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 정치인이자 발칸의 巨富인 베흐젯 파콜리 마베텍스그룹(스위스 루가노 소재) 회장이 탈레반 지도부와 접촉해 한국 인질 석방 교섭
파콜리 회장: “탈레반 지도부는 한국 협상단에 대해 상당히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어요. 한국 측이 미국·적십자 관계자 등 외부 사람들을 끌어들였는데 탈레반 측은 그런 걸 원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긴 대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들로부터 ‘한국 정부는 아주 안 좋은 방법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습니다.”
⊙ 와히둘라 前 유엔 발칸지역 대표부 대사, 사건 당시 한국 정부에 인도적 차원의 지원의사
표명했다가 거절당해
⊙ “한국 정부 협상단, 탈레반이 혐오하는 미국 CIA 끌어들여 오히려 사태 악화”
⊙ “탈레반 하부조직의 실수로 인질 사건 발생. 탈레반 지도부, 사태해결 비용 원해”
⊙ “미국이 탈레반 끌어안아야 아프간 평화시대 열려”
취재지원 : 張憲珠 자유기고가
파콜리 회장: “탈레반 지도부는 한국 협상단에 대해 상당히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어요. 한국 측이 미국·적십자 관계자 등 외부 사람들을 끌어들였는데 탈레반 측은 그런 걸 원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긴 대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들로부터 ‘한국 정부는 아주 안 좋은 방법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습니다.”
⊙ 와히둘라 前 유엔 발칸지역 대표부 대사, 사건 당시 한국 정부에 인도적 차원의 지원의사
표명했다가 거절당해
⊙ “한국 정부 협상단, 탈레반이 혐오하는 미국 CIA 끌어들여 오히려 사태 악화”
⊙ “탈레반 하부조직의 실수로 인질 사건 발생. 탈레반 지도부, 사태해결 비용 원해”
⊙ “미국이 탈레반 끌어안아야 아프간 평화시대 열려”
취재지원 : 張憲珠 자유기고가
이들은 “사건 발생 직후 유엔주재 한국 대사관 측에 아프간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인도적 차원에서 한국인을 구출하는 데 돕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거절당했다”고 밝혔다.
사건이 지연되고 한국인 인질이 추가로 살해되자, 탈레반 지도부와 개인적 緣(연)이 있는 파콜리 회장은 2007년 8월 27일 파키스탄 북서부 탈레반 은거지에 들어가 탈레반 지도부와 인질 석방을 놓고 협상을 벌였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다음날 밤, 한국 정부 협상단과 탈레반은 한국軍(군) 연내 철수와 기독교 선교 중지를 조건으로 인질 석방에 합의했고 그해 9월 2일 한국인 전원이 귀국했다.
필자는 미국 뉴욕 현지에서 와히둘라 전 대사와 파콜리 회장을 만나 탈레반이 한국인을 납치한 배경, 현지에 파견된 한국 정부 협상단의 문제점, 인질 구출을 위한 이들의 활동상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코보소에서 정당활동을 하고 있는 파콜리 회장은 필자와의 인터뷰를 위해 개인 전용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날아왔다. 파콜리 회장은 수차례 인터뷰를 거부해 오다가 와히둘라 전 대사의 권유로 月刊朝鮮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납치된 유엔 직원 3명, 이탈리아 기자도 파콜리 회장이 구출
![]() |
| 2007년 7월 13일 아프가니스탄으로 봉사활동을 떠나기 전 인천공항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경기도 성남시 샘물교회 신도들. |
파콜리 회장이 한국인 인질 사건에 뛰어든 것은 와히둘라 전 대사의 요청 때문이었다고 한다. 와히둘라 전 대사는 파콜리 회장에게 “2004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탈레반에 의해 납치된 인질을 구출한 경험을 살려 한국인 인질을 구출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필자는 파콜리 회장이 뉴욕에 도착하기 전날 와히둘라 전 대사를 먼저 만났다. 그는 한국인 인질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07년 7월 26일 새벽 3시(뉴욕시각)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마치 슬픈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어요. 탈레반이 한국인 23명을 붙잡아 한 명을 죽였다는 속보를 듣고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나머지 인질들이 떠올랐어요. 나는 그동안 분쟁지역의 갈등 해소와 평화 유지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 온 터라 그 같은 사건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즉각적인 액션을 취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와히둘라 대사는 “평소 개인적으로 분단국가인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제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단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그날 새벽 박애주의자이자 억만장자인 베흐젯 파콜리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지요.”
―파콜리 회장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제가 2000년부터 2007년 사이에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 위치한 유엔 발칸지역 대표부 책임자로 일했습니다. 그때 코소보 독립을 위해 활동하던 파콜리 회장을 알게 됐어요. 교류를 통해 그가 평화를 사랑하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나는 당시 코소보까지 책임지고 있었는데 코소보의 평화 프로세스를 직접 설계했습니다.”
