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가 대규모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느끼는 시위 예상 비용을 현실화(인상)해야 한다. 백신이 없는 신종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가장 확실한 조치는 감염자와 감염 노출자를 격리시키는 것
咸在鳳 美랜드연구소 수석정치학자
⊙ 1958년생.
⊙ 美 칼튼대 경제학과, 美 존스 홉킨스대 석ㆍ박사.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유네스코 본부(파리) 사회과학국장, 美남가주대(USC) 정치외교학과
교수 겸 한국학연구소장 역임.
⊙ 저서: <탈근대와 유교-한국정치담론의 모색>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 <한국의 보수를
논한다> 등.
高明賢 美랜드연구소 정책대학원 박사과정 펠로
⊙ 1975년 서울출생.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大 졸업, 美 컬럼비아대 경제학 학사·同 통계학 석사,
랜드대학원 정책학 박사과정.
咸在鳳 美랜드연구소 수석정치학자
⊙ 1958년생.
⊙ 美 칼튼대 경제학과, 美 존스 홉킨스대 석ㆍ박사.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유네스코 본부(파리) 사회과학국장, 美남가주대(USC) 정치외교학과
교수 겸 한국학연구소장 역임.
⊙ 저서: <탈근대와 유교-한국정치담론의 모색>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 <한국의 보수를
논한다> 등.
高明賢 美랜드연구소 정책대학원 박사과정 펠로
⊙ 1975년 서울출생.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大 졸업, 美 컬럼비아대 경제학 학사·同 통계학 석사,
랜드대학원 정책학 박사과정.

- 청계광장에서 촛불시위를 벌이는 여학생들.
2008년 봄부터 여름 사이에 政局(정국)을 강타한 촛불시위는 왜 일어났을까?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모두 狂牛病(광우병)에 걸린다는, 과학적인 근거도, 통계자료도, 단 하나의 實例(실례)조차 없는 낭설이 어떻게 불과 6개월 전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출범한 정권을 뿌리째 흔들 수 있었나? 어떻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유언비어에 현혹되어서 연일 집단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보수진영에서는 이번 촛불시위는 反美(반미)주의자들과 李明博(이명박) 정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합작해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左派(좌파) 세력이 장악한 KBS와 MBC 등 방송사들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한 惡意的(악의적)이고 왜곡된 보도를 통해 연일 국민을 선동하는 한편, 反(반)정부 시위의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좌파진영의 조직력을 동원해서 시위를 주도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반면 좌파진영에서는 촛불시위야말로 정부의 失政(실정)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며, 民意(민의)의 반영이라고 주장한다.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親(친)시장주의적이며 親美的(친미적)인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새 정부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이번 여름의 촛불시위의 성격과 의미를 총체적으로, 일관되게 설명하지 못한다.
우선 이런 분석들은 이번 시위가 왜, 그리고 어떻게 10대 어린 학생들에 의해 시작됐는지 제대로 밝히지 못한다. 초반에 시위를 주도한 10대 어린 학생들은 새 정부의 인사코드나 對外(대외)정책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특정 이념에 傾倒(경도)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다. 10대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유언비어를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건은 이 유언비어가 어떻게 그토록 막대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동시에 만일 10대들이 다른 정치세력에 의해 조종당한 것이 아니라면, 좌파든 보수든 기성세대의 조직력과 동원력 없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조직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시위를 벌일 수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 신세대의 시위문화가 기성세대의 시위행태와 만났을 때 어떤 상호작용이 일어났는가를 분석하고 끝으로 촛불시위가 왜, 어떻게 소멸됐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각종 아이디어나 상품, 그리고 사회적 행태가 확산되고 사라지는 과정이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의 발생, 소멸과정과 동일하다는 최신 네트워크이론에 기반을 둔 疫學的(역학적) 假說(가설)을 촛불시위를 설명하는데 적용해봤다. 그 결과 이번 촛불시위는 엽기적이라고 할 만큼 자극적인 보도를 일삼은 방송언론과 이렇게 생성된 ‘광우병 怪談(괴담)’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10대들 특유의 사회연결망 구조와 논리가 만들어내고 확산시킨 ‘전염병’의 일종이었음을 밝힐 수 있었다.
