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학계열로만 진학한다」고 오해받지만, 2007년 서울과학高 졸업생 168명 가운데 138명 이공계 진학. 의·약학계 진학은 14명에 불과

- 1997년 8월23일 서울과학고 강당에서 한국물리학회의 초청으로 訪韓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게오르그 베드노즈 박사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전국 特目高(특목고) 중에서 서울과학고가 눈에 띄는 것은 1000만 명이나 사는 국제도시 서울의 「표준어」를 쓰는 또래집단인데다 입학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기 때문이다. 「四大門(사대문) 안」 중학교에서 수학·과학 분야에 특출한 재능이 없다면 사실상 입학을 단념해야 한다.
서울과학고가 개교할 당시 사람들은 서울과학고 출신 가운데서 곧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 기대했다. 초대 교장인 金東旭(김동욱) 선생은 곧잘 학생들 앞에서 『가까운 미래에 우리 과학기술이 세계를 제패하게 되리라 굳게 믿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 믿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2006년 현재 졸업생 수는 2499명. 1기 졸업생이 35세로 사회 초년병 신세를 면했거나 중견으로 발돋움하는 위치에 서 있다. 이미 몇몇 졸업생은 학계에서나 기업, 연구원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지만 아직은 상당수가 공부를 業(업)으로 삼고 있었다.
졸업생 2명 중 1명꼴로 서울大 진학
![]() |
| 1기생인 UCLA 조정후 교수가 서울과학고 재학생 앞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
졸업생 중 박사학위를 받은 이가 217명이며, 이 중 국내파가 134명, 해외파가 83명이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가 75명으로 가장 많았고, 카이스트 70명, 서울大 56명 순이었다.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가 국내외 300여 명에 이른다는 것이 서울과학고 측의 귀띔이다. 全세계 어느 영재집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성취다.
현재 30代 초반의 나이에 대학교수가 된 이들은 16명 정도로 파악되지만, 이것 역시 추정치다.
먼저 국내 교수로 카이스트에 박수경(1기·1989년 입학)·김기응(2기)·김문주(2기)·류중희(2기)·조성환(2기) 교수가 있고, 건국大에 정연덕(1기), 한양大에 박용수(2기), 숭실大에 황규백(2기) 교수가 있다. 이 중 정연덕 교수는 서울大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가 「사회과학」인 법학에 매료돼 건국大 법학과 교수가 된 케이스다. 나머지는 대부분 기계·전자·전산·컴퓨터 관련학과 교수다.
해외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이들은 UCLA의 조정후(1기), 브리티시 콜롬비아大의 송은지(1기), 사우스캐롤라이나州立大의 신용준(1기), 노스캐롤라이나州立大의 은도영(1기), 워싱턴州立大 김민식(2기), 코넬大 박지웅(2기), 아이오와大 정은진(4기), 코넬大 서국원(5기) 교수 등이 있다.
서울과학고 출신 1호 교수는 누굴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UCLA에서 컴퓨터 공학을 가르치고 있는 조정후 교수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1996년 서울大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스탠퍼드大에서 박사학위(컴퓨터 공학)를 받았고 2002년 3월부터 UCLA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눈에 띄는 활약―네이처·사이언스誌 표지논문
![]() |
| 박수경 카이스트 교수 |
2007학년도 서울과학고 졸업생(조기졸업 포함) 168명 가운데 이공계에 138명이 진학했고 의·약학계는 14명(8.3%)에 불과했다.
졸업생 가운데 가장 먼저 이름을 떨친 이는 SK텔레콤 상무로 있는 윤송이(3기)씨다. 그는 카이스트를 졸업한 뒤 유학, 만 24세 때 매사추세츠工大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최태원 SK 회장에게 발탁, 만 29세 나이에 상무가 됐다.
![]() |
| 김문주 카이스트 교수 |
UC버클리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박형규(1기)씨는 지난해 5월 「사이언스」誌에 표지논문을 발표했다. 좀더 빠르고 저렴하게 바닷물에서 염분을 걸러 내거나 공장 굴뚝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할 수 있는 필터를 연구했다. 당시 국내 언론에서는 「초정밀 꿈의 필터가 한국인 과학도에 의해 개발되었다」고 보도했다.
코넬大 화학과 교수인 박지웅(2기)씨는 금(Au) 전극 사이에 바나듐과 코발트를 배치해 만든 트랜지스터에 대한 논문을 발표, 2002년 6월 「네이처」誌의 표지기사로 소개됐으며, 캘리포니아大 물리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 하버드大 박홍근 교수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작은 트랜지스터를 개발했다.
![]() |
| 은도영 노스캐롤라이나州立大 교수 |
구글에는 정기현(1기)씨도 있다. 서울大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직장을 다니다 渡美(도미), UC버클리 경영대학원인 하스(HASS) 스쿨을 졸업한 뒤 구글에 入社(입사), 현재 프로덕트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에서는 류석영(1기)씨가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며, 서울과학고 동창회장인 류중희(2기)씨는 IT벤처기업 기술담당 사장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류중희씨는 1999년 SBS에 방송된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사고뭉치 연구실 후배를 구박하는 대학원생으로 출연했다
![]() |
| 윤송이(오른쪽)·하얀씨 자매. |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朴穗京(박수경·1기) 교수는 서울과학고 졸업생의 경쟁력을 이렇게 설명했다(朴교수는 고교를 2년 만에 마치고 카이스트에 입학, 석사를 받은 뒤 미시간大에서 2002년 4월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大 醫大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다 2004년 9월 카이스트에 부임했다).
