 다른 사람들이 일제히 말했다.
“아니야, 외교부 대변인이 자전거를 타고 갈 리가 있나….”
필자는 최근 중국의 한 여자 대학생에게 친강 외교부 대변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본 일이 있다. 이 학생의 대답은 “어쩌면 그렇게 잘생기고, 말도 애국적으로 잘하는지 모르겠어요, 전방(眞棒·짱)이에요”라는 것이었다.
때로는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중국 보고 지적재산권을 인정하라고 자꾸 그러는데, 그렇다면 종이, 화약, 나침반, 인쇄술 등 4대 발명품에 대한 중국의 지적재산권을 인정하라”고, 말도 안되는 썰렁한 주장을 서슴지 않는 것이 친강 대변인이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는 심술궂은 두꺼비같이 보이지만, 중국 젊은이들에게는 백마 탄 기사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최초의 외교부 대변인은 첸치천(錢其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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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 중국 외교부 대변인을 지낸 첸치천 전 외교담당 부총리. |
1982년 3월 24일 브레즈네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장문의 연설을 했다. 그는 한참 동안 중국을 공격하는 말들을 늘어놓은 뒤 “그래도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중국의 대만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니 앞으로 중·소 관계를 개선하자”고 말했다.
당시 당 중앙군사위 주석으로 최고 실권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은 브레즈네프가 그런 연설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중국 외교부로 전화를 걸었다. “브레즈네프의 연설에 대한 반응을 빨리 국제사회에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당시 국제사회의 중국에 대한 보도를 취합하는 외교부 신문사(新聞司·우리의 局에 해당) 司長(사장·국장)이었던 첸치천은 리자오싱(李肇星) 영어통역원을 데리고 외교부 출입문 입구로 나갔다. 거기에는 베이징(北京) 주재 외국특파원 몇 명이 외교부의 연락을 받고 나와 있었다. 첸치천은 딱 세 문장으로 된 발표문을 읽어내려 갔다.
“우리는 브레즈네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지난 3월 24일 타슈켄트에서 발표한, 중·소관계에 관한 연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그의 연설내용 가운데 중국에 대한 공격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중·소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소련의 실제 행동을 지켜볼 것이다.”
첸치천의 첫 브리핑은 발표문을 읽어내려 가는 것으로 끝났다. 질문과 답변은 없었다. 그러나 竹(죽)의 장막에 가려 그 속을 알 길이 없던 중국이 처음으로 국제사회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공개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서 첸치천의 발표는 국제적인 뉴스가 됐다.
첸치천이 중국 최초의 브리핑에서 한 발표문에서 사용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말과 ‘주시할 것이다’라는 말은 지금 외교부 대변인들도 즐겨 사용하는 말이다. “…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앞으로 지켜보겠다”는 말을 사용한 데 대해 첸치천은 그의 회고록 <外交十紀(외교십기)>에서 “聽其言 觀其行(청기언 관기행)이라는 경전 말씀에서 따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대방이 한 말에 그런대로 합리적인 부분이 있으므로, 앞으로 그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겠다는 긍정적인 뜻이라는 것이다.
名 대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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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톈안먼사태 당시 외교부 대변인을 지낸 리자오싱 전 중국 외교부장. |
리자오싱이 주재한 당시 브리핑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베이징을 방문해 덩샤오핑과 30년 만에 중·소 화해를 위한 정상회담이 진행되던 때였다. 리자오싱은 한 독일기자로부터 “현재 덩샤오핑 선생의 건강은 어떠냐”는 질문을 받았다. 리자오싱은 “그의 건강은 양호하다”는 당시 중국 당국의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그러자 독일기자는 “덩샤오핑 선생의 건강상태는 병원에서 양호한가, 아니면 집에서 양호한가”라고 보충질문을 했다. 그때 리자오싱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당신 나라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건강이 좋지 않으면 병원에 가야 하는 것이고, 건강이 좋으면 집에 있는 거 아니냐”고 대답해 회견장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당시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는 100만 시민 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던 때라 85세 고령의 덩샤오핑의 건강은 국가기밀로 취급되던 때였다. 리자오싱이 그렇게 재치 있는 대답을 한 것과는 달리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이던 자오쯔양(趙紫陽)은 고르바초프와 정상회담을 하면서 고르바초프가 “덩샤오핑 선생은 건강하신가”라는 질문에 “그는 당과 정부의 모든 일에 대해 보고를 받고 있다”고 말해 덩샤오핑 측근들로부터 “톈안먼 광장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시민과 대학생들을 의식해서 국정의 책임을 덩샤오핑에게 떠넘기려 했다”는 비난을 받았고, 그 점이 나중에 실각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됐다.
