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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탄핵중독증’ 환자들을 보며

글 : 배진영  월간조선 편집장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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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8년 3월 5일. 미국 상원은 제17대 미국 대통령 앤드루 존슨(1808~1875년)에 대한 탄핵(彈劾) 재판을 시작했습니다. 탄핵 사유는 존슨 대통령이 ‘상원의 동의 없이 대통령이 공무원을 자의(恣意)로 해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재임법(在任法)’을 위반해 에드윈 스탠턴 육군장관을 해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표면적인 이유였습니다. 진짜 이유는 존슨이 당시 의회를 지배하고 있던 공화당 주류(主流) 의원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존슨은 링컨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남북전쟁에서 패한 남부와의 화합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공화당 강경파는 남부를 철저하게 징벌(懲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존슨에 의해 해임된 스탠턴 육군장관은 바로 그런 세력의 대부(代父)였습니다. 그는 대통령의 권위를 무시하면서 사사건건 존슨과 대립했습니다. ‘재임법’이라는 것도 사실은 공화당 강경파 의원들이 스탠턴의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만든 방탄입법(防彈立法)이었습니다.
 

  그리고 존슨이 스탠턴을 해임하자, 공화당 강경파 의원들은 기어코 존슨을 탄핵했습니다. 이 탄핵은 법적·정치적 정당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과 정책을 달리하는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축출하기 위한 ‘의회 쿠데타’였습니다.
 
  존슨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하기 위해서는 연방 상원의원 54명 가운데 3분의 2인 36명이 찬성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습니다. 상원 내 공화당 의원은 42명, 민주당 의원은 12명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들어갈 무덤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막상 탄핵 재판이 시작되자 공화당 상원의원 가운데 이탈 조짐을 보이는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에드먼드 로스(캔자스), 윌리엄 드페 피센덴(메인), 존. B 헨더슨(미주리), 피터 반 윙클(웨스트버지니아), 라이만 트럼벌(일리노이), 조셉 스미스 파울러(테네시), 제임스 그라임즈(아이오와) 등이 그들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정치적 이력만 놓고 보면, 그들이 그럴 사람들이 절대로 아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예컨대 당시 초선(初選)이었던 에드먼드 로스만 해도 남북전쟁 중 연방군(북군)에 자원입대해 싸우다가 소령으로 예편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상원의원이 된 후에도 남부에 대한 유화책에 반대하는 공화당의 입법이나 스탠턴 해임 반대 결의 등에 일관되게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에드먼드 로스 등이 탄핵에 비판적이라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난리가 났습니다. 공화당 강경파들은 남북전쟁 참전용사를 기반으로 한 강력한 대중조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전쟁의 전사상자들을 상징하는 ‘피 묻은 셔츠’를 흔들면서 자신들의 과격한 주장을 정치인들에게 강요했습니다. 그 시대의 ‘개딸’이었던 셈입니다. ‘피 묻은 셔츠’들은 로스를 비롯한 상원의원들에게 ‘주권자인 국민의 뜻’이라면서 탄핵에 찬성하도록 압박하는 편지를 보냈고, 그들이 매수되었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렸습니다. 물론 낙선시키거나 죽여버리겠다는 협박도 했습니다.
 
  상원의원들은 대법원장 앞에 나와 한 명씩 대통령이 유죄(有罪)인지, 무죄(無罪)인지를 말해야 했습니다. 에드먼드 로스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나는 문자 그대로 내가 들어갈 무덤 속을 들여다보았다. 우정, 지위, 재산, 그리고 야심만만한 사람들의 인생을 뜻있게 만들어주는 모든 것이 내 말 한마디로 영원히 사라지려 했다.”
 
  하지만 로스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무죄!”
 
  캔자스주의 한 신문은 그를 ‘미국의 이완용’이라고 할 수 있는 독립전쟁 당시의 배신자 베네딕트 아널드에 비유하면서 “돈 몇 푼 때문에 사람됨과 고귀한 모든 것을 잊어버린 썩어빠진 정신의 소유자, 불쌍한 소인배”라고 비난했습니다.
 
