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注> 이 글은 최근 북한을 탈출한 김일성大 출신 대학교수인 김영철씨가 보내온 手記이다. 月刊朝鮮은 이 手記의 진실성을 확인하기 위해 기자를 현지에 파견, 인터뷰를 했다. 필자의 안전을 위해 가명을 썼다.
김영철(가명)·탈북자·中國 거주
김영철(가명)·탈북자·中國 거주
『너희들은 이제부터 학교에 못간다』
세상에는 행복에 속하는 것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행복한 것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배부른 것이라 해야 시원할 것 같다. 나에게도 단 한 가지 소원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가족들과 함께 근면하게 일하며 배불러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제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무슨 일인들 안해봤겠는가? 그러나 죽음의 그림자는 우리 가족을 무섭게 추격하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명령하였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학교에 못간다. 굶어 죽겠으면 가라. 각자가 흩어져서 메뚜기든 잠자리든 조개든 닥치는 대로 잡고 캐라. 저녁에 총화는 이 몽둥이로 할 것이다』
나는 멀리 산에 가서 각종 산나물, 개구리알을 열심히 가져왔다. 가까운 곳에는 사람들이 너무 잡고 뜯어서 멀리 가야 있는데 그곳에도 다른 사람들이 먼저 와서 붐비기 때문에 누구보다 일찍 가서 날쌔게 움직여야 소득이 좀 있다. 산에 가서 맥이 없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배고픈 것이 제일 힘들다.
배낭 속에 점심을 싸 넣으면 산밭을 타고 넘는 것이 무섭지 않지만 먹을 것이 배낭 속에 없으면 벌써 배고픔이 갑절 앞당겨지면서 더 깊은 산에 가고 싶어도 주의해야만 했다.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욕심스레 깊이 들어갔다가 배고픔에 허기져 산속에서 나오지 못한 일이 많다. 다리가 후둘거려 더는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도 있다. 이때에는 아이들의 얼굴을 그려보면 좀 낫다. 그러노라면 한참 후 다리에 맥이 뻗친다. 우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돼지나, 염소가 먹는 풀은 다 먹을 수 있다고 인정한다.
사실 된장만 있으면 웬만한 풀을 넣고 끓이면 구수한 것이 암만 먹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여기에 기름만 좀 넣으면 낟알을 먹지 않고도 일생 살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산나물도 소금 한 가지로 먹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머리가 아파진다. 제발 된장만 있었으면 하는 것이 이때의 안타까운 심정이다.
그러나 철이 지나면 산나물이나 개구리알이 없어지고 뱀, 쥐, 매미가 먹기 좋을 때가 된다. 매미는 생 것으로 먹어도 참 좋았다. 벌둥지도 있는데 말벌이 무섭게 드나드는 것을 마대에 콱 넣어서 가마에 넣어 증기로 죽인 다음 말벌과 유충들을 꺼내서 닦아 먹으면 매우 根氣(근기) 있다. 여기에 재미 붙여 돌아다니며 벌둥지를 털다가 온 몸이 벌한테 쏘인 적이 많다. 그래도 생존하는 길에서는 웃음이 앞선다.
제일 불쌍한 건 아이와 노인들
산을 들어먹기 힘들 때에 이르면 도시 장사에 나선다. 장마당은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치열한 생존 경쟁이기 때문에 당분간 惡漢(악한)이 되어야 한다. 서로 속이고 때리고 패는 일이 예사로운 도덕이 된 이 장마당에는 제일 불쌍한 것이 아이들과 늙은이들이다.
많은 아이들이 「꽃제비」(거지)인데 장사하는 아낙네들의 빵, 떡 등을 기회를 보다가 날쌔게 쥐고 뛴다. 뛰면서 재빨리 입에 쑤셔넣는 것이 상시인데 붙잡히면 죽도록 매를 맞고 빵까지 뺏기게 된다. 따라서 붙잡혀 매를 맞으면서도 빵을 입에다 쑤셔 넣고야 만다.
어떤 아이들은 손님들이 먹고 남은 어지러운 찌꺼기 국물을 마시기도 하고 장마당에 떨어진 강냉이알, 미역, 시래기 등을 주워 먹는다. 그것도 흔한 것이 아니어서 못먹은 아이들은 배를 그러쥐고 절망적인 울음을 운다. 더 심한 아이들은 마지막 애처로운 소리를 지르다가 거꾸러져 일어나질 못한다. 그러나 누구 하나 쓰러진 시체 옆을 지나면서 치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준다고 얼려서 제 집에 유인한 다음 도끼로 쳐서 숨지게 하고 각을 뜯어 가마에 넣고 끓여 먹는다. 이런 사실이 자꾸 많아지니까 놀라워하는 사람이 점점 없어진다.
노래를 파는 아이들도 있다. 아무리 슬픈 노래를 불러도 사람들은 별로 반응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아이를 데리고 와서 음식을 먹고는 돈이 없는데 자기 딸을 가지라고 사정한다.
딸애는 한 열 살 가량 되었는데 여위기는 했어도 미루알 같은 눈이 참 예쁘게 생겼었다. 그러나 자기 자식을 막 줘버리는 판에 이 아이의 몸값은 눅거리죽(5원짜리임) 한 그릇에 감히 비기지 못한다. 죽장사는 당장 달려들어 그 사람의 누더기 겉옷을 죽값으로 빼앗고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들 중에는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제 딸을 잡아 먹고 입을 씻는 자도 있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어떤 여자들은 갓난애기를 포대기에 곱게 싸서 역전 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몰래 놓고 간다. 그녀들의 마음은 미련한 엄마를 만나서 굶어 죽기보다 혹시 마음씨 고운 귀인이 나타나 너라도 살라는 것이다. 포대기에 누워서 하얗게 웃고 있는 이런 아이들이 한심하여 사람들은 「이놈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웃어」 하고는 할 수 없이 지나가버리고 만다. 혹시 아이를 가져가는 사람 중에는 아이를 약으로 쓰는 노인들인데 그들의 처지도 마찬가지이다. 자식들이 제몸 건사도 하기 바쁜데 언제 자기 부모를 생각할 겨를이 있겠는가.
어떤 노인들은 殞命(운명) 직전이면 헛소리를 많이 한다. 그들의 말을 들으니 일제시대에는 일본놈들에게 천대는 많이 받았지만 먹는 것은 있었고 굶어 죽는 일은 극히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때 찰떡, 고기, 개누깔 사탕 등 먹던 이야기를 자꾸 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이 밥에 고기국을 한 번이라도 콱 먹고 죽는 것이 제일 소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마지막 소원이 성취된다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보다 더 힘들다는 것은 노인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이런 노인들은 오히려 원한의 일제시대 때를 더 그리워하고 6·25 전쟁시기 때를 더 그리워하다가 별세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노인들이 망령소리를 하면 『령감! 당장 잡아가야 정신 차리겠는가?』하고 소리친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그 노인이 나쁜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노인에게 먹을 것을 쥐어주지는 못할망정 호통친 사람, 아니 그보다 호통치게끔 만들어 놓은 사회악이 죄인이라고 절실히 느껴진다.
집집마다 다니면서 빌어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지금은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까치가 자기 집 주위에서 울면 『쌍놈의 까치새끼 무슨 망할 놈의 손님을 청하자구』 하고는 당장 돌을 뿌리고 쫓아버린다. 원래 우리 조선 풍습에 까치가 집 근처에서 울면 손님이 희소식을 가져온다고 반가워 하였다.
生사람 피를 빼 팔아먹는 놈들도
그러나 지금은 그런 손님이 필요 없다. 그것은 손님에게 밥 한 끼라도 먹이는 것이 매우 심중한 문제로 되며 따라서 밥 한 끼라도 축낼 수 있는 사람은 그가 자기 부모든, 형제든 다 제일 얄미운 사람이 되고 만다.
사회에는 지금 먹을 것을 둘러싸고 별별 괴상한 일이 다 벌어지고 있다. 도둑질, 강도는 물론이고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피를 몽땅 빼서 팔아먹는 놈들, 사람고기를 팔아먹는 놈들 등…. 이런 이야기를 하자면 온종일 해도 끝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나에게도 직접 와서 피를 파는 일을 하자고 하는 놈들이 있었으나 소를 잡아먹으면 먹었지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피를 중국에 암거래한다는데 나는 처음 중국에 와서 맥주를 보고 피주라고 하니까 『아하 이 맥주는 사람의 피로서 만든 맥주기 때문에 피주라 하겠구나』 하고 웃지 못할 착각을 한 일이 있다. 그 피가 어떻게 암거래되는가는 아직도 수수께끼이다. 그리고 내가 북조선에 있을 때 중국 상품을 모조리 단속하여 불에 태우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 이유는 중국 상품에 남조선 안기부와 중국 사람들이 짜고 독약을 쳐서 조선에 내보낸다는 것이다.
실지 중국의 약을 먹고 卽死(즉사)한 사람들이 많으며 중국 신발을 신고 발 뒤축이 썩어 떨어진 사람, 여자들이 젖싸개를 대었는데 젖꼭지가 썩어 떨어진 일도 있다. 중국에서 내보내는 쌀에는 벽돌가루, 소똥, 유리가루, 독약이 들어 있고 그것을 먹고 잘못 되었다는 것이 사방에서 터져나왔다.
그래서 북조선 안전부에서는 중국 상품에 무조건적인 딱지를 붙이고 불태워버리는 소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중국에 와보니 중국은 조선에 물심양면으로 쌀을 보내주고 있으며 여기 사람들의 동향을 볼 때 북조선 사람들을 다 걱정하는데 절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음을 동감했다.
그렇다면 이것 역시 수수께끼이다. 그 상품들에 독약이 들어간 것만은 사실이다. 만약 남조선 안기부가 독약을 치려면 독약 치는 방법이 없어서 友邦(우방)인 중국 상품의 가치를 떨어뜨리면서 중국 사람들에게 미움받을 짓을 하겠는가?
6·25에 대한 거짓
오히려 그런 식으로 중국 상품에 안기부가 독약을 치면 중국과 북조선 사이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한국 사이가 벌어지게 된다는 것을 왜 한국 사람들이 모르겠는가? 더욱이 지금 중국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은 실지에 있어서 북조선 사람들을 걱정한다는 것이 점점 증명되고 있다. 이런 서툰 연극의 절정은 한국에서 북조선에 소를 1천 마리 보낼 적에 소에다가 전염병을 감염시켜 보냈다고 생트집한 일이다. 한국 사람들이 독약 칠 곳이 없어서 세계가 주목하는 그 마당으로 향하는 소에다가 전염병균을 치겠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짧은 시야 속에도 벌써 명백해지는 것이 있으며 짐작이 분명해지는 것이 많아진다. 북조선의 모모한 사람들은 한국의 소가 북조선에 들어오면 북조선 인민들이 한국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알 수 있으므로 사전에 이런 연극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한 개 국가로 자처하여 온 나라가 아이놀음보다 못한 일만 저질러 왔다는 것을 3국에 와서야 눈치챌 수 있었고 또 나도 북쪽 사람으로서 못볼 것을 본 것처럼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다. 동시에 속아 살아온 인생이 분하기 짝이 없다.
중국 상품에 독약을 쳐서 북조선에 내보내 생사람들을 해친 흑막도 이제 와서는 자연히 짐작된다. 북조선에 들어온 어떤 중국 상품에는 이런 글을 쓴 쪽지가 숨겨져 있다. 「안기부의 강요로 할 수 없이 독약을 쳤으니 사용하지 마시오」 이 글씨의 주인도 어떤 자이겠는가를 넘겨짚을 수 있다
중국 상품에 독약을 친 兇手(흉수)는 북조선에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이런 장난을 해야 했는가? 조선 사람들에게서 중국에 대한 환상을 애초에 없애며 중국과 한국 간의 관계에 쐐기를 박으며 한국에 대한 최대의 증오가 폭발되는 것을 바랐다. 다음은 실지 生體(생체)들에 대한 새로운 생물 무기의 실험도 흥미 있었을지 모른다. 북조선에 있어서 일반 주민들이 살해되는 것쯤은 예사로운 일로 되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필요한 사람들은 따로 있다. 그것은 전쟁을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아첨할 줄 아는 간부들이다. 그밖의 사람들은 한갖 이용물에 지나지 않으 며 앞으로 자기의 실지 敵(적)이 누구인가를 알게 될 적에 문제거리 있는 사람들이 실컷 부려먹고는 없어져야 유리할 것이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너무너무 속아왔다. 나는 중국에 와서야 스스로 깨달은 것이 적지 않다. 여기 사람들의 말이 6·25 조선전쟁 도발자가 미제가 아니라 북조선이라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비상사고이다. 우리 조선 사람 중에 아무리 간부라 해도 이걸 아는 사람이 몇 명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6·25 조선전쟁 당시 1백만 명이나 조선전쟁에 침투되었으며 피를 흘린 사람들이다. 따라서 역사의 산 證人(증인)들이다. 따라서 믿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조선전쟁 때 중국 사람들이 참가했다는 것은 알아도 한 3만명 정도나 참가했겠지 1백만명이나 참가하여 죽음으로써 전쟁의 결정적 역할을 놓았다는 것은 조금도 몰랐다. 우리가 북조선에서 배운 것은 오직 김일성의 위대한 영도에 의하여 조선 사람 자체의 힘으로 15개 추종 국가 군대를 단호히 물리쳤다는 것으로 굳어져 있다.
8·15 해방도 소련 군대의 결정적 역할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본은 김일성의 빨치산에 의하여 조국이 해방되었다고 유치원 시절부터 배워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조선 사람들은 友邦(우방)들에 대하여 한 조각의 의리마저 없는 사기꾼들이 되고 만다.
중국은 전쟁시기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물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조선에 주었다는 것을 여기에 와서 알게 되었다. 정말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강력한 중국의 후원이 다 북조선 지도자들에 의하여 잘못 이용되었다. 이들은 인민을 위한다는 구실 밑에 실지 자신들의 야심 실현에 몽땅 탕진해버렸다.
나는 중국의 지도자들과 나의 지도자들을 대비해보게 된다. 毛(모)주석 동지는 진정 중국 인민을 잘 살게 하자는 마음이 굳센 분이었다. 그분은 자기 아들도 조선 전쟁에 바쳤다고 한다. 오직 과오가 있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가 정권을 잡고 인민을 위하려 하였으며 그 실현을 위한 방법을 그만 잘못 활용한 것이다. 毛주석 동지가 중국 인민을 위한 길에서 전략전술상 문제에서의 착오는 있었어도 인민을 잘살게 하자는 사상만은 깨끗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없앨 수 없다.
중국의 주은래 총리, 주덕 총리, 유소기 총리, 등소평 총리. 그리고 오늘날의 강택민 총리, 주용기 총리들이 다 자신보다 중국 인민들을 어떻게 사랑하였는가를 後代(후대)들은 잊지 않을 것이다. 정말 중국 인민이 부럽다.
그러나 조선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이런 분들을 모셔본 적이 없다. 김일성을 숭배하는 길에서 나는 얼마나 미친 사람처럼 충성을 맹세하였던가? 정말 전쟁이 일어나면 수령을 위하여, 당을 위하여 폭탄이 되리라 굳게 다짐했었다. 그것은 세상 역사에 우리 수령만큼 인민을 위한 일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신념과 의리로 출발했었다.
그러나 하늘같이 믿어왔던 이 사람들이 우리 조선 사회를 수백만명이나 굶겨 죽이면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이상하기 그지 없는 현실 앞에서 수많은 물음표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왜 우리는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 어느 때까지 이런 식으로 죽어야 하는가? 이게 다 미국놈, 일본놈, 남조선 괴뢰역적들 때문인가? 그렇다면 빨리 원수를 쳐야 할 때다.
인민들은 전쟁을 원한다
인민들은 빨리 전쟁을 요구하는데 왜 이렇게 굼뜨고 우유부단한가? 정말 모를 것이 많았다. 사실 사람들이 바쁜 쪽에 빠지면 전쟁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하였다.
사방에서 사람들의 일치한 요구는 이제는 다 죽게 된 판에 남조선을 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 공통어가 되고 말았다. 심지어 사회의 약자라고 볼 수 있는 아이 업은 아낙네들도 모여 앉으면 빨리 전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나도 군대들을 만나면 언제 전쟁할 것 같은가고 자꾸 캐어 물었다. 그러면 군대들은 『조금만 참으라요. 이제 한 달만 있으면 장군님께서 명령이 계실 겁니다. 믿으십시오』라고 한다. 그러나 일어날 것 같은 전쟁은 아무리 희망해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쟁에 희망을 품고 있다가 죽은 이들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하였다. 왜 미국놈은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고 우리 사람만 이렇게 억울하게 죽어야 하는가?
왜 총 한 방 쏘지 못하고 이 꼴이 되고 있는가? 과연 이 참극이 다 미국놈 탓인가? 왜 장군님은 그렇게 인민을 사랑하시고 배짱이 세시며 세상에서 제일 가는 천하명장이신데 군부대만 돌아다니면서 침묵만 지키고 있는가? 인민은 누가 죽든 빨리 해보자고 하는데 과연 그는 이것을 모르고 있단 말인가?
나는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하여 그토록 崇尙(숭상)했던 윗사람들을 훑어보기 시작하였다. 간부들은 인민들에게는 고난의 행군을 같이 하자고 했으며 사회주의 강행군만 하면 꼭 잘 살게 된다고 말하고는 뒤 골방에서 술푸념만 일삼고 있었다. 이 자들의 말이 내년은 불사조해라고 했다.
이렇게 배불리 처먹고는 강연 연단에서는 제법 공산주의자인 체, 진짜 충신인 체, 인민의 忠僕(충복)인 체하였다. 간부들은 앞에서는 당에 아첨하고 뒤에서는 잘 먹고 있다가 기회를 봐서 3국에라도 가서 살 수 있는 외화돈을 모으고 있었다. 이것은 인민이 죽건 말건 상관이 없었다. 언제나 불쌍한 건 기만당한 인민이었다.
한때 간부 중에도 양심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함경북도와 평안북도에서 도당 책임비서를 하던 조세웅은 정말 인민의 충복이었다. 그러나 인민들 속에서 「조세 웅 만세」가 울리자 제거해 버렸다. 이러한 사람들은 간부들에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제일 영리하겠는가를 가르쳐준 나침반이었다. 그래도 그때에는 배급이라도 조금씩 내주던 때였으므로 간부들이 부정부패를 일삼아도 인민들은 그저 욕이나 하는 정도로서 참을 수 있었지만 지금 막 굶어죽는 이런 마당에서는 이런 현상이 달리 해석된다. 지금에 와서 간부들의 부정부패는 저만 살겠다고 도망친 도망병의 자세와 같은 것이었다. 간부들의 행동은 곧 상층부의 그림자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말이 있다.
노예보다 못한 관리소
이 시기에 와서 사람들은 간부라 해서 너만 살겠느냐? 나도 살아야겠다는 배짱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소를 잡아먹고, 공장의 기계를 뜯어내고, 팔아먹는 등 별의별 일을 다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양심상 가책이 생기지 않았으며 그래서 총살당한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우리가 유치원 시절부터 배운 것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 등 生死苦樂(생사고락)의 내용으로 엮어졌으나 지금 와서 이것이 최대 협잡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사람들을 기만하자면 제일 아름다운 몽둥이와 제일 무서운 몽둥이 두 개를 잘 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金日成(김일성)과 金正日(김정일)이 이 두 몽둥이를 한동안 잘 활용하였다고 생각한다.
