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굿즈(goods)’로 보는 세상

6만4800원짜리 ‘2024 문재인 달력’ ‘문재인 팬덤’ 붕괴 보여줘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굿즈의 궁극적 가치는 ‘正體性 확인’… 2030 세대는 집회 참석 대신 굿즈 구입
⊙ 아이돌 팬으로 활동하던 2030 세대가 정치에도 관심 갖게 되면서 아이돌산업 논리 그대로 정치계에도 적용
⊙ 굿즈 판매 실적, 조민 유튜브 가입자 등으로 본 조국 열혈 지지층은 30만 명대
⊙ 영화 〈문재인입니다〉 관객은 11만6934명에 그쳐 ‘문재인 지지층’의 허구 드러나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작년에 나온 2023 문재인 달력 ‘당신과 함께라면’. 사진=텀블벅 캡처
  어느덧 연말이다. 그리고 연말을 맞아 각종 연말연시 특화(特化) 상품들도 온·오프라인 상품 진열대에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 상품이 바로 내년도 달력. 달력 전체가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가 있는 요즘 누가 달력을 걸어놓고 보나 의아할 수 있지만, 일종의 집안 꾸미기용 팬시 상품으로서 달력은 여전히 인기다.
 
  이 달력과 관련해서 최근 정치계와 얽혀 특이한 이슈거리가 생겨났다. 지난해에도 구설(口舌)에 오른 바 있는 ‘문재인 달력’ 얘기다. 상황을 담은 《디지털타임스》 2023년 10월 30일 자 기사 〈‘문재인 달력’ 또 나왔다… 무려 6만4800원 “돈독 올랐네” 비판〉을 보자.
 
  〈현재 교보문고, 예스24 등 국내 서점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 판매 중인 ‘2024년 문재인 달력’에 대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달력 패키지로 판매 중인 상품 가격을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30일 예스24, 더휴먼출판사(네이버스토어) 등 홈페이지에는 ‘2024년 문재인 달력 4종 세트(벽걸이 달력+탁상달력+일력+평산책방 친구들 소형 탁상달력)’가 6만4800원(예스24 홈페이지 기준, 이하 10% 할인가 적용)에 판매 중이다. 특히 올해는 일부 판매 사이트에서 ‘특별 사은품 문재인 커피 드립백 세트(12개입)’를 한정판 세트 구성에 포함시켰다. (중략) 해당 판매 패키지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세계 전직 대통령 중에 지지자들 상대로 돈벌이 하는 건 유일할 거다’ ‘연예인 딴따라들이나 할 법한 짓을 하고 있다’ ‘패키지 구성을 6만원에 파는 건 돈독 오른 것이다’ 등의 의견을 보이고 있다.〉
 
 
  지지자 집단의 아이돌 팬덤화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등장한 조국 티셔츠. 사진=조선DB
  사소한 해프닝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 현대 정치에서 꽤 중요한 부분이다. 이 같은 ‘굿즈(goods)’ 문제, 그러니까 ‘관련 상품’ 문제는 지난 20여 년에 걸쳐 꾸준히 진행돼온 ‘정치인의 아이돌(idol)화’ 문제, ‘정치인 지지자 집단의 아이돌 팬덤(fandom)화’ 문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실제 K팝 아이돌 주(主) 수익원이 굿즈이기도 하고, 단순 수익원 이상의 의미와 기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 부분을 올해도 또다시 벌어진 ‘문재인 달력’과 맞물려 좀 더 심도(深度) 깊게 다뤄볼 필요가 있다.
 
  일단 위 기사에 등장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반응처럼 정치인들이 단순히 ‘돈벌이’만을 위해 억지로 팬덤 대상 굿즈를 내놓다 보니 이런 촌극이 벌어지는 건 아니다. 애초에 수요가 없으면 이런 발상이 실체화되지도 못한다. 그러니 정치인 측에서 굿즈를 내놓지 않으면 해당 정치인 팬덤 측이 ‘알아서’ 굿즈를 만들어 자신들 내부에서 사고팔거나 아예 관련 없는 제3자가 굿즈를 만들어 팬덤에 판매하기도 한다. 《조선일보》 2019년 10월 8일 자 기사 〈조국 집회 ‘굿즈 전쟁’〉을 보자.
 