 
  ‘의회전제정치’ 경계한 로스
 
  로스는 다음 선거에서 낙선했습니다. 탄핵에 반대표를 던졌던 공화당의 다른 의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로스는 훗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대통령이 불충분한 증거와 당파적인 이해(利害) 때문에 파면된다면, 대통령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행정부의 역할은 정지될 것이며… 이 나라의 훌륭한 정치 조직은 당파(黨派)에 좌우되는 의회전제정치(議會專制政治)로 변질될 것이다.”
 
  거물 정치인 라이만 트럼벌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결정되어야 할 문제는 앤드루 존슨이 대통령의 지위에 적합한 인물인가 여부가 아니다. 의회가 냉정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불충분한 이유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전례(前例)가 단 한 번이라도 만들어진다면, 하원의 다수(多數) 및 상원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세력, 그리고 그들이 중요하다고 보는 법안에 관해 의견을 달리하는 장래의 대통령은 안전할 수 없을 것이다. 헌법에 바탕한 견제와 균형은 어떻게 되겠는가?”
 
  로스를 그토록 비난했던 캔자스의 언론과 정치인들은 훗날 그의 진심을 이해했습니다.
 

  “로스 의원의 용기 덕분에 이 나라는 전쟁보다도 더 큰 재난으로부터 구출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이 나라 역사상 가장 가혹했던 일을 겪어야 했던 정치적 순교자(殉敎者)로 만들었다. 로스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려는 ‘편협함이라는 화염’의 희생자였다. 그는 정치적으로 매장될 것을 알면서도 그 의무를 완수했다. 그는 자기 몸에 닥쳐오는 파멸적인 결과를 무시했고, 양심에 따라 행동했고, 숭고한 애국심을 지니고서 행동했다.”
 
  12월호를 만들면서 한 해를 돌아보는 글 대신에 155년 전 미국의 불발 탄핵 사태를 되새겨보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요즘 걸핏하면 들려오는 ‘탄핵 타령’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각종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이정섭 수원지검 차장검사 등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했습니다. 민주당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한 탄핵도 검토했지만 일단 보류해놓은 상태입니다. 핼러윈 참사 문제로 민주당이 탄핵 소추했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棄却) 결정을 받은 지 채 넉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러는 민주당을 두고 ‘탄핵 중독’에 걸렸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탄핵 중독’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 등이 압승하면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다는 소리가 나오더니, 급기야는 ‘총선 때까지 못 기다리겠다’면서 올해 안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를 목표로 하는 ‘윤석열 탄핵 범국민운동본부’가 발족한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헌법 제65조 1항은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 각 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 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지금 야당이나 시민단체들이 탄핵하겠다고 벼르는 이들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어떤 행위를 했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탄핵의 진짜 사유가 탄핵 추진 세력들을 지배하고 있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려는 ‘편협함이라는 화염’”은 아닐까요? 로스가 경고했던 ‘의회전제정치’를 우리는 요즘 매일같이 보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한동훈 장관, 이동관 위원장에 대한 호불호(好不好)의 문제가 아닙니다. 걸핏하면 대선 불복이나 정책에 대한 불만을 ‘탄핵’으로 표출한다면, 선거가, 삼권분립이, 헌법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미국 헌정사에 의미 있는 발자국을 남긴 것은 앤드루 존슨에 대한 탄핵을 밀어붙였던 공화당 강경파나 ‘피 묻은 셔츠’들이 아니었습니다. 에드먼드 로스나 라이만 트럼벌 같은, 정치적으로 매장될 것을 알면서도, 양심에 따라 숭고한 애국심을 지니고서 행동한 정치인들이었습니다. 민주당에는 그런 정치인이 정녕 한 사람도 없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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