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남녀의 결합을 넘어서, 힌두교의 종교적 이상을 함께하는 두 영혼의 영원한 만남.
현실적으로는 두 가문의 연대. 2000명 이상의 하객이 3박4일간 신나게 놀이판 벌여
현실적으로는 두 가문의 연대. 2000명 이상의 하객이 3박4일간 신나게 놀이판 벌여

- 춤추는 신랑「압헤이 와드와」와 신부「리타」.
나는 그때 「다우 존스」社 경제전문기자를 거쳐 지금은 「올드하우스」 인테리어 잡지사의 수석기자로 일하는 캐런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에게 『인도에 대한 글을 쓸 때 지금 당한 停電(정전)을 어떻게 쓸 거냐』고 물었다.
그녀가 주저없이 한 편의 詩(시)를 읊었다.
『인도 밤하늘에 전깃불이 왜 필요하리. 정전 다음의 암흑이 더 큰 밝음으로 인도하네.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밝히고, 우리는 인도의 영혼과 교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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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랑이 타는 白馬에 오른 필자. |
캐런은 로이터 통신사의 뭄바이 지사장으로 있는 친구 덕분에 인도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 『인도에 가면 절대로 수돗물을 먹지 마라』, 『야채도 미네랄 워터에 씻은 것이 아니면 먹지 마라』는 주의사항을 머리에 새기며, 인도에서의 첫날 밤을 보내는 나와 인도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뉴욕의 프렛 예술대학원 디자인 경영학과 학과장인 메리가 옆에서 캐런과 나의 대화를 듣다가 이런 얘기를 했다.
『인도를 세 번 이상 방문하게 되면 순례객으로 자주 인도를 방문하게 되든지, 인도의 영적 기운에 반해서 이곳에서 살게 될 거주지를 마련하게 된다고 해요』
메리는 이미 인도의 한 수행지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해 두었다고 한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 인도에 관한 악평을 들은 적이 있다.
『인도에 오는 외국인은 세 종류다. 첫째 미친 사람, 둘째 인도에 오기 전에는 정상이었으나 미친 사람, 셋째 미쳐 가고 있는 사람』
하지만 내가 인도를 자주 찾는 순례객이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 친구 「압헤이 와드와」는 나이 마흔에 노총각 신세를 탈출했다. 신부 「리타」는 서른여섯. 두 사람 모두 뉴욕에서 공부를 마치고, 자리를 잡느라 혼기를 놓쳤다.
친구 압헤이 와드와 교수의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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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이 열린 파타우디宮. |
둘 다 인도의 뭄바이 태생으로, 출신계급은 「크샤트리아」다.
신랑·신부 두 사람을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어서, 두 사람의 결혼식 참석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뉴욕에서 결혼식에 가는 사람만 30명이 넘었다. 비행기 표는 각자 부담했고, 인도 체류에 드는 경비는 신랑·신부가 맡았다.
나는 3월22일 오전 뉴욕 케네디 공항을 떠났다.
결혼식은 토요일인 3월24일부터 월요일인 3월26일까지 3일 동안 열렸다. 3월23일 금요일 밤에는 전야제가 열려 외국에서 온 하객들을 위해 야외 만찬과 음악 공연이 펼쳐졌다. 신랑과 신부의 외국인 知人(지인)들이 야외에서 시원한 맥주와 칵테일을 즐기고 있을 때 停電이 된 것이다.
결혼식은 뉴델리에서 60km 정도 떨어진 「굴가온」 지역에 있는 파타우디宮(궁)에서 열린다. 신랑이 결혼식을 위해 친구 소유의 宮을 빌렸다.
인도와 외국에서 온 축하객들은 이 궁으로부터 20분쯤 떨어진 리조트 호텔에 머물렀다. 미국의 한적한 휴양시설 비슷했다. 수영장·테니스장, 넓은 잔디 정원 등이 잘 손질돼 있었다.
