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王 이야기는 1500년 동안 가지에 가지를 친 영웅설화다. 영화「킹 아더」는 그 神話의 뿌리를 찾아 나섰다
朴 泰 植 영화평론가·서강大 강사
1957년 서울 출생. 서강大 영문과 및 同 대학원 종교학과 졸업. 독일 괴팅겐 대학 신학부 박사. 저서로 「나자렛 예수」, 「종교의 세계」, 「데미트리우스」, 「성서를 읽는 11가지 방법」 등.
朴 泰 植 영화평론가·서강大 강사
1957년 서울 출생. 서강大 영문과 및 同 대학원 종교학과 졸업. 독일 괴팅겐 대학 신학부 박사. 저서로 「나자렛 예수」, 「종교의 세계」, 「데미트리우스」, 「성서를 읽는 11가지 방법」 등.
그때 읽었던 책들 중의 하나가 바로 「불핀치의 神話學」이었다. 그 책에는 「그리스ㆍ로마 신화」와 「아서王의 전설-騎士道의 시대」와 「사를마뉴 大帝의 전설」이 실려 있었다. 당시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서구 口碑文學(구비문학)의 집대성이라고 했다.
무려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아서王」에 대한 글을 쓰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아서王 이야기」는, 서양의 문학 양식 분류에 따르면 「사가(Saga: 英雄의 등장과 활약에 대해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敍事詩)」에 해당된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樂劇(악극) 「지크프리트」나 「니벨룽겐의 반지」 등도 「사가」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서王 이야기」라고 하면 줄지어 떠오르는 말들이 있다.
켈트族의 영웅, 최고의 騎士 거웨인, 참모이자 마술사인 멀린, 圓卓(원탁)의 기사단, 카멜롯城, 신검 엑스칼리버, 호수의 기사 랜슬럿과 왕비 기네비어의 연애담, 퍼시발과 聖杯의 기사단, 비극의 주인공 트리스탄과 이졸데, 아들 모드레드의 배신, 神들의 섬 아발론 등….
최근에 번역된 프랑스 작가 장 마르칼의 「아서王 이야기」(김정란 번역, 아웃사이더) 聯作은 불과 두 권만 번역했는데 그 분량이 족히 800쪽은 넘는다. 앞으로 나올 나머지 여섯 권까지 염두에 두면 실로 어마어마한 분량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방대한 「아서王 이야기」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아서王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거론하기에 앞서 우선 구비문학의 눈에 띄는 특징 몇 가지를 살펴보자. 구비문학에는 천편일률적으로 勸善懲惡(권선징악)이라는 주제가 등장하고, 광범위한 지역에서 동일한 모티브들이 발견된다. 우리가 잘 아는 「장화홍련전」만 봐도 그런 특징들이 골고루 발견된다. 땅에서 온갖 고난을 당한 착한 자매가 하늘로 올라가고, 계모에게 시달리는 모티브는 저 먼 독일의 「신데렐라」에도 등장하며, 손녀가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듣고, 그 손녀가 할머니가 되면서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전달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할머니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상력이 넘치는 할머니들은 넘겨받은 이야기에 이런저런 소재를 덧붙여 풍부한 변형을 준다. 심지어 「장화홍련전」으로 시작했던 옛날이야기가 「콩쥐팥쥐」로 마무리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지만 사태가 그처럼 엉뚱하게 번진다 해도 이야기를 듣는 손자ㆍ손녀들은 정확성을 문제 삼지 않는다. 어쨌든 옛날이야기란 재미만 있으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아서王 이야기」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학자들은 이야기의 기원을 보통 4~5세기에 브리타니아(영국)에 살았던 켈트族에게서 찾는다. 이 이야기가 지역마다, 나라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발전해 나간 것이다.
「아서王 이야기」가 문학적으로 처음 꽃을 피운 곳은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였다. 드루아는 1165년에서 1190년 사이에 의욕적인 저작 활동을 펴서 「퍼시발: 聖杯의 기사들」을 포함한 다섯 편의 聯作 소설을 냈다.
13세기 이후에는 영국에서 레이어먼이 각색한 「브루트 이야기」와 1485년에 완성된 「아서의 죽음」이 인기를 얻었다. 그와 同시대에 독일에서도 아서王 이야기가 유행했는데, 특히 퍼시발과 聖杯 이야기를 각색한 「파르지팔」(퍼시발의 독일식 발음)이 유명하다.
