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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삼전도의 굴욕’은 누가 불러들였나?

글 : 배진영  월간조선 편집장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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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36년 4월 11일, 청(淸)나라의 홍타이지(태종)는 심양성의 천단(天壇)에서 황제 즉위식을 올립니다. 이 자리에는 조선 사신 나덕헌과 이확도 있었습니다. 숭명(崇明) 의식이 뼛속에 새겨진 이들은 ‘황제’ 홍타이지에게 절하기를 거부하다가 실컷 두들겨 맞습니다.
 
  홍타이지가 이들을 통해 보낸 국서(國書)는 친명반청(親明反淸) 노선을 고집하고 있는 조선에 대한 마지막 경고였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의 신하들을 향해 “글은 읽었지만 백성과 나라를 위해 경륜을 발휘할 줄은 모르면서 한갓 허언(虛言)만 일삼는 소인배들”이라고 비아냥거리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인조는 이렇게 큰소리칩니다.
 
  “군사도, 재물도 없는 우리는 오로지 대의(大義)와 하늘만을 믿는다.”
 

  여기서 ‘대의’란 임진왜란 때 우리를 도와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청나라와의 전쟁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최명길을 향해 윤집은 이렇게 극언합니다.
 
  “대저 최명길은… 전하의 죄인일 뿐만 아니라 진회(秦檜)의 죄인입니다.”
 
  금(金)나라와의 화의를 진행했다 하여 만고의 역적, 간신으로 비난받는 남송(南宋)의 진회만도 못한 자라는 비난이었습니다.
 
 
  삼전도의 치욕
 
  12월 9일 압록강을 건넌 청의 철기(鐵騎)는 12월 14일 지금의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도달합니다. 최명길이 목숨을 걸고 청군 진영으로 달려가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인조와 신하들은 간신히 남한산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인조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에 빠집니다. 남한산성으로 달려오던 지방의 근왕병(勤王兵)은 청군에게 속속 패하고, 식량은 바닥을 드러냅니다. 급기야는 장병들이 파업을 벌이는 상황까지 벌어집니다. 청 태종은 이듬해 1월 17일 인조에게 국서를 보냅니다.
 
  “지금 그대가 살고 싶다면 빨리 성에서 나와 귀순하고, 싸우고 싶다면 또한 속히 한번 겨뤄보자. 서로 싸우다 보면 하늘이 처분을 내릴 것이다.”
 
  궁지에 몰린 인조는 결국 출성(出城), 즉 항복을 결심합니다. 믿기지 않는 것은 이 와중에도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김수현, 황일호 등은 아래와 같은 내용의 국서를 청에 보내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제 노약자들을 먼저 죽이고, 남은 양식을 모두 태워버린 뒤 날랜 장정을 뽑아 그대들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자 한다. 남한산성이야 완전히 망할지 모르지만, 남은 사람들은 들고일어나 자식은 아비의 원수를 갚고, 아우는 형의 원수를 갚고, 신하는 임금의 원수를 갚을 것이다. 그대들은 부질없이 만대의 원한만 맺게 될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웅변(雄辯)이지만, 실상은 청 태종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소인배들의 허언’에 불과했습니다. 최명길 등은 인조에게 이렇게 호소합니다.
 
  “성을 나가면 보전되거나 위태롭게 될 가능성이 반반이지만, 나가지 않으면 열이면 열, 망하고야 말 것입니다. 전하의 뜻이 만약 정해지면 이로부터 회복의 기틀이 마련될지 어찌 알겠습니까?”
 
  마침내 인조는 1월 30일 성문을 나와 삼전도(三田渡)에서 청 태종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예(禮)를 올리고 항복합니다. 이것이 바로 ‘삼전도의 굴욕’입니다.
 
  청 태종이 베푼 잔치가 끝난 후 황급히 궁궐로 돌아가는 인조를 바라보면서, 청군의 포로가 된 백성들은 통곡하며 절규합니다.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시나이까?”
 
  수십만 명의 백성들이 청나라에 노예로 끌려가는 참극 속에서 그나마 종사(宗社)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최명길 등 주화파(主和派)의 애끓는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오랑캐에게 항복한 임금을 향해 대놓고 ‘더러운 임금’이라며 신하들이 조정을 떠날 때, 조정을 추스르면서 재건사업에 진력한 것도 최명길이었습니다. 하지만 후대의 역사는 최명길보다는 척화파(斥和派) 김상헌, 그리고 윤집·오달제·홍익한 등 삼학사(三學士)를 더 기억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호소
 
  그리고 그 전통은 오늘날에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한일국교 정상화를 추진했을 때, 야당과 지식인, 언론, 학생들은 “굴욕외교 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옵니다. 그런 비난을 듣는 박정희 대통령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당시 일본과의 막후교섭 임무를 맡았던 박태준 전 포철 회장에게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는 한일수교와 관련하여 정치자금 수수의 흑막이 있느니, 굴욕적이니 해서 비판도 많고 반대도 격심하지만, 우리가 언제까지 미국놈들에게 밀가루나 얻어먹고 사는 게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냐. 나라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이 길밖에 없다는 것이 내 신념이다. 설사 굴욕적인 측면이 있더라도 우리가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두고두고 왜놈들에게 더 큰 굴욕을 받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한일기본조약을 비롯해 한일국교 정상화 관련 조약들이 조인된 다음 날인 1965년 6월 23일 박정희 대통령은 ‘한일회담 타결에 즈음한 특별담화문’을 발표합니다. 이 담화문에서 박 대통령은 “오늘의 국제정세는 우리로 하여금 과거 어느 때보다도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라면서 “아무리 어제의 원수라 하더라도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들과도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국리민복(國利民福)을 도모하는 현명한 대처가 아니겠습니까”라고 호소합니다.
 
  또 박정희 대통령은 한일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굴욕외교”라며 반대해 왔던 국민들에게 이렇게 일침을 놓습니다.
 
  “만일 그들의 주장이 진심으로 우리가 또다시 일본의 침략을 당할까 두려워하고, 경제적으로 예속이 될까 걱정을 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들은 어찌하여 그처럼 자신이 없고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일본이라면 무조건 겁을 집어먹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비굴한 생각, 이것이 바로 굴욕적인 자세라고 나는 지적하고 싶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
 
  윤석열 정부는 3월 6일 그동안 한일 관계의 걸림돌이었던 징용공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았습니다.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조성한 재원으로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 15명에게 약 40억원을 일본 피고 기업 대신 우선 변제(辨濟)하되, 한국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가 공동 조성하는 ‘미래청년기금’에 일본 기업이 출연(出捐)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과 징용공·위안부 관련 단체들은 “굴종외교”라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친일 정권의 본질을 보여준 최악의 굴종외교”라고 비난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가히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외교사 최대의 치욕이자 오점이 아닐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윤석열 정부 역시 이런 반발을 예견했습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신중론을 제기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안보 등 시급한 현안이 많은데 언제까지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수는 없다. 미래를 위해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면서 결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국민들은 윤 대통령의 충정(衷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갤럽이 3월 8~9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9%가 반대한 반면, 찬성은 3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삼전도의 굴욕’ 운운하지만, ‘삼전도의 굴욕’을 야기한 것은 ‘글은 읽었지만 백성과 나라를 위해 경륜을 발휘할 줄은 모르면서 한갓 허언만 일삼는 소인배들’이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국민을 살리고 나라를 일으켜 세운 이들은 최명길 선생,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들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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