촛불시위와 SARS 바이러스
<그래프 2> 촛불시위 참가자 數는 2003년 대만에서 발생한 사스(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바이러스 환자 數(수)의 분포도로 약 두 달간 관찰된 수치다. 2번 그래프는 2008년 5월 2일부터 7월 1일 사이 국내에서 일어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참가자 숫자다(‘촛불시위의 사회적 비용’, 한국경제연구소).
그래프 1과 2는 거의 동일한 분포도를 보여준다. 두 그래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사스의 경우 단위가 몇십 명이지만, 촛불시위의 경우에는 1만명 정도 된다는 점이다. 또 내용상으로 볼 때 한 그래프는 정치적·사회적 현상인 반면, 다른 하나는 역학적 현상이다. 하지만 관찰단위보다는 분포에 더 역점을 두는 통계학적 관점에서 볼 때 그래프는 분명 유사하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은 이는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SIR 모형
바이러스의 전염과정은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다시 1번 그래프를 살펴보자. 대만에서는 2003년 初(초)부터 사스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4월 초까지는 매일 發病(발병) 수가 한 자리 수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4월 중순부터 그 수가 늘기 시작하더니 한 달 후엔 70까지 급격히 치솟았다. 2주 후엔 다시 갑자기 줄어들었고, 몇주 후에는 소멸됐다.
이처럼 少數(소수)에서 시작해서 갑자기 기하급수적으로 일어난 후 다시 소멸되는 과정은 대만뿐만 아니라 홍콩과 중국에서 발생한 사스의 경우도 동일하다(예외적으로 초기에 감염자들을 철저하게 격리시키면서 강력하게 대응한 싱가포르에서는 이 패턴이 훨씬 약했다).
역학에서는 이런 전염패턴을 SIR이라는 간단한 수학 모형으로 설명한다. 모형名(명)이 말해 주듯이 SIR은 인구를 세 가지 부류로 분류한다.
1. ‘감염노출자’(Susceptible): 아직 병에 걸리지 않았으나 병에 대한 면역력이 없는 부류.
2. ‘감염자’(Infected): 병에 걸려서 감염노출자에게 병을 전염할 수 있는 부류.
3. ‘제거된 자’(Removed): 병 때문에 사망했거나 격리된 사람과 ‘회복된 자’(Recovered) 는 완치되어 병에 대한 면역력이 생긴 경우다.
전염병이 SIR 특유의 곡선을 그리는 이유는 처음에는 병자 수가 많지 않다가 ‘전환점’(critical point) 에 도달하는 순간부터는 환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전염이 확산될수록 감염에 노출된 부류는 줄어드는 동시에 이미 감염된 환자들이 완쾌되면서 면역력을 기르기 때문에 결국엔 병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밈(meme)이론: 思考도 감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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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밈이론의 창시자 리처드 도킨스. |
영국의 저명한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1976년 출간과 동시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킨 <이기적인 유전자>란 책에서 “進化(진화)는 수많은 유전자들 간의 생존경쟁의 産物(산물)”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생물학적 환경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영역에서도 유전자들 간의 생존경쟁과 흡사한 현상이 일어나며, 특히 인간의 思考(사고)와 생각이 바이러스처럼 전염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도킨스는 ‘밈’(meme: 古代 그리스어로 ‘따라 한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 ‘mimeme’에서 마지막 두 음절을 딴 것)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밈’은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사고’를 뜻하며 인간의 뇌를 매개체로 이용하여 바이러스처럼 전염된다. 바이러스가 세포를 ‘점령’하여 자신을 복제하듯이 ‘밈’도 사람의 뇌를 점령하며 끝없이 자기 자신을 복제하고,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숙주가 가지고 있는 생각, 또는 다른 생각과의 조합을 통해 변이도 일으킨다.
물론 ‘밈’의 실체는 肉眼(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다. 또 ‘밈’에 감염된다 해서 진짜 병에 걸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 전체가 ‘熱病(열병)을 앓듯이’ 각종 유행에 휩쓸리는 경우를 수없이 본다.