아서王 이야기는 원래 異敎徒의 說話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12세기에 접어들면서 기독교 색채가 눈에 띄게 입혀졌는데, 그에 힘입어 더욱 매력적인 이야기로 발전하게 된다.
中世의 유럽 어딘가에서, 자신의 무덤을 양보해 예수의 시신을 모신 아리마태 요셉(신약성경 마가복음 15장 42~47절 참조)이 예수가 흘린 피를 聖杯(혹은, 최후만찬에 쓰였던 聖杯)에 담아 두었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13세기 초에 드 보롱이 「아리마태의 요셉」이라는 소설을 썼다.이 소설에서 아서王이 圓卓의 기사단을 이끌고 聖杯를 찾아 이스라엘에서 유럽으로 가져오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이방인 마법사 멀린의 도움을 받아 등극한 아서王이 기독교의 수호자로 탈바꿈한 셈이다.
4~5세기에 브리튼에서 출발한 아서王 이야기는 장 마르칼의 최신판까지는 줄잡아 1500년의 여정을 걸어왔다. 여덟 권이나 되는 대하소설로 발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아서王 이야기는 워낙 방대해서 줄거리를 요약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그의 생애는 크게 다음과 같은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① 영웅의 탄생: 王의 등극과 천하 통일
② 영웅의 전성기: 평화의 시대와 圓卓의 기사
③ 영웅의 죽음: 아서王의 최후.
위대한 영웅의 출발은 순조롭지 않은 것이 「영웅설화」의 특징이다. 하지만 그는 온갖 역경을 뚫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고구려의 고주몽이 그렇고, 40일간 악마의 시험을 이겨낸 예수가 그렇다.
아서는 펜드라곤王의 庶子로 태어나 버림을 받아 위대한 마술사 멀린의 손에 의해 길러진다. 후에 미천한 시종 신분의 아서가 바위에 꽂혀 있는 神劍 엑스칼리버를 뽑아듦으로써 당당하게 王의 자리에 오른다. 「神劍을 뽑는 자가 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아서가 만족시킨 까닭이다.
아서는 브리튼(브리타니아의 옛 이름)을 호시탐탐 넘보던 색슨族의 침입에서 나라를 지켜냈고, 이 격동의 시기에 카멜리아드 왕국의 공주인 기네비어를 왕비로 맞는다. 아서는 神劍을 뽑았기 때문이 아니라 뛰어난 능력을 증명하고 훌륭한 왕비를 맞음으로써 명실 공히 인정받는 王이 된다. 아서王의 뒤에서 그를 철저하게 도와준 인물은 멀린이다.
아서가 이끄는 브리튼 왕국은 12년간 평화의 시대를 맞는다. 이 시기에 아서王은 「카멜롯」이라 불리는 난공불락의 요새를 건설한다.
여기에 천하의 영웅들이 다 모여드는데, 「역발산의 기사」 가웨인, 아서의 戀敵(연적)으로 알려진 「호수의 기사」 랜슬럿, 「悲運의 기사」 트리스탄, 「聖杯의 수호자」 퍼시발, 랜슬럿의 아들이자 청결한 마음씨를 가진 갤러헤드, 그리고 아서王의 아들이며 후에 배신자가 되어 아버지의 목숨을 뺏은 모드레드를 포함한 12명이다(24명이라는 說도 있다).
그들은 끈끈한 동료애로 뭉쳤으며 누가 上典이라 할 수 없는 평등의 자리인 圓卓에 둘러앉았다. 이들이 그 유명한 「원탁의 기사들」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圓卓의 한 자리를 언제나 비워 둔 점인데 이는 聖杯의 영웅, 곧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기사만 앉을 수 있는 자리였다. 만일 그렇지 못한 이가 앉으면 그에게 파멸이 닥쳐 온다. 그 자리에 앉는 영광은 퍼시발과 갤러헤드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동료애는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들의 連帶의식이 무너지면서 평화의 시대는 끝장나고 만다.