―“한국인을 구출해 달라”고 제안했을 때 파콜리 회장이 뭐라고 하던가요.
“그는 이미 사건 내용을 알고 있었습니다. 인질 한 명이 사살된 뒤여서 마음이 무겁다고 했어요. 파콜리 회장은 휴머니스트입니다. 그는 ‘인간적인 차원에서 매우 중대한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겠다’고 했어요. 나는 그에게 ‘과거의 경험을 살려 탈레반 최고위급 인사를 만나 해결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한국 대사관 관계자의 외교적 무례
파콜리 회장은 와히둘라 전 대사에게 “우선 대한민국 정부 당국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아보고 연락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와히둘라 대사의 말이다.
“그날 새벽 파콜리 회장과 통화한 후 곧바로 유엔 주재 한국 대사관 관계자에게 연락했어요. 처음에는 潘基文(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이 문제를 논의하고 싶었지만 그는 뉴욕에 없었죠. 새벽 세 시쯤으로 기억됩니다. 내 신분을 밝히고 전화를 하게 된 배경을 자세히 설명했어요. 한 시간 뒤 한국 대사관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와 ‘오전 10시에 만나자’고 했어요.”
와히둘라 대사는 촌음을 다투는 상황에서 오전 10시로 미팅 시간을 잡은 것에 대해 매우 놀랐다고 한다.
“오전 10시에 만날 거면 내가 왜 새벽 3시에 전화를 했겠습니까. 약속한 시간에 대사관 고위 관계자를 만나 인질 구출에 대해 설명했어요. 그 관계자는 내 말을 녹음하며 ‘당신은 어떻게 인질을 구할 것인가. 혹시 한국 정부로부터 금전적 대가를 원하느냐’고 묻더군요. 외교 관례상 있을 수 없는 무례한 발언이었어요. ‘나와 내 친구 파콜리는 돈이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 뒤 ‘어쨌든 인질 구출을 돕고 싶다’고 말하고 며칠 동안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죠.”
―연락이 왔습니까.
“없었습니다. 한국 대사관으로부터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나와 파콜리는 전화 통화를 계속하며 사건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 와중에 두 번째 인질이 사살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그때 우리는 독자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지요. 한국 정부 관계자의 무책임과 非(비)프로페셔널리즘에 나머지 인질들도 똑같은 운명을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무렵 한국 대사관 관계자를 유엔 건물 앞에서 만났어요. 그에게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 왜 연락이 없느냐’고 했습니다. 그 관계자는 내게 나지막한 소리로 ‘인도적 차원에서 도와주려는 뜻을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데 라인을 잘못 선택했다. 이 문제를 아예 잊어라. 다른 채널을 찾는 게 낫다. 우리 정부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다른 성과를 얻기 위해 시간을 끌 것이다’라고 하더군요.”
―‘다른 성과’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나 역시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정치적인 상황과 맞물려 있다’고 했어요. 그 말은 대통령 선거와 관련이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와히둘라 대사는 “한국 대사관 관계자의 말을 듣고 참으로 슬픈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와히둘라 대사는 그날 파콜리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독자적으로 행동할 때다. 한국 정부의 요청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돈으로 인질 구출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에 동의하지 않아”
![]() |
| 아프간 경찰이 피살된 한국인을 옮기고 있다. |
“나는 그를 잘 압니다. 그는 ‘일을 성사시켜 보자’고 했어요. 파콜리 회장이 현지 사정을 알아본 결과, 한국 정부 협상단은 탈레반과의 협상에서 난항을 겪고 있었어요. 나도 아프간 가즈니주 지사로부터 비슷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곳에 아는 사람이 많아요. 아프간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협조가 잘 안돼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이끄는 중앙정부는 親美(친미) 성향이지만, 지방정부는 탈레반과 가까운 쪽이 많아요. 나는 2001년 본 협약을 설계한 사람이라 아프간 사정을 어느 정도 압니다.”
본 협약이란 유엔 주도하에 아프간의 평화를 정착하기 위한 협약을 말한다. 독일 본에서 체결돼 본 협약이라 부른다.
―파콜리 회장은 어떻게 움직였습니까.
“그는 즉각 행동을 취했어요. 탈레반 지도부와 전화상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죠. 내가 알기로는 파콜리 회장의 요청으로 탈레반 지도부는 한국인 인질들에게 음식과 의료물자를 제공한 걸로 압니다. 협상 기간 동안 인질의 안전과 억류생활의 조건이 중요했지요.”