1992년 8월에 한중수교를 하고 그해 11월 한국 신문과 방송 5개사의 초대 베이징 특파원들이 부임해 갔을 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리자오싱의 후임으로 제5대 대변인에 해당하는 우젠민(吳建民·70)이었다. 우젠민 대변인은 온화하고 말을 조용조용히 설득력 있게 하는 스타일로, 나중에 駐(주) 네덜란드·스위스·프랑스 대사를 거쳐 외교학원장과 전국 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을 지냈다.
현란한 말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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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中 수교 직후 외교부 대변인을 지낸 우젠민 전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 |
첸치천이나 리자오싱, 우젠민을 비롯한 중국 외교부 대변인들의 말솜씨는 많은 중국 사람의 찬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그가 대변인임을 알아본 승객이 “외교부 대변인 아니시냐”고 묻자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는 중국 사람들 사이에 유명한 이야기다.
중국 외교부의 공식 간행물 출판사인 세계지식출판사가 펴낸 <대변인의 비밀을 벗긴다>는 책에는 “대변인들을 포함한 중국 사람들은 모두가 대변인급의 말솜씨를 갖고 있다”면서 이런 이야기도 소개하고 있다.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던 1972년 한 미국 기자가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에게 물었다.
“총리 각하, 왜 중국인들은 사람이 다니는 길을 馬路(마로)라고 부릅니까?”
중국인들은 마차가 다닐 수 있는 큰 길을 마로라고 불러왔고 지금도 大路(대로)를 마로라고 부르고 있지만, 당시 미국 기자의 질문은 중국의 도로가 너무 불결하다는 뜻을 담아서 던진 것이었다. 그 질문에 대한 저우언라이 총리의 대답은 이랬다.
“우리 중국은 현재 마르크스(馬克思)주의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큰 길을 마로(馬路)라고 줄여 부르는 것이오.”
핵심 피해가는 데는 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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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부 대변인을 거쳐 주일대사를 지낸 천젠. |
“미국 사람들은 길을 걸을 때 모두 하늘을 쳐다보면서 걷는데, 중국 사람들은 왜 모두 내려다보면서 걷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저우언라이 총리의 대답은 “아마도 미국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의 자세가 하늘을 보는 것으로 보이고, 중국은 현재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기 때문에 땅을 내려다보는 자세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오”라는 것이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들의 대답은 어느 나라 정부 대변인들의 대답보다 짧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짧을 뿐만 아니라 내용이 없기로도 유명하고, 까다로운 질문을 회피하는 화법을 잘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베이징 주재 외국 특파원들이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어 모두 다 싫어하는 대변인들의 화법을 몇 가지 소개한다.
첸치천이 외교부장이던 1990년대 초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에 나온 첸치천에게 미국의 소리(VOA)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중국의 봄은 언제 오는 거냐?”
이 미국 기자의 질문은 전인대가 계절이 봄인 3월에 열리는 점에 맞추어 정치적 의미를 담아 물어본 것이었다. 그랬더니 첸치천의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중국은 땅이 넓어 봄이 오는 때가 지역에 따라 다르다.”
인민대회당 안에서는 폭소가 터졌고, 미국의 소리 기자는 머쓱해지고 말았다.
1994년 이미 90세가 된 덩샤오핑이 그해 10월 1일의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기념일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냐고 한 외국 기자가 물었다. 당시 외교부 대변인이던 천젠(陳健)은 이렇게 답했다.
“덩샤오핑 동지가 행사에 참석할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나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10월 1일 아침신문에 어떤 소식이 나는지를 기다리고 있다.”
1995년 덩샤오핑의 91세 생일날 열린 외교부 뉴스 브리핑 때 한 외국 기자가 천젠 대변인에게 물었다.
“오늘이 덩샤오핑 선생의 91세 생일인데 그의 건강 상황에 관한 대변인의 말에는 변화가 없느냐?”
이에 대한 대답.
“당연히 변화가 있다…. 그의 나이가 한 살 더 많아졌다는 점이다.”
자신이 잘 모르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수치에 대해 물을 때도 중국 외교부 대변인들은 엉뚱한 말로 둘러대는 데는 선수들이다. 외교부와는 상관도 없는 사망률이 얼마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당신네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한 번은 죽는다”는 식이다. 중국인들이 빠져 있는 일종의 열등감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이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유럽과 마찬가지로… 당신네 나라와 마찬가지로…”라는 화법을 즐겨 쓰는 편이다.
최근의 대변인들은 영어의 達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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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자오쉬 중국 외교부 대변인 겸 신문국장. |
중국은 한때 외교부 대변인들의 뉴스 브리핑을 영어 통역 없이 중국어만으로 진행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외국특파원들이 중국어를 제대로 못 알아들어 오해가 빚어지자 다시 영어 통역을 쓰고 있다.