그리고 ‘밈’의 전염과정은 실제 바이러스의 전염과정과 똑같다. 물론 모든 바이러스가 사스처럼 폭발적으로 전염되지 않듯이, 모든 밈이 전염적 패턴을 보이지는 않는다. 밈이 전염병으로 퍼지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이 이론을 대중화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티핑포인트>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에 의하면 그 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1. 소수의 법칙: 전염병은 소수의 매개체로부터 시작한다.
2. 고착성: 전염성의 또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징글벨처럼 머릿속에 남는 멜로디는 쉽게 기억되고 또 轉移(전이)된다. 하지만 쇤베르크의 난해한 현대음악은 잘 기억하기 힘들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징글벨을 알고 있지만, 쇤베르크의 음악을 아는 사람은 전문가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3. 여건: 위의 조건들이 충족되더라도 주변 환경이나 상황이 밈이나 바이러스에 유리하지 않으면 전염병은 발생하지 않는다.
여기서 ‘티핑포인트’란 SIR 모형에서 나오는 전환점과 유사한 개념이다. 즉, 천천히 증가하던 밈이나 바이러스가 갑자기 폭발적인 증가 추세로 바뀌는 시점을 티핑포인트라고 부른다. 티핑포인트는 전염증가의 변곡점으로, 전염병이 티핑포인트에 도달하면 그 추세를 되돌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반대로 전염병을 티핑포인트 전에 막으면 광범위한 확산을 막을 수도 있다.
10대는 疫學的으로 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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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핑포인트>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 |
이 ‘광우병 밈’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사회계층은 10대와 20대의 젊은 세대였다. 역학적 관점에서 볼 때 10대들은 要注意(요주의) 대상이다. 10대들은 각종 질병에 대한 免疫力(면역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어른들과 달리 수백 명 내지 수천 명이 학교라는 비좁은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학교는 역학적 관점에서 보면 수용소보다 더 나쁘다. 수용소 내에서 발생하는 환자는 자동적으로 외부와 격리되지만, 학교에 다니는 10대는 또래들로부터 전염된 병원체를 그대로 집안까지 가지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10대들은 ‘생각의 바이러스’(thought virus)인 밈에도 약하다. 감수성이 예민한 10대는 자극적인 얘기나 이미지에 쉽게 영향을 받으며,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같이 보내는 학교친구 등 같은 또래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다. 특히 각종 소문 및 怪談(괴담)들은 10대들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래서 10대는 성인들이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괴담이나 소문을 믿고 이에 대해 집단 히스테리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학계에선 ‘정보연쇄반응에 따른 군중집단행동’ 또는 ‘떼거리 행태’라고 한다. 촛불시위 때 10대들이 보인 집단행동이 정보연쇄반응이 일으킨 떼거리 행태였다는 점은 <한겨레신문>이 촛불시위 현장에 있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6월 14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잘 나타난다(<한겨레21>, 6월 23일 716호). 10대 여학생 70%, 남학생 30%로 구성된 표본을 상대로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데 가장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사람’을 묻는 질문에 절대다수인 51.7%가 ‘학교 친구’라고 응답했다.
전염병이나 밈이 빠르게 전파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10대들에게 광우병 밈은 매력적인, 즉 고착성이 강한 괴담이었다. 10대는 광우병 밈의 초기 감염자이자 전파자, 즉 초기 수용자로서 광우병 밈을 열렬히 받아들이고 전파했다. 초기 전도자로서 10대들의 영향력은 他(타)세대에 비해 집단행동을 용이하게 해주는 학교라는 조직을 통해 극대화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대학생활이나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20대는 학교와 級友(급우)가 人的(인적) 네트워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0대보다 質的(질적)으로 더 복잡하고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20대는 또래 집단의 영향력도 10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해지기 때문에 정보연쇄반응이 일어날 가능성도 줄어든다. 20대는
그동안 국내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대규모 시위는 이념적·계층적 連帶感(연대감)을 바탕으로 강력한 조직력을 갖춘 정치집단이나 이익단체들이 주도해 왔다. 특히 민주화 과정을 전후로 시위를 주도해 온 在野(재야)단체·勞組(노조)·학생조직 등은 자금력을 갖추고 대규모의 인원을 동원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시위소품도 자체 조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촛불시위는 공통분모가 작은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일종의 자가조직(self-organization)적 성격을 띠었을 뿐 강력한 조직력을 갖춘 ‘배후’가 없었다.