결혼식 3주 전쯤 뉴욕에서 신랑과 신부를 만났다. 그때 나는 『결혼식이 뉴델리에서 60km쯤 떨어진 곳에서 진행된다니, 나는 뉴델리의 호텔에서 머물면서 낮에는 인도 정부 쪽 인사들을 만나고, 저녁에 결혼식 행사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신랑 압헤이는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른 하객들과 같은 숙소에 지내라』고 강권했다. 결혼식 하객으로 가면서, 내 일정만을 고집하기가 어려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3월23일 새벽 델리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로 가면서 뉴델리의 호텔에서 묵으면서 결혼식장을 오가는 것이 왜 불가능한지 알게 됐다.
델리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70km 정도 떨어진 숙소까지 가는 데 2시간30분이 걸렸다. 이른 새벽이라서 교통 혼잡이 거의 없었는데도 그랬다. 미꾸라지처럼 차선을 옮겨 다니며 트럭들을 추월하는 젊은 택시기사의 차를 타고, 매일 5~6시간을 가슴 졸이면서 뉴델리와 결혼식장을 오가는 것은 정신건강과 신변안전에 보탬이 되지 않겠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했다.
새벽 2시까지 계속된 결혼식 전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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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귀족 예복을 입은 필자(가운데)와 하객들. |
파티가 끝나고 새벽 3시쯤 잠이 들었지만, 시차 때문인지 새벽 6시30분경에 눈이 뜨였다. 다시 잠을 청하기가 어려워 가든 파티가 열렸던 정원으로 나갔다. 깨끗하게 치워진 정원을 한 시간가량 걷고 뛰었다. 잔디의 질이 좋고 워낙 손질이 잘되어 있어 오랜만에 맨발로 걸었다.
호텔 앞을 지나는 「델리-쟈이펄」 고속도로에는 트럭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고속도로를 달리는 화물트럭들은 인도의 생동하는 에너지를 느끼게 했다.
인도 경제는 지난 4년 동안 매년 8% 성장했다. 싱 인도 총리는 이런 고속 성장의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개인들의 높은 저축률과 해외자본의 인도 투자 급증, 둘째 인구 11억2000만 명의 거대한 내수시장, 셋째 16년간 개방경제정책의 틀을 유지해 온 정책의 일관성.
2020년까지 경제·문화·산업·의료 등의 영역에서 세계 4강이 되겠다는 인도 정부의 야심찬 계획이다.
염색한 생쌀로 만드는 전통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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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 꽃잎들이 띄워진 복도 장식(사진 위). 염색한 쌀로 만든 전통 문양(사진 가운데), 손으로 모형을 만들고 있는 인부(사진 아래). |
이들은 국화와 카이네션을 합쳐 놓은 듯한 아기 주먹만 한 오렌지색 꽃봉오리들을 엮어서 호텔 입구부터 복도와 행사장, 야외 수영장 주변을 장식했다. 다른 한 팀은 염색한 생쌀을 재료로 다양한 색채의 전통문양을 호텔 곳곳에 설치했다.
바닥에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젊은 匠人(장인)들이 염색된 쌀을 한 움큼씩 쥐고 뿌렸다. 손가락과 손바닥만을 사용해, 대칭과 비례가 특징인 인도 전통문양을 만들었다. 로비의 중앙과 입구 통로에는 큰 문양의 작품을, 복도 통로에는 2m쯤의 간격으로 작은 문양의 작품들을 설치했다.
20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오전 7시쯤 작업을 시작하여, 오후 7시쯤 작업을 끝냈다.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그날 만든 모든 꽃장식과 복도에 설치한 쌀로 만든 문양들은 그날 저녁 하객들의 눈을 한번 즐겁게 한 뒤 곧바로 철거됐다. 다음날 이른 아침 새로운 꽃장식과 문양이 만들어졌다. 인건비가 싸다고는 하지만, 꽃과 쌀로 3일간 결혼식장 주변을 장식하는 데 드는 경비가 만만치 않을 듯했다.
여성만을 위한 「상기트」
결혼예식 첫째 날 저녁에 시작되는 행사는 「상기트」라고 부른다. 이날 밤은 여성들을 위한 잔치다. 신부의 집에서 열리는 이 파티에는 신부의 여성 친구들, 신부 집안의 여성들, 신랑 집안의 여성들이 초청된다.