졸업생이 보는 서울과학高
『서울과학고 졸업생의 특징은 자신감인 것 같아요. 「서울」이라는 지리적 환경과 「과학高」라는 우수 집단에 소속돼 자신감과 자긍심을 갖고 자기 영역을 구축합니다. 또 나름대로 총명합니다.
高1 첫 수학시간에 선생님이 제시한 문제를 한 친구가 高1 수학 후반부에 나오는 시그마(Σ)를 이용, 문제를 풀었어요. 학생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그 친구는 「시그마」라는 별명이 붙게 됐죠. 또 매일 잠만 자는데 1등만 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수업시간, 자율학습시간 할 것 없이 잠만 자는데도 물어보면 어떻게 다 아는지… 그 친구 이름에 「잠」이라는 姓(성)이 붙게 됐어요』
공부에 대한 압박감이나 최고가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늘 상위권을 유지하는 10% 정도의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상대적 열등감 내지 좌절감을 맛보게 됩니다. 제 경우도 서울과학고에 들어와 열등감이라는 감정, 그리고 아웃사이더로서의 경험을 통해 많이 철이 들고 스스로 제 현주소를 깨달았던 기억이 납니다』
카이스트 전자공학과 조성환 교수(2기)는 학창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1992년 카이스트에 입학한 뒤 매사추세츠工大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04년 부임했다.
『친구들 중에는 수학이나 물리는 정말 천재적으로 잘하는데, 국민윤리·국사 같은 과목은 「꽝」인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이런 친구들이 과학고에 들어와 한국 과학의 앞날을 밝게 해야 하는데, 요즘은 성적이 고루 좋아야 하기에 입학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과학高→KAIST 흐름 깨져
![]() |
| 서울과학고 오두환 교감 |
『과학고가 본질을 찾기 위해서는 대학입시에서 자유로워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과학고 학생들의 카이스트 진학 흐름이 이어져야 합니다. 원래 과학고와 카이스트 학부는 비슷한 시점에 맞물려 만들어졌어요.
1990년대 초반까지 그런 흐름이 이어졌지만 서울과학고가 생기면서 깨어지게 됐어요. 다른 과학고와 달리 서울과학고가 집단으로 서울大에 학생들을 보내기 시작했고, 뒤질세라 다른 과학고도 서울大에 학생을 보내어 과학고가 입시학원으로 불리게 됐다고 생각됩니다』
![]() |
| 박완규 교무부장 |
『1기들은 첫 입학생이자 졸업생들로서 선생님들이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사제 간 신뢰가 두터웠죠. 2기들은 직접 담임을 맡아 졸업을 시켰기 때문에 특별히 기억에 남고, 3기들은 대학입시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둔 기수입니다. 당시 서울大에 126명이 지원, 전원 합격했고 서울大와 포항工大 입시에서 전체수석을 차지했어요. 또 대학수학능력 2차 시험에서 전국 전체수석과 여학생 수석을 차지했어요』
![]() |
| 이용준 교사 |
『교내 농구부 5, 6기 졸업생의 활약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추어 전국대회인 「게토레이拜 농구대회」에서 우승해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예체능에서도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어요. 이 친구들은 준결승에서 부산 동성高를, 결승전에서는 서울 광성高를 누르고 우승해 미국 NBA를 참관하는 우승 보너스를 받았습니다.
서울과학고 2006년 국제올림피아드 선발팀도 기억에 남습니다. 올림피아드 대표가 총 31명인데 그중 서울과학고 학생이 13명 참가해 금메달 9개, 은메달 4개를 수상해 역대 최고의 실적을 거두어 학교 명예를 높여 주었습니다』
朴完圭(박완규) 교무부장은 1998년부터 현재까지 물리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朴교사는 7명의 제자를 떠올렸다.
자격루, 국악 신디사이저 발명한 천재들
![]() |
| 1999년 9월14일 제45회 전국과학전람회 학생부에서「자격루의 원리연구와 구조모델 제작」으로 대상인 대통령상을 공동수상한 서울과학고 남휘종·한효녕·현태양·송석현군(왼쪽부터). |
11기 박현우, 14기 박영우 두 형제를 담임을 맡아 가르쳤습니다. 현우는 서울과학고 학생회장을 역임했고, 재학 당시 「21세기를 이끌 우수인재상」을 대통령에게 받았어요. 인성이나 학업 면에서 뛰어났습니다.
영우는 교내 그룹사운드에서 기타를 치던 친구인데 「국악기는 왜 화음이 없을까」에 착안, 국악기 신디사이저를 제작해 전국과학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습니다. 현우·영우 두 형제 모두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서 한국대표로 참가해 금메달을 받았어요. 지금은 서울大 工大에서 바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12기 송석현·현태양·한효녕은 1만원짜리 지폐에 나오는 자격루의 물통을 보고 팀을 짜서 몇 달간 부품을 만들고 못으로 뚝딱거려 직접 자격루를 재현했어요. 관련 이론공부도 스스로 찾아 전국과학전람회에서 서울시 최초로 대통령상을 탔습니다. 세 친구 모두 카이스트 박사과정에 있으며 훌륭한 공학도가 되기 위해 학업에 전념하고 있어요.