와히둘라 전 대사는 파콜리 회장의 인간적 스타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파콜리 회장을 만나 보면 알겠지만, 그는 자신의 활동상에 대해 자세히 말하지 않을 겁니다. 탈레반 지도부와의 대화를 잘못 전했다가는 난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죠. 이탈리아 언론인을 구출한 것도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는 생색을 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파콜리 회장이 2004년 유엔 직원을 구출할 때와 2006년 이탈리아 언론인을 구출할 때 금전적 수단을 사용했습니까.
“그건 밝힐 수 없습니다.”
와히둘라 대사는 인터뷰 후 私的(사적)인 자리에서 “2004년 사건을 해결할 때 500만 달러를 탈레반 측에 지불한 걸로 안다”고 전했다.
―파콜리 회장이 한국인 인질 사건 때도 비슷한 방법을 썼습니까.
“그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돈’이 도움이 됐을 수도 있다고 봐요. 한 번은 파콜리 회장이 흥미로운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는 ‘돈으로 인질을 구출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인질이 잡혔을 때 모든 수단을 쓴 후 결과가 없다면 최후의 방법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 사람이 죽는데 돈이 뭐가 중요한가’라고 말했습니다. 아무튼 한국인 인질 사건 당시 파콜리 회장이 협상을 이끌어낸 것은 분명해요. 나도 아프간 전문가로서 이 일에 일조한 데 대해 기쁘게 생각합니다.”
“파콜리 회장, 파키스탄에 있는 탈레반 실세들과 접촉”
―당시 언론 보도에 의하면, 탈레반은 세 그룹으로 나눠져 있었고 각자 협상 조건이 달랐다고 합니다.
“그건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탈레반 리더십은 매우 엄격해요. 물 한 잔을 마시더라도 리더의 허락 없이는 안돼요. 리더의 말을 거역하는 사람은 참수형에 처해져요. 파콜리 회장은 파키스탄에 있는 탈레반 최고 지도부와 협상했어요. 탈레반의 실세들은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두고 있어요.”
―사건 당시 한국 정부가 미 CIA에 도움을 요청해 인질을 구출한 걸로 압니다.
“미국은 탈레반 제1의 敵(적)입니다. 만약 CIA가 도움 줬다면 아프칸 정부에 부탁했겠죠. 탈레반이 요구한 ‘탈레반 수감자’와 인질을 맞교환하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아프간 정부는 인질을 교환하지 않았고 아무런 역할도 못 했어요. 이것이 나와 파콜리 회장이 직접 나선 이유이기도 합니다.”
필자가 와히둘라 전 대사를 만난 날 저녁 파콜리 회장이 뉴욕에 도착했다. 그는 “코소보에서 개인 전용기로 8시간을 날아왔다”고 했다. 다음날 뉴욕 맨해튼의 한 호텔 비즈니스 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와히둘라 전 대사도 同席(동석)했다. 파콜리 회장과의 대화는 네 시간 동안 진행됐다. 인터뷰 도중 코소보의 하심 타치 총리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와 코소보 정치 현안에 대해 20여 분 통화했다.
파콜리 회장이 활동하고 있는 코소보는 현재 準(준)독립 상태다. 2008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지만, 러시아·세르비아·스페인·그리스·루마니아 등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1999년 소수의 세르비아인과 다수의 알바니아인이 충돌해 코소보 內戰(내전)이 발발하자 나토가 즉각 개입해 사태를 진정시켰다. 코소보는 현재 유엔의 통치를 받고 있다.
파콜리 회장은 코소보 독립을 위해 2006년 3월 AKR을 창당했다. 정치인이자 사업가인 그는 재산규모 30억 달러(韓貨 3조6000억원)인 발칸 巨富(거부)다.
필자는 와히둘라 전 대사에게 들은 얘기를 바탕으로 파콜리 회장과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영어·불어·독일어·코소보語(어) 등 10여 개 국어를 구사할 줄 안다”고 했다.
―2007년 7월 19일 한국인 23명이 탈레반에 의해 납치된 사실을 언제 알았습니까.
“와히둘라 대사로부터 전화를 받기 전에 알았지요. 언론 보도도 있었고요. 아프간 현지 사람에게 연락을 취해 내용을 들었어요. 그 무렵 나는 코소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선거운동을 한참 하고 있었죠. 그런데 인질 수가 23명이나 돼 걱정이 앞섰어요.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그들을 붙잡고 있는지를 알려고 했어요.”
한국 측, 미국을 협상에 끌어들인 것이 최대 실수
![]() |
| 파콜리 회장은 필자에게 코소보의 평화적 독립을 위해 한국언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때 와히둘라 대사가 낙심한 상태로 내게 전화를 걸어와 ‘제발 그곳에 가라’고 하더군요. 나는 그에게 ‘상황이 좀 다르니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파콜리가 움직인다는 증거가 될 만한 편지를 받아 달라. 그러면 유세를 중단하고 현지에 가겠다’고 했어요. 나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죠. 한국 정부에서 편지를 보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오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왜 관심을 보였습니까.
