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이야기 - 헤어지는 부부, 敵인가 친구인가

  • : 임혜기  haeky33@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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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의 꿈
 
 
  전번에 이혼 이야기를 쓰고 나서 뒤이어 할 말이 많아 다시 계속이다.
 
  평생에 한 순간도 이혼을 생각해 보지 않은 부부가 있을까? 있다면 감정이 有故(유고)된 사람, 또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무정한 타입이려니 싶다.
 
  여자는 이혼을 꿈꾸며 환상적인 미지의 세계를 넘나들 수도 있다. 이혼하고 만나는 새 남편에 대한 달콤한 공상과 새로운 시작, 現 남편이 못 주는 요모조모를 주렁주렁 달고 와 나만 사랑해 주는 새 남자에 대한 꿈이 왜 부도덕한가. 그런 계기를 만든 게 누군데.
 
  새 남편은 지금 남편이 가진 못 된 버릇일랑은 갖지 않을 것이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줄곧 불러대지도 않고 읽은 신문을 줄줄이 늘어놓지도 않고 담뱃재를 떨구지도 않고 술집에서 야근한다며 전화하는 일도 없고 무조건 시집 편을 들지도 않는 완벽한(?) 남자가 될 것이다. 그는 퇴근 후 아이들과 놀아 주고 숙제도 봐 주고 와인 한 잔을 놓고 무언가 속삭여 주며 오페라 감상과 연극 구경에 동반하고 손 붙잡고 오솔길을 한없이(!) 걸어 준다.
 
  이즈음에서 여자는 의문을 갖는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고 산책 나갈 오솔길이 어디 있지? 게다가 무릎이 아파 걷는 건 바람직하지 않단 말씀이야. 아이고 걷자고 하면 그것도 고역이지.
 
  공상은 끝장을 내고 새 남편에 대한 꿈을 버리고 한숨을 쉰 후 現 남편에게 다시 집착하는 것이다. 헤어지는 건 이처럼 밉살스러워진 남편에 대한 보복심리에서 비롯해 화려하게 펼치다가 한숨을 쉬고 접는 것이다.
 
  물론 이혼은 결혼한 사람만의 특권이고 혼인관계를 끝내는 절차다. 요즘 미국의 추세는 결혼한 부부 중 50%는 이혼의 꿈만 잠시 꾸고 50%는 이혼으로 돌진한다. 이혼이 죽음보다 두렵다는 사람이 많다는 데도 나타나는 현실이 그렇다. 죽음보다 절실하고 현실적인 두려움이라는 뜻이다.
 
  이혼이 왜 두려울까? 결혼생활이 주는 불편하고 힘든 여건을 잘라내고 새로 상큼하게 시작하겠다는 결론이 이혼이라면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을 것같다.
 
  이 두려움은 결국 이혼 후의 인생이 평탄치 못할 것이라는 걱정과 杞憂(기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걱정은 표면상 괜찮아 보이는 것들도 무수한 감정의 기폭과 상처가 따를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음속의 지옥은 이혼 후 없어지지 않고 살아 있을 것이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어쩌면 갈등과 압박은 이때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미국인의 이혼은 한국인의 이혼과는 양상이 다르다. 이혼하면 다시 얼굴을 대할 필요도 없고 자식을 남편에게 남겨놓고 주고받는 의논할 여지가 없는 한국과는 다르다. 그들은 수시로 자녀문제로 설왕설래하고 白波萬波(백파만파)로 갈라지는 의견을 조절하며 살아야 한다.
 
  『A를 이번 여름방학에 컴퓨터 캠프를 보낼 예정이에요』
 
  『천만에 난 그 애를 테니스 캠프에 보내기로 이미 마음을 먹고 있으니 그리 아시오』
 
  『이거 봐요. 前 남편씨, 나는 그 애를 잘 알아요. 운동에는 소질도 없고 관심도 없어요. 컴퓨터가 현대생활에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지요』
 
  『무슨 말이야. 前 아내씨, 그 애가 지금 필요한 건 체력관리라는 것도 모르오?』
 
  『당신이 그 애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요?』
 
  『난 그 애의 아버지야. 내 자식을 어디 보내야 하는지 결정할 자격이 있어』
 
  빠자작…(이건 어느 한쪽이 전화를 내동댕이치는 소리다.)
 