3일간의 결혼파티 중 이날 밤이 가장 화려했고, 술과 음악으로 분위기가 제일 고양됐다. 요즘은 호텔이나 연회장 등지에서 신부 측과 신랑 측이 함께 상기트를 열고, 남성들의 참석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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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에서 온 신부 리타의 친구들. |
세계적인 조명 디자이너인 신랑과 가구 디자이너인 신부가 100여 명의 인원을 동원해서 만든 작품이었다. 미국에서 참석한 하객 중에는 인테리어 디자인과 건축설계·미디어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모두 빛과 색채의 완벽한 조화에 감탄했다.
신랑과 신부 집안의 어른들이 함께 춤추며 노래했다. 두 집안 식구들이 대부분 초면이지만, 서로 거리낌 없이 어울려 춤을 췄다. 예의 바르게 인사만 정중하게 나누는 한국의 사돈 집안 간의 관계를 생각하면, 사뭇 경이롭게 보였다.
이날 파티가 끝나는 시각은 새벽 2시30분으로 예고됐다. 전날 전야제에서 새벽 2시까지 진을 뺐던 나는 새벽 1시쯤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멎은 뒤에야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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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대의 음악 소리에 맞춰 춤추는 신랑·신부의 친척들. |
『인도에서는 인도 시간에 맞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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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 |
숙소에서 약 180km 떨어진 타지마할에 다녀올 계획을 세웠다. 아무리 길이 막혀도 새벽 5시에 출발하면 다섯 시간 만인 오전 10시에 도착하고, 두세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고 오후 1시에 출발하면 오후 6시나 7시경에 돌아올 수 있지 않겠느냐는 계산이었다.
영어를 잘하는 리조트 호텔 매니저에게 운전기사와 차를 부탁했다. 내 계획이 물리적으로 가능한지를 도로 사정과 함께 물었더니, 『새벽 5시에 출발하면 가능하다』고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마실 물과 과자류, 비상 약품을 챙기고, 새벽 5시에 예약한 운전기사가 혹시 일찍 도착할까 싶어 오전 4시30분에 호텔 로비로 나갔다. 예약한 차는 오전 5시3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오전 6시쯤 차와 운전사를 주선해 준 매니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연락해 보겠다』고 했다. 예약시간보다 세 시간 늦은 오전 8시. 20代 초반의 청년이 작고 낡은 승용차를 몰고 왔다. 『왜 이렇게 늦었냐』고 영어로 물었으나,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 청년은 영어를 한 마디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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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운반 수단인 낙타수레. |
타지마할을 다녀오겠다는 내 계획에 대해 인도를 여러 번 여행한 교수 메리와 보스턴에서 온 건축가 엘리스는 『뉴요커적인 발상』이라며, 『존, 인도에서는 인도 시간에 맞춰 사는 게 좋아』라고 충고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타지마할 방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나는 아침식사에 참석하게 된 이유를 모두에게 설명했다. 메리와 엘리스는 『말이 안 통하는 인도 청년과 멀리 갔다가 혼자서 비상 사태를 맞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위로했다.
나는 아침식사 후 겹친 피로와 급체 때문에 몸져누웠다. 메리는 내게 『여행을 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며 이런 얘기를 했다.
『인도에서는 내가 모든 것을 준비했다고 목적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인도 시간에 순응할 때만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인도 전통의상을 400달러에 구입
방에서 쉬고 있는데, 일본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키에게서 전화 연락이 왔다.