제일 아름다운 몽둥이란? 바로 인민을 주인으로 본 주체사상과 그리고 인민을 위한다는 최대로 미화 粉飾(분식)된 명제들과 덕성자료들이다. 이것을 보고 듣는 사람들은 대체로 감흥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토록 옳고 옳은 말이기에 자신의 것으로 되고 만다.
지금 와서 나는 주체사상 자체는 배울 점이 있지만 그 주제사상을 북조선에 구현한 持論(지론)과 방법에는 환멸밖에 나오지 않는다. 즉 주체사상을 창시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것을 잘못 써먹은 것이다. 왜 잘못 써먹었는가? 그 실수는 다른 원인도 있지만 야심에 뜻을 두었기 때문이다.
큰 야심가는 좋은 사상을 내놓을 수 있고 그것을 거꾸로 이용해 먹을 수도 있다.
제일 무서운 몽둥이란? 당에 거슬리는 사람에 한해서는 직위와 공로에 관계없이 본인은 물론 그 가족, 친척까지 反黨(반당), 반혁명 종파 분자의 죄명을 쓰고 재판도 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보위부 관리소에 붙잡혀가는 것이다. 이렇게 붙잡혀 간 사람들은 가족들을 분리시켜 놓고 죽을 때까지 세상 최대의 노예제 노동과 고통을 맛보다가 죽어야 한다. 이것은 실지 당장 총살당하는 것보다 10배나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런 관리소에 끌려가면 차라리 옛날 노예가 되는 것보다 못하다. 북조선에는 이런 관리소가 한 10개 정도 있다고 본다.
무서운 몽둥이 안에는 조직생활이라는 것이 들어 있다. 여기에는 강연회, 강습, 학습방 특히 조직생활 총화이다. 조직생활 총화는 2일 및 週(주)총화, 농촌에서는 10일 총화가 있으며 주로 주총화를 하는 기관이 많다.
週생활 총화에서는 주에 나타난 자기의 결함을 교시와 말씀, 10대 원칙에 기초하여 높은 정리적 예리성을 가지고 비판하여야 하며 자기 결함의 원인을 분석한 다음 고칠 방도까지 발표해야 한다.
이것을 보고 자기 비판이라 한다. 다음은 동지 互相(호상)간 비판이 꼭 있어야 하며 이 비판이 없으면 그 사람의 비판은 낙제로 취급되어 다시 준비하고 무조건 호상비판에 진입해야 한다.
자기 결함을 비판하기는 좀 괜찮은데 자기 동무를 비판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할 수 없이 동무를 비판하게 되는데 비판받은 그 동무가 좋아할 리 없으며 그 동무는 후에 꼭 복수를 하고야 말게 된다.
생활총화의 목적은 이를 통하여 자기의 때를 씻고 남의 때까지 씻어주는 좋은 마당으로 표현되지만, 실지 결과는 서로 질시하고 반목하고 화목과 단결을 깨뜨리는 결과밖에 초래되는 것이 없었다.
우리의 이론에 의하면 이 조직 대책을 통하여 사람이 사상적으로 수양되고 동지호상간 순수한 단합만이 아니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기초로 한 참신한 동지적 단결이 이룩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수령한테는 충실하리라 마음을 가지게 되지만 동지호상간에는 반드시 『개새끼 두고 보자』는 관계밖에 나오는 것이 없었다. 이것은 낮은 단체나 높은 단체나 중앙급 당 단체나 무조건 마찬가지이다.
遺言(유언)도 마음대로 못하는 사회
이것이야말로 아래 사람들의 단합을 파괴하고 오직 두 사람에게만 충성해야겠다는 경쟁력을 가지게 하는 가장 기발한 착상이었다고 생각한다. 당 간부들은 이 무기를 가지고 수령에 대한 충실성도 키워 주지만 동시에 자기에 대한 아부아첨을 조성시켜 부조리를 일삼아 왔다. 아래에 대한 비판도 할 수 있지만 위로의 비판도 하게 되어 있다.
간부라 해서 다 충실성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을 타격주기 위하여 위로의 비판도 하게 만들었다. 결국은 서로 물고 뜯고 하느라면 숨차서 언제 꼭대기의 두 사람이 무슨 짓을 하는지 살필 경향도, 엄두도 나지 않으며 무작정 이 두 사람에게 의탁해야 편안하겠다는 생각밖에 나는 것이 없게 된다. 즉 더 충성심을 키워서 자기 동무를 복수할 생각뿐이다.
그러나 이 엄연한 결과를 목격하면서도 이 생활 총화 제도에 뭔가 숨어 있지 않나 하고 의심하는 사람이 없으며, 오히려 이 생활 총화를 주관하는 조직 책임자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또는 각자의 사상적 수양이 부족하여 나쁜 결과가 나타난다고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北은 서로 감시하고 서로 통보하는 체제이다. 북조선에는 5線(선) 체계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는 당 및 근로단체선, 보위부선, 안전부선, 인민반선이다. 이 체계에 의하여 매사람의 발언, 행동들이 수시로 보고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수령에 대한 충실성으로, 黨性(당성)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쌍소리는 막 해도 정치적 발언, 정치적 색채에 속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리 술에 취한 망나니라도 실수하지 않는다. 심지어 굶어죽는 사람들까지도 마지막 딱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자식들을 위하여 형제들을 위하여 가슴에 품은 채 저 세상에 가야 한다. 높은 급의 간부들은 자기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마지막 운명할 적에 수령에게 꼭 충실하라고 하면서 마음 속에 없는 遺言(유언)을 써놓고 죽는 것이 유행이다.
유언이 이렇게 돼야 아버지가 가졌던 신임과 배려를 자식들이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국가안전보위부는 평민들의 일거일동뿐 아니라 전반 간부들의 움직임까지 다 도청, 미행, 감시하고 있다. 요즈음은 보위부 사람들이 私民服(사민복)을 벗어던지고 군복까지 입어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햇빛을 가릴 수 없다는 말, 그리고 자루 속의 송곳을 숨기지 못한다는 말, 시간이 증명한다는 등 조상들이 남기고 간 말이 있다. 그처럼 응고되어 완고했던 사람들의 관념은 기본 궤도에는 들어서지 못했지만 첫걸음마를 떼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몇년 전까지만 하여도 사람들은 당적 양심을 간직하고 이 입장에서 모든 사고와 활동을 전개하여 왔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쓰러지는 것을 본 이 마당에까지 와서 눈먼 장님이 될 수 없었다. 의지가 약해서 변하는가? 그렇지 않다. 진실치 못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굶어죽는 참상은 막을 수 있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고 당이 인민과 약속하였으면 정말 그 약속을 이런 바쁜 때에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자기들은 배불리 처먹고 인민들 보고는 殉職(순직)하라고 하니 이런 강도의 논리가 어디에 있는가?
중국에 도망치는 사람들, 남조선에 귀순하는 사람들이 우리 인민에게 배워준 사상과 이론대로 당이 행동하였더라면 나쁜 놈 내놓고는 변절할 사람이 없다. 먼저 변절한 것은 아래 사람들을 속인 윗사람이다. 따라서 아래 사람들이 변절하는 것은 변절이 아니라 改變(개변)이다. 아래 사람들을 변절자로 만든 장본인은 두 말 없이 윗사람이며 그들이 책임져야 한다. 사실 우리 사람들이 수백만씩이나 굶어죽는 사회를 미리 막을 방법이 없었는가?
많고도 많았다고 생각된다. 제일 좋은 방법은 중국처럼 개혁·개방하는 것이다. 이것이 싫어서 안한다고 쳐도 다른 방법이 과연 없었겠는가? 있었다. 그것은 당이 미리 나라가 처한 실태를 숨김 없이 말하고 다 자체로 자기 목숨을 살리게끔 하는 방법이 있었다.
다시 말하여 인민들에게 『인민들이여 지금 나라에는 당신들에게 줄 쌀이 한 알도 없다. 이제부터 당에서 당신들한테 줄 것은 시간밖에 없으니 다 산 속이든 골짜기든, 땅 있는 곳에 들어가서 자력갱생하라. 조국의 한 치 땅도 묵히지 말고 增産(증산)하라. 지금 당신들이 믿을 것은 오직 어머니의 젖줄기인 조국의 대지와 바다밖에 없다. 고기잡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뗏목을 타고서라도 바다에 마음껏 진출하라. 그리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목숨을 견지하라. 이것이 당의 뜻이다』라고 했어야 한다.
이렇게 미리 조치를 취해 주었더라면 굶어죽는 참상까지는 빚어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다 억제되어 있다. 바다에는 가시철조망, 지뢰가 매설되어 있어 함부로 바다에 나갔다가는 큰일난다. 어부질을 하자 해도 성분이 좋아야 하고 또 보위부의 승인 절차도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어부가 되는 일도 간단치 않다.
산 속에 마음대로 들어가서 땅을 부치는 것도 통제되어 있다. 우선 산림법, 환경보호법 등이 있지만 이것을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땅을 부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도 개인 이기주의자로 전락되면 어찌 하나 하는 근심, 그보다도 사회주의 경제 체계가 허물어진다는 것이 더 큰 것 같다.
실지 현재 형식적으로 사회주의 경제 체계가 있지 모든 공장 기업소가 다 숨져 있는 이 마당에서, 공장이 더는 숨쉬지 못하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을 규율에 얽매어 놓고 출근시켜 자리지킴이나 하게 하니 이보다 한심한 일이 어디 있는가?
또 땅을 부치면 이기주의가 盛(성)한다는 이론인데 그러면 지금 장마당에서 서로 도둑질, 강도질, 협잡질하는 장마당 사람들의 마음이 더 나쁜가? 아니면 땀을 흘려 제 손으로 낟알을 만들어 먹는 사람의 마음이 더 나쁜가? 모든 사람들을 다 낟알 생산하는 생산자로 만들면 얼마나 좋겠는가?
자기 가족 살리기 운동 펼쳤어야
가족단위로 땅을 부쳐 자기 가족 살리기 운동을 벌였더라면 우리는 남의 나라 신세를 지지 않고서라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옛날 봉건 시대 때에는 양반들이 백성들을 돌보지 않았지만 백성들이 제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가서 火田(화전)을 일구고 농사를 지어 살아온 민족이 아닌가? 그때보다 인구가 많고 땅이 적다는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옛날보다 더 과학적인 영농방법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기주의가 성하면 어쩌랴 하지만 실지 지난 6·25 전쟁 때 목숨 바쳐 싸운 영웅들은 다 개인농들이었고 조직이 있어야 자기 땅도 지킬 수 있었기에 용감하였었다. 자체로 땅을 부쳐 살기 운동을 벌이면 좋아할 것은 대다수 평민들이고 나빠할 것은 인민들의 기생충인 간부들과 아첨꾼들이다. 그래서 간부들은 이 방법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의 뜻에 배치된다는 구실을 붙여 정치적 모자를 씌우자고 한다.
그러나 당에서는 자칭 세상에서 제일 현명하다고 하면서도 주동적인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바쁠 때일수록 오직 당만 믿고 살라고 인민들에게 말하였다. 늘 당의 말만 고분고분 들어온 인민들은 이제 당에서 꼭 쌀을 준다고 하면 줄 것이라고만 철썩같이 믿었다. 이런 식으로 쌀을 준다준다 하면서 사람들을 얼러왔다.
사람들은 앞으로 당에서 쌀을 줄 때까지 기간을 자기 家産(가산)을 팔아 치우는 것으로 먹고 살았다. 집을 팔고 寒地(한지)에 나앉은 사람이 많다. 정말 쌀을 주는가 하고 입만 하 벌리고 위를 쳐다보고 있다 보니 맥이란 맥은 다 빠졌다. 그러다가 기진맥진한 사람들에게 이제부터는 식량공급이라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 이런 때에는 힘센 장수라도, 요술사라도 용빼는 재간 없이 죽는 길밖에 없다.
이 첫서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되었다. 다음해부터는 혼이 나서 쌀을 준다는 엉터리 말을 믿지 않고 장사를 한다, 농사를 한다 하였으나 처음 타격이 너무나 컸으며 게다가 처음 서리에 녹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 못해 도둑놈이 되어 앞에 달려드니 농사 지은 사람도 야단이 아닐 수 없다.
밭에 감자씨를 묻으면 벌써 밤에 감자씨를 파다가 먹는 사람이 많다. 또 감자싹이 나오면 그것을 막 뽑아다가 데쳐서 먹는다. 그 맛은 남새와 같다.
그리고 콩을 심어서 싹이 나온 것을 뽑아서 데쳐 먹으면 콩나물 못지 않게 맛있다.
이렇게 艱苦奮鬪(간고분투)하여 지은 곡식도 익기 전부터 몽둥이를 들고 밤새껏 지켜야 한다. 자칫 조는 새면 벌써 감자밭이 몽땅 거덜이 난다. 농장원들도 농장밭을 지키는 기회에 농작물을 훔쳐간다. 따라서 지금은 군대가 농장밭을 총을 들고 지킨다. 군관도 권총을 차고 지킨다. 지나가는 행인들의 배낭수색을 군대들이 많이 한다. 밤에 강냉이 밭에 허기진 배를 안고 들어갔다가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이 많다.
얼마 안되는 강냉이를 노려서 생사람을 쳐죽이고 또 달리는 열차에서 사람을 차 던지는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처음 북조선에서 여자들의 직업 중 제일 좋은 것이 판매원 특히 천개대 판매원이었는데 그 이후 점차 식료품 판매원이 더 권세 있었다. 상점에 가서 웬만한 빽이 없이는 물건을 살 수가 없다.
물건은 적은데 요구하는 사람은 많고 하니 판매원이 큰소리를 칠 만도 하였다.
그러다가 공장이 서니까 상품, 특히 식료품이 없으니 판매원 직업도 추풍낙엽이 되었다. 식량부문에서 다음에 여자들의 인기를 모으는 직업이 식량 공급소에서 배급주는 직업이었는데 간부 가족들도 이 여자들과 잘 친해서 먼저 처먹곤 하였으며 평민들은 배급소에 쌀이 떨어지면 줄서 있다가 할 수 없이 밀려나곤 하였다. 이 여자들도 배급소에 영 쌀이 들어오지 않자 인기가 폭락되었다.
지금은 여자들이 제일 군침 흘리는 직업이 국수 방앗간이다. 국수 누르는 곳에 들어가 일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국수 방앗간에 국수 장사를 목적으로 국수 누르러 사람들이 강냉이를 가지고 많이 온다. 이때 국수를 슬쩍 떼먹을 수 있다.
이 자리를 노려서 여자들끼리, 또 남자들끼리 쩍하면 시기질투하고 싸우기가 일쑤이다.
집 없는 설움과 배고픈 설움
내가 여기 중국에 와서 신문을 본 적이 있는데 가정이 없이는 살아도 집 없이는 못 산다고 썼다.
그리고 한국의 名(명)가수 태진아란 사람은 자신의 노래에 세상에서 제일 큰 설움이 집 없는 설움이라고 했다 한다.
그러나 가정이 없이도, 집이 없이도 살 수 있으나 먹지 않고는 못 산다. 세상에서 제일 큰 설움이 집 없는 설움이 아니라 배고픈 설움이다. 지금 북조선 사람들은 엄동설한이라도 목구멍이 원수가 되어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보금자리를 서슴없이, 그것도 헐값으로 파는 실례가 四處(사처)에 있다.
북조선에서는 집 값이 너무나도 눅다. 배고픔 앞에서는 따뜻한 집도 다 귀찮다.
그리하여 참 좋다고 보여지는 집도 2천원∼3천원 정도면 큰소리 치면서 살 수 있다.
북조선 돈 2천원 정도이면 여기 중국돈,즉 인민폐로 1백원도 안되는 돈인데 중국에서는 웬만한 집값이 인민폐로 1만원이 넘는다니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북조선 사람들은 거리에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라도 크게 부러워하지 않지만 옷은 남루해도 강냉이 배낭을 한 짐 지고 거리에 나서면 저마다 부러워서 힐끗힐끗 보고 지나가며 아낙네들이 달라붙어 자기한테 강냉이를 팔라고 별 수선을 다 떤다. 자칫하다가는 아낙네들의 저울 솜씨에 속아서 장사를 다 망치고 만다.
장사꾼들은 쌀을 넘겨 받을 때 저울과 넘겨줄 때 저울이 따로 있으며 저울 다는 솜씨도 몹시 능란하여 안속는다고 하면서 눈을 훤히 뜨고도 속는 일이 많다. 또 그렇게 해야만 쌀 장사하는 아낙네들은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 또 쌀을 넘겨주는 사람은 여기에 속지 말아야 자기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죽고 살고 하는 문제가 이 쌀 흥정에 달려 있기 때문에 그저 웃어 넘겨버릴 일이 못된다.
장마당을 둘러보면 고양이 뿔을 빼놓고는 다 있다는 식으로 별별 물건이 다 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먹을 것이 원수되어 사랑하는 家藏什物(가장집물)을 다 끌어 내온다. 저마다 제걸 사달라고 애원할 적이면 어미 잃은 기러기떼의 울음소리 같아 가슴이 찢어진다.
자기 물건을 도적맞아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들, 그러나 그보다도 안전원에게 물건을 단속당하여 우는 사람들도 많다.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할 안전반들이 국가 규정을 악용하여 단속조건이 아닌 물건을 단속하는 실례가 많다. 안전원들도 자기 식구를 살리자니까 할 수 없이 떡장사의 떡을 단속하고 빵장사의 빵을 단속하여 분주소에 가져 갔다가 어물쩍해서 먹어버린다.
따라서 장사질을 하자면 안전원에게 미리 뇌물을 먹여야 하고 장마당의 망나니들과 잘 친해야 한다. 북조선에서는 간부들에게 잘 고여야(바쳐야) 一身(일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즉 내가 출세를 하자면 성분이 좋아야 하는 것이 첫째이고 그 마당에 많이 고이는 사람이 똑똑한 출세 재목이 될 수 있다. 이 현상이 이젠 뿌리 깊어져 막을 수 없는 아편이 되고 말았다.
뉴턴의 제4법칙
어떤 한 군관이 술에 푹 취하여 나보고 『여 친구, 뉴턴의 제4법칙이 세상에 발견됐다는 사실들은 알고 있어?』 하길래 『뉴턴의 제3법칙까지는 아는데 제4법칙이 무엇인지 말해 주시오』라고 하였더니 『고인 물체는 움직인다. 이것이 유명한 뉴턴의 제4법칙이야. 우리 인민군대에서 발견했단 말이야 멋있지?』 했다. 나는 한참 후에야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고인다는 말은 뇌물이고 물체는 사람을 말한다.
즉 「고인 물체는 움직인다」를 다시 말하면 뇌물을 먹은 자는 곧 동작한다는 소리인데 우리 조상들의 말대로 먹은 뒤 똥싼다는 말과 비슷하다. 그 군관도 자기 출세와 관련하여 무슨 쓴 사연이 있는 것 같다.
인민군대의 上下(상하) 관계는 이미 썩을 대로 썩었다. 말로는 상하일치, 혁명적 동지애를 부르짖고 있지만 서로 물질 관계에 의하여 출세와 노동당 입당이 진행되며 이를 둘러싸고 서로 반목, 질시, 도적질, 싸움질이 그칠 날이 없다.
인민군대 내에서 제일 불쌍한 것이 신입병사들이다. 가뜩이나 배고픈 병사들의 쌀을 하사관들이 詐取(사취)하여 팔아서 술을 처먹거나 상관에게 바친다. 배고픈 병사들은 할 수 없이 私民(사민)부락에 나가서 무서운 강도질을 일삼는다. 병사들이 자기 상관네 집을 들이치는 일도 많다.