14기 김윤직은 서울과학고의 가장 영예로운 상인 「의행상」을 받았습니다. 이 상은 재학생 전원과 교직원 전원의 투표로 정하는데 친구들에게 존경을 받던 친구지요. 심지어 자신의 성적이 생각한 것보다 잘 나오면 교사를 찾아가 깎아 달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현재 카이스트 물리학과 학부생에 재학 중입니다』
![]() |
| 2005년 5월12일 연세大 창립 120주년 창립기념「첨단연구소 개방&과학기술성과 비전 제시」행사에 참여한 서울과학고 학생들이 생체인식연구센터에서 홍체인식 기술을 체험하고 있다. |
『제가 부임한 첫해 학생들이 15기생입니다. 그중에서 강재환이란 학생이 기억에 남는데, 천문올림피아드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이 친구와 저의 집이 가까워 일요일 저녁이면 저희 집에 자주 놀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등교도 제 차로 같이 했어요. 워낙 착한 학생이어서 선생님은 물론 학생들이 좋아했습니다. 재학 중 국제올림피아드에 참가, 은메달을 받았지요. 지금은 코넬大에서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서울과학고의 수업은 강요가 아니라 자율이다. 영재들인 만큼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한다. 교복도 없고 두발도 자유롭다. 심하지 않으면 염색도 무방하다. 사실 교문을 벗어나면 혜화동과 대학로가 나온다. 공부를 방해하는 「지뢰」가 즐비하다. 졸업생들은 어떻게 유혹을 이겨 냈을까. 서울과학고 교사들이 강조하는 것처럼 「흡연율 0%」일까. 또래만이 갖는 性的(성적) 호기심이나 性(성) 정체감을 묻어 두고 공부만 했을까.
이에 대해 洪達植 교장은 『간혹 담배를 피운다고 해도 전교에 1명이 있을까 말까 했을 것이다. 친구들에게 부끄러워서라도 피우지 않는다. 대학로가 있지만 유혹을 받을 아이들이 아니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몇몇 졸업생에게 물어 보았더니 이런 말이 나왔다.
절절한 졸업생의 추억
![]() |
| 서울과학고의 해외 이공계 체험학습 중 스탠포드大 내에 위치한「스탠포드 선형입자 가속기 센터」를 방문하여 크리스 반즈 박사로부터 설명을 듣는 모습(2004년 2월). |
『흡연율 0%? 거짓말이죠. 하지만 아주 소수였어요. 9기 커플이 6월에 결혼하는데 이 친구들은 고교 졸업 후 8년 만에 사귀기 시작한 겁니다. 간혹 친구들은 학교 방범사다리를 통해 기숙사를 빠져 나가 야식을 사오곤 했는데, 저는 고소공포증 때문에 사다리 근처엔 얼씬도 못 했어요』(9기 졸업생)
『저는 암기력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책 한 번 쓰윽 읽으면 줄줄 외는 그런 친구들이 솔직히 부러웠어요. 제 머리는 시험범위를 다 보기 전에 용량이 차는데, 그 친구들은 끝까지 다 외우더라구요.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선생님 몰래 혼자 또는 친구들과 강당 또는 음악실에 잠입, 피아노를 치거나 노래를 부른 적도 많습니다. 비밀인데…』(8기 졸업생)
『공부 잘하면 놀기도 잘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교칙을 아슬아슬하게 어겨 가며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 기수에 동기가 결혼을 했는데 둘이 사귄 것은 고교 졸업 이후부터라고 해요. 또 7기 한 명이 9기 후배와 결혼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7기 졸업생)
『괴짜가 있었어요. IQ가 178인 친구가 있었는데 수업이 끝나면 항상 놀지만 성적은 최상위권이었죠. 이 친구와 같이 놀면 성적이 하위권으로 바로 떨어집니다. 생각이 너무 빨라 말을 더듬는 친구도 있었고, 늦은 밤 공부하면서 컵라면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소소한 재미였어요』(4기 졸업생)
『학교 다닐 때 3~4명 정도 커플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현재는 대부분 깨진 것으로 압니다. 일반高에서 발생하는 커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최근 2기에서 동기끼리 결혼한 사례가 있는데 다른 기수는 모르겠어요』(2기 졸업생)
『천년바위, 볕이 좋은 오후면 올라앉아 새소리와 파란 하늘과 함께 한적함을 즐기던 곳이다. 우리 학교에서 가장 좋은 명당자리로, 개교 이래 위로는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아래로는 갓 입학한 신입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우리 학교 식구들의 휴식처다. 봄이면 진달래, 여름이면 매미소리, 가을 향기를 제일 먼저 맡을 수 있고 눈 덮인 혜화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천연바위…』(1기 졸업생)
막내 졸업생의 경험담
![]() |
| 서울과학고 재학생들이 미국 매사추세츠 工大 광학연구실을 찾아 졸업생 선배로부터 광학 원리를 배우고 있다. |
―서울과학고의 전통은 무언가요.