  내가 잘 아는 이혼한 韓人(한인) 커플이 있다. 남자는 고등학교 교육부터 미국에서 받았고 여자는 한국에서 커서 이곳으로 시집을 왔다. 그들은 두 자식을 낳고 한국으로 나가 살다가 이혼하여 아이들은 엄마가 키운다. 이혼 후 그 커플은 東西(동서) 간의 정서 차이로 갈등이 끊이지 않는 걸 보았다. 남자는 서구식으로 이혼 후에도 아이들을 위해 가족관계를 유지하며 아이들 일을 의논하고 생일을 함께 축하하고 아이들 행사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여자는 그저 만나고 싶지도 않다. 싫다. 그 인간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 제발 나를 그냥 놔달라는 주장이다.
 
  『애들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식사를 같이 하자니까 거절이야. 왜 그렇게 속이 좁지?』
 
  남자가 내게 고하는 푸념이다.
 
  『그렇게 애들 생각 했으면 왜 이혼을 해? 밥을 먹자고? 난 그 인간 꼴도 보기 싫어』
 
  이건 여자의 심사다.
 
  정말 미국의 이혼한 부부는 만나서 함께 밥을 먹는다. 헤어질 때는 뺨에 뽀뽀하고 손을 흔들며 간다. 공동 양육권을 가지고 있다면 수시로 애들 문제를 의논해야 한다. 그들이 재혼한 상태라면 前 부부는 現 부부를 각자 대동하고 나와서 공통 화제(필시는 스포츠 얘기)를 나누며 껄껄 웃고 대화에 독을 품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필요한 말을 되도록 정답게 나눈다.
 
 
  이혼으로 얽히는 인맥
 
 
  前代(전대)의 아버지들은 이혼 후 재혼을 하면 새 아내와 새 가정을 이루며 옛것을 잊는 것이 통상이었다. 現代(현대)의 아버지들은 그렇지 않다. 이혼 후에도 자식들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한다. 아들이 지금도 불을 켜고 자는지, 딸의 치아교정이 잘 돼가는지, 큰딸의 피어리드(생리)가 아직도 시작되지 않았는지 매사를 알기 원한다. 될 수 있으면 전처 자식과 현처 자식들을 함께 모아 공차기를 벌이고 싶다. 문제는 전처와 현재 처도 그러기를 원하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의 절반 인구 육천만은 이제 혼인관계로 고구마 줄기처럼 인맥이 얽힐 것 같다. 그래서 기억해야 할 것들이, 얽힌 혼인관계만큼 많아질 것이다.
 
  카렌 카보는 재혼한 여자들은 별로 놀랄 일이 없어진다고 선언했다. 더 이상 놀라거나 심장이 뚝 떨어지는 일이 없을 정도로 인생의 온갖 드라마를 겪는다는 것이다. 모든 이혼을 남자가 주도하던 시절 미국의 어머니들은 딸에게 쫓겨나지 않는 비결을 이렇게 가르쳤다.
 
  『남자는 거위와 같으니라. 두 손을 훠이 훠이 저으며 그들에게 곧장 달려들어 꺼지라고 소리치지 않는다면 네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네가 성가시게 잔소리만 하지 않고, 목욕탕을 머리카락으로 막히지 않게 하고, 저녁시간에 뭔가 먹을 걸 대령한다면 어떤 남편도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니라』
 
  이제 여자들은 두 손을 저어 쫓는 수고로운 일일랑은 하지 않는다.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속삭인다.
 