“인도주의적 차원이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네요. 2004년과 2006년 두 차례 인질을 구한 경험이 있어요. 관심을 가질 수밖에요. 탈레반 지도부와의 인연도 있고요. 나는 이 사람들과의 약속 관계에 충실하고 싶었습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국 정부로부터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부족하지 않을 만큼 돈이 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네바 주재 한국 정부 관계자가 나를 수소문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했습니까.
“7월 말 한국 인질 한 사람이 추가로 살해된 후 적극적으로 움직였어요. 탈레반 지도부 사람들과 연락을 계속 주고받았지요. 인질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요청했어요. 한국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현지에는 언제 갔습니까.
“8월 27일 파키스탄에 도착해 이틀 동안 머물렀습니다. 아프간과 인접한 파키스탄 한 도시에서 탈레반 지도부를 만났어요. 나는 탈레반 고위 인사에게 ‘인질이 석방돼야 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내게 얘기하라’고 했어요. 당시 한국 정부 협상단이 탈레반과 교섭 중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탈레반 지도부는 ‘협상단이 위험하고 진지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협상단 주위에 미국과 아프칸 정부 사람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죠. 한국 측이 미국을 협상에 끌어들인 것은 최대의 실수였어요.”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후에 현지에 갔군요.
“그 사이 준비작업을 위해 전화 통화를 계속 했습니다. 탈레반 지도부는 고등교육을 받은 품격 있는 사람들이라 얘기가 통해요. 아주 좋은 방식으로 얘기가 오갔습니다.”
―현지에서 만난 탈레반 지도부와 어떤 얘기를 나눴습니까.
“탈레반 지도부는 한국 협상단에 대해 상당히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어요. 한국 측이 미국·적십자 관계자 등 외부 사람들을 끌어들였는데 탈레반 측은 그런 걸 원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긴 대화가 필요했습니다. ‘인질들은 당신들을 도와주러 온 사람이다. 풀어 줘라’고 했죠. 오늘 이 자리에서 ‘내가 한국 인질들을 모두 석방시켰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설령 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하더라도 그걸 누가 믿으려 하겠습니까.
확실한 것은 탈레반이 언젠가 내게 어떤 요청을 해 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도 모르겠습니다. 향후 내 안전과 보안을 위해서 말입니다. 당신이 이 내용을 점진적으로 공개하기를 부탁합니다. 나는 神(신)의 의지에 의해 인질이 석방됐다고 믿고 있어요.”
―탈레반 측에 돈을 줬습니까.
“나는 모릅니다(파콜리 회장은 묻지 말라는 뉘앙스로 대답했다). 확실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은 한국 정부가 탈레반 지도부에 한푼도 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탈레반 인사는 ‘누군가가 경비를 감당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얼마냐’고 했더니 ‘당신과 우리는 친한 친구이니까 당신이 돈을 내라는 말은 아니다’라고 했어요.”
―누가 경비를 지불했다는 얘기입니까.
“인질이 석방되는 과정에서 누군가 돈을 냈을 수는 있겠지만 탈레반 지도부에 들어온 것은 없습니다.”
한국 협상단, 탈레반 지도부 못 만나
―탈레반이 한국인을 납치는 한 이유는 뭡니까.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도 한국인들을 왜 잡았는지 모르겠다. 뭔가 하부조직에서 실수를 한 것 같다’고 했어요. 인질 두 사람이 살해된 것도 지도부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착오로 발생했다는 겁니다. 물론 ‘실수’라고 표현했지만, 적어도 내가 현지에 가서 얘기하기 전에 그들은 인질을 석방할 생각이 없었어요.”
―탈레반 고위층과 만난 후 인질이 석방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까.
“물론입니다. 탈레반 인사와 늦은 점심식사를 했는데 인질 얘기를 여러 번 꺼낼 때마다 그는 나를 두드리며 ‘됐다. 됐다’고 했습니다.”
―2007년 8월 28일 밤 한국의 청와대는 탈레반과의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돼 인질이 모두 석방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나는 그때 탈레반 지도부와 함께 있었습니다. 한국 협상단 중에 탈레반 지도부를 만난 사람이 있다면, 그가 서울에 있든 뉴욕에 있든 찾아가 ‘당신은 지금 거짓말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어요. 2년이 지난 일이지만 진실은 미래에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 인질이 석방된 후 탈레반으로부터 무슨 얘기를 들었습니까.
“그 얘기는 말할 수 없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2004년 10월 아프간에 있던 유엔 직원 세 명이 탈레반에 납치됐을 때 그들을 구출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미국 언론에도 소개가 됐더군요.