『입학하면 그 다음날 新·舊(신·구) 대면식이 있어요. 예를 들어 한 해 전 1학년 1반 선배들이 새로운 1학년 1반에 찾아가 학교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운동장에선 신구 대항전이 열려 축구·농구도 하죠.
학교축제인 「천년제」가 있어요. 다른 고교 축제랑은 다른데, 뭐랄까 과학전람회에 온 듯한 분위기죠. 화학 동아리에서는 신기한 실험이나 헬륨 풍선, 유리세공 같은 걸 보여 주고, 생물반에선 돼지 해부를, 수학반에선 수학적 원리가 담긴 장난감을 선보이죠. 또 햇수로 4년째가 되는 해외 이공계 체험학습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공계 체험학습은 어디로 가나요.
『1학년 말에 미국을 동부·중부·서부로 나눠 각 대학교, 연구소 등에 견학을 갑니다. 「나도 저런 곳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는 좋은 계기가 돼요』
서울과학고의 해외 이공계 체험학습 프로그램은 미국 각지에 있는 졸업생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학계나 연구소에 몸담고 있는 서울과학고 동문들이 직접 재학생들을 이끌고 세계 최고 연구소들을 방문하는 경우는 다른 학교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서울과학고 동문들이 역량을 모은 첫 번째 사례라고 하겠다.
―학생들의 평균 IQ가 궁금합니다. 보통 130이 넘나요.
『어떤 친구는 150이 넘는 수재이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130 정도를 나타내는데 평균 130을 상회하는 듯합니다. 저희 기수에서 IQ가 제일 높았던 친구는 공교롭게도 성적이 상위권이 아니었어요』
―주위의 「최고여야 한다」는 시선이 학교생활을 어렵게 만들진 않나요.
『보통 한 기수에 2명 정도는 한 학기를 마치면 전학을 가는 것 같아요. 항상 최고라는 말이 따라 다녔는데 뒤처지는 자신이 힘들었겠죠. 「넌 과학고잖아. 왜 몰라?」 이런 식의 비아냥이 힘들었어요. 저희는 그저 과학·수학 교과목을 남들보다 조금 더 배웠을 뿐입니다. 「과학고=샌님」 취급을 하기 일쑤죠』
취재 도중 졸업생들을 기수별로 만나 동기들이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추정만 할 뿐 전체를 아우를 수 없었다. 따라서 정확한 통계를 내기 어려웠다.
2기생인 金文柱(김문주)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는 『국가적 혜택을 받은 만큼 「노블레스 오블리주」 의식을 갖고 있다』고 했다. 金교수는 카이스트를 졸업한 뒤 펜실베이니아大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직업군에 대한 통계는 갖고 있지 않지만 카이스트에서 서울과학고 출신은 뛰어난 인재로 평가받고 있기에 최대한 많은 동문들을 데려오기 위해 홍보 및 설득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제공받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그런 혜택을 통해 선두그룹이 될 수 있었던 만큼 노블레스 오블리주 의식을 갖고 살고자 합니다』
서울大 화학과를 졸업한 8기생 金澤洙(김택수·1996년 입학)씨의 이야기다.
내신 때문에 흩어진 8~10期
『비교내신 혜택을 못 받은 첫 기수입니다. 뿔뿔이 흩어졌던 기수이기도 하죠. 검정고시를 본 친구도 있고, 법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한 친구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대학원에 진학했거나 유학생·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졸업생 대부분이 20代 후반이거나 30代 초반의 나이여서 아직 행보가 유동적이고 사회적 성취를 거둔 경우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았다.
사례연구 차원에서 7기생(1995년 입학)의 졸업 후 진로 분포도를 알아보았다. 서울大 기계항공공 학부를 졸업한 7기생 金鎭彦(김진언)씨가 도움을 주었다. 그는 현재 (주)트라이디커뮤니케이션이라는 3D인터넷 커뮤니티 업체에서 인터넷 관련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었다.
『현재 직업군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미국에 석·박사로 유학 간 친구들이 대다수입니다. 스탠퍼드, 매사추세츠工大, UC버클리, 미시간, 조지아텍, 텍사스大 오스틴 캠퍼스, UC샌디에이고, 존스홉킨스, 일리노이大 어바나 샴페인 캠퍼스에 있는 친구를 모두 합치면 40~50명은 될 듯싶네요.
전기전자·컴퓨터·기계·항공·재료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 나가 있고, 그중에 가장 많은 경우가 전기전자 계열입니다. 스탠퍼드大에만 17명, 매사추세츠工大에 10명 정도가 있어서 가장 많이 재학 중입니다.
그 다음으로 서울大나 카이스트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도 있고, 일반 국내 IT 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리고 소수지만, 醫大에 진학하거나 工大를 졸업한 후 경제·경영학을 전공하러 유학 간 친구, 금융권에 취직하거나 컨설턴트로 일하는 친구들 등 다양하게 있어요』
학부 과정에 있는 졸업생을 제외한 1~10기생 기수들의 진로 상황을 수소문했으나 모두들 비슷한 대답을 했다. 180명의 졸업생 중 50%(80~100명)가량이 工學 및 자연계열에 진학, 국내외 대학에서 석·박사 코스를 밟고 있었다.