굶주린 병사들에게는 무서운 것이 없다. 기차칸에서도 군대들이 자리가 비좁다 하여 私民들을 총으로 쳐서 열차 밖으로 내쫓는 일이 많다. 대낮에 군대들에게 폭행을 당하여 졸도하고 물건을 빼앗긴 젊은이들이 四處(사처)에 있다. 군대와 인민이 軍民(군민)일치를 부르짖던 시대는 영영 지나갔다. 사방에 원한의 목소리가 터져 오른다.
군대들의 행패가 너무 심하여 지방당에서 김정일에게 실체 보고를 하니 김정일은 『나의 병사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잘라냈다 한다. 이것은 최고 사령관이 병사들에게 보내는 최고의 신임이라 하면서 병사들의 말이 금강산 발전소 건설에 가면 배부를 수 있는가 했는데 거기 가서도 죽도록 일만 하고 배가 고팠다고 한다.
금강산 발전소의 건설 목적은 남조선 水葬
금강산 발전소에 대하여 상세한 이야기는 건설에 동원되었다가 온 군관들에게서 들었는데 군대들의 희망이 높았다고 했다. 금강산 발전소의 기본 목적은 유사시 발전소를 폭파하여 남조선을 물에 水葬(수장)시키자는 데 있다고 한다. 지금 군대들의 사기는 예상 외로 폭락되었다. 원인은 먹을 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병사와 병사 사이의 갈등, 병사와 상관들 간에 존재하는 부정부패와 패륜패덕, 그리고 전쟁을 한다한다 하면서 하지 않는 데서 부터 오는 불만, 중요하게는 인민들이 굶어죽는 현실을 똑똑히 본 군인들의 마음이 좋지 않다는 데 있다.
군인들도 자기네가 정치상학에서 배운내용이 현실과는 반대되기 때문에 모순에 싸였으며 차라리 匪賊(비적)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군대들도 이젠 무엇인가 모순을 눈치채고 있으며 이는 벌써 막을 수 없는 힘으로 번져가고 있다. 이런 군대를 가지고는 이젠 싸움하기가 글렀다. 상층부는 이것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윗사람들의 눈에는 아첨하는 자들과 만세를 부르는 자만 보일 뿐이다.
당 간부들도 썩었고 보위부도 썩었다. 당 간부나, 보위부 간부나 보면 몇해 전까지만 해도 당적 양심에서 행동해 왔는데 지금은 이미 당적 양심이라는 것을 외피로만 쓰고 그저 아부로 통하여 자기 자리와 자기 가족만 지키고 있다가 어떤 변화와 기회가 있으면 다 도망칠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예를 들자. 보위부 사람들이 계급적 원수라는 사람을 붙잡자고 애쓰는 것은 이젠 그 원수라는 사람이 미워서 잡자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을 잡아야 쌀이나 부식물이 생겨서 자기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관점으로 탈바꿈되었다. 압록강, 두만강 연선의 국경경비대 군인들 경우도 중국 도망자를 잡자는 것이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돈이나 물건을 뺏자는 마음이 100％이며 또 그렇게 빼앗아야 자기 굶주린 배고픔을 잠시라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人民의 마음 속까지 막을 힘은 없다
이 경비 대원들에게 돈과 물건을 주고 국경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국경 장사치들이 많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정의로운 말을 누구보다 많이 하여 왔다. 그러나 그러한 명제들을 신념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고기를 잡는 미끼로 이용하였기 때문에 한동안은 재미를 톡톡히 보았으나 이제는 그 미끼를 본인들이 받아물 수 있는 위험에 처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김일성·김정일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겠는가? 하는 정확한 인식도 못가지고 있으나 이 사람들을 곱게 보지 않기 시작하였다. 지금 조선 사람들도 중국의 벅찬 현실을 어느 정도 알기 시작하였으며 중국으로 도망칠 궁리를 하는 사람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상층부가 아무리 이 조류를 막자고 하여도 마음 속의 불붙는 마음까지 막을 힘은 없다.
지금 사람들도 콱 정권을 뒤집고 싶으나 그런 힘이 없기에 차라리 아첨하면서 기회를 보거나 아첨해서도 못살 사람들은 목숨부지를 위하여 중국에 도망한다. 軍部(군부)사람들이 여러 시도를 하였으나 아쉽게 실패했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의 악에 받친 충성은 반드시 암흑의 밤하늘에 울리고야 만다. 한줌도 못되는 김정일 집단의 붕괴 날짜는 시한탄의 초침을 재촉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은 우리에게 늘 가르치기를 인민을 믿으면 승리하고 인민을 배신하면 망한다고 하였는데, 도적이 『도적이야』 하는 격이 되었으니 이들은 이 말의 신세를 입을 때가 되었다.
김정일은 사람들에게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고 호소하면서도 철저히 그는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아왔다. 우리 불쌍한 조선사람들도 김일성·김정일 말만 믿고 너무나도 숨차게 따라왔다. 피땀흘리며 따라왔건만 차려진 것은 굶어죽는 참상뿐이다. 우리 사람들의 피땀이 軍費(군비)에 많이 들어갔지만 그것은 할 수 없다 치고 그보다 두 사람을 위한 일에 더 많이 탕진되었다.
조선에 가면 너무나도 많은 곳에 두 사람과 그 가문을 내세우는 혁명전적지, 사적지, 사적비, 사적관, 연구실, 동상, 만수무강탑 등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 투자된 자금, 그리고 그 건물 유지비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아무리 중요한 기관, 또는 공장기업소라도 부족한 생산 때문에 석탄을 못쓰더라도 자기 단위에 있는 연구실의 온도 보장에는 우선적으로 석탄을 써야 한다. 앞으로도 김정일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에 사적지는 계속 건설해야 그 단위도 무사할 것이다.
외국에서 숱한 쌀이 지원되었지만…
간부들도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생산계획은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굶어죽든 말든 이 사업만은 늦추지 않고 악을 쓰고 한다. 이 사업을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면 그 간부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사정없이 목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위대성과 영도의 현명성, 덕성을 자랑하는 데 투자되는 자금은 막강할 것이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까지 그 자금은 닭모이처럼 뿌려진다.
그리고 두 사람을 위한 만수무강과 안녕을 위한 놀음에는 나라의 재물이 모자라면 하늘의 별도 따서 들이 밀어야 한다. 김일성이 사망한 다음 그가 있던 금수산 의사당이 금수산 기념궁전으로 불리기까지도 무수한 노력과 자금이 흘러들었다. 이 시기 인민들은 기아와 빈궁에서 아우성치고 김정일을 하늘처럼 믿고 구원의 손길을 바라던 때다. 그러나 김정일은 이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덤 건설에 나라의 재물을 물쓰듯 하였다.
평소에 김일성은 말하기를 『세상에는 사랑에 속하는 것이 많다. 부모의 사랑, 처자의 사랑, 애인과의 사랑, 친구지간의 사랑, 동지호상간 사랑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귀중한 사랑이 혁명동지의 사랑이다. 나는 부모의 사랑보다 혁명동지들의 사랑이 더 뜨겁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 사랑이 있기에 혁명할 수 있었다』는 내용의 말을 하였었다.
그리고 자기를 따라 피를 흘린 혁명투사들을 대성산 혁명열사릉에 안치하였다.
이것이 김일성의 솔직한 말이라면 사망후의 상황은 유언과 같은 말이 아닌 것이다. 정말 어제날의 자기 동지들이 누워 있는 곳에 안치하면 그도 편할 것이고 인민들도 더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제날의 동지들을 멀리 하고 애굽의 피라미드보다 더 눈물나는 役事(역사)를 창조하였다. 그는 동지들에게도 벗지 못할 죄를 지어 온 사람이다. 항일 투사들이 그 한 사람을 위하여 귀중한 목숨을 바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공산주의를 하면 우리 조선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리라 믿었기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김일성은 이 사람들을 묘하게 이용하였다.
외국에서 숱한 쌀이 지원되어 들어왔지만 인민들에게는 주는 흉내만 내고 대다수는 군대와 특정한 인물들, 군수생산에 돌려댔다. 죽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는 자기 인민들을 인질로 세계를 기만하고 협잡하는 이들에게는 다시 사람이 될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수백만의 사람들을 기어코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은 역사의 대동란은 이렇게 시작되었으며 기미년과 기사년을 울게 하였다.
金正日이 믿을 건 악마의 무기들뿐
역사에 악명 떨친 히틀러도 타국 인민에게는 승냥이였지만 자기 인민은 최대로 잘 먹이고 日帝(일제)의 도죠도 그랬다. 이들은 자기 민족만은 사랑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자기 인민 앞에, 민족앞에 처음부터 적으로 군림하였다. 지금 조선 사람들은 1996년까지의 조선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몇년 전까지만 하여도 두 사람을 향해 진심으로 만세를 불렀다. 지금도 만세를 부르긴 한다. 그러나 만세를 부르는 북조선 사람들의 입술에는 꿀이 있고 배 속에는 칼이 있다.
군대의 정치사상적 우월성, 도덕적 품성도 매미 허물인지 뱀 껍질인지 모르게 변해져 간다. 오직 김정일이 믿을 것은 악마의 무기들뿐이다. 그는 이 무기들을 자기 아버지보다 더 믿어 왔었다.
그는 군사적 위협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어부지리를 얻으려고 꾀하였으나 하늘은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의 욕심과 심술에는 한계가 없다. 어쨌든 역사가 알지 못한 최고의 최고가 돼보자는 것이 그의 뜻이다. 다시 말하면 한때 시대를 놀라게 했던 나폴레옹이나 히틀러, 스탈린을 초월하는 신화적인 화신으로 역사의 기틀을 깨뜨려 보고도 싶어지며 세계를 놀래키고 한손에 주물러 보고픈 마음도 꿈틀거린다.
지구상의 인간 모두가 자신 앞에 엎드려 절하기도 하고 아첨하며 만세를 부르는 세상, 그보다도 우주 전체가 다 자기를 축으로 하여 돌지 못하는 것이 죽도록 밉기도 하다. 그런 자라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악마의 무기들을 싹 터뜨려 이땅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잿가루 속에 파묻으리라! 어디엔가 묘하게 숨어서 지구가 그 꼴이 되는 것을 구경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다. 최악의 경우 나도 죽으면 그뿐인 걸, 후회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지나친 욕심쟁이를 내버려 둔 적이 없다. 악한들은 다 그렇게 생각했으니 놀랄 것 없다.
우리나라 역사에 궁예라는 외눈짱 왕이 있었는데 궁예는 온 나라가 자신을 따르도록 행패를 부리다 못해 나중에는 자기 아내와 아들들까지 쇠뭉치로 박살냈다 한다. 그 유령이 다시 나타나 21세기로 굴러가는 행복의 마차를 거꾸로 돌리려고 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20세기의 돈키호테라는 칭호밖에 줄 것이 없다.
산돼지 잡으러 갔다가 집돼지 잃는다고 그처럼 배짱 있는 배 속에서 제2의 갑신정변이 폭발하지 않겠는지 걱정된다. 제1의 갑신정변은 실패했다면 어리석은 짐승도 두번 다시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는다는 말과 같이 제2의 갑신정변은 실패한 제1의 갑신정변을 뛰어넘을 것이다.
무덤 속 같은 지옥이 「우리 식」 삶인가
해결책이란 오직, 쇄국정책만 일삼다가 일본놈들에게 뒤져서 먹혔던 쓰라린 과거를 잊지 않으면 충분하다. 지금은 쇄국 정도가 아니라 무덤 속의 지옥같이 숨막히고 답답하다. 이런 세상을 가리켜 우리 식대로 산다고 말하였다. 진짜 우리 인민이 바라는 우리 식이란 무덤 속이 아니라 만리 창공의 꽃구름을 타고 세계를 구경해 보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의 말이 도망친 黃長燁(황장엽) 비서가 북조선을 가리켜 봉건적인 세습제도라고 말씀했다 한다.
그러나 그분은 말씀을 너무 낮추었다. 봉건시대, 일제시대 때에도 사람들이 제 살고픈 데 가서 마음대로 살지 않았는가? 김일성도 그래서 압록강을 버젓이 건너지 않았던가? 그러나 북조선의 지금 현실은 사람들이 국내에서도 제마음대로 살고 싶은 데로 못간다.
특히는 隣邦(인방)인 중국에 건너가는 것도 무서운 국가반역죄로서 엄격히 다스리며 이미 살길 좇아 중국에 건너간 조선사람들의 뒤까지 추적하여 짐승처럼 끌어가고 있다. 이것은 옛날 노예사회가 있었다는데 그때 도망친 노예들을 이런 식으로 끌어가서 능지처참시키든가 아니면 혹독하게 굴었다 한다. 어쩌면 그때 그 세계와 우리 북조선의 현실이 그렇게도 비슷한가? 그러면 내가 살았던 북조선이 봉건사회도 아닌 노예사회란 말인가?
일본놈들도 김일성을 귀순시키기 위해 김일성의 할머니를 만주 광야에 끌고 다녔다 한다. 김일성이 항복하지 않았지만 일본놈들도 그 할머니는 물론 만경대에 있는 그의 친척들을 해치지 않았다. 그러나 북조선의 현실은 가정 내에 한 사람이라도 자그마한 정치범이면 온 가족은 물론하고 친척까지 잘못된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현실이 가혹한 일제 통감정치보다 못하단 말인가? 논하기가 막 싫어진다.
일제시대 때에는 사상범들이 전향하면 살려줬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범이 아무리 잘못을 빌었다 해서 풀려나는 사례가 없다.
황장엽 비서가 탈출하였을 때 이 사실은 우리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하였으며 수많은 의문을 낳게 하였다.
그가 탈출하자 즉시 조직적으로 강연회, 학습이 벌어지고 그를 헐뜯기 위한 깜빠니아가 벌어지고 토론이 작렬했다. 잘못되는 군중의 눈초리를 제때에 수습해야 했을 것이다.
강연에서는 그가 대주주의 아들이었다느니 제 갈 길을 갔을 뿐이라느니, 늙은이가 노망하여 집을 뛰쳐나갔을 뿐이라느니 하면서 쌍소리를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였다.
그리고 이 늙은이의 불쌍한 먼 칙척들까지 찾아내어 체포해가는 소동이 벌어졌다. 우리가 알기에는 그분은 가족을 조국에 남겨놓은 채 망명하시었다 한다. 이분을 역적으로 몰기에는 너무나도 해명할 것이 많다.
이분의 망명은 우리처럼 너무 배고파 조국을 탈출한 것과 사정이 다르다. 그는 김정일에게 붙어 있어도 배부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북조선에서 말하듯이 그 누가 유혹하는 달러에 매혹된 의용군이란 말인가? 아니다. 이분에게는 달러보다 더 귀중한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고 자기 명예가 있었다. 아니 그보다도 자기 자신과 가족을 바쳐서라도 구원해야 할 신음하는 북조선의 전체 아들 딸들이 있었다. 그분의 애국충성은 애국열사 이준과 더불어 永生(영생)할 것이다.
그 이후에 당 중앙위원회 농업비서 서관희가 간첩혐의로 체포되었다. 강연회에서는 서가놈의 죄상에 대하여 고발하였다. 내용인즉 서가놈은 이미 죽은 평양시 인민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만금의 지시를 받아가면서 김일성의 주체농법을 음으로 양으로 모해하며 나라의 식량 위기를 촉발시켰다는 것이다.
간첩 일당 서가는 갖은 악형 끝에 총살하였으며 이미 죽은 김만금은 애국열사릉에 안치되어 있었는데 그의 유골을 파내서 나무에 걸어놓고 총살하였다. 정말 그들이 간첩이었는지는 누구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역사의 사실들이 이런 흑막들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 시기 먹을 것을 둘러싼 인민들의 원성은 구천에 사무쳤다. 이들의 눈길을 딴 데로 산란시키고 미국과 한국을 저주하게 하자면 충격적인 사건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자면 누구를 희생시킬 것인가로, 가장 적중한 제목이 쌀독을 맡아보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서관희 비서를 간첩으로 몰아붙여 입을 봉한 채 총살해 버리면 죽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억울함을 말하겠는가? 그러면 배고픈 인민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 정말 농업 최고지도부에 저런 놈이 앉아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때까지 이렇게 배가 고팠구나. 김일성의 주체 농법도 그처럼 옳았는데 다 저놈들 때문이었구나. 정말 미국놈과 남조선 괴뢰들이 괘씸하구나. 저놈들을 들어냈으니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배부른 날이 오지 않을까?』
황장엽 비서도 제때에 피했으니 망정이지 비참한 간부들은 다 제물이 될 수 있는 처지이다.
개혁개방의 눈치를 좀 보였다 하여 그 이후 농업위원회 위원장, 광업위원회 위원장, 전력공업부장이 연달아 잘못되었다. 그저 간부나 하면서 먹고 살겠으면 어리석게 놀지 말라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나는 자유로운 중국에 왔다.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개혁개방은 지상천국으로 가는 꽃대문이라는 것을 나는 난생 처음 보았다.
사회주의는 지키면 죽음, 버리면 승리
나는 조선에 있을 때 중국이 잘산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의심이 많았다. 정말 백 번 듣기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이 생각났다. 내가 중국을 의심한 것은 강연회 때에 늘 중국을 헐뜯는 소리를 들었으며 사회주의를 버린 나라들의 참상을 자꾸 선전받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지키면 승리요, 버리면 죽음이라 했다. 그러나 여기 와 보니 사회주의는 지키면 죽음이요, 버리면 승리라고 인정되는 데는 어쩔 수 없다.
내가 가장 놀란 것은 13억이나 되는 중국 사람들이 다 잘 먹고 산다는 사실이다. 사회주의적 방법으로는 도저히 이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중국 사람들은 뼈저리게 말하고 있다. 우리 북조선은 중국의 한개 省(성)보다 더 적은 인구를 가지고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좋다는 사회주의 때문에 굶어죽고 있으니 부끄럽기도 하고 분해서 견딜 수 없다.
중국의 어디를 가보나 사람들이 좀 묵은 음식은 비닐 중채기(봉지)에 넣어서 쓰레기통에 버린다. 음식을 버린다는 것도 썩 잘된 일은 아니지만 나는 이런 것을 목격하면서 저 음식을 버리지 말고 한짐 지 고 가서 굶주림에 먹는 소리만 자꾸 하는 우리 사람들에게 막 주고 싶다. 그들이 배불러 웃는 얼굴을 단 한번이라도 보고 싶다. 아마 김정일이 백성처럼 굶으면 제일 먼저 사회주의를 버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누구한테도 뒤지고 싶지 않다는 향락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그의 신념이기 전에 오직 혼자의 향락만을 만끽할 수 있는 은폐된 대명사이다.
중국은 매 사람이 다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어 착실하게 일하다 자기가 가지기 때문에 현재는 돈 부족이 좀 있기는 하지만 먹는 문제는 벌써 공산주의 사회가 다 되었다. 정말 우리가 그처럼 사랑했던 공산주의 사회로 가는 길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개혁개방이라고 당당히 말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좀더 현명하게 미리 이런 의견을 내놓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그러면 그 이후 수많은 비극들이 극복될 수 있었을 것이다.
등소평 동지는 비록 곁에 없으나 중화 인민을 위하여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 불멸의 공헌을 하셨다. 개혁개방을 할 것이라면 차라리 좀더 일찍이 류소기 동지 때에 시작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더 멀리 國共(국공)합작 때에 이런 기회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그러면 대만을 뛰어넘는 발전모습이 全(전) 중국에 벌써 펼쳐졌을 것이 아닌가? 제일 먼저 이것을 내다본 분은 유고 공화국의 티토 동지이다. 그는 이 길에서 스탈린하고도 맞섰다.