그러던 차에 로마제국이 아서王에게 조공을 요구했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아서王은 아들 모드레드에게 섭정을 부탁한 후, 군대를 일으켜 바다 건너 대륙으로 침공한다. 제국군과 동맹군을 차례로 격파하고 알프스를 넘어 風前燈火(풍전등화)의 로마로 진군하려던 아서王에게 悲報가 날아든다.
모드레드가 王의 자리를 찬탈하고 기네비어 왕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었다. 아서王은 군대를 돌려 솔즈베리 평원에서 모드레드와 최후의 一戰을 벌인다. 그때 圓卓의 기사 대부분이 숨을 거둔다.
아서도 모드레드를 죽였으나 그의 마지막 일격에 치명상을 입고 단지 두 명의 기사와 함께 퇴각한다. 결국 아서王은 최후를 맞아 신검 엑스칼리버를 호수에 던져 넣으라는 유언을 남긴다. 엑스칼리버는 호수가 던져지기 직전, 호수에서 나온 손이 잡아서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세 명의 아름다운 여인이 탄 배가 다가와 아서王의 시신을 수습한 후 신비의 섬이자 낙원인 아발론으로 떠난다. 아서王은 숨을 거두기 직전에 聖杯를 목격한다.
이야기의 다른 줄기에 따르면 이 기간에 랜슬럿과 기네비어의 연애담이 끼어 들어가 있다. 아서王은 불륜의 현장을 목격하고 부르타뉴에서 랜슬럿과 결투를 벌였다고 한다.
영웅의 탄생과 험난한 인생역정과 장렬한 죽음, 아서王 이야기는 어느 모로 보나 손색없는 진정한 영웅의 이야기다.
파란만장한 「아서王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예술 魂을 자극시켰다. 줄잡아 1000년 동안이나 아서王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수많은 소설들이 쓰였다. 특히 「聖杯를 찾는 기사단」이라는 소재가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더욱 다채로워졌다. 아서王 이야기에서 따온 갖가지 모티브는 수많은 그림에 등장했다. 영국의 작곡가 헨리 퍼셀의 「아서王」과 바그너의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르지팔」도 유명하다. 20세기 들어 아서王 이야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 분야는 영화계이다. 「圓卓의 기사들」(리차드 토프 감독, 1953), 「바위 속의 劍」(월트 디즈니, 1963), 「호수의 기사 랜슬럿」(로베르 브레송 감독, 1974), 「몬티 파이턴과 聖杯」(테리 길리엄 감독, 1975), 「웨일즈人 퍼시발」(에릭 로메르 감독, 1978), 「엑스칼리버」(존 부어만 감독, 1981), 「카멜롯의 전설」(제리 주커 감독, 1995), 그리고 최근 개봉한 「킹 아더」(안톤 후쿠아 감독, 역사극, 미국/아일랜드, 2004년, 119분)가 있다.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 「아서王 이야기」 중에서 한 부분만을 떼어내 만든 영화들이다. 사실 방대한 내용을 두 시간 남짓 제한된 시간에 담아낼 수 없는 노릇이다.
이를테면 「호수의 기사 랜슬럿」과 「카멜롯의 전설」은 랜슬럿과 기네비어의 연애담에, 「웨일즈人 퍼시발」과 「몬티 파이턴과 聖杯」는 「聖杯의 기사단」에 초점을 맞춘다는 식이다.
「아서王 이야기」에 등장하는 소재가 전혀 엉뚱한 영화들에서 종종 쓰이기도 한다.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1989)에는 聖杯를 지키는 「최후의 기사」가 등장하고, 「엑소시스트」(윌리엄 프리드킨, 1973)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신부의 이름이 「멀린」(아서王의 후견인인 마법사와 같은 이름)이다.
이제까지 나온 영화 중에 작품성이 뛰어나고 원작에 가장 충실했던 것은 「엑스칼리버」이다. 영국의 연극배우들이 대거 등장해 아서王이 엑스컬리버를 뽑는 데서부터 마지막에 聖杯를 보고 죽는 장면까지 비교적 충실하게 이야기를 담아냈다. 은빛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엑스칼리버를 휘두르며 싸우는 이 영화 속에서의 아서王의 모습은 한번 전투에서 500명을 쓰러뜨렸다는 그의 용맹성을 보여 주기에 충분했다. 진정한 영웅의 모습에 초점을 맞춰 만들어 낸 영화이다.