그런 중국 외교부 대변인들이 최근 북한 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에 관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두 차례 열리는 뉴스브리핑에 나와 대답한 내용들을 되짚어 보자.
(7월 2일)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의 이번 외국 순방 목적과 일정을 소개해달라.
“(중국과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참가국) 4개국과 유엔안보리 결의 집행 문제에 관해 논의하는 것이다.(일정에 대해서는 무응답)”
―중국은 4개국에 유엔안보리 집행 결의와 관련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냐?
“우다웨이 부부장은 이번 순방을 통해 관련 당사국들과 북한 핵문제와 동북아 정세에 관해 깊은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6월 11일)
―올해는 중국과 북한의 수교 60주년이 되는 해다. 두 나라는 올해를 ‘우호의 해’로 삼고 각종 경축행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는 등의 행동을 하고 있는데도 행사를 계속 추진할 생각이냐?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우리 중국의 반대 입장은 이미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의 관계를 평화공존 5원칙에 따라 유지하고 있으므로, 중국과 북한 간의 정상적인 교류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6월 9일)
―최근 두 명의 미국 여기자가 북한 당국에 체포되어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북한의 이런 행동에 대해 중국은 압력을 가할 생각이 없느냐?
“우리 중국은 두 명의 미국 기자들 문제에 관해 북한이 선처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발표내용 대학노트에 적어와서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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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위 중국 외교부 대변인. |
“거듭 말하지만, 미국과 북한 사이에 이 문제가 잘 처리되기를 바란다.”
한마디로 달걀로 바위 치기라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수록 “우리의 입장은 일관된 것이다, …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든가, “그런 문제에 대해 파악하고 있지 않다”, “그건 내가 대답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그 문제에 관한 정책은 명확하며 모두가 알고 있다(衆所周知)”라는 답변으로 얼버무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정작 외교부 대변인들은 “우리의 말에는 중대한 변화가 담겨 있으니 잘 들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앞으로 일어날 특정 사건의 진전에 관해 답변할 경우 “그에 관해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과 “아직 일정이 마련돼 있지 않다”라는 답변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앞의 답변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말이고, “아직 일정이 마련돼 있지 않다”라는 말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으나 구체적인 시기는 앞으로 발표할 것이라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중국 외교부 대변인들은 답변하는 내용을 모두 커다란 대학노트에 적어와서 읽어내려 간다는 사실이다. 단 한마디도 자의적으로, 또는 자신의 개인의견을 말하는 일은 없다. 일주일 두 차례의 뉴스 브리핑에 나오기 전에 몇 차례 내부 회의를 거쳐 정리된 내용을 읽어 내려가고, 준비 안된 내용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지 않다” 또는 “모른다”고 말한다. “그에 관한 보도를 보았으며,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정도면 중국 외교부가 관련 사건에 관한 정보를 수집 중이며, 대처방법을 논의 중이라는 의미로 들어야 한다.
그런 외교부 대변인이 “007소설 같다”느니 “다음에는 어떤 소설을 쓸 것인지 궁금하다”는 과격한 답변을 하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딱 부러지게 말한다면 해당 보도는 오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게 말했는데도 또다시 비슷한 보도를 한 데 대해 “주화입마의 (정신착란적) 경지”라거나 “그 집착에 대해 존경심을 보이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한 답변은 흔히 하는 답변이 아니며, 해당 보도 역시 오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들의 행태로 본 추정이 될 것이다.
대변인 자리는 승진 보장된 요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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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부 대변인을 지낸 선궈판 세계지식출판사 총편집. |
이후 대변인들도 최소한 주요국 대사직은 거치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다.
베이징에 주재하는 외국 특파원들은 중국 외교부 대변인들의 답변에 대해 “정말 지긋지긋하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매주 우리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국무원의 부처들 가운데서는 가장 먼저 시작한 외교부 대변인 제도가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는지, 현재 대변인 제도를 국무원의 전 부서로 확대하고, 부처마다 대변인 명단과 연락 전화번호를 외국특파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비밀의 장벽을 둘러치고 있던 국방부마저 작년에 대변인 제도를 신설하고 정례 브리핑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외교부를 제외한 국무원의 전 부처들은 자신들이 필요할 때 브리핑을 가지는 수준이지, 외부에서 접근하거나 요구하기는 어려운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열린 사회의 적들’이 아니라 ‘닫힌 사회의 스타들’이랄 수 있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덩샤오핑이 1978년에 시작한 개혁개방정책이 만들어 낸 중국 사회의 꽃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