김일성은 그때에 수정주의 두목 티토를 향해 별의별 폭설을 다하였다. 정말 티토 동지는 마르크스나 레닌도 못가진 것을 타고난 분이 아닌지 모르겠다. 스탈린 역시 그렇다. 아무래도 자본주의를 할 바엔 흐루시초프 때 했어야 한다.
그보다도 먼저 멘케비치당이 소련을 이끌었더라면 재기를 앞당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파쇼 독일에 멘케비치당이 이길 수 있었는지는 수수께끼이다. 왜냐하면 공산당은 물질적 富(부)를 낳는 데서는 망꼴이지만 사람들을 불러일으키는 데서는 어느 당, 어느 주의도 대신할 수 없는 세력을 가지고 있다.
혹시 공산주의라는 것이 존재했기에 못사는 사람들을 천시하지 말고 인권을 중시하는 자본주의가 되어야겠다고 잘사는 층들이 충격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미리 못사는 사람들을 알아주는 자본주의가 있었더라면 마르크스가 아무리 선전하여도, 레닌이 아무리 유혹을 하여도 귀담아 듣는 사람들이 없었을 것이며 애당초 마르크스나 레닌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일성은 중국에 대하여 말하기를 잠자는 사자라고 하였으며 중국과의 관계는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 사자는 수천년 동안 잠 속에 파묻혀 수많은 모기떼들의 시달림을 받아왔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거대한 사자는 늘 잠만 잔 것이 아니다. 등소평이 수천년의 해묵은 잠을 깨뜨려 놓았으며 그의 넋은 늠름한 사자의 腦髓(뇌수) 속에 깊숙이 뿌리박았다. 강택민이 사자의 눈이 되고 주용기가 이빨이 되어 달리는 이 맹수는 20세기의 마지막 문턱을 날아넘고 있다.
한국 발전에 긍지와 자부심 가져
나는 중국에 와서 남조선을 대한민국이라고 부른다는 것과 한국이 중국보다 더 잘 살고 발전했다는 말을 듣고 한동안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 김일성은 늘 말하기를 북조선과 남조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도대체 이것이 무슨 변이란 말인가? 늘 김일성은 미국놈과 그 앞잡이들에게 짓밟혀 헐벗고 굶주리는 남녘 동포들을 하루 빨리 해방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북조선에 있을 때 남조선 사람들이 자동차를 잘 만들며 전자도 발전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들었지만 이것은 반동들이 퍼뜨리는 유언비어이며 그런 것이 남조선에 있다면 그것은 미국놈, 일본놈의 것이거나 그 빵부스러기에 불과할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다. 물론 상층부는 알았을 것이며 특히 김일성, 김정일은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나는 한국이 잘 산다는 데 대하여 이제와서는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도 내 민족, 내 핏줄이라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민족의 넋이 다 죽은 줄만 알아온 나에게는 남쪽에라도 그 귀중한 것이 보석처럼 우뚝 솟아 있다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우리 민족의 창창한 내일을 꿈속에서나 그려 보고 있다.
한국 바람 속에서 느낀 열등감과 수치
결국 우리 겨레의 심장은 남쪽에 있으며 그 뜨거운 피는 북쪽에도 흘러 죽은 피를 몰아내고 새 삶을 알리려 한다는 것,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진정 평화를 바라고 통일을 바라며 북쪽 사람들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데 대하여 알았을 때 뜨거운 것을 삼키었다. 그리고 이산가족을 찾자고 애를 쓰는 것이 그들이며 왜 자유내왕을 못하고 있는가 하는 데 대하여 알 수 있었다. 정말 동포의 피는 진하며 속일 수 없는 것 같다.
나는 조선에 있을 때 남조선에서 국가보안법을 가지고 악랄하게 반대하기 때문에 이산가족 문제도 파산되고 있으며 자유내왕도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교양받았다. 그리고 왜 미국 군대가 한국에 있어야 하는가? 하는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이 없으면 전쟁이 열두 번 일어나고도 남음이 있었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적에 미국은 북에서 요란스럽게 말하는 외세가 아니다. 오히려 1950년 6월25일 외세를 등에 업고 남쪽을 물리친 북이 외세란 말을 할 염치가 없다. 북에서 부르짖는 외세란 침략전쟁의 구호이다. 거짓말만 일삼아 온 그들은 마지막까지 거짓말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이해가 부족하다. 그저 배운 것이 있다면 美帝(미제)는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피를 먹고 자랐으며 조선 민족을 둘로 갈라놓고 수많은 조선 사람을 학살한 두 발 가진 승냥이라고 유치원 시절부터 교육받았다. 북조선의 구호는 「조선 인민의 철천지 원수 미제 침략자들에게 죽음을 주자!」이다.
돌이켜보면 미국은 지난 시기에는 잘못한 것이 많지만 현 시기에 와서는 사고관점, 사고방식에서 세계 1등 가는 인권문명국가가 아니겠는가 하는 점이다. 김일성은 늘 말하기를 『승냥이가 양으로 변할 수 없듯이 美제국주의의 침략적 약탈적 본성은 절대로 변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렇게만 교양받아온 나에게 미국을 이해하기에는 상당한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약동하는 중국의 숨결을 느끼면서 그처럼 완고하였던 북조선식 사고관점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사실과 정의의 힘이 여기에 있다.
여기 중국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늘 말하기를 『너희들도 우물 안의 개구리이다. 지금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느냐? 너희들은 어버이 수령님만 알지? 빨리 김정일이 죽어야 한다. 지금 한국이 얼마나 발전했으며 미국이 얼마나 문명한지 아느냐?』고 제법 선배처럼 호통친다.
그리고 우리를 불쌍히 여겨 밥도 주고 옷도 주면서도 미개하고 깨지 못한 데서 왔다는 표정을 짓고 계몽시켜주려 애를 쓴다. 그러다가도 한국 사람이라면 오금을 못쓰고 하늘의 신선처럼 숭배한다. 한국에 돈벌이 가지 못해 야단이며 한국의 이모저모를 닮으려고 무작정 뛰어다닌다, 심지어 여자들은 한국 남자한테 시집 가는 것을 최대의 숙망으로까지 원하고 있다.
나는 한국 바람의 이 소용돌이 속에서 한동안 어안이 벙벙하였으며 열등감과 수치를 많이 느꼈다. 그러나 여기 사람들의 오만한 눈길을 받으면서도 일만 하면 배불리 먹으니 무작정 좋았다. 잘 먹을 때마다 고향 생각, 아이들 생각 때문에 그 맛있는 이밥도 모래알 씹기만 못하다. 당장 먹을 것을 지고 북조선에 건너가야겠다는 솟구치는 격정을 억누르느라면 힘이 든다.
여기 중국 사람들은 북조선 사람들을 일꾼으로 쓸 적에 잘 먹이고 잘 입히지만 돈이 부족하기에 공짜로 (돈을) 주기는 꺼려한다. 나는 돈을 벌어서 가족을 살리려는 욕망을 가지고 위험을 무릅쓰고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도 돈벌기 힘든 때에 내가 아무리 일해도 공짜를 바라보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였다. 차라리 두만강을 건너가서 온 가족을 데려올 수는 없겠는가를 모색하고 또 모색하였다. 그러나 우리집은 국경에서부터 너무나 먼 거리에 있기에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처음에 왜 데려오지 못했는가를 후회하였다. 그러나 나도 머나먼 곳에서 두만강을 넘을 때까지 세 번이나 死線(사선)의 고비를 넘었다. 나는 경비대원들에게 추격당하여 죽기살기로 도망친 적도 있었는데 숨이 턱에 닿은 그 순간에 「내가 가족을 데려오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구나」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눈물이 우리 아이를 살릴 수 있다면…』
그러나 지금은 그래도 그때에 데려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하는, 하지 말아야 할 꿈을 억지로 꾸고 있다. 정말 우리 집이 국경지대 가까운 곳에 없는 것이 원한스럽다.
내가 왜 국경에 이사와서 살지 못했는가? 그러나 조선에서 이사한다는 것은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특히 국경지대에로의 이사는 더욱 힘들다. 이제는 이 겨울에 아이는 굶어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남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다. 눈물이 우리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자꾸만 아이의 유령이 나타나 나를 못살게 군다. 단 한 명이라도 살아남지 않을까 생각되어 이 글을 쓰는 것이 그애에게 죄를 들씌우는 것 같아 구체적인 글쓰기를 아직도 피하기만 한다.
또 어찌 생각하면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고 제 무덤을 파는 천하의 바보 행위로까지 인정된다. 집을 떠나올 때 생각이 문득 난다. 처음부터 떠날 생각을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올해는 영락없이 우리 가족이 죽을 차례가 분명하였다. 사람이란 죽음 앞에서는 공포와 함께 증오가 동반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협동농장의 소를 잡아 먹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않는가?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도끼를 시퍼렇게 갈아 배낭 속에 꿍쳐넣고 소잡이에 나섰다.
한참 가다가 생각나는 것이 내가 이젠 꿈에도 생각 못한 소도적이란 말인가? 하고 반문되어 저도 모르게 어처구니가 없어져 씩 웃었다. 그러나 양심도 이런 경우의 굶주림 앞에서는 머리를 숙인다. 그러나 처음 하는 도적질은 쉽지 않았으며 늘 따라다니는 것이 공포심이었다. 너무 배고파서 소를 잡아먹고 총살당한 사람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총살당한 죽은 혼들이 어른거리고 나를 자기들 곁으로 부르는 것 같고 했다.
그러나 어차피 나 역시 그중의 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머저리처럼 굶어죽느니보다 차라리 먹고 죽으면 한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북조선에서의 도적질은 서로가 악을 가지고 자기 물건을 지키기에 정찰병이 작전문건을 빼내는 것보다 더 힘들다. 도적질도 벌써 남들이 다 해먹고 버린 찌꺼기에 불과하였다.
강냉이 5㎏을 배낭에 넣고 고향을 떠나다
나는 고쳐 생각하였다. 여기서 우물쭈물 하다가는 무리죽음을 피할 길 없다. 무슨 비상수단이 필요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중국에 갔다 오는 것 외에 더 신통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두만강을 넘자, 가서 어떤 수를 써서라도 시급히 돈을 벌어 가져오면 위기는 타개할 수 있지 않은가? 중국이 잘 먹는다는데 정말인가? 차라리 내 가족을 다 데리고 건너갈까? 이것은 너무한 일 같기도 하고 어딘가 너무 위험한 장난같다. 나 혼자 모험해야 한다.
나는 흥분된 마음을 다잡고 최후의 강냉이 5㎏을 배낭에 품은 채 기약할 수 없는 발길을 내딛기 시작하였다. 보위부 초소가 나타나면 멀리 돌기도 하고 불의에 검색을 당하면 도망도 치면서 히스테리와 같은 정신으로 당도한 것이 희망의 강, 원한의 강 두만강이었다. 그러나 나는 돌아갈 길이 이렇게 모질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나의 아이들이 굶어죽지만 않을 수 있다면 일생 동안 이산가족이 되어도 행복할 것이다.
나는 모순에만 빠져 허우적거리고 싶지 않았다.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은 똑똑히 차려야겠다. 조용히 생각해보니 해는 남향볕이 따사롭다. 따라서 사람들은 집을 지어도 남쪽을 향하게 했다. 음지가 서린 북조선에서 양지인 남조선으로의 방향전환은 대체로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는 외롭지 말아야 한다. 나란 사람에게도 저멀리 한가닥 햇볕이 그립다. 나에게도 조국이 있다. 그것은 오매에도 바라마지 않는 대한민국이란 인자한 어머니가 두 팔을 벌리고 나를 부르고 있다.
따사로운 이 어머니의 품은 못난 자식을 차별하지 않으리라. 막 달려가 그 품에 안겨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었던 설움과 원한으로 얼룩진 피눈물을 한꺼번에 쏟아붓고 응석을 부리고 싶다. 나는 여기서 나에게 옛말을 해달라고 조르는 중국의 귀여운 아이들에게 못이겨 옛말이 아닌 옛말을 하기도 했다.
朝가와 韓가의 슬픈 이야기
『옛날에 조선이라는 아버지와 한국이라는 어머니가 살았다. 이들에게는 자식들이 많았다. 어머니는 마음씨가 비단같았으나 아버지는 심술사나운 욕심쟁이였단다. 朝(조)가는 黨(당)이라는 후에미(후처)를 데리고 땅과 재물을 혼자 가지고 자식들을 부려 먹으면서 잘 살기 위해서 韓(한)아주머니를 죽이자고 덤벼들었다. 그러나 이웃에 사는 洋(양)아저씨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 그래서 朝(조가)는 당이라는 후에미를 데리고 일부 자식을 거느리고 북이라는 윗마을에서 살고 韓어머니는 洋아저씨와 결혼하여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남이라는 아랫마을에서 살았지.
이렇게 어언 50년이 흘렀다. 韓어머니는 북에 있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朝가에게 졸랐지. 그랬더니 朝가의 말이 「나는 너를 죽이고 너의 땅과 재물을 가지기 전에는 아이들끼리 만나게 할 수 없어」 그러면 북에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살았겠니? 아버지가 심술궂고 후에미가 어찌도 못된지 아이들은 울타리에 떡 갇혀서 무서운 몽둥이를 맞으면서 죽도록 일만 했지. 그리고는 제대로 먹을 것을 주지 않아 하나하나 쓰러지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보다 못해 洋아저씨와 마을사람들이 말을 했지. 「이보게 朝서방. 이 洋아저씨는 물러나겠으니 아이들을 봐서라도 저 못된 후에미를 내보내고 다시 韓아주머니와 결혼하지 않겠나?」 그랬더니 朝가의 말이 「네 놈은 남의 일에 간섭 마라. 정 그러면 네놈도 죽여 버릴 테다. 당장 나가라. 이놈아 南(남)마을의 땅과 재물은 조상 대대로 다 내것인 즉 그 韓가년이 앙탈을 부리면 우선 그년부터 죽여버려야겠다. 그리고 동네것들은 왜 시끄럽게 구는가? 너희들도 재미없어」, 그러면서 시퍼런 도끼와 칼을 양손에 쥐고 우뚝 서서 사람들을 무섭게 흘겨보았단다.
洋아저씨는 朝가의 앙심을 너무나 잘 알기에 韓아주머니를 도와서 그 집 아이들을 잘 돌봐 주었지. 韓아주머니와 아이들은 떡을 먹을 때나 사탕과자를 먹을 때에는 늘 북마을에 있는 제 형제들 생각을 했단다. 전번에도 먹을 것을 많이 싸서 朝가에게 보냈더니 朝가는 자기만 냉큼 먹고 아이들에게는 빛깔도 보이지 않았단다. 그래서 북마을 아이들은 하나하나 엄마를 부르면서 죽기 시작하였단다. 韓아주머니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하였다. 그리하여 하늘에 대고 빌고 또 빌었지. 이것을 본 온 동네 사람들이 가만 있을 수 없었지.
그들은 손에 도끼, 낫이랑 들고 朝가놈한테 달려갔지? 그 앞장에는 洋아저씨가 서계셨단다. 분노한 사람들은 도끼를 들고 대드는 朝가와 칼을 물고 치마바람을 일으키는 후에미를 꽁꽁 묶어서 무섭게 파도치는 바다물에 처넣었다. 갈매기는 너무 좋아서 그 위에서 오래도록 춤추었고, 그러면서도 죽은 아이들이 불쌍해서 울음을 울었다 한다』
史上 최대의 죄악
비록 철부지 아이들에게 해준 지나가는 옛말이었지만 똑똑한 그애들이 누가 나쁘고 누가 불쌍한가는 그처럼 깨끗한 눈동자로 그려낼 적에 아무리 세상이 어지럽고 복잡할지라도 저 눈동자 앞에서만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함을 절감했다.
나는 중국의 귀염둥이들이 쓰러진 우리 아이들의 몫까지 합쳐서 저 하늘 끝까지 행복하기를 입술을 깨물고 축복하였다. 나는 중국에서 살면서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있다. 그것은 사방에서 북조선 탈출자들을 체포해 가는 소동이다. 그 이유는 북조선 탈출자는 난민이 아니고 국가를 반역한 죄인이기 때문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난민이란 전쟁하는 나라에서의 피난민으로서 응당 국가적으로 보호할 이유가 있으나 북조선 탈출자는 민족반역자로 규정하고 체포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노예주에게서 탈출한 사람을 다시 노예주에게 붙잡아 주는 행위이며 히틀러 수용소에서 탈출한 사람을 다시 파시스트들에게 넘겨주는 사상 최대의 죄악이다. 21세기에 살 궁리를 하고 21세기의 물과 공기를 마셔보겠다는 현대인들로서 형식적인 법의 틀만을 가지고 운운한다는 것은 물에 빠져 겨우 나온 아이에게 너에겐 물이 좋으니 물에서 살라고 던져버리는 野獸(야수)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지금 북조선은 탈출자들을 잡기 위하여 수많은 밀정들을 풀어놓았으며 갖은 악랄한 짓을 다하고 있다. 선량한 중국의 벗들은 여기에 맞서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해 주고 있다. 앞으로 이런 벗들이 더 많아지는 것도 찬란한 미래의 中朝(중조)친선에 금문자로 길이 빛날 것이다.
한국에도 자연히 말할 것이 있다. 북조선 탈출자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평화통일을 외면하는 것이다. 북조선 탈출자 문제가 여러 가지로 시끄럽다고 못본 척하고 이해관계만 앞세워 저울질한다면 그처럼 중대한 평화통일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우리는 외롭지 않다
탈출자 문제를 바로 잡기 전에는 이 세상 인권 역사에 제일 가증스러운 치욕을 남길 수 있다. 그만큼 북조선 탈출자 문제는 어느 한 나라, 어느 한 지역을 뛰어 넘어 세계에서 제일 심각한 문제로 응당 되었어야 한다. 이것을 해결 못한다면 그 어떤 인도주의자도 그 어떤 민족주의자나 평화주의자도 僞善(위선)이라는 두 글자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한국정부는 김정일이 무엇이라고 소리치든 간에 놀라지 말고 탈출자 문제의 주인이 되어 국제적 문제로 승화시키고 탈출자들이 마음놓고 어느 한 지역에 모여 안심하고 자기의 성실한 노동으로 생존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지금 김정일은 여기 있는 10만 탈출자들의 단결을 제일 무서워하고 있다. 지금 탈출자들은 뿔뿔이 쥐구멍에 은폐하여 붙잡혀 가는 날만 세면서 개나 돼지처럼 각개 격파당하고 있다.
지금 우리 탈출자들 하나하나는 어찌 보면 한갖 개미들에 불과하다. 그러나 개미가 둑을 무너뜨린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생각지 않은 것들이 일을 친다는 말이다. 제아무리 보위부 밀정들이 날뛰어도 이 개미들을 이끄는 전위조직이 탄생되고 이 성스러운 깃발 아래 10만이 뭉친다면 조국통일의 강력한 제2전선이 구축될 것이며 이것은 짓밟혀 신음하는 2천만 우리 동포들에게 희망의 불씨, 자유의 해방을 비쳐줄 것이며 김정일은 제 집안 싸움에 망신하여 핵무기만 안고 울음을 터뜨릴 것이다.
우리는 외롭지 않다. 우리에게는 희망의 등대인 한국이 있으며 우리를 지지하는 국제자유 역량이 집결되어 있다. 우리가 싸워 잃을 것은 군사분계선이고 얻을 것은 조국통일이다.