  〈조국 법무장관 논란에 대한 의견을 소지품을 통해 드러내는 ‘조국 굿즈(goods 상품)’가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7일 글로벌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는 조 장관이 케이크를 들고 귀가하는 그림과 함께 ‘내가 조국이다’라는 글씨가 적힌 티셔츠 6종류가 18~32달러(2만2000~3만8000원)에 팔리고 있다. 미국 거주 친문(親文) 한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미시USA’가 제작·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옷을 입은 사람이 지난 5일 서울 서초동에서 열린 ‘조국수호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에서 포착되기도 했다. 집회 현장에서는 ‘조국수호’라 적힌 야광 머리띠, 야광 응원봉 등도 수천원대에 팔렸다.
 
  반대 측에서도 조국 관련 상품 디자인을 최근 인터넷에 공개했다. 음료병, 그립톡(접착식 휴대폰 거치대), 열쇠고리 등이다. 조 장관 의혹은 양파처럼 까도 까도 나온다는 의미를 담아 ‘어니언조(onion曺) 굿즈’로 명명했다. 이 상품들에는 대부분 국화꽃 그림과 한자 ‘정의(正義)’가 새겨져 있다. ‘조 장관이 살해한 정의를 애도한다’는 의미다. 어니언조 유리병은 조 장관의 텀블러 애용을 풍자한 상품이다.〉

 
 
  ‘굿즈’의 뿌리는 J팝 아이돌 업계
 
드라마 〈그해 우리는〉의 대본집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일단 ‘굿즈’라는 용어부터 낯설 수 있다. ‘관련 상품’이라 부르면 될 것을 왜 굳이 영어 단어를 가져다 쓰는지 의아해지지만, 근원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K팝 아이돌계가 나온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 J팝 아이돌 업계에서 아이돌 로고 등이 들어간 티셔츠나 가방, 열쇠고리 등 관련 상품들을 가리켜 ‘굿즈’라 부르던 것이 한국 아이돌 팬덤에까지 들어와 널리 쓰이게 된 흐름.
 
  이런 점에서 ‘정치인의 아이돌화’, 특히 ‘정치인 지지자 집단의 아이돌 팬덤화’ 현상도 쉽게 근간(根幹)이 짚어진다. 아이돌 문화가 느닷없이 정치계로 밀려 들어와 장악했다기보다 이미 아이돌 팬으로 활동하던 2030 세대가 정치에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아이돌산업 논리 그대로 정치계에도 적용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나아가 실제 정치권에 아이돌계와 같은 논리를 요구하기도 한다. 아이돌이든 정치인이든 서로 비슷한 방식으로 팬덤 활동을 영위(營爲)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요구가 정치계 ‘굿즈 열풍’의 이유가 됐고, 곧 ‘문재인 달력’ ‘조국 굿즈 전쟁’ 같은 희한한 이슈거리들도 만들어내게 된 순서다.
 

  그럼 아이돌 팬덤, 아니 전반적인 대중문화 팬덤들은 왜 그토록 굿즈에 집착하는 걸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지난해 출판계 화젯거리였던 ‘TV 드라마 대본집 열풍’부터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중에서도 SBS 드라마 《그해 우리는》 대본집이 화제의 중심이었다. 출간 즉시 교보문고 주간 베스트셀러 종합 2위에 올랐고, 한 달여 만에 8만 부를 팔아치우는 기염(氣焰)을 토했다. 요즘처럼 출판시장이 잔뜩 위축된 상황에 대단한 사건이 됐다. 이에 《그해 우리는》 대본집을 출간한 출판사 측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는 독자라도 드라마의 열혈팬으로서 대본집을 ‘책’이라기보다 ‘굿즈’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렇다. 이제 영화나 TV 드라마는 스마트폰 환경에서 ‘언제 어디서든’ 바로 볼 수 있는 것이기에 대본 집필을 공부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대본집을 구매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 오직 굿즈 개념하에서만 성립 가능한 일이라는 얘기다.
 