『여성 축하객들이 맞춰 둔 인도 전통 의상 「사리」를 찾으러 간다. 남성 축하객 몇 명이 전통의상을 맞췄다. 존도 전통의상을 사서 입으면 어떨까? 의상실이 큰 쇼핑몰에 있으니까 바람 쐬러 가자. 가는 데 1시간30분쯤 걸린다』
몸을 가볍게 움직일 겸, 쇼핑몰로 가는 일행에 합류했다. 인도의 태양은 뜨겁다. 고속도로를 달리지만 운전시간과 주행거리에는 상호관계가 없는 듯했다. 속도가 나지 않는 삼륜차량이 앞서 가면 자연 속도가 떨어졌다. 주행시간을 결정해 주는 요소는 길 한복판에 누운 소가 몇 마리인지, 톨게이트에 트럭들이 얼마나 밀려 있는지가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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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랑 압헤이(왼쪽)가 신부 리타와 양가 친척들이 어울려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쇼핑몰 안에는 세계 유명 브랜드 상점들이 가득 차 있었다. 주차장에는 벤츠·BMW·렉서스 차량들이 보였다. 모든 상점이 정찰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남자들의 전통의상을 파는 곳은 한 곳뿐이었다. 가게 내부가 뉴욕 고급 백화점의 인테리어 못지않았다.
『인도의 유명한 전통예복 디자이너가 인도 전역에서 운영하는 가게 세 곳 중 한 곳이고, 세일 표시가 된 상품만 할인이 된다』고 매니저가 설명했다.
두 시간 내에 옷을 사야 했기 때문에 서둘러 흥정을 하느라 20% 정도 값을 깎는 데서 그치고 말았다. 400달러를 지불하면서 「분명 나는 인도에 다시 올 것이고, 그때 이 예복을 입으면 본전은 뽑지 않겠느냐」고 스스로 위로했다.
신부와 하객이 문신을 그리는 「메헨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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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부 리타의 할머니가 신랑을 축복하고 있다. |
헤나 아티스트들은 신부와 하객들의 손등과 다리 등에 문신을 그려 주었다. 문신을 그리는 의식은 4세기경 이슬람 문화에서 유입되었다. 결혼의 성스러움을 기리고, 부부의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축복하는 의미라고 한다.
헤나 의식이 끝나고 宮의 정원에서 파티가 열렸다. 힌디語로 노래하는 소리꾼들이 한 시간 동안 신랑·신부의 조상에게 이들의 행복을 비는 노래를 불렀다.
외국에서 온 하객들에게 이런 의식은 흥미로운 볼거리일 뿐만 아니라, 인도의 문화를 알게 되는 좋은 기회였다. 이날 밤 역시 하객들과 신랑 신부는 음악과 춤, 풍부한 음식과 술로 밤을 새웠다.
타지마할을 방문하려고 아침 일찍 일어난데다 급체로 고생했던 나는 밤 10시쯤 宮의 응접실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가, 자정쯤에 숙소인 리조트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하객으로 함께 온 뉴욕의 변호사 데이비드에게 물었더니, 파티는 새벽 2시쯤에 끝났다고 한다.
문화의 힘
10여 년 전 내가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을 때 미국인 친구들이 하객으로 서울에 왔었다. 전통의상을 입는 폐백을 하긴 했지만, 완전히 서양식 결혼식이었다. 미국인 친구들이 『한국에는 전통 결혼식이 없느냐』고 질문을 쏟아 냈다.
인도의 문화와 종교 전통이 물씬 밴 인도 결혼식을 지켜보면서, 인도가 세계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매혹적인 여행지가 되는 까닭이 「이들의 일상 생활에 자연스럽게 계승되고 있는 전통과 문화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키는 『내 작품을 비싸게 파는 방법을 신부인 리타로부터 배웠다』고 했다. 리타가 현대적 디자인의 가구에 인도 스타일을 가미해서 높은 가격을 받는 것을 보고, 자신의 작품에 일본적 취향을 가미했다는 얘기였다.
마키는 『경력이 짧은 내가 높은 보수를 받는 것은 서양에 잘 알려진 일본 문화의 덕을 많이 봤기 때문』이라며 『한국도 한국적인 문양과 디자인을 살리는 연구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지역축제를 개발하고, 전시관과 박물관을 짓고 있다. 하지만 유형과 무형의 문화재산들을 현대적 가치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민속촌 결혼식에서 살아 있는 우리 문화의 진수를 보기는 힘들다.
