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 선정 이 달의 文化人物] 趙熙龍

梅花와 그림 속에 묻혀 살다간 화가

  • : 이상흔  hanal@chosun.com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1월의 문화인물에 선정된 趙熙龍(조희룡ㆍ1789~1866)은 조선 말기 뛰어난 화가이자 당대 최고의 미술 비평가 중의 한명이었다. 그는 南宗畵(남종화:문인화)에 바탕을 둔 그림을 그렸으나 대범하고 자유로운 기법, 다양한 구도를 구사하며 자신의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했다.
 
  趙熙龍은 四君子(사군자)와 山水畵(산수화), 詩, 추사체 등에 능란했지만,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梅花書屋圖(매화서옥도)」를 보면 그의 각별한 매화 사랑과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느낄 수 있다.
 
  「매화서옥도」는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핀 깊은 산중에 둥근 창문의 작은 집 한 채가 있고, 그 안에는 한 선비가 책이 쌓인 책장을 마주하여 단아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거칠게 찍어 놓은 검은 점들이 淡彩(담채)와 대조를 이루고, 추사체를 부스러뜨려 놓은 듯한 자유분방한 그림 속의 글씨는 滿發(만발)한 매화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서울의 中人 가정에서 태어난 趙熙龍은 又峰(우봉), 壺山(호산), 梅♥(매수) 등 여러 가지 호를 사용했다. 趙熙龍이 태어난 시기는 眞景山水畵(진경산수화)와 풍속화가 쇠퇴하고 南宗畵가 세력을 떨치던 때였다. 趙熙龍은 詩ㆍ書ㆍ畵를 통해 자신보다 세 살 많으면서 문인화의 大家로 명성을 날리던 金正喜(김정희)와 交遊(교유)하면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김수철, 전기, 유숙 등 당대 신예 中人 화가들과 어울리며 詩畵에 대한 각종 토론과 비평 모임을 주도한 趙熙龍은 화단의 중추적 인물로 자리잡았다.
 
  1851년 金正喜가 헌종의 廟遷(묘천) 문제 때 그 주창자로 귀양을 가게 되자, 趙熙龍도 연루되어 전라도 임자도에서 3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다. 만년에는 한강변의 寒村(한촌)에서 기거하다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中人들의 전기집인 「壺山外記(호산외기)」(1844)와 회고록인 「石友忘年錄(석우망년록)」(1863), 귀양 기록인 「海外蘭墨(해외난묵)」 등이 있다. 특히 호산외기는 中人 출신으로 학행이 뛰어난 사람이나 문장가, 詩人, 화가, 의원 등의 행적을 기록해 놓아 조선후기 中人계층 연구에 중요한 사료로 쓰이고 있다. 그림으로는 「매화서옥도」를 비롯, 「紅梅對聯(홍매대련)」, 四君子 8첩병풍, 墨竹 8첩병풍 등이 남아 있다. ●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