 
  ‘굿즈’의 용도는 정체성 확인
 
‘MAGA’ 모자를 비롯한 트럼프 굿즈. 사진=AP/뉴시스
  그럼 굿즈를 대체 어떤 용도로 사들이는 걸까. K팝 아이돌 굿즈를 생각해보면, 이들 대부분은 일상에서 딱히 쓸모가 있어 사들이는 게 아니다. 심지어 집 한구석에 세워놓고 감상할 만한 장식용으로조차 못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굿즈가 어느 분야든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건 굿즈의 궁극적 가치가 개개인 ‘정체성(正體性) 확인’ 차원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점차 특정 문화 아이콘 또는 특정 콘텐츠를 좋아한다는 취향과 기호 자체를 자신의 중요한 정체성 요소로 인식하게 되다 보니, 그 취향과 기호를 대변해주는 상품을 취함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매번 재확인하고 이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얻으려는 패턴이 굳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출판계에선 대본집 열풍 이전부터도 이 같은 ‘정체성 확인’ 차원 굿즈형 베스트셀러 현상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2016년 국회에서 진행된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속기록을 담은 서적 《필리버스터: 민주주의, 역사, 인권, 자유》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일을 들 수 있다. 그저 속기록 전문(全文)을 그대로 담은 출판물에 불과한데다, 속기록 전문 자체가 이미 국회사무처 홈페이지에 무료로 일반 공개된 내용임에도 그렇게들 서적을 사들였다. 무려 1344페이지 분량, 3만3000원의 고가(高價)임에도 예약 판매 첫날 인터넷 서점 알라딘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이런 게 바로 ‘굿즈 현상’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이념이나 그 이념을 실천하는 정치인 및 정당 관련 굿즈도 같은 맥락, 즉 스스로의 정체성 확인 차원에서 똑같이 작동하고 가치와 생명력을 얻게 된다. 그렇게 개개인의 성장 배경, 문화적 기호, 정치적 성향 등 수많은 정체성 요소들이 굿즈 시장을 통해 상품화 단계를 밟고 있는 분위기. ‘굿즈의 시대’는 곧 ‘정체성의 시대’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일파만파(一波萬波)로 퍼져나간 ‘노란 리본’ 굿즈부터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지지자 사이 큰 인기를 모은 빨간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모자까지 모두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해서 평산책방 로고가 들어간 에코백 굿즈까지 간다.
 
 
  MBTI 심리 검사 열풍
 
  이렇듯 ‘정체성의 시대’가 열리게 된 배경은 간명하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개개인의 개별성과 차별성은 사회의 틀 안에서 점차 희석(稀釋)돼 다수가 자기 정체성에 불안감을 느끼고 존재 증명 차원에서 갈증을 겪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소셜미디어(SNS) 등장 이후 오히려 거대한 의식의 파시즘에 시달리며 개인성이 함몰(陷沒)되기 쉬워진 환경이기에 더더욱 이 같은 갈증이 쉽게 일어난다는 의견. 크게 보면 근래 2030 젊은 층에서 큰 인기를 모으는 성격유형 지표, MBTI 심리 검사 열풍 역시 이 같은 개성과 정체성의 자기 증명 및 타인들에게도 이를 알리고자 하는 소통기호 측면에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더 있다. 위 《그해 우리는》 대본집의 교보문고 구매자 분포 집계에 따르면 성별로는 여성이 77.1%로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 여기에 연령을 더해보면 20대 여성 33.4%, 30대 여성이 20.5%로 전체 구매자의 절반 이상이 2030 여성층에서 나온다. 함께 언급한 《필리버스터: 민주주의, 역사, 인권, 자유》도 마찬가지다. 알라딘 집계로 구매자 78.8%가 여성이었고, 구매자 중 37.5%가 20대 여성, 30.9%가 30대 여성이었다.
 
  비단 서적만도 아니다. 문화와 정치를 넘나드는 대부분 굿즈들이 2030 여성층 중심으로 팔려나간다는 점은 수많은 지표들을 통해 얼마든지 확인 가능하다. 애초 이런 팬시 상품에 대한 관심과 애착 정도부터가 다르고, 팬덤 문화에 대한 친숙도 역시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30 여성층은, 다들 알다시피, 압도적인 비율로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계층이다. 지난해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기준으로 보자면, 18~29세 여성의 58.0%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했고, 30대 여성은 49.7%가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했다. 왜 정치인 관련 굿즈가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그 이전, 애초에 ‘팬덤 정치’라는 것 자체가 왜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집회 참석 대신 굿즈 구입
 
  특기할 만한 건, 이처럼 ‘굿즈의 시대’가 부상(浮上)할수록 전통적인 ‘집회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일보》 2023년 10월 26일 자 기사 〈투쟁가 대신 ‘뱃노래’… 좌파 집회도 고령화, 개이모·개삼촌 모인다〉를 살펴보자.
 