“그때 그리스 아테네에 있었는데 TV를 켰더니 유엔 직원 세 명이 인질로 붙잡혔다고 해요. 코소보 출신 여성과 필리핀·아일랜드人(인)이었지요. 사건 직후 필리핀과 아일랜드는 自國(자국) 사람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러나 코소보 정부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습니다. 집사람이 반대했지만 나는 전용기를 타고 이스탄불에 가서 일반 여객기로 갈아 타고 카불로 갔습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였죠. 가는 도중 비행기에서 꿈을 꿨는데 아프간과 카불에 대한 거였어요. 실제로 현지에 도착하니 꿈에서 본 것과 너무 비슷해 매우 놀랐습니다.”
복면 씌우고 차 세 번 갈아 태워 동굴로 데려가
―초행이었습니까.
“물론입니다. 공항에 도착하자 약속한 사람이 나오기로 했는데 오질 않았어요. 매우 더운 날씨였죠. 마치 중동 시장바닥처럼 복잡했어요. 예전 舊(구)소련 시대에나 볼 수 있는 낡은 택시 하나가 기다리고 있더군요.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는데 그 택시 운전기사가 탈레반 지도부와 접촉하는 창구가 됐습니다. 택시기사는 나를 인질이 잡혀 있는 근처까지 데려다 줬어요. 택시기사에게 ‘인질이 잡혀 있는 곳을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그는 대답하지 않았죠. 그와 저녁식사를 한 후 다음날 또 만났습니다.”
―인질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퍼슈발이라는 곳에 있었는데 아주 위험한 지역이었어요. 사건 발생 열흘이 지난 후 코소보 출신 한 명은 확실히 구할 수 있었고 나머지 두 명을 석방시키기 위해 더 체류했지요. 석방 협상이 끝난 후 그해 11월 19일 알바니아 TV와의 인터뷰에서 ‘인질이 풀려날 것이다’고 했더니 탈레반 쪽에서 문제를 제기했어요. 그때 탈레반의 스타일을 알게 됐습니다. 인질은 예상일보다 이틀 뒤 풀려났어요. 코소보 출신 여성은 지금 결혼해서 파리에 살고 있습니다. 애들을 낳으면 제 이름(베흐젯)을 따서 베흐젯1, 베흐젯2로 짓겠다고 하더군요.”
―택시기사를 다시 만나 무엇을 했습니까.
“기사는 탈레반 실권을 갖고 있는 장군에게 나를 데려갔어요. 그를 만나기 전 시장에 들러 물건을 잔뜩 구입해 택시에 싣고 갔지요. 성의 표시로 물건을 건넸습니다. 장군 집은 형편없었어요. 서너 평 되는 작은 방에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더군요. 창문도, 문도 없는 그런 집이었어요. 그날 이후 나는 보안상 호텔을 바꿔 가며 장군을 만났습니다. 만남이 반복되면서 장군은 나를 믿기 시작했어요. 나는 코소보를 화두로 얘기를 풀어 갔어요. 탈레반 장군은 무슬림에 대해 얘기를 했습니다.”
―택시기사가 탈레반 장군을 어떻게 아는 겁니까.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아마도 친인척 관계가 아닌가 싶어요. 그 무렵 내 안전을 위해 카자흐스탄 내무장관, 영국 언론인과 휴대폰으로 연락을 취했어요. 영국 언론인은 아프간 출신 여성을 부인으로 뒀는데 탈레반 쪽과 선이 닿았어요. 탈레반 장군도 휴대폰이 세 개나 되더군요.”
―다른 탈레반 사람들은 안 만났습니까.
“하루는 장군이 ‘내일 아프간 현지 사람 복장을 하고 특정 장소에 가면 차가 있을 테니 그 차에 타라’고 하더군요. 다음날 그 장소에 갔더니 갑자기 어떤 사람들이 내게 복면을 씌우고 차에 태우더군요. 겁이 났습니다. 차를 세 번 갈아탔는데 마지막 차는 아주 편안한 차였어요.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작은 동굴이었습니다. 복면을 벗었더니 내 옆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어요. 그들은 내게 차를 한 잔 내놓았는데 잔이 너무 지저분했습니다. 예의상 다 마셨지요. 그들은 나를 심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누구이며 누구를 아느냐’고 물었어요. 나는 ‘의견이 다를 뿐 나와 당신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다’고 말한 뒤 ‘나를 잡아 두고 인질을 풀어 줘라’고 했어요.”