법조인 29명 배출
![]() |
| 2기생 최효종 변호사 |
『사견입니다만, 과학고를 입학했다고 해서 모든 학생들이 이공계로 진로를 정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中3 때 과학고 입학시험을 봤는데 이때 정한 진로가 100% 확실하다고 누구도 보장 못 합니다. 각자 적성과 자신이 추구하는 길이 있기에 사회에서 180명 전부 과학고 취지대로만 가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고 봐요』
서울과학고 출신 중에는 변호사·판사·법무관·사법연수원생을 포함해 벌써 법조인이 29명에 이른다. 대부분 이공계 대학에 진학했다가 사회과학인 법학에 끌려 전공을 바꾸었다.
1~10기 졸업생 중 법조인이 각 기수마다 고루 분포돼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서울과학고 출신 법조인 모임(「저스티스」)까지 있으며 주로 이공계 전문성을 살려 지적 재산권이나 기업 M&A, 특허 관련 자문역을 맡고 있다.
아직 검사를 배출하진 못했는데 그 이유는 『몸으로 하는 일을 꺼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칠게 부대끼는 검사보다는 논리적·이성적 판단을 주로 하는 판사나 변호사를 선호한다는 얘기다. 시간이 흐른 뒤에 이공계 법률문제를 다루는 「서울과학고 로펌」이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2기생인 최효종 변호사의 이야기다. 최변호사는 서울大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사시(44회)에 합격, 법무법인 세종에서 기업법무 일을 맡고 있다.
『제 개인적으로는 향후 공학 쪽으로 계속 진로를 밟아 가는 것이 학문적인 흥미는 있지만 진로가 다소 불확실하다고 느꼈어요. 막상 공부를 해보니 자연의 이치를 다루는 이·공학 분야만큼이나, 사회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해 가는 법학에서도 흥미를 느꼈어요. 법학도 사회 「과학」의 한 분야이기 때문이죠.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에 법률적 뒷받침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서울과학고 출신 법조인(판사·변호사·법무관·사법연수생)은 모두 29명으로 1기생 이동환, 2기생은 박석민·박주영·박세현·최효종·장현진, 3기생은 남현·송헌·장규형·차경수씨 등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전자공학을 전공했다가 유턴, 법학박사가 된 경우도 있다. 1기생인 건국大 법학과 鄭然德(정연덕) 교수는 서울大 전기전자제어공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大 법과대학원에 입학, 2005년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법학과 교수가 됐다.
『공익 근무 시절 고시공부를 시작하다가 아무런 기초가 없어서 체계적인 정규교육을 받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이공계 출신이 법학공부를 하다 보니 지적재산권법을 연구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법학만 배운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요』
이 밖에 「뜻밖의 길」을 찾은 서울과학고 졸업생도 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3기생 白潤學(백윤학)씨는 서울大 전기공학부를 졸업한 뒤 音大에 再입학, 지휘를 전공했다. 이후 미국 커티스 음악원 졸업,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다.
『대학교 때 혼성합창단 활동을 하다가 音大 남학생이 없어서 지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音大과목을 열심히 들었어요. 그리고 졸업 후 音大로 편입했고, 軍에 다녀온 후 대학원에 진학, 3학기를 다니다 커티스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한국에 들어가 좋은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사견이지만, 장영주·정경화 10명보다 훌륭한 오케스트라 하나가 그 나라의 문화적 기반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훌륭한 작곡가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서양 음악은 세계적인 유산입니다. 좋은 작곡가와 오케스트라를 바탕으로 훌륭한 음악문화가 융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제, 작곡가, 지휘자 창업 등으로 다른 길 찾기
![]() |
| 중앙콩쿠르 작곡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8기생 김택수씨. |
『화학과에 다니던 시절에도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라틴재즈를 하려고 스페인語 공부를 좀 해둔 상태에서 어학연수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동문 친구 가족이 프랑스에 잠시 나와 계셨는데, 친구 어머니께서 「어차피 어학연수 갈 것이라면 프랑스에서 지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하셔서 갑작스럽게 프랑스行을 결정했지요. 거기서 미래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게 됐고, 음악을 공부하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습니다』
서울大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와 경영학부를 졸업한 4기생 高承宰(고승재)씨는 공부 잘하는 비법을 전수하기 위해 동기생인 이병훈씨(서울大 기계항공 공학부 졸업)와 함께 「에듀 플랙스」라는 회사를 차렸다. 과학고 시절 공부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성격과 적성, 성적 수준에 맞게 교육목표를 제시하고 수업방식을 짜주는 이른바 「학습매니저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아무래도 과학고 출신이다 보니 가르쳐 달라는 부탁이 많이 들어와 대학 시절, 개인 과외교습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해당 과목만 가르친 게 아니라 동기부여 차원에서 상담도 하고 시간관리, 다른 과목 학습법들까지 알려 줬더니 성적이 많이 올랐고 계속해서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어찌 보면, 공부를 잘하기 위해선 공부기술보다 성취동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동기부여 방법론」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창업 이유입니다』
서울大 물리학과를 졸업한 9기생 조동원씨는 가톨릭大 신학과에 입학, 현재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어린 시절 꿈꿔온 사제의 길을 대학을 졸업한 뒤에야 찾은 것이다. 어찌 보면, 서울대교구 정진석 추기경이 서울大 화학과를 다니다 신부가 된 경우와 비슷하다.