10대들이 청계광장에 모인 이유는?
그렇다고 이들이 아무도 조종할 수 없는 군중심리에 의해서 움직인 것은 아니다. 군중심리에 편승한 폭도가 폭력과 자기파괴적 양상을 보였지만, 촛불시위는 최소한 초기에는 非(비)폭력적·비정치적 성격을 보였다. 이는 촛불시위대가 상당한 자기제어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촛불시위는 어떻게 배후가 없이도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않고 조직력과 자기제어력을 보일 수 있었을까?
모순처럼 보이는 이 문제는 게임이론의 대가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머스 셸링의 ‘암묵적 조정’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셸링은 그의 대표작인 <갈등의 전략>에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다.
그는 사람들에게 뉴욕에서 시간과 장소를 미리 정하지 못했고 연락할 방법도 없이 친구를 잃어버렸다면 어디로 가서 그 친구를 찾겠냐고 물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뉴욕의 중심부에 있는 그랜드 센트럴驛(역) 대합실 중앙에 있는 시계탑 앞으로 가겠다고 했다. 게다가 대부분이 정오에 가서 기다리겠다고 답했다. 셸링은 우리가 확실한 사전 약속과 조율 없이도 무의식적인, 암묵적인 동의와 합의를 통해 서로의 행동을 통일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만약, 당신의 조카뻘인 먼 친척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다며 당신의 부모님한테서 연락이 왔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아직 10대인 당신의 조카는 서울의 지리도 잘 모를뿐더러 당신이나 당신 부모의 전화번호도 모른다.
그렇다면 서울 한복판에서 미아가 된 조카를 과연 어디서 찾을 것인가? 이럴 때 당신은 어디로 가서 시골에서 올라온 어린 조카를 기다릴 것인가?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청계광장에서 찾겠다고 답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물론 기성세대라면 서울역 광장에서 기다리겠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 촛불시위가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젊은 세대들 머릿속에 청계광장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곳으로 각인돼 있는 것이다. 그들은 누가 따로 알려주거나 조종할 필요 없이 시내에서 모여서 집회를 벌이고자 하면 대부분 청계광장으로 모인다. 그곳은 젊은 세대의 집단행동의 구심점이자 ‘아지트’이며 놀이공간이기 때문이다(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최대의 치적으로 내놓은 청계천 복원으로 조성된 청계광장이 새 정부를 출범 초기부터 뿌리째 흔드는 촛불시위의 진원지가 됐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공중파 방송이 광우병 밈 확산에 가장 큰 역할
암묵적 조종이론은 10대, 20대가 어떻게 ‘자율적’으로 동원되고, 타인의 조종 없이 한 장소에 운집할 수 있었는지와 함께 촛불시위의 비폭력성·비정치성도 설명해 준다.
이번 촛불시위를 주도한 10~20대는 민주화 시위를 경험한 30~50대와는 달리 대규모 집단행동을 경험한 적이 거의 없다. 이들은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을 통해 집단행동에 대한 ‘훈련’을 받았고, 곧이어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에 항의하는 촛불시위를 통해 자신들만의 시위문화를 익혔다. 서울광장 인근이 主(주)무대였던 이들에게 촛불시위는 거리응원의 연장이었다. 그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시위문화에는 폭력과 정치성 대신 비폭력과 즐거움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런데 10대와 20대들의 사고와 문화의 또 다른 특성은 기성세대에게 쉽게 전파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10대와 20대가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음악에 대해 무관심하다. 노래나 연예인들은 10~20대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해, 좀 더 나이가 많은 세대가 관심을 가질 때쯤이면 이미 그 인기가 頂點(정점)을 지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일 기성세대가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촛불시위도 10대와 20대 사이에서만 유행하다 사라지는 노래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수그러들었을 수도 있었다. 불행히도 광우병 밈은 자연 소멸되지 않고 세대 간의 벽을 넘어서 기성세대에게까지 전염됐다. 광우병 밈을 생성한 언론의 영향력이 막강했고, 시위가 확산될 수 있는 환경이 너무 잘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시위를 촉발시킨 ‘광우병 밈’을 제공한 것은 방송미디어였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이번 촛불시위 중에는 인터넷의 역할보다 공중파 방송매체의 역할이 훨씬 크고 중요했다.