  〈좌파 정치 집회 참석자의 고령화가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권 대학생과 유모차 부대가 빠진 자리를 중·장년층 이상 정치 고관여층이 채우고 있다. 태극기 집회뿐 아니라 좌파 집회도 세월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중략)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 동의안 표결이 있었던 지난달 21일 국회 앞에서 벌어진 시위도 비슷했다. 이날 집회에는 ‘개혁의 딸(개딸)’로 불리는 이 대표 강성 지지층 4000명(경찰 추산)이 모였다. 하지만 모인 이들 나이대를 보면 ‘개혁의 딸’이란 표현이 무색했다.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실이 서울교통공사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날 인근 ‘국회의사당역’에서 승하차한 무임승차 인원은 한 주 전보다 2989명(75.5%) 늘어났다. 무임승차자 대다수가 65세 이상인데, 이들이 집회 참석을 위해 지하철을 타고 와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떠났다고 가정하면 ‘개딸’ 집회에 참석한 인원 중 1500명가량은 65세 이상이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삼촌·이모’ ‘할아버지·할머니’였다는 것이다. 서울시 생활 인구 통계로도 이날 늘어난 여의도동 인구 중 42%는 50대 이상으로 추산됐다.〉
 
  젊은 층이 점차 정치에 무관심해져 간다는 흔한 진단은, 적어도 공직선거 투표율 측면으로 보자면, 사실과 크게 다르다. 지난해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2030 투표율은 이전 선거들에 비해 떨어졌다고 보기 힘들고, 17대와 18대 대선 당시보다는 오히려 올랐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도 마찬가지다. 2030 투표율은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꾸준히 오르는 중이다. 그렇게 정치에 대한 관심도와 참여 의욕은 점차 올라가고 있다. 다만 정치 집회에 참여하지 않을 뿐이다. 대신 굿즈를 산다.
 
  현대 개인의 파편화(破片化) 현상이 틀린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프라인상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집단적으로 모이는 집회 등은 꺼리지만, 자신의 정치적 의지나 이념적 선호 등을 철저히 개인적인 영역으로 여기는 경향이 생겨나 ‘집회 대신 굿즈’ 현상의 배경이 된다. 굳이 타인들에게 자기 의지나 선호를 공표(公表)하고자 할 때는 그렇게 사들인 굿즈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게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거기서부터 아이돌과 정치인 팬덤은 그 생리와 속성, 작동 방식에서 같은 궤를 그리며 ‘정치인의 아이돌화’로 나아간다.
 
 
  조국 지지자는 30만 명대
 
《조국의 시간》은 30만~40만 부가 팔린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이 같은 ‘굿즈의 시대’ ‘팬덤의 시대’ 논리에 맞춰 한국 정치계 현황을 돌아보자. 팬덤 정치가 ‘굿즈의 시대’로까지 옮아간 현시점은 옛 동원(動員)정치 시절처럼 50만이니 100만이니 하는 광화문광장이나 보라매공원에 운집한 ‘머릿수’로 세(勢)를 과시하는 패턴보다, K팝 아이돌산업과 똑같이, 팔려나간 굿즈의 ‘수(數)’를 통해 그 열혈 팬덤 규모를 가늠해보는 패턴이 젊은 층에 어필하기 쉬워진다. 그리고 실제로 이미 많이들 이렇게 하고 있다. 정치인과 관련한 수많은 상품 판매 ‘수’를 통해 설전이 벌어지는 모습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상당히 쉽게 접할 수 있다.
 
  예컨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보자. 무슨 일을 겪든 절대 지지를 철회하지 않을 조 전 장관의 열혈 팬덤 규모를 가늠하기 위해선 그가 뿌려온 갖가지 굿즈들과 뉴미디어 툴 현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지난해 개봉한 극장용 다큐멘터리 영화 〈그대가 조국〉이 있다. 조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2019년 8월 9일부터 장관직을 사퇴한 같은 해 10월 14일까지 67일 동안의 일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총 33만3633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 한편 〈그대가 조국〉의 바탕이 된 조 전 장관의 서적, 2021년 출판 즉시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올랐던 《조국의 시간》은 출판사 측에서 30만 부 돌파까지 발표하고 이후론 추가 발표가 없었으니 대략 30만~40만 부가 팔린 것으로 파악된다.
 