『신학교에 들어와 신학과 철학을 배우며 물리학에서 배웠던 자연과학의 개념을 再음미하고 있습니다. 물리학과 영성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닙니다. 황우석 사태에서 보듯 아무리 과학탐구가 가치중립적이라 해도 실생활에 적용되면 전혀 별개일 수 없습니다.
자연과학도 철학과 윤리학의 도움 내지 감독을 받아야 해요. 서울과학고에 들어가고, 대학에서 물리학을 배운 것은 사제가 되기 위한 수련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도 사제의 꿈을 버리지 않았고 지금의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어요』
노벨상의 꿈
![]() |
| 서울과학고 재학생들이 미국 칼텍工大 무인자동차 원리를 배우고 있다. |
<주위 사람을 섬기고 여러분 자신도 섬기세요. 여러분은 뛰어난 학생입니다. 스승의 수준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태양을 향한 해바라기같이 스승을 섬기세요. 교사·부모, 그리고 다른 이들을 섬기는 일은 단순히 여러분의 의무를 다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섬기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행복을 위해서만 할 일을 하고 공부하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이 용감해지길 희망합니다. 배운 지혜를 낭비하지 마십시오. 부모님의 충고 속에 담긴 소중한 경험을 버리지 마십시오. 새로운 것들, 비록 그것이 쓸데없이 보이거나 어떤 이득도 보이지 않더라도, 여러분의 전문성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도전하고 익히십시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던 학생들은 노벨상의 꿈을 꾸었다. 교사들도 제자들 중에서 노벨상 타기를 바랐고 희망했다. 은연중에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 주기 위해 애썼고,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서울과학고에 햇수로 11년간 재직한 吳斗煥 교감의 이야기다.
『서울과학고 졸업생이 노벨상을 받으려면 적어도 20년은 흘러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면 새로운 학설이나 논문이 검증되고 증명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노벨상 수상자의 조건 중 하나로 「장수해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하지만 멀지 않은 장래에 노벨상이 나오리라고 보며 그 주인공은 서울과학고 출신 학생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과학고에 다니는 자체가 국가와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열심히 노력하여 국가의 명예를 높이고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인물로 성장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朴完圭 교사는 『하루 빨리 노벨상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다』고 했다.
『명문대학에서 최연소 박사학위를 받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하루 빨리 노벨상을 타는 것이 중요한 것도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자신이 과학을 좋아하고 오랜 세월이 걸리더라도 중요하고 의미 있는 연구를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李龍晙 교사는 『솔직히 서울과학고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면 좋겠다』고 했다.
『노벨상보다 빌 게이츠가 낫다』
![]() |
| 하버드大 전경. |
졸업생의 생각은 어떨까. 졸업생들은 『노벨상을 타야 한다는 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다소 민감한 내용인 만큼 졸업생 이야기를 익명으로 소개한다.
『언론에서 자꾸 노벨상, 노벨상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노벨상을 100개 받는 사람보다 마이크로소프트社의 공동 창업자인 빌 게이츠나 인텔社의 명예회장인 고든 무어와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2기 졸업생)
『40기 학생을 받을 무렵이면, 在外(재외) 연구자 중에서 활약하는 졸업생 중에서 노벨상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타 과학자 한 사람을 배출하는 것이 상징적인 의미에서 중요하지만 과학 선진화를 위해서는 이공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가 우선시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5기 졸업생)
미국의 서울과학고 출신
![]() |
| 매사추세츠工大 전경. |
물론 서울과학고에서 노벨상이 나오면 기쁘고 좋은 일이지만, 자신의 삶에서 학문이 어떤 의미를 차지하며 또 얼마만큼의 성취감과 만족감을 갖느냐가 인생에서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서울과학고 100기나 200기까지 가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없다한들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7기 졸업생)
『서울과학고 시절, 선생님께서 「노벨상에 도전하라」는 말씀은 없으셨어요. 특히나 이공계 중 工大가 차지하는 비율이 많은 상황에서 노벨상을 화두로 올린 기억이 별로 없어요.
노벨상은 주로 순수과학 및 이와 관련된 응용분야가 중심이잖아요. 물론 수학 및 물리 분야에서 정말 뛰어난 감각을 지닌 친구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 중에서 工大로 진학해 재능을 발휘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럴 경우도 노벨상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겠죠』(1기 졸업생)
서울과학고 동문들이 가장 많은 지역 3곳을 꼽으면 서울大가 있는 서울, 카이스트가 있는 대전, 그리고 하버드大와 매사추세츠工大가 있는 미국 보스턴이다. 미국 명문대가 있는 곳이면 서울과학고 출신들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미국 북동부 지역인 뉴잉글랜드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매사추세츠工大 옥상에서 돌을 던지면 서울과학고 출신이 맞는다」고 말할 정도로 그 수가 많다. 매사추세츠工大에만 50명 이상의 서울과학고 졸업생이 공부하고 있다. 대부분 석·박사 과정에 있거나 박사後 과정을 밟고 있다.
특히 이 대학 기계과와 재료과, 물리학과·화학과 대학원에 한국인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서울과학고 출신이 다수를 차지한다. 매사추세츠工大 교수들은 한국 출신 중에서도 서울과학고 졸업생의 명석함을 인정해 해마다 많은 수의 졸업생을 데려가고 있다.