역사의 그날은 바야흐로 동터오고 있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여 온 삼천리 금수강산에 그처럼 보고싶던 무궁화는 만발하고야 말 것이다.●
세상에는 행복에 속하는 것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행복한 것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배부른 것이라 해야 시원할 것 같다. 나에게도 단 한 가지 소원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가족들과 함께 근면하게 일하며 배불러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제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무슨 일인들 안해봤겠는가? 그러나 죽음의 그림자는 우리 가족을 무섭게 추격하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명령하였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학교에 못간다. 굶어 죽겠으면 가라. 각자가 흩어져서 메뚜기든 잠자리든 조개든 닥치는 대로 잡고 캐라. 저녁에 총화는 이 몽둥이로 할 것이다』
나는 멀리 산에 가서 각종 산나물, 개구리알을 열심히 가져왔다. 가까운 곳에는 사람들이 너무 잡고 뜯어서 멀리 가야 있는데 그곳에도 다른 사람들이 먼저 와서 붐비기 때문에 누구보다 일찍 가서 날쌔게 움직여야 소득이 좀 있다. 산에 가서 맥이 없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배고픈 것이 제일 힘들다.
배낭 속에 점심을 싸 넣으면 산밭을 타고 넘는 것이 무섭지 않지만 먹을 것이 배낭 속에 없으면 벌써 배고픔이 갑절 앞당겨지면서 더 깊은 산에 가고 싶어도 주의해야만 했다.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욕심스레 깊이 들어갔다가 배고픔에 허기져 산속에서 나오지 못한 일이 많다. 다리가 후둘거려 더는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도 있다. 이때에는 아이들의 얼굴을 그려보면 좀 낫다. 그러노라면 한참 후 다리에 맥이 뻗친다. 우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돼지나, 염소가 먹는 풀은 다 먹을 수 있다고 인정한다.
사실 된장만 있으면 웬만한 풀을 넣고 끓이면 구수한 것이 암만 먹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여기에 기름만 좀 넣으면 낟알을 먹지 않고도 일생 살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산나물도 소금 한 가지로 먹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머리가 아파진다. 제발 된장만 있었으면 하는 것이 이때의 안타까운 심정이다.
그러나 철이 지나면 산나물이나 개구리알이 없어지고 뱀, 쥐, 매미가 먹기 좋을 때가 된다. 매미는 생 것으로 먹어도 참 좋았다. 벌둥지도 있는데 말벌이 무섭게 드나드는 것을 마대에 콱 넣어서 가마에 넣어 증기로 죽인 다음 말벌과 유충들을 꺼내서 닦아 먹으면 매우 根氣(근기) 있다. 여기에 재미 붙여 돌아다니며 벌둥지를 털다가 온 몸이 벌한테 쏘인 적이 많다. 그래도 생존하는 길에서는 웃음이 앞선다.
제일 불쌍한 건 아이와 노인들
산을 들어먹기 힘들 때에 이르면 도시 장사에 나선다. 장마당은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치열한 생존 경쟁이기 때문에 당분간 惡漢(악한)이 되어야 한다. 서로 속이고 때리고 패는 일이 예사로운 도덕이 된 이 장마당에는 제일 불쌍한 것이 아이들과 늙은이들이다.
많은 아이들이 「꽃제비」(거지)인데 장사하는 아낙네들의 빵, 떡 등을 기회를 보다가 날쌔게 쥐고 뛴다. 뛰면서 재빨리 입에 쑤셔넣는 것이 상시인데 붙잡히면 죽도록 매를 맞고 빵까지 뺏기게 된다. 따라서 붙잡혀 매를 맞으면서도 빵을 입에다 쑤셔 넣고야 만다.
어떤 아이들은 손님들이 먹고 남은 어지러운 찌꺼기 국물을 마시기도 하고 장마당에 떨어진 강냉이알, 미역, 시래기 등을 주워 먹는다. 그것도 흔한 것이 아니어서 못먹은 아이들은 배를 그러쥐고 절망적인 울음을 운다. 더 심한 아이들은 마지막 애처로운 소리를 지르다가 거꾸러져 일어나질 못한다. 그러나 누구 하나 쓰러진 시체 옆을 지나면서 치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준다고 얼려서 제 집에 유인한 다음 도끼로 쳐서 숨지게 하고 각을 뜯어 가마에 넣고 끓여 먹는다. 이런 사실이 자꾸 많아지니까 놀라워하는 사람이 점점 없어진다.
노래를 파는 아이들도 있다. 아무리 슬픈 노래를 불러도 사람들은 별로 반응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아이를 데리고 와서 음식을 먹고는 돈이 없는데 자기 딸을 가지라고 사정한다.
딸애는 한 열 살 가량 되었는데 여위기는 했어도 미루알 같은 눈이 참 예쁘게 생겼었다. 그러나 자기 자식을 막 줘버리는 판에 이 아이의 몸값은 눅거리죽(5원짜리임) 한 그릇에 감히 비기지 못한다. 죽장사는 당장 달려들어 그 사람의 누더기 겉옷을 죽값으로 빼앗고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들 중에는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제 딸을 잡아 먹고 입을 씻는 자도 있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어떤 여자들은 갓난애기를 포대기에 곱게 싸서 역전 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몰래 놓고 간다. 그녀들의 마음은 미련한 엄마를 만나서 굶어 죽기보다 혹시 마음씨 고운 귀인이 나타나 너라도 살라는 것이다. 포대기에 누워서 하얗게 웃고 있는 이런 아이들이 한심하여 사람들은 「이놈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웃어」 하고는 할 수 없이 지나가버리고 만다. 혹시 아이를 가져가는 사람 중에는 아이를 약으로 쓰는 노인들인데 그들의 처지도 마찬가지이다. 자식들이 제몸 건사도 하기 바쁜데 언제 자기 부모를 생각할 겨를이 있겠는가.
어떤 노인들은 殞命(운명) 직전이면 헛소리를 많이 한다. 그들의 말을 들으니 일제시대에는 일본놈들에게 천대는 많이 받았지만 먹는 것은 있었고 굶어 죽는 일은 극히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때 찰떡, 고기, 개누깔 사탕 등 먹던 이야기를 자꾸 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이 밥에 고기국을 한 번이라도 콱 먹고 죽는 것이 제일 소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마지막 소원이 성취된다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보다 더 힘들다는 것은 노인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이런 노인들은 오히려 원한의 일제시대 때를 더 그리워하고 6·25 전쟁시기 때를 더 그리워하다가 별세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노인들이 망령소리를 하면 『령감! 당장 잡아가야 정신 차리겠는가?』하고 소리친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그 노인이 나쁜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노인에게 먹을 것을 쥐어주지는 못할망정 호통친 사람, 아니 그보다 호통치게끔 만들어 놓은 사회악이 죄인이라고 절실히 느껴진다.
집집마다 다니면서 빌어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지금은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까치가 자기 집 주위에서 울면 『쌍놈의 까치새끼 무슨 망할 놈의 손님을 청하자구』 하고는 당장 돌을 뿌리고 쫓아버린다. 원래 우리 조선 풍습에 까치가 집 근처에서 울면 손님이 희소식을 가져온다고 반가워 하였다.
生사람 피를 빼 팔아먹는 놈들도
그러나 지금은 그런 손님이 필요 없다. 그것은 손님에게 밥 한 끼라도 먹이는 것이 매우 심중한 문제로 되며 따라서 밥 한 끼라도 축낼 수 있는 사람은 그가 자기 부모든, 형제든 다 제일 얄미운 사람이 되고 만다.
사회에는 지금 먹을 것을 둘러싸고 별별 괴상한 일이 다 벌어지고 있다. 도둑질, 강도는 물론이고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피를 몽땅 빼서 팔아먹는 놈들, 사람고기를 팔아먹는 놈들 등…. 이런 이야기를 하자면 온종일 해도 끝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나에게도 직접 와서 피를 파는 일을 하자고 하는 놈들이 있었으나 소를 잡아먹으면 먹었지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피를 중국에 암거래한다는데 나는 처음 중국에 와서 맥주를 보고 피주라고 하니까 『아하 이 맥주는 사람의 피로서 만든 맥주기 때문에 피주라 하겠구나』 하고 웃지 못할 착각을 한 일이 있다. 그 피가 어떻게 암거래되는가는 아직도 수수께끼이다. 그리고 내가 북조선에 있을 때 중국 상품을 모조리 단속하여 불에 태우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 이유는 중국 상품에 남조선 안기부와 중국 사람들이 짜고 독약을 쳐서 조선에 내보낸다는 것이다.
실지 중국의 약을 먹고 卽死(즉사)한 사람들이 많으며 중국 신발을 신고 발 뒤축이 썩어 떨어진 사람, 여자들이 젖싸개를 대었는데 젖꼭지가 썩어 떨어진 일도 있다. 중국에서 내보내는 쌀에는 벽돌가루, 소똥, 유리가루, 독약이 들어 있고 그것을 먹고 잘못 되었다는 것이 사방에서 터져나왔다.
그래서 북조선 안전부에서는 중국 상품에 무조건적인 딱지를 붙이고 불태워버리는 소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중국에 와보니 중국은 조선에 물심양면으로 쌀을 보내주고 있으며 여기 사람들의 동향을 볼 때 북조선 사람들을 다 걱정하는데 절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음을 동감했다.
그렇다면 이것 역시 수수께끼이다. 그 상품들에 독약이 들어간 것만은 사실이다. 만약 남조선 안기부가 독약을 치려면 독약 치는 방법이 없어서 友邦(우방)인 중국 상품의 가치를 떨어뜨리면서 중국 사람들에게 미움받을 짓을 하겠는가?
6·25에 대한 거짓
오히려 그런 식으로 중국 상품에 안기부가 독약을 치면 중국과 북조선 사이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한국 사이가 벌어지게 된다는 것을 왜 한국 사람들이 모르겠는가? 더욱이 지금 중국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은 실지에 있어서 북조선 사람들을 걱정한다는 것이 점점 증명되고 있다. 이런 서툰 연극의 절정은 한국에서 북조선에 소를 1천 마리 보낼 적에 소에다가 전염병을 감염시켜 보냈다고 생트집한 일이다. 한국 사람들이 독약 칠 곳이 없어서 세계가 주목하는 그 마당으로 향하는 소에다가 전염병균을 치겠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짧은 시야 속에도 벌써 명백해지는 것이 있으며 짐작이 분명해지는 것이 많아진다. 북조선의 모모한 사람들은 한국의 소가 북조선에 들어오면 북조선 인민들이 한국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알 수 있으므로 사전에 이런 연극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한 개 국가로 자처하여 온 나라가 아이놀음보다 못한 일만 저질러 왔다는 것을 3국에 와서야 눈치챌 수 있었고 또 나도 북쪽 사람으로서 못볼 것을 본 것처럼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다. 동시에 속아 살아온 인생이 분하기 짝이 없다.
중국 상품에 독약을 쳐서 북조선에 내보내 생사람들을 해친 흑막도 이제 와서는 자연히 짐작된다. 북조선에 들어온 어떤 중국 상품에는 이런 글을 쓴 쪽지가 숨겨져 있다. 「안기부의 강요로 할 수 없이 독약을 쳤으니 사용하지 마시오」 이 글씨의 주인도 어떤 자이겠는가를 넘겨짚을 수 있다
중국 상품에 독약을 친 兇手(흉수)는 북조선에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이런 장난을 해야 했는가? 조선 사람들에게서 중국에 대한 환상을 애초에 없애며 중국과 한국 간의 관계에 쐐기를 박으며 한국에 대한 최대의 증오가 폭발되는 것을 바랐다. 다음은 실지 生體(생체)들에 대한 새로운 생물 무기의 실험도 흥미 있었을지 모른다. 북조선에 있어서 일반 주민들이 살해되는 것쯤은 예사로운 일로 되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필요한 사람들은 따로 있다. 그것은 전쟁을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아첨할 줄 아는 간부들이다. 그밖의 사람들은 한갖 이용물에 지나지 않으 며 앞으로 자기의 실지 敵(적)이 누구인가를 알게 될 적에 문제거리 있는 사람들이 실컷 부려먹고는 없어져야 유리할 것이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너무너무 속아왔다. 나는 중국에 와서야 스스로 깨달은 것이 적지 않다. 여기 사람들의 말이 6·25 조선전쟁 도발자가 미제가 아니라 북조선이라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비상사고이다. 우리 조선 사람 중에 아무리 간부라 해도 이걸 아는 사람이 몇 명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6·25 조선전쟁 당시 1백만 명이나 조선전쟁에 침투되었으며 피를 흘린 사람들이다. 따라서 역사의 산 證人(증인)들이다. 따라서 믿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조선전쟁 때 중국 사람들이 참가했다는 것은 알아도 한 3만명 정도나 참가했겠지 1백만명이나 참가하여 죽음으로써 전쟁의 결정적 역할을 놓았다는 것은 조금도 몰랐다. 우리가 북조선에서 배운 것은 오직 김일성의 위대한 영도에 의하여 조선 사람 자체의 힘으로 15개 추종 국가 군대를 단호히 물리쳤다는 것으로 굳어져 있다.
8·15 해방도 소련 군대의 결정적 역할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본은 김일성의 빨치산에 의하여 조국이 해방되었다고 유치원 시절부터 배워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조선 사람들은 友邦(우방)들에 대하여 한 조각의 의리마저 없는 사기꾼들이 되고 만다.
중국은 전쟁시기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물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조선에 주었다는 것을 여기에 와서 알게 되었다. 정말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강력한 중국의 후원이 다 북조선 지도자들에 의하여 잘못 이용되었다. 이들은 인민을 위한다는 구실 밑에 실지 자신들의 야심 실현에 몽땅 탕진해버렸다.
나는 중국의 지도자들과 나의 지도자들을 대비해보게 된다. 毛(모)주석 동지는 진정 중국 인민을 잘 살게 하자는 마음이 굳센 분이었다. 그분은 자기 아들도 조선 전쟁에 바쳤다고 한다. 오직 과오가 있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가 정권을 잡고 인민을 위하려 하였으며 그 실현을 위한 방법을 그만 잘못 활용한 것이다. 毛주석 동지가 중국 인민을 위한 길에서 전략전술상 문제에서의 착오는 있었어도 인민을 잘살게 하자는 사상만은 깨끗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없앨 수 없다.
중국의 주은래 총리, 주덕 총리, 유소기 총리, 등소평 총리. 그리고 오늘날의 강택민 총리, 주용기 총리들이 다 자신보다 중국 인민들을 어떻게 사랑하였는가를 後代(후대)들은 잊지 않을 것이다. 정말 중국 인민이 부럽다.
그러나 조선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이런 분들을 모셔본 적이 없다. 김일성을 숭배하는 길에서 나는 얼마나 미친 사람처럼 충성을 맹세하였던가? 정말 전쟁이 일어나면 수령을 위하여, 당을 위하여 폭탄이 되리라 굳게 다짐했었다. 그것은 세상 역사에 우리 수령만큼 인민을 위한 일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신념과 의리로 출발했었다.
그러나 하늘같이 믿어왔던 이 사람들이 우리 조선 사회를 수백만명이나 굶겨 죽이면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이상하기 그지 없는 현실 앞에서 수많은 물음표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왜 우리는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 어느 때까지 이런 식으로 죽어야 하는가? 이게 다 미국놈, 일본놈, 남조선 괴뢰역적들 때문인가? 그렇다면 빨리 원수를 쳐야 할 때다.
인민들은 전쟁을 원한다
인민들은 빨리 전쟁을 요구하는데 왜 이렇게 굼뜨고 우유부단한가? 정말 모를 것이 많았다. 사실 사람들이 바쁜 쪽에 빠지면 전쟁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하였다.
사방에서 사람들의 일치한 요구는 이제는 다 죽게 된 판에 남조선을 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 공통어가 되고 말았다. 심지어 사회의 약자라고 볼 수 있는 아이 업은 아낙네들도 모여 앉으면 빨리 전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나도 군대들을 만나면 언제 전쟁할 것 같은가고 자꾸 캐어 물었다. 그러면 군대들은 『조금만 참으라요. 이제 한 달만 있으면 장군님께서 명령이 계실 겁니다. 믿으십시오』라고 한다. 그러나 일어날 것 같은 전쟁은 아무리 희망해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쟁에 희망을 품고 있다가 죽은 이들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하였다. 왜 미국놈은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고 우리 사람만 이렇게 억울하게 죽어야 하는가?
왜 총 한 방 쏘지 못하고 이 꼴이 되고 있는가? 과연 이 참극이 다 미국놈 탓인가? 왜 장군님은 그렇게 인민을 사랑하시고 배짱이 세시며 세상에서 제일 가는 천하명장이신데 군부대만 돌아다니면서 침묵만 지키고 있는가? 인민은 누가 죽든 빨리 해보자고 하는데 과연 그는 이것을 모르고 있단 말인가?
나는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하여 그토록 崇尙(숭상)했던 윗사람들을 훑어보기 시작하였다. 간부들은 인민들에게는 고난의 행군을 같이 하자고 했으며 사회주의 강행군만 하면 꼭 잘 살게 된다고 말하고는 뒤 골방에서 술푸념만 일삼고 있었다. 이 자들의 말이 내년은 불사조해라고 했다.
이렇게 배불리 처먹고는 강연 연단에서는 제법 공산주의자인 체, 진짜 충신인 체, 인민의 忠僕(충복)인 체하였다. 간부들은 앞에서는 당에 아첨하고 뒤에서는 잘 먹고 있다가 기회를 봐서 3국에라도 가서 살 수 있는 외화돈을 모으고 있었다. 이것은 인민이 죽건 말건 상관이 없었다. 언제나 불쌍한 건 기만당한 인민이었다.
한때 간부 중에도 양심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함경북도와 평안북도에서 도당 책임비서를 하던 조세웅은 정말 인민의 충복이었다. 그러나 인민들 속에서 「조세 웅 만세」가 울리자 제거해 버렸다. 이러한 사람들은 간부들에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제일 영리하겠는가를 가르쳐준 나침반이었다. 그래도 그때에는 배급이라도 조금씩 내주던 때였으므로 간부들이 부정부패를 일삼아도 인민들은 그저 욕이나 하는 정도로서 참을 수 있었지만 지금 막 굶어죽는 이런 마당에서는 이런 현상이 달리 해석된다. 지금에 와서 간부들의 부정부패는 저만 살겠다고 도망친 도망병의 자세와 같은 것이었다. 간부들의 행동은 곧 상층부의 그림자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말이 있다.
노예보다 못한 관리소
이 시기에 와서 사람들은 간부라 해서 너만 살겠느냐? 나도 살아야겠다는 배짱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소를 잡아먹고, 공장의 기계를 뜯어내고, 팔아먹는 등 별의별 일을 다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양심상 가책이 생기지 않았으며 그래서 총살당한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우리가 유치원 시절부터 배운 것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 등 生死苦樂(생사고락)의 내용으로 엮어졌으나 지금 와서 이것이 최대 협잡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사람들을 기만하자면 제일 아름다운 몽둥이와 제일 무서운 몽둥이 두 개를 잘 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金日成(김일성)과 金正日(김정일)이 이 두 몽둥이를 한동안 잘 활용하였다고 생각한다.
제일 아름다운 몽둥이란? 바로 인민을 주인으로 본 주체사상과 그리고 인민을 위한다는 최대로 미화 粉飾(분식)된 명제들과 덕성자료들이다. 이것을 보고 듣는 사람들은 대체로 감흥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토록 옳고 옳은 말이기에 자신의 것으로 되고 만다.