  ‘30만’이라는 숫자가 반복된다. 여기에 좀 거리가 있는 듯 보이면서도 의미심장(意味深長)한 수치가 조 전 장관의 딸 조민의 유튜브 채널 ‘쪼민 minchobae’ 구독자 수다. 지난 5월 12일 채널을 개설한 이래 11일 만에 구독자 수 10만을 돌파하고 10월 4일 30만을 돌파한 뒤 11월 4일 현재 35만6000명 선에 이르고 있다. 애초 조민이라는 인물 자체가 입시 비리 관련으로만 대중에 알려진 터라 상식적으로 본인 나름의 매력과 인기 덕에 얻어진 구독자 규모라 보긴 힘들고, 상당 부분 조 전 장관을 지지하는 팬덤이 힘을 실어주기 위해 달려온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 또 여기서도 ‘30만’이 반복되는 셈이다.
 
  이런 것이 대중문화계, 특히 K팝 아이돌계에 익숙한 2030 세대가 정치인 열혈 팬덤을 바라보고 가늠하는 방식이다. 이들에게 조 전 장관은 약 30만 명 정도의 고정 열혈 팬덤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며, 이들은 조 전 장관 관련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지지를 계속할 콘크리트 기반이다. 30만이 수(數)이고, 곧 세(勢)다. 정치인의 세(勢)가 상품시장의 거래를 통해 확인된다는 점에서 어딘지 일본 제64~65대 내각총리대신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의 악명 높은 코멘트, “정치는 수(數), 수(數)는 힘, 힘은 돈”이 떠오른다.
 
 
  영화 〈문재인입니다〉의 흥행 참패
 
영화 〈문재인입니다〉는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1/16에 불과한 관중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어찌 됐든 이 같은 방식으로 다른 정치인들의 굿즈 판매 사례, 관련 미디어 상품 판매 사례들을 돌아보면 예상 밖의 현황들도 확인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5월 10일 개봉한 극장용 다큐멘터리 영화 〈문재인입니다〉를 들 수 있다. 〈문재인입니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제19대 대통령직에서 내려온 후 평산마을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노무현 전 대통령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의 이창재 감독이 만들었다. 개봉 당시 언론미디어에서는 〈문재인입니다〉가 전주국제영화제의 영화 지원 사업 ‘전주시네마프로젝트’에 선정되며 전주시 시비(市費)로 마련된 제작 지원금 1억원을 받았다는 점,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일에 의도적으로 맞춰 개봉한 듯 보인다는 점 등에 주목하며 이슈를 끌어냈지만, 대중문화계 차원에선 그 흥행 흐름에 주목하며 당혹감을 금치 못했었다.
 
  11만6934명. 〈문재인입니다〉가 기록한 최종 관객 수다. 앞선 〈그대가 조국〉의 3분의 1 정도에 그치고, 같은 감독에 제목까지 비슷하게 따라한 〈노무현입니다〉의 185만5572명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16분의 1 수준에 머문다. 그나마도 클리앙, 보배드림, 디시인사이드의 더불어민주당 마이너 갤러리 등 친문(親文)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들에서 열심히 구매 운동을 벌인 결과가 이 정도다. 특히 대통령 퇴임 직전까지 지지율 41%를 기록하던 인기 정치인이 불과 1년여 만에 열혈 팬덤을 이렇게까지 잃었다는 점에 모두들 당황했다.
 
  이에 정치인 팬덤 관련으로 ‘노무현만이 진정한 슈퍼스타’라는 진단이 내려지는 실정이다. 노 전 대통령은 어쨌든 그 드라마틱한 일생을 통해 대중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하나의 캐릭터로서 여전히 큰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그 외의 좌파(左派) 정치인들, 특히 그 최측근에 있던 문 전 대통령은 ‘노무현 후광(後光) 효과’로 얻은 인기와 현직 좌파 정당 대통령에 대한 좌파 성향 대중의 기본적 지지 덕에 그 팬덤 규모와 충성도가 그간 과대 평가돼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캐릭터 자체의 매력과 관계없이 얻어진 인기와 지지는 정치인으로서 정점(頂點)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와 권력과 영향력을 잃으면 급속도로 휘발돼버리는 것이라는 관찰이 잇따랐다. 그보다는 차라리 아직 정점에 이르지 않은 조국 전 장관 쪽 팬덤이 더 공고(鞏固)할 정도로 말이다.
 