하버드大에 20여 명이 있으며 예일大와 브라운大를 포함한 뉴잉글랜드 지역에만 100명 이상의 동문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매년 추수감사절에 동문들이 모여 친목을 나눈다. 그러나 10기 졸업생까지는 유대가 탄탄했으나 유학생 수가 크게 불어나면서 동질성이 약해졌다고 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버클리, 오클랜드가 나란히 연결된 북가주 지역 「베이 에어리어」의 스탠퍼드大와 UC버클리大에도 서울과학고 출신이 많다. 스탠퍼드大에 50여 명이 재학 중이고 버클리大에 10여 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베이 에어리어 거주자만 10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서부의 미시간大, 일리노이大, 위스콘신大, 퍼듀大 등에도 모두 40~50명의 졸업생이 학업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뉴욕과 워싱턴, 텍사스·남가주에도 20~30명의 서울과학고 출신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버드大서 생명공학 박사 하는 吳成煥씨
하버드大 메디컬 스쿨에서 생명과학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는 9기생 吳成煥(오성환)씨는 서울大 화학과를 7학기 만에 졸업하고 2003년 9월에 유학을 떠났다. 그는 서울과학고 재학 시절인 1999년 태국에서 열린 화학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딴 수재다. 서울大 재학시절에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동아리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고, 音大 과목만 일곱 강좌를 들을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다. 하버드大에 진학해서도 대학원생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5월27일부터 나흘간 열렸던 「아시아 오세아니아 생화학 분자생물학회」 참석차 귀국한 그를 서울 강남역 부근에서 만날 수 있었다. 吳씨는 『오랜만에 와서인지 서울의 풍경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했다.
노벨상은 「로또」?
![]() |
| 하버드大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오성환씨. |
『생선기름에 많이 들어 있는 「오메가-3 지방산」(DHA라든가 EPA라고 불리는 지방들의 총칭)의 항염증 작용에 관한 분자약리학적 연구입니다. 오메가-3 지방산들이 고혈압이라든가 동맥경화, 관절염을 예방하고 완화시키는 데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밝혀져 있어요.
그런데 분자 수준에서 어떠한 기전으로 긍정적 효과를 나타내는지에 대해선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저희 연구실에서는 이같은 오메가-3 지방산의 메커니즘을 밝혀 내려고 합니다』
―미국에 있는 서울과학고 출신들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서울과 대전 다음으로 동문들이 많은 곳이 보스턴입니다. 샌프란시스코도 그쯤 되고요. 매사추세츠工大에 16기가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고 각 기수마다 약간 명씩 포진하고 있어요. 올해 대학을 졸업한 13기들이 대거 들어왔습니다. 유학을 떠난 첫해인 2003년 추수감사절에는 10기까지 30여 명의 동문이 모두 모였는데 지금은 훨씬 많아졌습니다』
―서울과학고 출신이 노벨상을 언제 받을 것 같나요.
그는 『노벨상을 기다리다 잊어버릴 때쯤 받을 것』이라고 뼈 있는 이야기를 했다.
『노벨상은 포인트를 적립해서 받을 수 있는 상은 아닙니다. 일종의 「로또」가 아닐까요. 생리의학상만 해도 수천 가지의 다양한 생물학 분야에서 1년에 딱 한 주제에만 주어지는 상이니 「運(운)」의 차원이지요.
처음엔 황당무계하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발상의 논문이 배척되고 비난받다가 10년, 아니 수십 년이 흐른 뒤에야 「어, 이 사람 말이 맞네」 하면서 주는 상입니다. 「연구비를 주었으니 가시적 성과를 내놔라」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마 기다리다 지쳐서 노벨상을 잊어버릴 때쯤 받지 않을까요』
그러나 서울과학고가 가진 인적 자산에 대해서는 커다란 자부심을 내비쳤다.
『서울과학고는 이제 막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의 연구자들을 배출하기 시작했어요. 앞으로 20년 정도가 지나면 대가급 교수들로부터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과학도까지 스펙트럼을 갖춘 조직이 될 것이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학문적 시너지는 단순히 몇 명의 스타 과학자보다, 아니 어쩌면 한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들보다 한국의 과학자들을 위한, 그리고 한국을 위한 훨씬 큰 자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이공계 냉대」 현상은 서울과학고의 존립을 흔들고 있다. 많은 졸업생들이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는 이유도 이공계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7기생 金鎭彦씨는 『무관심이라기 보다 「홀대」라는 표현이 더 맞다』고 했다.
서울과학고와 「바위 연구소」
『우리나라에서는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한 엔지니어를 인정하지 않아요. 경력이 쌓이면 관리직으로 돌려 버리고 맙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엔지니어를 하고 있으면 무시해 버립니다. 외국에서는 40代, 50代 프로그래머·엔지니어·연구원들이 자신의 경력을 존중받고 계속 그 일에 종사합니다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서울과학고 吳斗煥 교감과 朴完圭 교사는 『국가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
『국가 고위직을 사시나 행시 등 고시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고, 기술직 고시 출신들은 출세가 느리고 최상위 고위직에는 진출하지 못하는 풍토가 있습니다. 기업 쪽에서는 이공계 출신들이 CEO로 많이 진출하는 등 개선되고 있으나 여전히 이공계에 대한 배려는 부족합니다.