최근 개봉한 「킹 아더」 역시 「아서王 이야기」의 한 부분을 추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 아서王 이야기의 뿌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는지, 엑스칼리버를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그가 王이 되기까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가 추구하던 이상은 무엇이었는지 등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나온 영화들과는 다르게 「아서王 이야기」 고유의 神話的(혹은, 童話的)인 상상력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그래서 마치 아서王과 기사들과 멀린과 기네비어가 실존인물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기원 5세기의 영국은 大 혼란기였다. 오랫동안 브리타니아를 지배해 왔던 로마가 브리타니아에서 서서히 발을 빼려는 참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로마제국은 영토확장을 목표로 삼는 정복국가였다. 그러나 지나친 영토확장으로 국경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방어가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년 재위)는 더 이상의 정복전쟁을 포기하고 방어전쟁으로 군사전략을 수정한다. 그래서 세운 것이 하드리아누스 장벽으로, 브리타니아의 중앙부를 관통했다. 장벽 바깥 쪽에는 픽트族(영화에서는 워드族)이 살았는데, 그들은 전투에 나가기 전 온몸에 문신을 했다.
당시 브리타니아에는 픽트族 외에도 켈트族의 일파인 브리튼族, 북부의 스코트族, 아일랜드의 게일族이 섞여 살고 있었다. 유럽의 대표적 야만인인 색슨族이 바다 건너 브리타니아로 침략해 들어오자 로마제국은 철수를 결정했고, 로마가 떠난 빈 자리에 남은 부족들이 연합전선을 펴게 된다.
그때 흩어진 부족들을 통합하여 색슨族을 물리친 인물이 루키우스 아르토리우스 카스투스로, 로마軍의 百人隊長(센투리오)을 지낸 사람이었다. 그가 바로 아서王 전설의 모델이 된 인물이었다(아르토리우스→아서).
「킹 아더」는 이러한 史實과 그간 학계에 발표된 考古學的인 연구결과를 철저히 활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솔즈베리에 있는 스톤헨지(팬트라곤의 기념 巨石)에서의 즉위식이라든지, 픽트族의 주술사라든지, 아르토리우스가 로마軍의 브리튼族 傭兵이라는 증거를 활용한다는 식이다. 아서王의 실제 역사를 再구성해 보겠다는 감독의 의지가 돋보이는데, 이제까지의 「아서王」 영화가 전설(소설)에 근거해 만들어진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를 준 셈이다.
평론가들은 대체로 이 영화를 혹평했다.
『정황 설명과 정치적 입장 정리에 시간을 허비』, 『산수도 못 하면서 응용수학을 하려는 학생』, 『상상력의 부족이 빗어낸 지루함』, 『스펙터클한 장면으로 부풀린 할리우드 액션』, 『脫線 아서王』 등.
한마디로 「킹 아더」는 이제까지 나왔던 아서王 영화들에 비교하면 拙作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킹 아더」의 전투장면을 영화 「트로이」나 「반지의 제왕」과 비교하면 분명 기대에 못 미칠 것이다. 또한 랜슬럿과 기네비어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원한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두 사람이 눈길 몇 번 마주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필자 생각으로 영화를 통해 감독이 말하려는 바는 그게 아니다.
「트레이닝 데이」를 만들었던 안톤 후쿠아 감독은 영국의 위대한 선조인 아서王을 역사적인 인물로 상정하고, 그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神話的인 요소를 벗겨냈다. 하지만 「아서王 이야기」가 전달해 주는 브리타니아의 정신은 영화 속에 생생히 살아 있다.
바로 여성과 어린이를 위해 劍을 사용해야 한다는 「騎士道 정신」과 圓卓으로 상징되는 「平等의 정신」이다. 이것이 이 영화를 「脫線 아서王」이라는 난삽한 용어를 사용해 평가절하하며 몰아붙이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아서王 이야기」의 줄거리만이라도 대강 알고 영화를 보면 이 영화를 훨씬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킹 아더」는 요즘 유행하는 판타지 영화와 비교할 때 완전히 거꾸로 가는 영화이다. 관객들의 코드 조정이 필요하다. 영화음악가 한스 짐머(영화 「글래디에이터」, 「델마와 루이스」)의 배경음악은 언제 들어도 뒷맛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