문화는 존경받고 인정받아야 하고, 생명력이 있어야 한다. 박제된 문화는 생명력이 없다. 손맛과 집안 전통, 사랑이 계승되는 유교적 가족문화가 개인주의 문화 속에 사는 서구인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주는 요인이 될지 모른다.
대구가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인천이 아시안게임을 유치했다. 평창과 여수도 노력이 한창이다. 화려한 공항과 호텔은 어디에나 있다. 그들에게 「이것이 한국」이라고 보여 줄 것을 마련해야 한다.
콘크리트 빌딩이 우리 도시들의 정체성을 삼켜 버렸지만, 우리의 전통문화를 복원하고, 그 정신과 전통을 현재 우리 생활 속에서 계승·발전한다면 「한국적인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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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백마를 탄 신랑과 악대. 1km의 거리를 움직이는 데 1시간이 걸렸다. |
인도를 위협하는 북한의 미사일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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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분 만에 찾은 PC방. |
「디지탈 격차(Digital Divide)」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하지만 인도의 「디지털 격차」는 빈부 격차나 사회적 계급 격차보다 큰 것 같다. 인도 정부는 의료·교육·사회간접자본 확충을 3大 국정목표로 삼고,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인도는 1974년 核무기를 보유했다. 사실상 미국의 「核보유 승인」까지 받은 인도는 지난 3월22일 파키스탄이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사정거리 700km 크루즈미사일 발사 실험에 성공하자 바짝 긴장한 분위기였다.
「파키스탄은 核무기를 장착하여 발사할 미사일 기술이 없다」고 안심하고 있던 중에, 날아온 파키스탄의 미사일 실험 성공 소식은 이날 결혼식에 참석한 인도인들의 대화에 안줏감이 됐다.
신부의 사촌으로 인도 국영방송국에서 일하는 재키는 『파키스탄의 미사일 발사 성공은 인도를 시험하는 3개국의 협력품』이라며 분개했다.
『미국은 이라크戰을 위해 파키스탄에 엄청난 달러 원조를 했다. 그 돈이 미사일 개발에 전용됐다. 인도의 군사력과 경제력 확대를 경계하는 중국은 파키스탄에 크루즈미사일에 核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고급 기술을 제공했고, 달러가 필요한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개발 기술을 파키스탄에 주었다』
金正日의 미사일 개발이 이 먼 나라 인도의 결혼식장에서까지 화제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오후 6시쯤 결혼식이 열리는 宮에 도착했다. 화려한 결혼식 장식들이 하객을 맞았다. 나는 인도 전통예복을 입고, 리셉션이 열리고 있는 2층 테라스로 향했다.
나는 졸지에 결혼식의 「베스트 드레서」로 뽑혔다. 모든 이들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할 만큼 내가 입은 전통의상이 품위와 맵시를 발휘했나 보다. 오후 7시, 宮의 입구 쪽에서 악대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1km 정도 떨어진 宮의 대문에서부터 본관까지, 백마를 탄 신랑 행렬이 서서히 움직였다. 호종하는 사람들이 휘황 찬란한 샹들리에를 신랑 머리 위에 들고, 그 뒤에 악대가 따르고, 친지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걸어왔다.
10여 명이 행렬의 양 옆에서 들고 있는 화려한 휴대용 샹들리에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 행렬의 맨 뒤편에 발전기를 실은 소형 트럭이 따라 왔다. 이들의 행진과 악대의 음악소리는 하객들의 마음을 고취시켰다.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느리게 행진하느라 1km 정도의 길을 오는 데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신랑의 신발 숨기고 흥정
成婚(성혼)이 선포되기까지 여러 민속놀이들이 진행됐다.
신랑의 신발을 빼앗아 간 측에서 신랑 측과 흥정을 벌였다. 흥정이 진행되는 동안 신랑과 신부의 행렬은 결혼식장 입구에 멈춰 있어야 한다.