인터넷 토론 사이트인 다음의 아고라가 많은 역할을 했다고 하나, 아고라에 참여한 네티즌들은 토론을 통해 판단에 도움을 받기보다는, 주로 미국 쇠고기와 보수 정권에 대한 반감을 확인하고, 동일한 가치관을 지닌 동료들을 찾기 위해 모였다. 즉, 아고라는 인터넷의 장점(통신의 간편함, 확장성) 등을 最適化(최적화)하여 良質(양질)의 토론을 이끌어내기보다는, 주로 같은 성향의 사람들끼리의 結社(결사)를 간편하게 해주는 도구로 이용됐다. 원래 인터넷에 토론장보다 동호회가 더 많은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광우병 밈이 사회 전반에 골고루 퍼지게 하는 데는 공중파 방송매체가 가장 큰 역할을 했고, 아고라는 공중파 방송에 이용당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촛불시위가
386세대의 참여로 폭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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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민주화 운동과 격렬한 노사분규를 체험한 386세대가 가세하면서 촛불시위는 폭력화됐다. |
때문에 저녁시간에 열린 촛불시위는 30대와 40대 회사원들이 퇴근길에 잠깐 들러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 광우병 밈에 이미 노출됐을 뿐만 아니라 새로 출범한 보수정권에 대해서 비판적이던 386세대가 시위에 참여하기에는 理想的(이상적)인 환경이었다. 그리고 1987년 민주화 항쟁 기념일이 다가오면서 촛불시위와 민주항쟁은 서로 오버랩되면서 어느덧 386세대의 시대정신과 정서를 대변하기 시작했다.
초기 광우병 밈이 10대와 20대의 입장을 반영하여 정치적으로 無色·無臭(무색·무취)했다면, 386세대에게 전염되면서 광우병 밈은 정치적 색깔을 띠기 시작했다. 한국이 미국에 대해 종속적 위치에 있다는 386세대들의 세계관과 이명박 보수정권이 대표하는 한국 사회의 주류층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불만이 합쳐지면서 쇠고기 수입문제를 단순한 먹거리 문제에서 對美(대미)종속과 계층 간의 정치적 문제로 돌변시켰다. 바이러스가 여러 숙주를 거치면서 변이하듯 광우병 밈 역시 새로운 계층으로 전이되면서 변이된 것이다.
그리고 386세대가 본격 참여하면서 시위대는 보다 광범위한 사회구성원을 대표하기 시작했다. 촛불시위가 티핑포인트에 도달한 것이다. 이때부터 촛불시위의 규모는 폭발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오랜 민주화 투쟁과 노사분쟁을 경험한 30, 40대가 주도하는 시위는 노골적으로 폭력적·反(반)정부적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시위대가 청계광장을 벗어나 청와대 진출을 시도하다 경찰과 격렬하게 부딪치기 시작한 것은 386세대가 시위의 주도권을 잡았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시위참여 비용이 낮은 것이 문제
촛불시위가 초기에 아무 배후조종 없이 그토록 많은 사람을 동원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한국에서는 시위 참여에 따르는 有·無形(유·무형)의 비용이 낮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시위에 참여할 때는 어느 정도의 비용을 지출해야만 한다. 시위장소까지 가는 데 교통비가 들고, 시위에 여가시간이나 근로시간을 허비함으로써 생기는 기회비용이 있다. 경찰에 의한 연행이나 진압 중에 생길 수 있는 부상과 그로 인한 비용도 포함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비용이 너무 낮다.
광화문 인근은 대중교통망이 촘촘히 얽힌 지역으로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서도 대중 교통을 이용해서 손쉽게 찾아올 수 있다. 또 서울은 선진국 대도시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야간에도 비교적 안전하다. 밤에도 노약자, 어린이, 부녀자들은 걱정 없이 시위장소로 모일 수 있다. 밤에 시위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직장인들이 생업과 근로시간, 소득을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시위진압이 주는 억제효과나 불법행위를 저질렀을 때 지불해야 할 법적 대가가 거의 없다. 때문에 경찰의 법 집행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예상비용도 낮다. 경찰력이 아무 억제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은 시위 참여자들이 경찰의 진압시도에 압도당하기는커녕 조롱으로 일관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외국의 경우는 한국과는 반대로 시위에 참여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따른다. 대부분의 중산층이 都心(도심)과 멀리 떨어진 외곽에 거주하는 외국에서는 개개인이 도심까지 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교통비를 지출해야 한다. 외국에서 근무시간이 끝나는 저녁 시간대에 도심에서 시위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도심의 치안 상태가 나쁠 뿐 아니라,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집까지 가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퇴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미성년자가 보호자 없이 돌아다니면 경찰이 보호 차원에서 연행하기도 한다.