그들이 원하는 것 다 들어줘
![]() |
| 2007년 9월 2일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인질 가족들에 섞여 인천공항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
“정확히는 몰라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내 사진까지 갖고 있었어요. 그들의 聖地(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찍은 사진이었죠. 또다시 무서워지기 시작했어요. 무슨 국제적인 범죄조직에 끌려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달라’고 했어요. 그들은 ‘인질들의 몸 상태가 안 좋으니 약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치질과 관련된 약도 있었는데 나중에 다 사줬어요. 아무튼 그때 일 처리가 굉장히 빨랐어요.”
―탈레반 최고 지도부는 어디서 만났습니까.
“아프간의 접경지역인 파키스탄 모처였어요. 같이 갔던 탈레반 장군은 나를 탈레반 지도부에게 데려간 후 사라졌습니다. 처음 만난 그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은 나의 가족과 재산규모까지 알고 있었어요. 나는 그들이 돈을 원하는 줄 알았지요. 돈 얘기를 꺼냈더니 그들은 ‘돈은 원치 않는다’ 대신 자신들(11명)을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 다녀올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 했습니다.”
―약속을 지켰습니까.
“나는 그들이 섬기는 신 앞에 맹세하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줬습니다.”
―그런 인연이 2006년 10월 납치된 이탈리아 언론인을 구출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됐겠군요.
“이탈리아 언론인이 붙잡힌 곳은 2007년 한국인 인질이 납치된 곳과 멀지 않아요. 이탈리아 언론인이 석방되기 사흘 전 탈레반 지도부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파콜리 씨, 우리는 당신이 원한다면 이탈리아 사람을 석방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파콜리 회장이 먼저 석방 요청을 하지도 않았는데 연락이 온 겁니까.
“나는 그때 카자흐스탄에 있었어요. 사흘 동안 전화로 교섭했습니다. 물론 이탈리아 경찰과 대화 채널을 확보하고 있었죠. 약속대로 이탈리아 언론인은 제 날짜에 석방됐습니다.”
―2004년 사건과 2006년 사건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찾을 수가 없더군요.
“당시 탈레반 지도부와 약속했죠. 외부에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기로 말입니다.”
―2006년 사건 협상 당시 탈레반은 어떤 요구를 했습니까.
“….”
“한국 정부는 무능력했다”
―2004년과 2006년 사건 당시 인질을 납치한 탈레반은 같은 그룹이었습니까.
“네. 한국인을 억류한 탈레반의 지도부도 이들입니다.”
―탈레반 지도부는 몇 명이나 됩니까.
“과거 아프간 정권 사람들입니다. 1996년에서 2000년 아프간 정부 사람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국제사회가 아프간의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서는 이들을 반드시 끌어안아야 해요. 생전에 나의 할아버지는 내게 ‘敵(적)을 싹 쓸어버리지 못할 바에는 완전히 끌어들여야 한다’는 말씀을 늘 했어요. 이들은 아프간 인구의 70%를 대표합니다. 탈레반은 아프간 북쪽에서 파키스탄 쪽까지 세력을 계속 확장해 가고 있어요.”
―탈레반은 왜 인질 사건을 계속 벌입니까.
“아마도 現(현) 아프간 카르자이 정권에 공포감을 주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한국인이 또다시 인질로 잡힐 가능성이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들도 조심할 거고요.”
―인질사태 당시 한국 정부의 협상력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무능력하다고 봅니다. ‘한국 정부는 아주 안 좋은 방법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를 탈레반 지도부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
―미국 CIA는 탈레반과 대화채널이 있습니까.
“미국은 탈레반 지도자가 누구인지도 잘 모릅니다. 오바마 정부가 제대로 된 길을 선택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파콜리 회장은 코소보의 독립 승인을 위해 세계 각국을 방문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을 많이 다녀요. 그들에게 코소보가 다른 나라를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코소보의 주요 정당으로 어떤 게 있습니까.
“하심 총리가 당수인 PDK가 제1정당입니다. 군소정당 12개와 연합한 정당이죠. 현재 지지도는 33% 가량 됩니다. 22% 지지율을 보이는 LDK가 제2정당입니다. 제가 만든 ARK는 제3정당으로 14%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요. AKR은 일자리 창출과 국가 건설, 해외 협력을 중요시해요.”
―코소보의 주요 정치인으로서 추구하는 理想(이상)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를 부유한 나라로 이끄는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코소보가 경제적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신에게 기도합니다.”
“나는 워크홀릭”
―개인 전용기를 타고 외국을 많이 다니는데 한 달 평균 항공비용은 얼마나 듭니까.
“유지비와 기름값을 합하면 매월 100만 달러(韓貨 12억원) 정도 듭니다.”
―정치활동을 하느라 바쁜데 회사는 누가 경영하고 있습니까.
“내 형제들이 맡고 있습니다.”
