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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연구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强性 정치인의 상징, ‘이재명 지킴이’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sj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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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영계로 정치 입문해 親노무현-친문재인-친이재명까지 섭렵
⊙ 이재명 책 읽고 “대통령이 될 실력과 자격이 있다”며 흐느껴
⊙ 22대 총선 때 이재명 私薦으로 불리는 ‘친명횡재 비명횡사’ 옹호하기도
⊙ 야당 대표 사법 리스크 방어 앞장서는 인물이 법사위원장 맡는 모순
⊙ “정청래는 운동권 특권 정치, 개딸 전체주의, 이재명 사당화의 상징”(한동훈 前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사진=조선DB
  22대 국회가 원 구성을 두고 여야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범야권만 참여하는 ‘반쪽 개원’을 했다. 그동안의 국회 관례대로라면 국회의장은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법제사법위원장(법사위원장)은 제2당인 국민의힘이, 운영위원장 또한 여당인 국민의힘이 맡아야 한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관례상 국민의힘 몫인 법사위원장과 운영위원장까지 차지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국민의힘은 법사위만이라도 내놓으라고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결국 과반수 의석이라는 ‘숫자의 힘’을 이용해 11개 주요 상임위원장을 모두 차지했다.
 
  상임위원장은 통상 3선이 맡는 만큼 법사위원장에 애초 법조인 출신 3선 의원들이 거론됐지만, 민주당은 4선 정청래 의원을 법사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민주당 내 손꼽히는 파이터(fighter)로 막말 논란에도 수차례 휩싸였던 정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여당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거침없는 언행, 이어지는 막말 논란
 
  정청래 의원에 대한 이미지는 대체로 강성(强性), 막말 논란, 운동권 등 부정적인 것이 많다. 특히 22대 총선을 앞두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개딸 전체주의, 운동권의 특권 정치, 이재명 개인 사당으로 변질된 안타까운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을 상징하는 의원이 정청래 의원”이라고 직접 저격하면서 보수 진영에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더 커졌다. 법사위원장이라는 국회 핵심 요직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 의원의 이력은 민주당 운동권 출신 정치인, 이른바 86 세대의 전형적인 이력이다. 1965년생, 85학번인 정 의원은 건국대 재학 시절 전국대학생협의회(전대협) 산하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에서 활동했고 1989년 주한 미국 대사관저 점거 및 방화 미수 사건을 주도했다. 해당 사건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서울 마포구에서 학원을 운영하며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에 가입해 활동하고 인터넷 정당 창당을 준비하기도 했던 정 의원은 대선 후엔 정동영 의원을 지지하는 모임에서 활동했다. 정 의원은 2003년 정치개혁 관련 시민단체를 발족했는데, 이 단체명이 ‘국민의힘’이어서 현재 여당인 국민의힘 창당 당시 국민의힘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4년 1월 정동영 의원이 열린우리당 의장(당대표)이 된 후 열린우리당 청년대표 중앙위원직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들였다.
 
  2004년 4월 17대 총선에서 서울 마포을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한 정 의원은 44.8%의 득표율로 한나라당 강용석 후보를 꺾고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열린우리당에는 유시민·김두관 등이 주도하는 친노 신주류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 김근태계인 국민정치연구회(국정연) 등이 계파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정청래 의원은 2005년 또 다른 당내 조직 국민참여연대를 만들고 대변인을 맡았다.
 
  명계남·정청래 등 노사모 초기 멤버들이 주도해 원조 친노 조직으로 인식된 국참연은 유시민 등 친노 신주류와 각을 세웠다. 당시 정 의원은 유시민 의원을 여러 차례 강하게 비판했고 막말 논란에도 시달렸다. 유 의원은 당시 대중적인 인기를 토대로 노사모를 비롯해 친노 세력의 핵심으로 떠올랐는데, 유 의원이 중진인 정동영·문희상·김근태 등을 비난하며 당내 분열을 일으킨다는 게 정 의원의 주장이었다. 초기 노사모 활동을 주도했던 ‘원조 친노’ 정 의원이 노사모 및 당내 주류 친노와 대립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때 정 의원이 ‘친노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뛰어난 언변과 당내 설전 등으로 초선 의원 시절 강한 존재감을 보였던 정 의원은 2007년 통합민주당이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데다 자신도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강용석 후보에 패배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는 것으로 보였다. 다만 18대 총선은 한나라당이 서울 48석 중 40석을 석권할 정도로 한나라당 바람이 강하게 불었던 선거였기 때문에 낙선의 충격은 크지 않았고 정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국회 재입성에 성공한다.
 