지금 와서 나는 주체사상 자체는 배울 점이 있지만 그 주제사상을 북조선에 구현한 持論(지론)과 방법에는 환멸밖에 나오지 않는다. 즉 주체사상을 창시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것을 잘못 써먹은 것이다. 왜 잘못 써먹었는가? 그 실수는 다른 원인도 있지만 야심에 뜻을 두었기 때문이다.
큰 야심가는 좋은 사상을 내놓을 수 있고 그것을 거꾸로 이용해 먹을 수도 있다.
제일 무서운 몽둥이란? 당에 거슬리는 사람에 한해서는 직위와 공로에 관계없이 본인은 물론 그 가족, 친척까지 反黨(반당), 반혁명 종파 분자의 죄명을 쓰고 재판도 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보위부 관리소에 붙잡혀가는 것이다. 이렇게 붙잡혀 간 사람들은 가족들을 분리시켜 놓고 죽을 때까지 세상 최대의 노예제 노동과 고통을 맛보다가 죽어야 한다. 이것은 실지 당장 총살당하는 것보다 10배나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런 관리소에 끌려가면 차라리 옛날 노예가 되는 것보다 못하다. 북조선에는 이런 관리소가 한 10개 정도 있다고 본다.
무서운 몽둥이 안에는 조직생활이라는 것이 들어 있다. 여기에는 강연회, 강습, 학습방 특히 조직생활 총화이다. 조직생활 총화는 2일 및 週(주)총화, 농촌에서는 10일 총화가 있으며 주로 주총화를 하는 기관이 많다.
週생활 총화에서는 주에 나타난 자기의 결함을 교시와 말씀, 10대 원칙에 기초하여 높은 정리적 예리성을 가지고 비판하여야 하며 자기 결함의 원인을 분석한 다음 고칠 방도까지 발표해야 한다.
이것을 보고 자기 비판이라 한다. 다음은 동지 互相(호상)간 비판이 꼭 있어야 하며 이 비판이 없으면 그 사람의 비판은 낙제로 취급되어 다시 준비하고 무조건 호상비판에 진입해야 한다.
자기 결함을 비판하기는 좀 괜찮은데 자기 동무를 비판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할 수 없이 동무를 비판하게 되는데 비판받은 그 동무가 좋아할 리 없으며 그 동무는 후에 꼭 복수를 하고야 말게 된다.
생활총화의 목적은 이를 통하여 자기의 때를 씻고 남의 때까지 씻어주는 좋은 마당으로 표현되지만, 실지 결과는 서로 질시하고 반목하고 화목과 단결을 깨뜨리는 결과밖에 초래되는 것이 없었다.
우리의 이론에 의하면 이 조직 대책을 통하여 사람이 사상적으로 수양되고 동지호상간 순수한 단합만이 아니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기초로 한 참신한 동지적 단결이 이룩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수령한테는 충실하리라 마음을 가지게 되지만 동지호상간에는 반드시 『개새끼 두고 보자』는 관계밖에 나오는 것이 없었다. 이것은 낮은 단체나 높은 단체나 중앙급 당 단체나 무조건 마찬가지이다.
遺言(유언)도 마음대로 못하는 사회
이것이야말로 아래 사람들의 단합을 파괴하고 오직 두 사람에게만 충성해야겠다는 경쟁력을 가지게 하는 가장 기발한 착상이었다고 생각한다. 당 간부들은 이 무기를 가지고 수령에 대한 충실성도 키워 주지만 동시에 자기에 대한 아부아첨을 조성시켜 부조리를 일삼아 왔다. 아래에 대한 비판도 할 수 있지만 위로의 비판도 하게 되어 있다.
간부라 해서 다 충실성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을 타격주기 위하여 위로의 비판도 하게 만들었다. 결국은 서로 물고 뜯고 하느라면 숨차서 언제 꼭대기의 두 사람이 무슨 짓을 하는지 살필 경향도, 엄두도 나지 않으며 무작정 이 두 사람에게 의탁해야 편안하겠다는 생각밖에 나는 것이 없게 된다. 즉 더 충성심을 키워서 자기 동무를 복수할 생각뿐이다.
그러나 이 엄연한 결과를 목격하면서도 이 생활 총화 제도에 뭔가 숨어 있지 않나 하고 의심하는 사람이 없으며, 오히려 이 생활 총화를 주관하는 조직 책임자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또는 각자의 사상적 수양이 부족하여 나쁜 결과가 나타난다고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北은 서로 감시하고 서로 통보하는 체제이다. 북조선에는 5線(선) 체계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는 당 및 근로단체선, 보위부선, 안전부선, 인민반선이다. 이 체계에 의하여 매사람의 발언, 행동들이 수시로 보고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수령에 대한 충실성으로, 黨性(당성)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쌍소리는 막 해도 정치적 발언, 정치적 색채에 속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리 술에 취한 망나니라도 실수하지 않는다. 심지어 굶어죽는 사람들까지도 마지막 딱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자식들을 위하여 형제들을 위하여 가슴에 품은 채 저 세상에 가야 한다. 높은 급의 간부들은 자기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마지막 운명할 적에 수령에게 꼭 충실하라고 하면서 마음 속에 없는 遺言(유언)을 써놓고 죽는 것이 유행이다.
유언이 이렇게 돼야 아버지가 가졌던 신임과 배려를 자식들이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국가안전보위부는 평민들의 일거일동뿐 아니라 전반 간부들의 움직임까지 다 도청, 미행, 감시하고 있다. 요즈음은 보위부 사람들이 私民服(사민복)을 벗어던지고 군복까지 입어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햇빛을 가릴 수 없다는 말, 그리고 자루 속의 송곳을 숨기지 못한다는 말, 시간이 증명한다는 등 조상들이 남기고 간 말이 있다. 그처럼 응고되어 완고했던 사람들의 관념은 기본 궤도에는 들어서지 못했지만 첫걸음마를 떼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몇년 전까지만 하여도 사람들은 당적 양심을 간직하고 이 입장에서 모든 사고와 활동을 전개하여 왔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쓰러지는 것을 본 이 마당에까지 와서 눈먼 장님이 될 수 없었다. 의지가 약해서 변하는가? 그렇지 않다. 진실치 못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굶어죽는 참상은 막을 수 있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고 당이 인민과 약속하였으면 정말 그 약속을 이런 바쁜 때에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자기들은 배불리 처먹고 인민들 보고는 殉職(순직)하라고 하니 이런 강도의 논리가 어디에 있는가?
중국에 도망치는 사람들, 남조선에 귀순하는 사람들이 우리 인민에게 배워준 사상과 이론대로 당이 행동하였더라면 나쁜 놈 내놓고는 변절할 사람이 없다. 먼저 변절한 것은 아래 사람들을 속인 윗사람이다. 따라서 아래 사람들이 변절하는 것은 변절이 아니라 改變(개변)이다. 아래 사람들을 변절자로 만든 장본인은 두 말 없이 윗사람이며 그들이 책임져야 한다. 사실 우리 사람들이 수백만씩이나 굶어죽는 사회를 미리 막을 방법이 없었는가?
많고도 많았다고 생각된다. 제일 좋은 방법은 중국처럼 개혁·개방하는 것이다. 이것이 싫어서 안한다고 쳐도 다른 방법이 과연 없었겠는가? 있었다. 그것은 당이 미리 나라가 처한 실태를 숨김 없이 말하고 다 자체로 자기 목숨을 살리게끔 하는 방법이 있었다.
다시 말하여 인민들에게 『인민들이여 지금 나라에는 당신들에게 줄 쌀이 한 알도 없다. 이제부터 당에서 당신들한테 줄 것은 시간밖에 없으니 다 산 속이든 골짜기든, 땅 있는 곳에 들어가서 자력갱생하라. 조국의 한 치 땅도 묵히지 말고 增産(증산)하라. 지금 당신들이 믿을 것은 오직 어머니의 젖줄기인 조국의 대지와 바다밖에 없다. 고기잡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뗏목을 타고서라도 바다에 마음껏 진출하라. 그리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목숨을 견지하라. 이것이 당의 뜻이다』라고 했어야 한다.
이렇게 미리 조치를 취해 주었더라면 굶어죽는 참상까지는 빚어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다 억제되어 있다. 바다에는 가시철조망, 지뢰가 매설되어 있어 함부로 바다에 나갔다가는 큰일난다. 어부질을 하자 해도 성분이 좋아야 하고 또 보위부의 승인 절차도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어부가 되는 일도 간단치 않다.
산 속에 마음대로 들어가서 땅을 부치는 것도 통제되어 있다. 우선 산림법, 환경보호법 등이 있지만 이것을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땅을 부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도 개인 이기주의자로 전락되면 어찌 하나 하는 근심, 그보다도 사회주의 경제 체계가 허물어진다는 것이 더 큰 것 같다.
실지 현재 형식적으로 사회주의 경제 체계가 있지 모든 공장 기업소가 다 숨져 있는 이 마당에서, 공장이 더는 숨쉬지 못하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을 규율에 얽매어 놓고 출근시켜 자리지킴이나 하게 하니 이보다 한심한 일이 어디 있는가?
또 땅을 부치면 이기주의가 盛(성)한다는 이론인데 그러면 지금 장마당에서 서로 도둑질, 강도질, 협잡질하는 장마당 사람들의 마음이 더 나쁜가? 아니면 땀을 흘려 제 손으로 낟알을 만들어 먹는 사람의 마음이 더 나쁜가? 모든 사람들을 다 낟알 생산하는 생산자로 만들면 얼마나 좋겠는가?
자기 가족 살리기 운동 펼쳤어야
가족단위로 땅을 부쳐 자기 가족 살리기 운동을 벌였더라면 우리는 남의 나라 신세를 지지 않고서라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옛날 봉건 시대 때에는 양반들이 백성들을 돌보지 않았지만 백성들이 제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가서 火田(화전)을 일구고 농사를 지어 살아온 민족이 아닌가? 그때보다 인구가 많고 땅이 적다는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옛날보다 더 과학적인 영농방법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기주의가 성하면 어쩌랴 하지만 실지 지난 6·25 전쟁 때 목숨 바쳐 싸운 영웅들은 다 개인농들이었고 조직이 있어야 자기 땅도 지킬 수 있었기에 용감하였었다. 자체로 땅을 부쳐 살기 운동을 벌이면 좋아할 것은 대다수 평민들이고 나빠할 것은 인민들의 기생충인 간부들과 아첨꾼들이다. 그래서 간부들은 이 방법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의 뜻에 배치된다는 구실을 붙여 정치적 모자를 씌우자고 한다.
그러나 당에서는 자칭 세상에서 제일 현명하다고 하면서도 주동적인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바쁠 때일수록 오직 당만 믿고 살라고 인민들에게 말하였다. 늘 당의 말만 고분고분 들어온 인민들은 이제 당에서 꼭 쌀을 준다고 하면 줄 것이라고만 철썩같이 믿었다. 이런 식으로 쌀을 준다준다 하면서 사람들을 얼러왔다.
사람들은 앞으로 당에서 쌀을 줄 때까지 기간을 자기 家産(가산)을 팔아 치우는 것으로 먹고 살았다. 집을 팔고 寒地(한지)에 나앉은 사람이 많다. 정말 쌀을 주는가 하고 입만 하 벌리고 위를 쳐다보고 있다 보니 맥이란 맥은 다 빠졌다. 그러다가 기진맥진한 사람들에게 이제부터는 식량공급이라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 이런 때에는 힘센 장수라도, 요술사라도 용빼는 재간 없이 죽는 길밖에 없다.
이 첫서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되었다. 다음해부터는 혼이 나서 쌀을 준다는 엉터리 말을 믿지 않고 장사를 한다, 농사를 한다 하였으나 처음 타격이 너무나 컸으며 게다가 처음 서리에 녹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 못해 도둑놈이 되어 앞에 달려드니 농사 지은 사람도 야단이 아닐 수 없다.
밭에 감자씨를 묻으면 벌써 밤에 감자씨를 파다가 먹는 사람이 많다. 또 감자싹이 나오면 그것을 막 뽑아다가 데쳐서 먹는다. 그 맛은 남새와 같다.
그리고 콩을 심어서 싹이 나온 것을 뽑아서 데쳐 먹으면 콩나물 못지 않게 맛있다.
이렇게 艱苦奮鬪(간고분투)하여 지은 곡식도 익기 전부터 몽둥이를 들고 밤새껏 지켜야 한다. 자칫 조는 새면 벌써 감자밭이 몽땅 거덜이 난다. 농장원들도 농장밭을 지키는 기회에 농작물을 훔쳐간다. 따라서 지금은 군대가 농장밭을 총을 들고 지킨다. 군관도 권총을 차고 지킨다. 지나가는 행인들의 배낭수색을 군대들이 많이 한다. 밤에 강냉이 밭에 허기진 배를 안고 들어갔다가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이 많다.
얼마 안되는 강냉이를 노려서 생사람을 쳐죽이고 또 달리는 열차에서 사람을 차 던지는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처음 북조선에서 여자들의 직업 중 제일 좋은 것이 판매원 특히 천개대 판매원이었는데 그 이후 점차 식료품 판매원이 더 권세 있었다. 상점에 가서 웬만한 빽이 없이는 물건을 살 수가 없다.
물건은 적은데 요구하는 사람은 많고 하니 판매원이 큰소리를 칠 만도 하였다.
그러다가 공장이 서니까 상품, 특히 식료품이 없으니 판매원 직업도 추풍낙엽이 되었다. 식량부문에서 다음에 여자들의 인기를 모으는 직업이 식량 공급소에서 배급주는 직업이었는데 간부 가족들도 이 여자들과 잘 친해서 먼저 처먹곤 하였으며 평민들은 배급소에 쌀이 떨어지면 줄서 있다가 할 수 없이 밀려나곤 하였다. 이 여자들도 배급소에 영 쌀이 들어오지 않자 인기가 폭락되었다.
지금은 여자들이 제일 군침 흘리는 직업이 국수 방앗간이다. 국수 누르는 곳에 들어가 일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국수 방앗간에 국수 장사를 목적으로 국수 누르러 사람들이 강냉이를 가지고 많이 온다. 이때 국수를 슬쩍 떼먹을 수 있다.
이 자리를 노려서 여자들끼리, 또 남자들끼리 쩍하면 시기질투하고 싸우기가 일쑤이다.
집 없는 설움과 배고픈 설움
내가 여기 중국에 와서 신문을 본 적이 있는데 가정이 없이는 살아도 집 없이는 못 산다고 썼다.
그리고 한국의 名(명)가수 태진아란 사람은 자신의 노래에 세상에서 제일 큰 설움이 집 없는 설움이라고 했다 한다.
그러나 가정이 없이도, 집이 없이도 살 수 있으나 먹지 않고는 못 산다. 세상에서 제일 큰 설움이 집 없는 설움이 아니라 배고픈 설움이다. 지금 북조선 사람들은 엄동설한이라도 목구멍이 원수가 되어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보금자리를 서슴없이, 그것도 헐값으로 파는 실례가 四處(사처)에 있다.
북조선에서는 집 값이 너무나도 눅다. 배고픔 앞에서는 따뜻한 집도 다 귀찮다.
그리하여 참 좋다고 보여지는 집도 2천원∼3천원 정도면 큰소리 치면서 살 수 있다.
북조선 돈 2천원 정도이면 여기 중국돈,즉 인민폐로 1백원도 안되는 돈인데 중국에서는 웬만한 집값이 인민폐로 1만원이 넘는다니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북조선 사람들은 거리에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라도 크게 부러워하지 않지만 옷은 남루해도 강냉이 배낭을 한 짐 지고 거리에 나서면 저마다 부러워서 힐끗힐끗 보고 지나가며 아낙네들이 달라붙어 자기한테 강냉이를 팔라고 별 수선을 다 떤다. 자칫하다가는 아낙네들의 저울 솜씨에 속아서 장사를 다 망치고 만다.
장사꾼들은 쌀을 넘겨 받을 때 저울과 넘겨줄 때 저울이 따로 있으며 저울 다는 솜씨도 몹시 능란하여 안속는다고 하면서 눈을 훤히 뜨고도 속는 일이 많다. 또 그렇게 해야만 쌀 장사하는 아낙네들은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 또 쌀을 넘겨주는 사람은 여기에 속지 말아야 자기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죽고 살고 하는 문제가 이 쌀 흥정에 달려 있기 때문에 그저 웃어 넘겨버릴 일이 못된다.
장마당을 둘러보면 고양이 뿔을 빼놓고는 다 있다는 식으로 별별 물건이 다 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먹을 것이 원수되어 사랑하는 家藏什物(가장집물)을 다 끌어 내온다. 저마다 제걸 사달라고 애원할 적이면 어미 잃은 기러기떼의 울음소리 같아 가슴이 찢어진다.
자기 물건을 도적맞아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들, 그러나 그보다도 안전원에게 물건을 단속당하여 우는 사람들도 많다.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할 안전반들이 국가 규정을 악용하여 단속조건이 아닌 물건을 단속하는 실례가 많다. 안전원들도 자기 식구를 살리자니까 할 수 없이 떡장사의 떡을 단속하고 빵장사의 빵을 단속하여 분주소에 가져 갔다가 어물쩍해서 먹어버린다.
따라서 장사질을 하자면 안전원에게 미리 뇌물을 먹여야 하고 장마당의 망나니들과 잘 친해야 한다. 북조선에서는 간부들에게 잘 고여야(바쳐야) 一身(일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즉 내가 출세를 하자면 성분이 좋아야 하는 것이 첫째이고 그 마당에 많이 고이는 사람이 똑똑한 출세 재목이 될 수 있다. 이 현상이 이젠 뿌리 깊어져 막을 수 없는 아편이 되고 말았다.
뉴턴의 제4법칙
어떤 한 군관이 술에 푹 취하여 나보고 『여 친구, 뉴턴의 제4법칙이 세상에 발견됐다는 사실들은 알고 있어?』 하길래 『뉴턴의 제3법칙까지는 아는데 제4법칙이 무엇인지 말해 주시오』라고 하였더니 『고인 물체는 움직인다. 이것이 유명한 뉴턴의 제4법칙이야. 우리 인민군대에서 발견했단 말이야 멋있지?』 했다. 나는 한참 후에야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고인다는 말은 뇌물이고 물체는 사람을 말한다.
즉 「고인 물체는 움직인다」를 다시 말하면 뇌물을 먹은 자는 곧 동작한다는 소리인데 우리 조상들의 말대로 먹은 뒤 똥싼다는 말과 비슷하다. 그 군관도 자기 출세와 관련하여 무슨 쓴 사연이 있는 것 같다.
인민군대의 上下(상하) 관계는 이미 썩을 대로 썩었다. 말로는 상하일치, 혁명적 동지애를 부르짖고 있지만 서로 물질 관계에 의하여 출세와 노동당 입당이 진행되며 이를 둘러싸고 서로 반목, 질시, 도적질, 싸움질이 그칠 날이 없다.
인민군대 내에서 제일 불쌍한 것이 신입병사들이다. 가뜩이나 배고픈 병사들의 쌀을 하사관들이 詐取(사취)하여 팔아서 술을 처먹거나 상관에게 바친다. 배고픈 병사들은 할 수 없이 私民(사민)부락에 나가서 무서운 강도질을 일삼는다. 병사들이 자기 상관네 집을 들이치는 일도 많다.