―기업가로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뭡니까.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는 걸 제일 소중하게 생각해요. 나는 상대방과 대화할 때 눈을 마주치며 얘기합니다. ‘당신을 믿는다’는 의미죠. 16억 달러(韓貨 1조9000억원)짜리 러시아 크렘린궁 재건 프로젝트를 따낼 때도 그랬고, 이란·카자흐스탄 수도 재건 프로젝트를 가져올 때도 그랬어요. 국가 원수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사업에 큰 도움이 됩니다. 나는 워크홀릭입니다. 내 손을 보시면 알 겁니다.”
―긴 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해 줘서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코소보의 위대한 국민들 뒤에 있는 작은 사람입니다. 그들의 꿈을 현실화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독립입니다.”
파콜리 회장은 인터뷰가 끝나고 저녁식사를 한 후 “스위스에 있는 자신의 회사에 볼일이 있다”며 뉴욕을 떠났다.
필자는 다음날 와히둘라 전 대사를 다시 만나 아프간 평화정착 방안과 탈레반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는 아프간 문제에 관해 세계적인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미국 백악관도 아프간 해법에 대해 그에게 자문을 구한다는 것이다.
서방 세계의 종말이 아프간에서 시작될 수도
―아프간을 ‘제국의 무덤’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프간은 잃을 게 없는 나라입니다. 잃을 게 없는 사람들과 싸워 이기기는 매우 힘듭니다. 지구상에 독립기념일이 없는 나라는 아프간밖에 없어요. 그들은 죽을 때까지 싸웁니다. 아프간 사람들은 이방인들과 싸우다 죽는 것을 낙원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자살폭탄 테러를 쉽게 하는 겁니다. 그곳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35년밖에 안돼요. 서방 국가가 아프간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100% 실패해요. 서방 세계의 종말이 아프간에서 시작될 수도 있어요.”
―아프간 평화정착을 위한 방안은 무엇입니까.
“950년 아프간 역사를 보면 답이 나와요. 평화정착과 아프간 재건을 목적으로 탈레반 지도부를 포함한 3000명에 이르는 아프간 대표자들을 하나로 묶어야 해요. 이 모임에서 아프간 통치자를 뽑아야 합니다. 선거는 민주적으로 치르는 거죠. 나의 제안은 아프간 전통 문화와 현대 국가 시스템이 혼합된 방안입니다.”
―테러집단으로 알려진 탈레반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테러리즘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죠. 탈레반은 아프간 사회의 일부분이지만 현 정부에서 제외된 사람들입니다. 불행하게도 목적 달성을 위해 ‘테러’라는 수단을 사용하지만 그들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성스러운 행동방식이지요. 아프간 정부가 현재 취하고 있는 방식도 옳지 않아요.”
―탈레반의 궁극적인 목적은 뭡니까.
“아프간에 있는 모든 외부세력을 몰아낸 후 이슬람 정부를 수립해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로 통치하는 것입니다.”⊙
▣ 베흐젯 파콜리 마베텍스그룹 회장 겸 코소보 AKR 정당 대표
베흐젯 파콜리 씨는 1951년 코소보의 首都(수도) 프리슈티나에서 출생한 기업인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스위스 루가노에 본사를 둔 마베텍스그룹 회장이며 코소보 제3정당인 AKR 대표다. 알바니아계인 그는 2007년 總選(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파콜리 회장은 1970년 독일 함부르크로 이민을 가서 경제학과 경영학을 공부했고, 1974년 옛 유고슬라비아 티토 대통령 경호부대에서 軍(군)생활을 한 뒤 코소보로 돌아갔다. 그는 1976년 스위스의 한 화학 관련 회사에 입사한 후 수석 매니저가 됐다. 파콜리 회장은 1990년 스위스 루가노에 건설회사 ‘마베텍스’를 설립했다. 회사는 현재 전 세계 16개국에 자회사 18개를 둔 마베텍스그룹으로 성장했다. 마베텍스그룹은 2002년 창간된 코소보 일간지 ‘라잠(Lajm)’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마베텍스가 성장 발판을 마련한 것은 1992년 러시아 야쿠츠크 건설 프로젝트에 뛰어들면서였다. 파콜리 회장은 당시 야쿠츠크 시장이었던 파벨 보로딘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었다. 보로딘이 당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재무수석이 된 후부터 마베텍스는 승승장구했다.
마베텍스는 크렘린궁을 비롯해 러시아연방 의회·오페라 하우스 등 주요 건물의 재건축 사업을 따냈다. 또 러시아에 스위스 다이아몬드 호텔이라는 고급 호텔도 지었다.