 
  18대 낙선, 19대 재입성, 20대 컷오프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정 의원은 최고위원에 당선된다. 당대표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선출됐는데, 비문 세력이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며 친문과 비문의 갈등이 이어졌다. 비문계 당직자들이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사퇴하지 않을 경우 자신들이 당직을 사퇴하겠다는 뜻까지 밝히며 압박에 나서자 정 의원은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사퇴할 것처럼 공갈치는 것이 더 문제”라는 이른바 ‘공갈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결국 정 의원은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돼 당내 분열을 심화시켰다는 이유로 당직자격정지 1년이라는 중징계를 받게 된다. 정 의원은 문재인 대표를 끝까지 지키려다 징계를 당하고 2016년 총선 때 공천 배제(컷오프)까지 당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재명 지킴이 자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표가 정청래 최고위원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조선DB
  과거 ‘문재인 지킴이’를 자처했던 정 의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권 주자로 떠오르는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이재명 지킴이’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는 2021년 페이스북에 쓴 이재명 자서전 《인간 이재명》 독서 후기에서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인간 이재명과 심리적 일체감을 느끼며 아니 흐느끼며 읽었다”며 “이재명은 대통령이 될 실력과 자격이 있다”고 했다. 이후 친명계를 자처하며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고, 대선 패배 후 열린 2022년 전당대회에서는 최고위원에 출마해 “대선 때 이재명 대통령, 정청래 당대표를 꿈꿨다”며 친명계에 호소해 득표율 1위로 수석최고위원이 됐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방어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의원이기도 하다. 2023년 9월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정 의원은 “같은 당 의원들이 당대표를 팔아먹었다”고 분개하며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보복을 암시하기도 했다. 이 대표가 화합을 강조하면서 정 의원도 막말이나 보복을 자제했지만, 이후에도 정 의원은 이재명 대표를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세간의 비판을 받는 사안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으로 이 대표를 옹호하면서 여당은 물론 야당 내부에서도 그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22대 총선 전 민주당에서 친명계는 일찌감치 공천을 받고 비명계는 줄줄이 낙천하는 이른바 ‘친명횡재 비명횡사’ 논란이 나오자 ‘이재명 대표를 지키는 사람들을 공천하는 게 마땅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지난 2월 28일 최고위원회의 발언이다.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으로 깃발과 상징이 계승됐다. 노무현-문재인을 지켰던 사람들이 지금은 이재명을 지켜주자고 하는 것이다. 4년 전 총선에서 친문 아닌 후보가 있었나? 다 문재인 이름 걸고 후보 되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지 않았나? 그런데 왜 이재명은 안 되나? (논란은) 시대의 흐름에 대한 몰이해고 역행이다.”
 
  실제 본인 소개도 ‘이재명 지킴이’다. 22대 총선을 앞둔 지난 2월 민주당은 전국 순회 토크콘서트 ‘사람과 미래’를 가졌는데, 정청래 의원은 행사 모두발언을 할 때 “이재명 지킴이 정청래입니다”라는 인사로 시작했다.
 
 
  법사위원장에 당대표 지킴이?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방어에 여념이 없는 더불어민주당이 법사위원장에 4선 강성 정청래 의원을 낙점한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애초 거론됐던 법조인 출신 의원들보다 더 강력한 ‘이재명 방어막’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정치권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정 의원은 자신이 법사위원장에 선출된 이유에 대해 한 유튜브 채널에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역풍에 두려워하지 않는 강심장이 필요해서”라고 말했다. 법사위원장은 제2당이 맡는 것이 관례라는 여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페이스북에 “관례는 법적 용어도 아니고 반드시 지켜야 할 강제성과 구속력도 없다. 법으로 관례를 깰 수는 있어도 관례로 법을 깰 수는 없다”고 밝혔다. 형사 피고인이 당대표 연임과 대권까지 바라보는 현실은 얼마나 법질서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법사위원장 제2당이 맡는 관례는 언제부터
 
  법사위는 모든 법안을 본회의에 오르기 전 검토하는 체계·자구심사권을 갖는다. 노태우·김영삼 정부 때는 여당과 원내 제1당이 일치했고, 여당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독식했다. 그러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 치러진 2000년 총선에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과 자유민주연합을 합친 의석수(132석)가 야당인 한나라당(133석)보다 적었고, 여소야대 국회가 탄생했다. 이때 여야 합의에 의해 국회의장은 새천년민주당이, 한나라당이 법사위원장을 가져갔다. 처음으로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 당적을 분리한 것으로, “여야가 대화와 타협으로 국회를 운영해야 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 당적을 분리하는 데 여야가 합의를 도출하면서 17대 국회부터 국회의장은 원내 1당이, 법사위원장은 원내 2당이 맡는 관례가 생겼다. 그러나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차지하면서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독식해 관례를 깼다. 22대 국회에서도 제1당을 차지한 민주당은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뿐만 아니라 계속 여당이 맡아왔던 운영위원장까지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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