 
  굿즈로 보는 세상
 
지난 6월 10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운영하는 경남 양산시 평산책방을 찾아 책방지기로 봉사했다. 사진=뉴스1
  한편, 그렇게 대중문화계 논리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지금’을 바라보면 서두의 ‘문재인 달력’ 문제도 함께 풀린다. 그나마 지난해엔 벽걸이 및 탁상달력을 묶어 2만3040원(예스24 홈페이지 기준)에 판매한 반면 올해는 서두의 기사처럼 평산책방 친구들 탁상달력과 일력 상품을 추가시켜 그 3배 가까운 6만4800원에 팔고 있어 입방아에 올랐다. 그런데 이는 대중문화산업 논리로 보면 ‘팬덤이 떨어져 가는 아이돌’의 전형적인 굿즈 판매 방식이다.
 
  더이상 팬덤이 확장될 가능성은 전무(全無)하고 심지어 유지조차 제대로 되지 않으며 오히려 급속도로 팬덤이 해체돼가고 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을’ 소수의 열혈 팬덤을 향해 계속 상품을 추가시킨다는 명목으로 굿즈를 몇 배씩 비싸게 팔아 떨어져 나간 팬덤 ‘머릿수’를 대신하려는 방식. 팬덤이 확장 추세라 해도 ‘더 비싸게 판다’는 카드는 꺼내지 않는 게 상례(常例)다. 특히 일본 아이돌계에서 이런 방식을 상당히 빈번하게 동원한다. 일본 아이돌의 한국 팬덤에선 이를 ‘쥐어짜 낸다’는 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같은 ‘쥐어짜 내기’를 한국 아이돌에 적용해도 반발이 심한데 정치인에게 적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 보듯 빤하다.
 

  이렇듯 굿즈로 보는 세상, 굿즈 소비자들인 팬덤으로 보는 세상, 팬덤 개념의 근원지 대중문화산업 논리로 보는 세상은 향후 사회 여러 분야에 걸쳐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일상을 구성하는 갖가지 분야에서 한꺼번에 팬덤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연예인이나 정치인을 넘어 TV 프로그램이나 기업, 심지어 아이폰이니 갤럭시니 하는 스마트폰 상품에까지도 팬덤 현상이 일어나 서로 경쟁 상대를 비방(誹謗)하며 자신이 지지하는 상품을 신성화(神聖化)하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 화제가 됐던, 아이폰 사용자가 갤럭시 스마트폰을 ‘갤레기(갤럭시+쓰레기)’라 부른다는 상황처럼 말이다. 스마트폰 분야의 ‘애플 팬덤’은 웬만한 정치인이나 연예인 팬덤 이상의 충성도를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만사가 팬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세상살이는 점차 각박해지고 일상에서 개인으로서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얻어내기 힘들어진 환경이기에 그렇다. 특히 소셜미디어 등장 이후 서로들 비교심리로 가득 차 개개인의 자존감이 폭락하고 절망감과 열등감만 극심해지는 분위기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럴수록 연예인이든 정치인이든 남들 앞에 서는 유명인, 인기 있는 콘텐츠, 대기업 또는 대기업 상품 등 ‘자신보다 커 보이는 것’에 일정 부분 자아(自我)를 의탁(依託)하며 그들에 힘을 보탬으로써 대리(代理) 성취감과 효능감을 얻어내려는 욕망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정서의 빈곤에 딱히 해소 방안이 존재하지 않으니 ‘만사(萬事)가 팬덤’ 현상도 향후 급격히 심화(深化)될 전망이다.
 
  여러모로 안타깝다면 안타까운 광경이지만, 이제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사회문화 현상이나 정치·사회적 갈등 등을 바라볼 때 점점 더 그 뒤의 숨은 팬덤 현상에 근거해 상황을 해석해야 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문재인 달력’이나 〈그대가 조국〉 같은 굿즈, 관련 상품들부터 시작해 팬덤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이런저런 판단의 중요한 정보로서 기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현상들을 일으키는 근본적 원인, 현대 대중의 멘털리티(mentality)에 대한 이해와 지속적 관찰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1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48valley@gmail.com    (2023-12-04) 찬성 : 2   반대 : 0
디지탈타임스의 비판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네요!기가 차서 말이 안나오고 욕이 나오지만 또 카트될까봐 그만...

202312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북스토어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