마베텍스그룹이 러시아에서 단기간 내에 급성장하자 1998년 당시 검찰은 파콜리 회장을 옐친 대통령의 가족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그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마베텍스그룹은 현재 카자흐스탄의 新(신)수도 건설 프로젝트인 ‘아스타나’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공사 규모가 15억 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파콜리 회장은 2006년 3월 AKR을 창당했다. AKR은 2007년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해 다수의 의석을 확보, 코소보 내에서 서열 3위의 정당이 됐다. 선거 기간 동안 파콜리 회장은 4억2000만 유로 상당의 재산을 코소보에 헌납했다고 한다.
파콜리 회장은 시드재단(The SEED Foundation·남동유럽개발 재단)의 재정적 후원자이며, 영국의 민간 전략연구기관인 국제전략연구소(CSIS)의 국제문제 카운슬러로 활동하고 있다.
파콜리 회장은 코소보가 전 세계로부터 독립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뛰고 있다. 코소보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총 58개국으로부터 독립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코소보의 공식 관할 주체는 코소보 유엔행정기구(UNMIT)다.
파콜리 회장은 오는 11월 예정된 지방선거에서 대부분의 지역에 AKR 소속 후보를 낼 예정이다. 특히 首都(수도)인 프리슈티나 시장에 AKR 후보가 당선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차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다.
▣ 와히드 와히둘라 前 유엔대표부 대사
와히드 와히둘라 前(전) 유엔대표부 대사는 1956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프간의 마지막 국왕이었던 ‘자히르 샤’가 통치할 당시 총리를 지냈다고 한다. 아버지의 영향력이 지금도 남아 있어 아프가니스탄 내에 그에게 우호적인 인사가 많다.와히둘라는 1994년부터 유엔에서 근무했다. 그는 분쟁지역의 갈등을 해결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전문가다. 그는 아프간 內戰(내전) 사태의 원인에 정통하다. 와히둘라는 유엔이 추진했던 코소보 평화정착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그는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 위치한 유엔 발칸지역 대표부 대사로 근무할 때 알바니아 외교아카데미를 세웠다. 발칸지역 평화정착에 공헌을 한 것이 인정돼 알바니아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알바니아 명예시민이 됐다.
와히둘라와 파콜리 회장은 2000년 무렵 와히둘라가 유엔 발칸지역 대표부 책임자로 있을 당시 코소보의 평화를 위해 자주 만나다 친해졌다고 한다. 2007년 그는 유엔대표부 대사직 임기만료를 앞두고 뉴욕에 머물고 있는 동안 한국인 인질사건을 접했다.
▣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인질 사건 개요
2007년 7월 19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한국인 23명(여자 16명, 남자 7명)이 탈레반 무장 세력에 의해 납치됐다. 선교 목적으로 아프간에 들어간 이들은 소형 버스를 타고 아프간 남부의 칸다하르로 향하던 중 가즈니州(주) 카라바그 지역에서 탈레반에 의해 인질로 붙잡혔다. 탈레반은 일행 중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를 살해했다. 이후 한국 정부와 탈레반이 수차례 협상을 벌인 결과, 그해 8월 28일 양측은 한국군 연내 철수와 기독교 선교활동 중지에 합의했다. 사건 발생 45일 만에 인질 전원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인질 사건 일지(현지 시간 기준)
[7월 19일] 분당샘물교회 자원봉사자 23명 탈레반 무장 세력에 납치.
[7월 20일] 탈레반, 철수ㆍ수감 중인 탈레반 수감자 전원 석방 요구.
[7월 22일] 정부대책반 아프가니스탄 현지 도착.
[7월 24일] 탈레반, 인질들과의 전화 통화 원하면 10만 달러 지불하라고 제안.
[7월 25일] 탈레반, 배형규 목사 살해.
[7월 27일] 백종천 정부 특사 카불 도착.
[7월 29일] 탈레반, 한국인 인질 아프간 3개 주에 분산 배치했다고 공개.
[7월 30일] 탈레반, 심성민씨 살해.
[8월 5일] 탈레반, 대한민국 정부 노력 불만족스럽다며 인질 살해 재개 언급.
[8월 6일] 미국과 아프간 정부, 對(대)테러 전쟁 지속하겠다고 발표.
[8월 9일] 탈레반, 8명의 죄수 석방이 협상의 선결조건이라고 언급.
[8월 10일] 정부와 탈레반, 아프가니스탄 가즈니주에서 첫 對面(대면)협상.
[8월 13일] 한국인 인질 21명 중 여성 인질 2명 석방.
[8월 18일] 탈레반, 대면협상 진전 없다며 추가 살해 위협.
[8월 28일] 정부 대표단과 탈레반, 한국군 철수와 기독교 선교 중지한다는 합의문 발표. 19명 한국인 인질 석방 공표.
[8월 29일] 인질 12명 석방.
[8월 30일] 나머지 인질 7명 석방.
[9월 2일] 전원 귀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