외국에서 경찰은 ‘집회의 자유’는 보장하지만,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1999년 시애틀에서 있었던 反(반)세계화-反(반)WTO시위 당시, 시애틀 경찰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폭력시위대가 폴리스 라인을 넘자 중무장한 경찰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한국경제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에 의하면 촛불시위로 한국 사회가 직·간접적으로 지불한 총비용은 약 3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직접비용에 해당하는 1조원이 사회가 실질적으로 지불한 비용의 전부였다고 해도, 5월부터 7월까지 총 누계 50여만명이 참가한 촛불시위의 1인당 사회적 비용은 200만원 가량이 된다(1조원÷50만명 = 200만원).
개개인이 촛불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1인당 200만원 아니라 20만원만이라도 유·무형의 ‘참가비’로 지불했다면, 설사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고 해도 과연 50여만명이나 촛불시위에 참여했을까?
촛불시위의 逆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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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시애틀에서 있었던 反세계화 시위 당시 경찰은 불법을 저지른 시위대를 단호하게 진압했다. |
새롭게 ‘변이’된 광우병 밈은 좌파진영을 결집시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보수진영이 빠르게 결집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광우병 밈을 386세대가 정치화시키자 보수계층 역시 광우병 밈을 더 이상 먹거리 문제로 보지 않고 정치적인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 이는 역학 모형에서 인구의 일부분이 예방접종을 통해 면역력을 획득하게 되는 것과 같다.
광우병 밈의 고착력이 세대와 정치적 이해를 초월한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에 기반을 두었다면, 새롭게 ‘변이’된 광우병 밈에는 정치성이 가미되면서 보수적 기성세대에 잠재된 정치적 ‘면역력’을 일깨웠다.
동시에 촛불시위의 정치화는 10~20대와 386세대가 공유하던 ‘암묵적 합의’를 깨뜨렸다. 10~20대와 386세대의 성장배경은 판이하게 다르다. 10~20대는 사회를 거대담론적인 투쟁의 관점이 아닌 일상의 관점에서 본다. 그리고 이들의 시위문화는 폭압적인 정권 아래서 성장한 386세대의 시위문화와는 달리 비정치적이며 비폭력적이다. 따라서 10~20대와 386세대가 공유하던 암묵적 합의였던 비폭력적이며 비정치적인, 즉 거리응원 같은 시위는 386세대가 촛불시위를 주도하기 시작하면서 깨졌다.
이로써 촛불시위는 더 이상 확산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혔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지층이 이탈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촛불시위가 활력을 잃자 처음과는 반대로 ‘逆(역) 밴드왜건 효과’(남들이 이탈하는 것을 보며 자신도 이탈하는 현상)에 의해 일부 급진세력만 남고 나머지는 이탈하기 시작했다.
촛불시위의 逆說(역설)은, 10대와 20대가 주도한 시위에 386세대가 참여함으로써 티핑포인트에 도달할 수 있었지만, 386세대의 적극적인 참여와 함께 촛불시위가 소멸했다는 점이다.
386세대와 李明博 정부의 誤判
일부 386세대는 10~20대를 자신들의 정신적 후계자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386세대가 촛불시위를 통해 ‘어게인 1987년’을 만끽했다면, 젊은 세대들은 ‘어게인 2002년’을 경험했다.
대선과 총선에서 내리 패해 형세가 궁핍해진 좌파세력과 야당은 ‘어게인 1987년’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촛불시위의 주도권을 잡고자 노력했다. 민노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대거 촛불시위의 선봉에 나서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촛불의 파급력과 정치적 영향력은 촛불의 脫(탈)정치성에 기반하고 있었다. 따라서 386세대의 참여는 오히려 촛불 확산에 제동을 거는 결과를 가져왔다.