굶주린 병사들에게는 무서운 것이 없다. 기차칸에서도 군대들이 자리가 비좁다 하여 私民들을 총으로 쳐서 열차 밖으로 내쫓는 일이 많다. 대낮에 군대들에게 폭행을 당하여 졸도하고 물건을 빼앗긴 젊은이들이 四處(사처)에 있다. 군대와 인민이 軍民(군민)일치를 부르짖던 시대는 영영 지나갔다. 사방에 원한의 목소리가 터져 오른다.
군대들의 행패가 너무 심하여 지방당에서 김정일에게 실체 보고를 하니 김정일은 『나의 병사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잘라냈다 한다. 이것은 최고 사령관이 병사들에게 보내는 최고의 신임이라 하면서 병사들의 말이 금강산 발전소 건설에 가면 배부를 수 있는가 했는데 거기 가서도 죽도록 일만 하고 배가 고팠다고 한다.
금강산 발전소의 건설 목적은 남조선 水葬
금강산 발전소에 대하여 상세한 이야기는 건설에 동원되었다가 온 군관들에게서 들었는데 군대들의 희망이 높았다고 했다. 금강산 발전소의 기본 목적은 유사시 발전소를 폭파하여 남조선을 물에 水葬(수장)시키자는 데 있다고 한다. 지금 군대들의 사기는 예상 외로 폭락되었다. 원인은 먹을 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병사와 병사 사이의 갈등, 병사와 상관들 간에 존재하는 부정부패와 패륜패덕, 그리고 전쟁을 한다한다 하면서 하지 않는 데서 부터 오는 불만, 중요하게는 인민들이 굶어죽는 현실을 똑똑히 본 군인들의 마음이 좋지 않다는 데 있다.
군인들도 자기네가 정치상학에서 배운내용이 현실과는 반대되기 때문에 모순에 싸였으며 차라리 匪賊(비적)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군대들도 이젠 무엇인가 모순을 눈치채고 있으며 이는 벌써 막을 수 없는 힘으로 번져가고 있다. 이런 군대를 가지고는 이젠 싸움하기가 글렀다. 상층부는 이것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윗사람들의 눈에는 아첨하는 자들과 만세를 부르는 자만 보일 뿐이다.
당 간부들도 썩었고 보위부도 썩었다. 당 간부나, 보위부 간부나 보면 몇해 전까지만 해도 당적 양심에서 행동해 왔는데 지금은 이미 당적 양심이라는 것을 외피로만 쓰고 그저 아부로 통하여 자기 자리와 자기 가족만 지키고 있다가 어떤 변화와 기회가 있으면 다 도망칠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예를 들자. 보위부 사람들이 계급적 원수라는 사람을 붙잡자고 애쓰는 것은 이젠 그 원수라는 사람이 미워서 잡자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을 잡아야 쌀이나 부식물이 생겨서 자기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관점으로 탈바꿈되었다. 압록강, 두만강 연선의 국경경비대 군인들 경우도 중국 도망자를 잡자는 것이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돈이나 물건을 뺏자는 마음이 100％이며 또 그렇게 빼앗아야 자기 굶주린 배고픔을 잠시라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人民의 마음 속까지 막을 힘은 없다
이 경비 대원들에게 돈과 물건을 주고 국경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국경 장사치들이 많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정의로운 말을 누구보다 많이 하여 왔다. 그러나 그러한 명제들을 신념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고기를 잡는 미끼로 이용하였기 때문에 한동안은 재미를 톡톡히 보았으나 이제는 그 미끼를 본인들이 받아물 수 있는 위험에 처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김일성·김정일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겠는가? 하는 정확한 인식도 못가지고 있으나 이 사람들을 곱게 보지 않기 시작하였다. 지금 조선 사람들도 중국의 벅찬 현실을 어느 정도 알기 시작하였으며 중국으로 도망칠 궁리를 하는 사람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상층부가 아무리 이 조류를 막자고 하여도 마음 속의 불붙는 마음까지 막을 힘은 없다.
지금 사람들도 콱 정권을 뒤집고 싶으나 그런 힘이 없기에 차라리 아첨하면서 기회를 보거나 아첨해서도 못살 사람들은 목숨부지를 위하여 중국에 도망한다. 軍部(군부)사람들이 여러 시도를 하였으나 아쉽게 실패했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의 악에 받친 충성은 반드시 암흑의 밤하늘에 울리고야 만다. 한줌도 못되는 김정일 집단의 붕괴 날짜는 시한탄의 초침을 재촉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은 우리에게 늘 가르치기를 인민을 믿으면 승리하고 인민을 배신하면 망한다고 하였는데, 도적이 『도적이야』 하는 격이 되었으니 이들은 이 말의 신세를 입을 때가 되었다.
김정일은 사람들에게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고 호소하면서도 철저히 그는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아왔다. 우리 불쌍한 조선사람들도 김일성·김정일 말만 믿고 너무나도 숨차게 따라왔다. 피땀흘리며 따라왔건만 차려진 것은 굶어죽는 참상뿐이다. 우리 사람들의 피땀이 軍費(군비)에 많이 들어갔지만 그것은 할 수 없다 치고 그보다 두 사람을 위한 일에 더 많이 탕진되었다.
조선에 가면 너무나도 많은 곳에 두 사람과 그 가문을 내세우는 혁명전적지, 사적지, 사적비, 사적관, 연구실, 동상, 만수무강탑 등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 투자된 자금, 그리고 그 건물 유지비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아무리 중요한 기관, 또는 공장기업소라도 부족한 생산 때문에 석탄을 못쓰더라도 자기 단위에 있는 연구실의 온도 보장에는 우선적으로 석탄을 써야 한다. 앞으로도 김정일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에 사적지는 계속 건설해야 그 단위도 무사할 것이다.
외국에서 숱한 쌀이 지원되었지만…
간부들도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생산계획은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굶어죽든 말든 이 사업만은 늦추지 않고 악을 쓰고 한다. 이 사업을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면 그 간부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사정없이 목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위대성과 영도의 현명성, 덕성을 자랑하는 데 투자되는 자금은 막강할 것이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까지 그 자금은 닭모이처럼 뿌려진다.
그리고 두 사람을 위한 만수무강과 안녕을 위한 놀음에는 나라의 재물이 모자라면 하늘의 별도 따서 들이 밀어야 한다. 김일성이 사망한 다음 그가 있던 금수산 의사당이 금수산 기념궁전으로 불리기까지도 무수한 노력과 자금이 흘러들었다. 이 시기 인민들은 기아와 빈궁에서 아우성치고 김정일을 하늘처럼 믿고 구원의 손길을 바라던 때다. 그러나 김정일은 이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덤 건설에 나라의 재물을 물쓰듯 하였다.
평소에 김일성은 말하기를 『세상에는 사랑에 속하는 것이 많다. 부모의 사랑, 처자의 사랑, 애인과의 사랑, 친구지간의 사랑, 동지호상간 사랑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귀중한 사랑이 혁명동지의 사랑이다. 나는 부모의 사랑보다 혁명동지들의 사랑이 더 뜨겁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 사랑이 있기에 혁명할 수 있었다』는 내용의 말을 하였었다.
그리고 자기를 따라 피를 흘린 혁명투사들을 대성산 혁명열사릉에 안치하였다.
이것이 김일성의 솔직한 말이라면 사망후의 상황은 유언과 같은 말이 아닌 것이다. 정말 어제날의 자기 동지들이 누워 있는 곳에 안치하면 그도 편할 것이고 인민들도 더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제날의 동지들을 멀리 하고 애굽의 피라미드보다 더 눈물나는 役事(역사)를 창조하였다. 그는 동지들에게도 벗지 못할 죄를 지어 온 사람이다. 항일 투사들이 그 한 사람을 위하여 귀중한 목숨을 바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공산주의를 하면 우리 조선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리라 믿었기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김일성은 이 사람들을 묘하게 이용하였다.
외국에서 숱한 쌀이 지원되어 들어왔지만 인민들에게는 주는 흉내만 내고 대다수는 군대와 특정한 인물들, 군수생산에 돌려댔다. 죽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는 자기 인민들을 인질로 세계를 기만하고 협잡하는 이들에게는 다시 사람이 될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수백만의 사람들을 기어코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은 역사의 대동란은 이렇게 시작되었으며 기미년과 기사년을 울게 하였다.
金正日이 믿을 건 악마의 무기들뿐
역사에 악명 떨친 히틀러도 타국 인민에게는 승냥이였지만 자기 인민은 최대로 잘 먹이고 日帝(일제)의 도죠도 그랬다. 이들은 자기 민족만은 사랑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자기 인민 앞에, 민족앞에 처음부터 적으로 군림하였다. 지금 조선 사람들은 1996년까지의 조선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몇년 전까지만 하여도 두 사람을 향해 진심으로 만세를 불렀다. 지금도 만세를 부르긴 한다. 그러나 만세를 부르는 북조선 사람들의 입술에는 꿀이 있고 배 속에는 칼이 있다.
군대의 정치사상적 우월성, 도덕적 품성도 매미 허물인지 뱀 껍질인지 모르게 변해져 간다. 오직 김정일이 믿을 것은 악마의 무기들뿐이다. 그는 이 무기들을 자기 아버지보다 더 믿어 왔었다.
그는 군사적 위협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어부지리를 얻으려고 꾀하였으나 하늘은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의 욕심과 심술에는 한계가 없다. 어쨌든 역사가 알지 못한 최고의 최고가 돼보자는 것이 그의 뜻이다. 다시 말하면 한때 시대를 놀라게 했던 나폴레옹이나 히틀러, 스탈린을 초월하는 신화적인 화신으로 역사의 기틀을 깨뜨려 보고도 싶어지며 세계를 놀래키고 한손에 주물러 보고픈 마음도 꿈틀거린다.
지구상의 인간 모두가 자신 앞에 엎드려 절하기도 하고 아첨하며 만세를 부르는 세상, 그보다도 우주 전체가 다 자기를 축으로 하여 돌지 못하는 것이 죽도록 밉기도 하다. 그런 자라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악마의 무기들을 싹 터뜨려 이땅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잿가루 속에 파묻으리라! 어디엔가 묘하게 숨어서 지구가 그 꼴이 되는 것을 구경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다. 최악의 경우 나도 죽으면 그뿐인 걸, 후회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지나친 욕심쟁이를 내버려 둔 적이 없다. 악한들은 다 그렇게 생각했으니 놀랄 것 없다.
우리나라 역사에 궁예라는 외눈짱 왕이 있었는데 궁예는 온 나라가 자신을 따르도록 행패를 부리다 못해 나중에는 자기 아내와 아들들까지 쇠뭉치로 박살냈다 한다. 그 유령이 다시 나타나 21세기로 굴러가는 행복의 마차를 거꾸로 돌리려고 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20세기의 돈키호테라는 칭호밖에 줄 것이 없다.
산돼지 잡으러 갔다가 집돼지 잃는다고 그처럼 배짱 있는 배 속에서 제2의 갑신정변이 폭발하지 않겠는지 걱정된다. 제1의 갑신정변은 실패했다면 어리석은 짐승도 두번 다시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는다는 말과 같이 제2의 갑신정변은 실패한 제1의 갑신정변을 뛰어넘을 것이다.
무덤 속 같은 지옥이 「우리 식」 삶인가
해결책이란 오직, 쇄국정책만 일삼다가 일본놈들에게 뒤져서 먹혔던 쓰라린 과거를 잊지 않으면 충분하다. 지금은 쇄국 정도가 아니라 무덤 속의 지옥같이 숨막히고 답답하다. 이런 세상을 가리켜 우리 식대로 산다고 말하였다. 진짜 우리 인민이 바라는 우리 식이란 무덤 속이 아니라 만리 창공의 꽃구름을 타고 세계를 구경해 보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의 말이 도망친 黃長燁(황장엽) 비서가 북조선을 가리켜 봉건적인 세습제도라고 말씀했다 한다.
그러나 그분은 말씀을 너무 낮추었다. 봉건시대, 일제시대 때에도 사람들이 제 살고픈 데 가서 마음대로 살지 않았는가? 김일성도 그래서 압록강을 버젓이 건너지 않았던가? 그러나 북조선의 지금 현실은 사람들이 국내에서도 제마음대로 살고 싶은 데로 못간다.
특히는 隣邦(인방)인 중국에 건너가는 것도 무서운 국가반역죄로서 엄격히 다스리며 이미 살길 좇아 중국에 건너간 조선사람들의 뒤까지 추적하여 짐승처럼 끌어가고 있다. 이것은 옛날 노예사회가 있었다는데 그때 도망친 노예들을 이런 식으로 끌어가서 능지처참시키든가 아니면 혹독하게 굴었다 한다. 어쩌면 그때 그 세계와 우리 북조선의 현실이 그렇게도 비슷한가? 그러면 내가 살았던 북조선이 봉건사회도 아닌 노예사회란 말인가?
일본놈들도 김일성을 귀순시키기 위해 김일성의 할머니를 만주 광야에 끌고 다녔다 한다. 김일성이 항복하지 않았지만 일본놈들도 그 할머니는 물론 만경대에 있는 그의 친척들을 해치지 않았다. 그러나 북조선의 현실은 가정 내에 한 사람이라도 자그마한 정치범이면 온 가족은 물론하고 친척까지 잘못된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현실이 가혹한 일제 통감정치보다 못하단 말인가? 논하기가 막 싫어진다.
일제시대 때에는 사상범들이 전향하면 살려줬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범이 아무리 잘못을 빌었다 해서 풀려나는 사례가 없다.
황장엽 비서가 탈출하였을 때 이 사실은 우리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하였으며 수많은 의문을 낳게 하였다.
그가 탈출하자 즉시 조직적으로 강연회, 학습이 벌어지고 그를 헐뜯기 위한 깜빠니아가 벌어지고 토론이 작렬했다. 잘못되는 군중의 눈초리를 제때에 수습해야 했을 것이다.
강연에서는 그가 대주주의 아들이었다느니 제 갈 길을 갔을 뿐이라느니, 늙은이가 노망하여 집을 뛰쳐나갔을 뿐이라느니 하면서 쌍소리를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였다.
그리고 이 늙은이의 불쌍한 먼 칙척들까지 찾아내어 체포해가는 소동이 벌어졌다. 우리가 알기에는 그분은 가족을 조국에 남겨놓은 채 망명하시었다 한다. 이분을 역적으로 몰기에는 너무나도 해명할 것이 많다.
이분의 망명은 우리처럼 너무 배고파 조국을 탈출한 것과 사정이 다르다. 그는 김정일에게 붙어 있어도 배부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북조선에서 말하듯이 그 누가 유혹하는 달러에 매혹된 의용군이란 말인가? 아니다. 이분에게는 달러보다 더 귀중한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고 자기 명예가 있었다. 아니 그보다도 자기 자신과 가족을 바쳐서라도 구원해야 할 신음하는 북조선의 전체 아들 딸들이 있었다. 그분의 애국충성은 애국열사 이준과 더불어 永生(영생)할 것이다.
그 이후에 당 중앙위원회 농업비서 서관희가 간첩혐의로 체포되었다. 강연회에서는 서가놈의 죄상에 대하여 고발하였다. 내용인즉 서가놈은 이미 죽은 평양시 인민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만금의 지시를 받아가면서 김일성의 주체농법을 음으로 양으로 모해하며 나라의 식량 위기를 촉발시켰다는 것이다.
간첩 일당 서가는 갖은 악형 끝에 총살하였으며 이미 죽은 김만금은 애국열사릉에 안치되어 있었는데 그의 유골을 파내서 나무에 걸어놓고 총살하였다. 정말 그들이 간첩이었는지는 누구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역사의 사실들이 이런 흑막들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 시기 먹을 것을 둘러싼 인민들의 원성은 구천에 사무쳤다. 이들의 눈길을 딴 데로 산란시키고 미국과 한국을 저주하게 하자면 충격적인 사건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자면 누구를 희생시킬 것인가로, 가장 적중한 제목이 쌀독을 맡아보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서관희 비서를 간첩으로 몰아붙여 입을 봉한 채 총살해 버리면 죽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억울함을 말하겠는가? 그러면 배고픈 인민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 정말 농업 최고지도부에 저런 놈이 앉아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때까지 이렇게 배가 고팠구나. 김일성의 주체 농법도 그처럼 옳았는데 다 저놈들 때문이었구나. 정말 미국놈과 남조선 괴뢰들이 괘씸하구나. 저놈들을 들어냈으니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배부른 날이 오지 않을까?』
황장엽 비서도 제때에 피했으니 망정이지 비참한 간부들은 다 제물이 될 수 있는 처지이다.
개혁개방의 눈치를 좀 보였다 하여 그 이후 농업위원회 위원장, 광업위원회 위원장, 전력공업부장이 연달아 잘못되었다. 그저 간부나 하면서 먹고 살겠으면 어리석게 놀지 말라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나는 자유로운 중국에 왔다.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개혁개방은 지상천국으로 가는 꽃대문이라는 것을 나는 난생 처음 보았다.
사회주의는 지키면 죽음, 버리면 승리
나는 조선에 있을 때 중국이 잘산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의심이 많았다. 정말 백 번 듣기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이 생각났다. 내가 중국을 의심한 것은 강연회 때에 늘 중국을 헐뜯는 소리를 들었으며 사회주의를 버린 나라들의 참상을 자꾸 선전받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지키면 승리요, 버리면 죽음이라 했다. 그러나 여기 와 보니 사회주의는 지키면 죽음이요, 버리면 승리라고 인정되는 데는 어쩔 수 없다.
내가 가장 놀란 것은 13억이나 되는 중국 사람들이 다 잘 먹고 산다는 사실이다. 사회주의적 방법으로는 도저히 이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중국 사람들은 뼈저리게 말하고 있다. 우리 북조선은 중국의 한개 省(성)보다 더 적은 인구를 가지고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좋다는 사회주의 때문에 굶어죽고 있으니 부끄럽기도 하고 분해서 견딜 수 없다.
중국의 어디를 가보나 사람들이 좀 묵은 음식은 비닐 중채기(봉지)에 넣어서 쓰레기통에 버린다. 음식을 버린다는 것도 썩 잘된 일은 아니지만 나는 이런 것을 목격하면서 저 음식을 버리지 말고 한짐 지 고 가서 굶주림에 먹는 소리만 자꾸 하는 우리 사람들에게 막 주고 싶다. 그들이 배불러 웃는 얼굴을 단 한번이라도 보고 싶다. 아마 김정일이 백성처럼 굶으면 제일 먼저 사회주의를 버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누구한테도 뒤지고 싶지 않다는 향락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그의 신념이기 전에 오직 혼자의 향락만을 만끽할 수 있는 은폐된 대명사이다.
중국은 매 사람이 다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어 착실하게 일하다 자기가 가지기 때문에 현재는 돈 부족이 좀 있기는 하지만 먹는 문제는 벌써 공산주의 사회가 다 되었다. 정말 우리가 그처럼 사랑했던 공산주의 사회로 가는 길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개혁개방이라고 당당히 말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좀더 현명하게 미리 이런 의견을 내놓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그러면 그 이후 수많은 비극들이 극복될 수 있었을 것이다.
등소평 동지는 비록 곁에 없으나 중화 인민을 위하여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 불멸의 공헌을 하셨다. 개혁개방을 할 것이라면 차라리 좀더 일찍이 류소기 동지 때에 시작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더 멀리 國共(국공)합작 때에 이런 기회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그러면 대만을 뛰어넘는 발전모습이 全(전) 중국에 벌써 펼쳐졌을 것이 아닌가? 제일 먼저 이것을 내다본 분은 유고 공화국의 티토 동지이다. 그는 이 길에서 스탈린하고도 맞섰다.