이공계의 활성화 정책이야말로 국가발전과 생존을 위한 절대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공계 분야에 대한 정부 당국의 비전 不在(부재)가 이공계 황폐화를 조장하고 있어요. 대학입시나 이공계 분야의 취업여건 개선 등 시급한 문제가 많습니다』
2기생인 카이스트 金文柱 교수는 『우선 직장에서 이공계 출신의 낮은 임금수준과 노동강도 축소가 필요하다. 사회적 인식이나 대우는 그 다음의 순서』라고 지적했다.
개교 20주년을 앞둔 서울과학고가 황폐한 이공계의 현실을 넘어설 수 있을까.
「수재집단」 서울과학고는 한국 이공계의 거대한 인적 네트워킹을 형성하고 있다. 각지로 흩어진 2000여 명의 동문들은 서울과학고 동문 웹사이트인 「천년바위(www.bawi.org)」를 통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근황을 전한다. 이 사이트에는 동문 외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일부 스승들만 「출입」이 허용된다. 고교 동창회 중에서 이처럼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서울과학고는 대한민국의 資産」
서울과학고가 개교 50주년을 맞는 2039년에는 어떤 일이 빚어질까. 대가급 교수부터 병아리 연구원까지 「풀 라인업」이 갖춰지게 될 것이고, 그것이 한국 과학기술의 동력이 될 것임이 틀림 없다.
졸업생들은 학교의 상징인 「천년바위」의 이름을 딴 「바위 인스티튜트(연구소)」를 꿈꾸고 있다. 「바위 연구소」가 한국을 먹여 살리는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 하버드大 박사과정의 吳成煥씨 이야기다.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한국 과학자들을 지원하고 역량을 증폭할 수 있는 「사회간접자본」이 필요합니다.
미국에는 「HHMI」(Howard Hughes Medical Institute)라는 연구소가 있습니다. HHMI로부터 「연구자」로 선정되는 것은, 미국 내에서 생명 과학자로 누릴 수 있는 가장 영예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연구소에는 건물도, 실험실도 없습니다. HHMI가 하는 일은 미국 내에서 생명과학 및 의과학 분야에서 가장 선구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실험실을 지원하는 일입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바위 연구소」가 만들어져 한국 과학기술의 중추가 된다면, 서울과학고가 대한민국 교육정책史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남게 되지 않을까요』●
[인터뷰] 洪達植 교장
내신 압박 피하려 「과학영재학교」로 전환 추진
『서울과학고가 40기 후배들을 맞을 무렵, 노벨상 수상 소식을 기대해 주세요』서울과학고 洪達植(홍달식) 교장은 자신감에 부풀어 있다. 수많은 「공부도사」들을 제자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도사들이 「사고를 쳐」 노벨상을 한국에 안겨 주길 학수고대한다. 아니, 노벨상을 받지 않아도 좋다. 세계로 흩어진 제자들이 과학기술로 대한민국을 먹여 살려 주길 기대한다.
『내년에 개교 20주년을 맞는 서울과학고가 40기 후배들을 맞을 무렵, 노벨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과학 수준이 선진국을 육박하는 수준에 올라섰기 때문에 머잖은 장래에 노벨상 수상 소식이 들릴 것이며, 그 주인공이 서울과학고 출신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노벨상이 지상의 목표가 아니라 학생 스스로 과학을 좋아하고 자기가 추구하는 분야에서 최선의 연구를 해가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는 「영재집단」 서울과학고의 전통을 이렇게 표현했다.
『1기부터 19기까지 선후배의 유대가 긴밀합니다.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과 교사, 학부모 모두 애교심과 학교에 대한 믿음이 탄탄해요. 학생들은 서울과학고가 대한민국 최고의 학교라는 자부심을 넘어 세계 최고이기를 꿈꿉니다』
수재집단을 가르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무얼까. 洪교장은 아무래도 내신을 꼽았다. 과학고와 일반고의 내신을 획일적으로 적용해 경쟁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한다. 학생들의 학습태도나 능력은 탁월하지만 치열한 내신 경쟁에서 「쩨쩨하게」 점수 1점을 가지고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수재집단이니 학업경쟁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하고 성적에 대한 집착이 강합니다. 성적을 규정에 따라 엄격하게 처리하고 출제나 평가에서도 치밀해야 돼 부담이 큰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수학이나 과학 등 전문교과 담당 교사들은 해당 분야에서 학생들의 학업능력 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에 정규 수업준비, 심화과정 준비, 학생논문 준비 등에 투자하는 노력과 부담감이 일반 고교 교사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서울과학고는 현재 「과학영재학교」로의 전환을 꿈꾸고 있다. 내신 9등급제의 학업성취도 평가로서는 내실 있는 과학교육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교육부에선 아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서울과학영재학교로 전환되면 초중등교육법이 아닌, 영재교육진흥법의 적용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영재특성에 맞는 교육과정을 편성, 적용할 수 있으므로 이상적인 과학영재교육을 실현할 수 있게 됩니다. 이미 서울시가 교원증원, 부족한 과학실험실 등 교육시설 확충을 약속해 둔 상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