반대로 보수세력은 촛불시위를 20여 년 전 일어난 민주화 시위의 연장선에서 보면서 지나치게 두려워한다. 물론 민주사회에서 수십만 인파가 장기간 반정부 시위를 한다면 그 정권은 매우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촛불시위의 파괴력은 보수세력이 생각하는 만큼 강력한 것이 아니었다.
앞서 살펴본 대로 낮은 시위 예상 비용과 많은 인구가 한 곳에 쉽게 몰릴 수 있게 설계된 서울의 도시구조는 수많은 사람들이 즉흥적으로 시위에 참가할 수 있는 물리적 여건을 조성해 놓았다. 때문에 퇴근길 회사원들이나 나들이 나온 듯한 가족들이 즉흥적으로 시위에 참가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렇게 즉흥적으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시위가 과연 얼마나 ‘진지’하냐는 점이다.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하던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개인에게 돌아올 수 있는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모인 20여 년 전의 50만 인파와, 경찰을 폭행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으며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반정부적 언론이 다수인 오늘날 모여든 50만 인파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시위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한 보수정부는 초기부터 촛불시위를 시종일관 잘못 읽었다. 우선 처음에는 너무 쉽게 시위를 허락했다. 그리고 5월 중순에 들어서면서 촛불시위의 규모가 2주째 1만명 이상을 넘지 않았음을 안 정부는 나름대로 숨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특히 5월 22일에는 강경하게 대처해야 할 때에 오히려 대통령이 對(대)국민 사과를 발표해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
거꾸로 시위가 다른 계층으로 번지기 시작한 5월 29일에는 장관 告示(고시)라는 强手(강수)를 둬서 촛불시위를 티핑포인트까지 몰아갔다. 정부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때쯤 ‘광우병 밈’, 즉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이 걸린다는 생각이 처음 촛불시위를 주도한 10대와 20대를 넘어서 사회 전반에 퍼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일단 촛불시위가 티핑포인트를 넘어섰을 때, 정부는 촛불시위의 정치화에 주목하여 보수적 지지층에 잠재돼 있는 386세대에 대한 정치적 면역력을 일깨워 좌파세력과 대립각을 세웠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티핑포인트를 넘어서서 통제가 불가능해진 촛불시위에 굴복해 미국과의 再(재)협상을 약속하면서 국제신용도를 떨어뜨리고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전통적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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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시위의 확산은 보수세력의 반발을 불어왔다. 사진은 6월 10일 보수단체들이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개최한 '법질서 수호 한미FTA촉구 국민대회'. |
촛불시위의 교훈
촛불시위는 한국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위문화였다. 10~20대의 ‘암묵적 합의’를 반영한 ‘미친 소’ 촛불시위는 386세대가 강력한 이념으로 무장한 채 막강한 공권력에 맞서던 과거의 민주화 투쟁이나 노동운동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10~20대가 주도하는 춧불시위 문화는 386세대의 이념적·정치적·폭력적 시위문화와 섞이기를 거부한다. 한편으로는 즉흥적이고 자발적이면서 축제 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일반 대중의 참여를 쉽게 유도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제나 이념적·정치적 깊이에서 지속성·연속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러한 촛불시위가 대규모 시위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느끼는 시위 예상 비용을 현실화(인상)해야 한다. 백신이 없는 신종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가장 확실한 조치는 감염자와 감염 노출자를 격리시키는 것이다.
가장 확실하게 시위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시위 기대심리, 즉 불법시위에 참가해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해도 자기 자신에게는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기대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는 즉흥적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동이 과연 높은 예상 비용(벌금)을 치를 만큼의 값어치가 있는지 한번 더 생각하게 함으로써 시위를 주도하는 소수의 초기 전파자들로부터 대중을 격리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촛불시위는 분명 민주화되고 중산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의 전형적인 시위행태이고 따라서 미래의 시위문화다. 앞으로 정부당국은 국민들의 정당한 의사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과도한 정치적·사회적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집회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급변하는 사회의 역학에서부터 도시구조에 기반한 치안정책에 이르기까지 심도 있고 세심한 정책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