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인물] 빔 두이젠베르그

유로貨 출범시킨 「유럽의 그린스펀」 유럽 중앙은행 총재

  • : 윤희영  hy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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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1일 유로貨(화)를 성공적으로 출범시킨 유럽중앙은행(ECB) 빔 두이젠베르그(Willem Frederik Duisenberg·66)의 株價(주가)가 껑충 뛰어올랐다. 미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앨런 그린스펀(74) 美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함께 명실상부한 세계 통화정책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이미 지난해 영국 일간 옵서버지가 정치·문화·미디어·비즈니스 분야를 통틀어 全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한 300명 중 28위에 올라 그린스펀 의장(3위)과 거의 같은 반열로 도약했다. 유로貨 공식 유통 이후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은 불문가지.
 
  우악스럽게 생긴 얼굴에 헝클어진 하얀 곱슬머리, 투박하고 거침 없는 말투, 연신 뿜어대는 담배 연기를 보면 영락없는 터프 가이다. 그는 언행에서 주저함이 없다. 자타가 공인하는 통화정책의 귀재이지만, 솔직 담백함으로 정면 돌파하는 스타일이다.
 
  지난해엔 무심코 내뱉은 말 한 마디 때문에 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유로貨 성공 여부에 대해 『시기적으로 판단할 때가 아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혀 ECB 총재마저 유로貨의 장래에 부정적이라는 인상을 주었고, 그 결과 유로貨 가치는 속락했다.
 
  두이젠베르그는 그린스펀 FRB 의장처럼 「언어의 마술사」 별명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일한 경험에 16년 간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을 역임한 경력의 베테랑이다.
 
  그 역시 그린스펀처럼 성장보다는 안정에 비중을 둔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단기금리를 정책변수로 삼는 것도 비슷하다. 그린스펀 못지 않게 시장의 민감성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각국의 정치적 압력과 각 중앙은행의 비판적 시각을 무시할 수 없어 운신의 폭은 좁은 편이다.
 
  1999년 ECB 초대 총재에 선출되는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1996년 말 ECB의 전신인 유럽통화기구(EMI) 총재로 피선돼 줄곧 유로貨 출범의 기초를 닦은 공로로 대다수 유럽 국가들의 폭 넓은 지지를 받았다. 앞서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1982년)와 유럽공동체(European Community) 중앙은행장위원회 의장(1992년)으로 EMI 탄생을 이끈 노력도 인정받았다.
 
  그런데 프랑스가 발목을 잡고 나섰다. ECB 본부를 독일(프랑크푸르트)에 두는 代價로 초대 총재는 프랑스에서 맡는다는 독일·프랑스 간 묵약이 있었다는 것.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연합 頂上회담에서 『ECB 총재에 대한 정치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유럽 각국이 프랑스와 독일의 밀실흥정이 유럽통합의 정신에 배치된다며 들끓었다. 하지만 두이젠베르그는 예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안정적 단일통화 운영을 위해선 ECB 독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한 마디로 자제하는 신중함을 보였고, 결국 프랑스의 견제를 뚫고 초대 총재 자리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어릴 적 별명은 「느림보」였다고 한다. 고향 친구들은 『언제나 책에 코를 박고 있던 수줍은 소년』으로 그를 기억한다. 유년시절 그의 인상은 ECB 총재가 돼서도 그다지 변하지 않은 듯하다.
 
  그의 경제철학은 「안정」이 최우선이다. 파격적인 급성장 정책과는 늘 거리를 두어왔다. 오늘날 유럽 국가들이 부러워하는 안정된 네덜란드 모델을 만들어낸 것도 그의 「검소한 예산」, 「임금 상승 절제」持論(지론)에 힘 입은 것이었다.
 
  독일에 너무 밀착돼 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독일의 경제력과 유럽에 대한 영향력 때문에 독일 분데스방크(중앙은행) 결정을 무시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분데스방크 결정이 컴퓨터 화면에 떠야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비아냥도 듣는다.
 
  1935년 네덜란드 헤렌벤에서 출생, 1965년 그로닝겐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69년까지 IMF에서 근무했다. 1970년부터 3년 간 암스테르담에서 거시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38세 나이에 재무장관으로 발탁됐다.
 
  5년 간 재무장관을 지낸 후 16년 간 네덜란드 중앙은행(DNB) 총재를 맡았다. 줄곧 재정긴축과 물가안정을 강조, 앞으로 유럽 각국의 성장론자들과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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