김일성은 그때에 수정주의 두목 티토를 향해 별의별 폭설을 다하였다. 정말 티토 동지는 마르크스나 레닌도 못가진 것을 타고난 분이 아닌지 모르겠다. 스탈린 역시 그렇다. 아무래도 자본주의를 할 바엔 흐루시초프 때 했어야 한다.
그보다도 먼저 멘케비치당이 소련을 이끌었더라면 재기를 앞당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파쇼 독일에 멘케비치당이 이길 수 있었는지는 수수께끼이다. 왜냐하면 공산당은 물질적 富(부)를 낳는 데서는 망꼴이지만 사람들을 불러일으키는 데서는 어느 당, 어느 주의도 대신할 수 없는 세력을 가지고 있다.
혹시 공산주의라는 것이 존재했기에 못사는 사람들을 천시하지 말고 인권을 중시하는 자본주의가 되어야겠다고 잘사는 층들이 충격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미리 못사는 사람들을 알아주는 자본주의가 있었더라면 마르크스가 아무리 선전하여도, 레닌이 아무리 유혹을 하여도 귀담아 듣는 사람들이 없었을 것이며 애당초 마르크스나 레닌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일성은 중국에 대하여 말하기를 잠자는 사자라고 하였으며 중국과의 관계는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 사자는 수천년 동안 잠 속에 파묻혀 수많은 모기떼들의 시달림을 받아왔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거대한 사자는 늘 잠만 잔 것이 아니다. 등소평이 수천년의 해묵은 잠을 깨뜨려 놓았으며 그의 넋은 늠름한 사자의 腦髓(뇌수) 속에 깊숙이 뿌리박았다. 강택민이 사자의 눈이 되고 주용기가 이빨이 되어 달리는 이 맹수는 20세기의 마지막 문턱을 날아넘고 있다.
한국 발전에 긍지와 자부심 가져
나는 중국에 와서 남조선을 대한민국이라고 부른다는 것과 한국이 중국보다 더 잘 살고 발전했다는 말을 듣고 한동안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 김일성은 늘 말하기를 북조선과 남조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도대체 이것이 무슨 변이란 말인가? 늘 김일성은 미국놈과 그 앞잡이들에게 짓밟혀 헐벗고 굶주리는 남녘 동포들을 하루 빨리 해방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북조선에 있을 때 남조선 사람들이 자동차를 잘 만들며 전자도 발전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들었지만 이것은 반동들이 퍼뜨리는 유언비어이며 그런 것이 남조선에 있다면 그것은 미국놈, 일본놈의 것이거나 그 빵부스러기에 불과할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다. 물론 상층부는 알았을 것이며 특히 김일성, 김정일은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나는 한국이 잘 산다는 데 대하여 이제와서는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도 내 민족, 내 핏줄이라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민족의 넋이 다 죽은 줄만 알아온 나에게는 남쪽에라도 그 귀중한 것이 보석처럼 우뚝 솟아 있다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우리 민족의 창창한 내일을 꿈속에서나 그려 보고 있다.
한국 바람 속에서 느낀 열등감과 수치
결국 우리 겨레의 심장은 남쪽에 있으며 그 뜨거운 피는 북쪽에도 흘러 죽은 피를 몰아내고 새 삶을 알리려 한다는 것,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진정 평화를 바라고 통일을 바라며 북쪽 사람들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데 대하여 알았을 때 뜨거운 것을 삼키었다. 그리고 이산가족을 찾자고 애를 쓰는 것이 그들이며 왜 자유내왕을 못하고 있는가 하는 데 대하여 알 수 있었다. 정말 동포의 피는 진하며 속일 수 없는 것 같다.
나는 조선에 있을 때 남조선에서 국가보안법을 가지고 악랄하게 반대하기 때문에 이산가족 문제도 파산되고 있으며 자유내왕도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교양받았다. 그리고 왜 미국 군대가 한국에 있어야 하는가? 하는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이 없으면 전쟁이 열두 번 일어나고도 남음이 있었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적에 미국은 북에서 요란스럽게 말하는 외세가 아니다. 오히려 1950년 6월25일 외세를 등에 업고 남쪽을 물리친 북이 외세란 말을 할 염치가 없다. 북에서 부르짖는 외세란 침략전쟁의 구호이다. 거짓말만 일삼아 온 그들은 마지막까지 거짓말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이해가 부족하다. 그저 배운 것이 있다면 美帝(미제)는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피를 먹고 자랐으며 조선 민족을 둘로 갈라놓고 수많은 조선 사람을 학살한 두 발 가진 승냥이라고 유치원 시절부터 교육받았다. 북조선의 구호는 「조선 인민의 철천지 원수 미제 침략자들에게 죽음을 주자!」이다.
돌이켜보면 미국은 지난 시기에는 잘못한 것이 많지만 현 시기에 와서는 사고관점, 사고방식에서 세계 1등 가는 인권문명국가가 아니겠는가 하는 점이다. 김일성은 늘 말하기를 『승냥이가 양으로 변할 수 없듯이 美제국주의의 침략적 약탈적 본성은 절대로 변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렇게만 교양받아온 나에게 미국을 이해하기에는 상당한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약동하는 중국의 숨결을 느끼면서 그처럼 완고하였던 북조선식 사고관점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사실과 정의의 힘이 여기에 있다.
여기 중국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늘 말하기를 『너희들도 우물 안의 개구리이다. 지금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느냐? 너희들은 어버이 수령님만 알지? 빨리 김정일이 죽어야 한다. 지금 한국이 얼마나 발전했으며 미국이 얼마나 문명한지 아느냐?』고 제법 선배처럼 호통친다.
그리고 우리를 불쌍히 여겨 밥도 주고 옷도 주면서도 미개하고 깨지 못한 데서 왔다는 표정을 짓고 계몽시켜주려 애를 쓴다. 그러다가도 한국 사람이라면 오금을 못쓰고 하늘의 신선처럼 숭배한다. 한국에 돈벌이 가지 못해 야단이며 한국의 이모저모를 닮으려고 무작정 뛰어다닌다, 심지어 여자들은 한국 남자한테 시집 가는 것을 최대의 숙망으로까지 원하고 있다.
나는 한국 바람의 이 소용돌이 속에서 한동안 어안이 벙벙하였으며 열등감과 수치를 많이 느꼈다. 그러나 여기 사람들의 오만한 눈길을 받으면서도 일만 하면 배불리 먹으니 무작정 좋았다. 잘 먹을 때마다 고향 생각, 아이들 생각 때문에 그 맛있는 이밥도 모래알 씹기만 못하다. 당장 먹을 것을 지고 북조선에 건너가야겠다는 솟구치는 격정을 억누르느라면 힘이 든다.
여기 중국 사람들은 북조선 사람들을 일꾼으로 쓸 적에 잘 먹이고 잘 입히지만 돈이 부족하기에 공짜로 (돈을) 주기는 꺼려한다. 나는 돈을 벌어서 가족을 살리려는 욕망을 가지고 위험을 무릅쓰고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도 돈벌기 힘든 때에 내가 아무리 일해도 공짜를 바라보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였다. 차라리 두만강을 건너가서 온 가족을 데려올 수는 없겠는가를 모색하고 또 모색하였다. 그러나 우리집은 국경에서부터 너무나 먼 거리에 있기에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처음에 왜 데려오지 못했는가를 후회하였다. 그러나 나도 머나먼 곳에서 두만강을 넘을 때까지 세 번이나 死線(사선)의 고비를 넘었다. 나는 경비대원들에게 추격당하여 죽기살기로 도망친 적도 있었는데 숨이 턱에 닿은 그 순간에 「내가 가족을 데려오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구나」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눈물이 우리 아이를 살릴 수 있다면…』
그러나 지금은 그래도 그때에 데려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하는, 하지 말아야 할 꿈을 억지로 꾸고 있다. 정말 우리 집이 국경지대 가까운 곳에 없는 것이 원한스럽다.
내가 왜 국경에 이사와서 살지 못했는가? 그러나 조선에서 이사한다는 것은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특히 국경지대에로의 이사는 더욱 힘들다. 이제는 이 겨울에 아이는 굶어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남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다. 눈물이 우리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자꾸만 아이의 유령이 나타나 나를 못살게 군다. 단 한 명이라도 살아남지 않을까 생각되어 이 글을 쓰는 것이 그애에게 죄를 들씌우는 것 같아 구체적인 글쓰기를 아직도 피하기만 한다.
또 어찌 생각하면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고 제 무덤을 파는 천하의 바보 행위로까지 인정된다. 집을 떠나올 때 생각이 문득 난다. 처음부터 떠날 생각을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올해는 영락없이 우리 가족이 죽을 차례가 분명하였다. 사람이란 죽음 앞에서는 공포와 함께 증오가 동반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협동농장의 소를 잡아 먹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않는가?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도끼를 시퍼렇게 갈아 배낭 속에 꿍쳐넣고 소잡이에 나섰다.
한참 가다가 생각나는 것이 내가 이젠 꿈에도 생각 못한 소도적이란 말인가? 하고 반문되어 저도 모르게 어처구니가 없어져 씩 웃었다. 그러나 양심도 이런 경우의 굶주림 앞에서는 머리를 숙인다. 그러나 처음 하는 도적질은 쉽지 않았으며 늘 따라다니는 것이 공포심이었다. 너무 배고파서 소를 잡아먹고 총살당한 사람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총살당한 죽은 혼들이 어른거리고 나를 자기들 곁으로 부르는 것 같고 했다.
그러나 어차피 나 역시 그중의 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머저리처럼 굶어죽느니보다 차라리 먹고 죽으면 한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북조선에서의 도적질은 서로가 악을 가지고 자기 물건을 지키기에 정찰병이 작전문건을 빼내는 것보다 더 힘들다. 도적질도 벌써 남들이 다 해먹고 버린 찌꺼기에 불과하였다.
강냉이 5㎏을 배낭에 넣고 고향을 떠나다
나는 고쳐 생각하였다. 여기서 우물쭈물 하다가는 무리죽음을 피할 길 없다. 무슨 비상수단이 필요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중국에 갔다 오는 것 외에 더 신통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두만강을 넘자, 가서 어떤 수를 써서라도 시급히 돈을 벌어 가져오면 위기는 타개할 수 있지 않은가? 중국이 잘 먹는다는데 정말인가? 차라리 내 가족을 다 데리고 건너갈까? 이것은 너무한 일 같기도 하고 어딘가 너무 위험한 장난같다. 나 혼자 모험해야 한다.
나는 흥분된 마음을 다잡고 최후의 강냉이 5㎏을 배낭에 품은 채 기약할 수 없는 발길을 내딛기 시작하였다. 보위부 초소가 나타나면 멀리 돌기도 하고 불의에 검색을 당하면 도망도 치면서 히스테리와 같은 정신으로 당도한 것이 희망의 강, 원한의 강 두만강이었다. 그러나 나는 돌아갈 길이 이렇게 모질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나의 아이들이 굶어죽지만 않을 수 있다면 일생 동안 이산가족이 되어도 행복할 것이다.
나는 모순에만 빠져 허우적거리고 싶지 않았다.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은 똑똑히 차려야겠다. 조용히 생각해보니 해는 남향볕이 따사롭다. 따라서 사람들은 집을 지어도 남쪽을 향하게 했다. 음지가 서린 북조선에서 양지인 남조선으로의 방향전환은 대체로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는 외롭지 말아야 한다. 나란 사람에게도 저멀리 한가닥 햇볕이 그립다. 나에게도 조국이 있다. 그것은 오매에도 바라마지 않는 대한민국이란 인자한 어머니가 두 팔을 벌리고 나를 부르고 있다.
따사로운 이 어머니의 품은 못난 자식을 차별하지 않으리라. 막 달려가 그 품에 안겨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었던 설움과 원한으로 얼룩진 피눈물을 한꺼번에 쏟아붓고 응석을 부리고 싶다. 나는 여기서 나에게 옛말을 해달라고 조르는 중국의 귀여운 아이들에게 못이겨 옛말이 아닌 옛말을 하기도 했다.
朝가와 韓가의 슬픈 이야기
『옛날에 조선이라는 아버지와 한국이라는 어머니가 살았다. 이들에게는 자식들이 많았다. 어머니는 마음씨가 비단같았으나 아버지는 심술사나운 욕심쟁이였단다. 朝(조)가는 黨(당)이라는 후에미(후처)를 데리고 땅과 재물을 혼자 가지고 자식들을 부려 먹으면서 잘 살기 위해서 韓(한)아주머니를 죽이자고 덤벼들었다. 그러나 이웃에 사는 洋(양)아저씨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 그래서 朝(조가)는 당이라는 후에미를 데리고 일부 자식을 거느리고 북이라는 윗마을에서 살고 韓어머니는 洋아저씨와 결혼하여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남이라는 아랫마을에서 살았지.
이렇게 어언 50년이 흘렀다. 韓어머니는 북에 있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朝가에게 졸랐지. 그랬더니 朝가의 말이 「나는 너를 죽이고 너의 땅과 재물을 가지기 전에는 아이들끼리 만나게 할 수 없어」 그러면 북에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살았겠니? 아버지가 심술궂고 후에미가 어찌도 못된지 아이들은 울타리에 떡 갇혀서 무서운 몽둥이를 맞으면서 죽도록 일만 했지. 그리고는 제대로 먹을 것을 주지 않아 하나하나 쓰러지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보다 못해 洋아저씨와 마을사람들이 말을 했지. 「이보게 朝서방. 이 洋아저씨는 물러나겠으니 아이들을 봐서라도 저 못된 후에미를 내보내고 다시 韓아주머니와 결혼하지 않겠나?」 그랬더니 朝가의 말이 「네 놈은 남의 일에 간섭 마라. 정 그러면 네놈도 죽여 버릴 테다. 당장 나가라. 이놈아 南(남)마을의 땅과 재물은 조상 대대로 다 내것인 즉 그 韓가년이 앙탈을 부리면 우선 그년부터 죽여버려야겠다. 그리고 동네것들은 왜 시끄럽게 구는가? 너희들도 재미없어」, 그러면서 시퍼런 도끼와 칼을 양손에 쥐고 우뚝 서서 사람들을 무섭게 흘겨보았단다.
洋아저씨는 朝가의 앙심을 너무나 잘 알기에 韓아주머니를 도와서 그 집 아이들을 잘 돌봐 주었지. 韓아주머니와 아이들은 떡을 먹을 때나 사탕과자를 먹을 때에는 늘 북마을에 있는 제 형제들 생각을 했단다. 전번에도 먹을 것을 많이 싸서 朝가에게 보냈더니 朝가는 자기만 냉큼 먹고 아이들에게는 빛깔도 보이지 않았단다. 그래서 북마을 아이들은 하나하나 엄마를 부르면서 죽기 시작하였단다. 韓아주머니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하였다. 그리하여 하늘에 대고 빌고 또 빌었지. 이것을 본 온 동네 사람들이 가만 있을 수 없었지.
그들은 손에 도끼, 낫이랑 들고 朝가놈한테 달려갔지? 그 앞장에는 洋아저씨가 서계셨단다. 분노한 사람들은 도끼를 들고 대드는 朝가와 칼을 물고 치마바람을 일으키는 후에미를 꽁꽁 묶어서 무섭게 파도치는 바다물에 처넣었다. 갈매기는 너무 좋아서 그 위에서 오래도록 춤추었고, 그러면서도 죽은 아이들이 불쌍해서 울음을 울었다 한다』
史上 최대의 죄악
비록 철부지 아이들에게 해준 지나가는 옛말이었지만 똑똑한 그애들이 누가 나쁘고 누가 불쌍한가는 그처럼 깨끗한 눈동자로 그려낼 적에 아무리 세상이 어지럽고 복잡할지라도 저 눈동자 앞에서만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함을 절감했다.
나는 중국의 귀염둥이들이 쓰러진 우리 아이들의 몫까지 합쳐서 저 하늘 끝까지 행복하기를 입술을 깨물고 축복하였다. 나는 중국에서 살면서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있다. 그것은 사방에서 북조선 탈출자들을 체포해 가는 소동이다. 그 이유는 북조선 탈출자는 난민이 아니고 국가를 반역한 죄인이기 때문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난민이란 전쟁하는 나라에서의 피난민으로서 응당 국가적으로 보호할 이유가 있으나 북조선 탈출자는 민족반역자로 규정하고 체포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노예주에게서 탈출한 사람을 다시 노예주에게 붙잡아 주는 행위이며 히틀러 수용소에서 탈출한 사람을 다시 파시스트들에게 넘겨주는 사상 최대의 죄악이다. 21세기에 살 궁리를 하고 21세기의 물과 공기를 마셔보겠다는 현대인들로서 형식적인 법의 틀만을 가지고 운운한다는 것은 물에 빠져 겨우 나온 아이에게 너에겐 물이 좋으니 물에서 살라고 던져버리는 野獸(야수)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지금 북조선은 탈출자들을 잡기 위하여 수많은 밀정들을 풀어놓았으며 갖은 악랄한 짓을 다하고 있다. 선량한 중국의 벗들은 여기에 맞서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해 주고 있다. 앞으로 이런 벗들이 더 많아지는 것도 찬란한 미래의 中朝(중조)친선에 금문자로 길이 빛날 것이다.
한국에도 자연히 말할 것이 있다. 북조선 탈출자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평화통일을 외면하는 것이다. 북조선 탈출자 문제가 여러 가지로 시끄럽다고 못본 척하고 이해관계만 앞세워 저울질한다면 그처럼 중대한 평화통일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우리는 외롭지 않다
탈출자 문제를 바로 잡기 전에는 이 세상 인권 역사에 제일 가증스러운 치욕을 남길 수 있다. 그만큼 북조선 탈출자 문제는 어느 한 나라, 어느 한 지역을 뛰어 넘어 세계에서 제일 심각한 문제로 응당 되었어야 한다. 이것을 해결 못한다면 그 어떤 인도주의자도 그 어떤 민족주의자나 평화주의자도 僞善(위선)이라는 두 글자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한국정부는 김정일이 무엇이라고 소리치든 간에 놀라지 말고 탈출자 문제의 주인이 되어 국제적 문제로 승화시키고 탈출자들이 마음놓고 어느 한 지역에 모여 안심하고 자기의 성실한 노동으로 생존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지금 김정일은 여기 있는 10만 탈출자들의 단결을 제일 무서워하고 있다. 지금 탈출자들은 뿔뿔이 쥐구멍에 은폐하여 붙잡혀 가는 날만 세면서 개나 돼지처럼 각개 격파당하고 있다.
지금 우리 탈출자들 하나하나는 어찌 보면 한갖 개미들에 불과하다. 그러나 개미가 둑을 무너뜨린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생각지 않은 것들이 일을 친다는 말이다. 제아무리 보위부 밀정들이 날뛰어도 이 개미들을 이끄는 전위조직이 탄생되고 이 성스러운 깃발 아래 10만이 뭉친다면 조국통일의 강력한 제2전선이 구축될 것이며 이것은 짓밟혀 신음하는 2천만 우리 동포들에게 희망의 불씨, 자유의 해방을 비쳐줄 것이며 김정일은 제 집안 싸움에 망신하여 핵무기만 안고 울음을 터뜨릴 것이다.
우리는 외롭지 않다. 우리에게는 희망의 등대인 한국이 있으며 우리를 지지하는 국제자유 역량이 집결되어 있다. 우리가 싸워 잃을 것은 군사분계선이고 얻을 것은 조국통일이다.
역사의 그날은 바야흐로 동터오고 있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여 온 삼천리 금수강산에 그처럼 보고싶던 무궁화는 만발하고야 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