신부 쪽에서 신발을 뺏아 감추는데, 신랑이 후한 돈을 내놓아야만 신발을 되돌려 준다. 압헤이와 리타의 결혼식에서는 40분쯤의 흥정이 있었고, 압헤이는 3000달러가량의 보상을 약속했다. 신랑 압헤이는 「첫 경험」이라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곤욕을 치렀다. 그는 협상 능력에 비해 턱없이 비싼 가격에 흥정을 끝내고야 말았다.
결혼식의 마지막은 힌두식 종교 의례다.
하객들이 모두 떠난 후 가까운 가족들만 참석한다. 보통 세 시간 이상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 결혼식에서는 외국인 하객들을 고려해서인지 하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 시간 정도로 약식 의례를 진행하고, 힌두 종교 의례를 간단히 끝내고, 힌두 사제가 成婚을 선포했다.
친지들과 하객들이 꽃잎을 신랑·신부를 향해 뿌리며, 『옴 산띠 산띠 산띠』(진정코 저들에게 평화를 주소서!)라고 축원하면서 3박4일의 결혼의식은 드디어 끝이 났다. 압헤이의 결혼의식은 전통 의식에 비해 짧았지만, 중요한 의식은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늙어서는 아내를 따르라」(?)
결혼의식 중 신랑·신부가 聖火(성화) 주위를 네 바퀴 돌며 축복을 구했다. 처음 세 바퀴는 신랑이 신부의 손을 잡고 인도하고, 마지막 한 바퀴는 신부가 신랑을 이끌며 돈다.
하객으로 온 70代의 이탈리아계 부동산 개발자 어니가 자기 아내를 보며 이렇게 얘기했다.
『늙어서는 아내를 따르라고, 인도에서는 결혼식 때부터 가르치네!』
식후에 신랑이, 신부가 네 번째 바퀴를 인도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신부가 여성으로서, 가정주부로서 진리와 의무에 대한 헌신을 다하겠다는 맹세를 한 것입니다. 늙어서는 부인 말에 잘 따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일행들이 모두 어니를 향해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힌두 문화에서 결혼은 종교적인 의미가 크다. 결혼은 두 남녀의 단순한 결합을 넘어서서 종교적 이상을 추구하는 두 영혼의 만남이며, 과거·현재·미래에까지 이어지는 영원한 맺음이다. 현실적으로는 두 집안의 연합을 의미한다.
인도의 유명 일간지에는 결혼 광고란이 있다.
매주 카스트별·종교별·지역별·직업별로 예비 신랑·신부의 부모들이 구혼 광고를 낸다. 두 남녀의 결합보다 두 가족의 결합이라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카스트·종교·고향·사회·경제적 배경 등이 우선적으로 고려된다.
딸을 시집보내는 것은 힌두교 최고의 神(신) 중 하나인 비슈누神에게 딸을 바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인도의 시간, 세계의 시간
결혼예식이 끝난 후 성대한 파티가 또 열렸다.
힌두교도들의 음식 철학은 독특하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육신을 떠나 달에 간다. 달에 간 영혼은 비가 되어 땅으로 내려와 먹을거리에 스며든다」는 이 생각에 따르면, 삶은 「죽은 자가 산 자를 먹여 살리는 과정」이다. 자연히 음식은 모든 축제와 의식에서 중심 자리에 선다.
교수 메리는 『인도에서는 인도 시간에 적응하며 생활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준다. 그게 인도를 즐기며, 인도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인도의 시간만을 고집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3월27일 인도의 경제지와 일간지 일면에 실린 기사의 줄거리다.
<포스코 인도제철 공장 부지 매입을 약속한 지역 정부의 매입 속도가 지지 부진하자 포스코의 이구택 사장이 인도를 방문해서 「인도 공장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제3국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의견을 비추었다. 며칠 후 지역 정부는 4개월 내에 공장 부지 매입을 종료하겠다는 약속을 발표했다>
인도의 복잡한 의사 합의 절차 때문에 고속도로 부지 매입과 건설에 10년이 더 걸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세계적인 기업들을 인도에 유치하고, 외자를 유치하여 인도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인도 정부는 이제 인도의 시간을 세계의 시간에 맞추기 위해 종종걸음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