  『안녕히 꺼지십시오. 행운을 빌어요(Get Lost and Good Luck)』
 
  이혼한 여자의 曲折(곡절)은 이혼한 여자가 復唱(복창)한다. 공항 터미널의 의자에서 이야기를 걸어온 낯선 여자가 있다고 하자. 심드렁하게 대화에 응하던 중 그녀가 이혼했으며 前 남편에 대해 입을 열었다고 하자. 그들은 단박 가까워진다. 십년지기가 된다. 소꿉 친구이고 대학동창이고 1, 2차 대전을 함께 싸운 竹馬故友(죽마고우)이고 무인도에서 함께 생존한 동지자가 된다. 그들은 즉시 한 패가 되어 이혼 얘기로 열을 올리다가 비행기 시간을 놓친다.
 
  누가 미국인들은 이혼 후에도 친구처럼 남매처럼 때로는 연인처럼 서로서로 아끼며 산다고 했는가.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이혼한 부부들은 이혼 후 여자는 60%, 남자는 45%가 前 배우자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산다고 한다. 속으로는 미우면서 겉으로 아닌 척 보일 뿐인 것이다. 대화도 나누고 의논하고 상대방의 안부도 물으면서 속으로 이를 가는 거다. 내 행복을 좀먹은 이 좀벌레여!
 
  남편을 내몰았던 前 아내는 남편에게 새 여자가 생기면 심정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먹을 수 없는 쉰 감자로 보인 건 심각한 착시현상이었고 실상은 막 쪄낸 먹음직스런 고구마였다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점점 배가 고프다. 이때부터 그녀는 前 남편에게 물어보고 의논해야 할 일들이 자꾸만 생긴다.
 
 
  내 평생의 과업은 당신의 불행 만들기
 
 
  M은 前 아내 D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건다고 불평하는 現 아내다.
 
  『D는 하루에 세 번 이상 전화를 해요. 다락방에 두었던 구식 책상을 어떻게 했는지 묻고 생각이 안 나는 전화번호를 묻고 서류를 어떻게 기입해야 하는지, 하다못해 냉장고의 전구를 갈아 끼우는 방법까지 묻는 거예요. 걸을 때 왼발과 오른발을 어떻게 내놓는지 물어도 이젠 놀라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은 前 아내의 전화에 남자들이 왜 응답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무시하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여섯 살된 딸이 있다면 전화를 받지 않을 수가 없다. 한밤중에 잠을 깨우는 전화도 벌떡 일어나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재혼한 남편의 고백이다.
 
  법무부에서 발표한 데이터에 의하면 살해되는 여자의 셋 중 하나는 남편, 연인, 보이프렌드로부터 당한다고 한다. 반면 남자의 4%만이 사랑하던 여자로부터 살해당하는 걸로 나타났다. 남자는 여자를 죽이는 걸로 단연 앞서고 있지만 이혼 후 남자를 곤경에 빠뜨리는 복수는 여자의 몫이다.
 
  앞으로 내 여생은 당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데 바치겠노라고 선언을 하는 여자들도 의외로 많다. 인터넷을 통해 상처받은 아내들의 메시지를 찾아보면 그들이 전하는 복수작전은 기발하고 다양하다.
 
  남편이 애지중지하던 물건만 모두 챙겨 갖고 나오기, 남편이 새 아내와 신혼여행을 떠난 후 물 주는 고무 호스를 지하실로 돌려 물 채워 넣기, 남편이 매일 아침 콘택트 렌즈를 쓰기 전 눈에 넣는 안약에 표백제 넣기. 비싼 물건을 잔뜩 후불로 주문해서 택배로 보내기 등.
 
  그러나 남자의 인생을 힘들고 짜증나게 만들기 위해 前아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수없이 전화를 걸어대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여자는 수시로 메시지를 남긴다.
 
  『저예요. 있으면서 전화 안 받는 거 알아요. 중요한 사건이 있는데… (한숨)… 내 차는 고장이 나서 안 가요. 오늘 회사도 못 갔고 나는 해고될 것이 분명해요… (한숨)… 커다란 유리창이 깨졌어요. 갑자기 혼자 깨진 거예요. 내가 얼마나 놀랐겠어요. 내 인생은 왜 이래야 하죠. 흑흑. 왜 이런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죠… 흑흑. 난 죽을… 흑흑…』
 
  이런 메시지를 들으며 일하러 나가는 前 남편의 하루가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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